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8.26.
 : 여름바다, 잘 있어라

 


- ‘여름 휴가철’이 끝난다. 드디어 ‘여름 휴가철’이 끝난다. 여름 휴가철 내내 바닷가에도 골짜기에도 도시 손님들 넘쳐서 우리 아이들 느긋하게 놀지 못했다. 외진 골짜기까지 도시에서 온 손님에다가 다른 마을에서 술병 들고 찾아드는 어르신이 있어 여러모로 고단했다. 더운 여름날, 골짝물 흐르는 시원한 숲그늘에서 술 한잔 즐기고픈 마음은 알겠지만, 마치 잔치판이라도 벌이듯 골짜기 한켠에서 판을 크게 벌여 놀고는 쓰레기 잔뜩 버리는 짓은 하나도 안 반갑다. 도시사람도 놀 줄 모른다지만, 시골사람도 놀 줄 몰라서야 되겠는가. 시골 바닷가나 골짜기에서는 불을 피우거나 뭘 구워먹지 말아야 할 노릇이지만, 이를 지키는 사람이란 없고 이를 키져보는 사람 또한 없다.

 

- 들빛 푸르게 맑은 여름 막바지에 바닷가로 자전거마실을 간다. 여름 내내 아이들과 바닷가와 골짜기를 돌아다닌다. 도시 손님 넘치는 바닷가 말고 고즈넉한 바닷가를 찾아보려 했지만, 끝내 못 찾았다. 자전거를 달려 알아보기에는 내 다리가 너무 힘든가. 그래도 다음해 여름에는 조용하고 홀가분한 바닷가를 다시 찾아보고 싶다.

 

- 큰아이가 샛자전거에 앉아 손잡이를 거의 안 잡는다. 문득문득 느끼기는 하지만, 참말 손잡이 안 잡고 두 팔 벌리면서 놀든지 뭔가를 한다. 아직 어리니까 이렇게 놀아야겠지. 더 나이를 먹으면 샛자전거에서 발판 함께 구르며 아버지를 도와주겠지.

 

- 면소재지를 거쳐 발포바닷가까지 가는 동안 나무그늘이 없다. 시골 분들은 찻길 가장자리까지 밭을 일구느라 나무 한 그루 자랄 손바닥만 한 땅뙈기조차 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시골 분들은 들일을 하며 다리를 쉬며 땀을 들일 나무그늘이 없는 셈이다. 스스로 이렇게 만든다. 나무열매 즐기는 맛이 없고, 나무그늘에서 나무노래 들으며 한갓지게 낮잠을 자거나 쉬려는 멋이 없다. 그런데, 나무 없이 어떤 마을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무 없이 어느 집이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화덕마을 지나 상촌마을 못 닿아 발포바닷가 쪽으로 꺾는 옛길이 있다. 군내버스도 마을사람도 으레 새길로 다닌다. 나는 굳이 옛길로 달린다. 옛길에는 길가에 나무가 마주보며 자란다. 짧은 길이지만 나무를 누리며 달리는 길이다.

 

- 여름 휴가철 끝난 바닷가는 아주 조용하다. 이 바다는 온통 우리 차지가 된다. 큰아이는 헤엄옷으로 갈아입고 논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새근새근 잔다. 바닷가로 마실을 올 적에 작은아이는 으레 잠이 들고 만다. 큰아이가 신나게 놀고 쉴 즈음 비로소 작은아이가 깬다.

 

- 한참 놀고 나서 집으로 돌아간다. 늦여름 시골마을은 온통 푸른 물결이다. 이곳도 저곳도 푸른 물결이 싱그럽다. 그러나, 이 푸른물결을 마냥 싱그럽게만 바라보지 못한다. 어느 논이고 밭이고 죄 농약바람 맞는 들이기 때문이다. 겉보기로는 푸른물결이지만, 풀벌레 깃들지 못하고 제비와 멧새 모조리 죽이며 개구리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는 소리없는 푸른물결이다. 사람들이 새와 벌레와 짐승하고 벗삼으며 숲노래 부르던 지난날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뉘엿뉘엿 지는 해를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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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11.9.
 : 가을비 맞으며

 


- 도화고등학교 학생 둘이 서재도서관에 찾아왔다. 비구름 그득해서 날이 어둑어둑하기에 도서관은 슥 둘러보기만 하고, 함께 집으로 와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고는 저마다 돌아갈 집이 있어 마을 어귀로 나와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한 아이는 남성마을로, 한 아이는 고흥읍으로 간다. 저녁 일곱 시 오 분이 군내버스가 두 갈래로 들어온다,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가 더 일찍 오기 마련이지만, 오늘은 두 버스가 나란히 마을 어귀에 선다. 두 아이가 버스 타는 모습을 보고 나서 자전거를 달린다. 오늘은 가을비 촉촉하게 내리는 날이다.

 

- 내 비옷이 작다. 그러께까지 쓰던 비옷은 워낙 오래 입은 탓에 곳곳이 찢어져 비옷 구실을 못한다. 게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면소재지에서 비옷을 새로 장만했으나, 시골 면소재지에서 가장 큰 비옷이라 하는데에도 내 몸에는 꼭 붙는다. 가방을 등에 짊어진 채 입을 만한 비옷은 큰도시로 가거나 인터넷으로 알아보아야 하려나.

 

- 가을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달린다. 오늘은 모자를 깜빡 잊고 나온다. 모자가 없으니 안경을 쓰기는 했어도 눈과 얼굴로 빗물이 들이붓는다. 가을비 가운데 첫가을이나 한가을 아닌 늦가을 내리는 비이기 때문인지 자전거를 달리는 손이 시리다. 고흥은 포근한 겨울이라 겨울눈 구경하기 어려운 만큼, 겨울에도 겨울비 맞으며 자전거를 달려야 할는지 모른다. 빗길에 쓸 만한 장갑을 한 벌 마련해야 할까 싶다.

 

- 면소재지로 가는 길에 비를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시골길을 오가는 자동차 없으니 느긋하게 달리면서 느긋하게 하늘바라기를 한다. 비 내리는 소리, 빗물이 비옷 때리는 소리, 빗방울이 논과 밭과 길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먼 멧자락마다 비구름 깊이 드리우는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본다.

 

- 면소재지 가게에 들르는데, 며칠 뒤에 무슨 날인지 가게 한쪽에 빼빼로가 수북하게 쌓인다. 그렇구나, 무슨 날이 있구나. 작은 빼빼로 한 통을 골라 본다.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네모빵을 장만한다. 하루 지난 빵이라며 500원을 에누리해 준다. 하루 안 지났어도, 이틀 지났어도, 다 괜찮은데.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빗줄기가 가늘다. 조금 더 천천히 달려 본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는 천등산 멧자락이 훨씬 잘 보인다. 입을 헤 벌리며 자전거를 달린다. 빗길 자전거란 참 그윽하구나. 이 가을에 이 빗길을 달리며 저 멋스러운 모습 누릴 수 있으니 더없이 즐겁구나. 비옷이 너무 작아 사진기는 두고 왔다. 저 아름다운 비구름과 멧자락을 사진으로 담지 못하니 서운하고, 이 모습을 나 혼자만 누리는구나 싶어 아쉽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가을비 숲바람이 파고든다. 이 느낌을 잘 잡자. 다음에 큼지막한 비옷 장만한 뒤에 빗길 시골마을 빛살을 사진으로 담자.

 

- 신기마을 앞에서 짐차 하나가 자전거 달리는 길로 마주 달린다. 저런 미친 놈이 다 있나 하면서도 그대로 달리다가, 내가 옆 찻길로 꺾는다. 엉뚱한 찻길로 달리는 짐차가 제길로 들어설 생각을 않는다. 틀림없이 마을회관에서 술 퍼마시고 달리는 사람이 탔으리라. 어떻게 저리도 터무니없이 자동차를 모는가. 어느 찻길로 달려야 하는 줄조차 모르면서 자동차를 술기운으로 달려도 되는가. 시골에서 바쁜 들일 다 끝난 요즈음, 할배들은 하나같이 날이면 날마다 술이다. 바쁜 일철이 아니어도 할배들은 들일 하는 동안 소주 한두 병 가볍게 깐다. 막걸리도 잘 안 마시고 다들 소주를 들이켠다. 작은 병 아닌 큰 병으로 훌떡훌떡 마신다. 술기운으로 경운기와 짐차와 오토바이를 몬다. 시골 할매나 할배 가운데 긴긴 겨울에 책을 벗삼아 마음밥 먹는 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할매들은 여자 마을회관에서 화투를 치고, 할배들은 남자 마을회관에서 소주를 퍼붓는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짚삶이 사라진 뒤, 이제 시골마다 겨울에는 온통 화투판과 술판만 남는다. 시골마을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는 모조리 도시로 떠났으니, 시골에서 무언가 남다르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거나 자라지도 않는다. 가을비 뿌리는 오늘 같은 날, 들빛과 숲빛과 바다빛과 마을빛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누리는 눈빛이 어디에도 없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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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훑기와 속읽기

 


  겉만 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옷차림을 읽을 수 있고 얼굴빛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찬찬히 읽을 수 있어요. 이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을 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읽거나 생각을 읽습니다. 사랑을 읽고 꿈을 읽습니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곰곰이 읽습니다.


  겉읽기라서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속읽기라서 훌륭하지 않습니다. 겉은 겉대로 알뜰히 읽고, 속은 속대로 살뜰히 읽으면 됩니다. 겉읽기와 속읽기를 알뜰살뜰 할 때에는 오롯이 삶읽기 이루어집니다.


  흔히 말하는 ‘비판정신’이란 제대로 읽는 눈길에서 태어난다고 느껴요. 제대로 읽지 않고 겉말에만 얽매여 속알맹이를 들여다보지 못하면 겉만 보는 꼬리잡기나 헐뜯기만 이루어지지 싶어요. 옷차림을 두고 사람을 꼬리잡으면 얼마나 겉돌기가 될까요. 옷차림이 아닌, 옷 안쪽에 있는 사람을 봐야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읽기’를 할 노릇입니다. 겉이든 속이든 읽기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읽기를 하지 못한다면 ‘훑기’만 하고 맙니다. 이를테면 ‘겉훑기’이지요.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모습으로 어떤 사람이나 일을 놓고 속내까지 아무렇게나 말하는 모습이 바로 ‘겉훑기’입니다.


  겉읽기는 겉읽기일 뿐입니다. 겉을 읽는다고 해서 어느 한 사람 속까지 읽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겉을 읽었기에 속을 함부로 따지거나 재거나 금긋기를 할 수 없습니다. 현상학, 미시, 거시, 이런 어려운 말은 굳이 안 써도 돼요. 우리 말로 쉽게 겉과 속을 헤아리면 돼요.


  누구나 맨 먼저 속알맹이가 되는 삶을 헤아리고는, 이 다음에 겉모습이나 겉말을 하나하나 짚어야지 싶습니다. 어떤 마음이요 생각인가를 읽고, 어떤 사랑이요 꿈인가를 읽으면서, 어떤 말과 몸짓과 눈빛과 손길이 밖으로 드러나는가를 읽을 때에, 사람과 삶과 사회를 올바르게 헤아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비판정신’에 앞서 ‘올바로 읽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올바로 읽는 눈일 때에 ‘올바로 말하는 입’이 됩니다. 올바로 말하는 입일 때에 ‘올바로 듣는 귀’가 됩니다. 눈과 입과 귀는 언제나 올바를 수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몸가짐은 딱딱하거나 메마르지 않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몸가짐이 딱딱하고 메마릅니다. 올바른 몸가짐은 슬기롭습니다. 슬기로운 몸가짐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몸가짐은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운 몸가짐은 착합니다. 착한 몸가짐은 참답습니다. 참다운 몸가짐은 다 다른 사람 다 다른 빛이기에 ‘나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사람 앞에서는 왼쪽도 오른쪽도 따로 없습니다. 왼쪽에서든 오른쪽에서든 올바른 사람을 함부로 못 건드리고 어설피 해코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르기 때문입니다. 왼쪽에 서거나 오른쪽에 서는 사람은 모두 외곬입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스스로 놓치는 대목과 빛과 삶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느 한쪽에 설 사람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넋을 아름다운 글로 밝힌 어떤 분 말씀마따나 두 날개로 날아갈 새와 같은 사람입니다. 두 손으로 일하고 두 다리로 서며 두 눈으로 바라볼 사람입니다. 두 귀로 듣고 두 코로 숨을 쉬며 웃니 아랫니 두 이빨 부딪혀 목소리를 내고 밥을 먹을 사람입니다.


  위와 아래는 높낮이나 계급이 아닙니다. 왼쪽과 오른쪽은 금긋기나 파벌이 아닙니다. 그저 위와 아래일 뿐이고 왼쪽과 오른쪽일 뿐이에요. 자리에 앉아 보셔요. 누워 보셔요. 물구나무를 서 보셔요. 위와 아래란 무엇입니까. 왼쪽과 오른쪽이란 무엇인가요. 인천과 강릉을 생각해 보셔요. 인천에서 서울은, 또 강릉에서 서울은 무엇인가요.


  올바로 읽을 수 있으면, 남들이 무어라 하든, 눈엣가시로 여기거나 말거나,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왜냐하면, 올바르게 걷는 길은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우니까요. 올바르게 일구는 삶은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레 빛나니까요. 올바르게 꿈꾸는 사랑은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으로 태어나니까요.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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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1-10 15:43   좋아요 0 | URL
참 좋은 글입니다. 함께살기 님의 글을 읽으니 몽테뉴가 인용했던 '목욕과 공부는 때를 씻어 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던 철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 * *
철학 강의를 들어 보라. 착상과 웅변과 지당한 말은 당장에 그대에게 깊은 인상을 주며, 그대를 감동시킨다. 그대의 양심을 건드리거나 자극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양심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아닌가? 그래서 이리스톤은 "목욕이나 공부는 몸을 닦아서 때를 씻어 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껍데기에 구애되는 것은 좋지마는, 그것은 속의 골수를 뽑아 낸 다음이라야 한다. 마치 아름다운 잔에 가득한 좋은 술을 마시고 나서, 판에 새겨진 그림을 감상하는 격으로 말이다.

파란놀 2013-11-10 16:30   좋아요 0 | URL
이 글은, 알라딘서재에서 아름다운 이웃 분이 남겨 준 댓글 때문에
저 스스로 더 깊이 생각해 보면서 쓸 수 있었어요.
그분이 댓글을 달아 주지 않으셨으면
'겉훍기'와 '속읽기'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저 스스로도 오랫동안 생각할 일 없지 않았을까 하고 느껴요.

참말 oren님은 훌륭한 고전을 두루 꿰면서
좋은 말씀을 알맞게 잘 들려주시는
엄청난 힘이 있으시네요!
 

아이들이 책방에 나들이를 가서

 


  어른들은 굳이 책방마실 안 하고 인터넷 켜서 책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책방마실을 하지 않으면 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을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볼 수 없다. 어버이 된 사람이라면, 아이들과 함께 다리품을 팔아 책방마실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을 어른들이 슬기로운 눈빛 밝혀 하나하나 캐내고 골라서 안길 수 있다만, 아이들 또한 스스로 이런 책 저런 책 가만히 눈여겨보면서 책빛을 가슴으로 포옥 안을 수 있어야 아름다우니까.


  책방마실을 한다면, 책방만 들르지 않는다. 책방까지 가는 동안 아이들은 이런 삶 저런 사람을 만난다. 책방으로 오기까지 아이들은 이런 하늘 저런 골목을 마주한다.


  책방에 들어선 아이들은 어린이책 있는 칸만 바라보지 않는다. 맨 먼저 책방 골마루를 신나게 휘젓고 다닌다. 이쪽 골마루 저쪽 골마루 구석구석 누빈다. 한참 뛰놀며 땀을 쪼옥 뺀 뒤에야, 아이들은 저희 눈높이에 걸맞다 싶은 책이 있는 자리를 찾아간다. 어느 어른이 굳이 이끌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몸이 알아챈다.


  책방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가슴이 뿌듯하다. 마음에 드는 책을 품에 안아도 뿌듯하고,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을 찾지 못하더라도, 바깥바람을 쐬고 어버이와 나란히 나들이를 다닐 수 있어서 즐겁다.


  아이들은 손전화 기계로 책을 읽지 않는다. 아이들은 셈틀을 켜서 글을 읽지 않는다. 아이들은 종이로 된 책을 읽는다. 아이들은 종이로 된 책이 꽂힌 책방으로 마실을 다녀야 책을 만난다.

 

  아이들은 종이책을 만나지 않더라도 늘 가까이에 있는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삶을 읽는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를 마주하면서 사람을 읽고 사랑을 읽는다. 꿈을 읽고 생각을 읽으며 마음을 읽는다. 마당에서 뛰놀며 흙빛과 바람빛을 읽는다. 풀빛을 읽고 꽃빛을 읽으며 나무빛을 읽는다.


  아이들한테는 어떤 책이 아름다울까. 아이들은 책방마실을 얼마나 누려야 할까. 거꾸로 생각해 본다. 어른들한테는 어떤 책이 아름다운가. 어른들은 책방마실을 얼마나 누려야 하는가. 아름다운 사람들이 남긴 책을 읽지 않고서, 어른들 스스로 아름다운 삶 얼마나 씩씩하거나 야무지게 일구는가. 아름다운 책방으로 마실을 다니지 않으면서, 어른들은 이웃을 얼마나 잘 알거나 살피거나 눈여겨보거나 어깨동무를 하는가.


  사람살이는 점과 점이 아니다. 이 점에서 저 점으로 옮기면 되는 사람살이가 아니다. 점과 점 사이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삶터가 있으며 마을과 보금자리가 있다. 책방마실 찬찬히 누리는 동안, ‘책으로 담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 삶터와 마을과 보금자리 옆을 지나간다. 책방 또한 책지기들 삶터요 마을이며 보금자리이다.


  돈으로 값만 치르면 살 수 있는 책이란 없다. 삶으로 읽고 삶을 읽으며 사랑스러운 삶을 함께 나누려는 웃음꽃으로 만나는 책이 있다.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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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카르페디엠 34
수잔 크렐러 지음, 함미라 옮김 / 양철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푸른책과 함께 살기 106

 


맞고 자란 사람이 때린다
―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수잔 크렐러 글
 함미라 옮김
 양철북 펴냄, 2013.10.31.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꽃내음을 맡습니다. 꽃내음을 맡는 사람은 온몸에 꽃내음이 살살 감돌며 꽃빛이 환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늘숨을 마십니다. 하늘숨을 마시는 사람은 온몸에 하늘내음이 골고루 스미며 하늘빛이 곱습니다.


  풀밥을 먹는 사람은 풀숨을 맞아들입니다. 풀마다 싱그럽게 푸른 빛깔과 무늬와 냄새를 골고루 받아들입니다. 풀밥은 풀내음이고 풀빛입니다. 풀밥은 풀노래이고 풀물입니다. 몸과 마음 모두 푸르게 빛나면서 푸른 이야기가 솟습니다.


  바라보는 대로 눈빛이 달라집니다. 바라보는 자리마다 눈매가 바뀝니다. 맑은 빛을 바라볼 적에는 맑은 빛이 눈을 거쳐 마음속과 몸속으로 젖어듭니다. 밝은 빛을 바라볼 때에는 밝은 빛이 눈가를 스쳐 살갗과 뼈마디로 속속들이 파고듭니다.


  싱그러운 물을 마시면 내 몸에는 싱그러운 피가 흐릅니다. 멧골물을 마시면 멧골에서 솟아 흐르는 기운이 내 몸에 흐릅니다. 시냇물을 마시면 시냇물 되어 흐르던 물줄기에 깃든 숨결이 내 숨결로 이어집니다.


.. 여자아이는 화들짝 놀라 다시 스웨터를 내렸다. 그렇게 손동작 한 번으로 배에 난 자줏빛이 감도는 갈색, 그리고 노랗게 변한 커다란 멍 자국을 가렸다 … “마샤 언니!” 나도 똑같이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왜?” 그러자 율리아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막스는 내가 잘 돌봐 줄게!” … 한여름인데도 긴팔을 입은 율리아는 가느다란 두 팔로 길길이 뛰는 동생을 꽉 붙잡았다. 그러면서도 율리아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어른처럼 진지했다 … 내가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아주머니와 함께 문 앞에 서서 마치 자신이 바렌부르크를 통틀어 가장 다정하고 아이들을 잘 돌봐 주는 아빠인 것처럼 행동하는 브란트너 아저씨에게서 느낀 어마어마한 분노였다 ..  (20, 34, 57, 111쪽)
쪽)


  맹자 어머님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고 좋은 보금자리를 찾기 마련입니다. 공자 어머님도 맹자 어머님과 똑같았을 테지요. 한석봉 어머님이라고 다를 까닭 없어요. 어느 어머니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슬기롭고 맑으며 착하게 살아가는 숨결 받아먹을 수 있는 곳에 보금자리를 이루려 마음을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갓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좋거나 나쁘거나 가리지 않아요. 옳거나 그르거나 바르거나 비틀리거나 따지지 않아요. 모두 받아들여요. 모두 바라보고 모두 가슴으로 안아요. 어머니로서는 아이들이 아무것이나 바라보지 않도록, 어머니로서는 아이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좋은 것을 마주하도록 마음을 쓸밖에 없습니다.


  아이들한테는 꽃을 보여줍니다. 칼이나 총 아닌 호미를 쥐어 줍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면서 놀도록 이끕니다. 앞으로 흙을 돌보며 살찌울 길을 걸어가며 착하게 새 삶 일구기를 바라니까요. 칼이나 총을 거머쥐어 돈이나 힘자랑 하기를 바라는 어버이가 있을까요. 이웃을 밟고 올라서면서 거들먹거리기를 바라는 어버이가 있을까요.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어버이가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지 않고 돈을 물려준다면 말썽이 생깁니다. 사랑에 앞서 돈부터 물려주면 뒤틀립니다. 사랑 없이 돈만 만지는 아이가 어떻게 될까요. 사랑 없이 힘자랑 겉멋에 끄달리는 아이가 어찌 되나요.


  착하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지 못한 아이는 이웃을 아끼는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이 없습니다. 착하게 품앗이와 두레를 하는 삶을 누리지 않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과 꿈을 가르치지도 보여주지도 베풀지도 못합니다.


  어버이는 돈이나 아파트나 자가용 따위는 물려주지 않아도 돼요. 이런 것들은 아이들 스스로 얼마든지 마련하거나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 아끼고 기대며 보살필 줄 아는 고운 사랑과 착한 꿈과 맑은 빛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는 현장에 우연히 있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그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을 때린다고요.” “마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나 본데,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우리한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알고 하는 소리니?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닌다면 어떨 것 같니?” “할머니, 배에 멍이 들었다고요!” … 아무도 자동차 대리점 주인이 자기 아이들을 얼마나 때리는지, 또 그 집 아이들이 자기들 몸에 난 상처를 머리카락으로, 긴팔 셔츠로 감추느라 하루 종일 바쁘다는 사실에 관해선 그 어떤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  (23, 41∼42, 75쪽)


  맞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면 ‘맞고 자라는 아이’를 키웁니다. 거친 말 듣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면 ‘거친 말 듣고 자라는 아이’를 키웁니다. 입시지옥에서 살아남는 길 걸어간 아이가 어른이 되면 똑같이 ‘입시지옥에서 살아남는 길 찾는 아이’를 키웁니다. 그야말로 배운 대로 물려줍니다.


  어른들은 좀처럼 사슬을 못 끊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좀처럼 쳇바퀴에서 못 벗어납니다.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면 좀처럼 생각이나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슬을 끊는 사람은 으레 아이들입니다. 쳇바퀴를 부수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되찾는 사람은 어김없이 아이들입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활짝 열어 모든 숨결과 손을 맞잡는 사람은 늘 아이들입니다.


  길이 들면 삶이 사라집니다. 삶은 길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다 다른 삶인데, 삶은 길이 들 수 없어요. 날마다 똑같은 때에 일어나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길을 가서 똑같은 일터에서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똑같이 걷는 길은 없습니다. 시계로 보아서는 똑같다 하더라도, 날과 달과 해와 철이 모두 달라요. 여름과 겨울에 골목빛이 달라요. 봄과 가을에 하늘빛이 달라요.


  옷차림만 다르지 않습니다. 흐르는 바람이 달라요. 뜨고 지는 햇살이 달라요. 내리는 비와 눈이 달라요. 우리는 늘 언제나 다른 삶을 누립니다. 열아홉 살은 한 번뿐입니다. 열일곱 살도 한 번뿐입니다. 스물여섯 살도, 서른다섯 살도, 마흔네 살도, 쉰세 살도 언제나 한 번만 나한테 찾아온 뒤 지나갑니다.


  똑같이 차린 밥이라 하지만, 밥 한 그릇 마주하는 내 삶은 날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나는 언제라도 길들 수 없습니다. 누구나 언제라도 길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고 새로운 넋이며 새로운 사랑으로 새삼스레 거듭날 뿐입니다.


.. 내가 그보다 훨씬 더 좋아한 건 아빠가 나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엔 벽만 바라보는 행동 같은 건 하지 않으니까 … 나는 이 말이, 그러니까 ‘잠을 잤다’라는 말이 진짜로 무슨 말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말은 아침마다 막스가 아빠에게 질질 끌려 욕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빠가 막스의 옷을 벗긴다는 걸 뜻했다. 아빠가 미리 받아 놓은 진짜 뜨거운 욕조 물에 막스를 확 밀어 넣는다는 것이었다 … “엄마는 아빠가 우리를 때리지 못하게 하려고 대신에 자신한테 주의를 돌려 차라리 엄마를 때리게 하려고 해. 그러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고 무엇이든 해. 그러면 아빠가 다시 나에게 관심을 돌려.” ..  (30, 118, 134쪽)


  수잔 크렐러 님이 쓴 청소년문학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양철북,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은 ‘가정폭력’을 다룹니다. 가정폭력이 ‘마을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모습’을 다룹니다. 사람들이 서로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을 다루고, 스스로 아름다움도 사랑스러움도 즐거움도 일구지 못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아이들 또한 ‘아무것도 안 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길들’면서 어른들과 똑같이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샤’라는 열세 살 아이가 이 모두를 바꿉니다. 아버지한테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아버지하고도 멀리 떨어진 채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지내는 동안 할머니한테서도 할아버지한테서도 사랑을 못 받으며 홀로 외롭던 마샤라는 열세 살 아이가 이 모든 굴레와 수렁과 사슬을 바꿉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샤라는 아이는 이 아이를 ‘길들이는 어른’이 없습니다. 아무도 마샤라는 아이를 눈여겨보지 않고, 마샤라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마샤라는 아이는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놀고 혼자서 외로우며 혼자서 쓸쓸하다가는 혼자서 지냅니다. 온통 혼자로 있으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는지’ 아무것도 모르던 마샤인데, 이 마샤 앞에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무서움에 벌벌 떠는 아홉 살 일곱 살 어린 두 아이’가 나타납니다.


..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들을 더 기쁘게 해 주지 못했다 … 내가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었다. 율리아와 막스,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여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 “자, 우리 이제부터 도망가기 놀이 할 거야.” … 나는 아빠가 즐거워할 때라고는 다큐멘터러 영화를 만드는 동료들과 전화할 때뿐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선 아무런 즐거움도 남겨 둔 게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 ..  (51, 70, 79, 139쪽)


  맞는 아이 아홉 살짜리 ‘율리아’는 맞는 동생 일곱 살짜리 ‘막스’를 지키고 싶습니다만, 어떻게 지켜야 할는지 모르고, 지킨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모릅니다. ‘마샤’라는 아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하는 바보스러운 짓을 그치게 해야 하는 줄 압니다. 마샤 아버지가 보여주는 터무니없는 짓도 못마땅하고, 율리아와 막스네 아버지가 보여주는 끔찍한 짓은 더더욱 못마땅합니다.


  이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맞고 자라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랑을 못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그냥저냥 학교만 다니면 될까요. 그냥저냥 시험공부 잘 해서 이름난 대학교에 들어가면 될까요. 그냥저냥 성적 잘 받아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돈을 많이 벌면 될까요. 그냥저냥 학교를 다니다가 회사원이 되다가 이렁저렁 나쁘지 않은 짝꿍을 만나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될까요. 자, 그러면 그냥저냥 살다가 그냥저냥 낳은 아이는 어떻게 하지요? 그냥저냥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나요? 그냥저냥 학교에 넣어 ‘어버이인 내가 그냥저냥 학교에 다녔듯이’ 우리 아이도 그냥저냥 학교에 보내 그냥저냥 대학교에 집어넣고 그냥저냥 회사원이 되게 해서는 그냥저냥 혼인하고 그냥저냥 아이 낳도록 하면 될까요?


.. 나는 평소에 아이들을 때리거나 마구 밀치거나 던지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선물을 많이 주는지, 아니면 특별히 적게 주는지 궁금해졌다 … “저는…… 모르겠어요. 왜…… 그러니까…… 할아버지, 왜 이렇게 저한테 친절한 거예요?” “글쎄다. 그건 바렌부르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지. 엘제 리프카를 빼면 말이다.” ..  (176, 228쪽)


  오로지 맞기만 하며 자라면 오로지 때리기만 하는 어른이 됩니다. 꼭 한 번이라도 따스하게 사랑받은 적이 있다면 이 작은 사랑이 아주 조그마한 씨앗으로 마음밭에 깃들어 언젠가 곱게 피어날 수 있습니다.


  전쟁무기만 만들고, 군대만 키우며, 경찰과 전경이 그득그득 넘치는 나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 어떤 사회운동과 정치운동과 교육운동으로도 이런 전쟁나라·군대나라·경찰나라를 바꾸지 못합니다. 아무런 운동도 독재정권·식민지정권·사대주의정권·자본주의정권을 갈아치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쁜 놈 물러가라’ 하고 외친들 나쁜 놈은 물러가지 않아요. 나쁜 놈은 더욱 크게 전쟁무기를 키우고 더욱 촘촘히 법그물을 짜며 더욱 무시무시하게 쳇바퀴 제도권 울타리를 쌓습니다.


  이 땅은 ‘운동’이 아닌 ‘삶’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주먹다짐은 아무것도 못 바꿉니다. 보드랍게 부는 바람과 따스하게 비추는 햇볕과 촉촉히 내리는 비와 싱그러이 흐르는 냇물이 지구별을 푸르게 가꾸듯이, 따순 사랑과 푸른 꿈과 맑은 이야기와 고운 마음으로만 이 지구별 ‘나쁜 놈’을 말끔히 씻거나 바꿀 수 있습니다.


  풀바람을 마시고 흙내음을 노래할 때에 지구별이 달라집니다. 나무와 껴안고 숲에 작은 보금자리 마련할 때에 지구별이 거듭납니다. 사랑을 심어야 사랑이 자랍니다. 사랑을 안 심는데 사랑이 자랄 턱이 없습니다.


  생각해야지요. 독재정권 무너뜨리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 그 다음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어떠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 아름다운 삶이 될까요? 나라를 아름답게 다스리는 길이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할 때에 모든 사람이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삶 누려, 사랑과 평화와 민주가 이 땅에 솔솔 피어날 수 있을까요?


  독재정권 무너뜨린 자리에 다른 독재자가 들어서는 모습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바보스러운 정치꾼이나 얼간이를 몰아낸 자리에 새삼스럽게 다른 바보스러운 정치꾼이나 얼간이가 들어서는 흐름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폭력이 왜 사라지지 않을까요. 폭력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폭력이 왜 그치지 않을까요. 사랑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율리아와 막스네 아버지는 사랑을 겪은 적도, 사랑을 느낀 적도, 사랑을 배운 적도 없으리라 느껴요. 마샤네 아버지 또한 사랑을 누린 적도, 사랑을 나눈 적도, 사랑을 이야기한 적도 없구나 싶어요.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에 나오는 마샤네 할아버지 한 사람만,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아이(손녀)한테 물려줄 한 가지는 오직 사랑뿐이네’ 하고 깨닫습니다. 이리하여, 마샤와 마샤네 할아버지가 마을을 바꾸고 삶을 바꾸며 이야기를 바꾸는 사랑을 꽃피웁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누구와 언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치폭력과 군대폭력과 학벌폭력과 경제폭력과 교육폭력과 문화폭력과 역사폭력과 외교폭력과 언론폭력과 서울폭력과 남자폭력과 어른폭력 따위가 수그러들지 않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모두들 사랑을 모릅니다. 모두들 사랑을 한 번조차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사랑은 등돌린 채 힘자랑과 돈자랑과 이름자랑에 파묻힙니다.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청소년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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