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고 싱그러운 숲으로
서로 손 맞잡고
천천히 걸어가자.

 

한 손에는 호미 들고
한 손에는 바구니 들어
콕콕 천천히
그득그득 풀내음 담아

 

냇물 긷고 아궁이 불 지펴
도란도란 마주앉아
풀밥 나누어 먹고
풀노래 함께 부르자.

 


4346.1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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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월 끝날에 충남 서천여고에 찾아가서

그곳 푸름이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

 

말넋 19. 아름답게 빛나는 말이란
― 시골말로 이루는 한국문학

 


  1:2,100,000 축적인 길그림을 들여다보면, 충청남도 서천군에 ‘서천읍·장항·개야도·성의·판교·죽도·연도·어청도’까지 나옵니다. 1:75,000 축적인 길그림책을 펼쳐 충청남도 서천군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두툼한 길그림책에는 ‘가르메·고산메·안산넘얼·막굴·북척메·서내바지교·싸름매·시루굴·섭실·수랑골·궁골·관돌·까치고개·개복다리·낭골·큰낭골·냄배·강성구레·시른개·모가울·밭가운데·구수내골·새터·탑시·갈태·원뫼·솜부리시·건드래·칡더굴·부래이골·싸리뫼·윗뜸·가루골·가리골·방죽건너’ 같은 이름이 줄줄이 나옵니다. 마을이름이 재미있구나 싶어 자꾸 길그림책을 들여다봅니다. 문득 궁금해서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 자리도 길그림책으로 살핍니다. ‘큰뜸·가는골·땅골고개·가드릿재·송곳산·마파지·동굴섬·샛여·더터굴재·닭섬·솔개재·솔바위고개’ 같은 이름을 봅니다. 이 이름들은 언제 누가 지었을까요. 이런 이름은 무엇을 떠올리며 지었을까요.


  ‘닭섬’이라면 닭을 닮은 섬이라서 닭섬일까요. 그러면 ‘닭’이라는 이름과 ‘섬’이라는 이름은 누가 어떻게 처음 지은 말일까요. ‘새터’는 골골샅샅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보는 마을이름입니다. 새로 일군 터, 곧 새로 일군 마을, 그러니까 ‘새마을’과 같은 뜻으로 쓰는 새터예요. 그러면 ‘새(새롭다)’와 ‘터’라는 이름은 누가 어떻게 처음 지은 말일까요. ‘솜부리시’ 같은 마을이름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합니다. 충남 서천말로 서천사람이 빚은 이름일 테지요. ‘냄배’나 ‘시른개’나 ‘모가울’ 같은 마을이름은 또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합니다. 이와 같은 마을이름은 어떤 사랑을 담아서 처음 지었을까요. 이러한 마을이름은 어떤 마음으로 처음 붙여서 가리켰을까요.


  ‘마을’은 사람들 살림집이 조그맣게 모여 이루어진 삶터를 가리킵니다. ‘고을’은 마을이 여럿 모여 이루어진 삶터를 가리켜요. ‘서라벌·달구벌·새벌·황산벌’ 같은 땅이름에 나타나는 ‘-벌’은 퍽 크게 이루어진 고을을 가리킵니다. 이때에도 ‘마을·고을·벌’ 같은 낱말을 얼마나 오랜 옛날 옛적에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지었는지 궁금해요.


  ‘사투리’는 어느 한 곳에서 쓰는 말을 가리킵니다. 어느 고장에서 쓰는 말이라면 ‘고장말’입니다. 고을에서 쓰는 말이라면 ‘고을말’일 테고, 마을에서 쓰는 말이라면 ‘마을말’이에요. 마을에서도 어느 집에서만 쓰는 말이라면 ‘집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갈무리하면, 가장 작은 테두리에서 쓰는 말은 ‘집말’입니다. 나를 낳고 돌보는 어버이가 쓰면서 나한테 물려주는 말이 ‘집말’입니다. 집말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서 여러 집말이 섞여 ‘마을말’이 이루어집니다. 마을과 마을을 여럿 아울러 커다란 고을을 살필 적에는 ‘고을말’이 될 테지요. 다른 고을에서 온 사람이라면 고을말을 느낄 텐데, 요즈음으로 치자면 면내나 읍내쯤에서 쓰는 말이 고을말입니다. ‘고장말’이라면 충청도·전라도·경상도·경기도처럼 더 큰 테두리에서 가리키는 말이에요. ‘사투리’는 집말부터 고장말까지 모두 아울러요.


  서울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충청도로 접어들면 남다르다 싶은 고장말을 느낍니다. 수원이나 파주에서 태어나 살던 사람이 서울로 나들이를 갈 적에도 남다르다 싶은 고장말을 느껴요. 그런데, 오늘날 서울에서는 구나 동마다 다른 고을말이나 마을말은 사라졌어요. 신림동이나 효자동에 깃든 살림집마다 다 달리 쓰는 집말도 사라졌어요. 텔레비전이 시골까지 퍼지며 오늘날 시골에서도 고장말이나 고을말이나 마을말이나 집말은 거의 사라졌다 할 만하지만, 아직 정갈하게 머리카락을 빗어 비녀를 꽂는 시골 할매가 있는 만큼, 오래된 집말과 마을말을 두멧시골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서천사람한테는 어떤 서천말이 남았을까요. 서천군 마서면에서 살아가는 마서사람한테는 어떤 마서말이 남았을까요. 서천군 마서면 송석리에서 살아가는 송석사람한테는 어떤 송석말이 남았을까요. 서천군 마서면 송석리 골뫼마을에서 살아가는 골뫼사람한테는 어떤 골뫼말이 남았을까요.

 

  동화책 《몽실 언니》를 쓴 권정생 님은 경상도 안동 시골마을 사람들 말투를 더듬으며 《한티재 하늘》이라는 이야기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야기책 《한티재 마을》에 나오는 시골말은 경상말이요 안동말이며 더 깊이 파고들어 조그마한 마을 ‘한티재사람’들이 쓰던 ‘한티재말’이에요.


  우리는 흔히 한국말로 문학을 한다고 일컫는데, 한국사람이 빚어서 나누는 한국문학에서 쓰는 한국말이란 어떤 한국말일까요. 표준 한국말일까요. 서울사람이라면 표준 한국말이 된 서울말로 한국문학을 할 만할 텐데, 인천사람이나 부산사람도 서울말로 한국문학을 할 때에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인천사람은 인천말을 찾고, 부산사람은 부산말을 찾아 한국문학을 밝힐 때에 한결 아름답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처럼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고흥말로 한국문학을 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충남 서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서천말로 한국문학을 할 때에 아름답겠지요. 문학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교육도 모두 고장말로, 마을말로, 집말로, 시골말로, 사투리로 꽃피울 적에 한결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이문구 님이나 이청준 님이나 박영한 님이나 조정래 님이나 박완서 님이나 박경리 님이나 ‘표준 서울말’로 이녁 문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이녁이 태어나 자란 ‘마을에서 쓰던 말’과 ‘집에서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로 문학을 했어요.


  오늘날은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말로 문학을 하는 셈일까요. 아니면,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치는 말로 문학을 한다고 해야 할까요. 대학교나 문학강좌에서 들려주는 말로 문학을 하는 노릇일까요.

 

  누구나 이녁 보금자리에서 삶을 일굽니다. 삶을 일구면서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샘솟는 이야기를 사랑스레 노래하면서 말이 태어납니다. 4346.9.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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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3 11:47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글을 올려 주셔서 또
충남 서천여고 푸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들었을
좋은 '말넋'을 함께 듣는군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12-04 07:19   좋아요 0 | URL
시골 아이들이 곧 시골 떠나 도시로 가더라도
'시골에서 나고 자란 보람'을
꿋꿋하고 씩씩하게 건사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어요~
 

꽃아이 24. 2013.11.18.

 


  벼리야, 제비꽃 생각나니? 이 아이는 제비꽃이 지고 난 뒤 맺은 씨앗이야. 제비꽃은 봄에 피지만, 가을에도 햇볕이 따사로우니 한 번 더 피어. 제비꽃 씨주머니는 이렇게 세 갈래로 벌어져서 깨알보다 훨씬 작은 조그마한 동글동글이 맺히고는, 어느새 톡톡 터지듯이 퍼져. 우리 집 둘레는 제비꽃밭이 되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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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로 볼일 보러 간다.

서울 볼일은 수요일인데

아침 열 시부터 모임을 해야 한다.

한글문화연대에서 하는 어떤 일을

함께 하기로 해서,

이 일로 가느라, 아무래도 이틀을 서울에서 묵어야 하는구나 싶다.

 

이렇게 마실을 하는 김에

새로 창간한 사진잡지사에 찾아가

단출하게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시민사회신문>에 쓸 "숲사람 이야기" 일곱째 꼭지로

사진길 씩씩하게 걷는 사람들 삶을 쓸 생각이다.

철수와영희 출판사에 들러

내 책 몇 권을 사서

한글문화연대에 드리거나 팔아서 찻삯에 보탤까 싶고,

<새로 쓰는 우리말> 편집방향 이야기를 들으며

원고쓰기에 더 기운을 내려 한다.

 

사진길 걷는 다른 출판사인 포토넷에도 들러

사진책 어루만지는 마음을 들어야지.

 

이런저런 사이사이 번역쟁이 털보 아저씨를 볼 수 있으려나.

인천에 가서 형한테 시그마렌즈를 건네야지.

형이 새로 지내는 화평동 골목집 둘레를

오랜만에 즐겁게 거닐고 싶기도 하다.

형 주소를 보니 그 동네 언저리를 얼마나 많이 자주 걸었는지

새삼스레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래, 큰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품에 안고

참말 씩씩하게 그 길 많이 거닐었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기차를 탈까.

순천에서 내려 순천 헌책방 사장님을 뵐까.

그렇구나. 대전에 들러 대전 헌책방을 들를 수 있겠네.

아무튼, 이틀 마실 알차게 보내야지.

그동안 우리 식구들 시골집에서

즐거운 나날 잘 보내기를 빈다.

 

미역국 한 솥 끓이고

나물무침도 한 가지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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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3 11:16   좋아요 0 | URL
두루두루 뜻깊은 나들이~
즐겁게 잘 다녀 오세요~*^^*

파란놀 2013-12-04 08:05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마워요~
모든 일 잘 되고
시골집에도 즐겁게 돌아가려 해요~ ^^
 

거의 스무 해 만에

 


  1995년에 처음 알고 지낸 벗님이 있다. 이 벗님을 언제까지 얼굴을 보았는지 잘 떠오르지 않지만, ㄱ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는 벗님을 만나려고 이문동에 있는 신문사지국에서 짐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천천히 걸어서 찾아가곤 했다. ㄱ대학교 앞에 있던 헌책방 ㅅ에서 《삶과 믿음의 교실》이라는 책 첫쇄를 보고는 이 책을 벗님한테 건네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일찌감치 읽었기에 벗님도 읽으라고 건넸는데, 이날 헌책방 ㅅ에서 만난 《삶과 믿음의 교실》에는 이오덕 님이 누군가한테 선물한 자국이 있었다. 이오덕 님 손글씨를 보고는 내가 이 책을 가졌으면 하고 아주 살짝 생각했으나, 머잖아 다른 데에서 또 보겠지 하고 느꼈다.


  ㄱ대학교 사범대학 다니는 벗은 교사가 되겠다고 했다. 이무렵 나도 대학생이기는 했으나, 내가 다니던 대학교와 학과에서는 학문을 제대로 안 가르쳤다. 베껴쓰기 숙제와 줄서기 학점과 훔쳐보기 시험이 판쳤다. 진절머리나는 모습을 보며 대학교를 더 못 다니겠다고, 아니면 다른 학교나 학과로 옮겨야겠다고 한창 골이 아프던 때에, 아이들한테 빛과 꿈이 되는 길을 걷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벗님이 참 멋스럽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와 학과와 동아리에서는 ‘함께 책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학교도서관에서든, 학교 앞 인문사회과확책방에서든, 학교 둘레 헌책방에서든, 즐겁게 책을 장만해서 읽고는 서로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눈빛 밝힐 책벗이 없었다.


  내 대학살이는 2학년 1학기 마치고 군대에 가면서 거의 끝을 맞이한다. 그러나 2학년에 접어든 뒤에는 신문배달을 하며 밥벌이를 하고, 도서관하고 구내서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느라 후배들 얼굴 볼 겨를을 내지 못했다. 하루가 저물면 다들 술집으로 떠날 뿐, 같이 책방마실을 할 벗은 없었다.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 보내고 대학교로 돌아와서도 달라지는 일은 없다. 내 나이가 늘고, 복학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벗이나 책방마실 다닐 벗은 없다. 후배들은 한 번쯤 나한테 붙들려 책방마실을 억지로 끌려오기는 하지만, 두 번이나 세 번 붙들리지는 않는다. 술집이나 당구장으로 데려가는 선배를 좋아할 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견딜 수 없어 대자보를 여러 장 써서 게시판에 붙인 뒤 자퇴를 했다. 내가 쓴 대자보는 한나절이 못 되어 누군가 북북 찢어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럴 만도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이야기조차 나눌 수 없네 하고 느끼니 외려 후련하기도 했다. 자퇴를 하겠다는 나를 두고 하나같이 ‘취업’을 걱정해 주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한다. 그래, 우리는 서로 길이 다르고 삶이 다른데, 어쩌다가 한울타리에 있었을 뿐이야.


  내 길을 찾아 신문배달 자전거를 달리다가, 책마을에 깃들었고, 책마을에서도 슬픈 모습을 많이 겪으며, 또 혼자 동떨어져 지낸다. 이동안 가끔 ㄱ대학교 다니던 벗님이 떠올랐지만, 연락처를 알 길이 없었다. 어디에선가 잘 지내며 아이들 예쁘게 가르치는 길을 걷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러구러 삶이 흐르고 흘러 2013년 12월 1일, ‘그림책 읽는 엄마’ 누리모임에서 오랜 벗님을 다시 만난다. 두 아이 어머니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두 아이 아버지요 새로운 한국말사전 엮는 일을 하니까, 이녁이나 나나 이럭저럭 대견한 나날 누리는 셈일까.


  거의 스무 해쯤 다리를 건너며 만난 벗한테 책꾸러미를 보낸다. 스무 해쯤? 글쎄, 스무 해라 해 보았자 스무 해뿐이리라 느낀다. 서른 해 지나서 마주쳤든, 마흔 해 지나서 만났든, 대수롭지 않다고 느낀다.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누린다면, 언제 보아도 푸른 넋과 빛으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고 느낀다.


  누구나 예나 이제나 같다. 겉모습이 바뀌고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기는 하지만, 누구나 예나 이제나 같다. 갓 태어나 앳되며 사랑스러운 하느님 같은 모습인 채 스무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되며 예순 살 여든 살이 된다. 벗이 ㄱ대학교 언저리, 또는 서울에서 지낸다면 보문동 막걸리를 한잔 얻어마시고 싶지만, 수원에서 지낸다 하니 수원 나들이를 하면서 남문 둘레 책방마실도 할 수 있기를 손꼽아 본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헌책방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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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3 10:57   좋아요 0 | URL
참으로 기쁘고 반가우셨겠어요~!^^
스무 해 전에, 반갑고 기쁜 '좋은 씨앗'을 마음에 품으셨던 분들이
다시금 서로서로 대견한 나날을 누리시다 만나셨군요~*^^*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누린다면, 언제 보아도 푸른 넋과 빛으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고 느낀다.'-

마지막글에 '누구나~여든 살이 된다' 귀절이 뭉클합니다.
언제 보문동 막걸리,도 마시고 싶구요~^^;;;

언제나 삶으로 쓰시는 마음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파란놀 2013-12-04 07:13   좋아요 0 | URL
이렇게 즐겁게 읽어 주시는 이웃님 있으니
저도 늘 새롭게 기운을 내요~

transient-guest 2013-12-04 03:32   좋아요 0 | URL
젊은 나이에 또래와는 다르게 좀더 깊은 실존적인 고민을 하신 것 같아요. 같은 것을 나누고 즐길 수 있는 벗은 흔하지 않지요. 아주 친한 친구가 몇 있지만, 저도 책사랑은 함께 나누지 못해요.ㅎ

파란놀 2013-12-04 07:13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책사랑 나눌 수 있는 벗이란
아주 대단하며 아름다운 삶지기이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