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이 있다.

'그림책 읽는 엄마'라는 모임에서

어느 분이 이런 책을

어렵게 찾아내어 읽는다고

이야기한다.

 

궁금해서 찾아보는데

이 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서 1971년에 번역된 적 있다 하는데

어떤 이름으로 번역되었는지

찾기도 어렵다.

 

그러나...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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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백화 - 백두산 산약초 100, 풍광 100
안승일 사진 / 호영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69

 


하얀 숲에 환한 꽃들
― 白山百花
 안승일 사진
 호형 펴냄, 2013.6.3.

 


  사랑은 마음속에서 자랍니다. 네 마음이나 다른 사람 마음 아닌 바로 내 마음에서 내 사랑이 자랍니다. 내 이웃은 이녁 마음에서 이녁 사랑이 자라고, 내 동무는 이녁 마음에서 이녁 사랑이 자라지요. 저마다 다 다른 사랑이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 마음에서 자랍니다.


  사진은 사랑을 찍을 때에 태어납니다. 나는 내 사랑을 찍으며 내 사진을 빚고, 내 이웃은 이녁 사랑을 찍으며 이녁 사진을 빚습니다.


  사랑을 찍어 사진이 되니, 먼저 내 마음속에서 사랑이 자라도록 삶을 가꿀 노릇입니다. 삶을 가꾸지 못한다면 사랑이 자라지 않고, 사랑이 자라지 않으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사진은 그럴듯한 모습을 찍는 일이 아닙니다. 사진은 멋들어지는 모습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사진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찍는 일입니다. 사진은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는 삶을 꾸밈없이 사진으로 담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는 삶이라면 아름다운 사진이 태어납니다. 곱게 가꾸는 삶이라면 고운 사진이 태어나고, 착하게 가꾸는 삶이라면 착한 사진이 태어나요.


.. 이런 구름 바다를 기다리며 나는 산에 산다 … 천문봉, 용문봉. 그리고 7월의 유빙은 하나하나가 보석이다 … 원래는 짐승들의 산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갔나 ..  (23, 27, 35쪽)

 

 


  삶을 가꾸는 매무새대로 말이 태어납니다.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라면 말 또한 아름답게 흐릅니다. 삶을 아름답게 가꾸니 눈짓과 몸짓 또한 아름답고, 눈빛과 마음빛 또한 아름답지요.


  눈짓과 눈빛이 아름다울 때에는 내 둘레 무엇을 보거나 누구를 마주하든 아름다운 눈썰미로 헤아릴 수 있어요. 아름다운 눈썰미로 내 둘레를 바라본다면, 내가 바라보는 그대로 사진으로 찍을 적마다 아름다운 빛그림 이루어집니다.


  꾸미고 자시고 할 일이 없고, 꾸미거나 자시고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느끼는 대로 담으면 넉넉하고, 내가 사랑하는 대로 찍으면 즐겁습니다.


  어떤 모습이 나올 때까지 굳이 안 기다려도 됩니다. 기다리면서 찍는 사진이 아니에요. 언제나 다 다르게 즐거움을 누리며 찍는 사진입니다. 오늘은 이 모습을 찍습니다. 어제는 저 모습 찍었습니다. 모레에는 그 모습을 찍으면 됩니다.


  날마다 새롭게 찾아오는 하루예요. 날마다 새롭게 만나는 하루예요. 날마다 새롭게 깨닫는 빛이요 볕이며 무지개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새롭게 이루는 이야기 되고, 날마다 새롭게 찍는 사진입니다.

  날마다 내 모습을 사진으로 한 장씩 찍어 보셔요.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동이 트는 곳을 바라보면서 내 모습을 사진으로 한 장씩 찍어 보셔요. 늘 똑같이 맞춘 때에 찍어 보셔요. 삼백예순닷새 다 다른 빛과 결이 흐르면서 다 다른 모습이 찍힐 테고, 다 다른 모습마다 다 다른 이야기 배어나오리라 느껴요.


.. 이제 곧 화산이 폭발한다구? 개소리들 하지 마라 … 백두산은 수림한계선을 넘으면 아무데나 꽃밭이다 … 손톱만 한 좀참꽃들이 모여 통곡하듯 붉은 벌을 이룬다 ..  (43, 45, 59쪽)

 

 


  사진을 찍으러 먼 데에 갈 일이 없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내 삶자리에서 찍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구태여 어느 한 곳 콕 집어서 취재를 나서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노상 내 보금자리에서 태어납니다.


  내가 가장 살아가고 싶은 곳이 바로 내가 가장 사진으로 찍고 싶은 곳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싶은 님이 바로 내가 가장 사진으로 찍고 싶은 사람입니다. 내가 가장 즐거운 나날이 내가 가장 사진으로 찍고 싶은 때입니다.


  그림이 될 만하다거나 멋있어 보이는 모습을 찾으러 떠돌지 말아요. 스스로 삶을 찾으려고 마음을 기울여요. 저마다 다른 아름다운 삶을 스스로 깨닫는다면, 사진뿐 아니라, 글도, 그림도, 노래도, 춤도, 무엇보다 삶과 사랑과 꿈도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여기저기 떠도는 사람은 ‘떠도는 사진’을 찍습니다. 떠도는 사진에 뜻이 없지 않습니다. 떠도는 사진에는 ‘떠도는 삶’을 담는 빛이 흐릅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녁 삶을 떠돌이로 보내는 데에 보람과 즐거움과 사랑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면, 이러한 물결을 고이 헤아리면서 아끼면 됩니다. 왜냐하면, 남이 보기에는 떠돌이라 할 테지만, 나 스스로 보기에는 ‘떠돌이 = 머물기 = 삶’이 되니까요.


  스스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사진기를 쥘 수 없습니다.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사진기를 든다면, 아마 ‘문화’나 ‘예술’이나 ‘작품’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화나 예술이나 작품은 삶이 아니고 사랑이 아니며 꿈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이란 사진일 뿐이기에, 사진에 다른 이름을 꾸밈말처럼 붙인다고 해서 사진이 되지 않아요.


.. 사진 한 장 찍자고 여기서 먹고 자며 기다리는 곰 같은 놈 … 차 타고 지나다 우연히 찍은 사진 아니다 … 그렇다. 바람이다. 빛이다. 그래서 자연은 풍광이다 ..  (113, 147, 171쪽)

 

 


  사람은 누구나 사진을 찍으려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돈을 벌려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꽂이를 하거나 대학교를 다니려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왜 살아갈까요.

  사진을 찍으려 한다면, 맨 먼저 ‘사람은 왜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실마리를 풀지 않으면, 삶도 사진도 다른 어느 것도 실마리를 풀지 못하리라 느껴요.


  사람은 왜 살아가는가? 그래요, 사람은 살아가려고 살아가지요. 왜 살아가려고 살아가느냐? 살고 싶으니까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죽으려고 죽겠지요.


  살고 싶기에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죽고 싶기에 사진을 안 찍습니다. 살고 싶기에 사랑을 나눕니다. 죽고 싶기에 사랑을 안 나눕니다. 살고 싶기에 평화와 민주와 평등으로 나아갑니다. 죽고 싶기에 전쟁과 차별과 독재로 나아갑니다.


  모든 사진은 다큐사진이면서 패션사진이고 삶사진입니다. 모든 사진은 다큐멘터리가 되고 패션이 되면서 삶이 됩니다. 굳이 금을 그을 수 없습니다. 다만, ‘상업사진’은 없습니다. 상업사진이라는 이름부터 올바르지 않습니다. 상업사진 아닌 ‘상업’이나 ‘직업’이라고 해야 올바릅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의사와 판사가 직업이나 상업이듯이, 사진관을 꾸려 돈을 버는 일도 직업이나 상업이에요.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르다는 틀로 말할 수 없는 직업이나 상업입니다.


  사진기를 써서 돈을 벌 수 있어요. 붓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상업이나 직업이니까요. 그런데, 의술을 쓰면서 돈을 안 버는 사람도 있어요. 그저 의술로 삶을 일구거나 빛내는 사람이 있어요. 자원봉사나 의료봉사 같은 이름이 아닌, 의술을 삶으로 녹여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예요. 사진기로 상업이나 직업을 얻을 수 있는 한편, 삶을 사진 하나로 일구거나 빛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 사진을 만드는 건 구름과 안개다. 사진기나 필름이 아니다 … 이제는 주차장이 되어 버린 거기. 양귀비가 무리로 피던 곳 … 이발소 사진이 돼 버려도 나는 좋다. 이 사진 ..  (173, 187, 201쪽)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은 흙으로 삶을 일구거나 빛냅니다. 한자말 이름으로는 ‘농사(농사꾼)’나 ‘농부’라 하고, 한국말 이름으로는 ‘흙일꾼’이나 ‘흙지기’가 되는 이들은, 흙으로 삶을 짓습니다. 다만, 흙을 만지면서도 상업이나 직업이 될 수 있어요.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른 금긋기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흙을 만져 돈을 벌고 싶어요. 누군가는 흙을 만져 삶을 빛내고 싶어요. 누군가는 흙을 만지면서 돈을 잔뜩 만지고 싶어요. 누군가는 흙을 만지면서 삶을 보드랍게 보살피고 싶어요.


  삶을 마주하는 매무새가 그대로 사진을 마주하는 매무새 됩니다. 사진으로 즐겁게 삶을 일굴 줄 안다면, 흙으로 즐겁게 삶을 일굴 줄 압니다. 사진으로 아름답게 삶을 보살필 수 있으면, 흙으로 아름답게 삶을 보살필 수 있어요.


  대학교에서 농업을 배울 수 있겠지요. 대학교에서 사진학을 배울 수 있겠지요. 대학교에서는 학문과 직업을 가르쳐요. 대학교에서는 삶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학문과 이론과 실기로 농업과 사진을 배울 만합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는 삶을 가르치지 않는 터라 ‘흙’도 ‘사진’도 배우지 못해요. 대학교에서는 ‘학문(이론)’과 ‘상업(직업)’을 배울 뿐입니다. 스스로 삶을 누릴 때에는 그야말로 삶(참다운 흙과 참다운 사진)을 스스로 배우고 가르칩니다.


.. 백두산에 들면, 그저 몸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오직 바람만이 살아 움직이는 천지의 눈밭에서 속절없이 아침을 기다리던 그 매운 날들까지 포함하여 나는 백두산의 행복한 기억들을 여기에 남깁니다. 나는 이 책 속에 그곳의 냄새, 분위기, 사람들과 나눈 감정까지 녹아들기를 바랍니다 ..  (머리말)

 

 


  안승일 님 사진책 《白山百花》(호형,2013)를 읽습니다. 하얀 멧골에 온갖 꽃이 피어난다는 이야기를 도톰한 사진책 하나로 들려줍니다. 백두산에서 만난 꽃을 사진책 《白山百花》 왼쪽에 싣고, 백두산에서 마주한 백두산 숨결을 사진책 《白山百花》 오른쪽에 넣습니다.


  꼭 백 가지 꽃이랑 숨결을 보여줍니다. 꼭 백 가지 꽃이랑 숨결에 하얗게 맑은 빛이 흐릅니다.


  하얀 빛. 그렇습니다. 하얀 빛입니다. 하얀 빛이란 무엇일까요. 하얀 빛을 알 만할까요. 하얀 빛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하얀 빛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해오라기는 하얀 새를 가리킵니다. 까마귀는 까만 새를 가리킵니다. 해오라기 옛이름은 하야로비입니다. 옛이름 들으면 ‘하얗다’가 떠오를까요. 오늘날 이름인 해오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얀 빛이 어디에서 나온 줄 깨달을까요.


  바로 해가 하얀 빛입니다. 하얀 빛을 낳는 님은 바로 해입니다. 햇빛은 흰빛입니다. 햇빛이 비추어 달이 하얗게 보이지요. 밤에도 낮에도 달은 해 둘레에서 하얀 빛깔로 우리 앞에 나타나요.


  하얀 해가 비추어 하얀 눈이 내립니다. 하얀 눈이 쌓여 하얀 멧골 이룹니다. 하얀 멧골에서는 사람들 머리카락도 하얗게 얼어붙습니다. 머리카락 하얗게 얼어붙은 사람들 마음 또한 하얗게 정갈합니다. 언제나 하얀 빛과 숨결을 마시면서 살아가니, 하얀 꿈과 사랑을 밝히겠지요.


.. 내가 백두산을 사랑했던 20년 세월,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이들도 찾아보고, 백두산에 부치는 나의 연서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 신세 진 사람, 우리 동네 이도백하 이웃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  (머리말)

 

 


  안승일 님은 백두산 곁에서 하얀 숨결을 마시면서 하얀 사진을 내놓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디에서 살아가는가요? 우리들은,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들은, 저마다 어느 곳에서 어떠한 빛깔이 되어 어떠한 마음을 어떠한 사랑으로 담아서 보여주는가요? 사진기를 손에 쥔 오늘날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사진길을 걷고, 사진책을 내거나 읽으며, 사진 하나로 생각을 주고받는가요?


.. 이 책의 사진은 디지털카메라의 온갖 편리함을 마다하고 중형필름카메라로만 찍은 것들입니다. 오로지 하늘이 내려주는 빗물만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하늘이 내게 선물한 빛만으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  (머리말)


  하늘이 내리는 빗물만 갖고 흙을 일구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늘이 내리는 빗물에다가 하늘이 내리는 햇볕과 하늘이 내리는 바람, 이렇게 세 가지를 골고루 품으면서 흙을 일굽니다.


  사진도 그래요. 하늘이 내리는 빛, 하늘이 내리는 사랑, 하늘이 내리는 꿈, 이 세 가지를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이야기 한 타래 풀어놓습니다.


  사랑 담은 밥을 먹습니다. 사랑 담아 밥을 차립니다. 사랑 담은 사진을 읽습니다. 사랑 담아 사진을 찍습니다. 안승일 님은 스스로 사랑하는 하얀 빛물결을 곱게 누리면서,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활짝 웃는 즐거운 노래 부르는 하루를 열고 닫으리라 생각합니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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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1-1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탐이나는 책이네요.^^
그래서 보관함에 담아 두었어요~ ㅎㅎ

파란놀 2013-11-19 03:21   좋아요 0 | URL
그동안 안승일 님 사진책을 꾸준히 보았는데,
이번 사진책을 보면서
이분은 참 '귀엽게' 삶을 누리시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시골아이 32. 마을길에서 (2013.11.7.)

 


  마을길 거닐면서 논다. 시골아이는 시골마을 천천히 걸어 한 바퀴 돌면서 놀이가 된다. 빈들에서 흐르는 바람을 마신다. 논둑과 밭둑에서 자라는 억새가 흩날리는 노래를 듣는다. 고즈넉하게 내리쬐는 늦가을 햇살을 먹는다. 아이들더러 비키라며 빵빵거리는 얄궂은 어른들 자동차한테 안 시달릴 수 있는 호젓한 시골마을 조그마한 고샅길은 아주 즐거운 놀이터가 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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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쌀 씻고 설거지

 


  한밤에 보일러를 돌린다. 우리 집 보일러는 땅밑에서 흐르는 물을 끌어올려 돌아가기에, 보일러를 돌리면서 지난저녁 남긴 그릇들을 설거지한다. 물이 잘 돌도록 틀어서 쓴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모든 그릇을 설거지할 수 있지만, 일부러 얼마쯤 남긴다. 왜냐하면 밤에 아이들 쉬를 누이면서, 또는 한밤이나 새벽에 보일러 돌릴 무렵, 물이 잘 흐르도록 하려면 물꼭지를 틀어 땅밑에서 물을 뽑아올려 주어야 하니까. 이렇게 하자면 조금 번거롭기는 한데, 어차피 밤에 일어나서 아이들 쉬를 누여야 하고, 나도 내 일을 밤이나 새벽에 하니까, 다 괜찮다. 아이들 아침에 먹일 밥도 한밤이나 새벽에 미리 씻어서 불려야 하니까, 어차피 이렇게 해야 한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까지 안 깨고 잔다면 한결 개운할까? 아마 그러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밤에 잠을 깨어 아이들 쉬를 누인 뒤, 오줌그릇 들고 마당으로 내려와서 한밤에 눈부시도록 밝은 별빛과 달빛 올려다보기를 즐긴다. 아이들이 밤오줌을 누어 주기 때문에, 나로서는 아주 스스럼없이 밤빛을 실컷 누린다.


  실컷 누린 밤빛을 마음으로 담아 부엌으로 가서 쌀을 씻는다. 설거지를 마무리짓는다. 새로 뜬 물을 유리병에 담는다. 유리병에 담아 이틀쯤 묵힌 물을 달콤하게 마신다.


  예부터 한집 살림 맡은 어머니는 새벽 세 시 반 즈음 조용히 일어나 맑은 물 한 그릇 길어서 부엌님한테 올렸다고 한다. 내 밤설거지도 이와 같다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시골집조차 부엌님이나 뒷간님이나 집님이나 모두 사라졌다고 할 만하지만, 그래도 우리 보금자리 돌보는 넋이 가까이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을 담아 물 한 그릇 올리고, 나도 이 물을 함께 마신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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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18] 전기읽기
― 아파트와 청와대 옆에 발전소를

 


  전기란, 도시사람 도시살이를 지키도록 하는 물질문명 밑바탕입니다. 도시에 몰려들어 살아가는 사람이 워낙 많기에, 이 도시를 지키도록 하려면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써야 합니다. 아파트와 건물에서 전기를 쓰고, 지하철에서 전기를 쓰며, 지하상가에서 전기를 씁니다. 그리고, 도시사람 쓰는 물건을 공장에서 척척 찍어낼 뿐 아니라, 도시 물질문명 지키도록 물건을 이웃나라와 사고팔려면 또 전기를 끝없이 만들어서 써야 합니다.


  도시가 서기 때문에 커다란 발전소를 지어야 합니다. 도시를 자꾸 늘리려 하기 때문에 커다란 발전소는 자꾸 늘어야 합니다. 아파트를 더 세우고 고속도로를 더 닦으며 공장을 더 돌려야 하니까 발전소를 끝없이 늘려야 합니다.


  발전소는 도시 언저리에 안 짓습니다. 발전소 매연과 공해와 전자파가 워낙 사람한테 안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애써 도시로 끌어모았는데, ‘도시 주거 환경’이 나쁘다면 사람들이 떼로 일어나서 손가락질을 할 테지요. 그러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달래거나 다독일 뜻으로 도시에 발전소를 안 지어요. 도시에 있던 공장도 도시 바깥으로 내보내며, 도시사람이 버리는 쓰레기를 치울 곳이랑 도시사람 쓰는 석유를 다루는 공장도 몽땅 도시하고는 아주 먼 시골에 짓습니다.


  도시사람이건 시골사람이건 밥을 먹습니다. 밥은 시골에서 얻습니다. 쌀과 다른 곡식을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미국에서 사다 먹는다 하더라도, 그 나라 시골이 있어야 흙을 일구어 쌀과 여러 곡식을 얻어요. 시골이 없다면 능금도 복숭아도 배도 포도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도시를 키우려고 시골을 죽입니다. 도시를 살린다며 시골을 망가뜨리거나 더럽힙니다. 도시 물질문명을 지킨다면서 도시에 발전소를 안 짓고 도시에 있던 공장을 시골로 보내는 일이란, 도시사람 스스로 나쁜 밥이랑 농약·비료·항생제·화학첨가물 그득한 가공식품만 먹겠다는 뜻이 되고 맙니다. 도시사람 쓸 전기를 시골에 발전소 지어서 얻으면 얻을수록, 시골에 우람한 송전탑 서면 설수록, 시골을 망가뜨리는 꼴이 되고, 시골 숲과 들과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는 짓이 되어, 시골과 함께 도시가 흔들리거나 무너질밖에 없습니다.


  핵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 모두 도시 한복판에 서야 옳습니다. 공장과 쓰레기매립지나 하수처리장 모두 도시 한복판에 놓아야 옳습니다. 식품공장과 맥주공장과 자동차공장과 석유화학공장과 유리공장과 제지공장과 반도체공장 모두 도시 한복판에 올려야 옳습니다. 도시사람은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과 폐수와 방사능과 전자파가 어떠한가를 제대로 모릅니다. 제대로 모르니, 스스로 삶으로 안 겪으니, 하나도 깨닫지 못합니다. 물꼭지 틀면 물 콸콸 쓸 수 있는데, 수도물 이으려고 시골 여러 마을 물에 잠기도록 하고 너른 숲 망가뜨리는 짓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수도물이란 문명이 아니라 ‘문명 파괴’요 ‘환경 재난’입니다. 전기란 문화가 아니라 ‘문명 몰살’이자 ‘환경 재앙’입니다.


  전기를 쓴다 하더라도, 왜 집집마다 집열판 두어 매연도 공해도 없이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 쓰도록 하지 않을까요? 전기를 쓰려면 가장 깨끗하고 가장 올바르며 가장 아름다운 전기를 저마다 스스로 만들어서 써야 하지 않나요?


  발전소 짓는 돈, 한국전력이라는 커다란 회사를 꾸리는 돈, 전봇대와 송전탑 세우는 돈, 전깃줄 끝없이 잇는 돈, 이런 돈 저런 돈 모두 따져 보셔요. 도시사람이 ‘발전소를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 짓느라 들이는 돈’을 헤아려 보셔요. 커다란 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뽑은 뒤에 우람한 송전탑과 전깃줄을 잇고 잇느라 드는 돈을 가누어 보셔요.


  온 나라 모든 살림집에 집열판 붙여서 전기 스스로 빚어서 쓰도록 하는 데에 드는 돈이 오히려 아주 적게 듭니다. 값조차 쌉니다. 게다가 공해도 매연도 없습니다. 전깃줄이나 전봇대 어지러이 서지 않을 뿐 아니라, 송전탑 걱정조차 없습니다. 발전소를 돌린다며 우라늄을 만지거나 석유나 석탄을 땔 걱정마저 없습니다. 발전소 폐기물조차 하나 없지요. 그러나, 공공기관이라 일컫는 정부 조직이나 재벌회사는 돈벌이(세금)를 하고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 집열판 붙이는 길을 걷지 않습니다. 사람들 또한 전기를 어떻게 써야 즐겁고 아름다우며 올바를까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면 아파트 옆에 지어야 합니다. 청와대 옆에도 발전소를 지어야 합니다. 안전과 환경에 걱정이 없다면 마땅히 아파트와 청와대 옆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나란히 지을 노릇입니다. 핵폐기물처리장은 미대사관 옆에 지으면 됩니다. 안전하고 환경을 더럽히지 않는다 하니까요.


  더 곰곰이 살피면, 사람들 스스로 흙을 잊기에 전기를 아무렇게나 씁니다. 스스로 흙하고 동떨어진 채 살면서, 밥과 옷과 집이 모두 흙에서 비롯하는 줄 잊었으니, 자꾸 쓰레기를 낳는 물질문명에 기댑니다. 물질문명을 누릴 적에도 아름답게 즐기며 깨끗하게 돌보는 길하고는 멀어집니다. 흙에서 나온 것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석유와 석탄도 흙에서 나온 그대로 온갖 공해와 매연을 이 땅에 드리웁니다. 흙에서 얻은 쌀과 곡식과 열매는 사람들 몸을 거쳐 똥오줌 되어 다시 흙을 살리는 거름 구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를 몽땅 생활쓰레기로 다룹니다.


  흙에서 나온 그대로 흙으로 갑니다. 흙에서 뽑아낸 쇠붙이로 전쟁무기 만들면, 이 땅에는 전쟁이 판칩니다. 흙에서 얻은 나무로 종이를 만들어 책을 엮으면, 이 책에는 나무내음이 감돌면서 사람들한테 아름다운 빛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들려줍니다. 흙에서 우라늄 캐내면 엄청난 방사능이 지구별 곳곳에 퍼지지요. 흙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내거나 금을 캐내니, 사람들 눈알이 빙빙 돌아 버렸습니다. 흙에서 무엇을 캐내렵니까. 흙에서 캐낸 것을 어떻게 쓰며 흙에 무엇을 돌려주렵니까. ‘밀양 송전탑’을 말하기 앞서 ‘우리 집 전기’부터 생각할 수 있어야, 무엇보다 ‘내 손으로 만질 흙’을 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입니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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