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67. 2013.11.9.ㄴ

 


  손을 뻗어 책을 쥔다. 손을 놀려 책종이를 만진다. 손으로 책을 쓰다듬고, 손으로 책을 들어서 가슴에 안는다. 이 손은 밥을 먹는 손이고, 흙을 만지는 손이다. 이 손으로 얼굴을 씻고 빨래를 한다. 이 손으로 호미를 쥐고 삽을 쥔다. 이 손으로 풀을 뜯고 나무를 얼싸안는다. 삶을 하나하나 이루고 엮는 이야기가 손에서 비롯한다. 손으로 쓴 글을 손으로 엮고, 손으로 빚은 책을 손으로 읽는다. 책을 읽는 손은 책을 쓰고 엮은 사람들 손을 느낀다. 책방에서 책을 손질하고 다루는 사람들 손길도 책종이를 만지면서 살포시 느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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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143

 


삶을 읽는 문화
― 문화편력기
 요네하라 마리 글
 조영렬 옮김
 마음산책 펴냄, 2009.12.10.

 


  겨울은 천천히 찾아옵니다. 한겨울을 떠올리면 그닥 춥지 않다 할 만한 온도로 똑 떨어져서 아직 가을에 익숙한 사람들한테 찬기운 물씬 풍기더니 다시 따순 바람이 살살 불다가 천천히 찬바람이 불어 추위에 잘 견디도록 이끕니다.


  겨울 들머리에서 봄을 떠올립니다. 봄바람도 이렇게 찾아옵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폭 따스해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따숩게 바람이 부는데, 이러다가도 다시 썰렁한 바람이 찾아들어요. 섣불리 봄을 노래하지 말라는 듯이, 봄은 스스로 알아서 찾아오기 마련이니 서두르지 말라는 듯이, 따숩고 썰렁한 바람이 갈마듭니다.


.. 사람만 메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대지는 분홍빛이 도는 하얀 융단으로 뒤덮인다. 그 위를 온종일 꿀벌들이 분주히 날아다닌다 … 아침의 복닥거리는 통근 전철 안에서 독서가 어울리는 것은 아마도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재미있는 책은 불쾌한 현실을 의식에서 쫓아내 준다 ..  (95, 141쪽)


  지구별에서 북반구에서 살아가기에, 북반구에서 남녘에서 지내는 사람은 따순 바람을 더 품으며 살아갑니다. 남반구에서 지내는 사람이라면 북녘에서 지내는 사람이 따순 바람을 더 누리며 살아가겠지요. 그런데, 더 따순 곳이라 해서 더 좋은 곳이 아닙니다. 더 추운 곳이라 해서 더 나쁜 곳이 아닙니다. 누군가한테는 추위가 추위 아닌 여느 날씨입니다. 누군가한테는 더위가 더위 아닌 여느 날씨입니다. 푹푹 찌는 더위라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며 살아도 땀이 흥건하게 고이니 찝찝할 수 있습니다. 휘휘 매섭게 바람이 불지만, 서로 살을 맞대어 한결 가깝고 살가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알래스카에서는 알래스카대로 삶이 있습니다. 시베리아에서는 시베리아대로 삶이 있습니다. 적도에서는 적도대로 삶이 있어요. 쿠스코에서는 쿠스코대로 삶이 있지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국대로 삶이 있습니다. 함경도와 평안도와 경기도와 전라도는 저마다 다른 삶자리대로 삶이 다르게 있습니다.


  고장마다 누리는 즐거움이 다릅니다. 고을마다 빚는 맛이 다릅니다. 마을마다 어깨동무하는 노래가 다릅니다.


  다 다른 마을이기에 다 같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삶터이기에 다 같은 길을 걷지 않습니다. 백이면 백, 만이면 만, 서로 다른 삶이요 길이며 일이자 놀이입니다. 다만, 살아가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요. 어깨동무하는 마음과 손잡는 마음은 같지요.


.. 일본의 학교에 돌아와 보니, 그저 지식은 조각나고 뿔뿔이 해체되어, 몽땅 암기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객관적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 지식과 단어가 전체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괴로운 일이었다 … 그저 ‘부품이 되어라, 완전히 부품이 되어라’라고 강요당하는 느낌이었다. 내 인격 자체가 난도질당하고 해체되어 가는 공포를 느꼈다 … 공정한 평가 따위는 그럴듯한 말일 뿐이다. 지금의 방식이라면 기계로도 채점을 할 수 있으니 평가 기준이 획일화된 것뿐이다. 단순히 교사가 평가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좋을 뿐인 것으로 … 대다수의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의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할 때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 ..  (105, 176쪽)


  밥을 짓는 마음은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은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빛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다만, 삶자리에 따라 삶이 다르기에,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삶을 누려요.


  오늘날 우리 삶을 돌아봅니다. 오늘날 우리 삶은 도시 물질문명입니다. 서울과 부산이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서울과 전주가, 서울과 옥천이, 서울과 통영이, 서울과 나주가, 서울과 고흥이, 서울과 양양이, 서울과 서천이, 서울과 함평이, 도무지 무엇이 다를까 알 길이 없습니다. 도시와 도시는 거의 똑같습니다.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는 사람들 하는 일은 거의 똑같습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 되려고 하는 공부도 거의 똑같습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대학교를 가려 하든,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대학교를 가려 하든, 아이들이 들추는 교과서가 똑같고 아이들이 머리에 넣는 지식이 똑같으며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마저 똑같은데다가 아이들이 먹고 입고 자는 삶마저 똑같습니다. 틀림없이 다 다른 고장 다 다른 고을 다 다른 마을에서 살아가는 다 다른 아이들인데, 머리에 든 지식이 모두 똑같고 말아요. 그저, 이 지식을 놓고 시험을 치러 다 다른 점수값만 낼 뿐입니다.


  둘레를 살펴보셔요. 전라도사람이라 하더라도 전라도말 제대로 못 합니다. 경상도사람이라지만 경상도말 제대로 모릅니다. 제주사람은 제주말 잊지 않았을까요. 울릉사람은 울릉말 고이 건사할까요. 전라도에서도 고흥사람은 고흥말을 남달리 지키는가요. 전라도 고흥에서도 도화사람은 도화말을 사랑스레 보듬는가요. 전라도 고흥 도화에서도 조그마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이녁 마을말 알뜰살뜰 꽃피우는가요.


.. 일상적으로 수천, 수만 가지 식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그 독성과 품질, 생산지 등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먹기 위해 일하지만,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음식물을 조달하는 삶의 방식을 취하면서도 식재료를 획득하는 과정에 직접 관여하고 있지는 않으니 무리도 아니다. 식재료 확보에서 음식물 섭취까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상표나 브랜드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 바로 이때 … 아이들이 인생의 지혜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것은 격리된 교실에서 배우는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른들과 함께하는 노동을 통해서라는 점은 많은 교육학자가 지적해 온 사실인데, 이것은 새끼 고양이만 관찰해 보아도 알 수 있다 … 품과 시간을 들여 만드는 것이 기쁨이기도 할 텐데, 그것이 점점 생략되고 상품화되고 있다 ..  (154, 179∼180쪽)


  요네하라 마리 님이 쓴 《문화편력기》(마음산책,2009)를 읽습니다. 여러 나라, 또는 여러 겨레 문화를 찬찬히 살피면서 느낀 이야기를 그러모은 책입니다. 일본과 러시아, 일본과 동유럽, 또 일본과 여러 문명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문화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돌아보는 문화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문화’를 누리거나 돌아본다고 말하지만, 막상 우리들이 말하거나 누린다는 문화란 문화가 아닌 ‘도시문명’이나 ‘물질문명’은 아닐까요. 도시에 있는 공장에서 찍은 복제품을 놓고 문화라고 잘못 배우고 잘못 말하며 잘못 누리는 모습은 아닐까요. 공산품도 문화라면 문화라 할 테지만, 참말 공산품을 문화라고 말할 만할까요. ‘옷’이 아닌 ‘나이키 아디다스 베네통’과 같은 공산품 상표를 문화라고 말해도 될까요.


.. 차든 꽃이든 유파에 사로잡히지 말고, 맛있게 달이고 아름답게 꽂으면 되는 것이다 … 4월 말, 여섯 살 되던 생일에 어머니가 정원에 수유나무를 심어 주셨다. “이건 마리 네 나무야. 마리보다 딱 여섯 살 어리단다. 귀여워 해 주렴.” 이 말을 듣고 나니 피를 나눈 동생 같은 기분이 들어 내게는 정원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나무가 되었다 ..  (206, 219쪽)


  요네하라 마리 님은 《문화편력기》라는 책에서 문화를 말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요네하라 마리 님은 그저 이녁이 살아온 나날을 말할 뿐입니다. 마리 님을 둘러싼 어머니와 아버지 삶을, 또 마리 님 삶을, 마리 님과 마주한 동무와 이웃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이야기 한 자락으로 적바림하는구나 싶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읊지 않습니다. 학자나 전문가가 외는 이야기를 읊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문화는 교과서에도 학문에도 없어요. 문화는 바로 삶이고, 삶이 곧 문화예요. 삶을 말할 때에 문화를 말합니다. 삶을 누릴 때에 문화를 누립니다. 삶을 가꿀 때에 문화를 가꿔요. 삶이 없으면 문화가 없고, 삶을 잊으면 문화 또한 사라집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어떤 문화가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사람은 스스로 어떤 삶을 누릴까요. 오늘날 이 땅 이 나라 이 고장 이 마을에는 문화가, 삶이, 어느 하나라도 똑똑하거나 맑거나 아름답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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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33. 2013.8.30.

 


  여러 달 떨어져 지낸 어머니와 만나기 하루 앞서, 아주 단출하게 아침밥을 차린다. 퍽 단출하게 차린 밥이라 큰접시에 밥을 푸고 무와 오이를 썬 다음 달걀 한 알 올린다. 작은아이가 냉큼 달걀부터 집어서 먹으려 하기에, “보라야, 아직 다 안 차렸으니 조금 기다리렴.” 하고 말한다. 미역국을 옆에 놓고, 돈나물 뜯어서 헹군 뒤 밥접시 한쪽에 올린다. “자, 이제 먹자.” 이제 밥술을 들려는데, 미국에서 석 달 공부 마치고 일산 할머니 댁으로 돌아온 옆지기가 전화를 건다. 아이들은 밥을 먹다 말고 전화를 받는다. 그래, 너희한테는 어머니 목소리가 밥이 되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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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고운 빛을 곱게

 


  언젠가 ‘가난한 골목동네 골목사람 모습’을 누군가 흑백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본 적 있다. 이 사진에 나오는 가난한 골목동네는 흙바닥이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길바닥을 깔기 앞서이다. 서울 마포쯤 가난한 골목동네 사진이었다고 떠오르는데, 이 사진들 가운데 아이들 뛰노는 작은 집에서 마당에 기저귀와 옷가지 빨랫줄에 넌 사진이 있었다. 때는 봄이라, 흙으로 된 길바닥 곳곳에는 풀이 돋았다. 나는 이 사진을 보고는 ‘흑백필름만 있던 옛날’이 아니라 ‘칼라필름이 그리 비싸지 않던 무렵’이니, 이와 같은 모습은 무지개빛이 또렷하게 드러나도록 찍을 때에 한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진이 되겠다고 느꼈다. 아니, 이렇게 예쁘게 살아가는 예쁜 사람들 예쁜 빛을 왜 흑백으로만 찍으려 하는지 궁금했다.


  다큐사진은 흑백이어야 하는가? 가난한 사람들 골목동네는 흑백으로 찍어야 맛이 살아나는가?


  사진길 걷는 사람들은 스스로 틀을 깨야 한다고 느낀다. 다른 누군가 세운 틀이 있으면 그 틀까지 깨고 새로운 빛과 새로운 아름다움과 새로운 사랑을 찾아 씩씩하게 사진 한길 걸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바깥에서 구경꾼 눈길로 바라본다면 ‘가난한 골목동네’이다. 그렇지만,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 이른바 ‘주민’이나 ‘동네사람’ 눈길로 바라본다면, 아이들 예쁘고 어버이도 예쁜 살가운 보금자리이다. 봄바람에 기저귀 나부끼고 봄나물 돋는 골목동네 사랑스러운 빛을 느껴야지. 이 빛을 흑백으로 뭉개지 말아야지.


  흑백사진이 ‘빛을 뭉개는 사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흑백사진을 아무 자리에서나 찍으면 빛을 뭉갠다. 칼라사진을 아무 자리에서나 찍으면 빛이 어지럽다. 흑백도 칼라도 알맞다 싶은 자리에 알맞게 써야 한다. 이때에는 흑백이 낫고 저때에는 칼라가 낫다고 할 수 없다.


  흑백필름으로 찍은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싱그러운 봄빛을 담을 수 있다. 빛과 삶과 꿈과 사랑을 한데 어우르면서 ‘사진에 담는 사람들이 바로 내 이웃이면서 나 스스로’라고 깨달으면, 어떤 필름, 또는 어떤 디지털파일로 찍든, 사진에 고운 빛을 곱게 담을 수 있다.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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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11-1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렇네요. 왜 흑백으로만...?
찍는 사람 눈에는 그곳이 잿빛으로만 보였나봐요.
제가 흑백사진을 안 좋아해요.
알록달록한 색깔 보는 재미가 없어져서~

파란놀 2013-11-12 13:03   좋아요 0 | URL
음, 좋은 말씀이에요.
잿빛으로만 보여서 흑백을 찍는다고도 할 수 있네요.
고맙습니다.
 

고흥집 26. 빨래빛 고운 2013.5.1.

 


  아이가 있는 집은 빨래빛이 한결 곱다. 아이들한테 입히는 옷은 알록달록 어여쁘기 때문이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알록달록 어여쁜 빛이 흐드러지는 옷을 입을 만하다. 아이도 어른도 아름다운 빛을 실컷 누리면서 싱그러운 풀과 파란 하늘하고 사이좋게 어울리면 날마다 즐겁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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