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책읽기

 


  바야흐로 한여름 휴가철로 접어들면서 시골마을 시원한 바닷가와 골짜기는 도시에서 놀러온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이제 시골사람이 시원하게 누릴 조용하거나 호젓한 바닷가나 골짜기는 없습니다. 휴가철이 끝날 때까지 시끌벅적한 소리가 넘치는 한편, 쓰레기가 나란히 넘실거릴 테지요. 도시에서 가져온 쓰레기를 도로 도시로 가져가서 버리려는 사람은 아직 얼마 안 됩니다.


  더운 여름날 아이들 데리고 바닷가를 가자니 지나치게 북적거리며 시끄러울 뿐 아니라, 아이들 느긋하게 뒹굴거나 놀 만한 틈을 얻기조차 만만하지 않습니다. 거의 날마다 찾아가던 골짜기에도 자가용 수북하게 쌓입니다. 자전거로 멧길 오르내리다가 자동차를 만나고, 골짝물에서도 어른들 시끄러운 놀음놀이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휴가철에 도시사람은 물과 바람 맑은 시골로 놀러다닙니다. 휴가철에라도 맑은 물과 바람을 들이켜서 새 숨결과 기운 북돋울 노릇입니다. 그러면, 시골사람은 ‘도시사람 휴가철’에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그저 시골사람은 ‘휴가철 방콕’을 하거나, 거꾸로 ‘도시로 휴가를 떠나야’ 할까요. 4346.8.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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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45] 숲길

 


  숲길은 숲바람 마시며 걷는 길
  들길은 들내음 맡으며 걷는 길
  삶길은 삶사랑 빛내며 걷는 길.

 


  자동차 드나들기 수월하도록 숲길 안 깎아도 한결 아름다울 골짜기 될 테지만, 어른들은 한결 아름다울 골짜기보다는 자동차 수월하게 드나드는 길을 더 바랍니다. 두 다리로 걷는 숲은 헤아리지 않아요. 이 바쁜 나라에서 언제 걸어서 다니느냐고, 자동차로 휭 숲길 가로지르면 넉넉하다고 여깁니다. 걸을 때에 즐거운 길을 걷지 않고, 천천히 쉬며 드러누워 하늘바라기 하면 호젓한 길을 쉬지도 눕지도 않으면, 삶은 어떤 빛이나 무늬가 될까요. 아이들은 자동차에 실린 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짐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동차에 태운 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보내는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숲길과 들길과 삶길을 씩씩하게 걸어요. 4346.8.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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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07 09:48   좋아요 0 | URL
정말, 숲길과 들길과 삶길을
서로 손잡고 씩씩하고 즐겁게 걷고 싶어요~.

파란놀 2013-08-07 11:07   좋아요 0 | URL
모두들 자가용도 손전화도 내려놓고
함께 거닌다면...
 

요즘 시골집

 


새마을운동 따라 슬레트집.
‘새’새마을운동 따라 시멘트집.

 

앞으로
또 ‘새’새새마을운동 찾아오면

 

어떤 집 짓고
어떤 쓰레기 치워야 하나.

 

요즘 시골집.

 


4346.7.3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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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미역

 


  새벽에 일어나 아침거리를 살핀다. 오늘은 어떤 밥 차릴까 헤아리다가 마른미역을 잘라 물에 불린다.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도록 즐겁게 차리자고 생각한다. 얼린 떡도 끊어서 불린다. 이것도 저것도 잘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엊저녁 잠자리에 들며 곰곰이 돌아보았다. 날이면 날마다 온 마을이 농약투성이요 농약범벅인데 이 꼴을 어찌할 노릇인가 하고 돌아보았다. 다음주에 또 한다는 항공방제 때에는 아예 아이들 데리고 멀리 나들이를 가야겠구나 싶지만, 이렇게 농약 없는 데로 떠돌기만 할 수 있을까. 어디를 가든 농약에서 홀가분할 수 있을까. 농약이 없는 데에는 더 끔찍한 자동차 배기가스가 도사리지 않는가.


  그런데, 아침에 불린 이 미역도 어떤 미역인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스스로 바다에서 건져 말린 미역이 아니라면, 염산을 썼는지 황산을 썼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흔히 먹는 여느 김은 온통 염산을 뒤집어쓴다. 김을 키우는 바닷마을에 가 보면 커다란 염산통이 여기저기 구른다. 바닷마을 사람들이나 바닷마을과 가까운 들마을 사람들은 염산통을 물통으로 삼기도 한다. 빈통을 잘 씻어서 말리면 ‘사람 몸에 안 나쁘다’고 할 만한가. 빈통이 염산을 담았건 붕산을 담았건 우라늄을 담았건 석유를 담았건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까.


  우리는 무얼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일까. 우리 몸은 무엇으로 이루어질 때에 아름다울까. 어른인 사람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먹이고, 아이들과 살아갈 이 터가 어떤 보금자리와 마을이 되도록 마음과 힘을 쏟는가.


  ‘사람 몸에 안 나쁘다’고 하는 농약으로 어떤 ‘나쁜 벌레’를 죽이려 할까.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장 매연은 사람 몸에 어떻게 스며들까. 골프장에서 쓰는 농약은 사람 몸하고 어떻게 이어질까. 농약을 칠 적에 잠자리와 나비와 매미와 개구리와 작은 새들이 모조리 죽는다면, 이 농약을 치는 이 나라를 어떻게 여겨야 할까.


  아이들이 아름다운 밥 먹으며 아름다운 숨결 잇기를 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나 또한 아름다운 생각 지으며 아름다운 삶 일구기를 바란다. 4346.8.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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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쌀

 


  1960년대를 휩쓴 독재정권 새마을운동은 이 나라 시골마을에 몇 가지 큰 발자국이자 생채기이자 앙금이자 응어리이자 수렁이자 굴레를 남겼다. 첫째, 슬레이트지붕과 시멘트논둑. 둘째, 농약농사와 비닐농사. 셋째, 시골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기. 넷째, 시골숲과 시골들과 시골마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와 기찻길 내며 외치는 경제발전.


  2010년대가 되어도 독재정권 새마을운동 깃발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요즈음 들어 더 힘차게 펄럭인다. 슬레이트지붕은 하나둘 철거하며 특수폐기물로 다룬다 하는데, 시멘트논둑에 이어 시멘트도랑이 생기고, 시멘트고샅이 되고 말았다. 마당도 온통 시멘트마당으로 바뀌었다. 농약농사는 줄어들 낌새가 안 보이고, 비닐농사는 아예 ‘커다란 비닐집 짓는 유기농’까지 생기는 흐름이다. 거름은 똥오줌으로 대더라도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먹지 못하는 유기농은 얼마나 유기농답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오늘날 시골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와 학제를 살피면, 하나같이 ‘도시사람 되기 교육’이고, ‘도시로 가서 일자리 찾으라는 수업’일 뿐이다. 곰곰이 살펴보라. 시골마을에 움튼 ‘농사꾼 가르치는 대학교’가 있는가. 새끼꼬끼, 씨뿌리기, 낫질, 낫갈기, 모시실뽑기, 베틀밟기, 물레잣기, 바느질, 지게질, 꼴베기, 두엄섞기. 볏짚엮기, 지붕잇기, 방아찧기, 절구찧기, 장작패기, 불때기, 나무하기, 나물캐기 같은 시골일 가르칠 만한 대학교 학과라든지 교수라든지 교과서는 아직 하나도 없다. 그리고, 지구자원 바닥난다 소리가 높지만, 새 자동차 만드는 일은 끊이지 않고, 새 찻길 닦는 일 또한 거침이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시골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거나 괴롭히면서 도시 문명 사회가 버틸 수 있을까.


  도시사람은 알까 모르겠는데, ‘친환경농약’을 뿌려서 멸구나 나방을 잡는다 할 적에는 잠자리도 거미도 나비도 벌도 모조리 죽는다. 벌레 잡는 ‘친환경농약’은 모든 벌레를 잡는다. 그리고, 멸구나 나방은 ‘친환경농약’에 차츰 길들면서 더 센 농약을 주지 않으면 잘 안 잡힌다. 이와 달리 잠자리나 거미나 나비나 벌은 ‘화학농약’에도 ‘친환경농약’에도 길들지 않는다. 그저 죽는다. 게아재비도 물방개도 미꾸라지도 그저 다 죽는다. 개구리도 도룡뇽도 가재도 개똥벌레도 싸그리 죽는다.


  고속철도 놓는다며 천성산에 굴을 뚫으면 도룡뇽이 죽을 뿐 아니라 삶터를 빼앗기니 이 공사를 막을 수밖에 없다며 맞선 지율 스님은 ‘도룡뇽 소송’을 했고, ‘도룡뇽을 생각하며 밥굶기 싸움’까지 했다.


  이때에 아주 많은 사람들은 ‘고작 도룡뇽 때문에?’ 하면서 비아냥거렸다. 도룡뇽 때문에 고속철도를 못 놓으면 경제손해가 어마어마하다고 외쳤다.


  도시사람은 아무 쌀이나 그냥 사다 먹기 일쑤이지만,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몸에 아토피가 생길라치면 이때부터 아무 쌀이나 함부로 사다 먹이지 않고, 아무 소시지도 함부로 사다 먹이지 않으며, 아무 과자나 빵을 함부로 사다 먹이지 않는다. 아이가 아토피 걸려 벅벅 긁으며 피가 나는데 ‘가게에서 파는 여느 과자’ 사다 먹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있을까? 아토피 걸려 얼굴에 벌겋게 우둘투둘 일어서는데 이 아이한테 ‘가게에서 파는 여느 케익’을 생일선물이라며 사다 주는 이모나 삼촌이 있을까?


  온 나라에 ‘화학농약’ 농사가 널리 퍼진 어느 때부터 ‘오리쌀’이 나온다. 오리농법으로 지은 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메뚜기쌀’이 나온다. 설마 메뚜기농법이 있겠느냐만, 메뚜기가 죽지 않고 펄떡펄떡 뛸 만큼 깨끗하며 푸르다는 뜻을 내세우는 셈이다. 또 어느 시골에서는 ‘개구리쌀’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쯤 된다면, 아마 한국에서 ‘제비’가 가장 많이 날아다니며 집짓고 살아가는 데라 할 수도 있는데, 아직 전남 고흥에서는 ‘제비쌀’이나 ‘제비마을쌀’ 같은 이름을 쓰지 않는다. 아니, 이런 이름 섣불리 못 쓸 테지. 해마다 봄이 되면 수천 수만 마리에 이르는 제비가 전남 고흥으로 찾아들지만, 이 제비들은 가을이 되어 다시 태평양 너른 바다를 가로질러 중국 강남으로 가기 앞서까지 꽤 많이 숨을 거둔다. ‘친환경농약’은 멸구뿐 아니라 잠자리와 나비까지 모조리 죽인다. 항공방제 헬리콥터가 뿌린 ‘친환경농약’을 뒤집어쓰거나 마신 잠자리나 나비를 잡아먹은 제비는 뱃속이 뒤틀리다가 숨을 거둔다. 이러니, 어찌 ‘제비쌀’ 같은 이름을 섣불리 쓰겠는가. 마을마다 멸구 때문에 한창 농약을 치고 항공방제를 하는 요즈음, 고흥뿐 아니라 보성도 장흥도 강진도 영암도 해남도 거창도 상주도 문경도 양양도, 온통 제비들 숨막히고 배아파 죽을 노릇이다.


  ‘메뚜기쌀’ 이름을 붙인 시골에서는 참말 메뚜기가 펄떡펄떡 뛰놀까? 메뚜기 곁에 사마귀도 있을까? 사마귀 옆에 방아깨비도 있을까? 방아깨비 둘레에 풀무치나 개똥벌레나 땅강아지나 길앞잡이나 소금쟁이도 있을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친환경농약’을 뿌려서 멸구나 나방을 잡는다 할 적에는, 매미도 나란히 죽는다. 나는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이웃 여러 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고샅이나 길바닥에 농약 맞고 죽은 온갖 풀벌레를 본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 잠자리와 나비와 사마귀와 메뚜기와 개구리와 매미도 많지만, ‘친환경농약’이건 ‘화학농약’이건 온갖 농약을 뒤집어쓰며 죽는 잠자리와 나비와 사마귀와 메뚜기와 개구리와 매미도 많다.


  차에 치여 죽은 작은 새도 곧잘 만나기에, 자전거를 세워 살며시 손에 들어 풀숲에 놓아 주곤 한다. 이러면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묻는다. “아버지, 저 새, 꽃으로 다시 태어나?” “응, 다음 삶에서는 아름다운 들꽃으로 태어나서 환하게 웃으리라 생각해.” “그래? 새야, 작은 새야, 다음에 꽃으로 예쁘게 태어나? 그러면 내가 같이 놀아 줄게!”


  민주정권은 언제쯤 마주할 수 있을까.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농사와 행정과 교육과 문화는 언제쯤 이 나라에서 숨통을 틀 수 있을까. 우리 집 처마에 깃을 들인 ‘지난해에 새로 깨어난 제비’ 다섯 마리는 ‘지난가을 중국 강남으로 잘 갔다가 올봄에 씩씩하게 돌아왔는’데, 이 제비 다섯 마리는 봄에만 보았다. 여름으로 접어들어 마을마다 농약을 뿌릴 즈음 되고부터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4346.8.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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