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나 먹고 너 먹고
같이 먹고 함께 먹고
까르르 노래꽃 터뜨릴
좋은 기운 얻는
밥 한 그릇 이루는
쌀 한 톨 얻으려고,

 

볍씨를 불려
모판을 마련하고
볏모 자라면
조금씩 떼어
논에 모를 심는다.

 

해마다 모 심는 날이면
햇볕 쨍쨍
어쩐지 바람은 잠잠
목덜미와 등과 팔다리
후끈후끈 따갑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벌써 저 앞에
심고,

 

동생은
아직 저 뒤서
물놀이.

 

동생하고 물놀이 할까
얼른 마저 심을까

 

저린 허리 펴며
기지개 켜는데
나비 한 마리
콧잔등에 앉는다.


4346.6.16.해.ㅎㄲㅅㄱ

 

..

 

지난 유월 여름에 쓴 시인데,

모내기가 바로 이즈음 하는데,

십일월 늦가을에 이 글을 걸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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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 책읽기

 


  나는 군대 이야기를 아주 싫어한다. 내 입으로 무언가를 놓고 ‘싫다’고 말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첫째가 바로 ‘군대’요, 둘째는 ‘전쟁’이고, 셋째는 ‘폭력’이다. 군대와 전쟁과 폭력은 언제나 한동아리이다. 군대와 전쟁과 폭력은 다른 데로도 쉽게 이어진다. 이를테면, 학교와 회사와 공공기관으로 이어진다. 학교도 회사도 공공기관도 모두 군대와 같은 위계질서와 위계조직으로 짠다. 학교도 회사도 공공기관도 모두 전쟁하듯이 일을 하고, 모든 행정을 폭력과 같이 벌이고야 만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이야기만큼 싫어하는 이야기도 어쩔 수 없이 하고야 말까. 기쁘며 즐겁다고 떠올리는 어떤 이야기 있으면, 이러한 이야기와 얽힌 날에 어쩐지 설렌다. 슬프며 괴롭다고 떠올리는 어떤 이야기 있으면, 이러한 이야기와 얽힌 날에 어쩐지 거북하다.


  누군가 나한테 ‘군대’나 ‘전쟁’이나 ‘폭력’이라는 낱말을 뱉으면, 손가락부터 덜덜 떤다. 소름이 돋도록 싫기 때문이다. 나는 젊은 사내들 보면, 부디 군대라는 곳에 안 가기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젊은 사내들은 잘 모른다. 왜일까. 스스로 겪지 않고서는 모르기 때문일까. 입시지옥도 굳이 스스로 겪어서 알아야 하는 일일까.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이나 남녀차별이나 학력차별이나 계급차별도 구태여 우리가 스스로 겪어야만 알 수 있는 일인가.


  내가 도시에서 안 살고 시골에서 살다 보니, 또 도시에서 아직 살던 지난날에도 아파트마을 아닌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살다 보니, 딱히 제도권 회사에 들어가서 지내는 ‘사내 동무’를 거의 안 만났다. 나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었는데, 아직 대학교에 깃들 적에도 선배나 동기나 후배는 군대 이야기를 참말 징하게 술안주로 삼았다. 회사(출판사)를 다닐 적에도 사람들(사내)은 술이 조금 들어가면 으레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재미있나? 군대에서 재미있는 일이 많았나?


  군대 이야기란 참말 재미없고, 군대에서 축구를 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재미없다고 하는데, 군대 이야기를 꺼내는 누군가 있으면, 나는 ‘군대에서 축구를 한 이야기’를 살짝 꺼낸다. 지오피나 선점에 있을 적에는 축구도 농구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날마다 눈이 1미터씩 내리더라도 일요일을 맞이하면 ‘중대장도 대대장도 연대장도 행정보급관도 명령이나 지시가 없었’으나, 분대장인 병장들 명령과 지시를 받들어 크고작은 연병장 눈을 신나게 치운다. 그러나 모든 눈을 치우지는 못하고 운동장 눈을 이렁저렁 치우고는 온몸이 새빨갛게 얼어붙어도 공을 찬다. 눈밭에서 공을 차면 공이 거의 안 구르지만, 사타구니부터 얼어붙어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지만, 온통 눈으로 덮이는 한겨울에 너무 추운 내무반에서 제대로 달구어지지 않는 난로 곁에서 벌벌 떨기도 싫어서, 눈밭 축구를 한다. 내가 꺼내는 ‘군대에서 축구를 한 이야기’란 이런 나부랭이들이다.


  비무장지대 맨 안쪽이라 늘 총을 들고 다니는데, 정작 ‘하극상’을 할까 봐 실탄은 안 준다. 우습지. 고참뿐 아니라 소대장과 하사관과 중대장 모두 날마다 끔찍하게 주먹과 군화발을 휘두른다. 쫄따구는 날이면 날마다 얻어터지며 지내니까, 비무장지대라 하더라도 실탄을 주었다가 총에 맞아 죽을까 봐 실탄 지급을 안 한다. 아무튼, 실탄 없는 빈 총을 들고 다녀야 하는데, 순찰길에 떡하니 2미터 넘는 멧돼지가 코앞에 나타나는 일이라든지, 옆 중대에서 총을 버리고 월남한 가녀린 북녘 병사를 보고는 무서워서 떨다가 총으로 쏘아죽인 일이라든지, 옆 중대에서 간부들한테 얻어맞아 죽은 아이가 지뢰 밟아 죽었다며 거짓보고 올리는 일이라든지, 이런 이야기들이 내가 들려주는 ‘군대에서 겪은 이야기’ 나부랭이가 된다. 나는 군대에서 도깨비불을 자주 보았는데, 도깨비불 나온 데는 모두 고참이나 간부한테 어처구니없이 얻어맞아 죽은 넋이 있다고 했다.


  2013년 군대는 뭔가 달라졌을까? 모르지. 달라진 구석 있을 수 있겠지. 그러나 어느 군대이든 전쟁을 하려고 만들며, 전쟁을 하려고 만드는 군대는 폭력을 밑바탕으로 깐다. 이 나라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가 아니라 한다면, 군대 아닌 평화를 생각하고, 전쟁 아닌 사랑을 헤아리며, 폭력 아닌 어깨동무로 나아갈 노릇이라고 느낀다. 참말, 군대란, 군대 이야기란, 군대에서 축구를 한 이야기란, 재미없다. 군대도 전쟁도 폭력도 재미없으니까.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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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따로 자기

 


  다른 집 아이들 볼 적에 ‘열 살까지는 아기인걸요.’ 하고 말하면서도, 막상 우리 집 아이들한테는 너무 까다롭게 구는 아버지 아닌가 하고 자꾸 돌아본다. 오늘 낮에 큰아이가 아버지 속썩이는 짓을 자꾸 하기에 그만 아버지는 혼자 토라져서 저녁을 안 차려 주고, 큰아이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으며, 말도 섞지 않는다. 큰아이가 까치걸음으로 살금살금 다가와 아버지한테 미안하다 말하려 하는 줄 뻔히 느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하기도 했다. 그래, 너희가 아버지 없이 얼마나 잘 놀고 먹는지 지켜보자고, 하는 생각으로 저녁 아홉 시에는 아예 이불 뒤집어쓰고 드러눕는다. 이래저래 집일 도맡으면서 바깥일까지 도맡으니 몸이 많이 고단하기도 해서 오늘은 자리에 드러눕자마자 등허리가 아이고 소리를 낸다. 온몸 뼈가 으드득으드득 결린다.


  어머니 곁에 달라붙어 어머니 공부를 헤살 놓는 아이들을 느낀다. 어머니가 공부 못하게 헤살 놓는 짓을 그치게 할까 하다가, 나 스스로 아이들하고 오늘은 말 안 섞고 잠들기로 했다는 다짐을 떠올린다. 너희가 언제까지 졸음을 견디며 안 자는가 두고보자고, 아니 지켜보자고 생각한다. 얘들아, 아버지가 너희한테 토라지고, 너희가 아버지를 미워하면 어떻게 살아갈 만하겠느냐. 잘 알아두라고. 너희가 아직 아기이지만, 너희는 모르는 것이 없어. 모두 안단 말이야. 너희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생각해. 아버지가 차려 주니까 먹는 밥은 아니야. 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이 아니어도 너희는 끼니를 채울 수 있어. 그런데, 밥은 끼니채우기가 아니야. 밥은 늘 사랑이 감돌며 누리는 아름다운 빛이야. 생각하라고. 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이니 고맙게 먹는 밥이 아니라, 이 땅에서 고운 숨결들이 푸른 넋으로 이 밥상에 깃들어 우리들이 새로운 마음과 몸으로 기운을 얻을 수 있는 줄 느끼라고.


  큰아이가 졸린데 아버지 눈치 보느라 잠을 못 자는구나 싶어, 얇은 이불 한 장만 들고 옆방으로 옮겨 눕는다. 웬만하면 토라지며 부아를 내고 싶지 않으나, 오늘은 내 마음이 견디지 못한다. 큰아이는 아버지가 잠자는방에 없는 줄 느끼고는 밤 열두 시가 되어서 비로소 드러눕는다. 더는 버티지 못하겠지. 더는 졸음을 참지 못하겠지. 어쩌겠니. 배가 고프면 먹고, 쉬가 마려우면 누고, 졸리면 자야지. 어쩌겠니. 심심하면 놀고, 기운차면 공부도 하고, 재미나면 웃고, 즐거우면 노래하고, 기쁘면 춤추고, 신나면 방방 뛰어야지. 어떻게 꾹 누르면서 살아갈 수 있겠니. 답답하면 말하고, 갑갑하면 뛰쳐나가고, 슬프면 울고, 터무니없으면 싸워야지.


  너희 아버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너희와 함께 복닥이느라, 이동안에는 참말 글조각 하나 붙잡을 겨를이 없다. 너희 아버지는 너희가 아주 깊이 잠든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서 너희들 쉬를 누이고 글쓰기를 한다. 그러니, 여태껏 새벽 두어 시부터, 때로는 밤 열두 시나 한 시부터 너희하고 따로 잔 셈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큰아이 네가 여섯 살이 되도록 한 번도 따로 잔 적이 없는데, 아버지가 부아를 풀지 못해 따로 잔다. 십일월 육일이 아버지한테는 무언가 쓰디쓰게 깊이 아프도록 남은 날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너희와 따로 잔 첫날이 되는구나. 문득 생각하니, 너희가 아직 이 땅에 태어나기 앞서인 1995년 십일월 육일에 네 아버지가 군대에 끌려갔구나. 오늘은 아침부터 어쩐지 많이 찜찜했는데, 참말 해마다 이날이 되면 무언가 찜찜해서 뒤숭숭했는데, 네 아버지가 강원도 양구군 비무장지대 맨 안쪽, 지도로 보면 남녘땅 아닌 북녘땅에서 군대살이를 하도록 끌려간 첫날이 오늘이었구나. 지난날 겪은 일이 몸에 깊이 아로새겨진 탓인지 아침부터 꿀꿀했고, 이 느낌을 떨치지 못해, 따스하거나 슬기롭지 못한 몸과 마음으로 너희하고 마주했구나 싶다. 네 아버지부터 이런 바보스러운 옛일은 살포시 씻도록 해야겠다.


  이제 이 고단한 날이 지나간다. 아무쪼록 새근새근 잘 자고, 이튿날 아침에는 다른 날보다 더 길게 자고 일어나기를 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롭고 밝은 날이 될 테니까.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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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어제는 우리 집 옆밭에서 고구마 캐는 할매와 할배를 보고는 일손을 도우려고 바로 나갔다. 할배가 많이 힘들다 하셔서 할매 홀로 고구마밭 캐느라 일손이 더뎠기에, 내가 거들기는 했어도 일을 모두 마치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일곱 시부터 다시 고구마밭에 나온다 하시기에, 나도 아침에 일찍 일손 거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새벽 세 시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고, 다섯 시 반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곱 시 즈음 일어난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 뒷간을 두 번 드나든다. 이렇게 하고 옆밭을 바라보니 할매 혼자 고구마를 바지런히 캐신다. 호미 한 자루 들고 건너간다. 문득 빗방울 듣는다. 고흥에도 비가 오려나. 고구마 캐기보다도 캔 고구마 자루에 담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호미는 밭 한쪽에 내려놓고는 자루를 들어 굵기에 따라 두 갈래로 고구마를 담는다. 할매는 고구마를 더 캐시고, 나는 고구마를 차곡차곡 담는다. 얼추 다 담았다 싶을 무렵 집에서 손수레 끌고 나온다. 아픈 할배가 경운기 몰고 올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손수레에 고구마 그득 든 자루를 싣는다.


  할매 댁에 고구마를 내려놓는다. 고구마는 따순 불 들어오는 마루방에 척척 놓는다. 빗물이 들을 듯하기에, 바깥에 두신 쌀가마 둘하고 겨가마 하나를 헛간으로 옮긴다. 할배와 할매가 어떠한 몸인지 알기에 일을 거들었을 뿐인데, 묵은지 한 꾸러미를 얻는다. 옆지기가 좋아하겠지.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다. 곧 아이들이 배고파 하겠구나 싶어 밥을 차린다. 이동안 옆지기는 씻고, 아이 둘을 함께 씻긴다. 아이들 씻는 사이 달걀국을 끓이고 고구마떡볶음을 한다. 큰아이가 예전에 달걀국 안 먹어 세 해 넘게 이 국은 안 끓였는데, 이제는 먹을까 싶어 모처럼 끓인다. 어제 캔 고구마를 숭숭 썰어서 하루 동안 불린 가래떡을 함께 볶는다. 캐고 나서 바로 먹는 고구마는 맛이 덜 하다 하지만, 화학비료도 화학거름도 안 쓴 고구마는 캐어 바로 먹어도 무척 맛나다.


  아이들 밥 얼추 먹이고는 살짝 자리에 누워 등허리를 편다. 이십 분인가 삼십 분쯤 누운 뒤 일어나 빨래를 한다. 어제 못 한 빨래하고 아침에 옆지기와 아이들 씻으며 나온 옷가지를 빨래한다. 척척 빨래하는 사이 작은아이가 똥을 누어 밑을 씻긴다. 모두 마친 빨래를 마당에 넌다. 빨래를 널고서 책짐 서재도서관으로 옮기려고 짊어진다. 서재도서관에 가서 곰팡이 먹은 책꽂이에 니스를 바른다. 니스 바르는 붓이 뭉개져서 더는 못 바른다. 면소재지 철물점 가서 붓을 더 사야겠다.


  집으로 돌아가며 바람소리 듣는다. 텃새만 남은 늦가을 막바지요 겨울 문턱에 흐르는 바람소리 듣는다. 이제는 풀벌레 노랫소리 거의 모두 사라졌다. 아주 사라졌다고까지 할 만하다. 개구리 노랫소리도 거의 다 사라졌다. 어제 고구마를 캘 적에 풀개구리 한 마리 폴짝폴짝 뛰던데, 아이들이 풀개구리 꽁무니 좇으며 한참 놀던데, 아무래도 고구마밭에 깃들어 겨울잠을 자려다가 그만 깼구나 싶다. 밭자락 고구마는 다 캐었으니 부디 다시 구멍 파고 들어가서 고이 쉬렴. 이제 이듬해 봄까지 너희 노랫소리는 못 들어도 되니까 느긋하게 쉬렴.


  고즈넉하다. 까마귀와 까치 우는 소리 크게 울린다. 십일월 찬찬히 흘러 십이월이 다가오면, 우리 큰아이가 기다려 마지않는 눈송이 흩날릴까. 올겨울에는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어느새 아침 훌떡 지나가고 한낮도 지나간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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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82 : 가심歌心

 


벚나무는 확실히 일본인의 가심歌心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적어도 일본인 아저씨, 아줌마의 마음은 말이다
《요네하라 마리/조영렬 옮김-문화편력기》(마음산책,2009) 210쪽

 

  ‘확실(確實)히’는 ‘틀림없이’나 ‘참말’이나 ‘참으로’로 손봅니다. “강렬(强烈)하게 자극(刺戟)한다”는 “크게 건드린다”나 “세게 건드린다”나 “몹시 흔든다”나 “드세게 뒤흔든다”나 “세차게 휘젓는다”처럼 다듬을 만하고, “아저씨, 아줌마의 마음은”은 “아저씨, 아줌마 마음은”이나 “아저씨, 아줌마 들 마음은”으로 다듬어 줍니다.


  한자말 ‘가심(歌心)’은 “(1) 시가의 내용에 들어 있는 뜻 (2) 시가를 읊고 싶어 하거나 이해하는 마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시가(詩歌)’는 “(1) 시문학 (2) 시노래”를 뜻한다고 하는군요.

 

 일본인의 가심歌心
→ 일본사람 노래마음
→ 일본사람 시넋
→ 일본사람 노래넋
 …

 

  국어사전에서 ‘가심’을 ‘시가’라는 한자말을 써서 풀이하지만, 이렇게 하면 자꾸 말만 늘어납니다. ‘가심’을 꾸밈없이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예부터 시와 노래는 하나예요. 시를 짓는 마음이란 노래를 짓는 마음이요, 노래를 부르는 마음이란 시를 읖는 마음입니다. 곧, 일본 겨레이건 우리 겨레이건, 시나 노래를 즐길 적에는 한결같이 ‘노래마음’이요 ‘시마음’입니다. ‘노래넋’이자 ‘시넋’입니다.


  ‘가심’을 말하거나 ‘시가’를 말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새롭게 생각하면서 새롭게 말을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새롭게 바라보면서 새롭게 마음을 살찌울 수 있어야 합니다. 4346.1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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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는 틀림없이 일본사람 노래넋을 세차게 흔든다. 적어도 일본 아저씨, 아줌마 마음은 말이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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