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그림책 읽다가

 


  아이들과 그림책 읽다가 자꾸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이들 그림책은 참말 아이들 말투로 쓰거나 옮겨야 할 텐데, 이런 대목에 마음을 기울이는 어른이 너무 드물어요.


  창작이나 번역을 하는 분들한테 아이가 있어도 아이하고 하루 스물네 시간 함께 보내며 아이 삶을 마주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이하고 스물네 시간 지내며 모든 말을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주고받는 동안 차근차근 새말을 가르치면 아이들 그림책에 깃든 말이 ‘어른 읽는 인문책’에 나오는 말처럼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을 테니까요. 아이와 하루 내내 보낼 적에는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어떤 말을 배우거나 물려받으며 살아가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할 테니까요. 아니, 생각에서만 그치지 않고 어버이 삶이 달라지고 어버이 넋이 거듭나며 어버이 말이 새롭게 빛날 테니까요.


  누구한테 읽히려고 쓰는 글인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읽히기 앞서 스스로 거듭 읽고 자꾸 되새기면서 삶과 넋과 사랑을 북돋울 만한 글이 되도록 가다듬어야지 싶습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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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 한 출판편집자의 회상
오쓰카 노부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한길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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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43

 


‘책도시’ 만든다는 헛발질
―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오쓰카 노부카즈 글
 송태욱 옮김
 한길사 펴냄, 2007.11.10.

 


  오쓰카 노부카즈 님이 쓴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2007)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 앞자락은 오쓰카 노부카즈 님이 처음 출판사 편집부에 들어가서 겪거나 한 일을 조곤조곤 밝혀 적습니다. 책 하나 엮어 이 땅에 내놓는 즐거움과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책 만들었다’ 하는 이야기만 줄줄이 나옵니다. 이녁이 만든 ‘책 목록’만 길게 나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 책은 글쓴이 ‘회고록’입니다. 책이름은 ‘책으로 찾아가는 꿈나라’이지만, 어떤 꿈나라로 나아가려 했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어요. 이를테면, “출판이란 원래 수수하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일이다. 편집자는 보이지 않게 시중드는 사람이다. 출판계는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구멍가게에서 다시 출발해도 좋지 않을가 싶다(14쪽).” 같은 이야기나, “세상에는 일류 식당이 아니라도 심도 싶은 논의를 하는 곳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어떤 선배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48쪽).” 같은 이야기라든지, “아니, 편집자는 인류 가운데 천재가 몇 명 있고, 어떤 천재가 몇 번째인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건 좀 이상하다. 그런 건 본질적인 게 아니잖아.’라는 것이 처음에 느낀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며칠간 계속해서 생각하는 중에 어쩌면 편집자란 끊임없이 그렇게 커다란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61쪽)” 같은 이야기는 곰곰이 생각할 만합니다. 수수하고 작은 일에서 책빛이 살아나고, 으리으리한 요리집 아니어도 아름다운 생각 피어나며, 책마을 일꾼이란 언제나 꾸준히 새로 배우는 사람입니다.


  책을 천 권이나 만 권쯤 내놓은 출판사이기에 좋거나 훌륭하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을 한 권이나 열 권쯤 겨우 내놓은 출판사이기에 안 좋거나 안 훌륭하거나 안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책을 마주하는 매무새를 살필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는 흙을 어떻게 다루거나 마주하는가를 살필 노릇이에요. 흙을 엉터리로 망가뜨리면서 농약과 화학비료 쏟아붓고는 ‘소출이 많다’고 해서 이런 분들을 추켜세울 수 없습니다.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는 많아도 땅이 죽어요. 다시 말하자면, 책을 많이 팔았다 하지만, 책마을과 책밭을 망가뜨리는 길을 걷는다면, 이런 책장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저 이름 알려지고 돈 벌면 그만일까요? 흙을 망가뜨리면서 흙일이라 할 수 없듯, 책밭 어지럽히면서 책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신참 편집부원이 학자와 작가, 그것도 두 대가의 논의에서 미묘한 주름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래서야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 나는 담당 편집자로서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역할에 충실했고, 그가 집필을 위해 필요로 하는 책(대부분 서양책)을 가능한 한 빨리 입수하려고 애썼을 뿐이다 ..  (37, 58쪽)


  얼마 앞서부터 이 나라 도시들이 ‘책도시’라는 이름을 내걸려 애씁니다. 여기도 책도시요 저기도 책도시입니다. 그런데, 이들 책도시 가운데 책방이 제대로 있는 데가 드뭅니다. 책도시라면, 사람들이 책을 즐겁고 넉넉히 만날 수 있도록 책방이 마을마다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서관은 책을 어디에서 사나요. 출판사마다 하나하나 찾아다니거나 전화를 해서 한 권씩 사나요. 학교에서는 책을 어떻게 갖추나요. 학교도서관지기가 출판사를 하나하나 알아보거나 전화로 주문해서 한 권씩 갖추나요.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고, 책을 파는 책방이 있으며, 책을 건사하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절판된 책과 다 읽은 책과 반품을 하거나 폐기해야 하는 책을 내보낼 적에 이 책들 받아들일 헌책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는 사람이 있어요. 책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이 모두가 골고루 있어야 하고, 저마다 즐겁게 살림 꾸릴 수 있어야 하며, 서로 오순도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도시라 하면서 이 여러 이음고리를 알차게 얼싸안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책도시라 할 만한 곳이 한 군데라도 있을까요. 경기도 파주에는 출판사 건물 꽤 많지만, 막상 책방이 제대로 없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 지낼 만한 터전이 없습니다. 파주 책도시에는 어떤 도서관이 있을까요. 출판사마다 다 다른 책을 내는데, 다 다른 빛깔로 나아가는 전문도서관이 한 군데라도 있는가요.


.. 첫 번째인 6월의 여행에서 나는 부피가 크지 않은 촘스키 문헌 몇 권만 가지고 도쿄를 뒤로 했고, 때로는 사마르칸트의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서, 또 어떤 때는 티엔샨 산맥 기슭에 있는 마을에서 촘스키를 읽는 신선한 체험을 했다 … “하지만 편집자야 뭐 결국 패재바 아닌가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니까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분명히 편집자였다가 소설가가 되거나 학자가 되는 예가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한 대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편집자의 일은 작가나 연구자의 일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  (192, 218쪽)


  구태여 책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는 곳치고 ‘사람들이 책을 즐겁게 널리 읽거나 나누는 곳’은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이 워낙 책하고 등지며 살아가니 어쩔 수 없이 책도시라는 이름을 내거는구나 싶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길은 하나입니다. 책도시 이름표 붙이는 데에 헛돈 쓰지 말고, 시장과 공무원과 교사부터 책을 읽으면 돼요. 책도시 행사를 하는 데에 헛돈 쓰지 말고, 그저 조용히, 시장이든 군수이든 공무원이든 교사이든 정치꾼이든, 모두들 책을 사서 읽는 데에 돈과 품을 들이면 돼요.


  먼저 책을 읽어야 독서토론회를 하든 책읽기모임을 합니다. 먼저 책을 읽어서 집집마다 서재를 갖추어야 작가초대이든 작가강연이든 할 밑틀이 생깁니다. 이름난 작가이든 이름 덜 난 작가이든, 이들이 쓴 책을 읽고 나서 작가를 불러야지요. 이런 행사 저런 잔치 크게 벌인대서 책도시 될 턱이 없습니다.


.. 그 후 30년쯤 지나 21세기로 접어든 무렵 오노 씨 부부와 함께 신슈로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다. 그때 “예전에 오사카에서 오노 선생님께 호되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어떻게든 편집자의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지금은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더니, “그런 실례를 면전에 대고 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역시 저도 그땐 젊었나 보군요.”라고 오노 씨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 ‘브랜드’나 ‘간판’은 단순히 그것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끊임없이 재생산해야 비로소 브랜드나 간판을 유지할 수 있고, 나아가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  (446, 447쪽)


  450쪽 가까운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를 읽으며 스물∼서른 쪽 즈음에서만 ‘책 만드는 넋과 땀방울’ 이야기를 읽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회고록을 옮겼기에 이러한 모양새가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회고록까지 꼭 옮겨야 했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책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 ‘난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었지’ 하고 떠벌이면 옆에 있는 사람은 무척 따분합니다. 책읽기는 책자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편집자로 뼈를 묻은 사람 이야기라면 ‘난 이 책도 만들고 저 작가도 만났지’ 하고 읊기만 하면 곁에 있는 사람은 하품만 납니다. 책삶 아닌 책목록으로 뭘 어쩌라고요.


  온삶 걸쳐 엮은 책 가운데 꼭 한 가지 이야기만 들려주어도 됩니다. 책 하나에 바친 땀방울을 들려줄 수 있으면 됩니다. 책도시 되고 싶다면? 이것저것 안 해도 돼요. 책도시 이름을 걸려 하는 곳에서 태어나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나 사진을 빚는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찾아서 아끼고 돌볼 수 있으면 됩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아닌, 시장이나 군수 스스로 읽은 아름다운 책 하나를 널리 나누면서 사랑하는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사랑으로 가꾸는 책도시입니다. 꿈으로 여는 책나라입니다. 돈으로도 이름으로도 껍데기로도 힘으로도 이룰 수 없는 책나무입니다. 사랑 담은 씨앗 한 톨 심어 두고두고 지켜보면서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로 이루는 책나무예요. 책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랄 때에 비로소 책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을 말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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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16. 놀면서 자라는 말
― 싱그러운 삶에 싱그러운 말

 


  물을 마십니다. 더운 여름날 땀을 흠뻑 흘리고 나서 물을 마십니다. 옛날 사람들은 냇물을 마시거나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때로는 빗물을 받아서 마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땅밑으로 깊이 파서 땅밑물을 마십니다. 때로는 댐을 지어 물을 가둔 뒤 물관을 이어 수도물을 마십니다. 누군가는 가게에서 먹는샘물을 사다가 마십니다. 먹는샘물도 땅밑물처럼 땅밑으로 깊이 파서 뽑아올린 물입니다.


  물마다 물맛이 다릅니다. 골짜기에서 흐르는 골짝물과 들판에서 흐르는 냇물은 물맛이 다릅니다. 도시에서 쓰려고 댐에 가둔 물이랑 논에 대려고 못에 가둔 물은 서로 맛이 다릅니다. 같은 땅밑물이라 하더라도 플라스틱병에 담은 먹는샘물하고 시골마을에서 그때그때 뽑아올리는 땅밑물은 맛이 다릅니다.


  돌이켜보면, 옛날에는 물이 더러워질 일 없기에 냇물도 빗물도 즐겁게 마십니다. 굳이 땅밑을 깊이 파헤쳐서 물을 뽑아올리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물이 깨끗한 곳이 아주 많이 줄어든 터라 땅밑물도 좀처럼 마시기 힘들고, 도시와 멀리 떨어진 조용하고 깨끗한 시골에 커다랗게 댐을 지어 수도물을 쓰곤 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물을 맑고 정갈하게 지키면,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냇물이나 빗물이나 땅밑물이나 우물물 마실 수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맑은 물 마시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퍽 적어요. 여느 때에 늘 마주하는 물을 맑으면서 시원하게 돌보는 길보다, 돈을 들여서 물을 사다 마시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물이 더러워지고 흙이 망가지면서 날씨가 어지럽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알듯, 도시 문명 사회가 되면서 공장과 자동차와 발전소 부쩍 늘어 물과 흙이 더러워집니다. 공장은 자꾸 늘고, 자동차 때문에 찻길과 고속도로 자꾸 닦으며, 발전소 새로 짓고 송전탑 자꾸 세웁니다. 골프장과 관광지를 만들기도 하니, 조용하면서 깨끗한 시골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이런 흐름이 깊어지는 만큼, 날씨가 미치지요. 날씨가 미치면서 큰비와 막비가 들이붓습니다. 날씨를 알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으레 ‘물폭탄’이라 말하는데, 꼭 날씨 때문에 전쟁이라도 터졌다는 듯한 말씨입니다. 어쩌면 전쟁과도 같은 큰비이거나 막비라고 느낄는지 모르겠어요.


  요즈음에는 시골에서조차 무지개를 거의 못 봅니다. 소나기도 거의 못 만납니다. 뭉개구름도 좀처럼 못 봅니다. 날씨가 일그러지면서 몽실몽실 한여름 예쁜 구름이 생기지 못하고, 뭉게구름 생기지 못하니 소나기 찾아들지 않으며, 소나기 찾아들지 않기에 무지개가 뜨지 않아요. 하늘빛이 뿌옇게 되니, 밤하늘 밤별 가득 누리는 시골도 드물어, 미리내를 찾아보기도 어려워요.


  예전 사람들은 언제나 하늘빛 가득 누리던 삶이었기에, 낮달도 밤별도 무지개도 미리내도 늘 보았어요. 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낱말이나 모습 아닌 삶으로 한결같이 부대끼는 말마디였어요.


  이제 도시에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랄 빈터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놀이터조차 아파트 있는 데 아니면 없어, 아이들 놀 자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놀이’를 할 틈도 겨를도 자리도 없어요. 요새 아이들은 놀이 아닌 ‘게임’을 해요. 주말이나 방학을 맞이해 ‘레크리에이션’을 배우기도 합니다. 놀이 아닌 게임이 되면서, 게임에서 쓰는 말은 하나같이 ‘game’과 같은 영어요, 어른들은 아예 아이들한테 ‘영어 게임’을 시키며 ‘영어 학습’으로 치닫습니다.


  노는 아이들은 뛰놀면서 놀이동무를 사귑니다. 무더위에도 땡볕에서 신나게 놉니다. 바깥에서 한껏 뛰놀면서 살갗이 까무잡잡하게 바뀝니다. 어른들은 ‘폭염주의보’라느니 하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후끈후끈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놀이에 폭 빠지면 온통 놀이 생각입니다.


  몸을 놀리면서 몸이 튼튼하게 자랍니다. 몸을 놀리니 몸놀림이 새롭게 거듭납니다. 몸놀림이 거듭나면서 손놀림도 남달리 나아집니다. 몸과 손이 튼튼하게 자라면 마음과 꿈과 생각과 사랑도 튼튼하게 자랄 테니, 마음놀림과 꿈놀림도 나란히 예쁘게 자라겠지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놀리지 않으려 합니다. 아니, 자동차가 너무 많고 자동차 댈 땅이 모자란 탓에 골목이나 빈터가 없어, 아이들이 걱정없이 놀 자리가 없다 할 만합니다. 아이들이 놀 골목이나 빈터가 사라지면서, 어른들도 쉴 자리를 잃고, 어른들은 그나마 집안에 꽃이랑 풀이랑 나무를 두려 합니다. 그릇에 흙을 담아 꽃씨를 심어요. 제법 큰 그릇에는 제법 흙을 많이 담고는 조그마한 나무 한 그루 돌보기도 합니다. 어려운 말로 ‘화초’나 ‘원예’나 ‘분재’라고 하는데, 어느 한자말이든 ‘꽃’을 가리켜요. ‘꽃심기’나 ‘꽃가꾸기’입니다.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쓴 《외톨이 동물원》(비룡소,2003)이라는 동화책 읽다가 98쪽에서 “이튿날의 일이었다.” 같은 글월을 봅니다. 일본사람은 무슨 말을 하건 ‘の’를 붙여요. 이를 잘못 옮기면 ‘-의’를 붙이는 말씨가 돼요. 한국사람 한국말은 “어제 일”이나 “모레 이야기”나 “지난해 모습”이나 “그러께 선물”인데, 일본사람은 이런 말마디 사이에 꼭 ‘-의’를 넣어요. 일본 만화영화 이름은 “紅の豚”이고 “風の谷のナウシカ”예요. 이를 한국말로 옮기면 “붉은 돼지”와 “바람 골짜기 나우시카”입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는 동화책에 어떤 낱말과 말씨를 쓰느냐는 무척 큰 일이에요. 어른들부터 스스로 싱그러운 삶과 싱그러운 말을 아낄 노릇이에요. 그래도 이 글월에서는 ‘이튿날’이라는 낱말을 썼어요. 그다음 날이라서 ‘이튿날’인데, 곰곰이 살피면 ‘이듬날·이듬주·이듬달·이듬해’하고 ‘다음날·다음주·다음달·다음해’처럼 알뜰살뜰 쓸 수 있어요.


  삶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는 결에 따라 말이 달라요. 즐겁게 놀며 맑은 물 마시고 풀이랑 꽃이랑 나무를 노상 마주하는 삶이라면, 이러한 삶에 따라 싱그럽게 빛나는 말이 태어나요. 놀이동무와 함께 씩씩하게 뛰놀며 자라는 아이들은 이웃을 살피고 아끼는 마음을 키우며 사랑스럽게 빛나는 말을 가꾸어요. 놀이하는 아이도 일하는 어른도 따사로운 보금자리 누릴 때에 따사로운 마음입니다. 4346.7.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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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71. 2013.10.28.

 


  귤상자 선물받고부터 아이들이 스스로 귤을 까서 신나게 먹는다. 껍질이 반들반들한 귤이란 겉을 코팅했다고 한다. 왜 그렇게 반들반들할까 궁금했는데, 능금이나 귤이나 감이나 겉을 코팅해서 내놓기도 하는구나. 작은아이한테는 처음에 귤을 까 주다가 이제는 안 까 준다. 스스로 까야 손놀림 늘어나니까. 큰아이는 귤을 척척 까서 한손에 쥔 다음 만화책을 펼친다. 얘야, 그렇게 하면 책에 귤물이 든단다. 더구나 책을 두 손 아닌 한손으로만 잡거나 누르며 펼치면 책이 머잖아 톡톡 튿어진단다. 뭘 먹으면서 책을 읽지는 말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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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꼬리새

 


숲에서 부는 바람이
긴꼬리새 깃을 스쳐
마당밭 부추씨 건드리고는
대청마루 지나
집안 곳곳으로 스민다.

 


4346.10.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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