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다

 


  날마다 쓰려고 하는 글이 있는데, 바깥일 때문에 서울로 온 터라, 또 인천에 있는 형네 집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서울로 일하러 가야 하는 터라, 마음속에서 이 글 쓰고 싶으며 저 글 샘솟는데, 이 글빛을 터뜨리지 못한다. 이제 그만 닫아야 한다. 히유우우, 길게 한숨을 쉰ㄷ다. 이따 모임을 너덧 시에 마친다고 하니, 모임을 마치고 다들 뒤풀이나 저녁 먹으러 움직인다고 하는 길에, “저, 마감 맞추어야 하는 글이 있어서요, 한 시간만 살짝 글을 쓰고 올게요.” 하고 말하자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따 한 시간 나 홀로 글쓰기에 폭 사로잡힐 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더없이 슬퍼 눈물을 흘릴는지 모른다.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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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김별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44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면
―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김별아 글
 이룸 펴냄, 2001.9.3.

 


  글지기 김별아 님이 쓴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이룸,2001)를 읽습니다. 어느새 새책방에 사라진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습니다. 한 줄 두 줄 찬찬히 읽습니다. 김별아 님 글 한 꼭지 읽고 책이름을 생각합니다. 김별아 님 글 두 꼭지 읽고 책이름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한참 읽는 동안, 또 책을 다 읽고 덮은 뒤로도, 오래도록 책이름을 떠올립니다.


  톨스토이라는 분은 얼마나 대단한 빛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빛이기에, 러시아에서 먼 한국땅 글지기까지 이녁 이름을 빌어 책을 한 권 내놓을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땅에서 누군가,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라는 이름을 붙여 책을 쓸까요? 열 해쯤 뒤에, 서른 해쯤 뒤에, 쉰 해나 백 해쯤 뒤에,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뿐 아니라 “권정생처럼 죽고 싶다”라든지 “전우익처럼 죽고 싶다” 같은 이름을 붙여 책을 내놓을 글지기 있을까요?


.. 여성은 동물이 아ㅣㄴ고 가축이 아니다. 어린아이와 남성의 중간자도 아니고 말을 알아듣는 꽃이나 인공지능의 장난감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를 낳아 길렀으며, 그와 사랑을 나누었으며, 그와 함께 생을 이겨낸 존재에 대한 애정이다. 그것은 남성 자신에 대한 긍정이기도 하다 … 나는 결국 극기 훈련을 통해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맹수처럼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 것뿐이다. 나를 이겨야 한다지만 사실은 결국 나 자신을 강하게 단련하여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  (40, 48쪽)


  김별아 님은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하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를 가만히 읊습니다. 김별아 님이 쓴 글에 깃든 빛을 누리면서 함께 노래합니다. 이러다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나는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로맹 롤랑 님이 쓴 톨스토이 평전을 헤아립니다. 로맹 롤랑 님이 쓴 글을 읽으면 톨스토이 님이 스스로 마무리지은 삶자락이 잘 나옵니다. 그래, 그런 죽음을 떠올릴 만할 테지만, 나는 달리 생각합니다. 내 삶이라면, 내 즐겁고 아름다운 삶이라면, 나는 “톨스토이처럼 살고 싶다” 하고 노래하겠어요. 내 이웃과 동무한테도 “아무개처럼 죽고 싶다” 하는 노래가 아닌, “아무개처럼 살고 싶다” 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리고, 아무개처럼 사랑하고 싶다, 아무개처럼 꿈꾸고 싶다, 아무개처럼 춤추고 싶다, 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나는 나답게 살고 싶”어요. “나는 나답게 사랑하고 싶”어요. 내가 이웃과 동무한테 선물하고 싶은 책은 “아름답게 살고 싶다”예요. “사랑하며 살고 싶다”예요. “노래하며 살고 싶다”입니다.


.. 나는 남자로 살아 보지 못했기에 그들이 좋은 제자, 좋은 부하, 좋은 후배, 좋은 친구와 동료를 왜, 얼마만큼 성적 대상으로 보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왜 평소에 그 마음을 표현하거나 고백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여 여성을 사로잡는 대신 어쩌다가 상명하복의 관계나 인간적인 친밀감을 이용하여 여성을 강제로 소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숱한 의문 중에 가장 풀리지 않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정말 남성으로서 여성을 갈망하거나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  (85쪽)


  글 한 줄에는 삶이 드러납니다. 글 한 줄에는 삶이 묻어납니다. 웃음을 꽃피운 삶과 눈물로 얼룩진 삶이 고스란히 글 한 줄에 스며듭니다. 기쁘게 노래한 빛이 글로 다시 태어나요. 고달프거나 고단했던 지난날이 글로 거듭 태어나요.


  어떤 글을 쓸 적에 스스로 즐거운가요. 어떤 글을 써서 이웃한테 선물할 적에 서로 즐거운가요. 어떤 글을 쓰면서 삶꽃 피울 적에 우리 지구별에 따스한 사랑이 샘솟을까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생각합니다. 내 글은 나한테 어떤 빛이 되고, 내가 적은 글 한 줄은 내 이웃과 동무한테 어떤 꿈이 될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먼저 나 스스로 빛이 되지 못한다면 내 글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을 스스로 가꿀 수 있을 때에, 이 글을 내 이웃과 동무한테 선물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부터 맛나게 먹을 만한 밥을 우리 살붙이한테 차려 줍니다. 나부터 기쁘게 먹을 만한 밥을 우리 시골집으로 찾아오는 이웃한테 내놓아요.


  사진 한 장 찍을 적에도 가장 고운 빛을 담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 살며시 건넬 적에도 가장 고운 빛이 드러난 사진으로 골라서 건네요.


.. 오로지 누군가의 ‘삶’ 그 자체인 삶을 소설을 위해 희생시키고자 했던 나의 치기 어린 시도가 너무도 어리석은 것으로 느껴졌다 … 아이를 통해 나의 결점은 낱낱이 공개되고 있었다. 나의 무지, 나의 이기, 나의 나약함과 철없음, 의존성과 무책임이 날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제야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듯 깨달았다. 나는 다시 태어나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구나!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그를 키우고 있구나 ..  (212, 218쪽)


  우리 아름답게 살아요. 우리 아름답게 노래해요. 우리 아름답게 어깨동무해요. 즐겁게 죽어도 될 테지만,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해요. 톨스토이처럼 살고, 김별아처럼 살며, 나답게 살아요. 사랑스레 살고 눈빛 밝히며 살고 노래 부르면서 살고 알콩달콩 이야기빛 누리면서 살아요.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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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20만 원

 


  서울 창천동에 있는 헌책방 〈글벗서점〉에 책마실을 간다. 여러 해 들르지 못해 오늘은 꼭 가자고 다짐한다. 망원동에 있는 출판사로 가는 길에 들른다. 나한테 주어진 말미는 한 시간. 바지런히 골마루를 돌고 누비며 사진책을 바라본다. 이 책도 사고 싶고 저 책도 고르고 싶다. 주머니를 헤아린다. 내가 쓸 수 있는 맞돈은 팔만 원 즈음. 어느 책을 골라서 쥐어들는지 망설인다. 이 책을 집어서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는다. 저 책을 들어서 넘기다가 히유 한숨을 쉰다. 우리 사진책도서관에 두고 싶은 사진책을 장만하자면, 이곳에 있는 사진책으로만 하더라도 이백만 원쯤 들겠구나 깨닫는다. 추리고 추려서 팔만 원어치 고른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만 원을 에누리해 주신다. 찻삯까지 썼는데 찻삭이 남는다. 몹시 고맙다. 장만한 책을 가방에 넣고 책방을 나오려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마음속으로 다짐을 한다. ‘나는 언제나 엄청난 부자이다.’ 이 사진책들 안 사고 집으로 가서 땅을 치지 말자. 책값은 내 살림살이에 곧 들어오지 않겠어, 하고 생각한다. 씩씩하게 사진책 네 권 더 고른다. 십이만 원 나온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또 만 원 에누리를 해 주신다. 카드로 긁는다. 더없이 미안하면서 고맙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말씀한다. “저기 저 위쪽 보셨어요? 저기에 일본 사진책들 있는데.” 아무렴, 보았어요, 그런데 저 책들까지 가져가려면 우리 집 살림돈이 바닥나는걸요, 아까 그 사진책들 슬쩍 쳐다보기만 하고 일부러 못 본 척했답니다, 하는 말은 속으로만 하고, 빙그레 웃는다. “저 가운데 한 권은 있어요. 참 아름다운 사진책이라 다 가져가고 싶은데, 아이고.” 내 손으로 온 책들 사랑하자. 오늘 못 산 책은 다음에 사면 된다. 오늘은 오늘 산 책들 즐겁게 돌아보고 살피고 읽고 삭히면서 마음밭 살찌우자. 그리고, 사진책 장만할 돈도 기쁘게 벌자. 아름다운 글을 써서 내 이웃들과 나누고, 아름다운 책을 내놓아, 우리 이웃들한테 선물하며, 나는 아름다운 돈을 벌어 아름다운 책을 새삼스레 장만해서 우리 사진책도서관에 즐겁게 꽂자. 다음에는 사진책 이백만 원어치 신나게 사들일 수 있는 살림으로 가꾸자.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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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2-04 08:43   좋아요 0 | URL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더 많은 책을 읽고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 같네요. 게다가 사진책도서관을 염두에 두신다면 더욱 그렇겠네요.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ㅎ

파란놀 2013-12-05 08:16   좋아요 0 | URL
소유라기보다도...
도서관을 하는 마음이라서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사 놓고 보면
어느새 책값이 내 주머니에 다시 들어와요.
참 재미난 삶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

후애(厚愛) 2013-12-04 16:54   좋아요 0 | URL
어제 중고서점에 갔었는데 사고 싶은 책들은 있는데 못 사고 그냥 왔어요.ㅠㅠ
다음에 고민 없이 사고 싶은 책들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ㅎㅎ

파란놀 2013-12-05 08:15   좋아요 0 | URL
다음에 다시 즐겁게 가셔요~
마음에 담아도 책이니까요 ^^
 

귀를 막는 글쓰기

 


  고흥 떠난 시외버스가 세 시간쯤 달려 비로소 충청도 신나게 달릴 무렵, 살며시 눈을 감고 걸상에 폭 기댄다. 버스 엔진과 바퀴 소리 새삼스레 시끄럽다고 느낀다. 귀를 막아 볼까. 손ㄱ사락 하나씩 두 귀를 막는다. 어라, 꽤 조용하네. 귀에 꽂는 솜 있으면 챙겨야겠구나. 그런데, 이런 버스를 하루 내내 몰아야 하는 일꾼은 어떨까. 이녁들은 늘 온몸이 덜덜 떨리며 이 시끄러운 소리 먹어야 하는데. 스스로 소리와 떨림을 느끼지 못할 만큼 무디어지려나. 버스를 몰거나 자가용이나 택시나 짐차를 모는 동안, 책을 읽지도 못하겠지만 글을 못 쓰겠구나.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볼밖에 없겠구나.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기 어렵고, 싱싱 달리는 차에서 다른 데에 눈길을 두지 못하겠구나. 가을빛이 창밖으로 흐드러져도, 눈송이가 펄펄 날려도, 봄비가 촉촉히 내려도, 여름숲 푸르게 우거져도, 자동차를 모는 이들뿐 아니라 자동차를 함께 타는 이들은 둘레 삶빛에 눈을 뜨거나 귀를 열 수 없구나.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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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엄청난

 


  곁님이 어느 날부터 나더러 스스로 마음속으로 이야기하고 입으로 말하라는 다짐이 있다. “나는 언제나 엄청난 부자이다.” 처음 이 다짐을 들은 날에는 시큰둥했다. 나는 ‘부자’가 될 마음이 이때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다짐을 그 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스스로 “언제나 엄청난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언제나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없구나 싶다. 말을 살짝 바꾸어, “나는 언제나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즐겁게 쓴다.”처럼 다짐을 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아름다운 사랑이다.”처럼 다짐을 해도 된다.


  이렇게 깨달은 날부터 우리 곁님이 들려준 말대로, 맨 처음에는 “나는 언제나 엄청난 부자이다.”라는 다짐을 스스로 말하고, “나는 언제나 엄청난 사랑이다.”라는 다짐을 이어서 말하며, “나는 언제나 엄청난 빛이다.”라는 다짐을 곧바로 말해 본다. 이렇게 스스로 말하면 참말 스스로 즐겁다.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즐겁게 장만한다. 책값이 주머니에 없으면? 가슴으로 책을 담으면 되지. 책은 책시렁에 둔대서 마음으로 스며들지 않으니. 책은 언제나 가슴으로 읽어 담을 때에 책이니.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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