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590) 위로

 

에밀은 이다한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말해 주었어요. 그러고는 여동생을 이렇게 위로했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햇살과나무꾼 옮김-에밀의 325번째 말썽》(논장,2003) 19쪽

 

  아이들 읽을 어린이책이기에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말해 주었어요”처럼 적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책 아닌 어른책일 때에도 이렇게 써야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적지 않고 “將次 某種의 事件이 發生할지 豫告해 주었어요”라든지 “장차 모종의 사건이 발생할지 예고해 주었어요”처럼 적으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어른들은 뜻밖에도 갑갑한 말을 자꾸 쓰며 아이들 말과 삶을 옥죕니다.

  한자말 ‘위로(慰勞)’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을 뜻한다고 합니다. 곧, 한자말은 ‘위로하다’요, 한국말은 ‘달래다’입니다.

 

 여동생을 이렇게 위로했죠
→ 여동생을 이렇게 달랬죠
→ 여동생을 이렇게 타일렀죠
→ 여동생을 이렇게 다독였죠
→ 여동생을 이렇게 보듬었죠
 …

 

  어른들은 “위로의 말을 건네다”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한자말 ‘위로’를 쓰고 싶다면 “위로했다”라 말하면 되는데, 이 한자말에다 ‘-의’까지 엉터리로 붙이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한테 ‘위로’라 말하면 어떻게 알아들을까요? 아이들은 ‘위로’라 말하면 위쪽을 올려다보지 않을까요? 아이들한테 ‘위로’란 “위로 아래로”라 하는 ‘위로’일 테니까요. 4346.11.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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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은 이다한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말해 주었어요. 그러고는 여동생을 이렇게 달랬지요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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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11-26 11:35   좋아요 0 | URL
어린이책에 “장차 모종의 사건이 발생할지 예고해 주었어요”처럼 쓰인다면-
ㅎㅎㅎㅎㅎㅎ 대박입니다.

파란놀 2013-11-26 12:45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 비슷하게 쓰는 그림책과 동화책이
생각보다 꽤 많답니다...

제법 이름난 번역자와 번역집단에서 번역한 책들에서 말입지요......
 

[함께 살아가는 말 178] 글지기, 글순이

 


  글을 쓰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작가’라는 이름을 쓰는데, 나는 이 이름이 영 내키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이름을 흔히 썼을 테지만, 이제는 새로운 넋으로 새 이름을 붙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분은 ‘글쟁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고, ‘글꾼’이라는 이름을 쓰는 분도 있어요. 나도 가끔 이런 이름을 써 보았지만, ‘글쟁이’와 ‘글꾼’도 그다지 반갑지 않아요. 나는 도서관을 열어 꾸리는 일을 하는데 ‘도서관쟁이’나 ‘도서관꾼’처럼 쓸 만하지는 않거든요. 내가 쓰는 이름은 ‘도서관지기’입니다. 집에서 식구들 밥을 늘 차리니 ‘밥지기’라는 이름을 쓰기도 해요. 밥 잘 먹는 아이들한테 ‘밥순이·밥돌이’ 같은 이름을 붙이곤 하고, 책을 잘 읽는 아이들한테 ‘책순이·책돌이’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문득 한 가지 떠오릅니다. 그러면, 글을 쓰는 내 삶은 ‘글지기’라 하면 되겠다고. 그림을 그릴 적에는 ‘그림지기’ 되고,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는 ‘사진지기’ 되리라 느껴요. 빨래를 할 때에는 ‘빨래지기’입니다. 집을 지키는 날은 ‘집지기’ 되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이녁 삶을 스스로 쓸 수 있다면, 아이들한테 ‘글순이·글돌이’라는 이름을 주고 싶어요. 나한테도 스스로 ‘사진돌이·글돌이·도서관돌이’라는 이름을 줄 수 있습니다.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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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79] 아침저녁

 


  아침에 해를 바라보며 일한다.
  저녁에 달을 마주보며 쉰다.
  글은 별빛으로 쓰고 읽는다.

 


  언젠가 어느 헌책방 책방지기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책방 일을 하려면 첫째로 책을 좋아해야 하고 둘째로 힘이 좋아야 한다고. 이 말을 들은 지 열 해쯤 되는데, 날마다 이 말을 찬찬히 곱새깁니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와 즐길 수 있는 몸, 이 두 가지를 알뜰히 건사할 때에 비로소 삶이 빛나겠다고 생각해요. 예부터 아침에 일하고 저녁에 책 읽는다 했어요. 몸으로 일하고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참으로 아름다운 빛이 이야기로 태어나리라 느껴요. 아침저녁으로 새 빛을 마음과 몸에 알맞게 담습니다.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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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낳는 아빠 해마 - 신화 속 바닷물고기 미래를 꿈꾸는 해양문고 19
최영웅.박흥식 지음 / 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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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2

 


이 땅에 드리울 사랑이란
― 아기 낳는 아빠 해마
 최영웅, 박흥식 글
 지성사 펴냄, 2012.1.4.

 


  최영웅·박흥식 두 분이 함께 빚은 이야기책 《아기 낳는 아빠 해마》(지성사,2012)를 읽습니다. 책이름에 나오기도 하고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도 있는데, 수컷 해마는 알을 낳지 않습니다. 암컷 해마가 알을 낳습니다. 수컷 해마는 암컷 해마가 낳은 알을 품어서 태어나는 날까지 보살피는 노릇을 맡습니다. 암컷 해마가 낳은 알이 수컷 해마 몸에서 다 자라 알을 깨고 나오니, 마치 수컷 해마가 새끼를 낳는 듯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아이들 돌보거나 키우는 몫은 아직 거의 모두 어머니가 맡습니다. 남녀평등 이름이 드높아도, 정작 아이를 씩씩하게 돌보는 아버지는 아주 드뭅니다. 회사일 접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려는 아버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돈을 더 많이 잘 벌어야겠다 다짐하는 아버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려 하는 아버지가 드문드문 있어요. 이분들은 해마와 같이 ‘아이를 오롯이 돌보아 키운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무리 아이들을 잘 돌본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아이를 낳아요. 어머니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아버지는 아이를 돌볼 수 없습니다.


.. 해룡은 제한된 공간에서만 서식하고 있는데다가 행동 또한 매우 느려 천적에게 공격받을 경우 도망칠 능력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해룡에게도 가장 위험한 천적은 사람이다.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관상용으로 매우 인기가 높아 비싸게 팔리므로 늘 포획의 대상이 되어 왔다 … 우리 나라와 같이 연안 매립이 활발하고 해양 오염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해마가 사라지는 불행이 우리 세대에 닥칠 수도 있다 ..  (35, 47쪽)


  아이들은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을 함께 받을 적에 맑고 씩씩하며 튼튼하게 자랍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이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을 골고루 받아먹을 수 있도록 몸을 쓰고 마음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버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지 못한다면 어버이가 되지 못합니다. 사랑을 함께하지 못할 적에는 어버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습니다.


  돈을 잘 벌어다 주어야 어버이가 아닙니다. 사랑을 나눌 때에 어버이입니다. 값진 옷을 입히거나 자가용에 태워 주어야 어버이가 아닙니다. 사랑을 함께해야 어버이입니다.

  아이들은 돈 걱정을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집 걱정을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밥 걱정도, 옷 걱정도, 학교 걱정도, 그야말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생각을 합니다. 무얼 하며 놀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꿈을 품습니다. 이것을 해 보고 저것을 해 보려는 꿈을 품습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하나요. 어른들도 생각을 하나요? 어른들도 꿈을 품나요? 혼자 살아가는 어른이라 하더라도 생각과 꿈을 품을 노릇이지만,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더더욱 생각과 꿈을 품고 키워야 합니다.

 

..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떼를 지어 살아가는 데 비해, 해마뿐만 아니라 해마가 속한 실고기과 물고기들은 혼자 살거나 아주 적은 수가 무리를 이룬다. 이러한 생활 방식 때문에 자연 속에서 해마는 아주 적은 수만이 어렵게 짝을 이루어 살 뿐, 대부분은 일생을 혼자서 살아간다 … 해마는 짝짓기를 할 때 외에는 일생 동안 전혀 이동을 하지 않는 것일까? 대부분의 해마는 이동을 하지 않고 평생을 한곳에서 혼자 산다. 아니, 이동하고 싶어도 워낙 느리게 헤엄치는 신체 구조 때문에 혼자 힘으로 멀리 이동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동 속도가 매우 느린데다가 바늘이나 독과 같이 특별하게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보호색만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동하는 동안 큰 물고기들에게 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 ..  (53, 59쪽)


  해마는 바다에서 살아갑니다. 해마는 바다에서 해마답게 살아갑니다. 다른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대로 살아갑니다. 머나먼 길을 돌고 도는 물고기가 있고, 한 자리에서 맴돌듯이 살아가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살든 저마다 다른 나날이고 이야기이며 빛입니다. 해마는 해마대로 꼬리로 무언가를 붙잡으면서 먹이를 찾고 삶을 일구며 사랑을 속삭입니다. 때로는 뜻하지 않게 멀리멀리 나들이를 하겠지요. 한 번 나들이를 하면 다시는 예전 삶터로 못 돌아올 텐데, 아무튼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갯벌도 바다도 아무렇지 않게 메웁니다. 논을 늘린다는 핑계로, 아파트를 짓겠다는 구실로, 공장을 세우겠다는 말로, 관광단지를 짓는다는 목소리로, 이래저래 갯벌과 바다를 하루아침에 우당탕쿵탕 메웁니다.


  갯벌과 바다에 살던 수많은 목숨들이 하루아침에 죽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채 죽습니다. 까닭도 없이 죽습니다.


  사람들은 갯벌과 바다뿐 아니라 들과 숲을 아무렇지 않게 밉니다. 고속도로를 닦는다는 핑계로, 고속철도를 놓는다는 구실로, 공장과 골프장을 늘려야 한다는 말로, 발전소와 아파트와 관광단지 따위를 짓는다는 목소리로, 이래저래 들과 숲을 하루아침에 와장창 깨부수며 밉니다.


  들과 숲에 살던 어마어마한 목숨들이 하루아침에 죽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채 죽어요. 까닭도 없이 죽어요.


  지구별 사람들이 이룬 문화와 문명이란 이웃 목숨을 죽인 무덤에서 이루어집니다. 지구별 사람들이 지내는 도시란 이웃 목숨들을 까부순 자리에서 태어납니다.


.. 갓 태어난 어린 해마는 꼬리가 매우 짧고, 다른 물체에 꼬리를 감아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 않다. 그래도 태어나자마자 무언가 붙잡으려고 꼬리를 감아 보지만, 실패하고 마치 플랑크톤처럼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떠다니게 된다. 즉, 갓 태어난 어린 해마들은 대부분 아빠 해마의 배안에서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험난한 자연과 맞부딪치면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 … 아마도 해마를 집중적으로 잡아먹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 해마는 시장에서 늘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 유럽과 북미의 공공 수족관에서만 관상용으로 매년 10만 마리 정도가 소비되고 있다 ..  (61, 67, 72, 73쪽)


  사람이 살자니 어쩔 수 없다 할는지 모릅니다. 큰 물고기도 살아가려고 작은 물고기를 먹으니까요. 큰 짐승도 살아가려고 작은 짐승을 먹으니까요. 작은 짐승도 살아가려고 풀을 뜯어서 먹으니까요. 작은 짐승도 겨울잠 자려고 땅을 파서 구멍을 길게 내고는 조용히 깃드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참말 살려고 이웃 목숨을 죽일까요. 이웃 목숨을 죽이는 줄조차 안 느끼거나 못 느끼면서 이웃 목숨을 죽이지 않나요. 러시아와 미국과 일본에서 핵발전소가 터졌습니다. 세 나라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은 지구별을 잔뜩 뒤덮습니다. 세 나라뿐 아니라 핵무기를 실험한다며 끝없이 터뜨리고 또 터뜨리니, 핵무기 실험을 하는 사막과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방사능이 온 지구별에 감돕니다. 그렇지만 지구별 사람들은 전쟁무기 만들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에는 핵무기 없다지만 핵발전소 있고, 전쟁무기 엄청나요. 남녘에도 북녘에도 바보스러운 전쟁 미치광이가 권력을 거머쥔 탓에, 군대도 경찰도 끔찍하게 많습니다. 남북녘에 총칼과 탱크와 전투기 따위가 얼마나 많은가요.


  전투기가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동안 새가 죽습니다. 전투기 뜨고 내릴 공항을 닦는다며 들과 숲을 온통 파헤칩니다. 공항에서 버리는 쓰레기 때문에 들벌레와 숲짐승이 죽습니다. 미군기지에서만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요. 한국기지에서도 쓰레기를 엄청나게 버립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안 나올 뿐이에요.


  우리가 살려니 군대가 있어야 할까요. 이 나라가 살아야 하니 군대를 엄청나게 거느려야 할까요. 참말 살려고 군대를 둘까요. 참말 살고 싶어 전쟁무기를 만들어 건사할까요.


  스스로 죽으려는 짓 아닐까 궁금합니다. 스스로 죽고 싶으니 군대와 전쟁무기를 거느리는 꼴 아닌가 궁금합니다. 스스로 죽고 싶으니 갯벌과 바다를 아무렇게나 더럽히고, 스스로 죽을 생각이니 들과 숲을 깡그리 짓밟는 셈 아닌가 궁금합니다.


.. 해마의 소화기관은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병에 걸린 새우나 껍질이 검게 변해 버린 새우를 먹으면 바로 병에 걸리고 만다 … 강인해 보이는 피부도 별도의 보호 기능이 없기 때문에 일단 공격을 받거나 상처가 생기면, 자기 스스로 회복시키지 못해 상처가 몸 전체로 퍼져 죽는 경우가 많다. 환경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 서식지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면, 그곳에 사는 대부분의 해마는 운명을 같이하는 처지에 놓인다 ..  (65, 74쪽)


  송전탑은 밀양에만 세우지 않습니다. 온 나라 구석구석에 엄청나게 많은 송전탑이 섭니다. 중앙정부는 밀양에서 송전탑 세우기를 밀어붙여요. 조용한 바닷마을에 해군기지 아무렇지 않게 지어요. 아름다운 들과 숲과 멧골에 군부대 잔뜩 세워요.


  미국군뿐 아니라 한국군도 무슨무슨 훈련을 한다면서 시골마을 논밭을 군화발로 뛰어다닙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나도 1995∼1997년에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 있는 군부대에서 육군보병으로 훈련을 뛸 적에 중대장과 하사관 명령과 지시에 따라 ‘지도만 보면서’ 시골 논밭을 아무렇지 않게 완전군장을 한 채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시골 논밭을 일구는 할매와 할배는 완전군장에 총을 쥔 군인들 수백 수천이 뛰어다니는 모습, 여기에 헬리콥터가 날고 탱크가 우르릉거리는 둘레에서 숨을 죽이며 창문도 못 열며 지켜보기만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군인이 되어 무슨 짓을 하는 줄 그때에 하나도 몰랐어요. 콩밭을 밟는지, 마늘밭을 밟는지, 하나도 몰랐어요. 안 뛰면 뒤에서 군화발로 걷어차고 소총으로 대가리를 갈기는데, 얻어맞기 싫으니 논밭이건 도랑이건 숲이건 어디이건 마구 휘저어요. 아무 데에서나 똥오줌을 누고, 아무 데에나 전투식량 껍데기를 버리고, 아무 숲에서 아무 나무나 베어 천막위장 한답시고 씌우며 훈련을 뛰었어요. 군인이란 놈들은 이런 멍텅구리 짓을 해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송전탑뿐 아니라 공장과 발전소와 골프장 따위도 이 나라 곳곳에 수두룩하게 있습니다. 모두들 우리 삶터를 살리는 시설이나 문명이 아니라, 우리 삶터를 옥죄거나 죽이는 시설이나 문명입니다.


.. 해마를 마구 잡아들이는 지역은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열대 지역 삼나라들로, 해마 채취가 주민들의 수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여 해마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도 이들을 설득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  (123쪽)


  《아기 낳는 아빠 해마》를 읽는 동안 온갖 생각이 갈마듭니다. 해마는 그저 바다에서 조용히 살아갑니다. 암컷 해마도 수컷 해마도 이녁 새끼를 알뜰히 사랑하며 아낄 뿐입니다. 그렇지만,사람들은 해마를 해코지합니다. 해마를 괴롭히고 들볶습니다. 밥을 삼거나 약을 삼아 때때로 조금씩 잡는다면 나쁘지 않으나, 해마가 살아갈 곳을 모조리 짓밟고, 수족관에 들인다거나 장난감처럼 삼으려고 마구 잡아들입니다.


  해마를 수족관에 넣듯이 사람을 동물원 우리에 넣으면 어떠할는지 생각할 노릇이에요. 수족관에서 살아야 할 해마가 즐거울까요? 동물원 우리에서 ‘남이 넣어 주는 밥’만 먹으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 사람이 즐거울까요?


  이 땅에 드리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울까요? 군대와 전쟁무기가 참말 이 땅과 지구별에 평화를 찾아다 주는가요? 군대가 사라지거나 전쟁무기가 없으면 참말 이웃나라가 이곳으로 쳐들어올까요? 군대와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중앙정부가 서로 툭탁툭탁 싸우면서 서로 잘났다고 뻗대지 않는가요? 군대도 권력도 총칼도 폭력도 아닌, 오직 사랑과 꿈과 이야기로 이 나라와 지구별을 살려야 하지 않나요?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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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먹을 밥을 하는 마음

 


  내가 차리는 밥은 나도 먹고 옆지기도 먹고 아이들도 먹습니다. 아이들이 노느라 바쁘면 애써 차린 밥이 다 식을 때까지 밥상맡으로 안 모이기도 하는데, 여름날이라면 모르되 겨울날 따순 밥과 국이 다 식도록 밥상맡으로 모이지 않는 날이면, 이내 서운합니다. 애써 차린 밥을 안 먹어서 서운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몸으로 따순 기운이 덜 들어가겠구나 싶어 서운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살붙이 모두 따순 넋 되고 따순 삶 되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밥 한 그릇에 담아 아침저녁을 차립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 못지않게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어버이로 살아가고 싶어 아침저녁을 차립니다. 풀을 뜯고, 헹구고, 손질하고, 톡톡 끊거나 썰어서 예쁜 접시에 담습니다. 때로는 김을 장만해서 알맞게 자르고, 국을 끓일 적에는 으레 다시마를 불려서 끓인 뒤 작게 썹니다. 집일을 하며 손가락과 손마디에 굳은살 두껍게 잡히니 뜨거운 냄비이건 그릇이건 아무렇지 않게 집습니다. 뜨겁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 손도 오늘 내 손처럼 굳은살 두껍게 잡히며 단단했어요. 나는 어머니 손을 물려받아 오늘 하루 살아가고, 우리 아이들도 내 손을 이어받으며 저희 하루 살아가겠지요.


  아이와 살아가니 아이 먹을 밥을 차린다 할 테지만, 아이가 먹는 밥이란 어버이인 내가 먹는 밥입니다. 서로 먹는 밥이고, 서로 살리는 밥입니다. 아이한테만 이것저것 먹일 수 없어요. 어버이부터 이것저것 먹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고기를 먹이고 싶다면 어버이도 고기를 먹어야지요. 아이한테 풀을 먹이고 싶으면 어버이도 풀을 먹어야지요.


  지난날 돌이키면, 나는 풀을 그닥 안 먹는 삶이었습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아이가 하나둘 찾아오면서, 밥차림에 풀빛이 차츰 늘어납니다. 앞으로 한 해 더 지나면 우리 집 밥차림은 더 푸른 빛이 될 테고, 두 해 더 흐르면 우리 집 밥차림은 한결 푸르게 빛나는 꽃밥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나 혼자 아닌 아이들도 나란히 풀을 뜯어서 밥상에 올릴 테니까요.


  옆지기가 처음 풀물 짜서 건네던 날을 돌아봅니다. 처음에는 풀물을 마시기 무척 힘들었는데, 이제는 풀물을 아주 잘 마십니다. 처음에는 날푸성귀 씹어서 먹기가 수월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날푸성귀가 가장 맛있어, 들길을 지나거나 숲속을 걷다가도 아무 풀이나 먹음직스럽다고 느끼면 톡톡 뜯어서 입에 넣고 한참 오물거립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나뭇잎 새로 돋은 자국 보면, “나무야 한 잎만 주라.” 하고 말하면서 새로 돋은 잎을 톡 뜯어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오래도록 씹습니다. 나무 한 그루 이 땅에 뿌리내려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머금으며 내놓은 싱그럽고 보드라운 푸른 빛을 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우리 먹을 밥이란, 우리 살아갈 빛이라고 느낍니다. 밥을 날마다 차리면서, 밥순이 노릇 할 수 있는 하루가 얼마나 즐거우며 대단한가 하고 깨닫습니다.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며 밥돌이 구실 하는 삶이란 얼마나 놀라우며 아름다운가 하고 느낍니다. 숨을 쉬고, 물을 마시며, 밥을 먹습니다. 볕을 쬐고, 바람을 쐬며, 흙을 만집니다. 사람이 오롯이 사람빛이 되는 삶을 그립니다. 사람이 되는 사람빛이란 어떤 무늬와 결일까 하고 떠올립니다. 우리가 먹는 밥 그대로 우리 몸이 되며 우리 넋과 말과 빛이 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 앞에서 삶을 살찌우는 이슬떨이가 됩니다. ‘어버이’라는 이름이 고맙습니다.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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