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핏기저귀 빨래

 


  새벽 다섯 시 반에 방바닥에 불을 넣는다. 아이들 이불깃을 여민다. 작은아이가 뒤척이기에 쉬 할래 하고 여러 차례 묻는다. 안아서 쉬를 누일까 하다가 달게 자는구나 싶어 그대로 둔다. 어제는 이러다가 바지에 쉬를 옴팡 누었지만,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잘 가리리라 믿는다. 방바닥에 불을 넣는 김에 새벽빨래를 할까 생각한다. 아이들 옷가지만 빨아야 한다면 아침이나 낮에 해도 되지만, 곁님 핏기저귀가 있으니, 따순 물로, 아니 뜨거운 물에 폭 담그면서 빨래하자고 생각한다.


  갓난쟁이 똥기저귀와 곁님 핏기저귀는 햇볕에 바짝바짝 말려야 누런 기운이나 붉은 기운이 빠진다. 아무리 잘 삶아도, 삶듯이 뜨거운 물에 폭폭 담그며 빨아도, 누런 기운이나 붉은 기운은 빠져나가지 않는다. 다른 빨래도 햇볕에 말릴 적에 가장 잘 마르고, 이불도 햇볕에 말려야 비로소 보송보송한데, 기저귀도 햇볕에 말려야 가장 보드라우며 포근한 기운이 감돈다.


  요 며칠 날이 좀 얼어붙어 빨래를 바깥으로 내놓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어떤 날씨가 될까. 햇볕이 알맞게 따스하다면, 핏기저귀 빨래를 마당에 살포시 내놓아 햇볕을 먹이고 싶다.


  뜨거운 물에 담그며 빨다 보니 손이 얼얼하다. 찬물에 빨래를 해도, 더운물에 빨래를 해도, 옷가지를 다 널고 나면 손이 내 손이 아닌 듯하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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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82] 가을

 


  아름답게 누리기에 아름다운 하루.
  즐겁게 가꾸기에 즐거운 나날.
  사랑스레 돌보기에 사랑스러운 삶.

 


  아름다운 가을이라면, 참말 아름답게 하루를 일구면 아름다운 삶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랑스러운 가을이라면, 그야말로 사랑스럽게 하루를 누리면 사랑스러운 삶 되는구나 하고 느껴요. 즐거움도 슬픔도, 기쁨도 서운함도, 싫음과 좋음도, 모두 내 마음속에서 태어나요. 멋진 님이 찾아와 내 삶을 가꾸어 주지 않아요. 언제나 스스로 하루하루 즐겁게 누리면 모든 일이 다 환하게 빛나리라 느껴요. 늦가을 마지막 날을 맞이하며, 이제 가을은 한 해를 기다려야 다시 찾아오네, 하고 깨닫습니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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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81] 책과 나무

 


  지게가 되고 기둥이 되며 땔감이 되다가,
  책걸상 되고 연필이 되며 책이 되는,
  푸른 숨결과 온몸을 내어주는 나무.

 


  책이 아직 나무였을 적에는 더럽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바라보며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옴팡지게 마셔야 한다면 나뭇줄기와 잎사귀가 새까맣게 되지만, 이런 가녀린 도시나무를 바라보며서도 더럽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 몸통을 잘라서 종이를 만들 적에 화학처리를 합니다. 종이를 책으로 묶으며 잉크 찍고 다시 화학처리를 합니다. 책은 온통 나무 몸통인데, 책이 되면서 차츰 먼지가 쌓여요. 헌책방 헌책뿐 아니라 도서관 책들과 새책방 새책에도 책먼지 많이 묻어요. 새책방에서도 도서관에서도 모두 장갑을 끼고 책을 만지지만, 어느새 새까맣게 되어요. 풀과 꽃과 나무도 사람 손을 타면 먼지가 낄까요. 따사로운 넋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어디에나 먼지가 낄까요.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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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41. 2013.11.29.

 


  한창 밥을 먹는데 큰아이가 슬그머니 장난을 한다. 여느 때라면 밥 한 술 뜨고 콩콩 뛸 테지만, 날이 추워 부엌문을 닫고 먹느라 콩콩 뛰지 못하니, 네모낳게 썬 곤약을 손가락에 끼우고는 “어라, 곤약반지네?” 하면서 빙그레 웃는다. 이 모습을 본 작은아이도 똑같이 손가락에 곤약을 끼우고는 “곤약반지네?” 하고 말한다. 밥도 놀면서 먹어야 밥이로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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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3.11.28. 작은아이―누나 흉내

 


  글씨쓰기를 하다가 슬쩍 밀어놓고 다른 짓 하며 노는 큰아이 옆으로 작은아이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누나가 쥐던 연필을 쥐고, 누나가 쓸 네모칸에 슥슥 무언가 그리는 흉내를 낸다. 연필 쥐는 매무새는 마치 아주 잘 쓰는 아이처럼 보이지만, 막상 공책 네모칸에 아주 가늘게 금만 그을 뿐 아무것도 쓰지는 못한다. 옆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줄 깨닫고는 배시시 웃는다. 괜찮아. 네 누나는 아무것도 안 하니까 네 마음대로 놀면 돼.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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