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들어온 책

 


  모든 책은 마음으로 들어옵니다.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은 책은 삶으로 들어오지 못한 책입니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일 때에 사랑씨앗 한 톨 두 톨 드리우면서 내 마음밭에서 사랑나무가 자라요. 사랑나무가 자랄 적에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사랑말 되고, 내 손으로 쓰는 글은 사랑글 되며, 내 목청으로 부르는 노래는 사랑노래 됩니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 하나 곱게 건사할 수 있다면, 밥을 지으며 사랑밥 나눕니다. 집을 돌보며 사랑집 가꿉니다. 옷을 기우며 사랑옷 입습니다. 일은 사랑일 되고, 놀이는 사랑놀이 될 테지요. 마실은 사랑마실이 될 테며, 이야기는 언제나 사랑이야기 되겠지요.


  책을 마음으로 담지 않는다면, 마음밭에 사랑씨앗 못 뿌립니다. 사랑씨앗 못 뿌렸으니 마음밭에서 사랑나무 자랄 수 없고, 다른 나무도 자랄 수 없어요.


  책을 읽는다고 한다면, 스스로 마음밭에 씨앗을 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은 길이 아닙니다. 책은 나 스스로 내 삶길 열도록 북돋우는 길동무입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밭에 스스로 뿌릴 씨앗이 무엇인가 하고 알아차립니다. 책을 읽는 사이 내 삶길을 어떻게 다스릴 적에 아름다운가 하고 깯다습니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을 차근차근 아끼고 사랑하면 그 책이 누구 손으로 돌아가든 아름답게 읽힐 수 있으리라 느껴요. 곧, 내가 읽은 책은 내 삶을 살찌우는 밑거름 되고, 내가 읽은 책으로 내 삶을 아름답게 다스리면, 이 삶에서 흐르는 빛이 둘레로 찬찬히 퍼져 이웃들이 저마다 이녁 삶을 아름답게 다스리도록 돕습니다.


  내가 읽은 아름다운 책을 이웃한테 건네주어도 됩니다. 헌책방이라는 곳 있어, 내가 읽은 책 가만히 내놓으면, 누군가 이 헌책방으로 찾아와서 내가 내놓은 책을 기쁘게 장만하겠지요. 또는, 내가 읽은 책에서 얻은 아름다운 빛으로 내 삶을 가꿀 수 있으면, 이 삶빛은 언제라도 둘레에 환하게 드리울 테니, 내 이웃과 동무는 내 빛을 나누어 받으면서 즐겁게 삶읽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은 마음에서 빛나 따사로운 바람이 됩니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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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을 읽으면서

 


  밤에 잠들며 맞이하는 꿈이란 무엇인가 하고 며칠 앞서부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오늘 꾼 꿈을 새삼스레 돌아보면서 더 생각해 본다. 오늘 꿈에서 나는 어느 전쟁터에서 전쟁 손길이 안 닿는 곳으로 떠나려 하는 어느 다섯 식구 집안에서 막내로 나왔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나, 아니 나쁜 일을 안 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나, 평화로운 나라에 전쟁을 몰고 온 다른 나라에서는 ‘평화를 외치고 전쟁을 꾸짖는 내 어버이’ 같은 사람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갈기갈기 찢어죽인다. 게다가 우리 식구들 미처 집을 떠나지 못했는데 다른 나라 군인들이 우리 마을로 들어오고 말았다.


  내 꿈은 여기에서 끝났다. 작은아이가 쉬 마렵다며 끙끙대는 소리에 잠을 깨어 쉬를 누인다. 다시 누워 보았으나 이 꿈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 꿈은 어디에서 왔을까. 내가 앞으로 맞이할 삶이 나타난 꿈인가, 아니면 나와 같은 삶을 잇는 지구별 다른 어느 곳에서 곧 벌어지거나 이제 막 벌어지는 모습인가, 아니면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나 살기 앞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 다른 목숨으로 살다가 겪은 모습인가.


  어느 모로 헤아린다면, 나는 ‘꿈속에 나온 내 어버이와 형과 누나’와 함께 다른 나라 군인한테 붙잡혀 나란히 죽은 뒤에 이 나라에 다시 태어났는지 모른다. 이렇게 죽고 나서 다른 어느 곳에서 다른 삶으로 태어났다가,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났을 수 있다. 이리하여 내 꿈에 내 앞삶이 나타나고 내 뒷삶도 나타날 수 있으리라 느낀다.


  잠이 깰 무렵, “희망이 없으니 전쟁을 생각한다”라는 말이 내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꿈에 나온 우리 다섯 식구를 붙잡아 죽인 군인’들은 누가 시키는 대로 우리 다섯 식구를 붙잡아 죽인다고 말했다. 어디쯤이었을까. 폴란드쯤이었을까. 또는 칠레쯤이었을까. 내가 꿈속에서 죽은 그 나라 그곳은.

  꿈을 깬 뒤, 꿈속에서 나한테 찾아온 “희망이 없으니 전쟁을 생각한다”라는 말을 더 돌아본다. 전쟁을 생각하더라도 나아질 일이 없다. 누군가를 잡아서 죽인다 한들 어둠이 더 커지지 않고, 빛을 잠재우지 못한다. 그러니까, 전쟁을 일으킨대서 나아지는 삶이란 없다. 스스로 희망을 싹둑 잘라서 버리려 하더라도 희망은 없어지지 않는다. ‘꿈속에서 함께 죽은 우리 다섯 식구’는 가슴에 빛을 안고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나는 이곳으로 왔다면, 다른 네 식구는 어디로 갔을까. 저마다 어느 곳으로 가서 어떤 새 삶, 새 빛, 새 이야기를 일굴까. ‘내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과 누나’로 함께 살던 꿈속 식구들은 오늘 이곳에서 내 동무로 함께 태어났을 수 있고, 내 동생으로, 어쩌면 내 아이로 함께 태어나 살아갈 수 있다. 모르는 일이리라. ‘꿈속에서 우리 식구를 죽인 군인들’도 곧 전쟁터에서 죽고 말아, 내 동무나 이웃으로, 어쩌면 내 아이로 함께 테어나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일은 하나도 모른다 할 만하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군인과 정치꾼은 무언가 깨달을까. 죽으면서 몸을 잃고 넋이 빠져나가는 그즈음 무언가 알아차릴까. 전쟁으로는 오직 전쟁만 찾아올 뿐이며, 평화로는 늘 평화를 누리는 줄 느낄까.


  어둠을 읽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어둠을 맞이한다. 빛을 읽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빛을 마주한다.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사랑을 하고 싶으면 삶과 넋과 말 모두 사랑이요,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면 삶과 넋과 말 모두 사랑하고 동떨어진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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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77] 설거지

 


  비질과 걸레질 하며 집안을 치운다.
  밥을 하면서 설거지를 한다.
  아이들과 놀며 삶을 사랑한다.

 


  아직까지 적잖은 사내들은 ‘설거지를 거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밥하기와 설거지는 따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밥을 차리고 국을 끓이며 반찬을 하는 동안 설거지감 잔뜩 나옵니다. 밥하는 사람은 밥하는 동안 수없이 설거지를 하고 또 합니다. 아직 어수룩한 요리사는 설거지감만 잔뜩 내놓습니다. 어수룩하기 때문에 밥상에 차릴 것만 살필 뿐, 밥과 국과 반찬을 마련하는 동안 쓰는 부엌 연장을 제자리로 착착착 두도록 건사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설거지를 거든다’고 말하려면 ‘밥을 함께 지어’야 합니다. ‘밥을 짓겠다’고 말하려면 밥하는 동안 바지런히 설거지를 할 노릇입니다. 아이들과 노는 삶이란, 다 함께 이루는 삶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란, 돈만 버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일하는 어른 삶과 어른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 삶을 함께 빛내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4346.11.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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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17 18:32   좋아요 0 | URL
어른들이 하는 일이란, 돈만 버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일하는 어른 삶과 어른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 삶을 함께 빛내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가 마음에 닿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드려요~*^^*

파란놀 2013-11-18 02:26   좋아요 0 | URL
설거지를 거든다고 생각하는
이 땅 사내들이
한 가지 생각을
가만히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면서 이 글을 썼습니다 ^^
 
바다가 보이는 교실 창비시선 65
정일근 지음 / 창비 / 198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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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63

 


미나리꽝에 미나리꽃
― 바다가 보이는 교실
 정일근 씀
 창비 펴냄, 1987.10.10.

 


  예부터 마을이름은 마을사람 스스로 지었습니다. 예부터 관청에서는 마을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몇몇 권력자가 중국에서 중국글 끌어들이면서 고장이름과 고을이름을 한자로 고치기는 했으나, 마을이름만큼은 마을사람 스스로 붙인 이름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2014년이 코앞으로 다가온 2013년 가을, 이 나라 골골샅샅 ‘새 주소 이름표’가 집집마다 붙습니다. 마을이름이란 먼먼 옛날부터 마을사람 스스로 지어서 가리켰는데, 이 마을이름을 ‘그 마을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공무원’이 함부로 붙이고는 엄청난 돈 퍼부어 이름표 새로 만들어 척척 걸어 놓습니다.


  독재도 이런 독재가 없습니다. 마을이름을 누가 멋대로 고쳐서 붙이는가요. 왜 공무원이 마을이름을 멋대로 붙이는가요. 전문가와 역사학자를 불러서 이름을 살폈는가요? 아닐 노릇이지요. 마을이름은 마을사람 스스로 붙여야지요. 왜 마을사람 아닌 딴 마을 전문가와 역사학자를 부르는가요. 왜 공무원이 멋대로 마을이름 바꾸겠다며 시끌벅적하는가요.


.. 산들아, 흰옷으로 갈아 입고 그리운 그 나라 가자 / 섬들아, 해동갑하여 가자스라 / 신라도 백제도 고구려도 없는 땅 / 옥사마다 문이 열리어 / 위 증즐가 태평성대가 당도하는 땅 / 새벽이면 늘 푸른 강물 소리 / 내 아낙의 흰 빨래 소리 눈부신 나라로 ..  (그리운 그 나라)


  아이한테 주는 이름은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붙입니다. 다른 사람이 붙여서 아이한테 주는 이름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만난 두 사람이 사랑으로 낳은 아이한테는, 바로 사랑을 담은 어버이 넋을 이름으로 베풉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머니 아버지 이름을 짓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 이름을 짓습니다. 아이는 곧 어머니 아버지 되어 새로 아이를 낳고는 새로운 이름을 짓습니다.


  마을을 흐르는 냇물에는 마을사람 마음 고이 담은 이름을 붙입니다. 마을을 둘러싼 멧자락에는 마을사람 사랑 살풋 담은 이름을 붙입니다. 그래서 여러 마을을 둘러싼 멧자락이라면 마을마다 달리 붙인 이름이 있기 마련입니다. 골짜기 하나를 놓고도, 이쪽 마을에서는 이 이름을 쓰고 저쪽 마을에서는 저 이름을 쓰기 마련입니다. 다 다른 삶이기에 다 다른 이름을 붙여요. 관청이나 공공기관에서 함부로 ‘통일’할 이름이 아닙니다.


.. 그대 내 적이 아니다 / 용서하라 나 또한 그대의 적이 아니다 ..  (적과 적의)


  누군가는 ‘피나물’이라 말합니다. 누군가는 ‘노랑매미꽃’이라 말합니다. 또, 이 나물이나 꽃은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이름이 다릅니다. 고장말이랑 고을말이랑 마을말은 사뭇 다르니까요.


  깊은 시골에는 학교가 따로 없이 분교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분교는 곳곳에 있습니다. 시골 읍이나 면에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쓰는 말하고 분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쓰는 말이 다릅니다. 면소재지 학교 아이들이 쓰는 말하고 큰 읍내 학교 아이들이 쓰는 말이 다릅니다. 읍내에서 더 나가는 도시 아이들이 쓰는 말이랑 시골 아이들 말이 다릅니다.


  이를테면, 전라도에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말이 달라요. 전라남도에서도 광주와 순천에서 쓰는 말이 달라요. 순천과 고흥에서 쓰는 말이 달라요. 고흥에서도 고흥읍 말과 도양읍 말이 다르고, 동강면과 남양면과 과역면과 도화면 말이 달라요. 도양읍에서도 도양 읍내와 소록도 말씨가 다르고, 소록도 너머 금산면 거금도 말씨가 다릅니다. 거금도에서 배 타고 한참 더 들어가는 거문도 말씨는 또 사뭇 다릅니다. 도양읍을 둘러싼 자그마한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말씨는 또 섬마다 사뭇 달라요.


  그런데, 거금사람은 거문사람을 ‘시골뜨기’로 여깁니다. 도양사람은 거금사람을 ‘시골뜨기’로 삼습니다. 고흥 읍내 사람은 도양사람을 ‘시골뜨기’로 바라봅니다. 순천사람은 고흥사람을 ‘시골뜨기’로 칩니다. 광주사람은 순천사람을 ‘시골뜨기’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울사람은 광주사람을 ‘시골뜨기’로 마주합니다.


.. 왜 저 탑이 아직도 서 있을까 / 진해 시립도서관 앞을 지날 때마다 / 군관민과 학생까지 합심하여 받들고 서 있는 / 시월유신 기념탑을 본다 / 행정적 착오인지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지 / 이미 학생들의 교과서 속에서도 /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 그 해 시월의 악법이 / 70년대의 목을 죄던 검고 피묻은 손들이 / 기념탑으로 서 있는 것을 본다 ..  (탑, 그리고)


  우리 식구는 아주 깊은 시골뜨기로 살아갑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곳은 맨 끝자락 시골뜨기로구나 싶습니다. 섬은 아니나 뭍에 있는 마을에서 섬과 같은 곳에 있습니다. 면서기 앞에서 힘을 못 쓰는 마을이고, 읍내 공무원 앞에서 꼼짝을 못 하는 마을인, 2013년대에도 아스라한 봉건사회 기운을 느끼는 시골에서 지냅니다.


  그저 우리 식구는 이곳 성받이 아닌 다른 고장 다른 성받이인 터라 살짝 홀가분하기는 한데, 읍내에도 면소재지에도 안 사는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눈길을 어디에서나 쉬 느낍니다. 이웃 도시로 마실을 갈라치면 고흥 시골사람을 얕보는 눈길을 어디에서나 이내 느낍니다.


  곰곰이 생각할 일 없이, 이러니 이 깊은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 모두 이녁 딸아들을 도시로 보내기 바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되도록 가장 높은 서울로 보내고, 서울이 안 되면 인천이나 수원으로, 인천이나 수원이 안 되면 안산으로, 안산이 안 되면 대전으로, 대전이 안 되면 광주로, 광주가 안 되면 부산이라도, 하다못해 순천이나 여수나 광양으로 딸아들 보내어, ‘시골뜨기’ 소리 안 듣게 하고 싶었다고 깨닫습니다.


  사회와 나라에는 위도 아래도 없지만, 언제나 아랫사람 되어 짓밟힌 슬프고 고단한 나날을 이녁 딸아들한테 물려주기 싫은 마음을 알 만합니다. 왜냐하면 물질문명 사회가 되었어도, 이 사회와 나라에는 아직도 돈과 직위와 이름값과 학력과 뭣뭣을 놓고 위아래로 나누는 계급과 계층이 도사리거든요.


.. 너희들은 달려가야 한다 / 한 마리 뻣센 물고기가 되어 / 작은 시냇물을 만나고 큰 강물을 만나고 / 마침내 푸른 바다를 만나고 만나 /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 ..  (바다가 보이는 교실 4)


  유럽에서 사회와 문화가 앞선 나라는 대학교에 계급이나 계층을 모두 없앴다고 합니다. 이들 유럽에서 사회와 문화가 앞선 나라는 대학교수가 한 곳에서 오래도록 강의를 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수는 몇 해쯤 한 곳에서 가르쳤으면 반드시 다른 고장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 나라 골골샅샅 돌아다니며 강의를 해야 합니다. 우리로 친다면, 서울에서 다섯 해 강의했으면 다음에는 강원도로, 그 다음에는 충청도로, 그 다음에는 제주도로, 그 다음에는 전라도로, 그 다음에는 경상도로, 그 다음에는 경기도로, …… 이렇게 아주 다른 고장으로 옮기도록 제도를 마련했다고 해요. 서울 한 곳에 뼈를 묻도록 하지 않는답니다. 서울에서도 어느 대학교 한 곳에 뼈가 묻히도록 하지 않는답니다.


  그러니까, 대학교라는 곳이 이 나라에 백서른 군데쯤 있다면, 전국 시와 군에 대학교가 한 군데씩은 있어야 한다는 소리요, 서울이나 부산이 아무리 크더라도 대학교가 대여섯 군데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사가 다섯 해 지나면 다른 학교로 떠나도록 하듯이, 대학교 강사(교수)도 한 곳에 눌러앉지 못하도록 온 나라를 휘휘 돌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이러할 때에 평화와 평등이 자리잡아요. 이렇게 골골샅샅 두루 아끼고 사랑하며 껴안도록 사회 얼거리 잡을 적에 민주와 통일이 자라요.


  몇몇 대학교와 회사를 바라보며 도시로 떠나야 하지 않아요. 시골에서 흙 만지며 아름답게 살아갈 길이 있어요. 서울공화국이나 도시공화국 아닌, 제대로 된 지역자치 이루어야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문화도 문명도 대학교도 출판사도 몽땅 서울로 보내면 무엇이 아름답겠어요. 이러면서 공장과 발전소와 골프장 따위는 모조리 서울 바깥 시골에 때려지으면 무엇이 아름다울까요.


..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힘차게 부르는 / 남쪽 우리반 아이들아 / 통일은 전망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라 / 저 산 너머에도 하늘과 땅과 바다가 있단다 / 마을과 사람과 길이 있단다 ..  (바다가 보이는 교실 8)


  정일근 님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창비,1987)을 읽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이란, 바다가 보이는 마을입니다. 바닷가 마을이요 바닷가 학교입니다. 바다를 품에 안는 삶터이며, 바다를 품에 안는 사람들입니다.


  바다내음을 마십니다. 바닷바람을 먹습니다. 바닷가에서 바다노래를 부르고, 바다가 베푸는 파랗디파란 물결빛을 받아안습니다.


.. 빈들을 가꾸어 씨 뿌리는 / 농부의 마음으로 / 역사와 분단의 험한 밭을 일구는 / 교사의 마음으로 / 이 땅의 낮고 어두운 곳의 / 우리 이웃들과 함께 ..  (농부의 마음으로)


  바다에서는 ‘바다아이’가 자라요. ‘바다어른’이 바다아이한테 ‘바다사랑’을 보여주고 가르치고 알려주고 물려줍니다. 바다아이는 바다숨결 마시면서 바다빛을 가슴으로 포옥 안습니다.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자라 미나리꽃이 피어요. 밭에서는 푸성귀가 자라 갖가지 풀꽃이 핍니다. 논에서는 나락꽃이 핍니다. 숲에서는 숲꽃이 핍니다. 들에서는 들꽃이 피고, 사람들 살아가는 마을에서는 마을꽃이 피어요.


  사람들은 사랑꽃을 피웁니다. 아이들은 꿈꽃을 건사합니다. 어른들은 노래꽃과 춤꽃으로 삶을 가꾸어 삶꽃을 이룹니다.


.. 그 숭한 오월은 가고 속절없이 다 가고 / 저 너른 미나리꽝에 하얀 미나리꽃 ..  (5월, 미나리타령)


  우리 집 네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에 붙는 ‘관청 공무원이 붙인 새 주소’는 ‘객사거리길’입니다. 웃기지요. 동백마을이면 ‘동백길’이라 해야 올바를 텐데요. 이웃 신기마을은 ‘신기길’이라 해야 할 테고, 이웃 원산마을은 ‘원산길’로, 이웃 호덕마을은 ‘호덕길’이라 해야 할 터입니다.


  뭔 짓입니까. 마을에 마을사람이 먼먼 옛날부터 스스로 붙인 이름을 짓밟고 깔아뭉개는 이 관청 공무원들 뻘짓이란 뭔 놀음놀이입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서울과 부산과 광주에서 똑같은 교과서를 쓰고 똑같은 시험공부를 합니다. 서울과 고흥에서도 똑같은 교과서를 쓰고 똑같은 말과 지식을 배우며 똑같은 대학입시를 치릅니다.

  다 다른 고장 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은 교과서를 외워야 하는 오늘날 사회입니다. 다 다른 고을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삶을 등돌린 채 다 같은 도시로 나아가려 합니다. 다 다른 마을 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은 입시지옥에 시달리면서 다 다른 사랑과 꿈을 빼앗기고 맙니다.


  다 다른 삶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런 시도 문학도 노래도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랑과 꿈이 짓밟힌 자리에는 어떠한 빛도 숨결도 햇살도 드리우지 않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은 이제 어디에 얼마나 있나요. 오늘날 이 나라는 아파트만 보이는 도시요, 공장만 있는 시골이며, 자가용만 넘치는 도시에, 농약바람만 부는 시골입니다. 4346.11.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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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3.11.12. 큰아이―노래 적어 줘

 


  큰아이가 문득 “이마에 땅방울” 노래를 적어 달라 말한다. 차츰 한글을 깨치는 요즈음, 이 노래를 어떻게 쓰는지 궁금한가 보다. 그래서, 노래이름 “개구쟁이 산복이”부터 적고, 하나하나 반듯반듯 적바림한다. 큰아이가 그림 그리다 말아 뒹구는 종이를 찾아서 적는다. 다 적고 나서 큰아이와 하나씩 짚으면서 노랫말을 되새긴다. 이렇게 하다가 한 군데 잘못 적은 곳을 깨닫는다. 미안하구나, 틀린 데 없이 적어야 보기 좋은데. 그런데 이렇게 적어서 하나씩 짚는데에도 “이마에 땀방울”을 “이마에 땅방울”로 읽는다. ‘ㅁㅇ’ 받침이 아이한테는 어려운가? 그러고 보면, ‘강남콩’을 ‘강낭콩’으로 바꾸어 쓰는 한글맞춤법이다. 이리 바꿀 까닭이 없는데, ‘ㅇㅇ’ 사이에 ‘ㅁ’이 끼면 소리내기 안 좋다면서 갑작스레 이리 바뀌었다. 아이들이 퍽 어릴 적에는 소리내기가 어려울는지 모른다. 그러나, 말을 글로 바르게 적으면서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 으레 누구라도 올바로 말하고 알맞게 적을 줄 안다. 소리가 새거나 때로는 틀리게 말하는 모습이란 귀엽지 않은가. 모두들 이렇게 소리가 새는 말투로 말하다가 천천히 천천히 제자리를 잡으면서 무럭무럭 자랄 텐데.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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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17 18:18   좋아요 0 | URL
이렇게 자기가 궁금해 하는 글자를 하나씩 익히며 한글공부를 하면
더욱 풍요롭고 즐거운 말을, 마음속에 가지게 될 것 같아요~~

파란놀 2013-11-18 02:29   좋아요 0 | URL
차근차근 가르쳐 주지는 않지만,
아이로서도 궁금하기에
자꾸 물으면서 알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