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95) 그녀의 7 : 그녀의 동그란 어깨

 

그녀의 동그란 어깨 위로 오후의 겨울 햇살이 내린다
《레아·여유-따뜻해, 우리》(시공사,2012) 16쪽

 

  “어깨 위로”는 “어깨에”로 다듬습니다. 햇살은 어깨에 내리고, 땅에 내리며, 나무에 내리고, 꽃송이에 내립니다. “위에” 내리지는 않아요. 위와 아래로 따지지 않습니다. “오후(午後)의 겨울 햇살”은 “한낮 겨울 햇살”이나 “겨울 한낮 햇살”이나 “겨울 낮 햇살”로 손질합니다. 겨울에 드리우는 햇살은 아침에는 아직 포근하다고 느끼기 어렵고, 낮이 되어야 비로소 포근한 줄 느낍니다. 그러니, 이 글월에서는 “포근한 겨울 햇살”로 손질할 수 있어요.

 

 그녀의 동그란 어깨 위로
→ 자는 아이 동그란 어깨에
→ 조그맣고 동그란 어깨에
→ 동그란 아이 어깨에
 …

 

  새근새근 자는 아이 어깨에 햇살이 내린다고 합니다. 자는 아이는 가시내입니다. 아이도 사내와 가시내로 나누어 ‘그녀’로 가리킬 만하지 않느냐 물을 수 있지만, 아이는 아이요 어른은 어른입니다. 가시내는 가시내요 사내는 사내예요. 여러모로 ‘그녀’를 곳곳에서 흔히 쓴다 하더라도, 잘못 쓰거나 올바르지 않게 쓰는 말투는 살포시 털거나 덜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 아이들 가리키는 이름이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곱고 맑은 바람과 물을 누리면서 곱고 맑은 넋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그대로, 곱고 맑은 말로 곱고 맑은 생각을 빛내도록 하기를 빕니다. 4346.10.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자는 아이 동그란 어깨에 포근한 겨울 햇살이 내린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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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번쩍 어린이

 


  맨발로 마당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놀던 사름벼리가 갑자기 두 팔 번쩍 치켜들더니 노래노래 부르면서 다시금 휘젓는다. 이를 본 동생도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누나를 따른다. 얼마 앞서까지 머리 위로 손이 안 올라가던 세 살 동생이지만, 이제 제법 손을 치켜드는 티가 난다. 4346.10.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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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누나 따라 소리지르기

 


  목청껏 소리지르며 놀기 좋아하는 누나 곁에서 누나 따라 소리를 지르는 산들보라. 우리 시골집에서는 너희가 목청껏 소리지를 수 있단다. 다른 어디에서도 못 하는 놀이일 테지. 신나게 놀며 소리를 지르고 노래도 부르렴. 4346.10.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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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취재 (도서관일기 2013.10.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으로 방송취재를 나온다. 곰팡이 핀 책꽂이를 바꾸고 니스를 바르느라 부산한 만큼, 이래저래 어지럽지만, 얼추 치워 놓는다. 작은아이가 똥을 스스로 다 가릴 줄 안 뒤로 도서관으로 함께 나와서 일할 적에 한결 수월하다. 앞으로 작은아이가 더 크면, 두 아이가 도서관에서 한창 뛰놀다가도 조용히 걸상에 앉아 그림책을 읽겠지. 그러면 이동안 아버지는 더욱 느긋하게 오래도록 도서관 책꽂이를 손질하고 청소도 하겠지.


  둘이 잡기놀이를 하더니, 어느새 조용하다. 큰아이는 만화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읽는다. 작은아이는 바퀴인형을 들고 책꽂이 사이를 누비는 기차놀이를 한다. 방송국 피디한테서 전화가 온다. 마을회관 앞에 왔단다. 마을회관 앞으로 가서 도서관으로 함께 돌아온다. 한국방송에서 〈스카우트〉라는 이름으로 푸름이들 나오는 풀그림을 찍는다고 한다. 올 한글날에 맞추어 한글과컴퓨터 회사에 들어가려고 하는 푸름이 넷이 저마다 다른 솜씨를 뽐내며 겨룬다고 한다.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온 푸름이는 열아홉 살 아이. ‘순 우리 말 가로세로 낱말풀이 게임’을 만든다고 한다.


  재미있게 만들면 되지. ‘순 우리 말’이라고 하지만, 너희가 학교를 다니며 ‘순 우리 말’을 배운 적 있을까? 없을 테지. ‘순 우리 말’ 아닌 ‘우리 말’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걸. 교과서를 들여다보자. 어디 우리 말다운 우리 말이 있디? 낱말은 낱말대로 엉터리이고, 낱말을 엮는 글월도 글월대로 엉터리이다. 낱말을 놓고 일본 한자말이니 영어이니 하고 나무라면서 다듬느라 사람들이 퍽 애쓰지만, 정작 일본 말투나 영어 번역투에서 홀가분한 사람이 아주 드물다. 국어학자도 한글학자도 전문가도 모두 똑같다. 얼마 앞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꾸짖는 책이 새로 나왔는데, 이 책을 쓰신 분도 ‘일본 말투’와 ‘영어 번역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글월을 엮을 적에 올바르며 알맞고 아름답게 한국말다운 말투가 되지 못하면서, 낱말에만 눈길을 두어서 무엇이 될까.


  말은 ‘낱말’이 아니라 ‘말’인 줄 알아야 하는데, 방송 풀그림에 나오는 이 푸름이는 이 대목을 얼마나 짚을 수 있을까.


  가로세로 낱말풀이를 만든다 할 적에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로만 만들면 쉬 벽에 부딪힌다. ‘국어사전에 없는 말’을 새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몇 가지 보기를 알려주었다.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들에서 새잡이를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집에서 파리를 잡고 모기를 잡아요. 그러니까 ‘파리잡이’에 ‘모기잡이’예요. 국어사전에는 이런 낱말 안 나오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늘 이런 ‘잡이’를 한단 말이지요. ‘내 밥을 몰래 핥아 먹으려 하는 벌레를 잡는 일’이라고 문제를 내면 재미있어요. 저 하늘에 뜬 구름 보았지요? 저 구름 어때요? 무슨 빛 같아요? ‘구름빛’ 아니고는 나타낼 길이 없겠지요? 구름은 하얀 구름도 있고 잿빛 구름도 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하얀 구름만 생각해요. 그렇겠지요? 그러면, ‘파랗게 빛나는 하늘에 하얗게 물드는 빛’이라는 문제를 낼 수 있어요. 정답은? ‘구름빛’이에요. 생각하는 힘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맞출 수 있지만, 생각하는 힘 키우지 않는 사람은 도무지 못 맞추겠지요.”


  요새는 도시 아이가 되든 시골 아이가 되든 ‘풀’이 왜 풀인 줄 알지 못하고, ‘푸르다’라는 낱말이 왜 ‘푸르다’인 줄 알지 못한다. ‘노랗다·누렇다·파랗다·빨갛다’가 어떻게 태어난 낱말인 줄 생각하거나 깨닫는 사람도 드물다. 이런 말뿌리를 알려주어도 못 믿는 사람도 많다.


  방송국 피디가 오기 앞서 방송작가가 전화를 먼저 걸었는데, 우리 집이 어떤 집인지 묻더라.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뭐 그런 걸 묻더라. 피식 웃었다. 요새는 읍내나 면소재지에도 아파트나 빌라가 서기도 하지만, 우리 집은 시골인데. 도시가 아닌데. “저희 집은 그냥 시골집입니다.” 하고 말하면서도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참말 시골을 모를까? 시골은 생각한 적 없을까? 흙과 돌과 나무로 지은 시골집이 아직도 시골에 있는 줄 모를까? 바닥과 벽을 시멘트로 새로 발랐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시골마을 시골집은 뼈대와 속살은 온통 나무와 흙과 돌이다. 시골을 하나도 모르는 도시사람이 방송을 찍고 신문을 엮을 텐데, 이러다 보니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온통 도시 이야기만 흐른다. 가끔 시골로 무언가 취재하러 나오더라도 시골빛을 제대로 모르고 생각조차 한 적이 없으니 뚱딴지 같은 말을 하기 일쑤이다. 하기는. ‘쌀’과 ‘벼’를 가리는 사람은 흙일꾼 아니고는 없다 할 만하고, ‘겨’가 무엇이요 ‘짚’이 무엇인 줄 가리는 사람도 흙일꾼 아니고는 이제 없지 않겠나. 학교에서도 안 가르치고 교과서에도 안 나올 테며 수학능력시험에도 이런 이야기는 안 물을 테니까.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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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해, 우리 - 함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레아.여유 지음 / 시공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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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63

 


사진 찍는 동안 따뜻한 마음
― 따뜻해, 우리
 레아·여유 글·사진
 시공사 펴냄, 2012.12.4. 13000원

 


  사진을 찍는 동안 마음이 따뜻합니다. 사진을 찍기 때문에 따뜻하다기보다, 날마다 맞이하는 새 하루를 마음 따뜻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마음이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기 때문에 즐겁다기보다, 날마다 마주하는 새 하루를 마음 즐겁게 누리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따라 사진에 감도는 빛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너그러운 빛 감도는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이 환한 사람은 연필을 손에 쥘 적에 환한 빛 서리는 글을 씁니다. 마음이 고운 사람은 붓을 손에 쥘 적에 고운 빛 눈부신 그림을 그립니다.


  기계를 다루는 솜씨로는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기계 다루는 솜씨로는 작품을 만들거나 기록을 쌓을는지 모르지만,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진이 되자면, 먼저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삶이 되자면, 언제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곧, 삶도 사랑도 없이 기계만 다루며 작품을 만들거나 기록을 쌓을 수 있어요. 컴퓨터한테 맡겨 멋들어진 작품을 만들 수 있고, 놀라운 기록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과 기록에는 삶이 없어요. 작품은 그저 작품일 뿐이고, 기록은 그예 기록일 뿐입니다.


.. 아내는 사진을 사랑합니다. 남편도 사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세 살이 된 딸은 그래서, 운명처럼 카메라를 좋아하고 사진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  (4쪽)


  사진기를 써서 작품을 만드는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사진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예술가가 제법 많아요. 이들은 사진기라는 연장을 빌어 예술을 합니다. 붓을 빌어 예술을 하기도 하고, 텔레비전 수상기를 빌어 예술을 하기도 해요. 돌을 빌고 종이를 빌어 예술을 하지요. 쓰레기더미에서 이것저것 캐내어 예술을 하기도 합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예술을 합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은 사진을 하지요.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일 뿐, 사진은 작품이나 기록이 아니에요. 예술도 예술일 뿐, 예술은 작품이나 기록이 아니에요.


  가을걷이를 하는 시골 흙지기들 삶은 예술이나 문화가 아닙니다. 그저 삶입니다. 가을을 맞이해 이녁 삶으로서 가을걷이를 합니다. 그런데, 가을걷이를 하며 나락을 말리려고 볏다발 묶은 모습을 보셔요. 참깨를 베고 콩포기를 베어 묶어서 말리는 다발을 보셔요. 흙지기마다 다르게 묶습니다. 마을마다 다르게 엮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진가는 볏짚다발만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시골 흙지기는 스스로 ‘예술’이라 여기지 않고 ‘삶’으로 볏짚다발 묶거나 엮었지만, 어떤 사진가 눈에는 이보다 어여쁜 ‘예술’은 없겠다고 보여, 이 사진가는 볏짚다발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작품도 기록도 아닌 ‘사진’으로.


  가을걷이를 마치고 나락을 말리려고 길바닥에 싯누런 나락을 죽 펼칩니다. 싯누런 나락을 여러 날 해바라기 시킵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나락을 뒤집습니다. 나락을 뒤집으려고 슬슬 긁으며 모양이 달라져요. 일본사람은 앞마당 잔돌을 찬찬히 쓸어서 예쁜 무늬를 만드는데, 한겨레 흙지기는 나락말리기를 하며 고운 무늬를 만들어요. 예술가 아닌 흙지기로서 삶을 아름답게 일굽니다.

 


.. 모든 것이 다 눈물겹다. 사람도 공기도 촉감도 심지어 아가를 위해 틀어놓은 경쾌하기만 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까지도 … 워낙 키도 작고 자그마한 체격이라 아기띠를 하고 가는 모습이 벅차 보였나 보다. 커다란 생수통을 어깨에 든 아저씨가 빵 봉투를 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아저씨 어깨에 있는 생수통이 더 무거워 보여요, 라고 말했더니 아저씨는 인상 좋게 웃으며 애기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여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럴 땐 꼭 서울이 봄처럼 따뜻하다 ..  (19, 26쪽)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 요새는 손전화 기계로도 멋지거나 예쁜 사진 쉽게 찍을 수 있으니, 이제는 누구나 아이들 모습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즐겁게 찍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어머니가 아이들 모습을 스스럼없이 찍는 사진보다는 아이들 아버지가 아이들 모습을 가끔 찍는 사진이 더 많지 싶어요.


  성평등 시대라고는 하지만, 정작 아버지가 집에서 살림을 건사하거나 보살피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어머니가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벌 적에, 아버지가 집을 지키며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아주 드물어요. 거꾸로, 아버지가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벌 때에, 어머니가 집을 지키며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참 흔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번다면,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하루 내내 지내거나 할머니 할아버지 손길을 타며 자라지요.


  오늘날에도 지난날에도 아버지 자리에 선 사람들은 아이들과 마주할 틈이 아주 적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얼굴을 보더라도, 하루 동안 아이가 놀고 뛰고 먹고 입고 구르고 자고 하는 온갖 모습을 골고루 만나지 못합니다. 젖을 물리고 젖떼기밥을 먹이며 여느 쌀밥을 먹이는 일을 아버지가 맡아서 하거나 조금이라도 거드는 일이 드뭅니다. 집일을 도맡고 아이들 또한 도맡아 보살피는 어머니는 몹시 바빠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며 예쁜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사진기를 꺼내어 찰칵 찍을 겨를이 없고, 손전화 기계를 얼른 켜서 사진으로 남길 틈이 없기 마련입니다. 이와 달리, 집일을 거의 안 맡거나 안 하면서 가끔 아이들과 노는 아버지는 쉽게 사진기를 들지요. 그래서, 아이들과 노는 모습은 곧잘 아버지가 사진으로 남기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는 찬찬한 흐름과 빛과 결과 이야기까지 아버지가 사진으로 남기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예 찾아볼 수 없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아이들을 한두 살 적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면, 어린이집에서 자라고 배우는 동안, 어버이는 아이들을 자라게 이끌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해요. 그만큼 아이들 눈빛과 몸빛과 마음빛을 못 읽고 못 느껴요.


  아침저녁으로만 얼굴을 보더라도 놀라운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요. 그러나, ‘놀라운 사진’에서 그쳐요. 삶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삶을 가꾸는 사진으로 넘어서지 못해요. 함께 살아가는 한솥밥지기인 줄 느끼는 하루를 차근차근 누리는 동안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이어지면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일구는 삶이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함께 살아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어요. 가끔 한두 시간 놀아 준다면 ‘가끔 놀아 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요.

  이 사진이 더 낫고 저 사진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마음을 담아 찍으면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삶을 즐길 때에 사진이 즐겁고, 스스로 삶을 사랑할 적에 사진이 사랑스럽습니다.


.. 레아야, 이건 눈이야. 너와 함께 눈을 밟다니 정말 감격스럽다 ..  (56쪽)

 


  사진으로 가는 길은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는 길은 삶을 일구는 길입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은 사랑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고 읽으며 나누는 길이란 사랑을 빚고 찾으며 함께하는 길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들길을 걸어요. 아이를 품에 안고 숲길을 걸어요. 아이를 등에 업고 바닷물로 첨벙 뛰어들어요. 갓난쟁이 똥오줌 기저귀를 손으로 즐겁게 빨래하며 노래를 불러요. 아이들 옷을 개며 노래를 부르고, 식구들 옷을 개면서 노래를 불러요. 비질과 걸레질을 하면서 노래를 불러요. 밥상을 차리며 노래를 부르고, 설거지를 하며 노래를 불러요. 칼을 갈며 노래를 부르고, 마당을 쓸며 노래를 불러요.


  언제나 노래를 부르며 하루하루 누리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이 어버이 모습 말똥말똥 지켜본다면, 이 아이들은 어느새 빙그레 웃음짓고는 까르르 빛노래 부르겠지요.


.. 내 눈으로 직접 조리과정을 보지 못한 음식을 아이에게 먹이는 게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직접 만들어 먹이기로 결심했다 … 남편도 아가도 잠이 들면 집안의 불을 모두 끈 채로 살금살금 나 혼자 분주해진다. 남편이 얼마 전부터 도시락을 싸서 다니겠다고 해서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도시락 반찬을 만들고, 정확히 새벽 5시 30분에 밥이 되도록 쌀을 씻어 예약 버튼을 눌러둔다 ..  (73, 104쪽)


  레아 님과 여유 님이 함께 일군 사진책 《따뜻해, 우리》(시공사,2012)를 읽습니다. 그동안 레아 님은 혼자서 사진책을 내놓았는데, 《따뜻해, 우리》는 옆지기가 나란히 나오고, 레아 님과 옆지기가 낳은 아이가 함께 나옵니다. 세 사람이 이루는 보금자리가 ‘따뜻하구나’ 하고 느껴 따뜻하게 누리는 삶을 들려주는 사진책을 선보입니다.


  책 끝자락을 보면, 레아 님네 세 식구에 이은 넷째 숨결이 나옵니다. 앞으로 한 해나 두 해가 더 흐르면, 네 식구 살림살이 복닥이는 이야기 흐드러지는 새로운 ‘따뜻한 삶’을 사진과 글로 선보일 수 있겠지요.


.. 오후의 빛과 가족의 뒷모습이 꼭 들어맞는 하나의 감정이 되어 물드는 것을 나는 보았다. ‘따뜻해, 우리’ 이러면서 ..  (135쪽)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에,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고, 생각하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살아가는 마음자락에 따라 사진빛이 바뀝니다. 생각하는 마음결에 따라 사진결이 달라집니다.


  레아 님한테 옆지기가 나타나고, 두 사람이서 새 숨결을 낳아 돌보는 삶을 일구면서, 레아 님이 그동안 찍던 사진에 새 무늬가 감돕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레아 님 사진을 빛내면서 새로운 내음과 결이 서립니다.


  앞으로 네 식구 살림일 적에는 어떤 사진빛이 환할까요. 옆지기가 바깥일 하느라 집을 오래 비우는 동안 두 아이와 복닥이며 고된 나머지 사진기를 손에 쥘 겨를도 힘도 없을까요. 바쁘고 힘들어도 사진기만큼은 씩씩하게 손에 쥐면서 새로운 하루를 새로운 사진으로 엮을까요.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기대는 사람이 있고 나를 기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옆지기와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누리는 마을과 보금자리와 숲이 있습니다.


.. 언제 또 부산에 갈 수 있을까. 너무 착하고 아름답고, 목소리가 시끌시끌 정신없이 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누나들 좀 챙기라는 면박에 괜히 파프리카를 한 상자나 보내주는 엉뚱한 순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존재하는 곳. 기장만 가면 오징어를 샀던 우리 부부를 떠올려 주는 아름다운 그들이 있는 곳 … 나는 지금 삼십 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 아기를 낳아 시간이 부족하거나 예쁘지 않은 외모로 집을 지켜도 딱히 억울하거나 곤란하지 않다.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시간이 저릿저릿 아플 만큼 좋았기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내가 그리 우울하지 않다 ..  (152, 223쪽)

 


  사진은 바로 이곳에서 찍습니다. 사진은 바로 오늘 찍습니다. 무지개는 바로 이곳에서 오늘 만납니다. 미리내도, 달도, 별도, 해도, 바람도, 비도, 눈도, 모두 바로 이곳에서 오늘 만나요.


  내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삶을 내 손으로 담아 사진이 됩니다. 내가 가꾸는 아름다운 하루를 내 손으로 일구어 사진이 됩니다. 내가 누리는 사랑스러운 나날을 내 손으로 가꾸며 사진이 됩니다.


  사진은 바로 우리들 가슴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은 이론가들 책상머리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진은 바로 우리들 보금자리에서 샘솟습니다. 사진은 최신사진도 첨단사진도 서양사진도 유행사진도 아닙니다. 사진은 언제나 내 삶이고, 내 삶은 언제나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 집 안에 무지개가 떴던 아침 ..  (185쪽)


  집 안에 별이 뜹니다. 집 안에 귀뚜라미가 노래합니다. 집 안에 햇살이 드리웁니다. 집 안에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집 안에 가을바람이 붑니다. 집 안에 제비가 노래 한 가락 부르고 휙 날아갑니다.


  우리들은 흙땅에 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우리들은 마음밭에 사랑씨 한 톨을 심습니다. 우리들은 사진기를 빌어 삶이야기 한 가락을 심습니다. 사진 찍는 동안 따뜻한 마음은 나한테서 아이한테 이어지고, 다시 아이한테서 나한테 흐릅니다. 4346.10.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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