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66] 시읽기

 


  꽃이 피고 지는 삶과 구름이 흐르는 하늘은
  머리로는 헤아릴 길 없는 빛이며 사랑입니다.
  글 한 줄은 머리 아닌 가슴으로 읽습니다.

 


  “시를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할 수 없어요. “시를 알”려고 하더라도 알 수 없습니다. 시는 읽어서 느낄 뿐입니다. 소설이나 수필도 그렇고요. 그저 읽고 느끼며 즐기면서 사랑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 눈빛을 어떻게 이해하거나 알 수 있나요.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어요. 그저 살포시 안고 따사로이 어루만지며 너그러이 사랑하면 아름다운 삶입니다. 4346.10.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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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의 벌레들 - 가만히 앉아서 찾아보자 과학은 내친구 21
고바야시 토시키 지음, 다카하시 기요시 그림,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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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6

 


집 곁에 무엇이 있나요
― 집 근처의 벌레들
 다카하시 키요시 그림
 고바야시 토시키 글
 엄기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5.11.5.

 


  일본사람 다카하시 키요시 님이 그리고 고바야시 토시키 님이 글을 쓴 그림책 《집 근처의 벌레들》(한림출판사,2005)을 읽습니다. 일본에서는 1980년에 나왔다고 합니다. 참 어여쁜 책이로구나 하고 느끼며 찬찬히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집 둘레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조그마한 벌레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움직한 이야기라 할 수 있으나, 오랜 옛날부터 집과 마을에서 늘 마주하면서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사귀는 ‘놀이동무와 같은’ 벌레들 이야기입니다.


.. 지렁이의 먹이는 가랑잎입니다. 햇빛을 싫어하는 지렁이는 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 먹이가 있는 장소를 찾습니다. 손도 발도 없는데 어떻게 흙을 파고 들어갈까요 ..  (8쪽)


  모두 흙을 일구고 만지면서 살던 지난날에는 이런 그림책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런 그림책 없어도 어린이 모두 지렁이를 알고 달팽이를 알아요. 학교에서 지렁이나 달팽이를 안 가르치고 안 보여주어도, 아이들 누구나 집과 마을에서 지렁이를 보고 달팽이를 보았어요.


  어른들이 시골을 떠나고, 아이들이 흙을 만질 수 없는 때부터 《집 근처의 벌레들》 같은 그림책이 태어납니다. 아이들이 적어도 이 그림책에 나오는 벌레들만큼은 알고 사귀며 함께 놀 줄 알아야 한다고, 어른들 나름대로 생각했지 싶습니다. 적어도 이런 벌레쯤은 알아야 살아갈 수 있고, 이렇게 작은 벌레를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지 못한다면, 사람살이에서도 내 여린 이웃과 동무를 살가이 마주할 수 없다고 느끼리라 봅니다.


  참말 하찮은 벌레란 없습니다. 어느 벌레이든 모두 대수롭습니다. 개미도 거미도 쇠똥구리도 달팽이도 지렁이도 지네도 모두 대수롭습니다.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지구별을 이룹니다. 모두 함께 사이좋게 지내면서 지구별에 푸른 숨결 가득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어느 벌레 한 가지 지구별에서 사라지면 어찌 될까요. 개미가 없으면? 지렁이가 없으면? 파리가 없으면? 지네가 없으면? 달팽이가 없으면?


  오늘날 시골 흙지기는 논이며 밭이며 고샅이며 농약을 너무 함부로 뿌립니다. 논밭에 심은 곡식과 푸성귀 아니면 모조리 죽이려 합니다. 중앙정부 산림청 일꾼과 토목 부서 일꾼은 틈틈이 숲나무를 밀고 자릅니다. 숲에 길을 내고 숲에 시멘트를 덮어 큰물이 나도 멧자락이 안 무너지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숲에서 나무를 함부로 베고 숲과 멧자락에 시멘트 함부로 들이붓기 때문에 멧자락이 무너지지요. 온 나라 냇물줄기에 온통 시멘트 퍼붓는 4대강사업은 이 나라 냇물과 마을과 숲을 얼마나 망가뜨린 짓이었을까요. 이런 끔찍한 짓을 한 나라는 지구별에 어디에도 없어요. 미국조차 안 하고, 일본이나 중국이나 인도나 독일이나 프랑스나 영국이나 네덜란드나 모두 안 합니다. 독일은 갯벌을 메꾼 땅을 다시 갯벌로 돌려놓으려고 진작부터 애썼어요. 바다를 메워 뭍으로 만든 네덜란드도 앞으로 이 뭍을 다시 바다로 돌리려고 찬찬히 애씁니다. 한국만 지구별에서 남달리 땅을 망가뜨리고 숲을 무너뜨립니다. 한국만 지구별에도 도드라지게 도시에서도 흙이 사라지고 시골에서도 흙길을 온통 시멘트길로 바꿉니다. 게다가 싱그러운 냇물과 골짝물 흐르는 두멧자락에까지 댐에 가둔 수돗물 마시게 한다면서 법석을 떨어요.

 

 


.. 집 근처의 정원이나 공원 구석에 가만히 앉아서 벌레를 찾아봅시다. 돌이나 낙엽을 치우면 이런 벌레가 보일지도 모릅니다 ..  (24쪽)


  오늘날 도시 아이들은 벌레를 거의 모릅니다. 숲에서 살거나 들에서 살아가는 벌레를 제대로 아는 도시 아이란 거의 없습니다. 더 따지면, 도시 어른부터 벌레를 거의 모릅니다. 벌레가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새가 무엇이요 짐승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알아듣거나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찬찬히 살필 줄 아는 어른은 몇이나 있을까요. 오늘날 시골에서도, 시골 어른들은 숲바람과 들바람을 얼마나 잘 알까요. 새를 알거나 풀을 알거나 나무를 아는 시골 어른은 앞으로 모조리 사라지고 말까요.


  그림책 《집 근처의 벌레들》은 아주 조그마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먼 데 찾아가지 않더라도, 흙이 있고 풀이 있는 데에서 ‘놀이동무와 같은’ 벌레들을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이웃인 벌레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 목숨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몫을 맡는지 곰곰이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모든 일은 우리 집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일도 슬픈 일도 우리 집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지구별을 살리고 우리 나라 살리는 첫 걸음도 바로 우리 집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곁을 돌아봐요. 어떤 벌레가 있나요? 어떤 새가 사나요? 개구리나 매미가 있나요? 나무는 얼마나 있고, 어떤 나무가 어떻게 살아가나요? 어떤 풀이 자라고, 어떤 꽃이 풀밭에서 피고 지나요?


  작은 벌레 알아보는 눈썰미라면, 작은 이웃 사랑할 수 있습니다. 힘이 여리거나 살림이 어려운 작은 이웃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넉넉한 품은, 바로 우리 곁 작은 벌레 한 마리를 살가이 마주하며 곱게 아끼는 몸짓에서 비롯합니다.


  그런데, 이 번역그림책에서 번역말이 아쉽습니다. 일본사람은 글을 쓸 적에 으레 ‘の’를 붙입니다. 이 그림책은 “집 근처의 벌레들”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집 둘레 벌레들”이나 “집과 가까운 벌레들”이나 “집 가까이 사는 벌레들”처럼 옮겨야 알맞습니다. 우리 집 아이하고 이 그림책을 읽기 앞서, 나는 다음처럼 몇 가지 글월을 손질합니다. 우리 둘레 작은 이웃들을 사랑스레 바라보고 싶은 마음처럼, 아이들과 주고받을 말과 글을 아름답게 돌보고 싶습니다.


화분에 은빛 줄이 붙어 있습니다 → 화분에 은빛 줄이 있습니다
은빛 선을 발견했습니다 → 은빛 줄을 보았습니다
달팽이가 붙어서 기어다닌 자국인 것입니다 → 달팽이가 붙어서 기어다닌 자국입니다
달팽이는 육지에 살고 있지만 → 달팽이는 뭍에 살지만
습기 찬 곳을 → 축축한 곳을
작은 껍데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 작은 껍데기가 있습니다
껍데기가 붙어 있는 부분에 있습니다 → 껍데기가 붙은 곳에 있습니다
자기 집을 알고 있는 걸까요 → 제 집을 알까요
뿔의 역할도 → 뿔이 하는 일도
알이 10개에서 60개 정도 들어 있는데 → 알이 10개에서 60개쯤 있는데
머리가 있는 앞부분에서 → 머리가 있는 앞쪽에서
지렁이의 먹이는 가랑잎입니다 → 지렁이 먹이는 가랑잎입니다
돌이나 낙엽을 살짝 치우면 → 돌이나 가랑잎을 살짝 치우면
지네의 몸에는 많은 마디가 있어 → 지네 몸에는 마디가 많이 있어
이렇게 해서 알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 이렇게 해서 알을 지킵니다
봄이 오는 것을 기다립니다 → 봄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짙은 녹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벌레 → 짙푸르게 빛나는 아름다운 벌레
목에는 광택이 있어 빛나 보입니다 → 목은 반들반들 빛나 보입니다


  ‘줄’이라고 잘 쓰다가 왜 ‘선(線)’이라고 적을까요. ‘가랑잎’이라 잘 쓰다가 왜 ‘낙엽(落葉)’이라고 적을까요. 쉽고 고운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즐겁고 쉽게 읽으면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마음 북돋울 수 있도록 글을 쓰면 됩니다. 한국말다운 말투를 찾고, 한국말다운 낱말을 알뜰살뜰 여미는 책이 싱그러이 태어나기를 빕니다. 4346.10.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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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0] 납작산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에 있는 이오덕학교로 찾아가는 길에, 금왕읍 옆을 지납니다. 벌판이던 곳에 아파트를 높직하게 올리느라 부산합니다. 이 시골 읍내에 이렇게 높다란 아파트를 지으면 누가 이곳에서 살까 궁금하지만, 이곳으로 와서 살려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높직하고 커다랗게 많이 짓겠지요. 차를 얻어타고 아파트 공사터 옆을 지나가는데, 저를 태워 준 분이 “저기가 예전에는 납작산이래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멧자락이 하나 있었는데 높지 않고 납작하게 있대서 ‘납작산’이라 했다고 합니다. 이제 아파트숲으로 바뀔 저곳이 지난날에는 나즈막한 멧자락이었고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푸른 모습이었다고 떠올릴 만한 시골사람이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지도책에도 안 나오는 이름이니 가뭇없이 사라지겠지요. 땅이름 숲이름 사라진 곳이 여기뿐이겠습니까. 시골사람이 오랜 겨레말로 수수하게 붙인 땅이름 숲이름 마을이름 모두 신라와 고려와 조선과 일제강점기 거쳐 한자말 이름으로 바뀌었어요. 오늘날에는 영어 이름으로 바뀌지요. 4346.10.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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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그림처럼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65
조정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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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하품
[시를 말하는 시 38] 조정, 《이발소 그림처럼

 


- 책이름 : 이발소 그림처럼
- 글 : 조정
-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07.1.30.)

 


  아이들이 하품을 합니다. 그렇지만 하품만 할 뿐 잠들려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곁에서 아버지가 하품을 합니다. 나 또한 아이들마냥 좀처럼 잠들려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무언가 하고 싶으니 쉬 잠들지 않습니다. 나도 아이들도 오늘만 날이 아닌데 몸을 느긋하게 쉬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서로 졸립고 고단해 드디어 아버지 먼저 자리에 눕습니다.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얘들아, 아버지 먼저 잘 테니 너희는 더 놀다가 너희끼리 불 끄고 자렴. 이제 아이들은 아버지 곁으로 쪼르르 달라붙습니다. 큰아이는 내 왼쪽에 붙고 작은아이는 내 오른쪽에 붙습니다. 아이들은 이불을 뒤집어쓰며 히죽히죽 웃습니다. 졸린 얼굴로 뭘 그리 웃나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래 이 아이들은 혼자 자기 심심해서 아버지인 내가 얼른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렸습니다. 함께 자리에 누워 내가 자장노래 불러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가장 곱게 뽑는 목소리로 가장 보드라운 노랫가락 들려주기를 기다렸습니다.


.. 고랑을 긁어 마늘씨를 놓았다 / 화살촉이 여럿 나왔다 / 무 배추 뿌리에 녹슨 동전이 딸려 나왔다 / 너를 먹고 자란 김치 얹어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며 / 물에 잠겨 / 셋이거나 넷으로 보이는 손을 들여다보았다 /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귀가 우는 소린 줄 알았다 ..  (옹관)


  졸린 아이들을 곁에 누인 뒤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자장노래라기보다 그냥 노래입니다. 놀이하며 부르는 노래요, 밥을 짓다가 마실을 다니다가 자전거를 타다가 어느 때라도 부르는 노래입니다.


  즐거이 부르는 노래이기에 잠자리에서도 부릅니다. 즐겁게 춤추고 뛰놀며 부르는 노래이기에 잠자리에서도 기운차게 부릅니다.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풀빛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 속에 들어가서 빨강이 되어요.” 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 부르는 노래를 늘 새삼스럽게 다시 부릅니다. 큰아이 나이가 여섯 살이니 여섯 해째 부르는 노래인데, 여섯 해째 부르면서도 언제나 새롭습니다.


  큰아이 먼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다가 조용합니다. 이윽고 작은아이도 누나 못지않게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노래 몇 마디 따라하더니 조용합니다.


  노래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며 몇 가락 더 부릅니다. 아이들은 벌써 잠들었지만 굳이 더 부릅니다. 잠든 아이들이 더 신나게 꿈나라에서 뛰놀기를 바라고, 나 스스로 내 마음에 고운 노래밥을 주고 싶습니다. 삶을 빛내는 노래요, 삶을 밝히는 노래입니다.


.. 오늘은 아이가 병중이고 / 내일은 밭에 마늘잎이 마르고 / 다음 날 역시 잠을 얻지 못하여 귀만 얇아진다 ..  (불면)


  노래를 부를 수 있기에 살아갑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살아갑니다. 노래와 함께 사랑을 꽃피우는 삶을 일굽니다. 노래란 무엇일까 아직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 짓는 삶이 노래로 되고 스스로 어깨동무하려는 이야기가 노래로 된다고 느낍니다.


  누구나 짓는 노래입니다. 누구나 짓는 삶이니까요. 누구나 즐기는 노래입니다. 누구나 나누는 사랑이니까요.


  봄 지나고 여름 지나 가을이지만, “마알가니 흐르는 시냇물에, 발 벗고 찰방찰방 들어가 놀자, 조약돌 흰모래 발을 간질고, 잔등은 햇볕에 따스도 하다. 송사리 좇는 마알간 물에 꽃이파리 하나둘 떠내려온다. 어디서 복사꽃 피었나 보다.” 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 빨래터 시원한 물이 차갑다고 느끼는 늦가을 언저리인데, 아직도 나는 이런 봄노래를 부릅니다. 봄노래를 부르며 봄을 떠올립니다. 봄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봄내음 흐르도록 합니다.


  늘 그렇지요. 누가 나를 즐겁게 해 주어야 즐겁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살아야 즐겁습니다. 누가 나를 사랑해 주어야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랑스럽게 살면 사랑스럽습니다. 누가 나한테 돈을 주어야 넉넉한 살림이지 않습니다. 있는 만큼 스스로 누리는 사람이 넉넉한 살림 빚습니다.


.. 그 골목에서 / 늙은 개가 내 차의 브레이크를 밟은 건 아니었다 / 번호 붙은 유리문들이 / 홍등 아래 딸 하나씩 담고 사열 중이었다 ..  (붉은 골목)


  이웃 할매 한 분 이른새벽부터 나락을 뒤집습니다. 이른새벽 바람으로 나락이 잘 마르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웃 할매 한 분 이른새벽에 함께 들에 나왔다가 “난 이슬 땜에 못 하것소.” 하고 말씀하며 댁으로 들어갑니다. 동이 틀락 말락 새벽녘에는 아직 나락 뒤집기 이르다 여겨, 밥 한 술 자시고 다시 나오실 듯합니다.


  새벽바람으로 뒤집히는 나락은 새벽내음 머금으며 마릅니다. 해가 좀 솟은 뒤 뒤집히는 나락은 아침내음 마시며 마릅니다. 어느 나락인들 안 익겠어요. 어느 나락인들 안 마르겠어요.


  시골마을에는 나락빛 곱고 나락내음 고소합니다. 시골마을에는 빈 들에 흙내음 감돌고, 마늘 새로 심은 논에는 어느새 마늘싹 오릅니다. 푸릇푸릇 올라오는 마늘싹 바라보다가 그리 멀잖은 지난날 헤아립니다. 예전에는 마늘논 아닌 보리 심은 논이었을 테지요. 고구마 먹으며 겨울 나던 시골사람들 겨울에 보리를 밟으며 어서어서 자라 이듬해 봄에 우리 배 불려 다오 하고 노래를 했겠지요.


  참말 이제 어디를 가도 보리밭 보기는 어렵고 마늘밭이랑 마늘논 넘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늘을 많이 심고 거두어도 이 나라에서 심어 거두는 마늘로는 모자라 이웃나라에서 마늘을 사들입니다. 쌀도 이웃나라에서 사들이고, 보리도 밀도 서숙도 콩도 모주 이웃나라에서 사들입니다. 물고기도 사들이고 포도도 사들입니다. 배나 능금은 어떠할까요?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어떠한가요?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많이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하루하루 어떤 살림 꾸리는 사람일까요?


  손에 흙 한 줌 안 묻혀도 온갖 곡식 사다 먹을 수 있는 삶은 즐거운가요. 흙내음과 흙빛을 모르고도 유기농이나 자연농 곡식하고 푸성귀하고 열매를 사다 먹을 수 있는 삶은 아름다운가요. 바람을 모르고 햇볕을 모르면서도 밥을 먹을 만한가요. 빗물을 모르고 풀빛을 모르면서도 아이들과 밥 맛나게 먹을 만한가요.


.. 할머니는 내 눈 속에 누우시고 / 한 말씀을 아는 데 / 나는 평생이 모자라다 ..  (사해를 떠나며)


  조정 님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실천문학사,2007)을 읽습니다. 이발소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잘 안 떠오릅니다. 나는 이발소라는 데에 가 본 지 언제인지조차 안 떠오릅니다. 이발소 아닌 미장원에도 가 본 일이 아주 아스라합니다. 1993년을 끝으로 1994년 2월에 고등학교를 마친 뒤부터 머리카락을 깎은 일이 서너 번쯤입니다. 군대 가기 앞서 한 번 깎고, 군대 갔다 와서 두어 번쯤 조금 잘랐는데, 집에서 가위로 싹둑 자르다가 이마저도 번거롭다 싶어 그대로 둡니다. 고무줄로 질끈 동여맨 채 살아갑니다. 턱과 코에 나는 수염도 그대로 둡니다. 거울 한 번 안 들여다보고 살아가니, 수염이 나는지 안 나는지 모릅니다. 나로서는 내 머리카락이나 수염에 마음을 기울일 겨를이 없다 할 만한데, 머리카락이나 수염에 마음을 기울이기보다는 내가 날마다 맞이하는 하루에 마음을 기울일 뿐입니다. 하루하루 누리면서 삶을 짓고픈 마음일 뿐입니다. 머리카락 매만지거나 이발소 들락거린대서 삶을 못 짓지는 않아요. 다만, 머리카락 자르는 데에 들일 10분이 아깝고, 이발소 오가는 한 시간이 아쉽습니다. 이동안 아이들과 노래하며 춤추면 참으로 즐겁습니다. 이동안 아이들 자전거에 태워 바닷가로 마실을 다니면 더없이 재미납니다.


.. 신문을 집어다 깔고 앉는다 / 일없이 외유 중인 국회의원들을 / 뭉기적뭉기적 이해한다 / 일 없는 하루를 견디는 일은 어렵다 ..  (맨손체조)


  이발소에서 멀뚱멀뚱 얌전히 앉아 이발소 그림 쳐다보며 꼼짝 않고 있어야 하는 일이란 얼마나 하품이 날까요. 왜 우리들은 머리를 예쁘게 깎아야 할까요. 왜 우리들은 다소곳하게, 깔끔하게, 남들 보기 좋게 머리를 손질해야 할까요.


  우리들은 서로를 눈으로 겉모습을 바라보며 사귀나요. 우리들은 서로를 사랑으로 마음을 살피며 만나나요. 두 눈이 달렸으니 얼굴이나 몸매를 바라볼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한테는 사랑과 꿈이 있는 만큼, 나로서는 사랑과 꿈으로 내 이웃과 동무를 마주하고 싶어요. 내 사랑을 읽고 내 이웃 사랑을 읽고 싶습니다. 내 꿈을 말하고 내 동무 꿈을 듣고 싶습니다.


  신문에 나오는 정치나 경제나 사회 소식을 듣거나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방송에 흐르는 연예인 뒷이야기나 스포츠 소식은 듣거나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요. 나는 내 이웃과 동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 정이 식은 지 오래된 나에게 / 밥은 꼭 한 공기를 더 떠준다 ..  (불경기)


  기지개를 켭니다. 새벽 네 시를 지나니 눈이 또렷또렷 맑습니다. 새벽 다섯 시를 지나니 팔다리 뻑적지근함이 사라집니다. 저 먼 멧기슭 따라 발그스름한 기운 어립니다. 발그스름한 기운은 차츰 노르스름하게 바뀔 테고, 이 기운은 곧 하얗게 달라질 테지요.


  아침저녁으로 뜨고 지는 해가 곱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싱그럽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오는 멧새가 사랑스럽습니다.


  삶이 흘러 이야기 됩니다. 이야기 어우러져 사랑이 됩니다. 사랑이 감돌며 글로 거듭나고 노래로 다시 태어납니다. 글과 노래는 어느새 다시 삶 밝히는 밑바탕 됩니다.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는 하루 오늘 하루도 새롭게 맞이합니다. 4346.10.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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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빛마실


 

  책빛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 할 적에는 늘 책빛을 읽는다. 책에 서린 빛을 읽는다. 책에 감도는 빛을 읽는다. 책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읽는다.


  책빛을 읽는 마실을 한다. 책빛마실을 한다. 새책방을 다닐 적에도 도서관을 드나들 적에도 헌책방으로 찾아갈 적에도, 언제나 책빛마실이다.


  새롭게 돋는 빛을 누린다. 오랜 옛날부터 흐르던 빛을 바라본다. 앞으로 곱게 이어갈 빛을 헤아린다. 책에 서리는 빛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살아오며 일군 빛이다. 책에 감도는 빛은 사람들이 어깨동무하며 사랑하던 빛이다. 책에서 우러나오는 빛은 사람들이 알뜰살뜰 옹기종기 꾸린 살가운 이야기에서 샘솟는 빛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빛을 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빛을 그린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빛을 찍는다. 빛을 노래하고, 빛으로 춤춘다. 빛으로 이야기하며, 빛으로 밥을 차린다. 온삶 가득 빛살이 흐드러진다.


  책이란 무엇인가. 종이책이면 책인가. 전자책이 새로운 책으로 되는가. 삶이 없이 책이 태어날 수 있는가. 사랑이 없이 책을 쓰거나 읽을 수 있는가. 아름다운 삶도 삶이여 슬픈 삶도 삶이며 거짓으로 꾸민 삶도 삶이다. 모두 삶이며, 어느 이야기라 하더라도 책이 된다. 그러면, 전쟁도 사랑이 되는가. 미움과 주먹다짐도 사랑이 되는가. 아니지, 전쟁이나 미움이나 주먹다짐은 사랑이 아니지. 그런데 전쟁과 미움과 주먹다짐으로 얼룩진 삶을 책으로 쓰기도 하잖은가. 이런 책에서 우리는 어떤 사랑을 느껴 어떤 사랑을 살찌울 기운을 얻을까.


  책을 펼쳐 삶을 읽는다. 아이들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책을 읽는다. 책을 쥐며 사랑을 읽는다. 맑은 물을 길어 정갈한 쌀을 씻고 불려 밥을 짓는 동안 책을 읽는다. 책을 선물하며 삶을 읽는다. 나무를 살며시 안고 풀밭을 맨발로 뛰놀며 책을 읽는다.


  가을바람 푸르게 분다. 산들산들 살랑살랑 나뭇잎 스치며 푸른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숲에서 태어났고, 온누리 고루 어루만지다가 새삼스레 숲으로 돌아가 조용히 잠든다. 나무야 나무야 푸르디푸른 나무야, 네 속살이 온통 책으로 태어나 우리한테 풀빛을 노래하는구나. 4346.10.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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