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89. 2013.12.1.ㄴ 책을 만질 적에

 


  책을 만질 적에 무엇을 생각할까. 책에 찍힌 잉크를 생각할까. 책을 꾸민 겉싸개를 생각할까. 책으로 만든 종이를 생각할까. 책이 되어 준 나무를 생각할까.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자라던 숲을 생각할까.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자라던 숲에서 함께 살던 수많은 이웃 목숨과 숨결과 바람과 햇볕을 생각할까. 사람들은 나무를 빌어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는다. 어른끼리 주고받는 이야기가 있고, 아이한테 물려주려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이야기는 책이 될 수 있고, 무척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이지만 막상 책으로 태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책을 손에 쥐는 아이는 어떤 이야기와 빛과 생각을 얻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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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88. 2013.12.1.ㄱ 밝은 볕과 책

 


  겨울에도 한낮에는 따사로우면서 밝은 볕이 드리운다. 서재도서관으로 나들이를 온 아이들이 한창 땀이 나도록 뛰어놀다가, 이제는 덥다고 하면서 조용히 서서 그림책을 펼친다. 아이들은 맨 먼저 실컷 뛰놀고, 실컷 뛰놀며 땀이 나면 살짝 쉬면서 하늘숨을 마시고 풀내음을 먹었다가, 이렇게 책 한 줄 읽으면 아름답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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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밟는다

 


  면소재지 우체국을 들러 아이들과 가게에 가는 길에 자전거를 해코지하는 까만 자동차를 본다. 까만 자동차 사내는 온갖 거친 말씨를 주워섬긴다. 저이한테 똑같이 거친 말씨를 돌려줄까, 아니면 더 거친 말씨를 얹을까 하다가 이도 저도 안 하기로 한다. 나한테는 우리 두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한테는 아예 아무 말을 않고 대꾸도 없을 때가 가장 낫다. 이른바, 똥을 밟았다고 여기면 된다.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똥을 밟았다”고 하는 말을 요즘 사람들은 “나쁜 일을 겪었다”고 할 적에 흔히 쓴다. 그런데, 이렇게 써도 될 말일까. 누가 이런 말을 쓸까.


  예부터 시골사람은 누구나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았다. 언제나 똥을 만지며 흙을 보살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아이들을 낳아 돌보면서 아기 똥을 퍽 오랫동안 만진다. 어버이가 늙어 몸져누우면 어버이 똥을 꽤 오랫동안 만지기도 한다. 시골사람한테 똥은 하나도 지저분할 수 없으며, 더럽거나 나쁜 것이 안 된다. 삶에는 밥과 나란히 똥이 있기 마련이다.


  누가 똥을 나쁘게 바라볼까. 누가 ‘똥밟기’를 나쁜 일 겪었다는 뜻으로 썼을까. 시골에 살지 않거나, 흙을 만지지 않거나, 아이들을 돌보지 않거나, 늙은 어버이를 모시지 않는 이들이 바로 “똥을 밟았다” 같은 말을 쓰지 않았을까. 스스로 삶을 지을 줄 모를 뿐더러, 스스로 삶하고 동떨어진 이들이 함부로 쓴 말이 엉뚱하게 널리 퍼지지 않았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모두 시골하고 멀어지며 흙하고 등을 진 채 살아가니 이런 말이 얄궂게 퍼지는 셈 아닐까. 4346.12.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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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나무 책읽기 2 - 모가지 뎅겅 잘린

 


  학교나무는 교장 자리에 선 어른 생각이나 마음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제아무리 오랫동안 학교나무를 살뜰히 돌보거나 아낀 교장 한 사람 있었다 하더라도, 이 자리를 이은 뒷사람이 모가지를 뎅겅 자르면 그만 나무는 난쟁이가 되고 만다. 난쟁이가 된 나무는 옆으로 가지를 뻗기도 하지만 다시 위로 줄기를 올리고 싶다. 하늘바라기로 자라는 나무이니, 모가지를 자르고 또 잘라도, 가지를 끊고 또 끊어도, 하늘을 바라보며 자라기 마련이다.


  읍내 초등학교 옆을 걷다가 모가지 무시무시하게 잘린 버즘나무를 본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겨울까. 얼마나 고단할까.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심은 나무는 왜 씩씩하게 하늘로 쭉쭉 뻗을 수 없을까. 나뭇줄기를 뭉텅 잘라, 모가지를 뎅겅 자르듯이,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꿈과 빛과 사랑을 뎅겅 자르는 교육을 하겠다는 뜻일까.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꿈과 빛과 사랑을 무럭무럭 키우는 학교로는 나아가지 않고, 모든 아이들 키를 똑같이 맞추겠다는 학교라는 소리일까.


  소나무 가지를 휘어 놓으면 얼마나 멋있을까. 나무가 나무답게 자라지 못하고, 모가지를 뎅겅 잘리거나 가지가 꺾이거나 휘어져야 한다면, 나무를 이렇게 마구 다루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을까.


  공무원은 길거리에 심은 나무가 더 자라지 않도록 가지와 줄기를 뭉텅뭉텅 자르면서 ‘수형조절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교사는 아이들 꿈과 빛과 사랑을 모조리 싹둑싹둑 자르면서 ‘교육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나 궁금하다. 4346.12.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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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나무 책읽기 1 - 나무이름

 


  고등학교로 찾아가서 그곳 푸름이와 이야기를 나눌 적에 으레 “우리 친구들은 이 학교에서 자라는 저 우람한 나무가 어떤 이름인 줄 알아요?” 하고 묻는다. 아직 어느 아이도 나무이름을 댄 적이 없다. “소나무요.” 하고 말하는 아이가 더러 있는데, 아이들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가릴 수 있을까. 바늘잎이 있으면 몽땅 소나무로만 여기지 않을까.


  아이들은 왜 나무이름을 모를까. 날마다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은 저희가 다니는 학교에서 수십 해 동안 자라며 학교 건물보다 높이 키가 자란 나무가 어떤 이름인 줄 왜 모를까. 교장도 교사도 모르기 때문일까. 교장도 교사도 나무이름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 나무이름쯤이야 대입시험에 나오지 않으니까 돌아볼 까닭이 없을까. 나무이름쯤 몰라도 인터넷게임을 하거나 편의점에 가거나 놀러다니거나 아무 실타래가 없기 때문일까.


  내가 이름을 알거나 이름을 모르는 학교나무 앞에 선다. 마을에서 자라면 마을나무요, 학교에서 자라면 학교나무이다. 숲에서 자라면 숲나무이고, 바닷가에서 자라면 바다나무 될 테지. 가만히 쓰다듬다가 살며시 볼을 대고, 품으로 곱게 안는다. 얼마나 오랜 나날 얼마나 많은 아이들 웃음과 눈물을 이곳에 서서 바라보았니. 얼마나 많은 아이들한테 네 푸른 숨결 베풀었니. 아마 다들 잘 모를 수 있어. 네가 이곳에 우뚝 서서 푸른 숨결을 베풀기에, 이곳 아이들이 푸른 빛으로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줄.


  그렇지만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이곳에서 씩씩하고 다부지게 뿌리를 내리며 더 높고 넓게 가지를 뻗어 푸른 그늘 베풀 나무로구나. 언제나 고운 빛으로 서고, 한결같이 예쁜 잎사귀 살며시 흔들며 푸른노래 들려줄 나무로구나. 4346.12.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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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19 11:54   좋아요 0 | URL
정말 저 나무, 우람하고 늠름하고 참 좋군요.
그런데 저 나무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

파란놀 2013-12-19 12:09   좋아요 0 | URL
네이버 지식인에 여쭈니
'가시나무'로 나오는군요~

곧 가시나무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