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까닭

 


  글은 읽히려고 쓸까? 맞다. 글은 틀림없이 읽히려고 쓴다. 그러면, 누구한테 읽히려고 쓰는 글인가? 왜 읽히려고 쓰는가?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한테 이야기를 하고 나 스스로 읽으려고 쓰는 글이 된다고 느낀다. 껍데기인 나한테가 아닌 알맹이인 나한테 읽히려고 쓰는 글이라고 느낀다. 내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한테 참과 거짓을 밝혀 들려줄 이야기가 있기에 쓰는 글이라고 느낀다.


  어느 글을 쓰든 거짓을 쓸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알아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거짓말을 쓰곤 한다. 왜냐하면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은 삶부터 거짓이니, 글이 저절로 거짓스럽게 나온다. ‘글은 거짓’이지만 ‘거짓을 글로 쓰는 그이 삶은 참’이다. 다시 말하자면, 거짓스레 살아가는 사람은 ‘거짓스레 글을 쓰는 일’이 그이한테는 ‘참모습’이고 ‘참삶’인 셈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무서운 대목이라면, 스스로 거짓스러운 삶인 줄 깨닫지 못하면서 거짓스러운 글을 쓰는 일이라고 느낀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이런 글은 쉬 알아채리라 느낀다. 이를테면, 독재정권을 휘두른 사람들이 뱉은 말과 쓴 글을 보라. 민주와 평화를 짓밟는 이들이 뱉는 말과 쓰는 글을 보라. 이러한 말과 글은 얼마나 거짓스러운가. 그렇지만, 이러한 말과 글을 내놓는 이들 스스로 참다운 삶이 아닌 거짓스러운 삶을 누리기에, 이들이 내놓는 말과 글은 온통 거짓투성이가 될밖에 없다.


  나는 참을 말하는가? 나는 참을 글로 쓰는가? 예배당에 있는 하느님한테 대고 다짐할 까닭은 없다. 언제나 나 스스로 내 가슴에 대고, 내 마음속에 있는 나한테 다짐을 할 노릇이다. 나 스스로 가장 맑고 밝은 넋이 되어 글을 쓰는가? 나 스스로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빛이 되어 글을 쓰는가?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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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1-10 15:04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 님의 이 글을 읽으니 문득 어느 철학자가 한 말이 겹쳐 떠오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

자기자신에게 씨없는 호도를 주지 않는 법

철학적 성찰에 있어서는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 때문에 생각하고 탐구하고 한 자만이 뒤에 가서 타인의 이익도 되지만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정하여진 것은 다른 사람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을 위하여 생각하고 탐구하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일반적인 성의(誠意)라는 성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이고, 또 자기 자신에게 씨없는 호도(胡桃)를 주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궤변과 미사여구는 없어지고 그 결과 간단히 기록하여 둔 문장도 그것을 읽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게 된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중에서



파란놀 2013-11-10 15:1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쇼펜하우어라는 분이 들려준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렇게 들을 수 있어 고맙습니다.

저도 읽은 글이었을는지 모르지만,
oren 님이 이처럼 옮겨 주시니 더 즐겁고 반가워요~ ^^
 

내가 걷는 길 1. 큰 출판사와 싸우다
― 이오덕 님 책과 한길사·창비·보리

 


  내가 걷는 길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 말할 만한가 하고 헤아려 본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시골에서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한테, 따로 어디에 몸을 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한테, 이름도 힘도 돈도 없을 테니, 내가 걷는 길 이야기란 대수롭지 않을 만하다. 내가 걷는 길 이야기는 내가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이면서,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들을 아버지 살아온 이야기이다.


  2003년 8월 31일을 끝으로 나는 출판사 일에서 손을 뗀다. 1999년 8월 8일에 보리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출판사에 첫발을 뗐고, 이곳에서 2000년 6월 30일까지 일했다. 이해 11월 30일까지 전화기를 끈 채 조용히 책만 읽으면서 살았고, 2001년 1월 1일부터 보리 출판사 계열사인 토박이 출판사에서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편집장 일을 했다.


  처음부터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들어갈 적에는 통역사나 번역가 일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내 전공 외국말을 너무 엉터리로 가르치는 바람에, 통역사 꿈도 번역가 꿈도 모두 접었다. 대학교는 다섯 학기만 다니고는 그만두었다.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웠다. 통역사와 번역가 되는 공부를 하면서 한국말을 새롭게 배웠다. 다만, 나한테 한국말을 가르친 스승이나 교사는 아무도 없다. 오직 혼자서 수백 권에 이르는 국어사전과 수천 권에 이르는 국어학 책을 살피고 뒤지고 읽고 하면서 스스로 가르치고 배웠다. 외국말은 외국말대로 제대로 배우면서 한국말을 한국말대로 제대로 익혀야 통역사나 번역가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외국말 배우는 길이 끊어졌다. 얼결에 한국말 공부만 그대로 했고, 이 공부가 오늘날 내가 하는 일이 된다.


  나중에 토박이 출판사에서 일할 적에 들은 이야기인데, 처음 보리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뽑힐 적에, 윤구병 선생이 나를 한 해만 책마을 현장과 실무를 겪게 한 뒤, 이듬해에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 편집’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고 했다. 새로운 ‘어린이 국어사전’을 만들자면, 대학 학벌에도 어떤 편견이나 주의주장에도 물들지 않은 젊은 사람이 편집장이 되어 자료를 모으고 갈무리하고 엮어야 한다고 했다.


  국어사전 만드는 일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고 느낀다. 그런데 아직 섣부른 길이었을까. 더 배우고 갈고닦을 배움길이 있었을까. 토박이출판사 사장인 윤구병 님 옆지기 님하고 세 차례 실랑이가 있었다. 토박이출판사 사장을 맡기로 한 윤구병 님 옆지기 님은 회사 관리만 맡겠다 하셨으나 자꾸 편집 일을 넘보셨다.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하며 두 차례 실랑이가 지나가고 세 차례 실랑이가 생기자, 나어린 내가 그만두어야겠다고 깨달았다.


  나이로 치면 책마을에서 더 일할 수 있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어린이도서연구회 간사 자리로 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또 전화기를 끈 채 한 달을 살았다. 전화기를 다시 켠 날,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전화 한 통 왔고, 이튿날 충주 무너미마을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이오덕 님 큰아들인 이정우 님을 처음 만났고, 이 자리에서 “아버지 글을 맡아 줄 수 있겠나?” 하는 말씀을 들었다. “저는 실업자라서 벌이가 없어 이곳을 오가는 찻삯이 없어요. 버스삯만 주신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했다.


  무너미마을에서 하룻밤 자고 서울로 돌아갔다. 사흘쯤 서울 시내 헌책방들 다니면서 무척 오랫동안 책만 읽었다.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이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려 했지만, 갈피가 잡히지 않아, 무턱대고 온갖 책을 읽고 살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돌아가신 이오덕 님이 지내던 방에서 일을 했다. 이오덕 님이 지내던 방과 책을 둔 방은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처음 일한 때부터 석 달 즈음, 먼지를 닦고 쓸며 치우는 일만 했다. 책에 묻은 곰팡이를 닦고 햇볕에 말렸다. 축축하고 눌러붙은 원고를 모두 바깥으로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켰다. 어릴 적부터 코가 나빴는데, 하루 내내 먼지를 마시다 보니 코가 더 나빠졌다. 그래도 시골바람 마시면서 코와 몸을 달랠 수 있었다.


  한창 먼지와 씨름하면서 이오덕 님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하던 11월 10일, 갑자기 큰 일이 하나 터졌다. 큰 출판사 한길사에서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글을 몰래 함부로 내놓았다. 가을걷이를 마쳤으나, 다른 일이 아직 많은 시골인데, 이정우 님은 열 일을 젖혀 놓아야 했다. 충주에서 안동까지 여러 차례 오가면서 권정생 님과 이야기를 하고, 또 전화로도 한참 이야기를 했다. 나도 원고 갈무리는 멈추었다. ‘말썽을 일으킨 한길사에 보낼 내용증명’을 쓰느라 여러 날 걸렸다. 내용증명을 쓰고 나서 권정생 님한테 전화를 걸어 이대로 할까요 고칠 곳 있나요 하고 여쭈었다. 내용증명을 다 쓰고 나서, 매체에 알릴 기사를 썼다. 기사를 다 쓰고 나서는 권정생 님을 찾아가서 보여 드렸다. 몇 군데를 손질해서 올리기로 했다. 오마이뉴스라는 데에 기사를 올리고, 다른 언론사에 보도자료로 띄웠다.


  이때부터 여러 날 격려전화를 받기도 했지만, 비방선전도 들어야 했다. 내(최종규)가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고서 ‘잘난 척’한다는 비방선전이었다. 윤구병 님한테서 사랑을 받아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 편집장’이 되더니, 이번에는 ‘이오덕 원고 정리 책임자’가 되어, 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분다’는 비방선전이 뒤따랐다. 이런 비방선전은 내 귀로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정우 님이 이녁한테 이런 비방선전을 알리는 전화가 온다고 말씀해 주었고, 책마을에 있는 선배들이 술 한잔 사 주겠다고 하면서 ‘누가 말했는지는 알려 하지 말고 이런 뒷소문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한길사가 저지른 말썽은 열흘째가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출고정지 안 하겠다’고 닷새를 버티었고, ‘출고정지 하겠다’고 했어도 닷새를 더 책을 팔았다. 이정우 님은 짐차를 손수 몰아 파주로 달려가서, 출고정지를 해서 창고에 그대로 남은 책을 짐칸에 싣고 돌아왔다. 이 책들을 모두 불태워 없애려고 하다가, 권정생 님이 “정우야 태우지는 말아라. 책이 불쌍하다.” 하고 말씀해서 태우지 못했다. 이정우 님은 “그러면, 무너미에 아버지 생각하며 찾아오는 손님한테 한 권씩 드릴까요?” 하고 여쭈었고, “그렇게 해라. 그 책을 팔지는 마라.” 하고 말씀했다.


  말썽은 가라앉았지만, 책마을에서 나를 두고 입방아 찧는 엉뚱한 소문에 시달렸다. 게다가, 한길사 말썽이 가라앉은 뒤 ‘창작과비평사(창비)’ 말썽이 터졌다. 이오덕 님이 공책에 남긴 일기책을 어느 날 커다란 상자 하나에서 찾아냈는데, 이 일기책을 살피다가 창작과비평사에서 이오덕 님이 낸 ‘아이들 글모음’이 ‘인세 계약’이 아닌 ‘매절’로 낸 책인 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어느 해부터인가 창작과비평사는 《우리 반 순덕이》며 《이사 가던 날》이며 《웃음이 터지는 교실》이며, 모두 다섯 권에 이르는 책 간기(판권)에 저작권을 아예 ‘창비’라 적고, ‘이오덕’이라는 이름까지 지워 없앴다.

 

  너무 터무니없는 일이로구나 하고 느껴, 저작권심의협의회에 정식으로 여쭈었다. 창비 출판사에서 ‘인세 계약’ 안 한 잘못 하나, ‘저작권 표시 의무 위반’ 잘못 둘, ‘미지급 인쇄 소급 적용’ 안 한 잘못 셋, 이렇게 세 가지로 저작권법을 어겼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창비 어린이책 책임자로 있는 김이구 님한테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러한 일이 있으니 바로잡기를 바란다고 알렸다. 이때까지 지급을 하지 않은 인세를 지급할 것, 이제까지 몇 권 팔았는지 자료를 보낼 것, 이오덕 님한테서 저작권리 물려받은 이정우 님과 새 계약서 쓸 것, 이렇게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창비 김이구 님은 ‘창비는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법정에 소송을 걸기로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글쓰기연구회 교사들과 둘레 사람들이 ‘죽은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하는 짓’이라면서 법정 소송을 하지 말라고 말렸다. 무엇이 먹칠일까. 잘못을 그대로 안고 가는 일이 먹칠일까, 잘못을 밝혀 바로잡는 일이 먹칠일까. 글쓰기연구회 교사들은 한길사에서 낸 책을 절판시킨 일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분들은 ‘잘못 만든 책이라 하더라도, 한 번 나온 책은 그대로 유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이었나 두 달이었나 석 달이었나, 이오덕 님 글 갈무리하는 일이 자꾸 뒤로 밀리면서 엉뚱한 소송글과 내용증명을 써야 하니 답답했다. 나는 이렇게 큰 출판사와 싸우려고 무너미마을에 오지 않았는데, 그동안 큰 출판사들이 이오덕 님 책을 놓고 벌인 잘못이 자꾸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일을 맺고 풀 적마다 내 뒤에서 나를 나쁘게 말하는 소문이 커진다.


  창비 출판사는 드디어 편지를 보냈다. 인세 미지급금으로 500만 원을 주고, 새 계약으로 인세 3퍼센트를 주겠다고 말했다. 잘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너무 하잘것없는 보상금과 인세율을 말했기에, 이정우 님은 “그렇게 할 바에는 아버지 책을 모두 절판시키시오. 이제 창비에서 아버지 책이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하고 말했다. 창비아동문고는 이오덕 님이 기획해서 염무웅 님과 함께 만들었지만, 어느새 이오덕 님 이름이 창비아동문고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모두 창비 출판사 스스로 훌륭하고 뛰어나서 이런 책들을 기획하고 어린이문학작가들 글을 모으거나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일하기도 한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이오덕 님 책 가운데 이오덕 님이 ‘출판사 편집부가 내(이오덕) 원고를 허락 안 받고 엉뚱하게 고친 곳이 200군데가 넘으니 바로잡으라’고 보낸 글과 ‘바로잡을 곳을 빨간 볼펜으로 적바림한 책’을 찾았고, 이 글을 바탕으로 보리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편집부 차장과 편집자 한 사람은 내 전화를 비웃으면서 ‘그렇게 안 하겠다’고 했다.


  보리 출판사는 아직도 그 책 그 글을 출판사 편집부에서 임의로 고친 대로 낸다. 나는 많이 지쳤고, 큰 출판사하고 싸울 힘도 마음도 사라졌다. 이정우 님도 나더러 “이러다가 평생 출판사하고 싸우기만 하겠다”고 해서 이오덕 님이 남긴 글과 책을, 무너미마을에서 조그맣게 만들어서 ‘책방에는 배본을 안 하고’ 읽히는 길을 찾기로 했다. 보리 출판사는 이 책 말썽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라는 책을 이정우 님 허락을 안 받고 계약서도 안 쓴 채 몰래 펴냈다(처음에는 보리 출판사에서 이 책을 내는 일을 허락하고 계약서를 썼지만, 출간약속을 오래도록 지키지 않아 계약파기를 했다. 계약파기를 한 뒤에 이정우 님이 자비출판으로 작은 책을 만들었는데, 보리 출판사에서 갑자기 무단출간을 해서 책방마다 배본을 했다).


  한길사가 무단출간 말썽을 일으킨 지 한 해가 채 안 되었는데,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를 네 권으로 나누어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방학이 몇 밤 남았나》, 《꿀밤 줍기》, 《내가 어서 커야지》를 내놓았다. 보리 출판사 정낙묵 사장은 책을 내놓고 배본까지 다 끝낸 다음, 책을 들고 무너미로 왔다. 책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잘 만든 책이니 아이들한테 읽혀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훌륭한 글을 바탕으로 잘 만든 책이니 읽힐 값어치가 없다 할 수 없다. 그러면, 제대로 허락을 받고 계약서를 쓸 일이다. 계약파기를 하기 앞서 책을 잘 만들어서 내놓을 일이었다. 책에 실은 그림도 ‘이런 그림을 싣겠습니다’ 하고 알려야 했다. 그러나, 이오덕 님이 아이들 가르치면서 그리도록 한 그림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그림을 이 책에 끼워넣었다. 정낙묵 사장은 이정우 님한테 ‘우리는 출고정지도 절판도 안 합니다’ 하고 말하기까지 했다.


  한길사는 출고정지와 절판을 시켰지만, 보리 출판사는 오늘(2013년)까지도 이 책들을 출고정지는커녕 절판조차 시키지 않는다.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멋대로인 출판을 하는 사람들이 힘을 떨치는 책마을이라면, 다시는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탔다. 모든 일을 다 잊고 자전거를 탔다. 충북 충주부터 서울까지 자전거를 탔다. 한 주에 한 번씩, 자전거로 서울로 갔다가, 다시 자전거로 충주로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꼭 한 해를 이렇게 지냈다. 나는 내가 살아갈 길을 다시 그려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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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1-10 08:08   좋아요 0 | URL
사람사는 곳은 어디든지 그렇게 문제가 일어나고 계속 되는가 싶습니다. 언급하신 출판사도 좋은 책을 많이 내는 곳인데요. 님의 삶이 자유롭게 보여 부러운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타협이 없는 삶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겠구나 싶습니다. 언제 뵙고 막걸리라도 한 잔 나누었으면 하는 맘입니다. 힘내세요.

파란놀 2013-11-10 09:33   좋아요 0 | URL
이런 이야기를 쓸 마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오늘 밤(1시)에 어느 분 서재에 올라온 어느 글을 읽다가
'이오덕-권정생 편지글을 묶은 책'과 얽힌 이야기를 얼핏 보면서
이 책과 얽힌 이야기가 잘못 퍼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생각하며
몇 가지 글을 갈무리했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저절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어요.

책마을 몇몇 사람들이 뒤에서 제 험담과 비방 늘어놓거나 말거나
나는 내 길을 갈 뿐이에요. 엉터리 길을 간다면
저 스스로 제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럽겠지요.

<이오덕을 읽는다>라는 책을 내려고 올해부터 원고를 모아요.
사람들이 이오덕 님 삶을 제대로 모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왜곡시키기도 하는데,
차근차근 다시 읽으면서 '삶말'을 들려줄 수 있어야겠다고 느껴요.

곰곰이 돌아보면, 한길사가 말썽을 일으킨 지 열 해가 된 오늘에서야
제 마음속 앙금과 생채기가 어느 만큼 아물었기에
이 글을 쓸 수 있다고 느껴요.

아직도 가슴은 찌릿찌릿 아프지만요..

그렇게혜윰 2013-11-10 18:24   좋아요 0 | URL
마음이 아프네요. 제가 읽은 책에서는 두 선생님들께 누가되는듯한 느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출판사의 횡포를 알고 있는것같지는 않았어요. 작가들의 권리가 마땅히 지켜지는 출판문화를 보고 싶네요...

파란놀 2013-11-10 19:32   좋아요 0 | URL
오늘에 와서 생각하면,
독자인 우리들은 아름다운 삶을 읽을 수 있어 고마워요.

그러니, 이런 책이 나온 일로 더없이 고맙지요.
저부터 이오덕 님 원고를 정리할 적에
이러한 글과 책을 손으로 만지며 하나하나 오탈자 바로잡으면서
원고 입력을 할 수 있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두 분이 편지를 주고받던
그 독재정권 차가운 때에
서로 따스한 마음을 주고받은 이야기인데,
이러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려고 한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모르겠어요.

모든 사람이 '순수한' 마음일 수 없다고 하지만,
참말 '순수한' 마음이 아닌 채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도, 저로서는, 그무렵 돌아가신 한 분 삶을 원고로 만나고,
마지막 삶 잇던 다른 한 분 삶을 몸으로 만나면서,
두 분과 얽히는 책은 이렇게 나올 수 없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독자들은 책을 책으로만 만나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책은 바로 '삶'에서 태어나기 마련이기에,
작가뿐 아니라, 편집자와 출판인 모두
삶이 아름다울 때에 아름다운 책으로 이루어진다고 느껴요.........

이와 같은 글을 써야 하는 저도 마음이 아픈데,
그래도, 열 해 앞서를 헤아리면
조금은 생채기를 씻었기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못 다 한 이야기가 많아요...

oren 2013-11-11 13:57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 님의 이 글을 읽으니 마음이 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신 바 그대로 어려운 고비를 슬기롭게 잘 헤쳐오시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라 지금은 그래도 한결 여유롭게 지나간 얘기를 풀어놓으실 수 있다고 하시지만 막상 그 당시로서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일이 아닐까도 싶네요. 아무쪼록 앞으로는 그런 어려움들이 커다란 밑거름이 되어 보람있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싶고, 저도 마음으로나마 열심히 응원하고 싶습니다.

덧) 함께살기 님의 글을 읽다가 '출판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경우가 겹쳐 떠올라 먼댓글을 하나 달아 봅니다.

파란놀 2013-11-11 19:47   좋아요 0 | URL
저는 딱히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러나 그무렵
'최종규는 출판계에 다시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뒷이야기를
여러 사람한테서 자주 들었습니다.

다른 한편, 그런 뒷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 말썽 밑바닥까지 살피면서
'어느 한 사람을 출판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이들이
출판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올바르지 않다고 여겨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어찌 되든,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길을 가되,
내 길이 얼마나 올바르고 아름다운가를 늘 되새기면서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느껴요...

말씀 고맙습니다.

2013-11-11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3-11-11 19:51   좋아요 0 | URL
ㅇㄹㄷ뿐 아니라 ㅎㄱㅎ 같은 사람들이 올바르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그때에는 그런 일을 뒷전에서 구경만 할 수 없어요.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스스로 찾아서 해야지요.

법에 따라 지키는 양심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쉬운 한국말로 '착한 마음'에 따라 지키는 '착한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모든 삶을 아름답게 이어가며 가꿀 수 있으리라 느껴요.

나중에 [내가 걷는 길]이라는 이름으로 쓰는 이 글에 쓸 텐데,
저는 언제부터인가 '나 스스로 1인 신문'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이러저래 해서 글쓰기도 글도 책읽기도 책도
꾸준하게 마음을 기울이면서 다룰밖에 없구나 하고 느껴요.

님도 늘 사랑스러운 마음을 따숩게 보듬으면서
하루하루 아름다운 나날 누리셔요~~ ^^

2013-11-12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12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12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12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yonara 2013-11-16 13:17   좋아요 0 | URL
큰 일을 하려면 큰 시련이 따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큰 일을 아예 도모하지 않나 보네요.
어디나, 언제나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절이 싫으면 이렇게 중이 떠나는 건지.....
추운날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길.

파란놀 2013-11-16 18:59   좋아요 0 | URL
음... 작은 일을 하려면 그때에도 똑같이 작은 시련이 올 테니,
어쨌든 시련이란 늘 오겠지요~ ^^;;

sayonara 님도 언제나 즐거우며 따스한 나날 누리면서
가을 끝자락 아름답게 보내셔요~~
 

밤꽃

 


찔레꽃 하얗게 빛나면서
감꽃 노랗게 밝더니

 

어느새
밤꽃 샛노랗게 터진다.

 

밤꽃내음 차분히 가라앉으면
이제
어느 여름꽃
고운 빛무늬 되어
살포시 살뜰히 살가이
찾아들까.

 


4346.6.14.쇠.ㅎㄲㅅㄱ

 

..

 

다른 꽃들과 마찬가지로
밤꽃도 한철입니다.
지난여름
밤꽃을 바라보며 쓴 글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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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 -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한길사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

― 이오덕·권정생 편지글 무단출간 열 해

 


  꼭 열 해가 되었습니다.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아무런 허락도 동의도 받지 않은 채 함부로 내놓아(무단출간) 말썽을 일으킨 지 꼭 열 해가 되었습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라는 이름을 붙여,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남몰래 펴내고 엄청나게 광고를 하면서 며칠만에 수천 권을 팔았습니다. 몇 부를 찍었는지 이오덕 님 유족과 권정생 님한테 밝히지 않은 채, 이 책이 말썽이 되고 이레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서점 회수’를 했지만, 고작 돌아온 책은 1200권쯤입니다. 이 책이 말썽이 난 줄 알아차린 서점에서는 ‘다 팔리고 없다’면서 회수를 안 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책방에서 사라져야 한 이 책을 어떤 사람은 ‘30만 원’ 값을 붙여 팔기도 합니다.


  지난 2003년 11월 10일을 떠올립니다. 나는 그때에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님 유고와 원고와 책을 한창 갈무리했습니다. 이오덕 님이 흙으로 돌아간 뒤 남은 수많은 글뭉치와 책을 하나하나 살피고 닦고 손질하고 갈래를 지어 나누면서 지냈습니다. 이날도 여느 때처럼 이오덕 님 원고 가운데 묻힌 글을 살피고, 묻힌 글을 한글파일로 옮기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아침에 어느 분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이오덕 님 큰아들이요 충주 무너니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이정우 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번에 나온 (이오덕) 선생님 책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깜짝 놀랐지요. 이즈음 나온 이오덕 님 새책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무슨 일이요, 무슨 책이요, 하면서 전화 거신 분한테 다시 여쭈었고, 이정우 님은 한길사로 전화를 걸어 “무슨 책을 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처음에 책을 안 냈다고 했습니다. 편집부 일꾼도 김언호 대표도, 처음 두 차례 전화통화에서는 책을 낸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으나, 낮에 다른 분한테서 무너미마을로 전화가 왔어요. ‘책 나온 소식을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한길사에 전화를 거니, 그제서야 “책을 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김언호 대표는 이정우 님한테 전화를 걸어 “좋은 책 내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 하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이미 허락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오덕 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면서, 이 글과 책이 나오도록 하는 일을 맡던 나였기에, 한길사 편집부 강옥순 주간한테 전화를 걸어 “왜 출판계약서도 없이 책을 내셨습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강옥순 주간은 “이오덕 선생님은 예전에도 한길사에서 책을 내실 때는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았어요. 구두로만 계약을 한 뒤 인세가 발생하면 이를 정산해서 지급해 드렸어요. 이렇게 하면 이오덕 선생님이 받아들였어요.” 하고 말합니다. 참말 그런가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이오덕 님이 남긴 서류를 찾아보니, 한길사에서 낸 책들 출판계약서가 있습니다. 이오덕 님은 출판계약서가 없이 한길사에서 책을 내지 않으셨습니다.


  한길사에서는 허락을 안 받은 채 책을 함부로 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길사에 ‘편지 원고’가 있었을까요? 이오덕 님은 돌아가시기 앞서 편지 원고를 어느 출판사에 맡겨야 할는지를 놓고 몹시 망설였습니다. 어느 출판사도 미덥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이 얘기를 듣고는 이녁이 한번 구경해 보겠다 하면서 여러 차례 부탁해서 편지 원고를 가져갔고, 어느새 편지 원고를 모두 입력해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이오덕 님을 자꾸 재촉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이 편지 원고는 나(이오덕)와 권정생 선생이 모두 죽은 뒤에나 나올 수 있다’면서, 함부로 내놓을 책이 아니라 말하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러나,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이오덕 님이 손사래를 쳤어도 여러 해에 걸쳐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나(이오덕)와 권정생 선생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죽고 나서 책이 나와야 하고, 내(이오덕)가 죽은 뒤에 아들(이정우)한테 이 책 내는 일을 맡길 테니, 아들하고 이야기하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권정생 님도 이오덕 님하고 말씀을 맞추셨고, 이녁이 죽은 뒤 서른 해가 지나고 나서 책으로 내기를 바라셨습니다. 이에 이정우 님은 “서른 해는 너무 길고, 열 해 뒤에 내기로 하지요.”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권정생 님도 “내가 죽고 나서 열 해 뒤라면 괜찮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2003년에 흙으로 돌아가셨고, 권정생 님은 2007년에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오덕 님이 흙으로 돌아가신 지 열 해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네 해 지나면 권정생 님이 흙으로 돌아가신 지 열 해가 됩니다.


  이오덕 님이 남긴 일기를 다섯 권으로 갈무리해서 2013년 봄에 《이오덕 일기》(양철북 펴냄)가 태어났습니다. 열 해가 지난 뒤에 얼마든지 책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라는 책이 이 땅에 태어나 사람들한테 아름답게 읽히도록 하자면, 이렇게 열 해를 기다리면 될 노릇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책은 아름다운 손길로 엮을 때에 태어납니다. 아름다운 글을 안 아름다운 손길로 엮어서 내놓으면, 이 책을 만날 사람들부터 안 즐겁고 안 반갑습니다. 그냥 지식으로 읽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눈빛으로 어루만지면서 아름다운 손빛으로 보살펴야지요.


  좋은 책을 읽는대서 좋은 사람이 된다고 느끼지 않아요. 좋은 책을 읽으며 얻은 좋은 넋과 슬기를 스스로 좋은 삶으로 일구면서 나눌 때에 비로소 좋은 마음과 좋은 사랑이 우리 보금자리부터 싹틀 수 있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네 해 더 지나 맞이할 2017년에 어떤 책들이 이 땅에 태어날까 궁금합니다. 그즈음에 태어날 새로운 책 가운데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가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즈음에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가 책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아무래도 한길사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그리고 시골에서 살림을 꾸리는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작은 사랑과 작은 꿈과 작은 빛을 가슴으로 받아안으며 나올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돈을 바라는 큰 출판사에서 이런 광고 저런 홍보를 하며 팔 만한 책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랑을 바라고 꿈을 키우려는 작은 출판사에서 입소문으로 천천히 오래도록 따사로운 손길을 받도록 내놓아 읽힐 책이라고 느낍니다.

 

(최종규 . 2013)

 

이 책을 놓고 2003년에 오간 이야기를 다음 주소로 들어가면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글 1)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61

 : 한길사는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 앞에 사죄해야

(글 2)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67

 : 기사로 담지 못한 이야기

(글 3)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72

 : 중앙일간지 후속보도 + ...

(글 4) http://blog.aladin.co.kr/hbooks/5205006

 : 주중식 반론 글 + ...

(글 5) http://blog.aladin.co.kr/hbooks/5205010

 : 한길사 공식 입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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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열 해가 흘렀는데,

2013년 오늘까지도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사과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사과를 하려 했다면 벌써 했을 테니,

아마 앞으로도 사과를 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몇 가지 자료사진을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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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이런 자료들도 있습니다.

참 슬픈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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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는 이 내용증명을 받고도

두 가지 책을 몇 만 권 더 찍어서 몰래 팔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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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은 출판사들이 판매부수를 자꾸 속이니

모든 책에 인지를 붙이셨는데,

이렇게 인지 안 붙인 책을,

이오덕 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버젓이 유통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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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사람들은 무엇을 가르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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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무단출간 열 해가 된 오늘...

가슴이 너무 찌릿찌릿 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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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1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해도 2003년에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를 '아 이오덕님과 권정생님이 주고 받으신 편지로구나'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사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책이, 그 분들이 원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생전에 약속까지 한 일을 어기고 이오덕님이 돌아가신 해에 이런 식으로 나왔다니 놀랍고 안타깝네요. 더구나 돌아가신 분과의 출판계약서까지 없었다는 거짓말을 하면서요. 원고 도둑질까지 해서 말이지요.
"좋은 책 내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 좋은 책이라는 건 아는 사람들이, 그 좋은 책이 어째서 좋은 책인가는 잘 헤아리지도 못 하면서 다만 자신들의 이익을 낼 마케팅으로만 책을 펴낸 그 속사정을 읽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쓸쓸하네요. 무엇이 그리 급해서 그렇게 약속도 안 지키고 거짓말까지 하며 책을 출간했을까요.
저도 그 전에는 단지 이오덕이란 참교육을 하시는 분의 책이라는, 그 생각으로만 이오덕님의 책들을 그저 '읽기'만 했는데 이번에 나온 <이오덕일기>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분의 참교육이 무엇이었는지를 새로 헤아리며 더욱 참삶으로서의 책읽기를 만났지요.
정말 함께살기님의 바람대로 2017년에 참다운 사랑과 꿈을 펼치며 여는 곳에서 새로 펴낼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를 기다립니다.
정말 '좋은 책'은 무엇이고, 그 '좋은 책'을 펴내고 읽는 마음은 무엇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함께살기님! 마음 고생도 많이 하시고 애 많이 쓰셨습니다...




파란놀 2013-11-10 11:01   좋아요 0 | URL
그무렵, 한길사에서는 이 책을 3000권 찍고 1500권 팔았다고 처음에 얘기했지만, 이정우 님이 새벽같이 짐차를 몰고 시골에서 파주로 달려가서 창고에 보니, 책이 1200권 있었습니다. 이정우 님이 한길사에 '서류로 몇 부 찍었는가를 달라' 했지만,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끝까지 서류를 아무것도 안 주었어요. 입으로만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 초판 발행부수와 판매부수는 내부관계자들이 양심선언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 나왔을 때에 appletreeje 님은 반갑게 읽어 주셨군요. 참 고마운 손길입니다. 참말 그렇게 사랑받고 두고두고 읽혀 사람들한테 아름다운 이야기빛 베풀 수 있는 책으로 자리잡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2017년에 책이 못 나오면... 2067년에는 책이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흠, 너무 먼 앞날일는지 모르지만, 2067년에 책이 나와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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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이오덕 선생님 책에서 '참교육'을 읽기는 하지만, '참교육'을 삶으로 누리거나 나누지는 못해요. 그래서 이런 안타까운 일이 터졌지요. 그리고, 잇따라 다른 안타까운 일도 자꾸자꾸 터졌어요. 이제는 좀 홀가분하게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저도 어느 만큼 후련하기도 합니다.
 

자전거순이 5. 두 팔을 벌려 (2013.8.26.)

 


  자전거를 타며 두 팔을 죽 펼치면 얼마나 시원할까. 바람이 머리카락과 눈썹을 날리고, 얼굴 목 가슴 배 다리 샅샅이 건드리면서 지나가면 얼마나 상큼할까.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두 팔을 펼치며 자전거놀이 즐길 때에 무어라 나무랄 수 없다. 얼마나 시원하며 상큼한가를 잘 아니, 신나게 놀 수 있도록 자전거를 반듯반듯 몬다. 뒷거울 살펴 뒤에서 따라오는 자동차 있으면 팔 내리라 하고, 뒤에 자동차 없으면 마음껏 팔벌리기 하도록 해 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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