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여고에 우리 말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먼 마실 다녀왔습니다.

이곳 아이들한테 들려주려고 써 두었던 글을

이제 살짝 올려놓습니다.

 

..

 

시골 고등학교 푸름이와 어른
― 서천 서천여고 예쁜 벗들한테

 


  저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옆지기와 두 아이하고 살아갑니다. 올해 제 나이 서른아홉이니, 옛날 같으면 두 아이 아닌 예닐곱 아이쯤 낳았을 테고, 옛날이라면 첫째나 둘째 아이가 열일곱이나 열여덟 살쯤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제 곁에는 여섯 살 세 살 두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들 나이를 생각하면 제 나이도 젊구나 싶지만, 옛날 사람들을 떠올리면 제 나이도 꽤 늙수그레한 축에 들겠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옛날이라면 제가 낳았을 첫째 아이나 둘째 아이도 시집이나 장가를 들어 아이를 낳을 만한 나이가 되거든요.


  시골에서 지내며 시골 이웃을 늘 바라봅니다. 시골에서 지내니 시골 이웃을 만날 테지요. 우리 식구한테 시골 이웃은 거의 모두 할매나 할배입니다. 젊은 이웃은 찾아보기 아주 어렵고, 푸름이나 어린이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면소재지에 가면, 면소재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곧잘 만납니다. 읍내에 가면, 읍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드문드문 마주쳐요. 그렇지만, 스치거나 마주칠 뿐 더는 없습니다. 시골 면내나 읍내 아이들은 면내나 읍내에서 누릴 만한 ‘문화생활’이 없다고 여겨 피시방에 가거나 학교 기숙가로 돌아가거나 집에서 인터넷게임을 합니다.


  전남 고흥은 바닷가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입니다. 아주 높은 멧자락은 없지만, 알맞게 오르내릴 만한 멧자락과 앙증맞은 숲이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흥 푸름이나 어린이 가운데 바다와 멧자락과 숲과 골짜기를 즐거이 누리는 일은 매우 드물어요. 봄소풍이나 가을소풍 때에 한 번 오면 올 뿐, 스스로 나들이를 다니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여러 시간 걸려 고흥이나 장흥이나 강진이나 해남 같은 데로 나들이를 옵니다. 물과 바람이 맑고 숲과 바다가 좋다고 하면서 먼길을 자가용 싱싱 달려 찾아와요. 이들 도시 관광객 가운데에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이 있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분이 있어요.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어릴 적부터 시골숲이나 시골바다를 거의 못 누린 채 입시공부만 하다가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살면서, 하도 답답해 시골로 여행을 떠나요. 도시에서 태어난 분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이 좁거나 갑갑하다 여겨 도시로 가려고 해요.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매캐한 바람과 안 깨끗한 물에서 벗어나려고 휴가를 내고 목돈을 모아서 시골로 여행을 옵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찾아 어떻게 살아갈 때에 스스로 가장 즐거우면서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 될까 궁금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물을 만지는 삶은 참말 고달프거나 어렵거나 힘겹다고만 할 만한지 궁금해요.


  전남 고흥에서 지내는 푸름이들을 보면, 고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기숙사에서 내처 지냅니다. 주말에도 집에 안 가기 일쑤입니다. 읍내에서 퍽 깊은 두멧자락에 깃든 집으로 오가는 시간마저 아깝다고 여기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 세 해를 보내는 동안 이녁 어버이들 봄일이나 여름일이나 가을일 거들 틈이 없습니다. 아마, 이녁 어버이들부터 아이들더러 대입시험 공부나 하라 시킬 뿐, 모내기나 풀베기나 가을걷이 거들라 시키지 않겠지요.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에 철썩 붙어, 시골에서 몸 쓰는 고된 일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겠지요. 시골 읍내나 면내 푸름이들이 꿈꾸는 ‘장래 희망’도 100이면 100 모두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꿈을 꾸는 아이가 없어요. 농약과 비료에서 벗어나, 깨끗하며 아름답게 흙을 살찌우겠노라 꿈을 꾸는 아이가 없습니다.


  시골사람은 모두 농사꾼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시골사람도 얼마든지 도시로 가서 일거리 찾아서 지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골사람도 도시로 가든 말든, 시골이란 어떤 곳인지 시골마을 어버이와 교사인 어른들이 슬기롭게 가르치고 보여주면서, ‘도시에서 할 만한 일거리’를 찾도록 이끌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가을에 가을내음 마시고, 봄에 봄꽃 누리는, 철과 날을 맞아들이며,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풀과 나무를 꾸밈없이 사랑할 수 있는 넋을 건사할 때에, 몸과 마음이 나란히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리라 생각합니다. 서천여고 푸름이들이 이 학교를 다니는 세 해 동안, 충남 서천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삶터를 온몸 가득 온마음 두루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 기쁘게 누리기를 바랍니다. 4346.9.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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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의 아이》 다섯째 권을 앞에 놓고

 


  여러 해에 걸쳐 찬찬히 이어진 만화 이야기 하나 다섯째 권으로 마무리된다. 바닷마을에서 아이들이 바닷내음과 바닷소리와 바닷노래를 누리면서 밝히는 바다빛을 들려주는데, 마지막 권에서는 어떤 내음과 소리와 노래를 조곤조곤 속삭일 수 있을까. 바다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바다에서 살아갈까. 바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바다 곁에서 지낼까. 바다하고는 동떨어진 채 말로만, 지식으로만, 학문으로만, 책으로만, 기사로만 마주하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을까. 바다와 한몸이 된 채, 바다와 한마음이 되는 빛을 어느 만큼 아끼거나 사랑할 수 있을까. 바다에는 ‘바다 아이들’ 있고, 들에는 ‘들 아이들’ 있다. 아스팔트길과 시멘트집에는 ‘아스팔트 아이들’과 ‘시멘트 아이들’이 있을까. 만화책 《해수의 아이》 다섯째 권을 앞에 놓고 이제부터 읽으려 한다. 4346.10.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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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바람이 불어 배추잎 푸르고
바람이 지나가면서 모과알 굵고
바람이 스쳐 씀바귀 봄가을에 자라
바람이 살살
후박잎 간질이며 어느새 가을
살그마니 겨울
시나브로 봄
동백꽃 흐드러지면서
멧새 노랫소리에
개구리 풀벌레 새로 깨어나
까르르 웃고 떠드는 고운 햇볕.

 


4346.10.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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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11-01 20:38   좋아요 0 | URL
요즘 모과들을 보면서 한두개 사다가 겨울에 차를 담궈먹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동생이 모과는 노랗게 익어야 맛있다며 지금 파는것들을 보니 다들 연초록빛을 띄고 있더라고요. 아직 덜 익은것들을 따서 후숙으로 익혀가는것들이 늘어가는것 같습니다.

함께살기님 시를 읽다가 '모과'가 나오길래 반가웠어요.^^

파란놀 2013-11-02 02:36   좋아요 0 | URL
가게에서 팔자면 미리 따서 창고에 쌓아서 팔아야 하니 그렇지요.
모과나무에 울퉁불퉁 열린 모과를 보면
참 재미있어요.
잎사귀 다 떨어져도 커다란 열매는 대롱대롱 달려요.

모과는 차로 담가 먹어도 좋고,
그저 곁에 두고 냄새만 누려도 좋아요~
 

걷는 길이 가장 바르다

 


  두 다리로 걷는 길이 가장 바르다. 걷는 길이 가장 빠르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함께 걷는 사람들은 서로 같은 곳 바라볼 수 있다. 도란도란 나즈막히 속삭이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걷는 길에 아무것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걷는 동안 지구별을 더럽히거나 망가뜨리지 않는다. 걷는 길에서 글·그림·노래·춤이 새로 태어난다. 걷는 길에서 일하고 놀며 이야기 샘솟는다. 4346.10.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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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는 마음

 


  버스를 타면, 내내 덜덜 떨리고 바퀴와 엔진 소리 달달달 들어야 합니다. 귀가 멍하고 골이 띵합니다. 버스가 빨리 달리는 만큼 숲내음과 숲노래와 숲빛 모두 잊거나 잃어야 합니다. 시골집 떠나 면소재지나 읍내나 시내로 볼일 보러 나오면, 버스나 기차에서 내려 걷더라도, 골목까지 파고들어 싱싱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넘칩니다. 눈과 귀와 골이 모두 아파요.


  그런데 나는 이런 데에서 스물여덟 해를 보냈습니다. 도시를 벗어나 넉 해 반을 살았으나 다시 도시로 돌아와 세 해 반을 살았어요. 이러구러 스물아홉 해째 되던 어느 날 비로소 자동차 없는 시골마을 작은 집에서 풀노래와 풀바람과 풀내음과 풀빛을 만났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아침에도 자동차 지나가거나 흐르는 소리하고 동떨어진 멧골집에서 새로운 빛과 소리와 냄새와 무늬를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목숨들인가 돌아봅니다. 우리 넋 살찌우고, 우리 얼 북돋우는 길을 저마다 어떻게 걸어가는가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는 우리 어른한테서 무엇을 보거나 물려받는가요. 앞으로 우리 어른과 아이는 어떤 꿈과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은가요.


  버스에서 내릴 때로구나 생각합니다. 버스는 그만 달리게 할 때로구나 싶습니다. 사랑할 삶을 사랑하고, 꿈꿀 길을 꿈꿀 때로구나 생각합니다. 어깨동무할 이웃을 사귀고, 손을 맞잡으며 삶 함께 일굴 옆지기를 아껴야 할 때로구나 싶습니다. 4346.10.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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