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26] 날마다 자라는 호박
― 대문으로 넘어온 넝쿨

 


  씨앗은 바람 따라 멀리까지 날아갑니다. 넝쿨은 울타리나 나무를 타고 이웃집으로 넘어갑니다. 내가 뿌리지 않은 씨앗이지만, 풀씨가 우리 집으로 깃듭니다. 내가 심지 않은 감나무라 하더라도, 이웃집 감나무가 우리 집 울타리 너머로 살며시 가지를 뻗을 수 있습니다. 울타리 밑에 심은 호박은 울타리를 따라 씩씩하게 자라는데, 이웃집 울타리 안쪽에서만 자라지 않아요. 넝쿨심 얼마나 좋은지, 햇볕 먹으며 줄기 죽죽 뻗어 십 미터 이십 미터 삼십 미터 사십 미터까지 거침없이 잇닿습니다.

  우리 집과 돌울타리로 맞닿은 이웃 밭자락에서 울타리 따라 자라던 호박넝쿨 하나, 지난해에도 그러께에도 올해에도 우리 집 가까이로 넘어옵니다. 지난해까지는 넝쿨 끄트머리를 잘라서 우리 집 대문 언저리에서 더 뻗지 않더니, 올해에는 우리 집 대문까지 야무지게 넘어옵니다.


  호박넝쿨이 대문 위쪽 감싸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합니다. 옳거니, 아주 잘 되었네. 우리 식구들 먹을 호박도 얻고, 우리 집 대문도 무척 볼 만하게 되는걸. 대문은 파란 빛깔이지만, 마당은 온통 풀빛을 이루는 우리 풀집에 걸맞는 모습이 되는구나.


  대문을 드나들면서 호박이 날마다 자라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굵직하게 자라며 묵직한 호박알을 날마다 쓰다듬고, 곁에서 새로 알이 굵는 조그마한 호박알도 날마다 쓰다듬습니다. 너희는 어쩜 이렇게 알뜰히 맺니. 너희는 어쩜 이렇게 한꺼번에 안 맺고 하나씩 차근차근 맺으면서 우리 식구들 고운 밥이 꾸준히 되어 주니. 4346.9.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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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꽃 생각

 


  쑥꽃을 처음 안 때가 2010년이었지 싶다. 이때까지는 쑥꽃 곁을 지나면서도 쑥꽃인 줄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틀림없이 곁에 쑥꽃이 있었을 테고, 코앞에서 쳐다보았을 텐데, 쑥꽃이건 들꽃이건 풀꽃이건 아무런 생각이 마음속에서 안 일어났으리라 느낀다.


  누군가한테서 ‘쑥꽃’이라는 낱말을 듣고, 나 스스로 “쑥도 풀이니까, 틀림없이 꽃이 피겠지. 그러면 쑥꽃은 어떤 모양새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비로소 쑥꽃을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마음을 먹고도 좀처럼 쑥꽃을 못 보았다. 못 알아보기도 했고, 쑥꽃을 보려고 몇 군데 쑥풀 돋은 자리를 눈여겨보았으나, 시골사람 누구나 풀씨 번지는 일을 달가이 여기지 않았다. 쑥이고 무엇이고 모조리 베어 없애기 바빴다.


  ‘우리 보금자리 시골집’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쑥꽃을 본다. 우리 집에서 자라는 쑥풀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풀을 베건 뜯건 우리 몫이다. 풀을 먹건 놔두건 우리 삶이다. 우리 집 쑥은 싱그럽게 돋아나고, 씩씩하게 자라서, 곱게 꽃을 피운다.


  사람들은 동백꽃이나 장미꽃쯤 되어야 쳐다볼 만한 꽃이라 여기고, 봄날 유채꽃이나 자운영꽃쯤 되어야 예쁜 꽃이라 여긴다. 여름날 찔레꽃이나 딸기꽃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며, 붓꽃이랑 창포꽃을 가릴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런데, 모든 나무에는 꽃이 피고, 모든 풀에는 꽃이 달린다. 모든 나무와 풀은 씨앗을 맺어 새롭게 자라난다. 쑥꽃을 볼 적마다 오랜 나날 수없이 이어지며 푸른 숨결 베푼 이야기를 읽는다. 4346.9.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요 사진은

'쑥꽃 몽우리'입니다.

곧 터지려고 하는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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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각
― 사진 여덟 (4346.9.23.달.ㅎㄲㅅㄱ)

 


살림돈 모자라
필름사진기 더는 못 찍겠다고
이제 그만두어야겠다고
앞으로 살림돈 넉넉히 벌면
그때에 다시
필름사진기 손에 쥐어
필름 척척 감아
천천히 천천히
한 장씩 담자 생각하면서,

 

지난 몇 해 사이에 찍었지만
아이들과 살아가며
집일 하느라 바쁜 나머지
미처 긁지 못한 필름을
뒤늦게 긁는데,

 

빛을 제대로 못 맞추어
조금 허옇게 되거나
조금 까맣게 된 사진
드문드문 보이지만,
빛을 사랑스럽게 맞추었을 뿐 아니라
느낌도 생각도 이야기도
모두 곱게 여민
사진을 보다가,
한참 보다가,

 

디지털사진기를 쓰면서도
필름사진기를 왜 내려놓지 않았는가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디지털사진기를 흑백 설정 해 놓고
얼마든지 흑백 느낌 살릴 수 있겠지.
그러나,
필름을 찾을 때까지 가슴으로 설레고,
필름을 찾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며,
스캐너 돌리며 가슴이 떨리는 빛은,
필름사진기에만 있다.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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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서는 헌책방

 


  아이와 함께 헌책방에 선다. 아이가 있기에 아이와 함께 헌책방마실을 한다. 아이가 없던 지난날에는 혼자 헌책방에 섰다. 혼자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 그예 시간 가는 줄 잊고 헌책방에서 책에 파묻혀 지냈다. 오늘 이 헌책방에서 만나는 이 책들은 다음에 이곳에 다시 찾아올 적에 다른 책손이 장만해서 못 보기 마련이라 느끼기에, 내 앞에 나타나는 책들을 살피고 읽느라 해가 꼴딱 넘어가도록 책바다에서 수많은 사람들 삶을 마주했다.


  아이는 헌책방에서 책을 만지작거리기도 하지만, 천장까지 닿는 책꽂이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책 사잇길을 마음껏 걷는다.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혼자서 숨바꼭질을 하고, 동생하고 술래잡기를 한다. 큰아이는 저 혼자 아버지하고 헌책방마실 하던 날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큰아이는 제 동생이 제법 자라 저랑 둘이서 헌책방 골마루를 달리며 놀 수 있는 요즈음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는 머잖아 한글을 깨치겠지. 한글을 깨치면서 이 책 저 책 들추겠지. 한글을 깨칠 뿐 아니라, 글을 익히고 난 뒤에는 이 사람 저 사람 들려주는 오랜 삶빛을 책에서 만나겠지.


  아직 한글을 다 모르니, 이동안에는 나무를 읽고 풀을 읽으며 꽃을 읽으렴. 아직 글을 제대로 모르니, 이동안에는 하늘을 읽고 해를 읽으며 별을 읽으렴. 바람과 흙을 읽고, 비와 내를 읽으렴. 구름과 숲을 읽고, 풀벌레와 제비를 읽으렴.


  우리가 읽을 이야기는 늘 우리 둘레에 있단다. 우리가 아로새길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단다. 책에서도 얼마든지 길을 찾고, 책 아닌 우리 삶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다. 길은 어디에나 있는데, 볼 눈이 있을 때에 보고, 볼 눈이 없을 때에 못 본단다. 코앞에 내가 바라는 책이 꽂힌 줄 모르는 채 지나칠 수 있고, 저 먼 책시렁 어딘가에 내가 바라는 책이 있다고 마음으로 느껴 두근두근 설레는 가슴으로 그 책시렁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마음을 열면 마음으로 이야기가 스며들지. 생각을 열면 머리와 온몸으로 노래가 샘솟지. 사랑을 열면 넋과 얼은 고운 빛으로 가득하지. 내 마음속에 빛샘이 있어 책을 읽을 수 있다. 내 마음속에 사랑밭이 있어 책에서 만난 아름다운 이야기를 즐겁게 씨앗으로 심을 수 있다. 4346.9.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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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1. 쑥꽃에 앉은 여치 2013.9.21.

 


  날마다 쑥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푸른 빛깔에서 차츰 푸르스름하게, 머잖아 누르스름하게 달라질 쑥대에 돋는 옅붉은 쑥꽃 사이에 가만히 앉은 여치를 만난다. 너도 우리 집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잖고 풀노래 들려주는 숱한 풀벌레 가운데 하나로구나. 너는 우리 집에서 어떤 풀을 맛나게 먹니? 너는 우리 집에 네 동무와 살붙이가 얼마나 있니? 이 가을 고요하면서 따사롭게 누리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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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23 10:04   좋아요 0 | URL
여치가 풀빛색이라 가만히 살펴보고 만났어요~!
쑥꽃 사이에 앉은 여치를 보니 참 좋네요~
어렸을 때는 저도 여치를 본 듯 했는데...정말 여치를 본게 오랫만이어서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저도 오늘 하루, 쑥꽃 사이에 앉은 여치처럼
고요하고 따사로운 하루가 될 것 같아요~
늘 귀한 사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09-23 16:41   좋아요 0 | URL
쑥꽃뿐 아니라 다른 풀빛도 푸르면서 누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가을이라
여치가 아주 잘 숨지요~

이렇게 숨은 풀벌레 찾기도
재미난 숨은벌레찾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