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느티잎 가을빛 (2013.10.30.)

 


  계룡에서 살아가는 이웃한테 찾아간다. 이 집에 아이 둘 있고, 이 집으로 마실온 다른 이웃 아이 둘이 있다. 아파트에서 네 아이는 어떻게 놀까? 어린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마음껏 뛰지 못하면서 놀아야 하는데, 저마다 얼마나 후련하게 놀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문방구에 들러 그림종이 다섯 장을 장만한다. 아이 있는 집이라면 으레 크레파스 있으리라 여겼고, 크레파스를 마루에 펼친 뒤 내가 먼저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은 서로 종이를 하나씩 얻어 꼬물꼬물 스스로 나타내고픈 이야기를 종이에 담는다. 아파트 이웃집이지만, 이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느티잎이 길가에 수북하게 떨어졌다. 가을빛 곱게 입은 느티잎을 떠올리며 조그마한 잎사귀 하나에 얼마나 너른 우주와 넋이 깃들었을까 돌아본다. 가을 느티잎이 별비를 맞는 그림은 다른 이웃집에 선물로 주고, 둥그런 가을잎이 햇살처럼 환하게 가을빛 퍼뜨리는 그림은 계룡 이웃집에 선물로 남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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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2] 하얀김치

 


  꽃이 하얗게 핍니다. 하얀 꽃송이가 어여쁩니다. ‘하얀꽃’이며 ‘흰꽃’입니다. 밤하늘이 까맣습니다. 까만 빛 사이사이 반짝이는 별을 봅니다. 밤에 바라보는 별이기에 밤별이요, 밤하늘 빛은 까맣기에 ‘까만하늘’입니다. 마음을 다스립니다. 마음속이 하얗디하얗게 다스립니다. 하얗게 빛나는 마음이라면 티끌이나 먼지나 얼룩이 없는 마음빛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하얀마음’이 될 테지요. 이와 달리 하얗지 못한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까만마음’일까요. 너른 들판과 싱그러운 숲과 같은 마음이 되고 싶다면 ‘푸른마음’을 꿈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깊은 바다와 넓은 하늘과 같은 마음이 되겠다고 하면 ‘파란마음’을 꿈꾼다고 할 만합니다. 고춧가루 듬뿍 넣어 빨갛게 물드는 ‘빨간김치’를 먹습니다. 소금으로만 절여 하얗게 맑은 ‘하얀김치’를 먹습니다. 겨를 살짝 벗겨 씨눈이 곱게 있는 ‘누런쌀’을 먹고, 씨눈까지 벗겨 누런 빛 사라지는 마알간 ‘흰쌀’을 먹습니다.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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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고흥 억새길 걷기 (13.10.26.)
고흥 길타래 12―행정마을·수덕마을·두곡마을

 


  걷는 사람이 길을 봅니다. 걷는 사람이 흙을 만지면서 들일을 합니다. 오늘날에는 기계를 타면 밭갈이나 논갈이뿐 아니라 모내기에다가 가을걷이까지 척척 해 주지요. 아주 빨리 말끔하게 해 줍니다. 몇 만 평이나 몇 십만 평에 이르는 땅이라면 손으로 갈아엎어 일구고는 거름을 뿌려서 하나하나 씨앗을 심어 거두기 무척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기계를 부려 너른 땅을 갈고 엎고 심고 거두고 할 때에, 시골에서도 돈을 쏠쏠히 만질 만하다 여기리라 봅니다.


  돈을 벌 만한 농사라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버는 만큼 흙을 만지지 않고 흙내음을 모르며 흙빛을 못 읽습니다. 돈을 버는 길보다는 삶을 누리는 길을 걸어가는 흙일이라면 돈은 조금 만지거나 안 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즐거움과 보람과 사랑과 꿈을 흙내음과 흙빛으로 맞아들입니다.


  두 다리로 걸어 들판으로 갑니다. 두 손을 움직여 흙과 풀을 만집니다. 두 다리로 걸어 들일을 하자면 신조차 번거롭습니다. 논밭에서는 아무도 구두나 운동신 안 뀁니다. 논밭에서는 누구나 고무신을 꿰는데, 고무신조차 성가시니 맨발이 됩니다.


  흙은 맨발로 찾아오는 흙지기를 반깁니다. 맨발은 흙을 곧바로 밟으며 느낄 적이 즐겁습니다. 맑게 흐르는 냇물을 장갑 낀 손으로 떠서 마실 사람은 없어요. 맨손으로 냇물을 느끼고 맨낯으로 냇물을 맞으며 마셔요.

 

 


  들바람과 숲바람을 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들내음과 숲내음을 온몸으로 마십니다. 들에서 일하고 들에서 쉬며 들에서 밥을 얻고 들에서 바람과 해와 흙과 풀을 마주하는 사람은 언제나 튼튼합니다. ‘아프다’는 말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시골 흙지기 가운데 아픈 사람이 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돈을 많이 벌거나 더 벌어야 하는 일이 생겨, 그만 너무 힘겹게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삐끗거려 아픕니다. 날마다 즐겁게 먹고 즐거이 나누며 즐거운 웃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삶이라면 아플 일 없이 한 해 내내 아름답습니다.


  우리들 부르는 모든 노래는 들에서 태어났습니다. 들에서 일하며 누구나 노래를 불렀어요. 들에서 거두거나 얻은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손질하며 노래를 불렀어요. 모시풀에서 실을 얻으려고 하는 동안 노래를 부르고,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으며 노래를 불렀어요. 길쌈을 하고 바느질을 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고 재우고 놀리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모를 내건 풀을 뽑건 나락을 베건 언제나 노래를 부릅니다.


  기계가 시골에 들어서면서 노래가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경운기와 트랙터와 이앙기와 콤바인이 우렁찬 소리 내며 지나가는데, 사람 목소리는 잠겨서 안 들립니다. 기계가 들판을 누비는 동안 이웃 들에서도 노래를 못 부릅니다. 노래를 부를 만하지 않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논마다 누런 나락 거의 다 베는 즈음, 고흥 억새길을 걷습니다. 동백마을에서 고흥읍으로 군내버스를 타고 나옵니다. 군내버스를 내린 곳부터 천천히 걷습니다. 서문마을 쪽을 멀거니 바라봅니다. 조금씩 누렇게 물드는 느티나무 곁에 빨간 우체통 보입니다. 느티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노란 빛 더하겠지요. 들판을 그득 채운 누런 물결은 사라져도 느티나무는 새삼스러운 노란 빛물결 베풀겠지요.


  대문 앞 조그마한 땅뙈기에 정갈하게 일구는 밭자락 만납니다. 어떤 손길로 이렇게 고운 살림 일굴까요. 어느 시골마을 시골집이나 이렇게 정갈한 손길로 예쁘게 밭자락 일구겠지요.

 

 

 


  서문마을에서 고개를 넘으니 행정마을이 멀리 보입니다. 행정마을 한쪽에는 새로 아파트를 올리려는지 무얼 하려는지 높다랗게 쇠울타리 세웠습니다. 도시는 사람들 너무 몰려 어쩔 수 없이 아파트를 세운다지만, 시골에 왜 아파트를 세워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이라면 마당이 있고 텃밭이 있으며, 마당 한켠에 나무 심어 알뜰히 누리는 살림일 때에 더없이 아름다울 텐데요.


  봄에 이어 가을에 다시 피는 민들레는 어느새 꽃이 지고 씨앗을 새로 날립니다. 행정마을 어귀는 우람하게 선 느티나무가 모든 길손과 마을사람을 맞이합니다. 참말 마을 어귀는 이렇게 우람한 나무가 있어야 듬직합니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는 여름 내내 시원한 바람으로 흙지기들 땀방울 식힙니다.


  시골마다 기계가 척척 들어서면서 볃가리 쌓는 일이 자취를 감춥니다. 앞으로 스무 해쯤 지나면 볃가리도 낟가리도 아무도 못 엮거나 못 쌓지 않으랴 싶습니다. 앞으로 마흔 해쯤 지나면 짚신도 새끼도 아무도 못 삼고 못 꼬리라 느낍니다.


  군내버스가 지나갑니다. 천천히 걷는 옆으로 군내버스가 부웅 바람을 날리며 지나갑니다. 저 버스를 타면 1200원으로, 또 1400원으로, 또 1500원이나 1700원으로 얼마든지 이웃마을로 갈 수 있습니다. 저 버스를 타고 8분이면 고흥읍 서문마을에서 두원면 두곡마을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천천히 들길을 걷습니다. 논도랑이나 논둑을 따라 피어나서 흔들리는 억새를 바라보며 시골길을 걷습니다.

 

 

 

 


  수덕마을 군내버스 타는 곳 앞에 섭니다. 수덕마을 앞 버스터에는 ‘수덕’이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비와 바람과 햇볕에 바래 글씨가 사라졌을까요. 처음부터 따로 글씨를 넣지 않았을까요. 이곳에 따로 글씨가 없더라도 군내버스 일꾼은 이곳이 수덕마을인 줄 다 알아요. 이곳에서 버스를 내리는 마을사람도 이곳이 수덕마을인 줄 모두 압니다.


  길가에 피는 꽃들 바라봅니다. 이 꽃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가을에 하얗고 파란 꽃송이를 벌릴까요.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이 꽃들을 얼마나 알아보면서 ‘아이 곱구나’ 하고 말 한 마디 건넬까요.


  두원면 소재지로 가는 길하고 풍류 쪽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자리에 섭니다. 이 길에 자동차는 아주 뜸하지만, 이 뜸한 자동차 가운데 웬만한 자동차는 두원면 소재지 쪽으로 달립니다. 풍류 쪽으로 가는 길에는 자동차 거의 드나들지 않습니다. 아주 조용합니다. 자동차 소리가 사라지니, 깊은 숲속부터 울려퍼지는 풀노래가 곱게 흐릅니다. 늦가을 한낮 햇살 곱게 받으면서 늦가을 풀벌레가 늦가을 풀노래 들려줍니다.


  풀노래는 버스에서도 못 듣습니다. 풀노래는 자가용이나 택시에서도 못 듣습니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커서 풀노래를 온통 밀칩니다. 자전거를 달리면? 자전거를 달리더라도 천천히 달려야 풀노래를 들어요. 싱싱 달리는 자전거라면 자동차와 똑같이 풀노래하고 멀어집니다.

 

 

 

 


  노르스름하게 물든 큼지막한 잎사귀 길에서 구릅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봅니다. 잎사귀야, 너는 어쩜 이렇게 고운 물을 듬뿍 들일 수 있었니. 어떤 뛰어난 화가 있어 너를 종이에 그릴 수 있을까. 어떤 빼어난 예술가 있어 너를 예술품으로 그릴 수 있을까. 화가와 예술가 있더라도 겨우 가을잎 한두 가지 그린다지만, 네가 있던 나무는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다 다른 잎빛을 가을마다 곱게 물들여 이렇게 내려놓는구나. 다 다른 잎사귀 가을잎빛을 어떤 화가와 예술가 있어 담아낼 수 있겠니.


  두곡마을과 지남마을로 갈리는 길목입니다. 두 마을 갈림길 한쪽에 조그마한 빗돌 섭니다. 빗돌에 새긴 글씨는 비바람에 많이 바랬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간다면 이 빗돌 못 알아보겠구나 싶습니다. 참말 지남마을에 갈 사람이 아니라면 이 빗돌을 알아보지 않겠지요. 아니, 지남마을에 갈 사람이라면 늘 아는 길이니 이 빗돌이 있건 없건 대수롭지 않겠지요.


  가을제비꽃을 만납니다. 민들레도 씀바귀도 고들빼기도 한 차례 나고 진 뒤, 새삼스럽게 다시 피는데, 제비꽃도 한 차례 진 지 꽤 되었는데 이렇게 가을맞이 새 꽃송이 틔웁니다.


  한쪽에서는 꽃송이 붉고, 다른 한쪽에서는 씨주머니 터집니다. 가을제비꽃 앞에서 오래도록 쪼그려앉아 꽃 구경을 하노라니, 군내버스 한 대 씽 하고 지나갑니다.

 

 

 

 


  이윽고 억새가 밭을 이루는 길이 나타납니다. 이 길 참 곱네 하고 느끼면서, 고흥사람은 고흥에서 고흥 들길 거닐면 고흥 억새밭 흐드러지게 누리겠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사람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제주섬으로 억새 구경 가겠지요. 제주섬은 관광객 발길이 끝없습니다. 이와 달리 고흥에는 관광객 발길이 거의 없습니다. 관광객이라 할 도시사람이 이 멋진 억새밭길 구경하지 못한다 싶으니 아쉽다 싶으면서도, 고흥으로 관광객 찾아들지 않아, 아주 한갓지면서 느긋하게 이 길을 거닐 수 있구나 싶습니다. 시골 들판 억새밭길은 온통 시골마을 흙지기가 누리는 가을빛입니다.


  고갯마루 하나 지나니 금빛이라는 말로도 가리키기 어려운 샛노란 들빛이 폭 안깁니다. 거의 모든 논은 나락을 베었지만 늦게 심어 늦게 베는 논은 샛노란 들빛이 눈부십니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노란 들빛 또한 깊이 물듭니다. 살며시 떨어지는 저녁햇빛과 얽혀 마음속까지 후련하게 씻어 주는 샛노랑 물결입니다.


  붉나무 곁을 지나 두곡마을 어귀에 닿습니다. 지팡이 짚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할매 뒤를 따라 걷다가 안골 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두곡마을도 수돗물 놓는 공사를 한창 벌이는구나 싶습니다. 시멘트벽돌로 쌓은 낡은 담을 바라봅니다. 슬레트로 지붕을 이은 헛간을 바라봅니다. 시멘트담이 없던 때에는 따로 대문도 없었을 테니, 지붕을 받치는 기둥에 이름패가 붙습니다. 담 너머에서 이름패를 들여다봅니다. 더는 안 쓰는 빨래터와 우물자리를 바라봅니다. 어느 집 담벼락에 “뭉치자 일하자 잘 살아 보자”라는 글씨 페인트로 적혔습니다. 새마을운동을 한창 하던 때에 적은 글월이지 싶습니다.

 

 

 

 


  두곡마을 안골 깊숙한 데에서 지내는 이웃집에 닿습니다. 땀을 식히며 앞 멧자락 바라봅니다. 멧새들 노래하면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저 나무에서 저저기 있는 나무로 옮겨 앉습니다.


  두곡마을 이웃집 뒤꼍 장독대에 가을풀 살짝 돋았습니다. 풀잎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차츰 해가 기울며 다른 손님 하나둘 찾아옵니다. 모두들 짐차나 자가용을 타고 찾아옵니다. 멀거나 짧은 길 즐거이 마실하셨겠지요. 다른 분들도 다음에는 짐차며 자가용이며 내려놓고는 이 길을 걸어서 찾아오면 아름다운 가을빛 실컷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한 달 서른 날 자가용을 타더라도 하루쯤은 두 다리로 한두 시간 천천히 거닐 수 있기를 빌어요. 그래야 비로소 가을볕 샛노랗고 싱그럽게 드리우는 고흥 시골길 억새밭과 들내음 누릴 테니까요.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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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02 14:06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사진과 글 따라... 늦가을 고흥 억새길 함께 잘 걸었습니다. ^^
사진들이 고흥의 고즈넉하고 환하고 아름다운 가을빛 가득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이라도 바라보는 자의 아름다운 눈빛과 마음의 노래가 없다면
이렇듯 삶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누리지 못하겠지요~
지금 이곳은 가을비에 파란 은행잎들 사이 먼저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비에 젖어 걸어 가는 길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억새길과 황금들판, 마지막 두 장의 사진에 마음이 뿌듯해 집니다~
감사드립니다~*^^*

파란놀 2013-11-03 02:52   좋아요 0 | URL
사람들 누구나 고운 마음빛이 되도록
고운 가을빛 듬뿍 받아들일 수 있기를 빌어요~

보슬비 2013-11-02 23:24   좋아요 0 | URL
어릴적 외갓집 선산 근처에 억새가 많아서 억새 꺽다가 베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릴적 이후로 가본적이 없어 지금도 그곳에 억새가 많은지는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외할머니께 전화드려 물어봐야겠네요.^^

함께살기님께서 올려주신 글과 사진들을 읽을때면 옛추억들이 하나 둘 떠올라 즐겁습니다.

파란놀 2013-11-03 02:51   좋아요 0 | URL
억새는 어디에서나 많이 나고 잘 자라니, 그곳에도 틀림없이 있겠지요~ ^^
 

선생님

 


하늘빛 그리는 사람
흙내음 맡는 사람
풀잎 뜯는 사람
나무줄기 타고 노는 사람
냇물에 멱감으며 빨래하는 사람
감자를 삶아 먹는 사람
고구마를 나눠 먹는 사람
숲을 얼싸안는 사람
자장노래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사람
옛이야기 사근사근 읊는 사람
아기 업고 해바라기하는 사람
꽃송이와 도란도란 속삭이는 사람

 


4346.10.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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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우는 아침 - 굴렁쇠동화 1
이오덕 지음, 김환영 그림 / 도서출판 굴렁쇠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오덕을 읽는다 14

 


멧골서 나무와 노래하는 아이
― 종달새 우는 아침
 이오덕 글
 굴렁쇠 펴냄, 2007.9.10.

 

 

※ 책풀이 ※
1987년 종로서적에서 처음 나온 동화책으로, 2007년에 새롭게 옷을 입고 다시 나온다. 멧골마을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며 겪거나 느낀 이야기를 동화로 빚었다. 오늘날에는 이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들과 같은 아이가 없다 할는지 모르나, 학교에서 거친 말을 일삼는 아이들은 똑같이 있고, 거칠고 메마른 학교와 마을에서 씩씩하며 꿋꿋하게 착한 마음 지키려는 아이들은 똑같이 있다.


..


  한 달쯤 앞서부터 딱새 두 마리가 우리 집을 꾸준하게 드나듭니다. 처음에는 초피나무 가지에 앉거나 마당을 쏘다니더니, 빨랫줄에도 앉고, 섬돌 앞까지 내려앉아 딱딱딱 노래합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제비집에 지푸라기를 물어 날라 엉성하게 둥지를 손질하는 듯했는데, 지푸라기 물어 나르기는 그만두었는지, 빈 제비집에 곧잘 찾아들기만 합니다.


  설마 빈 제비집에 알을 깠을까 궁금하지만, 부러 들여다보지는 않습니다. 사람 사는 집에 가까이 찾아든다는 딱새라 하더라도 물끄러미 지켜보기로만 합니다.


  딱새를 비롯해 참새도 박새도 스스럼없이 마당으로 날아오고, 마당 나무에 내려앉습니다. 우리 집 나무에 있을 애벌레나 풀벌레를 노리는구나 싶고, 초피나무 열매라든지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보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새들이 찾아오면 바람을 가르는 날갯짓 소리와 맑게 울리는 노랫소리를 함께 베풉니다.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으로 고운 이야기빛을 흩뿌립니다. 날마다 새들 노래를 들으며, 이 맑으며 고운 소리가 없이 하루를 열 수 없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싱그럽고 푸른 소리를 듣지 못하며 하루를 여는 사람들 마음에 푸른 사랑이 싹트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시 한복판에 살면서 자동차 소리와 기차나 전철 소리와 버스 소리만 들으며 새벽과 아침을 맞이한다면, 하루는 어떤 빛이 될까요. 손전화 터지는 소리와 텔레비전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어야 한다면, 하루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아침을 여는 소리와 낮을 흐르는 소리와 밤을 감도는 소리는 아주 대수롭습니다. 집 둘레와 마을 언저리에서 샘솟는 소리는 참으로 대수롭습니다. 노래가 없는 삶이란 빛이 없는 삶이라 할 텐데, 고운 소리가 없는 삶이란 사랑이 없는 삶이 되겠구나 싶어요.


.. 아이들이 한꺼번에 고함치는 바람에 방울나무 잎들 속에 숨어 있던 참새들이 깜짝 놀라 호두나무 쪽으로 날아갔지만, 아침 해님은 키다리 미루나무 어깨 너머로 여전히 벙글벙글 웃고만 있었습니다 …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목요일이지요. 김충실 선생님은 벚나무 밑에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고, 쉬는 시간마다 거기 버티고 앉아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에도 거기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수업을 다 마친 뒤에도 숲속에서 사무를 보았습니다. 푸른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니 하도 시원해서 글씨도 잘 씌어지고, 사무 일이 참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학력 검사의 점수를 계산하는데, 전 같으면 자꾸 틀려서 몇 번이나 되풀이하던 것이, 이날은 단 한 번씩 주판을 놓기만 하면 척척 맞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없는 저녁때도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좋은 자리를 두고 답답한 사무실에 갇혀 일을 하다니, 왜 진작 여기에 나올 줄 몰랐던가? 김충실 선생님은 볼펜을 던져 두고, 새소리가 자꾸 나는 머리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이 거의 안 보이도록 나뭇잎과 가지들이 꽉 덮었습니다 …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도, 열매가 없는 나무도, 키가 작은 나무도 모두가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풀빛 합창을 하는 듯했습니다 ..  (10∼11, 15∼16쪽)


  아침마다 노랗게 환한 해를 마주합니다. 처음 동이 틀 무렵에는 불그스름한 빛인데, 어느새 노랗게 달라지고, 이내 하얀 빛살 퍼뜨립니다. 해는 스스로 같은 얼굴일 테지만, 사람들이 철과 날과 때에 따라 바라보는 빛은 조금씩 바뀌지 싶어요. 해는 빨갛기도 하고 노랗기도 하며 하얗기도 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아마 해는 세 가지 빛깔을 함께 머금으면서 지구별을 따사롭게 보듬을 테지요. 지구에 무지개빛이 드리우도록 해 줄 테고, 지구에 포근한 바람이 불도록 해 줄 테며, 지구에 맑고 밝은 기운이 넘실거리도록 해 줄 테지요.


  해를 먹는 풀과 나무가 씩씩하게 자랍니다. 해를 먹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랍니다. 해를 먹는 새와 벌레와 짐승이 튼튼하게 자랍니다. 해를 먹는 어른들이 힘차게 일합니다.


  해가 없는 데에서도 어찌저찌 살아간다고 하는데, 해가 아예 없다면 어떠한 목숨도 어찌저찌 살아남지 못해요. 지구별 아주 깊은 데에 있어 해 기운이 퍼지지 못하는 데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예 해 기운이 안 퍼진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땅 위보다는 땅 깊숙한 데는 덜 퍼지겠지만, 땅을 덥히는 기운이 천천히 조금씩 스며들어 지구가 이루어지지 싶어요.


  그러니까, 해를 보며 살결 까무잡잡하게 타는 아이들이 야무지게 놀고 뛰며 노래해요. 해와 나란히 새까맣게 타는 어른들이 당차게 일하고 어깨동무하며 사랑해요. 해님을 바라보며 스스로 해님 마음이 됩니다. 해님을 마주하며 스스로 해님 손길이 됩니다. 해님을 쳐다보며 스스로 해님 사랑이 돼요.


  전기로 밝힌 등불에서는 해님과 같은 기운이 샘솟지 않습니다. 밤을 낮처럼 밝히는 전깃불빛으로는 해님과 같은 손길과 마음길이 되지 못합니다. 전깃불빛은 흙을 살찌우지 않습니다. 전깃불빛은 풀과 나무를 쉬게 하지 못합니다. 전깃불빛은 사람들 몸과 마음에 고운 사랑 싹트도록 북돋우지 못합니다.


.. 아무도 없는 숲속에 혼자 앉아 있던 교장 선생님은, 어느새 자기가 벚나무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참새들이 아침 햇빛을 받고 머리 위에 와서 마구 재재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으면서, 교장 선생님은 어렸을 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 이윽고 나무에서 내려온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빙 둘러싸였습니다. 아이들의 입술도, 교장 선생님의 입술도, 늦게 달려온 선생님들의 입술도 모두 자줏빛으로 얼룩졌습니다. 그리고 모두 벙글벙글 웃는 얼굴입니다 … “이거 참 재미있는데! 올가을 학예회 때는 ‘나무의 춤’이란 것을 추어 볼까? 나무가 하늘을 바라보고 우줄우줄 추는 춤. 그리고 비바람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손에 가지를 꺾이고, 잎을 쥐어뜯기고, 가슴에 못이 박히고 하면서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나무의 춤! 꼭 한 번 그것을 추고 싶구나!” ..  (18, 21, 37쪽)


  오늘날 새로 짓는 학교를 보면 햇빛이 들어올 틈이 얼마 없습니다. 오늘날 새로 짓는 건물에도 햇빛이 스며들 틈이 얼마 없습니다. 커다란 건물 안쪽은 한낮에도 전기로 불을 밝힙니다. 높다란 건물 위쪽이나 아래쪽은 전기로 움직이는 승강기를 타고 오르내려야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햇빛을 거의 못 쬡니다. 학교에서 어른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햇빛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지냅니다. 햇빛이 없는 학교교육입니다. 햇빛을 모르는 학교교육입니다. 햇빛을 가로막는 학교교육입니다. 햇빛을 내팽개치는 학교교육입니다.


  똑같은 수업을 하더라도 시멘트 교실에 전깃불빛 밝히면서 할 적이랑, 나무그늘에서 할 적은 사뭇 다릅니다. 두꺼운 천으로 창문을 가린 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켜서 화면 들여다보도록 하는 수업이랑, 운동장이나 풀밭이나 숲속에서 해를 안고 하는 수업은 크게 다릅니다.


  해와 함께 바람을 마시는 교실과 바람을 못 마시는 교실 또한 사뭇 달라요. 바람이 흐르는 운동장과 바람을 가로막은 교실 또한 크게 달라요. 철마다 달리 부는 바람을 살갗으로 느끼지 못한 채 교과서만 들여다본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른들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봄바람을 가르치지 못하고 겨울바람을 노래하지 못한다면, 아이와 어른은 봄과 겨울에 어떤 삶을 헤아리면서 스스로 삷빛 일굴 만할까요.


  해와 바람과 함께 비와 풀과 흙을 누릴 수 있는 교실과 이를 못 누리는 교실은 또 다릅니다. 여름비와 가을비를 아이도 어른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봄풀과 가을풀을 아이도 어른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름흙과 겨울흙을 아이도 어른도 모르는 채 지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과서는 학교에 다닐 적에만 씁니다. 해와 바람과 비와 풀과 흙은 학교에 다닐 적뿐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덮여 꽁꽁 막혀 안 보이는 듯하다 하더라도, 해와 바람과 비와 풀과 흙은 늘 우리 둘레에 있어요. 대학교에 들어간 뒤 교과서를 쓸 일 있나요?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교과서를 펼칠 일 있나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교과서를 들여다볼 일 있나요? 밥을 짓고 옷을 빨면서 교과서를 살필 일 있나요?


  누구나 언제라도 해를 마주해야 합니다. 누구나 언제라도 바람을 마시고 빗물을 누리며 풀과 흙을 벗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삶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삶하고 동떨어진 채 교과서만 말하고 교과서만 가르치며 교과서만 보여줍니다.


.. 수길이는 다른 아이들이야 어찌하든 나만은 내일 학교를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병간호를 해 드리고, 밥도 내가 지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 “오늘부터 나도 내 자유로 학교에 가야지. 줄 지어 발 맞춰 가는 것은 안 할래.” 이렇게 생각하면서 가슴을 확 펴고 골목을 빠져나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파란 하늘에는 조그만 것이 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 강아지 한 마리를 우리 속에 가두어 놔도 낑낑거리고 몸부림을 치는데, 말을 하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아이들을 한곳에 수십 명씩 온종일 가둬 놓았으니 조용할 리 있나요? 아이들 있는 교실이 언제나 쥐 죽은 듯 잠잠하다면 그것은 죽은 교실이고 죽은 아이들이지요.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 풀을 토끼장에 넣어 주고 거기 가 보니 서넛씩 둘러앉아 하는 것이 모두 땅뺏기 놀이입니다. 이 아이들도 모두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구나! 나처럼 고구마를 가져왔거나, 아예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31, 58∼59, 101쪽)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는 아이를 바라보며 돌봅니다. 육아책이나 교육책을 바라보며 아이를 돌보지 못합니다. 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다 다른 빛이 흐르고 다 다른 이야기가 솟아요. 그러니, 육아책이나 교육책으로는 우리 아이 돌보는 사랑스러운 빛이나 결을 찾을 수 없어요.


  해를 바라보며 노래할 적에는 해를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가을날 누렇게 익은 들을 바라보며 노래할 적에도 누렇게 익은 들을 바라보며 노래해요. 이리하여, 먼먼 옛날부터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다 다른 들노래가 태어났어요. 가을마다 가을걷이를 하며 노래를 불렀지요. 봄에 모내기를 하며 노래를 불렀어요. 피를 뽑으며 노래를 부르고, 나물을 하며 노래를 불러요. 밥을 짓으며, 아이를 어르고 돌보며, 나무를 하고 불을 지피면서 노래를 불러요. 우리 옛노래(한자말로는 ‘민요’)를 살피면, 하루 내내 노래를 불렀어요.


  다만, 우리 옛노래는 흙에서 일하고 놀며 살아가는 사람들 노래예요. 흙과 동떨어진 채 권력과 돈을 거머쥐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아무런 노래를 짓지 못했어요. 권력과 돈을 거머쥐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권력과 돈으로 사람을 불러서’ 노래를 부르게 했지요. 이를테면 궁중음악이 이러한 노래입니다.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남을 시켜서 노래를 짓고 부르도록 했어요. 삶이란 하나도 없이 오로지 놀고 즐기려는 뜻에서 노래 전문가를 두어 가락을 짓고 악기를 켜도록 했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일하던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럼없이 노래를 짓습니다. 즐거우면 즐거운 가락으로 노래를 짓습니다. 슬프면 슬픈 가락으로 노래를 짓습니다. 일하며 고되면 고된 마음을 풀려고 노래를 지어요. 일하며 웃음이 터질 적에는 웃는 마음으로 노래를 지어요.


  시집살이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요.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며 노래를 불러요. 베틀을 밟으며 노래를 부르고, 방아를 찧으며 노래를 불러요.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예요. 시골 흙지기는 흙에서 샘솟는 노래를 불러요. 시골 흙지기는 흙을 살찌우는 해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러요. 살결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고맙게 여기며 노래를 불러요. 온 들판 적시는 비를 마주하며 즐거워 노래를 불러요.


  집을 지으려고 굵은 나무를 골라 베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멧골에서 나무를 가만히 껴안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가 삶이고 삶이 노래입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숲으로 스며들고, 숲은 숲대로 풀내음에 온갖 새와 풀벌레와 짐승 목청을 담은 숲노래를 불러 줍니다.


.. 아, 나도 이 아이들이 귀엽습니다. 나는 내 곁에 온 아이들을 따스한 햇볕으로 안아 주고 강물같이 파란 하늘과 그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여주고, 운동장 가의 버드나무 잎들이 팔랑팔랑 떨어지는 모습이며, 포르륵포르륵 참새들이 날아가는 날갯짓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오면 잿빛 하늘에서 송이송이 하얀 눈송이들도 쏟아져 내리겠지요 … 내 소원은 어린이들의 가슴마다 깨끗한 마음을 심어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고향 산천, 고향 하늘을 그들의 가슴마다 깊이깊이 안겨 주는 일입니다 … 하루의 일과가 다 끝나서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설 때는 아이들의 얼굴이 그럴 수 없이 즐거워 보입니다. 그 재미없는 책과 선생님의 말과 외우고 쓰고 하는 공부라는 괴물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활짝 피어난 꽃 같은 얼굴이지요 … 마른 잔디 풀들이 노란 속눈을 틔우고 있는 산기슭 양지쪽에는 해님의 마음같이 진한 빛깔의 할미꽃들이 피어나고, 그 위에서 종달새는 이른 아침부터 울고 있었습니다 ..  (65∼66, 76, 156쪽)


  이오덕 님이 쓴 동화책 《종달새 우는 아침》(굴렁쇠,2007)을 읽습니다. 깊디깊은 멧골마을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잔뜩 나오는 동화책입니다. 너무 고단하고 고달파서 숨이 막힐 듯 울음이 쏟아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고단하고 고달프지만 노래를 불러요. 종달새를 바라보며 꿩을 마주하며 가슴속에서 저절로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윽박거릴 뿐 아니라 몽둥이나 손찌검으로 들볶는 어른(교사)이 있지만, 아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버찌를 땁니다. 보랏빛으로 무르익은 버찌를 보며 군침을 흘립니다. 그도 그럴밖에 없는 까닭이, 멧골마을 아이들은 먼 멧자락 타고 넘으면서 힘겹게 학교를 다녀요. 교사들은 멧자락 타고 넘을 일 없습니다. 교사들은 사택에서 지내며 ‘아이들 학교길이 얼마나 멀고 고된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나, 아이들은 고되다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숲을 가로지르고 나무와 벗삼으며 숲짐승하고 동무가 되어요. 새벽바람으로 학교길 나서며 숲노래 듣지요. 저녁바람으로 멧골집으로 돌아가며 숲노래 다시 들어요. 게다가 멧골마을 아이들은 집에서 늘 일손을 거들어요. 집 바깥에서 풀을 만지고 흙을 밟으며 일하는 동안 숲노래를 노상 들어요. 이러하니, 아이들은 벚나무 달달한 열매 굵게 맺힐 적에 군침을 흘리며 바라봅니다. 교장과 교사가 아무리 윽박지르거나 때리더라도 버찌를 먹으려 합니다.


.. 할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 현수는 나팔을 두 손으로 받고는 어쩔 줄 모르고 엎드려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현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시더니 현수가 머리를 들었을 때는 어디로 가 버리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수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이상스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바람같이 문틈으로 빠져나가신 것이 아니라, 어쩐지 제 마음속에 들어와 계신 것 같았습니다 … 써 놓고 읽어 보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건 내 마음이다, 이건 거짓이 아니다,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학교에서 글을 쓰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용배는 자랑스러웠습니다 … 날개를 쫙 펴고 꽁지를 쭉 뻗고 아침 햇빛에 눈부신 모습으로 산을 넘어가는 꿩을 쳐다보는 용이의 온몸에 갑자기 어떤 힘이 마구 솟구쳤습니다. 용이는 그 자리에서 한 번 훌쩍 뛰어올라 보았습니다 ..  (89, 115, 128쪽)


  아이들은 깊디깊은 멧골을 타고 넘으며 날마다 학교를 오가요. 그런데 왜 어른들은 이 깊디깊은 멧골을 타지도 넘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을 다그치기만 했을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얘들아, 오늘은 학교 오면서 무슨 노래를 들었니?’ 하고 묻지 못할까요.

  이제는 깊디깊은 시골마을이라 하더라도 십 리 이십 리 멧길을 타고 넘으면서 학교 다니는 아이가 없습니다. 이제는 노란버스로 시골 아이들 태워 학교까지 실어 나르고 집까지 데려다 줍니다. 오늘날 시골마을 아이들은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타요. 오늘날 시골마을 아이들은 아침저녁으로 아침노래도 저녁노래도 못 듣습니다. 자동차 붕붕거리는 소림나 듣습니다.


  도시에 있는 아이들도 똑같습니다. 학교길에 자동차 걱정스럽다며 ‘아버지 어머니가 자가용으로 아이들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 주지요. 학교버스도 있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실어 나르지요.


  시골이든 도시이든, 아이들은 집과 학교 사이에 어떤 마을이 있고 어떤 이웃이 있는지 느낄 틈이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햇볕도 바람도 빗물도 흙땅도 풀밭도 누리지 못합니다. 오직 교과서 수업만 받습니다. 오직 시멘트 교실에 갇힌 채 하루를 온통 지새웁니다. 더군다나, 도시락이 사라지고 급식이 되면서, 도시락 싸는 마음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지 못해요. 스스로 도시락을 싸려고 밥짓기에 마음 기울이는 일도 사라져요. 돈 몇 푼으로 과자나 빵을 사먹을 줄 아는 요즈음 아이들이지만, 손수 밥을 지어 동생한테 차려주거나 바쁘거나 고단한 어버이한테 차려주는 삶은 생각하지 못하는 요즈음 아이들입니다.


.. “난 시가 뭔지 모르지만 내 맘속에서도 시가 나올 것 같은데……. 나도 그런 거 좀 써 봤으면 좋겠다.” “그래, 한번 써 봐. 글자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지. 난 슬플 때나 답답할 때나 외로울 때 이렇게 시를 쓰면 기뻐지더라. 시를 쓰면서 살아갈라고 해.” … 짐이 무거워 쉬고 또 쉬었습니다. 20리쯤 걸으니 해가 져 아주 져 버렸고, 분교장 앞에 왔을 때는 밤이었습니다. 그래도 조각달이 등 뒤에서 비춰 주어서 길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장터에서 사 먹은 빵 몇 개로는 허기가 나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엎드려 도랑물을 자꾸 마시고 땀을 닦으며 걸었습니다 … 새까맣게 익을 대로 익은 머루알은 정말 달고 향긋한 산의 맛이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산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값없이 주는 산의 선물, 하늘의 선물이었습니다 ..  (152, 181쪽)


  동화책 《종달새 우는 아침》은 아침을 종달새 노랫소리와 함께 맞이하고, 저녁을 종달새 노랫소리와 함께 마무리하는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종달새와 같이 맑고 밝게 노래하는 넋이 되어 하루를 빛내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종달새는 이 땅에서 거의 모두 사람한테 쫓겨 죽거나 사라졌지만, 종달새 노래를 되새기고, 종달새가 없으면 참새이든 딱새이든 박새이든, 또 제비이든 까치이든 직박구리이든, 또 왜가리이든 해오라기이든 물총새이든, 우리 둘레 곱고 착한 새들이 들려주는 곱고 착한 노래를 되새기는 넋을 보여줍니다.


  노래를 품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노래를 빚는 삶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노래를 부르는 삶이란 얼마나 즐거운가요.


  노래에 꿈을 실어요. 노래에 빛을 담아요. 노래에 사랑을 품어요. 아이도 어른도 손을 맞잡고 노래를 하지요. 어른도 아이도 어깨를 겯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노래잔치 벌이지요.


.. 우선, 아침에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놀란 것이지만, 아이들이 왜 그렇게도 욕설을 예사로 지껄이는 것일까 … 학교라는 곳은 즐겁게 뛰놀고, 노래하고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온갖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서로 욕설하고 미워하고 해치는 것을 배우는 곳같이 느껴졌습니다 … 얼었던 땅을 뚫고 해님을 보고 솟아오르는 눈부신 싹들! 그것들은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강한 생명들입니까? 복현이는 훌쩍 일어나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  (162, 166, 169쪽)


  아이들이 나무와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나무 한 그루 해마다 심으면서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손수 심은 나무에 멧새 찾아들어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씩씩하게 심은 나무에 꽃이 피면 나비가 찾아올 테지요. 나비가 춤을 추고 잠자리가 날개를 쉬다가 멧새들 깃을 들이는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면, 이 나무를 타고 신나게 놀 수 있을 테지요.


  나무와 노래하던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기를 빌어요. 나무를 심고 아끼던 아이가 커서 어른으로 살아가기를 빌어요. 나무를 사랑하는 넋으로 어른다운 어른으로 튼튼히 두 팔 펴고 일하기를 빌어요.


  나무와 우리들은 한몸이에요. 나무와 우리들은 같은 숨을 마셔요. 나무와 우리들은 고운 햇볕을 먹으며 맑은 바람을 들이켜요. 나무가 있어 삶이 빛나고, 나무와 이웃하며 삶이 포근합니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에서 '산머루' 따먹는 아이들 이야기 있는데, 오빠가 동생한테 머루를 따서 던질 적에, 누이는 치마로 머루를 받는다고 나오나, 그림에서는 바지 차림이다. 아름다운 글을 그림에서 살짝살짝 엉뚱하게 받치는 대목이 나온다. 이밖에도 그림이 잘못된 곳이 여럿 보인다. 책에 그림을 붙일 적에는 원글을 찬찬히 읽고 나서 제대로 그려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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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0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종로서적에서 처음 나왔던 이오덕 선생님의 동화책이군요!
종로서적을 기쁨으로 드나들던 추억과 이오덕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화책 느낌글로
날씨가 흐리지만..퍽 마음이 피어나는 아침입니다~
딱새가 딱딱딱, 노래하는군요~~
빈제비집에 드나드는 딱새도 참새도 박새도 다 보고 싶고 즐겁네요~
오늘도 아름다운 느낌글 감사드리며,
<종달새 우는 아침> 또 감사히 담아갑니다~


파란놀 2013-11-02 12:27   좋아요 0 | URL
이오덕 님 동화책도 참 아름다운데
그리 널리 읽히지는 못해요.

작품집이 이 하나뿐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오래도록 절판되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
여러모로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