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팔월

 


햇볕이 내리쬐면
볼그스름 백일홍이
그늘 드리우고,

 

구름 지나가면
까무잡잡 시원스레
그늘 펼쳐진다.

 

매미 몇 마리 농약바람에
살아남아 울더니,
풀벌레 여러 마리 농약춤에
살아서 노래한다.
개구리 소리는 없다.

 

빨래터에서 아이들 노는 동안
빨래터 바닥에 낀 물이끼
긴솔로 복복 문질러
천천히 벗긴다.

 

한 달 넘게
남녘 시골에는 비 없는데
서울 경기 강원 말고
전남 경남 시골에
언제 빗노래 흐를까.

 


4346.8.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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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65) 이야기적 1 : 이야기적 상태

 

중요한 것은 이야기적 상태(narrative state), 즉 지금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는 상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사는 직접적인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거지
《데이비드 미치/추미란 옮김-달라이 라마의 고양이》(샨티,2013) 72쪽

 

  “중요(重要)한 것은”과 같은 말투는 어떻게 바라보면 될까요. 그대로 둘 수 있을 테고, 손질할 수 있습니다. 손질하려 한다면 글흐름을 살펴, “잘 살필 대목은”이나 “눈여겨볼 대목은”이나 “잘 알아둘 대목은”으로 손질해 줍니다. 또는 “그러니까”나 “다시 말하자면”으로 손질할 수도 있어요. ‘즉(卽)’은 ‘곧’으로 손보고, ‘지금(只今)’은 ‘오늘’이나 ‘여기에서’나 ‘이 자리에서’로 손보며, “실제(實際)로 하고 있는 일이”는 “정작 하는 일이”나 “참말로 하는 일이”로 손봅니다.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는 상태(狀態)가”는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는 모습이”나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는 몸가짐이”로 다듬고, “지금 여기에 사는 직접적(直接的)인 상태에 있어야”는 “바로 여기에 사는 내 모습이어야”나 “오늘 여기에 사는 내 몸가짐이어야”로 다듬으며, “한다는 거지”는 “한다는 얘기이지”나 “한다는 소리이지”로 다듬습니다.

 

 이야기적 상태narrative state (?)
 이야기하는 모습 . 살아서 숨쉬는 모습 . 싱그러운 숨결

 

  영어 “narrative state”를 보기글에서는 “이야기적 상태”로 옮깁니다. 아무래도 이런 말마디 아니고는 옮길 수 없겠다고 느꼈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한국말로 옮기면서 영어를 뒤에 붙입니다. 그러면, 뒤에 영어로 덧달았으니 알아듣기 한결 수월할까요. 오히려 더 알쏭달쏭할까요.


  “narrative state”라고 하는 “이야기적 상태”가 무엇인가 하고, 뒤에 옮긴 말을 읽으면, ‘바로 여기에 있는 내 모습’이라고 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바로 드러난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런 모습을 “이야기하는 모습”이라고 빗대어 나타내려 하는구나 싶어요.


  이곳에 없는 다른 모습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이곳에 있는 나를 생각한다고 하는 “이야기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곳에 있는 내 모습이란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이나 “살아서 숨쉬는 모습”입니다. 살아서 움직이거나 숨쉰다면, 숨결이 싱그럽습니다. ‘산 목숨’일 테니까요. 4346.9.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잘 살필 대목은 ‘살아 숨쉬는 모습’, 곧 바로 여기에서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사는 내 모습이어야 한다는 얘기이지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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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무엇을 남길까

 


  국토해양부에서 여덟 권짜리 책으로 두툼하고 커다랗게 만든 책꾸러미 《4대강살리기사업》을 헌책방에서 본다. 비매품으로 만든 책이니 새책방에 이 책이 있을 수 없다. 도서관에는 꽂힐까? 도서관에 가면 이 책을 만날 수 있을까? 국토해양부는 왜 이런 책을 만들어야 했고, 이런 책은 누구한테 읽힐 책이 될까? 도서관에서는 국토해양부에서 책을 받고 나서, 도서관 책시렁에 이 책을 오래도록 건사해야 할까? 이 책은 도서관 책시렁에 놓일 만한 값이 있을까? 국토해양부는 이 책을 내놓으면서 사람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이며, 이 책이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나 쉰 해나 백 해 뒤에 살아갈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로 스며들 값어치가 있을까?


  모든 책에는 이야기가 담긴다. 국토해양부에서 여덟 권짜리로 만든 책꾸러미 《4대강살리기사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한 권씩 꺼내어 살피니 온통 도표와 통계와 사진으로 이루어진다. 이 도표와 통계와 사진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처음 책을 마주할 때부터 손으로 한 쪽씩 넘기며 살피는 동안 자꾸자꾸 물음표만 나온다. 책을 덮고 나서도 물음표는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가 담긴 책은 나무를 살린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얻고, 종이에 이야기를 실어 책으로 태어난다. 그러면, 국토해양부는 어떤 나무를 베어 어떤 종이를 얻은 뒤, 《4대강살리기사업》에 어떤 이야기를 실을 마음이었을까? 이 이야기는 이 나라에 어떤 사랑과 꿈을 북돋우면서 이 나라 삶과 사람들을 어떤 빛과 넋으로 보살필 만할까?


  책으로 무엇을 남기는가. 우리는 책을 써서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책으로 남기는 것들은 모두 값이나 뜻이 있는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책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남기려는 마음을 담는가. 두 살이나 네 살 아이들은 아직 글을 모르니 이런 책을 읽지 못한다. 앞으로 열 살 더 먹어도 이런 책을 읽기 어렵다. 곧, 아이들은 스무 해쯤 뒤에나 《4대강살리기사업》 같은 책을 읽을 만한데, 아이들이 스무 해쯤 뒤에 《4대강살리기사업》 같은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어 주기를 바라는 오늘날 어른들인가.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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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안는 아이들

 


  마당에 놓은 평상에 맨발로 올라선 두 아이가 논다. 큰아이가 우유상자를 걸상으로 삼아 평상에 올려놓고는 척 앉는다. 그러더니 다리를 못 쓰는 사람 흉내를 내면서 “보라야, 누나가 다리가 아파서 함께 못 놀아. 미안해.” 하면서 “자, 안아 줄게.” 하고 부른다. 다리가 아픈 사람은 어디에서 보았을까? 마을 할머니들 지팡이 짚고 걷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떠올렸을까. 마당을 지팡이 짚으며 걷는 시늉까지 한다. 우리 아이들이지만, 참 재미있네, 하고 여겨 곁에서 조용히 지켜본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곁에서 지켜보거나 말거나 ‘다리 아파 못 움직이니 서로 안아 주기 놀이’를 한다. 큰아이가 일곱 살쯤 되면 동생을 업을 수 있을까. 그때에는 동생도 부쩍 자라 업기 힘들까. 그러면, 큰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 동생을 업으려나. 그때에도 동생은 쑥쑥 커서 못 업으려나. 그러나, 두 아이가 한 살을 더 먹건 두 살을 더 먹건, 이렇게 서로 살가이 안아 주면서 하는 놀이는 실컷 하리라.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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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52] 배우기

 


  즐겁게 웃으면서 함께 먹을 밥.
  기쁘게 웃으며 서로 배우는 삶.
  웃음을 먹고, 웃음을 가르친다.

 


  시험을 앞두고 문제풀이 시키는 짓은 공부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닦달이라고 해야 맞을 테지요. ‘시험공부’라고 말하지만, ‘시험지옥’이나 ‘시험고문’쯤으로 가리켜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공부라고 할 때에는 삶을 밝히는 빛인데, 시험문제를 더 잘 풀어서 점수를 더 잘 받는 일이란, 삶을 밝히는 빛이 되지 않아요. 삶을 밝히는 빛이 되려면, 가르치는 사람부터 웃고 배우는 사람이 함께 웃을 수 있어야 해요. 웃음을 나누는 공부예요. 삶을 웃으면서 누리고, 사랑을 웃으면서 나누고 싶기에 배우고 가르쳐요. 아름답게 살고 싶으니까요.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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