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날아오르는 어린이

 


  놀이터에 갔다. 낯선 미끄럼틀이 있다.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다. 가만히 지켜본다. 다른 아이들이 타는 모습을 곰곰이 살피더니, 한 번 올라가서 탄다. 두 번 타고 세 번 타며 익숙해지니 쉬잖고 오르내리며 탄다. 이윽고, 구멍에서 빠져나올 적에 펄쩍 뛰어 날아오른다.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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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을 줍다

 


  순천 시내 어느 놀이터에 갔다. 큰아이가 문득 은행잎 하나 줍는다. 어, 얘는 어쩜 벌써 노랗게 물이 들었지? 잎 끝자락은 푸른 기운 조금 남았지만, 온통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다. 이 잎빛이 예뻐서 주웠구나. 네가 눈이 밝아서 주웠을는지 모르지만, 네 마음속으로 예쁜 꽃을 늘 생각하며 살아가니까, 이런 은행잎 알아차리며 줍는구나.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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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너무 무거우면 머리가 멈추는구나 싶다. 생각이 흐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쉬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아이들 모두 재우고 나서 1분이든 10분이든 조금이나마 홀가분하게 글을 쓰고픈 생각이 뒤따른다. 그러나, 아이들이 곯아떨어지는 날에는 아버지인 나도 몹시 힘겹게 지낸 날인 터라, 아이들을 새근새근 재웠어도 홀가분하게 내 일을 하지 못하더라.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아이들 사이에서 새근새근 잠드는 것 하나 있다. 무거운 다리를 쉬고, 딱딱하게 굳은 무릎을 풀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얼마나 고단한 하루였을까. 큰아이가 읍내에서 아버지더러 “우리 언제 집에 가요?” 하고 먼저 물었으니, 얼마나 힘들다는 뜻인가. 아버지는 “아버지야말로 빨리 가고 싶지만, 아버지는 너희를 먹여야 하니까 먹을거리도 장만해서 가방에 짊어지고 가야 한단다. 너희는 가방을 등에도 손에도 어깨에도 안 메지만, 아버지는 등에도 손에도 어깨에도 가방을 잔뜩 짊어지고 이렇게 읍내 저자마실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하는 말을 차마 들려주지는 못하고, “응, 이제 곧 집에 가. 조금만 더 참아.” 하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이 말마따나, 아버지 스스로 참는다. 힘든 몸이지만 참는다. 힘든 몸이기에 한 번 더 빙그레 웃으면서 아이들과 복닥거리려 한다. 택시를 불러서 타도 되지만,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에서 아이들과 논다. 마을 어귀에서 집까지 다시 기운내어 걷는다. 집으로 돌아와 물을 뎁혀 아이들 씻기고 빨래를 한다. 이러고 나서 아이들 밥을 먹이고, 조금 놀린 뒤 재운다. 참말, 아버지도 느긋하게 눕고 싶구나. 이제 누울게. 너희들 곁에서 너희들 머리카락 쓸어넘기며 누울게. 같이 자자. 우리 함께 잠을 자자. 4346.7.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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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숲 풀빛

 


  국민학교를 다니고 중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미술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이때에 물감으로 풍경그림 그려서 점수를 받아야 하곤 했는데, 나는 나무를 그리거나 풀을 그릴 적에 몹시 힘들구나 싶어, 나무나 풀은 되도록 안 그리려 했다. 왜냐하면, 풍경이라 하든 정물이라 하든 초상이라 하든, 모두 내 눈으로 바라본 모습을 담는 그림인데, 나무를 보든 풀을 보든, 풀빛이 모두 다르다고 느꼈다. 나무 한 그루라 하지만, 똑같은 잎사귀가 하나도 없고, 똑같은 빛깔이 하나도 없다. 은행나무를 그리려 해도, 은행잎 모양과 빛깔과 무늬가 다 다르다고 느낀 나머지, 차마 은행나무를 그릴 수 없었다. 나무를 그리면서 나뭇잎을 모두 다른 모양과 빛깔과 무늬로 그려야 하는데, 고작 한 시간이나 두 시간밖에 안 되는 미술 수업에서 나무를 그릴 수 없더라.


  더 헤아려 보면, 바다를 그릴 적에도 똑같았다. 물결빛은 똑같지 않다. 코앞에서 마주하는 물결조차 왼쪽과 오른족과 가운데 물결빛이 다르다. 다 다른 빛느낌을 점으로 하나하나 찍어서 모아야 비로소 물결빛 될 텐데, 여러 날 들여도 다 찍지 못할 물결빛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겠나. 언젠가 한 번, 고등학교 적이었지 싶은데, 물결빛을 다 다르게 그린 적 있는데, 미술 선생은 ‘장난하느냐?’ 하고 콧방귀를 뀌면서 낙제점수를 주었다.


  뭉뚱그린대서 잘못 그린 그림이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무 한 그루 잎사귀 빛깔이 모두 다르듯, 들풀 잎빛이 모두 다르다. 모시풀과 부추풀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콩잎과 깻잎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동백잎과 후박잎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해바라기잎과 찔레잎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감잎과 포도잎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살구잎과 매실잎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냉이잎과 씀바귀잎을 똑같은 빛깔로 그릴 수 있을까.


  한여름 시골마을과 시골숲을 가만히 바라본다. 나무마다 잎빛이 모두 다르니, 온통 짙푸른 빛깔로 우거졌다 하지만, 나무를 하나하나 헤아릴 만하고, 수풀에는 어떤 풀이 자라는가 찬찬히 돌아볼 만하다. 칡잎이랑 하늘타리잎이랑 다르잖아. 쑥잎이랑 까마중잎이랑 다르잖아. 이 다른 풀빛을 어떻게 ‘그냥 풀빛’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북적거리는 서울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엇비슷한 옷을 갖춰 입었어도 저마다 다르다. 아이들이 똑같은 학교옷 갖춰 입었다 하더라도 다 다르다. 얼굴과 키와 몸매만 다르지 않다. 생각과 마음이 다르고, 꿈과 사랑이 다르다. 다 다른 나무와 풀이 저마다 아름다우며 애틋하듯이, 다 다른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저마다 아름다우며 애틋하다. 다 다른 책이 저마다 살갑고 반갑다. 다 다른 이야기가 저마다 즐겁고 기쁘다. 여름에는 숲과 들을 마냥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상큼한 기운이 물씬 샘솟는다.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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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가랑잎

 


단풍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온갖 나무들
가으내 붉고 노랗게
빛잔치 벌이면서
헌 잎사귀
살포시
떨구는데,

 

후박나무는
오월 접어들며
새 잎사귀
천천히
열더니,
유월 앞두고
짙붉은 헌 잎
투둑 투둑
내려놓는다.

 


4346.5.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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