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ngopress.com/PhotoNews.aspx?idx=10318

 

<시민사회신문>에 쓰는 "숲사람 이야기" 여섯째 글입니다. 지난 2월에 신문이 나오고 올 11월에 새 신문이 나오니, 자그마치 아홉 달만이로군요. 아홉 달만에 이 글을 드디어 올릴 수 있네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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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천 해를 아우른다고 하는 한겨레 발자국에서 ‘인천’이 드러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곁에 있는 ‘서울’이 언제나 앞에 나타나는 한편,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는 말처럼, 서울과 가까운 곳에 있는 도시나 시골은 서울을 떠받치는 모습이 됩니다. 오백 해에 걸친 ‘씨붙이 임금님’들이 물러난 자리에 제국주의 권력자가 총칼을 앞세워 들어올 무렵, 인천은 뜻밖에 근·현대 역사 한켠에 살짝 얼굴을 비춥니다. 기차, 전기, 전화, 온갖 운동경기, 종교, 상수도 같은 것들을 서울에 들이기 앞서 인천에서 실험하곤 했어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는 몰려드는 사람 많아 끝없이 옛집 허물고 논밭 밀면서 새 집과 건물을 짓습니다. 이와 달리, 서울 곁 인천은 서울로 일하러 오가는 사람들 잠자리 노릇을 하며 서울이나 부산 같은 커다란 재개발은 그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영종섬과 용유섬을 메워 소금밭과 갯벌 없애 공항을 짓기도 하고, 연수동과 송도에 있던 논밭이랑 숲을 깎아 아파트를 때려짓기도 하지만, 인천에서 오래된 도심인 중구와 동구와 남구는 재개발 바람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이었어요. 서울로 물건 올려보내는 공장 많고, 서울로 바로 잇는 고속도로와 기찻길 있으며, ‘지옥철’이라는 전철 이름은 인천서 서울로 돈벌러 오가는 사람들한테 붙습니다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린이와 젊은이 모두 나가 덩그러니 고요한 인천 옛도심은, 개발업자가 바라보기에 애써 허물고 뚝딱거려 보아야 돈푼 안 나올 곳처럼 보였겠다 싶어요. 그런데, 이런 빛깔 때문에 인천 옛도심은 개화기 무렵, 해방과 한국전쟁 언저리, 1950∼60년대 모습에다가 1970∼80년대 모습까지 골고루 보여주는 ‘근·현대 생활문화 박물관’이 됐어요. 할매와 할배 고향은 다른 데라지만, 인천에서 3대 4대를 살며 새 토박이가 됩니다.

 

 

 

 

 

 

 


 숲사람 이야기 6 - 작은 사람들 작은 사랑
 ― 배다리와 골목과 헌책방거리

 


  골목사람


  인천 옛도심 골목동네는 아주 넓습니다. 높직한 건물 따로 없이 고만고만한 집들 촘촘히 이어집니다. 언덕받이라 할 만한 데에는 으레 예배당 뾰족탑 높습니다. 답동 천주교성당이든 내리 감리교회이든 내동 성공회성당이든, 이런 갈래 저런 쪽 서양종교 예배당이 곳곳에 있어요. 개화기 무렵 서양사람들은 꼭대기에서 ‘한겨레 서민’을 내려다보는 곳에 큰집 지으며 콧대를 높였어요. 아마, 이런 큰집을 놓고 권력이라 일컫겠지요. ‘서민’이라 하는 사람들은 큰집 안 짓거든요. 수수한 사람들은 수수한 집을 지어 수수한 살림 꾸립니다. 골목길이 좁다 하지만, 자동차 지나가기에 좁을 뿐, 사람과 자전거 지나가기에는 알맞습니다. 골목길 거닐다 보면, 햇살이 아침 낮 저녁에 따라 집집마다 골고루 내리쬐는 결을 느낄 수 있어요. 참 촘촘히 붙어 지은 골목집이지만, 서로서로 햇살조각 조금씩 나누어 해바라기 누릴 수 있도록 했어요. 골목집을 가만히 살피면, 땅을 파고 들어가는 집이 없어요. 아무리 작은 골목집이라 하더라도 하루에 한나절 햇볕 골고루 들어옵니다. 이와 달리, 골목집 허물고 빌라나 연립주택 새로 지으면 으레 땅밑집을 만들어 햇살조각 못 들어오는 데가 생겨요. 빌라와 빌라가 서로 햇볕을 막아, 한낮에도 전깃불 켜야 하는 데까지 있어요.


  골목동네에서 살아가기에 골목사람입니다. 이제 인천에도 아파트 무척 많으니, 골목사람보다 아파트사람 더 많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옛도심을 찬찬히 살피면, 옛도심에는 아파트보다 골목집이 훨씬 많고, 아파트사람보다 골목사람이 더 많아요.


  골목사람은 골목길을 거닐며 오갑니다. 골목사람은 골목길 한쪽에 꽃그릇을 두어 골목꽃을 돌봅니다. 어린이와 젊은이 모두 나간 이른아침부터 골목길을 쓸며 치우는 골목할매와 골목할배는, 오래되어 쓰러진 옛 골목집 돌을 고르고 흙을 보듬어 골목밭 일굽니다. 온통 시멘트로 바르거나 아스팔트를 깐 골목길이지만, 골목할매와 골목할배는 조그마한 흙땅 마련해 나무 한 그루 심습니다. 어느 골목동네를 다니더라도, 감나무 배나무 대추나무 석류나무 탱자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수수꽃다리 포도나무 들이 씩씩하게 자라요.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튼튼하게 자라는 골목나무는, 골목동네에 푸른 숨결 나누어 줍니다. 골목밭에서 자라는 골목푸성귀랑 앙증맞은 꽃그릇에서 크는 골목꽃은, 골목동네에 푸른 내음 베풀어 주어요.


  큰길에서는 골목을 느끼지 못합니다. 골안, 그러니까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골목을 느낍니다. 큰길에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꼭 다섯 발걸음만 들어서 보셔요. 자동차 소리 잠듭니다. 매서운 겨울바람마저 가라앉습니다. 햇살조각 나누어 누리는 골목집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를 막고,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막습니다.


  건축학자가 설계한 집이 아닌 골목집입니다. 관청 토목부서에서 개발한 동네가 아닌 골목동네입니다. 수수한 사람들 스스로 수수하면서 투박한 손길 모두어 살가우며 따스한 빛으로 일군 곳이 골목동네입니다. 이 골목동네가 쉰 해 일흔 해 백 해 조용히 살아내며, 스스로 ‘근·현대 생활문화 박물관’이 되어요. 수십 억 들여 이런저런 기념관이나 박물관 짓지 않더라도, 골목동네 골목집이 고스란히 박물관이요 기념관 구실을 합니다.

 

 

 

 

 

 


  헌책방거리


  인천 배다리에는 헌책방거리가 있습니다. 헌책방거리는 창영동과 금곡동이 한길 따라 맞붙은 곳에 나란히 있었는데, 이제 창영동 쪽(철길 지나가는 쪽)에는 헌책방이 모두 문을 닫았고, 금곡동 쪽(철길 지나가는 건너편)에만 헌책방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동 축현초등학교 담벼락 따라 길장사를 했다 하고, 차츰 배다리 쪽으로 옮겨 창영교회 둘레까지 가게를 꾸리다가, 1970∼80년대를 거치며 오늘날 자리에 헌책방거리를 이루었다고 해요. 〈삼성서림〉 〈한미서점〉 〈대창서림〉 〈집현전〉은 예순 해 안팎에 이르는 기나긴 해에 걸쳐 사람들한테 책 하나 나누는 길을 걸었습니다. 〈아벨서점〉은 다른 헌책방 일꾼들한테는 처음에 ‘아가씨 일꾼’이었다 하는데, 어느덧 〈아벨서점〉도 헌책방거리를 마흔 해 남짓 지키는 ‘할머니 일꾼’이 되었습니다.


  헌책방이 거리를 이루어 잇닿기에 헌책방거리입니다. 퍽 아스라한 지난날을 떠올리면, 헌책방 갯수가 많이 줄었다 할 테지만, 헌책방은 꼭 한 군데만 있어도 그곳이 헌책방골목이 되고 헌책방거리가 됩니다. 전라북도 전주시를 보면 〈홍지서림〉과 〈민중서관〉(이곳은 문을 닫았어요)이 있는 데를 ‘홍지서림 골목’이나 ‘민중서관 골목’이라고 가리켜요. 지역사람한테 슬기로운 지역문화 북돋우거나 살찌우는 구실 맡는 책방 한 곳이 있어 지역사람은 그 책방 이름 하나 떠올리며 이름을 붙입니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다섯 군데 있는 헌책방 가운데 한 곳 두 곳 할매와 할배가 몸이 힘들어 가게를 쉬려 한다 하더라도, 꼭 한 군데 헌책방이 튼튼하게 책살림 꾸린다면, 이곳은 언제까지나 헌책방거리입니다. 전라북도 남원시를 보면, 용성초등학교 옆에 있는 헌책방 〈용성서점〉은 헌책방 아닌 문방구와 구멍가게로 거의 바뀌었습니다. 책은 구석으로 밀려났고, 그나마 먼지만 두껍게 먹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문방구와 구멍가게 구실로 바뀐 이곳에 헌책 하나 놓이면, 이곳은 앞으로도 헌책방이에요. 왜냐하면, 책 하나가 책방이요, 책방 하나가 마을이거든요. 책 하나에 서린 넋을 읽어 온누리를 헤아리고, 책방 하나에 깃든 책을 마주하며 못목숨 숨결을 짚어요.


  작은 출판사에서 작은 책 하나 내놓습니다. 수십만 수백만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천 사람 이천 사람 삼천 사람 즐거이 읽을 작은 책 하나 내놓습니다. 때로는 백 사람 이백 사람 삼백 사람 기쁘게 읽을 더 조그마한 책 하나 내놓습니다.


  백만 사람이 읽어 주어야 ‘책’이 되지 않습니다. 십만 단골 드나들어야 ‘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밭 되어 스스로 아름다운 책씨앗 심을 줄 아는 책손 한 사람 두 사람 모여 책밭 일구어요. 책밭 일구는 책손이랑, 책밭 보살피는 책방지기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책마을 빚습니다. 으리으리한 건물 우줄우줄 올려야 책도시나 문화도시가 되지 않습니다. 오래된 골목집 한쪽에 마련하는 책방이 하나둘 모여 책도시 되고 책골목 되며 책문화 이루어져요.


  배다리 헌책방거리 어귀를 보면 〈나비날다〉라 하는 책집 하나 있습니다. 외국말로 ‘북카페’라 할 수도 있는 책쉼터인데, 〈나비날다〉 1층은 책집이요, 2층은 뜨개집이기도 하고, 찻집이기도 하며, 유기농 물건 다루는 나눔집이기도 합니다. 〈나비날다〉 1층 안쪽은 길손집이기도 합니다. 길손집이란 요즘 떠도는 말로 ‘게스트하우스’입니다.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복판에는 〈시 다락방(배다리 작은 책, 시가 있는 길)〉이 있습니다. 2007년 11월부터 다달이 ‘시 낭송회’를 여는 아기자기한 전시관이자 만남터인 다락방이지요. 시청이나 구청에서는 이처럼 고즈넉하고 어여쁜 문화쉼터를 아직 마련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돈이 없다고만 말합니다. 그런데, 그야말로 ‘돈이 없다’ 할 헌책방 일꾼 한 사람이 가게를 장만하고 나무일을 하면서 책꽂이와 나무계단과 전시대 모두 짜고 맞추어 〈시 다락방〉을 열었어요. 참말, 책마을이란 돈으로 짓지 못합니다. 책마을도 책집도 책숲도, 따스한 손길과 넉넉한 마음길과 살가운 사랑길 어우러지면서 천천히 일굽니다.


  〈시 다락방〉 곁에는 〈배다리 사진관〉이 자리합니다. 혜광학교 교사이면서 사진작가인 이상봉 님이 사진잔치와 사진강의를 꾸준히 열어요.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창영초등학교 쪽으로 가면 〈스페이스 빔〉이 미술문화 북돋우는 잔치판을 꾀하고, 조금 더 걸어가면 〈개코막걸리〉 지나 〈마을사진관 다행〉이 있어, 마을사람 사진관이자 이야기쉼터 노릇을 합니다. 〈마을사진관 다행〉 바로 옆에는 〈한점 갤러리〉가 있어요. 이름 그대로 ‘한 점’, 한 뼘, 한 칸짜리 앙증맞은 전시관입니다. 이 모두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조곤조곤 빛냅니다. 작은 사람들 작은 손길 모여 배다리 책밭·사랑밭·삶밭 보듬습니다.

 

 


  배다리와 산업도로


  인천 배다리라는 곳에는 여느 사람들 골목집과 헌책방거리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이곳에 지역 문화일꾼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인천시에서 배다리 골목동네 한복판에 너비 50∼70미터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놓고 커다란 고가도로까지 놓으려 하는 막개발을 동네사람 모르게 밀어붙이려 하던 2006년 끝무렵과 2007년 첫무렵부터 비로소 지역 문화일꾼이 차츰 모였어요. 인천시와 주택공사는 송림1동과 송현1동이 맞붙는 수도국산 달동네 골목집을 와르르 밀어 아파트숲을 짓고는 동네사람 모르게 땅굴을 팠지요. 높은 쇠울타리로 가렸으니 드러나지 않았는데, 지자체와 중앙정부와 개발업자는 골목동네 밀어 없애면서 ‘달동네 박물관’이라는 시설을 하나 지었고, 이 밑에 배다리 삶터를 삽차로 깡그리 밀어붙여 쇼핑센터와 새 아파트숲을 올리려 했어요. 관청에서는 지도만 들여다보고 사람은 만나지 않았어요. 그러나, 사람은 땅을 딛고 살아야 해요. 땅을 딛고 하늘을 마시며 이웃과 이웃이 어깨동무하면서 마을을 가꾸어야 비로소 보금자리가 태어납니다.


  인천 배다리는 창영동, 금곡동, 송림1동, 경동, 유동, 송현1동이 크고작게 맞닿으며 이루어진 골목동네를 가리킵니다. 송림1동은 조금씩 뻗으며 송현2동화 화평동과 화수1동으로 이어지고, 창영동과 금곡동도 조금씩 뻗으며 숭의3동과 도원동과 율목동으로 이어지면서, 송림2동이랑 송림3동과 닿습니다. 배다리 한쪽 경동과 유동은 율목동 넘어 신흥동2가하고 신흥동1가로 이어지고, 송현1동은 동인천 쪽으로 뻗으면서 인현동1가와 내동과 신포동까지 닿습니다.


  배다리라고 할 때에는 어느 작은 점 하나가 아닙니다. 지도로 보면 작은 동그라미 하나로 그릴 만하더라도, 작은 동그라미로 그려진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꾸려요. 작은 골목집이 서로 어깨를 기대요. 작은 골목사람이 조곤조곤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골목아이가 골목놀이를 하고, 골목어른이 골목걸상이나 골목평상에 앉아 막걸리 한 잔에 이야기잔치 이룹니다.


  사람들은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아야 문화를 누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마을 이웃하고 도란도란 주고받는 이야기 한 자락으로 문화를 누립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어진 옛이야기란 모두 ‘입 문학’, 곧 구비문학이에요. 땅을 밟고 흙을 만지던 사람들이 몸으로 부대끼고 마음으로 아끼면서 빚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입 문학’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골목동네 골목사람이 알콩달콩 복닥이며 빚는 이야기는 ‘오늘이야기’입니다. ‘오늘이야기’는 새 아이들 태어나 새 보금자리 일구며 자라는 동안 시나브로 ‘옛이야기’가 되고, 이 옛이야기는 다시 새 아이들 태어나 입과 입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삶이야기’로 거듭납니다.


  책이란, 오늘이야기가 옛이야기 되고 다시 삶이야기로 거듭나는 길타래를 살며시 담는 이야기그릇입니다. 삶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고, 꿈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노래이기도 하며 춤이기도 합니다. 웃음이기도 하고 눈물이기도 하지요.


  책은, 작은 사람들 삶과 사랑과 꿈과 노래와 춤과 웃음과 눈물을 담아요. 책방은, 작은 사람들 이야기꾸러미 건사한 아름다운 책을 정갈히 모시는 쉼터입니다. 책방거리는, 아름다운 이야기꽃으로 즐거운 이야기잔치 누리는 만남터입니다. 그래서, 인천시와 주택공사와 개발업자가 한통속 되어 인천 배다리에 산업도로 밀어붙이려 할 적에, 골목사람과 책방사람과 지역 문화일꾼 모두 똘똘 뭉쳐 맞서 싸워 끝내 예쁜 삶자락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숲과 사람숲과 책숲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시 다락방〉을 마련하며 빙그레 웃는 〈아벨서점〉 책방지기 곽현숙 님은 “도시에서는 책방이 숲이에요.” 하고 말합니다. “책이란, 책마다 사람이 자연인 것을 알아 가는 하나의 길이란 말이야, 길.” 하고도 말합니다. 헌책 하나 만져 사람들한테 책내음 짙게 드리운 책방지기 말마디에는 사랑 한 자락 묻어납니다. 책방지기 사랑 한 자락은, 숲에서 아름드리로 자라던 나무들이 종이가 되고 책으로 다시 태어나 책방으로 들어오기까지 어떤 길에 섰느냐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시골에서는 무엇이 숲일까요. 한국에서는 어디가 숲일까요. 지구별에서는 어느 곳이 숲일까요. 우리 마음에는 어떤 숲이 있을까요. 우리들은 책 한 권 만나며 마음밭에 어떤 나무씨앗이나 풀씨나 꽃씨 한 톨 심는가요.


  책내음은 곧 나무내음이면서 숲내음입니다. 숲내음은 푸른내음이요 사랑내음입니다. 이 나라 골골샅샅 아파트숲만 솟지 말고, 고즈넉한 책숲과 사람숲 짙푸르게 빛나기를 빕니다. 4346.3.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숲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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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1-01 08:14   좋아요 0 | URL
지난 3월에 쓴 글을 11월에야 겨우 이렇게 공개해서 올릴 수 있으니 가슴 한켠 싸아합니다. 혼자서 눈물 찔끔 흘리면서 글을 띄웁니다. 이 글 실어 주는 작은 신문이 앞으로도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림 이을 수 있기를 빌어요. 이제 "숲사람 이야기" 일곱째 글을 비로소 쓸 수 있을 텐데, 일곱째 글은 언제쯤 공개를 하거나 신문에 실을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글을 써 놓았어도, 신문이 나와야 공개를 할 수 있고, 그러니까 책이 나오고 잡지가 나오고 신문이 나와야 글을 두루 나눌 수 있으니, 글쓰기도 글읽기도 모두 '기다리는 일'이 되는구나 싶어요...... 중얼중얼......

페크pek0501 2013-11-01 13:25   좋아요 0 | URL
계속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

파란놀 2013-11-01 13:39   좋아요 0 | URL
예쁜 사람들이 그곳에 있어
앞으로도 씩씩하게 뿌리내리며 널리 사랑받으리라 믿어요~
 

 

만화책 《불새》

 


  데즈카 오사무 님이 빚은 만화책 가운데 하나인 《불새》는 모두 열일곱 권이다. 이 가운데 열여섯 권이 한 갈래 흐름으로 잇닿는 이야기이고, 마지막 열일곱째 권은 뒷이야기(외전)이다. 이 만화책 《불새》를 놓고, 지난 2011년 8월 28일에 첫째 권 느낌글을 썼다. 오늘 2013년 11월 1일에 열여섯째 권 느낌글을 쓴다. 이리하여 《불새》 이야기 느낌글은 다 끝난다. 뒷이야기 느낌글을 붙이면 그야말로 ‘《불새》 읽기’를 훌훌 털 수 있다.


  열일곱 권짜리 만화책이란 하루아침에도 읽어낼 만하다. 그렇지만 굳이 두 해 남짓 걸쳐 차근차근 읽어낸다. 읽기로는 진작에 다 읽었으나 거듭 읽고 다시 새기면서 두 해 남짓 걸쳐 하나둘 느낌글로 갈무리한다. 어느 책이든 그러하지 않겠느냐만,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한 해를 가만히 누리면서 읽고 삭힐 때에 제대로 마음속으로 스민다고 느낀다. 책 한 권은 몇 시간이면 뚝딱 읽어치운다고 하겠지만, ‘읽어치우기’ 아닌 ‘읽기’가 되자면, 한 해 내내 마음속에 담아서 곱씹고 되씹어야지 싶다.


  삶읽기란 하루아침에 이루지 못한다. 동무와 이웃과 옆지기와 아이들과 누리는 삶은 하루아침에 읽지 못한다. 오늘과 모레가 다르고, 글피와 어제가 다르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다르다. 다 다른 때를 다 다른 빛으로 돌아본다. 《불새》 첫째 권부터 열여섯째 권에 이르는 사이, 어느덧 내 마음속에도 불새 하나 깃들면서 활활 타올라 사랑이 되었겠지.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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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16 - 완결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68

 


전쟁을 만든 사람
― 불새 16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02.9.25./4500원

 


  새벽별을 바라봅니다. 십일월로 접어든 다섯 시 반에 새벽별 초롱초롱 환합니다. 한 달 앞서만 하더라도 다섯 시 반은 날이 훤하게 샜고, 두 달 앞서만 하더라도 네 시 반 즈음이면 날이 훤하게 샜어요. 이제는 다섯 시 반에도 하늘빛 깜깜합니다. 앞으로 한 달 더 흐르면 여섯 시가 되어도 하늘빛이 깜깜하겠구나 싶습니다.


  새벽별 곁에 새벽달이 있습니다. 십일월 첫날 새벽달은 초승달입니다. 실웃음을 짓는 입술과도 같은 새벽달은 새벽별한테 둘러싸여 노랗게 빛납니다. 이 새벽이 저물고 먼동 천천히 트면서 날이 훤하면, 둥그렇고 하얗게 빛나는 해가 저 멧자락 위로 봉긋 솟겠지요.


  시골마을에는 해와 달과 별을 가리는 전깃줄이 없습니다. 마을 고샅 밝히는 등불 몇 있으나, 높다란 아파트나 건물이 없습니다. 해를 보고 싶으면 해를 봅니다. 달을 보고 싶으면 달을 봅니다. 하늘을 보고 싶으면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싶으면 별을 보아요.


  들을 살살 어루만지는 바람을 살갗으로 누립니다. 숲을 감돌며 부는 바람이 멧새 깃털을 간질이면서 숲노래 나누어 줍니다. 새들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 곁에서 이웃으로 지냅니다. 물질문명과 도시와 농약이 멧짐승 거의 모두 죽여 없앴지만, 깊은 시골마을 숲에는 크고작은 숲짐승 조금 남아 숲살이를 가늘게 잇습니다.


- “이봐, 왜 그래?” “이 염불 같은 교주의 말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아.” “곧 익숙해질 거야. 익숙해지면 신경 쓰지 않게 돼. 오히려 듣고 있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걸.” (6쪽)
- “자, 자, 뭣들 하는 거냐? 애들 싸움도 아니고. 한쪽은 특수훈련을 받은 여전사. 다른 한쪽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킬러잖아. 좀더 터프하게 해 보라구. 갈갈이 찢어 버려!” (12쪽)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역사 과목이 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교과서로 역사를 배웁니다. 교과서로 아이들이 받아드는 역사책을 펼치면,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온통 전쟁 이야기입니다. 누가 임금이 되어 땅을 얼마만큼 넓혔고, 어느 한 나라 곁에 또 누가 임금이 되어 땅을 얼마쯤 넓히려고 어떤 무기를 갖추어 치고받아 죽이고 죽는 싸움을 언제까지 벌였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문화는 모두 궁중 문화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 문화는 한 줄로조차 안 나옵니다. 가만히 살피면, 1500년대이든 1000년대이든 500년대이든, 임금 둘레에 있는 신하나 심부름꾼 숫자는 시골 흙지기 숫자하고 댈 수 없을 만큼 적어요. 이무렵 시골 흙지기는 99%쯤 되었을 테지요. 어쩌면 99.9%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1%니 0.1%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벌인 싸움 이야기만 가득해요. 1%나 0.1%밖에 안 되는 사람이 권력을 거머쥐어 흥청망청 누리던 문화 이야기만 빼곡해요.


  역사는 전쟁일까요? 역사는 전쟁인가요? 역사는 권력다툼과 땅따먹기일까요? 역사는 전쟁무기요, 임금과 신하와 양반 꽁무니 쫓는 이야기인가요?


- “그때, 지상 프론트에서 당신 손에 죽었어도 난 상관 없었어. 나도 그냥 킬러일 뿐이야. 임무를 위해 사람을 벌레 죽이듯 몇 십 명이나 죽인 인간이야.” “그럼, 왜 날 도와주는 거지? 어서 죽이지 않고?” “그럴 수가 없어! 이번만큼은 널 찌르는 것도 망설였어. 이유가 뭔지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16쪽)
- “아뿔싸! 리카온이야.” “리카온이 뭔데?” “본부 직속 킬러야. 해저 수용소의 보고를 받고 잠복하고 있었을 거야. 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지.” (31쪽)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말을 모릅니다. 이런 말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시골사람도 ‘싸움’이라는 낱말을 쓰기는 하지만, 임금이나 신하나 양반 같은 권력자 때문에 쓸 뿐입니다. 싸움터에 끌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골 흙지기는 애먼 권력자 때문에 시골을 떠나 병졸이 됩니다. 이웃나라에서도 시골 흙지기가 애먼 권력자 때문에 시골을 떠나 병졸이 돼요. 싸움터에서 부딪히는 사람은 모두 시골 흙지기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거나 죽여야 할 까닭이 없지만, 등 뒤에서 권력자들이 시퍼렇게 눈을 부라리며 닦달하니까, 애먼 이웃 흙지기를 칼로든 창으로든 베어 죽여야 합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내가 죽으면 내 시골마을 보금자리 아이들이 슬퍼서 웁니다. 그런데, 내가 이웃나라 시골 흙지기를 죽이면, 이웃나라 시골마을 아이들이 슬퍼서 울어요.


  권력자가 일으키는 전쟁은 애먼 시골 흙지기가 애꿎게 서로를 미워하도록 부추깁니다. 아무런 미움도 다툼도 슬픔도 눈물도 없던 시골 흙지기끼리 뜻없이 서로 손가락질하도록 닦달합니다.


  시골 흙지기는 이웃나라 시골 흙지기 땅뙈기를 빼앗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마을 내 땅뙈기 잘 돌보면 넉넉할 뿐입니다. 이웃나라 시골 흙지기도 우리 시골 땅뙈기를 가로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땅을 넓혀야 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일굴 수 있을 만한 넓이를 일구면 될 뿐입니다.

  이와 달리 권력자는 흙을 안 일굽니다. 흙을 안 일구면서 책상머리에서 책만 펼치니, 더 큰 권력과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이름을 드날리려는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으려고 전쟁을 북돋웁니다. 다시 말하자면, 흙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권력자와 지식인이 전쟁을 만듭니다. 흙을 모르고 흙밥 안 먹으며 흙삶 안 짓는 권력자와 지식인이 전쟁을 만들 뿐 아니라, 전쟁 이야기를 역사로 남기고, 이 역사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이들한테 교과서로 가르쳐서 머릿속에 지식으로 쑤셔넣으려 합니다.


- “으음, 자네가 부럽군. 영계가 보이다니. 난 강제로 출가해 불법을 배우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안 보인다네. 신앙이란 그런 건지도 몰라. 믿음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신을 느끼는 것인가.” (47쪽)
-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나?” “이대로 계속 전진하십시오. 영계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건 왕자님의 강한 의지밖에 없습니다.” (72쪽)
- “천 년이 지났을 때,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그분을 만나고, 그리고 다시 이누 족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 인간이 될까. 그리고, 어떻게 이누 족으로 돌아올까.” (219쪽)

 

 


  전쟁 이야기만 넘치는 역사란, 권력자와 지식인 놀음놀이입니다. 권력자와 지식인 놀음놀이밖에 안 되는 하잘것없는 전쟁 발자국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배워야 할 뜻도 값도 없습니다.


  우리가 배울 참다운 역사라면, 흙빛과 흙내음과 흙노래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흙을 어떻게 아끼고 살찌우면서 사랑했는가 하는 이야기가 바로 역사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풀이름과 나무이름과 벌레이름과 새이름과 짐승이름 들을 어떻게 지어서 붙였고, 이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와 짐승이 시골사람과 어떤 이웃이 되어 어깨동무를 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바로 역사 배우기입니다.


  풀을 배워야 역사를 배웁니다. 나무를 가르쳐야 역사를 가르칩니다. 흙을 배울 때에 역사를 배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풀줄기에서 실을 얻어 천을 짜고 옷을 짓는 삶을 가르칠 때에 역사를 제대로 가르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와 흙과 돌과 짚으로 집을 짓는 슬기로운 넋을 고이 물려주고 물려받을 수 있을 때에 ‘교육’이 참답게 이루어집니다.


- “정말 내 피가 필요없나요?” “거 정말 끈질기군. 필요없다니까.” “욕심이 없는 사람이군요.” (91쪽)
- “이곳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천 년 남짓 후의 세상이에요. 이 세상에서도 빛의 일족과 그림자 일족이라는 두 개의 신앙이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죠. 하지만 난 인간들이 자연스레 문제를 해결하길 지켜보고 있을 뿐이에요.” “이렇게 끔찍한 전쟁인데도?” “그래요. 정말 처참한 일이죠. 종교 전쟁이란 언제나 그런 법이에요. 인간이란 존재는 몇 백 년 몇 천 년이 지나도 어딘가에서 늘 종교 문제로 끔찍한 전쟁을 벌이죠. 도무지 끝이 없어요. 나도 말릴 도리가 없고요.” “끝이 없다고? 왜 그렇지?” “종교니 신앙이니 하는 거 전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모두 다 옳죠. 그래서 옳은 것끼리의 싸움은 막을 도리가 없는 거예요.” (96∼97쪽)
- “침략자인 불교가 옳단 말인가? 난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쁜 건 종교가 권력과 맺어졌을 때뿐이에요. 권력에 이용당한 종교는 정말 잔인하죠.” “하긴, 네 말이 옳긴 해. 권력이라.” “인간의 권력은, 인간 자신의 손으로 없애는 법. 그래서 난 지켜보고만 있는 거예요.” (98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열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불새》 열여섯째 권에서는 ‘전쟁을 만드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사랑을 짓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쟁을 만드는 사람이 지구별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얼마나 망가뜨리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랑을 짓는 사람이 지구별을 얼마나 포근하게 돌보고 아름답게 가꾸는가 하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 “왕자여, 저 일출을 보아라.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지 않느냐.” “정말 아름답습니다.” “왕자여, 나는 해의 신을 모시고 해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 너도 날 따라 주었으면 좋겠다.” “아버님에게 신이라면 제게도 신입니다.” (114쪽)
- “종교 따위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상에 차별만 만들었을 뿐이잖아요! 이젠 지겨워요.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닥쳐!” (146쪽)
- “너의 의문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 생각을 들어 봐라. 나는 빛 대신 새로운 종교를 만들 것이다. 그 종교는 내가 만든 것이다. 전 인류가 날 따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인간이 영원히 사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행복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요컨대 인간이 스스로의 지혜로 영원한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 그걸 최고의 기쁨으로 삼는 종교지. 이것을 난 불멸교라 이름 지었다.” (194쪽)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싸우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싸우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삶을 누리고 싶은 사람은 사랑하는 삶을 누립니다. 남을 등치거나 밟고 올라서려는 사람은 참말 남을 등치거나 밟고 올라서서 스스로 1등이니 2등이니 하고 숫자를 외칩니다.


  어른인 나 스스로 어떻게 살 때에 즐거울까요. 어른인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떠한 삶을 물려줄 적에 기쁘게 웃을 만한가요. 어른인 우리들은 저마다 어느 마을에서 어떠한 보금자리를 일구어야 즐거울까요. 어른인 우리들은 서로서로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거나 두레를 하면서 손을 맞잡아야 웃음꽃 기쁘게 피울 수 있는가요.

 


- “아주 긴 시간이었어. 우리가 헤어진 지 천 년이나 됐어.” “그래요. 당신도 나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났죠. 천 년 동안. 아버지는 당신이 반드시 영계로 돌아오리라 믿으셨어요.” “그래, 지금의 난 인간이 아니야. 육체는 이미 죽었어. 여기가 어디지?” “아마 이누 족의 마을일 거예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232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는 열여섯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열여섯째 권으로 기나긴 이야기가 끝나고 열일곱째 권에서는 ‘뒷이야기(외전)’를 들려줍니다.


  《불새》 열여섯째 권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이야기 한 자락은 ‘몸은 죽되 마음은 죽지 않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몸은 죽을 수 있어요. 그러나 마음은 죽지 않아요. 몸은 사라져서 흙으로 돌아가지요. 아니, 몸은 흙이 되지요. 그렇지만 마음은 흙으로 가지 않아요. 하늘로 가서 맑은 빛이 돼요. 맑은 빛이 되는 마음은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따사롭고 환하게 밝히는 사랑으로 이어져요.


  삶이란 마음이고 마음이란 사랑이 되어 사랑은 다시 푸른 숨결로 흐릅니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전쟁이란 전쟁입니다. 전쟁은 전쟁을 낳습니다. 전쟁은 다시 전쟁을 부릅니다. 전쟁은 언제나 전쟁입니다. 사랑은 사랑이지요. 사랑은 사랑을 낳아요. 사랑은 다시 사랑을 부릅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나요? 싸우면서 싸움에 휘둘린 채 살아가고 싶나요? 사랑하면서 사랑을 나누고 노래하며 살아가고 싶나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사람답게 아름다운 빛을 흩뿌리며 즐겁게 웃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바보스럽게 뒹구는 길도 하나이지요. 바보스럽게 뒹굴며 스스로 갉아먹는 길 또한 하나예요. 십일월 가을빛 환한 아침에 멧새들 우리 집 둘레에서 시원스럽게 노래하며 고운 빛을 깨웁니다.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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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0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사랑을 낳고 전쟁은 전쟁을 낳는다.
- 아주 간단한 내용 같지만 깊게 생각해 볼 만한 말입니다.
좋은 포토 리뷰입니다. ^^

파란놀 2013-11-01 13:37   좋아요 0 | URL
가장 아름다운 길은
가장 쉬운 길이고,
가장 즐거운 길은
가장 사랑스러운 길이니,
이러한 길을
사람들이 스스로 알뜰살뜰 느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
 

쓰레기더미 아파트 책읽기

 


  아파트 앞마당은 쓰레기더미 된다. 아파트 앞마당 밑은 깊이 파헤쳐 자동차 대는 자리가 된다. 아파트 둘레에 아파트 쓰레기를 묻을 자리가 없다. 모두 어디론가 멀리 내다 버려야 한다. 병도 플라스틱도 종이도 상자도 책도 이것저것도 모두 쓰레기가 더미를 이루고, 이 쓰레기더미는 날마다 쏟아져 어디론가 잔뜩 실려 가야 한다.


  아파트를 짓기까지 송전탑이 서서 이곳을 드나들어야 한다. 도시가스 흐르도록 기나긴 쇳줄 이어야 한다. 저 먼 시골마을 꼴깍 잠기도록 해서 만든 댐에 가둔 물을 이곳까지 물줄로 이어야 한다.


  돈으로 짓는 집이기에, 돈을 쓰면서 살아가는 집이 된다. 전기가 끊어지고 수돗물 끊어지며 가스가 끊어지면 아파트는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감옥으로 바뀐다. 여기에다가, 쓰레기를 치워 줄 사람이 없으면 무시무시한 쓰레기터 되겠지.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낳지 못하는 마을은 언제나 쓰레기를 낳고야 만다.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낳는 삶 일굴 적에는 아무런 쓰레기가 안 나올 뿐 아니라, 언제나 아름다운 웃음과 노래와 사랑이 샘솟는다.


  온갖 도시 커다랗게 지어 놓은 오늘날이니, 쓰레기를 줄이거나 없애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그런데, 이런 길만 찾는들 쓰레기를 줄이지도 없애지도 못한다. 삶을 찾는 길을 걸어가야 비로소 삶이 샘솟는다. 삶을 찾아야 쓰레기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삶을 찾을 때에 웃음이며 노래며 사랑이 샘솟는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책을 읽혀야 하겠는가.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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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01 13:22   좋아요 0 | URL
저도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찜찜합니다.
식구는 몇 안 되는데 쓰레기는 많이 나온다는 생각이에요.
저도 쓰레기를 줄이려고 나름대로 노력은 한답니다.
집에선 종이컵이나 나무 젓가락을 사용할 일은 없고...
음식 쓰레기가 되도록 생기지 않도록 애쓰죠.
그마나 제가 사는 아파트는 폐품 관리가 철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배출하는 쓰레기 양이 엄청나잖아요.

파란놀 2013-11-01 13:38   좋아요 0 | URL
지난날에는 쓰레기 아닌 거름이었고,
거름조차 모자라 똥오줌을 모으는 데에
무척 애를 썼는데,
이제는 흙한테 돌려줄 생각을 아예 잊다 보니
모두 쓰레기가 되는구나 싶어요...
 

[시로 읽는 책 70] 마음에 빛

 


  새벽별 환하게 드리우며 먼동이 틉니다.
  새들 노래하고 풀바람 살랑거리더니,
  아이들 기지개 켜고 까르르 웃으며 일어납니다.

 


  누구나 ‘말’이 ‘마음’을 얼마나 살찌우는 ‘빛’이 되는가를 즐겁게 느끼며 아름답게 돌아본다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 말이 마음을 얼마나 살찌우는 빛이 되는가를 즐겁게 느끼지 못하거나 아름답게 돌아보지 못하면, 스스로 말과 마음과 빛을 살찌우지 못할 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해요. 한국말은 한국사람답게 슬기롭게 쓸 노릇입니다. 영어는 나라밖 사람들과 슬기롭게 나눌 노릇입니다. 한자말은 한국말이 아니니 한국말을 쓰도록 마음을 기울이면서, 중국이나 일본 이웃과 사귈 적에는 중국말과 일본말 주고받을 수 있게끔 해야지요. 언제나 말로 만나고 마음으로 사귀며 빛으로 사랑이 피어납니다.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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