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빛 읽기

 


  책을 읽는 사람은 줄거리를 훑기도 할 테지만, 줄거리를 훑는다 하더라도 줄거리에 서린 빛을 읽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언제나 빛을 읽어요. 글쓴이 넋이 감도는 빛을 읽고, 그린이 꿈이 담긴 빛을 읽으며, 엮은이 사랑이 춤추는 빛을 읽어요.


  책을 읽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눈빛이 초롱초롱 맑아요. 어떤 책을 손에 쥐어 읽든 아름다운 눈망울과 몸가짐이 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어느 책을 손에 쥐든 빛을 읽기 때문이에요. 책을 쓰고 엮은 사람들 빛을 책을 거쳐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즐겁게 풀내음을 베풀고, 풀내음 흐르는 고운 빛이 우리 가슴으로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책빛이란 삶을 살찌우는 빛입니다. 책빛이란 사랑을 가꾸는 빛입니다. 책빛이란 마음을 살살 간질이면서 깨우는 빛입니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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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013) 최선의 1 : 최선의 방법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우정 엮음-깨어라, 여성》(학민사,1988) 머리말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 말씀”이나 “하느님이 들려준 말씀”으로 손봅니다. ‘공부(工夫)하는’은 ‘배우는’이나 ‘익히는’으로 다듬고, ‘그것을’은 ‘이는’으로 다듬으며, “실천(實踐)애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는 “몸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나 “몸소 할 때이기 때문이다”로 다듬어 줍니다.


  한자말 ‘최선(最善)’은 “(1) 가장 좋고 훌륭함 (2) 온 정성과 힘”을 뜻한다고 해요. 국어사전을 살피면, “최선의 방법”이나 “감기에 걸리면 푹 쉬는 게 최선이다”나 “최선을 기울이다”나 “최선을 다해 볼 작정” 같은 보기글이 나와요. 말뜻을 헤아린다면, 이런 보기글은 “가장 좋은 길”과 “감기에 걸리면 푹 쉬어야 가장 낫다”와 “온힘을 기울이다”와 “온힘을 다해 볼 생각”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최선의 방법
→ 가장 좋은 방법
→ 가장 나은 길
→ 가장 훌륭한 길
 …

 

  좋으니 ‘좋다’고 말합니다. 나쁘니 ‘나쁘다’고 말합니다. 모자라면 ‘모자라다’고, 넘치면 ‘넘친다’고 말할 테지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말하고 살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 나눌 뿐입니다. 가장 나은 길을 말하고, 가장 좋은 길을 걸으며, 가장 훌륭한 길을 나눌 수 있으면 돼요. 하느님 말씀이든 수수하며 사랑스러운 한국말이든, 쉽고 바르며 곱게 삶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4340.6.10.해/4346.11.30.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왜냐하면 하느님 말씀을 배우는 가장 나은 길은 이 말씀대로 살면 되기 때문이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370) 최선의 2 : 최선의 것

 

노동은 가장 좋은 것이기도 하고 가장 나쁜 것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노동이라면 최선의 것이고, 예속된 노동이라면 최악의 것이다
《알랭/박상규 옮김-행복론》(신구문화사,1979) 110쪽

 

  ‘노동(勞動)’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하는 ‘일’과 ‘노동’은 어떻게 다를까 생각해 봅니다. 둘은 참말 다른 말일는지요. ‘예속(隸屬)된’은 ‘매인’이나 ‘얽매인’으로 다듬습니다. ‘자유(自由)로운’은 ‘홀가분한’이나 ‘매이지 않은’으로 손질해 줍니다.

 

 가장 좋은 것 (o)
 최선의 것 (x)

 

 보기글을 보니, 앞에서는 “가장 좋은”과 “가장 나쁜”으로 적는데, 바로 뒤에서는 “최선의”와 “최악의”로 적습니다. 글쎄, 굳이 이렇게 달리 적어야 했을까 싶습니다. 똑같이 “가장 좋은”이랑 “가장 나쁜”으로 적으면 넉넉했을 텐데요. 굳이 달리 적고 싶다면, 뒤쪽은 “가장 나은”과 “가장 몹쓸”로 적으면 될 텐데요.

 

 가장 나쁜 것 (o)
 최악의 것 (x)

 

  알맞춤하고 살뜰하게 적는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알맞춤하게 쓰기보다는 꾸미거나 치레하거나 어렵게 쓴다면,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뒤틀리고 만다고 느낍니다. 가장 좋으면서 가장 훌륭한 한국말을 누구나 빛낼 수 있기를 빌어요. 4341.5.21.물/4346.11.30.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일은 가장 좋기도 하고 가장 나쁘기도 하다. 홀가분한 일이라면 가장 낫고, 얽매인 일이라면 가장 나쁘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09) 최선의 3 : 최선의

 

될 수 있는 한 수입 농산물이나 가공식품 사용을 피하고 안전한 국내 농산물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랍니다
《박연-식물, 어디까지 아니?》(고래가숨쉬는도서관,2013) 63쪽

 

 “될 수 있는 한(限)”은 “될 수 있는 대로”나 “되도록”으로 다듬고, “수입(收入) 농산물(農産物)”은 “수입 곡식”으로 다듬습니다. 조금 더 다듬어 “나라밖 곡식”으로 다듬을 수 있어요. “사용(使用)을 피(避)하고”는 “먹지 말고”나 “안 먹고”로 손보고, ‘안전(安全)한’은 ‘깨끗한’이나 ‘걱정없는’이나 ‘좋은’으로 손보며, “이용(利用)하는 것이”는 “먹어야”나 “먹을 때에”로 손봅니다. “국내(國內) 농산물”은 “우리 곡식”으로 손질하는데, ‘농산물’이라는 낱말이 걸맞지 않아요. 땅에서 거두는 먹을거리는 ‘곡식’이에요.

 

 최선의 방법이랍니다

→ 가장 좋답니다
→ 가장 낫답니다
→ 가장 훌륭합니다
 …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말이라면 한결 쉽게 가다듬으면 훨씬 즐겁습니다.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말일 적에도 한결 쉽게 추스르면 더욱 즐거워요. 다섯 살 어린이나 세 살 아이한테 ‘최선’이 무엇인 줄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셔요. 다섯 살 어린이뿐 아니라 열다섯 살 어린이와 스물다섯 살 어른한테도 ‘가장 좋다’는 아주 쉽게 가르칠 수 있어요.


  아이들이 알아듣기에 좋은 말이 가장 좋은 말이라 할 만합니다. 아이를 비롯해 모든 어른들이 즐겁게 쓸 수 있는 말이 가장 나은 말이라 할 만해요. 학교를 다니지 못한 사람도 쉽게 알아차릴 만한 말이 가장 훌륭한 말이 되어요. 4346.11.30.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될 수 있는 대로 수입 곡식이나 가공식품은 먹지 말고, 깨끗한 우리 곡식을 먹어야 가장 좋답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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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3-11-30 21:58   좋아요 0 | URL
마치 번역 잘하기.. 이런 글을 보는 듯해요. 영어를 우리말로 바꿀 때 좀 더 우리말답게 바꾸자 뭐 이런 글들 있잖아요. 우리 말에 영어투, 한문투, 일본말투 등이 많이 들어와 있는 걸 느낍니다.

파란놀 2013-11-30 22:27   좋아요 0 | URL
꼬마요정 님 말씀처럼... 한국말에는
중국사대주의, 일본식민지, 미국자본주의...
이렇게 세 가지 슬픈 물결이 잔뜩 깃들어서
이래저래 엉터리랍니다... ㅠ.ㅜ
 

책아이 76. 2013.11.27.ㄱ

 


  누나 따라쟁이 산들보라가 아버지 곁에 붙어서 아버지가 상자에서 꺼내는 책을 하나하나 집어서 넘긴다. 제법 책 읽는 모양새 잡힌다. 늘 누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이 아이도 아버지와 누나 따라 책빛을 누리고 싶을까. 큰아이 때와 똑같이 아직 글을 모르지만 그림만 죽죽 살핀다.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가를 헤아린다. 그림책은 한국 그림책이건 나라밖 그림책이건 다 좋다.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놓으며 펼치는 그림책이라면 아이들은 맑은 눈빛 되어 새록새록 받아먹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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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의서재 2013-11-30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림책의 독자를 저학년 어린이로 한정한다는 것이 늘 안타까워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맑은 눈빛이 된답니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느낄 땐 소장하고 싶은 그림책을 장바구니에만 담아놓고 실행해 옮길 수 없을 때예요...

파란놀 2013-12-01 00:56   좋아요 0 | URL
어른들도 모두 그림책 아름답게 즐기면서
아름다운 눈빛 밝히면 참 좋겠어요.

사진을 안 올렸었네요 @.@
에고고, 이제서야 사진을 붙입니다 ㅠ.ㅜ
 

[당신은 어른입니까 31] 어버이읽기
― 물려받은 사랑과 삶과 넋 물려주기

 


  엊저녁 아이들이 남긴 밥을 새벽에 먹습니다. 이 찬밥을 치워야 아침에 새밥 짓습니다. 아이들 밥그릇에 남은 밥을 치워야, 아이들 밥그릇을 정갈하게 씻고 헹구어 다시 밥상에 올립니다.


  아이들은 놀이꾼입니다. 잠자리에서도 놀고, 마실을 가는 군내버스에서도 놀며,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을 적에도 놉니다. 아이들은 놀이지기입니다. 밥을 먹다가도 놀며, 놀다가도 새롭게 놀 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안겨 새로운 놀이를 찾아냅니다.


  어버이란 아이들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란 아이를 낳거나 돌보면서 사랑을 물려주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란 어버이 되기 앞서까지 아이로 지내면서 다른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곧, 어버이라는 자리에 서면, 이제껏 받은 사랑을 새로운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여태 누린 즐거운 삶을 아이한테 새로우면서 즐겁게 물려줄 적에 어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대서 어버이가 아닙니다. 아이를 낳았기에 어버이가 아닙니다. 그동안 아름답게 받은 사랑을 하나하나 깨닫고, 이렇게 깨달은 사랑을 아이들한테 차근차근 따사롭고 넉넉하게 돌려주거나 나눌 수 있을 때에 어버이입니다. 그동안 즐겁게 누린 삶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이렇게 헤아린 삶을 아이들이 씩씩하고 튼튼하게 가꾸도록 이끌 수 있을 때에 어버이입니다.


  새벽에 엊저녁 아이들 밥을 마저 먹어서 치웁니다. 아이들 밥그릇에 물을 받습니다. 아침에 밥을 끓이면서 설거지를 해야지요. 아이들 오줌그릇을 비우러 마당으로 내려서며 밤하늘 별을 올려다봅니다. 아직 새벽이 이르고, 곧 섣달이며 그믐달에 가까우니, 까만 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이 새하얗습니다. 아이들 마음이란, 이 별빛처럼 초롱초롱 빛나겠지요. 어버이라는 사람은 아이들 마음이 언제나 초롱초롱 빛나면서 환하게 따숩도록 북돋우는 길을 걷는다 하겠지요.


  날마다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고, 몸을 씻기며 손발을 살핍니다. 날마다 아이들과 살을 비비고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듣고 배울 것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맞아들이고 받아들일 삶을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먹을 밥이란 어른이 함께 먹을 밥입니다. 아이들이 입을 옷이란 어른이 함께 입을 옷입니다. 아이들이 살아갈 집이란 어른이 함께 살아갈 집입니다. 아이들이 자랄 마을이란 어른이 함께 자라며 어깨동무할 마을입니다.


  아이한테만 주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주기 앞서 어버이가 먼저 살피고 누리며 생각합니다. 아무 책이나 아이한테 건네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건네기 앞서 어버이가 먼저 살피고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즐겁게 읽으며 누린 책일 때에 아이한테 건넬 수 있습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마음이 북받치거나 즐겁구나 하고 느낀 책일 때에 아이를 무릎에 앉혀 읽어 줄 수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몫은 어머니 혼자 맡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혼자 못 낳습니다. 아이는 아버지 혼자 낳을 수도 없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둘이 있어 아이를 낳듯, 어머니와 아버지 둘이 아이들한테 사랑을 고이 물려줄 때에 비로소 어버이 몫을 맡는다 말합니다.


  돈만 버는 사람이라면 돈쟁이가 될 뿐이에요. 밥만 지어 챙긴다면 밥순이가 될 뿐입니다. 집살림 꾸리려 돈은 돈대로 벌더라도, 아이들과 누리는 삶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제까지 우리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떠올리고, 아이한테 새롭게 사랑 한 타래 더 얹은 꿈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라는 아이입니다. 교육을 받거나 훈련을 받는 아이가 아닙니다. 꿈을 받아먹으며 크는 아이입니다. 한글과 영어와 한자를 일찌감치 떼어야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삶을 깨달아 아름답게 가꿀 아이입니다. 대학생이 되거나 회사원이 되어야 할 아이가 아닙니다.


  아이를 아름답게 돌보고 싶다면, 어버이는 어버이 삶부터 아름답게 돌보면 됩니다. 아이를 사랑스레 보살피고 싶으면, 어버이는 어버이 삶부터 사랑스레 보살피면 됩니다. 아이한테 베풀거나 나누고 싶은 무언가 있다면, 바로 어버이 스스로 이러한 무언가를 즐겁게 누리면서 시나브로 아이한테 물려주면 돼요. 어버이 마음이 아이 마음 되어요. 아이 마음은 다시 어버이 마음이 됩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면서 활짝 웃는 한솥밥지기입니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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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어디까지 아니? -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식물 이야기 탐험하는 고래 1
박연 글.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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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3

 


풀숨 싱그럽게 함께 먹어요
― 식물, 어디까지 아니?
 박연 글·그림
 고래가숨쉬는도서관 펴냄, 2013.10.7.

 


  엊그제 문득 한 가지를 느낍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 시골마을 보금자리를 ‘후박나무 집’이라 할 만하구나 하고. 우리 집은 ‘후박나무 집’이 되어, 이웃한테나 동무한테나 아이들한테나 오래오래 이곳을 지키겠구나 하고.


  우리 식구들 심은 후박나무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튼튼히 뿌리를 내립니다. 이 나무는 앞으로 이백 해 사백 해 육백 해 이어가리라 봅니다. 천 해를 넘고 이천 해를 넘게 살 수 있어요.


  우리 마을에 자라는 후박나무 가운데 우리 집 나무가 가장 큽니다. 마당에 후박나무 심어 돌보는 다른 집 있는지 모르겠는데, 처음 이 집에 들어올 적부터 그대로 두었어요. 가지를 치라는 사람 많지만 그대로 두니, 차츰 그늘이 짙고 커집니다. ‘마당을 다 가린다’고 이웃 할매나 할배가 말씀하지만, 한여름에는 시원해서 즐겁고, 한겨울에는 바람을 막으니 고맙습니다. 나무 한 그루는 그냥 나무 한 그루이지 않아요. 빛이 되고 넋이 되어요. 꿈이 되고 사랑이 됩니다.


  마당 한쪽에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를 심었는데 살구나무는 그만 죽고 복숭아나무만 삽니다. 집 뒤꼍에 심은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는 씩씩하게 살아서 겨울을 기다립니다. 집 뒤꼍에는 다른 나무들도 한두 그루씩 차근차근 심어서 돌볼 생각이에요. 뒤꼍으로 가는 길목에는 어린 대추나무 한 그루를 심었어요. 모두들 한 해 두 해 새롭게 자라고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아름답게 자랄 테지요.


  집 둘레에 심은 나무는 열매를 내어주어도 반가우며 고맙지만, 열매가 아닌 나무로 있어 주어도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후박나무 열매를 우리 식구가 안 먹고 두어도, 마을 텃새와 여름 철새가 찾아와서 따먹습니다. 초피나무 열매도 새들이 즐겁게 따먹어요. 이러면서 새들은 초피나무에 범나비가 낳은 애벌레가 살이 통통하게 오를 무렵 하나둘 잡아먹습니다. 우리 식구가 배추를 심어서 돌보면, 새들은 배추밭으로도 찾아와 배추흰나비 애벌레 잡아먹으려 하겠지요.


.. 아기 피부같이 부드러운 흙 속에서는 봄이면 수많은 생명이 깨어나 기지개를 켠답니다. 꼬물거리는 작은 벌레, 딱딱한 씨앗을 뚫고 힘차게 자라나는 새싹, 그리고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동물들까지, 봄의 밭에는 싱그러운 생명력이 넘쳐나지요 … 허브는 향기가 있는 식물 전체를 뜻하는 말이에요. 향기가 강한 쑥은 전통적으로 생활 허브로 이용되어 왔어요. 봄에 다 자란 쑥을 베어 말려 두었다가 목욕탕이나 화장실에 걸어 두면 나쁜 냄새를 빨아들이고 쑥향이 은은하게 배어 방향제 대용으로 사용했지요 ..  (8, 42쪽)

 

 


  늦가을에 접어들면 바람이 바뀝니다. 새봄이 찾아오면 바람이 또 바뀌어요.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바다에서 뭍으로 부는 바람이고, 늦가을부터 봄까지는 뭍에서 바다로 부는 바람이에요.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우고 씩씩하게 마실을 다니면서 봄바람과 가을바람 맞습니다. 포근한 날에는 포근한 바람을 누리고, 추운 날에는 추운 바람을 누려요. 더운 날에는 자전거에서 맞이하는 바람이 시원하고, 추운 날에는 입이며 코며 손발이며 꽁꽁 얼어붙으면서 달립니다.


  추운 날에는 멀리 다니지 못하지만, 추운 바람 맞으면서도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잡니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볼이 빨개지면서도 가을자전거와 겨울자전거를 즐깁니다. 앞으로 한 살 두 살 더 먹어 열 살쯤 되면, 이 아이들은 내 곁에서 저희 자전거를 씩씩하게 달리며 여름과 겨울을 새롭게 맞이할 수 있어요. 아직은 혼자서 바닷가까지 자전거를 달리지 못하지만, 머잖아 아이들은 스스로 자전거 발판을 굴러 바닷가 나들이 다녀오리라 생각해요.


  혼자서 자전거를 달려 들길을 달릴 때쯤,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낄까요.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나란히 자전거를 달려 바닷가에 닿아 서로 물놀이 실컷 누릴 때에,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낄까요. 아이들이 자전거로 멧골 어귀까지 달린 뒤 자전거는 길가에 세우고 숲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가 되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낄까요.


  새봄이 되면 제비가 찾아오고, 제비가 찾아올 즈음 개구리가 깨어나며, 개구리가 깨어나는 언저리에 풀벌레 하나둘 고개를 내밉니다. 나무마다 새눈이 트고, 풀마다 새 줄기 쭉쭉 새 잎사귀 푸릇푸릇 내놓습니다. 어른들은 나물 뜯느라 부산하고, 아이들은 두꺼운 옷 훌훌 벗어던지고 뛰노느라 바빠요.


  가을이 저물며 새겨울 되기까지 제비를 비롯한 철새는 따순 나라로 돌아갑니다. 개구리와 뱀은 겨울잠에 듭니다. 다람쥐도 도토리를 여기저기 파묻고는 새근새근 쉬어요. 풀벌레는 알집을 남기거나 가랑잎 사이에 깃듭니다. 바람이 나뭇잎 건드리는 소리만 남습니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와 소나무와 잣나무 들을 빼면, 숲에는 이제 나뭇잎도 거의 안 남아, 겨울바람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스칩니다. 스산하고 고즈넉한 바람이 됩니다.


.. 옛날에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약초는 물론이고 들에서 흔하게 나는 나물도 채소로 이용했어요. 우리 나라 산과 들에는 먹을 수 있는 식물이 500여 종이 있고, 그중 20여 종의 나물은 도시 근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답니다. 우리 조상들이 보릿고개나 계속되는 가뭄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산과 들에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한 나물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 물과 이산화탄소를 먹고 광합성을 하는 식물은 초식동물이 먹고,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이 먹지요. 그리고 육식동물이 죽으면 버섯이나 곰팡이 같은 분해자들의 먹이가 된답니다. 죽은 생물체의 몸에 붙어 영양소를 얻는 버섯은 생태계의 분해자이자 청소부랍니다. 분해자들은 죽은 생물들을 분해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되돌려 놓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이런 분해자가 없다면 우리 환경은 썩지 않는 시체들로 넘쳐 나겠지요 ..  (28, 49쪽)

 


  겨울 어귀에 거의 모든 풀이 누렇게 시듭니다. 그렇지만 뿌리는 땅에 튼튼하게 박습니다. 어른 손가락보다 굵게 자란 쑥은 마치 나뭇줄기 같습니다. 쑥꽃이 지며 바싹 말라도 쑥줄기는 쉬 뽑히지 않고 꺾이지 않아요. 고들빼기 줄기도 아주 굵어요. 키가 높이 자라며 숱한 꽃 잔뜩 달더니 어느새 꽃이 지고 씨앗 풀풀 날리고는 바싹 시듭니다.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자라면서 고운 잎사귀 내주던 풀이 하나같이 시드는데, 까마중은 아직 새로 꽃을 맺으면서 열매를 베풉니다. 부추도 새로 싹이 트며 보들보들 통통한 잎사귀를 베풉니다. 부추꽃은 벌써 지고 까만 부추씨도 거의 떨어졌는데, 뜻밖에 부추잎은 지치지 않고 푸른 빛으로 맑아요. 십이월에 들어서더라도 고흥에서는 까마중과 부추를 누립니다.


  여기저기 때이른 유채풀이 돋고 갓풀이 돋습니다. 아니, 때이르다기보다 때늦다고 해야 할까요. 겨우내 폭 쉬고 새봄에 돋아야 할 풀이거든요. 논둑을 지나가다가 유채풀 몇 뜯습니다. 집 언저리 갓풀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주까리 열매를 바라보고, 잎이 모두 진 무화과나무에 아직 매달린 열매꽃을 살살 어루만집니다.


  잎사귀 모두 떨군 나무 앞에 섭니다. 가을까지 알뜰히 매달던 잎은 모두 떨어졌지만, 새로운 잎이 돋으려고 아주 조그마한 눈이 올망졸망 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눈에서 잎이 하나씩 둘씩 나올 봄이 되면 다시 푸르게 우거집니다. 나무마다 겨울 이겨낸 눈이 활짝 터지면, 따순 바람을 타고 드넓은 바다 가로질러 이 땅에 찾아올 예쁜 철새들 노래합니다.

 

 


..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무기질 등이 풍부한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불리며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곡식이랍니다. 우리 나라는 콩에 관한 음식이 많기로 유명해요. 다른 나라는 콩을 그냥 섭취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콩을 길러 만든 콩나물, 콩을 발효해서 만든 된장, 청국장 등 여러 가지 콩 음식을 만들어 먹었지요 … 도토리는 또 천연염색 재료로도 쓰여요. 여름에는 주로 잎을, 가을과 겨울에는 열매를 이용해 옷감에 검은색 물을 들이지요. 천연 탈취제로도 쓰이는데, 도토리가 열리는 떡갈나무나 상수리나무 잎을 냉장고에 넣어 두면 냉장고에서 나는 나쁜 냄새를 싹 없애 줘요 ..  (58, 72쪽)


  시골에서 살아가며 틈틈이 만화를 그리는 박연 님이 빚은 그림이야기책 《식물, 어디까지 아니?》(고래가숨쉬는도서관,2013)를 읽습니다. 《식물, 어디까지 아니?》는 열 살 언저리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습니다. 열 살쯤 되는 어린이부터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밭을 일구는 슬기를 얻을 만합니다. 이 책만 보면서 논을 일구기는 쉽지 않으나, 논을 일구는 슬기는 살짝 엿볼 만해요. 이 책을 곁에 두고 어버이와 이웃 어른한테서 도움을 받으면서 밭을 일구다 보면, 앞으로는 논도 씩씩하게 일굴 수 있어요.


  그림이야기책 《식물, 어디까지 아니?》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너, 손수 흙을 일구어 맛나게 밥 먹고 싶지 않니?”라 할 만합니다. 시골 아지매이자 만화지기인 박연 님은 이녁 스스로 시골집에서 시골빛 일군 즐거움을 조곤조곤 담아서 보여주어요. 어려운 시골일 아닌 즐거운 시골일이요, 손에 흙을 묻히고 이마에 땀방울 흐를 적에 활짝 웃을 만한 일이 벌어지는 기쁨을 살며시 들려줍니다.


  책이름에서는 ‘식물’이라 했지만, 이 책을 들여다보면 ‘풀’이 나오고 ‘나물’이 나옵니다. ‘푸성귀’가 나오고 ‘풀노래’가 흘러요. 풀밭에 깃들어 살아가는 수많은 숨결이 나와요. 사람 또한 풀이 있어 즐겁게 삶을 이룰 수 있구나 하고 알려줍니다. 봄 씨앗 뿌리기, 서로 돕는 풀, 숲이 베푸는 선물인 나물, 삶과 맞닿은 쑥, 숲을 말끔히 치우며 깨끗하게 돌보는 버섯, 밭에서 자라는 넉넉한 밥인 콩, 쓸모 많은 도토리, 오리로 논 일구기, 시골집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꽃, 이렇게 아홉 갈래로 나누어 시골 이야기 보여줍니다.

 

 

.. 도토리를 먹고사는 어치는 참나무숲을 만들어 주는 새랍니다. 어치는 겨울에 먹을 도토리를 땅속에 숨겨 두지만 다 찾아 먹지는 못해요. 그래서 어치가 땅속에 숨겨 두고 찾지 못한 도토리는 봄이 되면 싹이 터서 참나무숲을 만드는 것이지요 … 가뭄이 심해 흉년이 들면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식량으로 대신했어요. 흉년에 도토리는 꿀 같은 밤이었기에 꿀밤나무라는 애칭도 얻었지요 ..  (69, 73쪽)


  박연 님은 《식물, 어디까지 아니?》라는 책에서 ‘어린이 여러분, 시골로 오셔요!’ 하고 부르지 않아요. 박연 님이 시골집에 깃들어 시골일 누리는 즐거움을 예쁜 그림과 살가운 글로 속닥속닥 이야기꽃 피우기만 합니다. 흙이 무엇을 하는지, 해는 어떻게 흙을 보듬는지, 흙에서는 어떤 풀과 나무가 자라는지, 흙과 해와 바람과 비는 서로 어떻게 얽히는지, 사람은 이 한복판에서 어떤 삶을 일구며 오늘날까지 살아왔는지, 차근차근 밝힙니다. 책으로 배울 수 있는 흙일은 아니지만, 책에 이야기로 담을 수 있는 흙일이에요.


  흙을 만지고 싶게 이끄는 《식물, 어디까지 아니?》입니다. 풀을 먹고 싶게 돕는 《식물, 어디까지 아니?》예요. 나무를 사랑하고 시골빛 고운 숨결 떠오르게 북돋우는 《식물, 어디까지 아니?》입니다.


  시골에서 서른 해 넘게 즐거이 노래하며 흙을 만졌기에 이만 한 책을 쓰고 그릴 수 있을까요. 시골에서 푸른 숨결 오래오래 마시면서 흙내음 먹었기에 이러한 책을 쓰고 그릴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다’ 하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시골에서 오래 지냈대서 이렇게 글과 그림을 곱게 여밀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시골에서 살지 않더라도 시골빛을 가슴으로 포옥 담으면서 도시에서 텃밭 사랑하는 삶이라면, 도시에서 텃밭조차 돌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밭에 푸른 씨앗 심는 삶을 일군다면, 싱그럽고 아름답게 이야기책 일구리라 느끼요.


  착한 마음일 때에 흙을 착하게 만져요. 참다운 마음일 때에 흙을 참답게 보듬어요. 고운 마음일 때에 흙을 곱게 일구어요. 예부터 시골사람이라면 누구나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흙을 마주했어요. 풀 한 포기도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손길로 어루만졌어요. 나무 한 그루를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어요.

 


.. 현미란 벼에서 왕겨만 벗겨내고 백미로 만들지 않은 쌀을 말해요. 백미에 비해 저장성이 좋고 영양이 풍부해요. 현미는 호분층이라 불리는 쌀겨와 배아(쌀눈), 배유(백미)로 이뤄져 있어요. 다시 말해 현미는 쌀을 틔우는 생명력이 있는 곡식이지만, 백미는 싹을 틔우지 못하는 죽은 곡식이랍니다 ..  (83쪽)


  풀숨 싱그럽게 함께 먹어요. 너도 나도 없이 둘러앉아요. 할배도 아이도 나란히 앉아서 풀숨을 쉬어요. 다람쥐도 까치도 함께 노래해요. 지렁이도 사마귀도 풀밭에서 함께 어울려요. 자가용은 멈춘 뒤, 신을 벗고 맨발로 풀밭에서 달려요. 하늘 한 번 보고, 구름 한 번 쓰다듬어요. 꽃 한 번 보고, 풀줄기 한 번 쓰다듬어요. 냇물 한 번 보고, 무지개 한 번 쓰다듬어요.


  풀밥 아름답게 함께 누려요. 너랑 나랑 도란도란 앉아서 누려요. 할매도 아이도 손에 손을 잡고 풀밥을 누려요. 새앙쥐하고도 참새하고도 나누면서 누려요. 여치하고 거미하고도 나누면서 누려요. 개미하고도 나누고, 너구리하고도 나누면서 누려요.


  풀하고 인사하고, 풀하고 놀아요. 풀이랑 노래하고, 풀하고 춤추어요. 풀과 함께 꿈꾸고 풀빛으로 사랑해요. 풀숨 쉬는 사람은 어깨동무를 할 뿐, 미움도 싸움도 다툼도 없어요. 풀밥 먹는 사람은 웃음꽃으로 이야기꽃을 피울 뿐, 해코지도 따돌림도 괴롭힘도 없어요.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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