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놀이 6 

 


  이불이나 담요가 볕을 듬뿍 머금어 보송보송 따사롭기를 바라며 마당에 널 적에는, 아이들 새 놀잇감이 생긴다. 키도 작고 몸도 작은 아이들은 빨랫줄에 넌 이불이나 담요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다. 서로 오잉? 오잉? 하면서 잡기놀이와 찾기놀이를 한다. 나 안 보인다면서 찾아보라고 서로 오락가락하면서 이불과 함께 볕바라기를 한다. 4346.1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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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3.12 - Vol.1, 창간호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지음 / 포토닷(월간지)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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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52

 


마음이 모이고 만날 때에 사진 하나
― 사진잡지 《포토닷》 1호
 포토닷 펴냄, 2013.12.1.

 


  2013년이 저무는 섣달에 사진잡지 《포토닷》 1호가 태어납니다. 지구별을 두루 살필 적에 한국은 ‘사진기 한 대쯤 갖춘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지난 2006년에 벌써 ‘사진기 천만 대’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집집마다 사진기 한 대쯤 있는 셈이고, 필름사진기나 디지털사진기가 아니더라도 손전화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모든 사람이 사진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사진기를 갖추거나 쓰는 사람은 무척 많습니다. 아니, 사진을 찍거나 사진기 있는 사람이 ‘무척 많다’기보다 ‘누구나 사진기 있’고 ‘누구나 사진을 찍’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거나, 사진을 어떻게 즐기는가 하고 살피거나, 사진을 찍는 매무새와 넋과 빛을 배우는 일은 드물어요. 이를테면, ‘사진 초상권’이나 ‘사진 저작권’을 나누거나 배우지 못한다고 할 만해요.


  사진을 찍지 말라는데도 사진기 들이미는 사람이 있어요. 몰래몰래 사진을 찍고는 몰래몰래 발표하거나 공개하는 사람이 있어요.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나 인기인뿐 아니라 수수한 여느 사람들까지 엄청난 사진물결에 휩쓸려요.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아름답거나 올바르게 흐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이 나라는 한국이요, 한국말을 씁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땅에서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쓰는 이가 무척 드물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일터에서도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가르치거나 이야기하거나 배우지 않습니다. 공공기관 공문서조차 중국 한자말·일본 한자말·미국 영어를 거리끼지 않고 써요. 아니, 한자나 영어를 써야 멋있거나 똑똑하거나 대단하다는 듯 여기는 흐름이 있어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 올바로 배우거나 깨닫거나 생각하도록 돕는 잡지라든지 매체라든지 책이 매우 드뭅니다. 아니, 한국말 슬기롭게 배우거나 나누도록 돕는 잡지는 한 가지조차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더 돌아보면, 이제 한국에서 집집마다 자가용 한 대나 두 대쯤 거느리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가용을 몰면서도, 뺑소니와 음주운전이 줄어들지 않아요. 거칠거나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동차 많을 뿐 아니라, 걷는 사람과 자전거와 아이들 살뜰히 살피는 어른이 퍽 적어요.


  물질과 문명과 기계와 자본은 있지만, 이들을 다루거나 보듬는 ‘마음’이 없는 한국이지 싶어요. 학교와 집과 정부에서 ‘교육’을 말하기는 해도, 모두들 대학입시에 얽힌 입시교육일 뿐, 아이들이 삶을 배우고 사랑을 나누는 참다운 꿈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으로 나아가지는 않아요. 이런 마당에, 한국 사진문화가 올바르며 아름답고 즐거우면서 사랑스레 뿌리내리거나 퍼지기를 바라는 일은, 섣부르다거나 배부르다거나 바보스러운 잠꼬대일는지 모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1년 정기구독을 합니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는 사진지기이니 즐겁고 반갑게 정기구독을 합니다. 1호를 받아 봅니다. 사진잡지 내는 넋을 “마침점이 아닌 어디를 향해, 무엇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사진의 무수한 점과 점들이 모이고 섞이는 창을 지향합니다. 사진인들이 출자자와 운영자로 참여하는 포토닷 협동조합 준비위원회가 발행합니다.” 하고 밝힙니다. 점이란 자그마한 빛이겠지요. 커다랗거나 대단한 빛이 아닌 자그마한 빛이 점일 테지요. 수많은 점이 모여서 새로운 점이 되고, 이 새로운 점이 모이고 또 모여서 새로운 사진을 이룹니다.


  어떤 대단하거나 훌륭하거나 이름난 작가 몇몇이 있어야 사진문화가 발돋움하지 않아요. 대단하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으며 이름나지도 않은, 여느 수수한 사람들이 사진을 좋아하고 아낄 때에 사진문화가 발돋움한다고 느껴요. 손전화로 동무들끼리 사진을 찍는 고등학교 아이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빛으로 사진을 좋아하고 아낄 때에 사진문화가 발돋움해요. 작가로 뛰는 어른이든 작가 아닌 즐김이로 사진을 좋아하는 어른이든, 맑은 눈망울과 밝은 사랑으로 이웃을 사진으로 차곡차곡 담을 적에 사진문화가 발돋움해요.

 

 


  “아카이브 사진이라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사실 누군가의 기념사진들이다(26쪽/이경민).” 하는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이란 참말 모두 ‘기념사진’입니다. 예술가가 찍어야 사진이겠어요? 이때에도 사진이겠지요. 사진가가 찍어야 사진이겠어요? 사진이 좋다고 여겨 사진기를 장만했으면 누구나 사진을 찍겠지요.


  즐겁게 살려고 사진을 찍어요. 즐겁게 놀고 일하며 어깨동무하고 싶어 사진을 찍어요. 보도사진만 찍어야 하지 않아요. 상업사진을 찍어야 사진가로 돈벌이 할 수 있지 않아요. 다큐사진을 찍어야 사진빛을 밝히지 않아요. 어느 갈래 사진을 찍든, 스스로 삶을 밝히며 누리고 가꾸는 즐거운 마음이면 넉넉해요.


  “1988년, 이제 갓 20대에 접어든 영국 출신의 이 포토저널리스트 지망생은 캄보디아로 향했다. 크메르루즈 반군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취재 의뢰를 받은 매체도, 찍은 사진을 사줄 매체도 없었다. 당시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시간’이었다(29쪽).” 하는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그래요, 이름난 작가이든 아직 이름 안 난 작가이든, 우리는 ‘시간’을 들여 사진을 찍습니다.


  느긋하게 찍어요. 너그럽게 찍어요. 넉넉하게 찍어요.

 


  웃고 노래하면서 사진을 찍어요. 춤추고 얼싸안으면서 사진을 찍어요. 함께 밥 한 그릇 나누어 먹으면서, 서로 손을 맞잡아 땀을 흘려 논밭을 갈면서 사진을 찍어요.


  바쁘게 서둘러서 찍을 수 있는 사진은 없어요. 후딱후딱 찍어 버릴 사진은 없어요. 참말 사진 한 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즐겁게 찍자면, ‘내 시간’과 ‘네 시간’이 살가이 만나서 하나가 되어야지 싶어요.


  “20대 초반 사진학과를 다닐 때의 한 수업이 생각이 난다. 파인아트 수업이었는데, 내가 누구인지 자신을 표현하는 사진을 찍어 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학생들이 발표한 사진을 본 교수의 첫 마디는 ‘갓 스물이 넘은 파릇파릇한 애들이 왜 이렇게 어두운 얘기뿐이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랬다. ‘행복한 것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요. 좋은 건 그냥 좋은 거죠. 하지만 뭔지 모를 답답하고 우울한 느낌은 자꾸만 고민하게 돼요. 내가 왜 이런 걸까? 무엇 때문에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걸까? 저도 모르는 그런 감정들을 사진으로 해소시키고 싶었어요.’(92쪽/김소윤)” 하는 이야기를 되짚습니다. 갓 스물이라는 나이라 해서 파릇파릇할 수 없어요. 갓 스물이란, 이제 겨우 입시지옥에서 벗어난 나이예요. 입시지옥에 짓눌려야 하는 아이들은, 이름은 ‘푸름이(청소년)’라 하지만, 막상 푸르게 꽃피우지 못해요. 새벽부터 밤까지 햇볕 한 줌 못 쬐어요. 시원한 바람 한 숨 못 쐬어요.


  시골 아이들조차 들판을 달리지 못하고, 숲길을 거닐지 못하며, 바다에 몸 담그지 못해요. 시골 고등학생과 중학생도 입시지옥에 휘둘려요. 시골 아이들도 서울 강남에서 내려온 영어강사와 수학강사한테서 특별강의를 받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도록 채찍질을 받아요.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가는 고작 스물밖에 안 된 가녀린 아이들은 그야말로 가녀립니다. 꿈도 빛도 삶도 없이, 오직 시험문제만 들여다보다가 대학생이 되었어요. 어떻게 살아가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할 수 없이 갇힌 채, 비로소 사진기를 손에 쥐어요. 이 아이들이 무엇을 찍을 수 있을까요. 이 아이들한테 무엇을 찍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지만 내 머릿속의 상상력을 꺼내서 한 컷 한 컷 자세하게 그린다(111쪽/박경일).” 하는 이야기를 되뇝니다. 누구나 머릿속으로 그린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머릿속에 환하게 그리는 이야기 있어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노래를 짓고 춤을 선보입니다. 머릿속에 환하게 그리는 이야기 없으면, 글도 못 쓰고 그림도 못 그릴 뿐 아니라, 사진도 못 찍습니다.


  “2003년 12월 어느 날이다. 한창 잘 나가는 모 카메라 회사가 사진상을 제정하여 첫 시상식을 초호화호텔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개최한다고 하여 조금은 차림새에 신경을 쓰고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호텔 입구에서 입장을 불허당한 몇몇 사진인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이유인즉 차림새가 단정치 않다며 호텔 측에서 출입을 제한했단다(122쪽/진동선).” 하는 이야기를 읽다가 웃음이 터집니다. 우하하 하고 큰웃음 터집니다.


  나는 저 역삼동 리츠칼튼호텔 일꾼들한테 한 마디 여쭙고 싶어요. 여보셔요, 사진상 받는 사진가가 1회용사진기를 써서 훌륭한 사진을 찍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소? 편의점에서 만 원짜리 1회용사진기를 사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사진상을 받는다면, 이녁은 이 사진가도 출입제한 하시겠소? 천만 원짜리 사진기를 써야 사진가요? 이천만 원짜리 사진기를 써야 신문사 사진기자요? 하다못해 백만 원쯤 되는 사진기를 다루어야 사진가나 사진기자요?


  양복을 입어야 사진을 잘 찍소? 고무신차림에 시골에서 흙밥 먹는 사람은 사진을 못 찍소? 까만 자가용을 운전수 끼고 몰아야 사진을 잘 찍소? 자전거를 달리거나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은 사진을 못 찍소?


  “요즘 젊은 사진가들 중에는 스스로 아티스트로 불리어지길 원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사용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사진가라고 당당히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요(138쪽/이경민).”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빙그레 웃음짓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가’지요. 한국말로 하자면 ‘-장이’와 ‘-쟁이’를 붙일 수 있어요. ‘쟁이’는 어떤 일이 아직 무르익지 않으나 꾸준하게 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장이’는 어떤 일이 아주 무르익어 훌륭한 솜씨와 빛을 선보이는 사람을 가리켜요. ‘사진장이’라 하면 사진길 훌륭히 열거나 빛낸 이요, ‘사진쟁이’는 차근차근 사진길 걸으며 제 빛을 찾으려는 이예요. 다른 한편, ‘사진지기’라는 이름을 쓸 만해요. 사진을 아끼고 사랑하는 넋으로 사진벗과 어깨동무하면서 사진비평을 쓰고 사진창작도 하며 사진전시관이나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는 이들, 또 사진책을 엮거나 사진잡지를 내는 이들은 모두 사진지기예요. 사진을 지키고, 사진을 가꾸며, 사진을 밝히기에 사진지기입니다.


  한국사람으로서 스스로 ‘아티스트’라는 이름을 쓰려 한다면 좀 안쓰럽구나 싶어요. 적어도 ‘사진예술가’라 하면 돼요. 사진으로 예술을 하려 한다면, 말 그대로 ‘사진예술가’가 될 테니까요.


  아무쪼록 서로 즐겁게 사진을 누리기를 빌어요. 사진을 찍는 작가이든 여느 사람이든, 사진을 가르치는 교수나 사진을 배우는 학생이든, 누구나 스스럼없이 손을 맞잡으며 사진을 노래하고 즐길 수 있기를 빌어요. 사진잡지 《포토닷》이 1000호, 2000호, 3000호를 내놓아 우리 사진문화를 환하게 빛낼 수 있기를 기다려요. 4346.1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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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사람들이 '거들다'와 '돕다'를 아무렇게나 섞어서 쓰지 싶어요.

그래도 "가난한 이웃을 거들다"처럼 잘못 쓰는 일은 없지만,

말뜻을 제대로 짚어서 쓰는 어른도 아이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거들다·돕다·곁들다
→ 살짝 거든다는 뜻으로 ‘곁들다’를 쓰는 셈입니다. “일손을 곁들다”라 하면 가볍게 일손에 보탬이 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이웃을 돕다”처럼 쓸 수는 있어도 “가난한 이웃을 거들다”나 “가난한 이웃을 곁들다”처럼은 쓸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사이에 들어와서 어느 만큼 일손을 덜 때에 ‘거들다·곁들다’입니다. ‘돕다’는 일손을 덜 뿐 아니라 크게 보탬이 되기도 하고, 아예 뒷바라지를 하는 자리에까지 씁니다.


거들다
1. 남이 하는 일을 나서서 함께 하거나 힘을 더하다
 - 일손을 거들다
2. 남이 하는 말이나 일에 끼어들다
 - 싸움을 거들다


돕다
1. 남이 하는 일이 잘되도록, 또는 힘이 덜 들도록 함께 하거나 힘을 더하다
 - 동무들이 돕다
2. 어려운 때나 살림에서 벗어나도록 하다
 - 이웃을 돕
3. 안 좋던 모습을 나아지게 하다
 - 소화가 잘 되도록 돕는 약
4. 갈 길을 빨리 가라고 하다
 - 먼 길을 도와 달려왔습니다
5. 서로 기대다
 -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서로 도우며 살아요
6. 일이 잘 되도록 서로 힘을 더하다
 - 너와 나는 서로 도우며 공부한다
7. 뒤를 밀어주다
 - 큰아버지가 도와서 이 학교를 마칠 수 있었어요
8. 바르게 가도록 이끌다
 - 네가 도와서 나는 착한 사람이 되었다


곁들다
1. 어느 자리에 있을 일이 없는데 들어오다
 - 잔치마당에 살그머니 곁들어서 놀다
2. 어느 자리에 나란히 놓다
 - 찻집에 곁들인 책방
 - 노래에는 춤을 곁들여야 제맛이야
3. 곁에서 함께 붙잡아 들다
 - 작은 짐도 곁들면 한결 낫지
4. 남이 하는 일이나 말을 좀 거들다
 - 누나가 하는 말을 곁들어 본다
 - 할머니 밭에서 김매기를 곁들여 일을 일찍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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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 레나 안데르손 그림, 오숙은 옮김 / 미래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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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19

 


손맛이란 사랑과 꿈과 빛
―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글
 레나 안데르손 그림
 오숙은 옮김
 미래사 펴냄, 2003.10.10.

 


  즐겁게 차린 밥을 먹으면 즐겁습니다. 노래하며 차린 밥을 먹으면 노래가 절로 샘솟습니다. 웃음꽃 피우는 밥상맡에 앉으면 웃음이 스멀스멀 피어납니다.


  밥상맡 흐름이 어두우면 모래알 씹는지 밥알 씹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개밥과 똑같이 퍼주는 군대에서 먹는 밥을 우걱우걱 뱃속으로 집어넣으면 마치 내가 개가 되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매운 밥을 먹은 날에는 어쩐지 짜증이나 골이 자주 납니다. 삼삼하거나 보드라운 밥을 먹은 날에는 아무래도 삼삼하거나 보드라운 마음이 됩니다.


  몸으로 들어온 밥 그대로 삶이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몸으로 받아들이는 밥 그대로 삶을 받아들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떤 밥을 먹으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어떤 넋으로 삶을 지으려 하느냐가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껴요.


  손수 밥을 차려서 먹을 적하고, 누군가 차리는 밥을 먹을 적은, 삶이 같을 수 없습니다. 밥을 함께 차려서 먹을 적하고, 돈을 치러 바깥밥집에서 으레 사다가 밥을 먹을 적에는, 여러모로 삶이 갈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밥뿐 아니라 물과 바람도 이와 같아요. 어느 마을 어느 고장에서 살며 어떤 바람을 마시느냐에 따라 삶이 바뀌어요. 냇물 마실 적하고, 우물물 마실 적하고, 샘물 마실 적하고, 수도물 마실 적 삶을 헤아려 봐요. 자동차 배기가스 넘치는 바람을 마실 적하고, 공장 굴뚝 매연을 마실 적하고, 핵발전소 방사능 바람을 마실 적하고, 연탄공장 탄가루 바람 마실 적하고, 우거진 숲에서 푸른 바람 마실 적하고, 삶이 같을 수 없어요.


.. 정말 슬픈 일이죠. 불쌍한 스텔라 할머니, 아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울기라도 하시면 어쩌나……. 그러나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엇, 배고프지? 부엌 곁방에 뭐가 있는지 가서 보렴.” “여기엔 감자 한 자루밖에 없는대요.” “잘됐구나! 감자 몇 개와 버터 조금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찬을 준비할 수 있단다.” ..  (4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버스나 택시나 전철이나 기차를 몰아야 하는 일꾼은 늘 웅웅거리는 소리에 덜덜거리는 떨림을 겪어야 합니다. 우람한 기계를 다루어야 하는 공장에서도 시끄러운 소리와 온갖 기름내를 마셔야 합니다. 농약과 비료를 뿌리는 시골에서도 농약과 비료를 고스란히 마셔요.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어떤 몸이 되도록 살아간다고 할까요. 우리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어떤 삶터를 물려받아 삶을 가꾸는 셈일까요.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밥을 누리면서 삶을 짓는다고 할 만한가요. 우리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고운 꿈과 맑은 사랑과 즐거운 빛을 물려받는다고 할 만한가요.


  얼마 앞서까지, 임금과 권력자와 양반을 빼고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과 옷과 집을 손수 마련했어요.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함께 흙을 만지며 놀다가 흙을 다루는 매무새를 익히고는, 시나브로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하는 흙일과 숲일과 들일을 깨달았어요.


  오늘날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참말 거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흙을 안 만질 뿐 아니라, 흙을 만지더라도 밥과 옷과 집을 손수 마련하지 않아요. 물레를 잣거나 베틀을 밟는 사람 없어요. 방아를 찧거나 키를 까부르는 사람 없어요. 바느질은 하지만 실을 흙과 풀에서 얻지 않아요. 경운기와 트랙터와 이앙기는 몰지만 짚을 삼거나 엮어 신이나 바구니나 둥구미나 섬을 빚지 않아요.


  어느새 삶에서 밥이 사라졌어요. 어느덧 삶에서 옷과 집이 사라졌어요. 어느 때부터 삶에서 손품과 다리품이 자취를 감추어요. 오로지 돈으로 사회가 굴러가고, 오직 돈으로 삶과 사람을 따지거나 재는 흐름이 되어요.


.. “풀로 우유를 만든다고 생각해 봐. 그런데 젖소는 그렇게 하거든. 정말 근사하지 않니?” 내가 말해습니다. “하지만 젖소가 모든 우유를 다 만들 순 없어. 공장에서 만드는 우유도 있잖아?” 아서가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아니, 세상의 우유는 전부 젖소가 만드는 거란다. 어떤 공장에서도 우유를 만들진 못해.” 스텔라 할머니가 대답하셨습니다 ..  (12쪽)


  나는 어릴 적에 ‘열 살이면 스스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밥상을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동무 가운데에는 열 살 아닌 여덟아홉 살에 밥짓기를 배우기도 해요. 머스마한테는 김치를 안 가르치기 일쑤였지만 가시내는 여덟 살부터 김치를 배우기도 해요. 밥물 맞출 줄 모르거나 밥을 못 짓는다면 부끄럽고, 손쉬운 국 몇 가지나 반찬 여러 가지 차릴 줄 모른다면 창피했어요. 학교공부 잘 한다 하더라도 밥을 못 지으면 사람 구실 못한다 여기고, 학교성적 높다 하더라도 바느질 못하면 사람 노릇 아니라 여겼어요. 학교에서 상장 수두룩하게 받더라도 할매와 할배 짐을 거들지 않을 적에는 됨됨이가 그르다고 여겼어요. 바르게 인사하고 착하게 말하며 곱게 삶을 가꿀 때에 비로소 사람답게 잘 큰다고 여겼어요.


  밥 한 그릇이란, 참사람으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빛이에요. 무엇을 먹느냐, 무엇을 마시느냐, 또 어떤 바람과 물을 맞아들이느냐, 어떤 마을과 보금자리에서 살림을 일구느냐, 이런 여러 가지를 알뜰히 살피고 제대로 돌아보아야 한다고 여기던 우리네 삶길이라고 느껴요. 먼먼 옛날부터, 그러니까 고려 적이든 고구려 적이든, 옛조선 적이든 오천 해나 오만 해 앞서이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살 때에 아름답다고 여겼다고 느껴요.

 

 


.. 12분이 지나자 빵이 다 구워졌습니다. 위쪽은 햇볕에 탄 것처럼 되었지만 손으로 들어 보니 가벼웠습니다. 우리는 그 빵들을 행주 하나로 전부 싸서 바구니에 넣어 식혔습니다. 그러는 동안 부엌을 치우고 차를 준비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빵을 반으로 잘라 버터를 발랐답니다. 세상에, 갓 구워낸 빵이 그렇게 맛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  (29쪽)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님 글과 레나 안데르손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이야기책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미래사,2003)을 읽습니다. 이 그림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몇 살쯤 될까요. 열 살 언저리일까요? 열두어 살쯤 될까요? 열세 살은 안 넘는 듯하고, 열 살은 넘었지 싶어요.


  그림이야기책을 이끄는 아이는 ‘엘리엇’이에요. 엘리엇은 머스마입니다. 어느 날 열쇠를 깜빡 잊고 연립주택 문간에서 하염없이 어머니를 기다려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이야기가 안 태어났을 수 있어요. 멀뚱멀뚱 문간에 앉아서 ‘집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기다리던 아이 엘리엇은 이웃 할매가 와 주어서 고맙게 연립주택 대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집에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직 안 계시니 할매 댁으로 갔어요. 배가 고프지요. 무언가 먹고 싶어요. 엘리엇은 아직 할매하고 살가이 지내지 않는 사이예요. 무얼 얻어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다 만들어서 차려 놓은 먹을거리’라고는 하나도 안 보이는 할매 댁에서 배고픔 가시게 할 주전부리란 없겠다고 여겨요. 그런데, 할매는 감자 몇 알로 뚝딱하면서 예쁘고 맛난 먹을거리를 마련해 주어요. 엘리엇은 깜짝 놀라요. 이제껏 흐리멍덩하던 삶에 빛 한 줄기를 만나요. ‘아니, 감자 몇 알로 이런 맛있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태어나지?’


.. “미래에는 식량이 넉넉한 세상을 만들려면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하나요?” 아서가 물었습니다. “글쎄다, 그건 뭐라고 말할 수가 없구나. 지금도 세계의 모든 사람이 먹고 남을 만큼 식량은 충분해. 하지만 우리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땅을 좀더 잘 가꿀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하면 모두가 충분히 먹을 식량을 얻으려고 지금처럼 많은 식량을 재배할 필요도 없단다.” “하지만 콩과 쌀은 맛이 별로잖아요?” 아서가 투덜거렸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작물은 얼마든지 많아.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식물 단백질을 먹는 습관을 길렀다면 고기가 맛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을 거야.” ..  (45쪽)


  가시내만 밥하기를 배워야 하지 않아요. 가시내도 머스마도 스스로 밥하기를 할 수 있어야지요. 머스마 혼자 살건 머스마랑 가시내랑 둘이 살든, 저마다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고 스스로 새롭게 익힌 밥하기를 실컷 뽐내야지요.


  머스마 엘리엇은 ‘감자 몇 알’과 ‘할매 손길’에 크게 놀라며 스스로 삶을 짓기로 합니다. 스스로 밥을 차리면서 새로운 삶을 짓기로 합니다. 누가 차려서 건네는 밥을 기다리지 않기로 해요. 스스로 이것저것 ‘놀랍게 만들’고 ‘재미나게 즐기’기로 해요. 누가 보면 아무것 아니라 할 만하고, 요리사 자격증하고도 한참 동떨어진 밥짓기이지만, 날마다 빙그레 웃으며 먹고, 동무와 이웃을 불러 함께 밥잔치를 벌일 수 있어요. 이제껏 얼추 배만 채우고 뛰놀기만 할 생각이었지만, 이제부터 밥 한 그릇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러운가를 알아요.


  풀 한 포기가 베푸는 선물을 깨달아요. 햇볕 한 줌이 베푸는 선물을 알아채요. 바람 한 줄기와 물 한 모금이 베푸는 선물을 느낍니다. 흙과 숲과 들이 엘리엇한테 베푸는 선물을 차근차근 배워요.


  엘리엇은 ‘엘리엇 요리책’을 손수 공책에 써서 꾸립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내 요리책’을 내 나름대로 요모조모 써서 꾸릴 수 있습니다. 어버이한테서 ‘어버이 요리책’을 물려받을 만하고, 어버이 요리책에 내 손길을 더해 ‘내 요리책’을 빚은 다음, 이 요리책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해요. 할머니 손맛과 할아버지 손맛에 이어, 어머니 손맛과 아버지 손맛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지요. 손맛이란 바로 사랑이고 꿈이면서 삶입니다. 4346.1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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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6 10:47   좋아요 0 | URL
아~이 책, 저번에 새롭게 알려 주신 그 책이군요!
담아만 두었는데 이렇게 함께살기님의 좋은 글로 다시 읽으니
오늘은 꼭 사야겠어요~^^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12-06 11:38   좋아요 0 | URL
갑자기 반값으로 팔기에, 어쩌면 재고를 다 판 뒤에
절판이 될까 걱정스러워
좀 서둘러 이 책 느낌글을 썼어요.

ㅠ.ㅜ
부디 오래오래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빌고 또 빕니다....

후애(厚愛) 2013-12-06 13:53   좋아요 0 | URL
저도 나중에 꼭 봐야겠어요~ ^^
근데 절판이 되면 안 되는데...ㅠㅠ

파란놀 2013-12-06 14:56   좋아요 0 | URL
절판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내가 올 한 해 알라딘에서 장만한 책이 400권은 넘는 듯한데...

그리고 내가 올 한 해 쓴 느낌글 가운데 '별 다섯'을 찍은 책이 적지 않은데,

막상 내가 알라딘에서 샀고,

알라딘서재에 '별 다섯' 찍은 책들 가운데

'알라딘 내 올해 책'으로 오르지 않은 책이 너무 많다.

'별 둘'이나 '별 하나' 또는 '별 셋'을 붙인 책이

엉뚱하게 '내가 올해 책으로 뽑을 목록'으로

잔뜩 들어갔다.

연작으로 나오는 만화책들은 여러 권이 겹치기로 들어간다.

 

 

 

..

 

어느 책을 '별 하나'로 찍었는지 말하지 않겠지만,

왜 이런 책까지 이렇게 '내가 산 책 목록 대표'에 들어가야 할까?

 

..

 

 

 

 

..

 

내가 만화책을 곧잘 사서 읽고 느낌글 쓰기는 하지만,

왜 연작 권을 여럿 올려야 할까.

 

내가 페이퍼나 리뷰에서 그토록 자주 다룬

'데즈카 오사무' 만화책은

어떻게 한 권도 이 목록에 안 들어갈 수 있을까?

 

..

 

 

 

 

 

 

..

 

다른 어느 페이퍼에서 '내가 뽑은 2013년 돋보이는 사진책' 글에서

몇 손가락으로 손꼽은 수많은 책들은

이 목록 가운데에 세 권 들어간다.

그나마 안승일 님 사진책과 <독수리 사냥>이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겠다.

 

..

 

그러고 보니,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나츠코의 술>이라든지 <칠색 잉꼬>라든지 <불새>라든지

<우리 마을 이야기> 같은 만화책은

왜 '내 올해 책'이 안 될까.

이 책들은 몽땅 알라딘에서 샀는데.

 

..

 

1. 할 말 없다

2. 싫다

3. 인기투표란 재미없구나

4. 내 목록을 왜 내가 만들지 못하나??? 내 목록을 왜 알라딘이 만들어 주나?

5. '내 목록'은 나 스스로 만들어 넣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6. 그 나물에 그 밥이 되는 결과를 바라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7. 내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책은 우째 이렇게 하나도 안 넣어 주는가

 

..

 

이 목록에서는

다음 책들만

내가 추천할 만한 '알라딘에서 산' 올해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안 산 책은 '내 올해 책'이 될 수 없나 보구나.

 

 

- 식물 어디까지 아니?
-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 백산백화
- 무민, 도적을 만나다
- 은빛 숟가락
- 경계의 린네
- 동물의 왕국
- 독수리 사냥
- 리넨과 거즈
- 여자의 식탁
-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 알래스카 이야기
-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 나의 오늘
- 푸르게 물드는 눈
- 알록달록 초록빛
- 내 이름은 욤비
- 구름과 점 사이를 걸었다
- 스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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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2013-12-06 10:25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저는 고3 딸이 사달라고 했던 수능관련 EBS교재가 몽땅 떠서 좀 당황했습니다 --;;

파란놀 2013-12-06 10:45   좋아요 0 | URL
헉!
@.@
우째... 수험교재를 올해책으로 할 수야 없지요 @.@
이궁...

그렇게혜윰 2013-12-06 14:32   좋아요 0 | URL
단순한 저는 올해 내가 책을 적게 샀나?착각했네요ㅠㅠ

파란놀 2013-12-06 14:5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다가,
아닌데 싶어
구매내역을 보니...
500권쯤, 또는 더?
잘 모르겠지만, 최소 400권은 샀더라구요 ^^;;;;;

재는재로 2013-12-06 20:53   좋아요 0 | URL
저도 막상산 책중 내가이것밖에 안샀나싶은 그것도 최근산책위주로 올라온

파란놀 2013-12-06 21:58   좋아요 0 | URL
애써 뜻있는 제도를 마련한 듯하지만...
더 깊이 살피지 못하고 함부로 하면
여러모로 엉뚱하거나 뜻조차 빛이 바래리라 느껴요...

하루빨리 알라딘에서는 '올해 내 책 목록'으로 올라오는 책들
선정기준이나 틀을 고치거나 '독자 스스로 고르도록'
바꾸어야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