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아이 다시 안아 재우기

 


  꼭 서른 해 앞서, 내가 열 살 즈음이던 때 방학을 맞이해서 집에서 뒹굴거리며 놀던 나날을 떠올린다. 나는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으며 만화책을 읽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종이를 오려 무언가 만들다가 이래저래 쉬잖고 논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마루에서 툇마루에서 큰방에서 쉬잖고 움직이면서 집안일을 한다. 집안일을 얼추 마치셨다 싶으면 가게나 저잣거리로 마실을 다녀오고, 마실을 다녀오시면 저녁을 차리기 앞서까지 부업을 하신다. 아버지 도시락을 싸고 내 아침을 차려 주신 뒤에는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신다. 어머니는 딱히 나더러 청소하라 말씀을 하지 않지만, 어머니가 말없이 마룻바닥을 걸레로 훔칠 적에 천천히 방에서 나와 걸레를 빨아 곁에서 걸레질을 거든다. 그런데 이렇게 걸레질을 하면 “네 방(형과 함께 쓰는 방)이나 치워.”라든지 “거기 좀 제대로 닦아.” 하는 소리를 듣는다.


  비질과 걸레질을 마칠 즈음 빨래기계가 멈춘다. 기계빨래가 다 되었다고 한다. 빨래를 함께 넌다. 이불은 욕조에 넣어 발로 밟아서 빨래한다. 여름방학은 며칠마다 한 차례씩 이불을 밟아서 빨래하며 보낸다고도 할 만하다. 5층짜리 아파트 열다섯 동으로 이루어진 동네인데, 집집마다 청소하고 빨래하는 때가 엇비슷하다. 우리 집에서 이불을 툇마루 난간에 척 하고 걸칠 언저리에 1층부터 5층까지 서로서로 이불 빨래를 척 하고 걸친다. 빨래한 이불 아닌 말리기만 할 이불을 널 적에는 웃층을 먼저 올려다본다. 웃집에서 젖은 이불을 말리느라 물방울 떨어지면 이불말리기 하나 마나이기 때문이다. 웃집에서 사는 사람도 아랫집을 살핀다. 아랫집 이불이 어느 쪽에 있는가를 헤아려 물방울이 아랫집 이불에 안 닿는 자리에 걸친다.


  부업을 한창 하시는 어머니는 저녁을 차려야 할 때가 다가오면 으레 묻는다. “오늘 저녁 뭘 할까?” 그무렵 어머니가 왜 이렇게 묻는지 몰랐다. 오늘에서야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밥상 차리면서 ‘오늘은 아침에 뭘 할까?’라든지 ‘오늘은 저녁으로 무얼 차리지?’라든지 ‘오늘은 낮에 샛밥으로 무얼 주지?’와 같이 생각하니까 어릴 적 어머니 말씀이 새록새록 스며든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허리 펼 겨를 거의 없이 하루를 보낸다. 형과 내가 훨씬 어려 갓난쟁이였거나 서너 살짜리였다면, 또 대여섯 살밖에 안 된 때였으면, 집안일은 더더욱 많아서 눈코를 뜰 수 없었을 테며, 그때에는 빨래기계 따위는 아예 있지도 않았을 테고, 냉장고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나마 시골살림 아니기에 끼니마다 절구 빻아 쌀겨 벗기고 키질 해서 부스러기 날린 다음 조리개로 돌 일지 않아도 된다뿐이었지만, 우리 식구 먹던 쌀은 정부미였기에 끼니마다 조리개로 돌 이는 몫은 내가 맡았다. 애써 돌 일었다 하더라도 밥을 먹다가 누군가 돌 씹으며 아작 소리를 내면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어머니는 아무 말 않으시지만 아버지나 형이 돌을 씹으면 밥상머리에서 꿀밤을 맞는다.


  어제와 그제는 아이들 재우며 노래를 못 불렀다. 내 몸이 몸 같지 않다 싶어 그냥 드러누워서 아이들 땀 흘리지 말라고 부채질을 하다가 내가 먼저 곯아떨어졌다. 오늘은 두 아이 나란히 눕히고는 노래를 조곤조곤 부르며 큰아이 먼저 재우고 작은아이 늦게 재운다. 그런데 큰아이가 자꾸 뒤척인다. 한참 머리카락 쓰다듬고 배와 가슴 문지르다가, 큰아이더러 일어나 보라 해서 가슴에 안는다. 큰아이 안고 부엌으로 가서 얼굴과 코에 물을 바른다. 코에 살짝 물을 넣으며 풀어 보라 한다. 큰아이 안고 대청마루에 서서 밤바람을 쐰다. 오늘 하루 큰아이를 얼마나 안아 주었는가 돌아본다. 살며시 자리에 누인다. 머리카락 다시 쓸어넘기면서 다리께를 부채질한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등판을 만진다. 땀이 배었나 없나 살핀다. 땀이 배었으면 부채질을 해야 할 테고, 작은아이가 또 바지에 쉬를 했다면 갈아입혀야지.


  뒤척이던 큰아이가 달게 잠든다. 품이 그리웠을까. 마당에까지 와서 우는 개구리 노래를 듣는다. 사이사이 풀벌레 노래가 씨이씨이 울린다. 호젓하다. 내 자장노래가 이 개구리와 풀벌레 노래처럼 보드랍게 아이들 마음으로 젖어들기를 빈다. 내 손길이 풀잎처럼 부드러우면서 푸르게 빛나기를 빈다. 4346.7.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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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13-0724-03 04
나리꽃 책읽기

 


  아이들을 샛자전거와 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다녀오는 길에 나리꽃 본 지 보름쯤 되었지 싶다. 그동안 나리꽃 곁을 휙휙 스쳐서 지나가기만 하고, 막상 나리꽃 곁에 자전거를 세워서 꽃내음 맡은 적 없었다고 깨닫는다. 오늘은 자전거를 천천히 세운 다음 나리꽃 앞으로 간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나도 냄새 맡을래. 나도 만져 볼래.” 하고 말한다. 그래, 자전거에서 내려 느긋하게 만지면서 냄새를 맡자.


  어떤 나리일까. 참나리일까 하늘말나리일까 또는 다른 이런저런 나리일까. 아마 또렷하게 가르는 이름이 있으리라. 나는 아이한테 더 낱낱이 가르는 이름을 찾아내어 알려줄 수 있고, 그저 ‘나리꽃’이라 알려줄 수 있다. ‘노란나리’라느니 ‘주홍나리’라 말할 수 있다. 아니면, 내 나름대로 새 꽃이름 지어서 알려줄 수 있다. 다른 전라도사람이나 서울사람이 이 꽃을 가리켜 이런저런 이름을 읊는다 하더라도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 시골순이로서는 새 시골말 하나 빚어서 가리켜도 된다. 어여쁜 꽃을 바라보며 어여쁘게 붙이는 이름이니까.


  그런데, 시든 꽃송이는 누가 똑똑 끊었을가. 시든 꽃송이는 하나도 안 보이고 꽃송이 떨어진 자국이 많이 보인다. 들일 하며 지나가던 마을 할매나 할배가 시든 꽃은 똑똑 끊었으려나.


  활짝 피어난 꽃도 어여쁘지만, 시든 꽃도 어여쁜데. 시들다 못해 말라서 비틀어져 툭 하고 떨어져 길바닥에 흩어져도 어여쁜데.


  너른 들에 나무 한 그루 없지만, 밝은 꽃송이 꼭 이곳에서만 피어나며 들판을 새롭게 밝힌다. 한길에서 한참 꽃놀이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간다. 4346.7.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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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적에

 


  글을 쓸 적에는 살가운 벗과 이웃과 살붙이한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이 되지 싶어요. 글을 쓰지 않을 적에는? 글을 쓰지 않을 적에는 살가운 벗과 이웃과 살붙이한테 입으로 도란도란 말을 베풀 테지요.


  이야기를 쓰기에 글쓰기입니다. 이야기를 하기에 말하기입니다. 글자를 그린다고 글쓰기가 되지 않고, 조잘조잘 떠든다고 말하기가 되지 않아요. 이야기를 담아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빛낼 때에 글이 되거나 말이 돼요. 이야기를 실어 사랑과 꿈을 펼칠 적에 비로소 글도 말도 됩니다. 4346.7.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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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쓰기
― 삶터, 사진터, 사랑터, 이야기터

 


  따로 어느 곳을 콕 집어서 ‘사진마실(출사)’을 다닐 수 있다. 사진마실을 다닌대서 남들 흉내를 내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스스로 아름답거나 즐겁다고 여기는 데를 찾아다니면 저절로 아름답게 찍는 사진이나 즐겁게 찍는 사진을 얻는다. 다만, 사진마실을 다니면서 ‘어떤 사진을 찍으면서 내 삶을 어떻게 누리고 싶은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이 있으면 먼 나라로 사진마실을 다니곤 집 둘레 골목동네를 걷든 사진 한 장 사랑스레 얻는다.


  집에서 어린 아이들 돌보는 어버이라면 좀처럼 멀리 다니기 어렵다. 어린 아이가 둘이나 셋이나 넷쯤 된다면 더더욱 바깥마실이 어려울 만하다. 이런 삶에서 사진마실은 꿈과 같다 여길 수 있다. 그런데, 먼 나라로 가야만 사진마실이 되지 않는다. 마을 저잣거리를 걸어도 사진마실이 된다. 아이들과 함께 저잣거리를 걸어 보라. 아이들은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바쁘고, 저잣거리 아지매와 할매는 아이가 귀엽다며 빙그레 웃는다. 이보다 더 훌륭한 ‘사진연출(?)’이 어디 있으랴. 억지로 웃으라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아이들 바라보며 웃으니, 목에 사진기 걸었으면 퍽 손쉽게 사진 한 장 얻는다. 콩나물 한 봉지 사면서 놀라운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다.


  집에서도 부엌과 마루와 방 사이를 오가는 아이들 바라보며 사진마실 새롭게 누린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다니더라도 사진마실이 된다. 아이 키높이로 엎드리거나 쪼그려앉으면서 걸어 본다. 이렇게 하면서 아이들 사진을 찍으면 이제껏 느끼지 못한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으니, ‘집안 사진마실’이 된다.


  나는 아이들과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 대문 밖으로 나갈 적에도 사진마실을 한다고 느낀다. 마당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 적에도 사진마실을 한다고 느낀다. 참말 내 삶터는 어디나 사진터이다. 삶터이기에 사랑을 나누는 곳, 사랑터가 되고, 사랑터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으니 이야기터가 되기도 한다.


  한여름에 벼포기 무럭무럭 자라는 곁에 선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사진 한 장 찍으며 스스로 즐겁다. 이 푸른 빛깔이 물결치면서 아이들 가슴속에 어떻게 스며들까. 내가 아이들 뒤에서 따라가며 담은 사진 한 장은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어떻게 맞아들일까. 마실을 가면 언제나 아이들이 앞장서서 달린다. 나는 짐과 가방을 들고 뒤에서 어기적어기적 따라가느라 바쁘다. 그런데 이렇게 마실을 다니며 아이들이 무엇을 들여다보고 어디에서 걸음을 멈추어 물끄러미 살펴보는가 지켜보면, 이 모습도 그림이 되고 저 모습도 사진이 된다.


  하루하루가 모여 삶이 되듯, 한 장 두 장 찬찬히 찍어 사진이야기 태어난다. 4346.7.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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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사랑하는 마음

 


  시골에서는 들판에 그늘 드리운다며 나무를 다 베어요. 그런데 시골길 어둡다면서 길가에 전기로 등불을 밝혀 밤에도 들판이 못 쉬게 해요.


  도시에서는 전깃줄 건드린다며 나뭇가지를 뭉텅 자르거나 아예 나무를 베어요. 자동차 댈 자리가 모자란다든지 건물 새로 지을 적에는 나무를 아낌없이 베어요. 그러면서 공원을 만든다며 시골에서 나무를 비싸게 사들이고, 건물 다 지으면 건물 둘레에 또 나무를 비싸게 사서 심어요.


  나무도 사람하고 같아요. 나무도 풀도 꽃도 사람하고 같아요. 사람들 누구나 잠을 자고 몸을 쉬며 기운을 차리듯, 나무도 풀도 꽃도 잠을 자요. 나무도 몸을 쉬어야 하고, 풀과 꽃도 느긋하게 쉬면서 기운을 차려야 해요. 잠을 자는 사람 곁에 전기로 등불 밝히면 잠을 제대로 못 자듯, 나무 곁에 등불 환히 밝히면 나무는 몸살을 앓아요. 자동차 끝없이 달리는 찻길에 아이를 하루 내내 세워 보셔요. 아이는 숨이 막히고 눈이 따가우며 귀가 멍할 테지요. 찻길에 심은 나무들이 자동차 때문에 얼마나 시달리거나 들볶이는가를 헤아리셔요. 아이한테 못할 짓이라면 나무한테도 함부로 할 수 없어요.


  열매를 손쉽게 따자면서 가지를 휘어 놓으면 나무는 어떻게 될까요. 굵다란 열매 맺도록 비료 듬뿍 주고 열매마다 농약을 뿌려 벌레가 못 먹도록 하면 나무는 어떻게 될까요. 능금나무·배나무·포도나무가 열 해를 제대로 못 채우고 죽는다고 해요. 열매 얻으려는 사람들이 나무를 너무 괴롭히고 들볶으니, 열매나무는 고작 열 해 즈음 열매를 맺고는 말라죽는다고 해요. 우리들은 멋모른 채 알 굵고 달달한 열매를 사다 먹지만, 정작 이 열매는 열 해조차 제대로 못 살며 시달리던 나무가 내어준 살점일 수 있어요.


  능금나무도 배나무도 백 해 오백 해 천 해를 살아야지요. 열매를 딸 때에 사다리를 받쳐 천천히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멀리 내다보기도 하고, 하늘 저 끝을 바라보기도 해야지요. 우듬지에 맺는 열매는 멧새 몫으로 두면 돼요. 또는 다람쥐가 먹으라 해도 돼요. 백 해 이백 해 삼백 해를 살아낸 능금나무라면 우람하게 가지를 뻗고 열매 또한 잔뜩 매달 테니, 사람한테뿐 아니라 들짐승과 멧새한테도 좋은 밥을 베풀 수 있어요.


  나무를 사랑한다면, 이들 나무가 사람한테만 선물을 주기를 바라지 말아요.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마시려고 태어난 목숨이 아니에요. 나무는 종이가 되거나 옷장이 되려고 태어난 목숨이 아니에요. 나무는 구경거리가 아니고, 전시품이 아니에요. 나무는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고, 함부로 베어서 죽여도 되지 않아요.


  나무 한 그루 있어 흙이 살아나요. 흙이 살아나며 풀이 돋고 꽃이 피어요. 풀과 꽃이 자라면서 들을 이루고, 천천히 숲이 태어나요.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숲이 있을 때에 목숨을 이어요. 나무 한 그루에서 비롯하는 숲을 슬기롭게 헤아리면서 보드라운 손길로 나뭇줄기 쓰다듬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7.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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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24 09:34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글을 읽으니, 톨게이트 옆에서 콩농사를 짓는 할머니가 불빛에 콩이 잠을 못 잔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가로등을 깨버리시는..김종옥 시인의 <잠에 대한 보고서>가 문득 떠오릅니다.
그렇지요..밤에는 들판도 나무도 다 잠을 자야지요. 어항의 불도 밤에는 꺼야 물고기들도 편히 잠을 자요..
정말 나무든 자연이듯 다 함께 아껴가며 사랑스러운 삶 일구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아침입니다..

파란놀 2013-07-24 10:17   좋아요 0 | URL
사람들 스스로 밤에 조용하고 느긋하게 잘 때에
이웃을 살가이 바라볼 수 있으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