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다. 이 글을 사람들이 얼마나 잘 알아듣거나 헤아리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다. 날마다 새롭구나 하고 느끼니, 날마다 아이들 이야기를 쓰고, 언제나 새삼스럽구나 싶어, 언제나 ‘똑같은 글감’을 새삼스럽게 쓴다.

  아이들 돌보면서 무릎이 시큰거리고 발뒤꿈치가 저리다. 아이들 밥을 차리고 옷을 빨아 입히면서 손목이 아프며 등허리가 결린다. 아이들 자전거에 태우고 장보러 다니고, 아이들 이불을 빨고 널고 하면서 팔뚝에 힘이 다 빠지고 어깨가 뻑적지근하다.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무슨 글을 쓸 적에 즐거울까.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는 이제껏 어떤 글을 썼을까. 너무 바쁘거나 힘들어 아무런 이야기를 못 쓰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까. 이냥저냥 집일 조금 거들고는 기나긴 글을 쓰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몸 구석구석 아프고 고단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참 잘 논다. 씩씩하게 뛰고, 튼튼하게 노래한다. 얘들아 너희들 늦게까지 안 잘 테면 아버지 먼저 누울래. 너희들 자고프면 그때 자렴. 4346.9.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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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 책

 


  처음 태어났을 적에는 반짝반짝 빛났을 책 한 권은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를 지나면서 차츰 낡거나 닳는다. 쉰 해, 예순 해, 일흔 해를 지난 책은 섣불리 만지기 어렵기도 하고, 자칫 책종이가 바스라지거나 뜯어질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늙은 몸 되듯, 책도 나이를 먹어 늙은 책이 되는 셈일까. 그렇지만, 책은 쉰 해나 오백 해 나이를 먹더라도 처음 모습에서 달라지지 않는다. 처음 아로새긴 이야기가 언제까지나 곧게 이어진다. 책에 이야기를 아로새긴 사람들이 오래오래 이어갈 이야기를 아로새겼으면, 책은 언제나 새롭다. 책에 이야기를 아로새긴 사람들이 한두 해 반짝 많이 팔아치워 돈을 벌 생각만 했으면, 책은 이내 고개를 꺾는다.


  한국 도서관에서는 대출실적 적은 책을 버린다. 대출실적 적은 책을 버려야 대출실적 올릴 만한 새책을 장만해서 꽂을 자리가 난다. 헌책방에서는 도서관에서 버린 대출실적 적은 책을 고맙게 건사하곤 한다. 도서관에서는 빌려서 읽기 어렵지만, 집안에 모셔서 두고두고 되읽고 되살필 만한 책이 어김없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빚는 사람은 책 한 권이 쉰 해 뒤에 어떤 삶 맞이할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책을 읽는 사람은 책 한 권을 쉰 해 뒤에도 즐겁게 건사하면서 살림집 한쪽에 곱게 꽂아 놓겠다고 생각할 틈이 있을까. 오늘 만들어 오늘 읽히기만 하면 될 책인가. 오늘 만든 이 책을 오늘을 비롯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즐기면서 아름다운 삶 빛내는 길동무가 될 책인가. 4346.9.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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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 고담준론 1

 

어설픈 외국의 이론을 부여잡고 고담준론만으로 일관하거나 출판자본이 만들어내는 잠시의 명예에 안주할 일이 아니다
《이현식-곤혹한 비평》(작가들,2007) 95쪽

 

  “외국(外國)의 이론”은 “외국 이론”이나 “나라밖 이론”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일관(一貫)하거나’는 ‘흐르거나’로 손보고, “잠시(暫時)의 명예(名譽)”는 “한때 누리는 명예”나 “가벼운 이름값”으로 손봅니다. ‘안주(安住)할’은 ‘눌러앉을’이나 ‘좋아할’로 손질해 줍니다.


  ‘고담준론(高談峻論)’은 “(1) 뜻이 높고 바르며 엄숙하고 날카로운 말 (2) 아무 거리낌 없이 잘난 체하며 과장하여 떠벌리는 말”을 뜻한다고 해요. 첫째 말풀이로 살피면 “뜻있게 나누는 말”이요, 둘째 말풀이로 헤아리면 “마구 떠벌이는 말”입니다.

 

 고담준론만으로 일관하거나
→ 뜬구름 이야기로 흐르거나
→ 잘난 척만 하거나
→ 대단한 듯이 떠벌이거나
→ 지식자랑을 늘어놓거나
 …

 

  이 보기글에서는 둘째 말풀이로 쓴 ‘고담준론’입니다. 아무런 생각이나 슬기가 없, 마치 스스로 아주 대단하다는 듯이 떠벌이는 모습을 나무랍니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서는 “어설픈 나라밖 이론을 부여잡고 잘난 척만 하거나”라든지 “외국 이론을 어수룩하게 부여잡고 같잖은 지식자랑을 떠벌이거나”처럼 손볼 수 있어요. 나무라는 말투이니 조금 더 따갑거나 날카롭게 쓸 수 있습니다. 4340.8.2.나무/4346.9.10.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어설픈 외국 이론을 부여잡고 대단한 듯이 떠벌이거나 출판자본이 만들어내는 가벼운 이름값에 좋아할 일이 아니다

 

..


 살가운 상말
 613 : 고담준론 2

 

대신 우리가 미학적인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누면 언제든 기꺼이 함께하셨어요
《브뤼노 몽생종/임희근 옮김-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포노,2013) 16쪽

 

  ‘대신(代身)’은 ‘그러나’나 ‘그렇지만’으로 다듬고, ‘미학적(美學的)인’은 ‘미학과 얽혀’나 ‘아름다움을 밝히려고’나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하고’로 다듬어 봅니다.

 

 미학적인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누면
→ 미학과 얽혀 이야기꽃을 피우면
→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 아름다움을 밝히려고 이야기잔치를 벌이면
 …

 

  잘난 척하는 이야기가 감도는 자리를 가리키는 ‘고담준론’이라면 ‘지식자랑’으로 손질해서 쓸 적에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뜻있게 나누는 이야기가 즐거운 자리를 가리키는 ‘고담준론’이라면 ‘이야기꽃’으로 손질해서 쓸 때에 잘 들어맞겠다고 느낍니다.


  ‘이야기잔치’나 ‘이야기마당’이나 ‘이야기판’이나 ‘이야기빛’과 같이 적을 수도 있어요. ‘이야기샘’이나 ‘이야기나라’처럼 적어도 됩니다. 4346.9.10.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러나 우리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면 언제든 기꺼이 함께하셨어요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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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92) 유년의 1 : 유년의 불장난

 

게다가 화덕의 불을 지키다 보면 마음이 절로 편해지니 나이 먹어도 유년의 불장난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지
《정화진-풍신난 도시농부, 흙을 꿈꾸다》(삶창,2013) 65쪽

 

  “화덕의 불을 지키다 보면”은 “화덕 불을 지키다 보면”이나 “화덕 앞에서 불을 지키다 보면”으로 손봅니다. “마음이 절로 편(便)해지니”는 “마음이 절로 가벼워지니”나 “마음이 절로 느긋해지니”로 손질하고, “좋아하는 것은 아닐지”는 “좋아하는 셈은 아닐지”나 “좋아하는 모습은 아닐지”로 손질해 줍니다.


  ‘유년(幼年)’은 “어린 나이”나 “어릴 적”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말뜻 그대로 적으면 돼요.

 

 유년의 불장난을
→ 어릴 적 불장난을
→ 어린 날 불장난을
→ 어릴 때 하던 불장난을
→ 어릴 적 즐기던 불장난을
 …

 

  누구나 아기로 태어납니다. 아기를 거쳐 아이가 됩니다. 아이는 나이가 어린 사람입니다. 아이로 누리는 나날이란 “어린 나날”입니다. 어릴 적에는 어린이답게 뛰놉니다. 불장난도 하고 물장난도 합니다. 풀밭에서는 풀장난을 하고, 숲에서는 숲장난을 해요. 말을 하나하나 배우며 말장난을 깨닫고, 손으로 이것저것 주무르고 흙이나 모래를 만지작거리며 손장난을 익힙니다. 4346.9.10.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게다가 화덕 불을 지키다 보면 마음이 절로 느긋해지니 나이 먹어도 어린 날 불장난을 좋아하는 셈은 아닐지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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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키우는’ 책읽기

 


  아이와 같이 놀거나 얘기하면, ‘신문’도 ‘텔레비전’도 얼마나 부질없는지 차츰차츰 느낄 수 있으리라. 아이들은 신문에 나온 이야기에 눈길을 두지 않는다. 아니, 아이들은 신문을 읽지 않는다. 아이들은 텔레비전 새소식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아니, 아이들은 텔레비전 새소식을 보지 않는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희한테 일어나는 이야기에 눈길을 두고 마음을 쓴다. 아이들은 저희 일과 저희 어버이 일과 저희 동무와 이웃 일에 마음을 쓴다. 아이들은 저희 식구들 살아가는 마을 일에 눈길을 둔다.


  첫째 아이를 돌볼 적에 첫째 아이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곤 했다. 둘째 아이를 돌보면서 둘째 아이 말을 거의 모두 알아듣는다. 입으로 웅얼거리는 소리뿐 아니라 얼굴짓으로 드러나는 말 모두 알아듣는다. 셋째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들이 읊는 모든 소리와 몸짓과 마음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이들과 살아가며 읽을 책이란 바로 ‘나 스스로 사랑할 삶’인 줄 깨닫는다. 나 스스로 사랑할 삶이 무엇인 줄 깨달을 적에 내 삶부터 아름답게 일구는 길 걸어갈 수 있고, 이 즐거운 길에 동무로 삼을 살뜰한 책을 하나둘 맑게 만나는구나 싶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간다고 모두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스스로 어른이 되려고 마음을 품으면 아이를 낳지 않고 짝짓기를 하지 않아도 어른이 될 수 있다. 아이를 낳아 새로운 어른이 되고자 마음을 품으면, 아이를 낳아 누리는 여러 삶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어른이 될 수 있다. 언제까지나 ‘어린이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을 품으면, 서른 쉰 일흔 아흔 나이에도 어린이답게 생각하고 꿈꾸고 사랑하고 놀고 일하고 방그레 웃는 착한 삶 지을 수 있다. 4346.9.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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