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녹동고등학교로 강의를 하러 가면서 쓴 글.

아이들하고 즐겁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

 

..

 

1:99
― 고흥 녹동고 푸름이들한테 띄우는 글

 


  고흥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모두 어버이한테서 아름다운 선물을 물려받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시골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는 한 가지가 있거든요.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도시로 가서 학교를 다니거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데, 시골에서 도시로 가더라도 ‘돌아올 시골’이 있어요. 이와 달리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도시에서 시골보다 한결 수월하거나 가깝데 학교나 일자리를 찾는다 하더라도 ‘찾아갈 시골’이 없어요.


  어릴 적에 시골을 누리거나 겪지 못하는 사람과, 어릴 적부터 시골을 누리거나 겪는 사람은 아주 다릅니다. 녹동고등학교 푸름이가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교라든지 공장이라든지 회사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셔요. 고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들과 숲과 멧골’을 알아요. 다음으로 ‘바다’를 알아요. ‘꽃과 풀과 나무’가 싱그럽고 푸르게 자라는 빛을 언제나 곁에서 마주해요.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어떨까요?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은 밀물과 썰물조차 제대로 모르고, 갯벌이나 드넓은 태평양 바다를 본 적이 없어요. 고흥사람은 집 앞이나 마을 앞이나 조금만 나가면 바다이지만, 도시에서는 한참 나와야 바다를 봅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와 푸름이는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어도, 밥이 되기까지 볍씨를 어떻게 불리고 키워서 모판을 마련해 모내기를 한 뒤 사름을 보면서 푸릇푸릇 싱그럽게 오르는 벼포기에 이삭이 패어 누르스름한 물결로 나락누리가 되는 줄 알 길이 없어요. 책으로는 볼는지 모르지만, 곁에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곁에서 낫질을 하건 콤바인을 타건 나락내음을 몰라요. 다 벤 나락을 길바닥에 반반하게 펴서 틈틈이 뒤집으면서 햇볕에 말리는 빛과 냄새를 도시내기는 하나도 알 수 없어요. 오직 시골내기만 알 수 있는 빛과 냄새입니다.


  똑같이 교과서를 쓰고, 똑같이 대학입시를 치르더라도, 이리하여 똑같은 대학교에 붙는다거나 똑같은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시골내기와 도시내기는 삶바탕이 달라요. 풀내음과 숲내음과 바다내음을 아는 사람은 풀도 숲도 바다도 모르는 사람보다 마음이 한결 깊기 마련이에요. 풀처럼 푸르고 숲처럼 그윽하며 바다처럼 넓은 마음과 사랑입니다.


  시골마을 떠나 도시로 가든, 시골마을에 남아 이곳을 아름답게 일구는 빛이 되든, 고흥 녹동 둘레에서 태어난 즐거움을 듬뿍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참말 아주 즐거우며 아름다운 시골이거든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빛과 소리와 냄새가 언제나 달라요. 삼월과 사월과 오월은 같은 봄이라도 사뭇 달라요. 삼월에도 첫째 주와 둘째 주와 셋째 주와 넷째 주는 햇볕과 바람이 모두 다르고, 날마다 뜨고 지는 해와 부는 바람 또한 언제나 달라요. 시골에서는 달력이 없이도, 또 시계가 없이도, 날을 깨닫고 때를 살피며 날씨를 읽습니다.


  학교 공부에 바쁘더라도 아침저녁으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빌어요. 낮에도 틈틈이 운동장으로 나와서 천천히 걸으며 바람을 마시고 구름과 하늘을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공장도 발전소도 골프장도 기차역도, 온갖 위해시설 하나 없는 고흥은 다른 어느 시골보다도 맑고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요. 겨울에도 짙푸른 후박나무와 동백나무는 다른 시골보다 한결 푸르며 밝은 바람을 베풀어요.


  요새는 서울사람도 동백꽃이나 배롱꽃쯤 알 테지만, 후박꽃을 아는 서울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새봄이 되면 들판을 그득 채우는 ‘봄까지꽃·코딱지나물꽃·별꽃·냉이꽃·꽃다지꽃·꽃마리꽃·씀바귀꽃’을 알뜰히 누릴 수 없는 서울사람은 봄꽃도 봄내음도 봄빛도 제대로 모른다 할 만해요. 우리 고흥 녹동고등학교 푸름이는 서울 동무들한테는 없고 서울 동무들은 하나도 모르는, 푸르고 싱그러운 이야기를 알뜰살뜰 들려줄 수 있어요.


  서울은 시골 아닌 도시라, 또 시멘트와 아스팔트만 가득한 곳이라, 텃밭 하나 변변하게 없어요. 녹동고 푸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한데, 서울에서는 자동차 한 대 세울 자리를 마련하려면 1억 원이 든다고 해요. 몇 평 안 되는 조그마한 땅뙈기에 자동차를 두려면 자그마치 1억 원을 써야 한다고 해요. 자동차만 엄청나게 많거든요. 사람도 어마어마하게 많기도 하지만요.


  이런 서울은 참말 숨이 막혀요.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 매연, 너무 많이 몰린 사람들이 북적이며 푹푹 찌는 더위, 한겨울에도 펑펑 돌리는 난방, 한여름에도 춥게 돌리는 냉방, 이런 서울에서는 요즈음 ‘아그로 시티 서울’을 이루겠다면서 수백 억원을 들인다고 해요. ‘아그로 시티’가 무언지 아는 푸름이 있을까요?


  저도 잘 모릅니다. 인터넷을 함참 뒤진 끝에 ‘아그로’란 ‘농업’을 뜻하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저 커다란 도시 서울이 ‘아파트 도시’나 ‘자동차 도시’나 ‘자본주의 도시’나 ‘물질문명 도시’가 아니라 ‘농업도시 서울’이 되겠다고 외치면서 수백억 원을 쓴다는 소리예요.


  서울은 왜 수백억 원을 해마다 들여서 ‘농업도시’를 이루겠다고 할까요? 서울사람은 왜 ‘도시텃밭’을 일구겠다며 그토록 용을 쓰고 땀을 뺄까요? 게다가, 서울에서는 농약과 화학비료 하나도 안 쓰는 ‘도시농업’을 하겠다고 외쳐요. 이와 달리, 우리 고흥에서는 아직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많이 써요.


  고흥과 서울은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고흥과 서울은 저마다 어떤 삶터일까요. 고흥에도 서울처럼 오십 층짜리 아파트를 지을 수 있지만, 고흥에서는 굳이 이런 높은 아파트를 지을 까닭이 없어요. 마당이 있고, 마당에 나무가 자라며, 텃밭을 넓게 누리는 집을 얻기에 넉넉한 고흥이에요. 도시에서는 마당도 밭도 없이, 게다가 도시에서 오십 층짜리 수십억 원 하는 아파트에 살더라도, 아이들이 뛰지 못해요. 집에서 피아노를 못 치고 노래하지 못해요.


  고흥읍이나 도양읍에도 아파트는 제법 있으니, 고흥에서 아파트살이를 하는 푸름이는 서울 동무들과 똑같이 집에서 피아노를 치기 어렵고, 어릴 적에 방방 뛰거나 구르지 못했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마당이 있고 텃밭이 있는 시골집에서 태어난 푸름이라면, 날마다 신나게 마당을 달리고 고샅을 뛰면서 놀았겠지요.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빈터가 없고 놀이터가 없으며 마당이 없어서 ‘주말이면 숲으로 가려고 자가용 몰고 한참 교통정체에 시달려’요. 고흥에서는? 고흥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방문만 열어도, 마루에서 내려서도, 날마다 즐겁게 숲을 누릴 수 있어요.


  학교 공부는 학교 공부대로 하면서, 또 도시로 나아가서 어떤 직업이나 학문을 더 누리고 싶다면 이대로, 스스로 가슴에 고운 꿈을 품기를 바라요. 그리고, 이러한 직업과 학문을 누리는 일 못지않게,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보람과 뜻과 즐거움과 사랑을 예쁜 선물인 줄 살가이 느끼면서 웃음꽃 터뜨릴 수 있기를 빌어요.


  요즈음 인구통계를 보면, ‘시골사람 1 : 도시사람 99’라고 해요. ‘1 : 99’란, 고흥이 그만큼 따돌림받거나 외진 시골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도시사람 눈높이로 본다면 섣불리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고흥내기, 고흥사람, 고흥 녹동고 푸름이 눈높이로 생각해 보셔요. 우리는 나락을 알고, 바다(게다가 태평양!)를 알며, 갯벌을 아는데다가, 숲과 들과 멧골을 알아요. 섬을 알고 바람을 알지요. 후박꽃과 무지개와 별자리를 알아요. 깊은 밤에 불빛 없는 시골집 마당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봐요. 서울이건 부산이건 대구이건 인천이건 도무지 볼 수 없는 눈부신 별자리가 우리 가슴으로 촉촉히 내려옵니다. ‘아흔아홉 사람한테는 없고, 아흔아홉 사람은 도무지 못 누리는’ 시골빛을 우리 고흥사람은 ‘신나게 누리는 하나’인 줄 사랑스레 되새길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2.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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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야 읽는 책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펼치기 앞서 마음을 펼쳐야 합니다. 내 마음이 어떤 모습인지 가만히 헤아리면서, 마음자락을 책 앞에 펼쳐야 합니다. 맑고 싱그러운 숨을 들이마시고 싶다면, 먼저 내 몸에 깃든 바람을 바깥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핏톨에 얹혀 온몸 구석구석 돌고 난 바람을 살그마니 바깥으로 내보낸 뒤에라야 맑고 싱그러운 숨이 내 몸으로 보드랍게 스며들어 새 기운 솟을 수 있도록 북돋웁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꼬옥 안자면 두 팔을 벌려야 합니다. 두 팔을 벌려야 안지, 두 팔을 안 벌려서는 아이를 안지 못해요. 콩씨를 심어야 콩을 거두고, 팥씨를 심어야 팥을 거두어요. 숲에 깃들어야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고, 흙을 일구어야 맛난 밥을 얻어요. 마음을 열 때에 책이 내 가슴으로 파고들어요. 마음을 열고 책을 손에 쥐어 한 장 두 장 넘길 적에 비로소 이야기 한 자락 내 가슴으로 스며들어요.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겉훑기로 그쳐요.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책을 손에 쥐면 지식이나 정보는 얻더라도 꿈과 사랑은 누리지 못해요. 마음을 열어 책을 읽으면, 지식이나 정보는 잘 모른다 하더라도 꿈과 사랑을 따사로이 누려요. 꿈과 사랑을 따사로이 누리는 사람은, 책으로 지식이나 정보를 못 얻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삶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찾아내요.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합니다.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면서 밥을 짓습니다.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면서 지은 밥을 먹고 기운을 내어 흙을 일구고 나무와 풀을 돌봅니다.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면서 지은 밥을 먹고 기운을 내어 흙을 일구고 나무와 풀을 돌보던 손길로 곁님과 아이를 곱게 안으면서 하루를 즐겁게 누립니다. 책은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있습니다. 4346.12.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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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사진을 찍는 자리

 


  사진을 어디에서 찍는가? 찍고 싶은 자리에서 찍는다. 사진은 어디에서 찍는가? 찍어야 할 만한 자리에서 찍는다. 사진이 태어나는 곳이 따로 있는가? 이야기를 노래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사진이 태어난다.


  아이들 데리고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는 어버이가 퍽 많다. 그렇지만, 나는 식구들 사진을 사진관에서 찍은 일이 없지 싶다. 우리 어버이도 이렇게 한 적 없다고 느낀다. 나도 우리 아이들하고 사진관에 간 일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식구는 내 사진기로 언제나 찍으니 구태여 사진관까지 갈 일이 없으며, 사진관까지 가자면, 시골에서는 너무 멀다.


  집에서 내가 식구들 삶을 사진으로 담으니, 정작 나는 덩그러니 빠진 사진만 얻는다. 그런데, 굳이 내가 사진에 함께 나와야 할까. 내 모습이 사진에 나란히 깃들지 않더라도, 아이들 살아가고 자라나는 모습을 살피면, 이 모습에 고스란히 어버이 모습이 감돈다.


  사진관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을까? 사진관에서는 ‘사진관 사진’을 찍지. 주어진 틀에 맞추어 빙그레 웃음을 짓는 사진을 찍지. 곱게 차려입은 매무새로 사진을 찍지. 집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을까? 집에서는 ‘집 사진’을 찍지. 으레 입는 여느 옷으로, 수수한 차림새로, 언제나처럼 살아가고 놀며 복닥이는 그대로 사진을 찍지.


  사진기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도 예쁜 사진이 태어난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노는 곁에서 살그마니 어울려도 예쁜 사진이 태어난다. 바라보는 눈길이 예쁠 때에 예쁜 사진이 태어난다. 바라보는 눈길부터 예쁘게 다스리면서 예쁜 사진을 얻는다.


  사진은 사진기를 손에 쥐는 자리에서 찍는다. 사진관에서는 언제나 세발이에 사진기를 붙여서 세우니, 이렇게 세운 틀에 맞추어 찍는다. 집에서는? 집에서는 사진기를 들고 부엌에도 있고 마당에도 있고 텃밭에도 있을 테니, 자리를 그때그때 옮기면서 날마다 새로우면서 새삼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배경을 따질 일 없다. 옷차림이나 얼굴을 따질 일 없다. 집안이나 마당이 좀 지저분하면 어떤가. 지저분하다 싶으면 지저분하다 싶은 대로 이야기가 태어난다. 한 해 열 해 서른 해쯤 지난 뒤를 그려 보자.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으면, 사진관으로 나들이 가는 길을 사진 한 장에서 떠올릴 수 있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는 읍내에서 놀던 이야기를 사진 한 장에서 되새길 수 있다. 집에서 찍은 수수한 사진에서는 아하 어릴 적에 이렇게 놀았구나, 어릴 적에 이런 집에서 살았구나, 어릴 적에 이런 바람을 마시고 이런 햇볕을 쬐며 이런 밥을 먹었구나 하는 이야기를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줄줄이 길어올릴 수 있다. 4346.12.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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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놀이 1

 


  여섯 살 사름벼리가 문득 보자기에 장난감을 주섬주섬 담더니 영차 하면서 짊어진다. 응? 뭐하려구? 여섯 살 사름벼리는 세 살 산들보라한테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보따리를 어깨에 짊어지고는, 이야를 간단다. 할머니와 이모를 만나러 먼 나들이를 간단다. 동생은 누나가 하는 말을 한귀로 흘린다. 너, 그러면 같이 안 가. 그래, 그럼 너 혼자 가렴. 여섯 살 사름벼리는 보퉁이를 어깨에 짊어지고는 마당을 한 바퀴 돈다. 스스로도 무거워 영차영차 하면서 한 바퀴 두 바퀴를 돌다가, 햇살 따라 드리우는 그림자를 깨닫는다. 이제 보자기놀이에서 그림자놀이로 접어든다. 그림자가 나를 따라오네. 그래, 너를 따라다니니 그림자란다. 4346.12.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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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코 잠들어

 


  신나게 놀던 산들보라 코 잠든다. 작은아이는 낮잠을 반드시 자야 한다. 낮잠을 안 자면 몹시 고단해 한다. 그런데, 한창 놀다 보면 낮잠을 건너뛰려 하곤 한다. 이때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낮잠을 재워 주어야 한다. 정 안 되면 자전거를 태운다. 수레에 태워 자전거마실을 가면 1분조차 안 되어 곯아떨어지는데, 그냥 집 안팎에서 데리고 놀면, 업어 주어도 안아 주어도 잠들지 않을 뿐더러, 졸린 주제에 업히거나 안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졸음을 이길 수 없는 노릇. 업히지도 안기지도 않았으나 어머니 곁에서 고개를 폭 떨군 채 잠든다. 새근새근 숨소리 듣다가 살그마니 안아서 잠자리로 옮긴다. 4346.12.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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