장마철에 나는 밝은 햇빛

 


  장마철이라고 하는데, 시골과 도시에 내리는 비는 다르다. 도시에서는 빗물을 모두 하수구로 흘러들도록 해서 재빨리 바다로 빠지도록 할 텐데, 시골에서는 이 빗물이 논과 밭과 숲에 골고루 떨어져 온 들판을 촉촉히 적시기를 바란다. 시골마을 모든 흙일은 햇볕과 바람과 빗물, 이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람들 따사로운 사랑이 어린 손길을 곁들여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거둔다.


  이 장마철에 사이사이 햇살이 빼꼼 비치곤 한다. 밤에는 틈틈이 별이 반짝반짝 빛나기도 한다. 비구름 걷히며 길바닥이 마르면 아이들 이끌고 자전거마실을 다닌다. 비가 그친 김에 마을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벗기며 물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장마철에 나는 밝은 햇빛은 축축한 집을 포근하게 감싼다. 축축한 기운을 가만히 털어 준다. 마룻바닥에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생각한다. 해가 없는 삶을 어떤 사람이 생각할 수 있을까. 바람이 없는 삶을 어떤 사람이 꿈꿀 수 있을까. 빗물과 눈송이가 없는 사람을 어떤 사람이 바랄 수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자면 다른 무엇보다 해, 바람, 비, 여기에 흙과 풀과 나무, 또 벌레와 짐승과 새 모두 골고루 어우러져야 한다. 이렇게 모두 사이좋게 얼크러질 때에 사람은 사람답게 가장 맑으며 밝게 웃고 노래하면서 춤을 출 수 있다.


  해가 없거나 바람이 없거나 빗물이 없는데, 책을 만들 수 있을까. 흙과 풀과 나무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떤 글을 쓸 만한가. 벌레와 짐승과 새를 알뜰히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듣는다 할까.


  빗소리를 읽는다. 햇살을 읽는다. 바람결을 읽는다. 풀내음과 흙빛과 나무노래를 읽는다. 벌레와 짐승과 새가 마련하는 보금자리를 읽는다. 그리고, 내 마음과 꿈과 사랑을 읽는다.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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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을 걷다

 


  책방 앞을 지나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책방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책방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내가 책방 옆을 지나가는구나.’ 하고 느끼는 날 있을 테고, ‘오늘은 한번 들어가 볼까.’ 하고 생각하는 날 찾아올 수 있어요. 어떤 책이 나를 기다리는지 모르고, 내가 어떤 책을 고를는지 모르지만, 마냥 책방 문 열고 들어가서 책시렁을 가만히 돌아볼 날 찾아오리라 믿어요.


  빵집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빵집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찻집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찻집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곁에 늘 있는 조그마한 빵집과 찻집이 나를 부르듯, 마을에 깃들어 오래도록 제자리 지키는 책방 한 곳을 마음에 두면, 시나브로 책내음이 나를 부릅니다.


  마을에 숲이 있으면, 숲 앞을 지나다니던 어느 날 숲에 한 발자국 들일 수 있어요. 마을에 냇물이 흐르면, 냇물 앞을 지나다니던 어느 날 신을 벗고 냇물에 발을 담글 수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에 어떤 집과 가게가 있는가를 느껴야지 싶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에 풀과 꽃과 나무가 어떻게 어우러졌는가를 느껴야지 싶어요. 이웃을 살피고 숲을 헤아립니다. 동무를 생각하고 수많은 숨결을 떠올립니다.


  아이들이 학교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집과 학교 사이를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닐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집과 학교 사이를 걸어서 다니는 거님길 둘레에는 자동차가 되도록 적게 다니거나 안 다닐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조용한 바람을 느끼고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걸어다닐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걷는 이 길에 예쁜 책방 몇 군데 있어, 마음을 쉬거나 살찌우거나 다스릴 만한 이야기 즐겁게 찾을 수 있기를 빌어요.


  책방이 있기에 책을 만나요. 책방이 있어 마을이 환하게 웃어요. 책방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새록새록 감돌아요. 책방과 함께 삶을 노래해요.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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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31) -의 계절 3 : 수유의 계절

 

매년 수유의 계절이 되면 열매의 무게로 가지가 휘어질 정도다
《이가라시 다이스케/김희정 옮김-리틀 포레스트 (1)》(세미콜론,2008) 5쪽

 

  ‘매년(每年)’은 ‘해마다’로 다듬고, ‘계절(季節)’은 ‘철’로 다듬어 줍니다. “휘어질 정도(程度)다”는 “휘어지곤 한다”나 “휘어질 만큼 가득하다”나 “휘어지도록 가득하다”로 손봅니다. “열매의 무게로”는 “열매 무게로”나 “열매들 무게로”로 손질합니다.

 

 수유의 계절이 되면
→ 수유가 익는 철이 되면
→ 수유를 따는 철이 되면
→ 수유철이 되면
 …

 

  감이 익을 무렵이면 “감이 익을 무렵”이면서 “감이 익는 철”이요 “감철”입니다. 능금이 익을 때라면 “능금이 익을 때”이면서 “능금이 익는 철”이요 “능금철”입니다.


  우리는 ‘수박철’과 ‘딸기철’과 ‘참외철’과 ‘호박철’과 ‘살구철’과 ‘대추철’ 들을 이야기하면서 요즈음 날씨가 어떠한지를 헤아리곤 합니다. 입맛에 따라 철을 생각하고, 산과 들에서 무르익는 열매를 떠올리며 철을 생각합니다.

 

 (열매나 푸성귀나 온갖 먹을거리 이름) + 철
 수유철 / 능금철 / 배추철 / 감자철 / 바지락철 / 전어철

 

  이제는 웬만한 가게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따로 없이 온갖 열매가 널리고 갖은 푸성귀가 펼쳐집니다. 굳이 철을 살피지 않더라도 언제나 딸기를 먹고 수박을 먹고 바나나를 먹습니다. 집이나 일터 또한 요즈음 철이나 날씨가 어떠한가를 몰라도 한결같이 따뜻하거나 시원합니다. 자가용으로 움직이든 전철이나 버스로 움직이든, 우리는 바깥 날씨를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꼭 바깥 날씨를 알뜰히 느끼거나 깨달아야 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몸이 바깥 날씨를 잊거나 잃는 동안, 저마다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잊거나 잃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이 잊거나 잃는 무엇인가는 삶에서 또다른 무엇을 잊거나 잃도록 줄줄이 이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삶다운 삶을 잊거나 잃으면, 삶을 밝히는 생각을 함께 잊거나 잃는다고 느껴요. 다른 누가 괴롭히거나 들볶지 않았어도 우리 스스로 우리 터전을 일구는 생각을 잊거나 잃는다면, 아름다운 뜻과 맑은 넋을 담아낼 말과 글 또한 우리 손으로 내버리거나 내치는 셈이 되리라 느껴요. 4342.8.2.해/4346.7.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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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유철이 되면 열매 무게로 가지가 휘어지곤 한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87) -의 계절 4 : 안개의 계절

 

안개의 계절이 돌아왔다
《강제윤-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호미,2013) 87쪽

 

  “-의 계절” 같은 말투가 나타나는 까닭은 아무래도 ‘계절’이라는 한자말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한국말 ‘철’을 쓰더라도 “안개의 철”처럼 엉뚱하게 쓰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때에는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토씨 ‘-의’를 사이에 넣는 말투가 알맞거나 올바른가를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름날 장마가 찾아오면 모두 ‘장마철’이라 말합니다. “장마의 철”처럼 말하지 않아요. 여름이 다가오면 ‘여름철’이라 하지, “여름의 철”처럼 말하지 않아요.


  안개가 잔뜩 끼는 철이 돌아오면 ‘안개철’입니다. “안개의 철”이 아닙니다.

 

 안개의 계절
→ 안개철
→ 안개 피는 철
→ 안개가 피어나는 철
 …

 

  꽃이 피기에 ‘꽃철’입니다. 열매가 익는 가을은 ‘열매철’이라 할 만합니다. 대학입시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입시철’을 말해요. 아마 누군가는 “입시의 계절”이라 말하면서 일본 말투가 슬프게 끼어드는 모습을 못 깨달을 수 있을 테지만, 퍽 많은 한국사람들 입에는 “입시의 계절”보다 ‘입시철’이 익숙해요.


  시골에서는 ‘농사철’입니다. “농사의 철”이 아닙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 나라에서 살아온 여느 사람들 수수한 말을 떠올리면서, 오늘 우리가 쓸 가장 사랑스럽고 빛나는 말을 생각합니다. 4346.7.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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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철이 돌아왔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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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 - 강제윤 시인의 풍경과 마음
강제윤 지음 / 호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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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41

 


걸으며 찍는 사진으로 길동무
―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
 강제윤 글·사진
 호미 펴냄,2013.6.10./16000원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좋아합니다. 사진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사진을 못 찍습니다. 꽃씨를 심어 꽃을 돌보며 그윽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꽃을 좋아합니다. 꽃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꽃씨를 못 심고 꽃을 못 보지요.


  자가용을 모는 사람은 자가용을 좋아해요.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은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모는 사람은 자전거를 좋아합니다.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라면? 네, 두 다리를 좋아하니까 천천히 걷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천천히 이 길 저 길 돌아다니면서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쬡니다.


  고기를 좋아하니 돼지고기이든 물고기이든 소고기이든 먹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 고기를 길러서 잡아먹지는 못해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몇몇 사람만 스스로 집짐승 키우면서 손수 잡아먹을 뿐입니다. 풀을 먹는다는 채식꾼도 이와 같아요. 손수 집에서 풀을 돌보면서 풀을 먹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적잖은 채식꾼은 가게에서 풀을 사다 먹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아가니 집짐승 키우거나 풀을 돌보기란 어려울 수 있어요. 소고기 좋아한다면 소가 풀을 뜯을 만한 숲이나 골짜기나 들이 있어야 할 텐데, 도시에서는 이런 숲과 골짜기와 들을 누리지 못해요. 물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못이나 시내나 바다를 누리지 못하지요. 풀을 좋아하는 이들도 텃밭을 마땅히 누리기 어렵습니다. 이리하여, 도시에서 무엇 하나 좋아하면서 즐기는 사람은 ‘제대로’ 누리거나 즐기지 못해요. 왜냐하면, ‘마지막(결과)’ 자리에서 고기를 굽거나 풀을 헹구어 먹기만 하니까, 새끼부터 키우는 집짐승이랑, 씨앗부터 돌보는 풀을 알지 못해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어린 집짐승이 자라는 결을 살피지 못하고, 풀씨 하나 떡잎 돋고 줄기 오르는 아름다운 흐름을 마주하지 못해요. ‘먹기’에서만 그치지 말고 ‘기르기’와 ‘돌보기’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아끼기’와 ‘사랑하기’로도 나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이렇게 해야 저마다 좋아하는 한 가지를 ‘오롯이’ 누리거나 즐기면서 우리 삶이 다 다른 곳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어우러지는가를 환하게 느낍니다.

 

 

 


  섬마실꾼이라 할 강제윤 님이 섬마실 다니면서 느낀 이야기를 시와 사진으로 갈무리한 책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호미,2013)를 읽습니다. “여행의 목적지”라고 책이름을 적습니다만, “여행하는 목적지”라든지 “여행을 가는 곳”이라는 뜻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행을 가는 곳이 여행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길을 나서는 곳이 길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선 이 길이 바로 마실길이요 삶길이라는 뜻이에요. “파도 속에서는 파도가 되고, 바람 속에서는 바람이 되어 가라. 그대는 마침내 평온을 되찾게 될 것이다(30쪽).” 같은 말마따나, 바람을 맞는 곳에서는 바람이 됩니다. 초피나무에 앉아 초피 열매 쪼아먹는 멧새는 초피나무가 됩니다. 초피잎에 알을 낳아 초피잎 먹고 자라다가 번데기로 여러 날 잠든 뒤 깨어난 범나비는 초피잎 되겠지요. 눈부신 날개마다 초피잎 갉아먹은 내음과 결과 무늬가 알알이 깃들어요.


  바람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면 스스로 바람이 되면 됩니다. 바다를 사진으로 찍고 싶을 때에는 스스로 바다가 되면 되어요. 강제윤 님은 스스로 섬이 됩니다. 스스로 섬이 되어 섬을 노래하고 섬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섬에서 만난 할매와 할배를 생각하는 강제윤 님은 문득 “자기가 사는 마을의 동구 밖도 나가 보지 못한 노인마저 은하 여행자인 것이다(38쪽).” 하고 말합니다. 여행이란, 비행기를 타고 티벳이나 부탄쯤 가야 여행이 되지 않아요. 아궁이에 지필 불을 헤아려 땔감을 마련하고자 멧골에 들어가 나무를 하고 지게에 얹어 내려오는 길도 여행입니다. 할매가 군불 지피면서 솥에 물을 맞추어 밥을 끓이느라 부엌과 마당을 오가는 길도 여행입니다. 문간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나날도 여행이지요. 여행하는 사람만 나무그늘에 앉아 생각에 잠기지 않아요. 마을 할매와 할배도 먼산바라기를 하고 하늘바라기를 하며 구름바라기를 하면서 생각에 잠겨요. 이 모두 여행입니다.


  곧, 여행이란 삶입니다. 삶은 여행이고, 다시 삶은 삶이며 여행은 여행이겠지요.

 

 

 


  “집을 떠나 자연의 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바쁘게 걷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은 다시 속도의 노예가 되는 일이다. 길가의 풀과 나무와 들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거나 새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걷는다면, 또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풍경을 놓친다면, 길에 얽힌 이야기와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지 못한다면, 대체 이 자연의 길을 걷는 의미는 무엇일까(40쪽).”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서 자가용을 씽씽 달리기만 해서 어떤 사진을 찍겠습니까. 시를 쓰고 싶다면서 비행기 걸상에 앉기만 한다면 어떤 시를 쓰겠습니까.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면서 텔레비전만 멍하니 들여다본다면 어떤 사랑을 노래하겠습니까.


  걸어야지요. 움직여야지요. 생각해야지요. 마음을 기울여야지요.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빗소리를 듣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개구리와 풀벌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 말소리를 듣고, 내 목소리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삶을 삶결 그대로 마주하면서 느낄 때에 비로소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차리면서 찰칵 소리 내며 단추를 누릅니다.


  강제윤 님은 “천사 날개가 그려진 벽화 앞에 서면 누구나 천사가 된다. 구름 뜬 하늘 그림 앞에서는 누구나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49쪽).” 하고 말합니다. 그럼요. 마음에 따라 몸이 바뀌는걸요. 마음에 따라 사진이 바뀌고, 마음에 따라 시와 노래와 춤이 모두 바뀌어요. 마음을 어떻게 건사하느냐에 따라 사진을 읽는 눈매가 바뀌어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사진을 찍는 손길이 바뀌어요.

 


  “도시의 길들은 자동차와 온갖 장애물들의 위협으로 더 이상 생각에 몰두해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59쪽).”라고 하지요. 도시에서는 걷기가 참 나쁩니다. 걷자면 걸을 수 있지만, 생각을 활짝 열면서 걷기 힘듭니다. 너무 시끄럽고 자동차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마음을 따사로이 돌보면서 걷기 힘든 도시입니다. 이렇기 때문인지 모르나,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삶자락에서 마음을 따사로이 돌보며 걷기 힘들다 보니, 도시에서는 이웃한테 따사로이 마음을 쏟는 사람 만나기 퍽 힘듭니다.


  걸으면서 사진을 생각합니다. 걸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스튜디오에서든 방송국에서든 무대에서든, 우리는 걸으면서 사진을 생각하고 걸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뛰면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지만, 사진기 손에 쥔 이들은 으레 천천히 걸어요. 천천히 걷다가 우뚝 멈추어요. 숨을 고르다가는 숨까지 멎은 채 사진기 단추를 눌러요.


  참말, 사진이란, 걷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 할는지 모릅니다. 참말, 사진을 누리자면, 자가용하고 헤어진 채 홀가분하게 걸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참말, 사진을 빛내자면, 활짝 웃고 노래하면서 두 팔과 두 다리가 땅을 디디고 하늘을 우러를 수 있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카페리가 다니지 않는 먼 섬일수록 섬길은 걷기의 천국이다. 외지인들이 섬으로 차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섬에게도, 섬을 찾은 사람들 자신에게도(62쪽).”라 하잖아요. 섬길을 걸어다닐 수 있다니 얼마나 즐거워요. 섬길은 그예 걷는 길이라 하니 얼마나 사랑스러워요. 섬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나비가 팔랑거리는 소리가 귓가로 스쳐요. 섬길을 천천히 걷다가 조용히 멈추면, 거미가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에 줄을 살며시 드리우면서 볼볼볼 하늘을 걷듯 실을 짜서 집 짓는 모습을 소리와 빛깔로 만날 수 있어요.


  내 손에 사진기가 꼭 있어야 하지는 않아요. 그저 가만히 멈춘 채 눈을 감아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요. 나를 둘러싼 이 섬길에서 어떤 바람이 흐르고 어떤 햇살이 내리쬐며 어떤 냇물이 흐르고 어떤 물결이 일렁이는지 헤아려요.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요. 마음속 그림에 빛깔을 입혀요. 빛깔을 입힌 마음속 그림을 싯말로 영글어 노래로 불러요.

 


  사진이란 사진인 까닭은, 여행이란 여행인 까닭하고 같아요. 삶은 삶이고 사랑은 사랑이에요. 사랑은 돈이 아니고 부동산이 아니며 성형수술 얼굴이나 몸매가 아니에요. 사랑은 쓰다듬기나 입맞춤이 아니에요. 쓰다듬기는 쓰다듬기요 입맞춤은 입맞춤이지요. 사랑은 오직 사랑이에요. 걷기는 걷기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에요. 나들이는 나들이일 뿐 다른 무엇이 아니에요. 된장찌개는 된장찌개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여행은 그예 여행이고, 삶은 그대로 삶이며, 사진은 곧 사진입니다.


  “동일한 풍경을 보고서도 사람마다 그려내는 풍경이 제각각인 것은 사물을 관찰할 때의 속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60쪽).”라고 말하는 강제윤 님입니다. 덧붙여, 섬마을 할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노인은 돌담에 기대선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 아직 멀었어요. // 콩은 / 감나무 이파리 세 잎 날 때 심어요(128쪽).” 하고. 섬마을 할배 이야기는 싯말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나저나, 이파리는 ‘석’ 잎일 텐데요.


  감나무에 이파리 갓 돋을 적에는 감잎을 톡 따서 냠냠 씹습니다. 감잎에서는 감잎내음이 납니다. 나는 아이들과 여린 감잎을 뜯어서 먹고, 여린 느티잎을 뜯어서 먹습니다. 여린 버들잎도 먹을 만해요. 여린 단풍잎도 퍽 맛깔납니다.


  쑥잎을 날것 그대로 먹으면, 날푸성귀로 먹으면, 쑥맛이 납니다. 부추잎을 날것 그대로 먹으면, 부추맛이 나요. 모시잎에서는 모시맛이 납니다. 고들빼기에서는 고들빼기맛이 나요.


  모든 잎사귀, 그러니까 들풀, 다시 말하면 풀잎은 다 다른 맛과 냄새와 멋입니다. 냉이는 냉이일밖에 없고, 씀바귀는 씀바귀일밖에 없어요. 섬에서 살거나 섬으로 마실을 다니면서 스스로 섬이 되기에 섬을 노래할 수 있고 섬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예쁜 모델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면, 아주 마땅히, 예쁜 모델과 내가 하나로 되어야 해요. 사랑스러운 짝꿍을 사랑스레 사진으로 찍고 싶다면, 예쁘장한 모습 아닌 사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담아서 찍으면 됩니다. 예쁘장하게 찍으면 그저 예쁘장한 사진이에요. 사랑스러운 모습을 바라면 ‘사랑스러운 삶’을 ‘사랑스러운 마음’ 되어 생각해야 해요.


  시와 사진이 어우러진 섬마실 이야기책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는 “부자가 되어서 나누는 삶은 아름답다. 하지만 부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더욱 아름답다.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얻게 되는 모든 것을 나누어 버릴 때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215쪽).”와 같은 이야기가 흐르면서 끝맺습니다. 이 얘기란, 섬마실꾼 강제윤 님은 스스로 가난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이녁이 섬마실을 하며 누린 모든 꿈과 사랑을 이 책 읽는 벗님한테 나누어 주고 싶다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그럴듯한 사진이나 멋들어진 글 아닌, 섬과 한몸 되어 오롯이 누린 삶이 어떤 이야기로 태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짚고픈 마음이라고 할까요. 대단한 작품이나 문학이나 예술이 아닌, 저마다 사랑할 삶은 어디에 있을까를 되새기면서 오늘 하루 아름답게 일구는 기쁨을 스스로 찾는 마음결이라고 할까요.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사진을 찍고 싶은데 대학교에 가거나 사진강좌를 듣거나 사진이론을 파고들 까닭이 없어요.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을 찍을 사진기를 장만해서 손놀림을 익히면 되고, 사진기 다루는 손놀림 익혔으면 신나게 내 삶을 누리면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됩니다.


  삶을 누리는 사람이 찍는 사진입니다. 작가가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읽는 사진입니다. 비평가가 읽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쓰는 책입니다. 전문가가 쓰는 책이 아닙니다. 이제 책 다 읽었으면, 책상맡에 내려놓고 ‘마음 사진기’를 열어요. 종이나 필름이나 디지털파일에 안 담아도 오래오래 빛나고 언제까지나 해맑은 이야기 한 자락 내 삶에서 길어올려요. 우리는 누구나 지구별을 여행하는 아름다운 길동무입니다.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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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빨래

 


  작은아이 빨래가 나날이 줄어든다. 이제 작은아이가 밤오줌을 그럭저럭 가린다 할 만하니까, 천기저귀 빨래가 확 줄었다. 다만, 새벽부터 밤까지 아주 개구지게 논 날에는 밤에 낑낑거리지 않다 보니 쉬를 누이지 못해 기저귀와 바지와 바닥에 흥건하게 쉬를 누기도 하는데, 작은아이 한두 살 적에는 밤마다 오줌바지와 오줌기저귀 갈려고 얼마나 자주 잠을 깨어야 했던가.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밤오줌 모두 가리는 날이란, 바야흐로 아버지가 밤에 느긋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날이지. 요즈음 장마철이라고도 해서 빨래하기에 안 좋은 날씨인데, 마침 이럴 때에 작은아이 빨래가 눈에 뜨이도록 줄어드니까, 빨래를 적게 해서 홀가분하고, 집일 한 가지 준 셈인가 싶어 가붓하다. 아이들 크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란 이런 것일까. 앞으로 이 아이들은 몇 살쯤부터 저희 옷가지를 저희 손으로 야무지게 빨아낼 수 있을까. 큰아이는 두 해쯤 기다리면 될까 싶기도 하고, 작은아이는 다섯 해쯤 기다리면 되려나.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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