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이현주 님이 새로 내놓은 이야기책 《공,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을 읽다가 생각한다. 목사 이현주 님이 조금 더 가볍게, 홀가분하게, 보드랍게, 따사롭게, 무엇보다 즐겁고 사랑스럽고 맑게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으면 참 아름다웁겠다고 생각한다. 시골 할매나 할배를 헤아리면서 이 책을 썼을까. 예닐곱 살 어린이를 돌아보면서 이 책을 썼을까. 어느 만큼 지식이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책을 쓸 수도 있지만, 어느 만큼 지식이 있는 사람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이 이야기 또한 시골 할매와 예닐곱 살 어린이도 즐겁게 함께 들을 만하게 쓴다면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다고 느낀다. 어른 입맛에만 맞춰 짓는 밥은 누구한테 맛있을까. 아이들은 먹기 힘들도록 맵거나 짜게 짓는 밥은 누구한테 즐거울까. 시골 할매도 튀김닭을 먹을 수 있지만, 시골 할매도 튀김닭에 맥주 한 잔 즐길 수 있지만, 참말 시골 할매하고도 함께 나눌 만한 밥과 이야기와 삶과 사랑과 꿈은 어떻게 나아갈 때에 아름다울까. 텅 빈 말을 붙잡을 적에는 텅 빈다. 따사로운 말을 붙잡을 적에는 따사롭다. 삶을 붙잡을 적에는 삶이 된다. 나락 한 톨 붙잡으면 나락을 거둔다. 나무 한 그루 심으면 아름드리로 자라면서 숱한 씨앗 떨구어 숲을 이룬다. 4346.12.21.흙.ㅎㄲㅅㄱ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공 空-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현주 글.글씨 / 샨티 / 2013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3년 12월 21일에 저장
품절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돈 아까운 책’과 ‘살짝 읽기’

 


  1994년부터 책이야기를 글로 썼다. 이무렵부터 ‘돈 아까운 책’이라는 이름을 붙여 책을 나누곤 했다. 참말 돈을 주고 사기에도 아깝고, 누가 돈을 주면서 읽으라 해도 싫다 싶도록 삶빛을 밝히지 못한다고 느끼는 책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책이야기를 썼다. 2014년을 코앞에 두고, 이제 이 이름은 더 쓰지 말자고 느낀다. 다른 이름을, 새로운 이름을 붙이자고 느낀다. ‘돈 아까운 책’이 아닌 ‘살짝 읽기’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느낀다. 살짝 읽어 보는, 살짝 읽어 주는, 살짝 들여다보는, 스쳐 지나가면서 살짝 살피는, 그런 책이라고 할까.


  어느 환경운동가는 동화 할배가 쓴 글을 읽고 나서 자가용하고 헤어졌다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자가용하고 짝짓기를 하고는 핑계 가득한 글을 쓴 적 있다. 스스로 앞뒤가 어긋난 모습이라고 느껴, 이런 분들이 쓰는 글이나 책은 읽을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가만히 보면, 이런 분들은 동화 할배가 글로 나타낸 넋을 제대로 못 읽었으니 섣불리 자가용하고 헤어지기만 한다. 자가용하고만 헤어진대서 지구별에 평화가 오겠는가.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자가용 하나하고만 헤어진대서 달라지지 않는다. 온삶 모든 대목에서 새롭게 거듭날 줄 알아야 비로소 지구별에 평화가 온다. 그러니 그 환경운동가는 다시 자가용하고 짝짓기를 할밖에 없다.


  동화 할배가 자가용을 버려야 이라크파병 안 할 수 있다는 줄거리로 글을 쓴 밑바탕을 읽는다면, 참말 ‘환경운동가’라는 이름표부터 뗄 수 있겠지. 삶은 운동이 아니라 삶이니까. 스스로 삶을 누리고, 삶을 사랑하며, 삶을 가꿀 때에 비로소 스스로 평화가 된다. 스스로 평화가 되면 자가용을 몰 적에도 평화가 된다. 스스로 평화가 되면 라면을 끓일 적에도 평화가 된다. 스스로 평화가 되지 않으면, 환경운동가뿐 아니라 사회운동가 되더라도 평화롭지 않다. 스스로 평화가 되지 않으면 유기농 생채식을 하더라도 평화롭지 않다.


  이리하여, 책이야기를 쓴 지 스무 해가 되는 2014년부터는 ‘돈 아까운 책’이라는 이름을 안 쓰기로 한다. ‘살짝 읽기’라는 이름을 쓰기로 한다. 살짝 웃고, 살짝 손잡고, 살짝 노래하고, 살짝 꿈꾸는 이야기를 나눌 때에 서로 한결 즐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스무 살이 되도록 이 시골이 아름다운 줄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바람에 참말 ‘시골은 빨리 떠나야 하는 곳’으로만 여긴 채 살아온 아이들(푸름이)더러 ‘얘들아, 너희 시골에 남아야지’ 하고 말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은 도시맛을 보아야 한다. 도시맛을 보고 예순 살까지 살아야, 도시에서 예순 살까지 살다가 정년퇴직으로 회사에서 물러나야, 비로소 ‘이제 어떻게 살지?’ 하고 생각할 수 있으리라 본다. 다만, 그때에도 생각을 못 여는 시골내기가 더 많을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들을 가리켜 바보스럽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살며시 사랑할 노릇이고, 살며시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아직 마음에 사랑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사람들은 ‘사랑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아직 마음에 꿈을 살가이 보듬지 못한 사람들은 ‘꿈책’을 살가이 느끼지 못한다. 아직 마음에 숲을 푸르게 껴안지 못한 사람들은 ‘숲책’을 하나도 못 껴안기 마련이다. 아직 마음에 빛을 고이 품지 못한 사람들은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에서 빛을 깨닫지 못하니, ‘삶책’을 읽지 못한다. 4346.12.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꼬마요정 2013-12-22 17:40   좋아요 0 | URL
살짝 읽기.. 참 좋은 표현입니다.^^

파란놀 2013-12-22 19:46   좋아요 0 | URL
네, 제가 붙인 이름이면서도 참으로 좋아요~
 
행복의 민낯 - 여섯 여자의 30일 행복 실험
하이힐과 고무장갑 지음 / 샨티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150

 


우리는 누구나 늘 부자입니다
― 행복의 민낯
 하이힐과 고무장갑 글
 샨티 펴냄, 2013.12.16.

 


  새벽에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아차, 엊저녁에 밥냄비를 안 비웠구나, 엊저녁에 잠들기 앞서 누런쌀 불려야 했는데 안 불렸구나. 부랴부랴 밥냄비를 비우고 설거지를 합니다. 냄비에 쌀을 붓고 씻습니다. 흰쌀밥 아닌 누런쌀밥 먹으니 아침저녁으로 쌀을 제때 불려야 하는데, 가끔 깜빡 잊고 지나갑니다.


  미리 안 불렸으니 흰쌀밥으로 아침을 지을까 생각하다가, 세 시간쯤이라도 불리고서 작은 불로 조금 더 오래 끓이자고 생각을 고칩니다. 물을 조금 더 붓고 오래 끓이면, 미처 덜 불렸어도 그리 딱딱하지는 않습니다.


.. 우리 딸들에겐 나처럼 배우고, 탐구하고, 도전할 기회가 박탈된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아직 나도 세상에서 더 배우고 싶고, 더 탐구하고 싶고, 더 도전하고 싶은 게 많아요. 내겐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돈(자유)이 필요해요 … 어린 시절 결핍을 겪은 사람들, 즉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서 살아온, 뭐랄까 ‘결핍이 있는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몸 안에 행복이란 공간이 자리를 잡을 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  (25∼26, 35쪽)


  섣달이 무르익습니다. 며칠 뒤면 동지입니다. 동지를 앞두고 아침이 늦으며 저녁이 이릅니다. 밤은 더없이 어둡습니다. 한 해 가운데 밤이 가장 긴 날이 찾아옵니다. 아직 일월과 이월이 지나야 봄이건만, 나는 늘 섣달 동지날부터 ‘겨울이 풀리는구나’ 하고 여깁니다. 밤이 조금씩 짧아지는 기운을 느끼면서 겨울을 한결 즐겁게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거꾸로 밤이 가장 짧은 하지를 지나면서 ‘곧 겨울이 오겠구나’ 하고 여겨요. 천천히 저무는 여름을 기쁘게 누리면서 겨울을 맞이해야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부터 이 여름은 한 해가 흘러야 다시 찾아온다고 느끼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맞아들입니다.


  겨울에는 아이들 이불깃 여미느라 밤새 뒤척입니다. 여름에는 아이들 부채질 하느라 밤새 꾸벅꾸벅 졸듯이 잡니다. 어느 모로 보면 힘들다 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스스로 좋아서 이렇게 살아갑니다. 아이들이 겨울에 따스히 잘 수 있기를 바라고, 여름에 시원하게 잘 수 있기를 빕니다. 나는? 아이들이 따스히 잔다면, 나도 곁에서 따스히 잘 수 있어요. 아이들이 시원히 자면, 나도 곁에서 시원히 잔다고 느껴요.


  함께 먹는 밥도 언제나 똑같아요. 아이들이 맛나게 먹을 밥이란, 나도 함께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밥입니다.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책이란, 나부터 스스로 즐겁게 읽을 만한 책입니다. 아이들과 다니고 싶은 숲이나 바다나 들이란, 나도 이 아이들과 다니고 싶은 숲이나 바다나 들이에요.


  혼자 먹기에는 아쉽습니다. 혼자 읽기에는 아쉬워요. 혼자 푸른 바람과 맑은 햇볕 누리기에는 더없이 아쉽지요.


.. 30대까지는 정말 우리 가족이 서울에 경제적으로 정착하는 게 지상과제였죠. 열심히 맞벌이했고, 딴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제 삶에 물기가 없더라구요. 가족도 있고 돈도 벌고 뭔가 굴러가고는 있는데, 정작 나는 허깨비 같고 바싹 말라 있는 느낌이었어요. 서울이 이렇게 넓은데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직장 사람과 달랑 우리네 가족 말고는 없다는 게 물기라곤 없는 팍팍한 모래 강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 어렸을 때의 환경이 마흔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은 게 ..  (32, 50쪽)


  매서운 된바람 부는 겨울에는 이 된바람 있기에 겨울답다고 느껴요. 시원한 살랑바람 부는 여름에는 이 살랑바람 있으니 여름답구나 싶어요. 추위와 함께 누리는 겨울입니다. 더위와 함께 맞이하는 여름입니다. 손이 꽁꽁 얼면서 겨울을 즐깁니다. 땀을 후줄근히 흘리면서 여름을 맛봅니다.


  나무를 바라보아요. 나무는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늘 튼튼하며 씩씩한 숨결입니다. 더운 여름에는 활짝 피어나듯이 푸르고, 추운 겨울에는 다부진 모습으로 말갛습니다. 추운 날에도 푸른 숨결 나누어 주고, 더운 날에도 푸른 숨결 베풀어 주어요.


  나무가 있기에 모든 목숨들한테 삶이 있어요. 나무가 자라기에 모든 목숨들이 보금자리를 얻어요. 나무가 없는 뭍이라면 냇물도 샘물도 없으리라 느낍니다. 나무가 없는 땅이라면 흙이 몽땅 메마르겠지요.

  나무 없이 삶이 있을까요? 오늘날 도시는 나무란 없이 시멘트와 아스팔트뿐인데, 나무를 모두 밀어낸 탓에 에어컨과 난방기를 돌려야 해요. 나무를 모두 짓밟거나 괴롭히기에, 도시에서는 수도물 마셔야 하고 재채기 끊이지 않으며 병원이 줄줄이 늘어서요.


  어느 짐승도 병원을 들락거리지 않아요. 어느 물고기도 병원에 몸져눕지 않아요. 어느 벌레도, 어느 새도, 어느 벌과 나비도, 어느 제비와 까치와 참새도 병원에 기대지 않아요. 오직 사람만 병원을 세우고, 병원에 얽매이며, 병원과 함께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스스로 나무를 베거나 밀거나 없애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스스로 나무를 잊고 나무를 버리며 나무를 사랑하지 않으니, 자꾸 아프고 힘겨우며 고단해요.


.. 날씨가 그새 많이 선선해졌다. 감사하다 … 남편의 반응이 섭섭하긴 했지만 큰 동요 없이 담담하게 내 갈 길을 생각하는 내 모습이 정말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 단행본들을 사면서는 아이들에게 이 책이 얼마만큼 ‘감동’을 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다. 그런데 전집을 살 때는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까를 기준으로 삼았다 ..  (91, 128, 140쪽)


  이야기책 《행복의 민낯》(샨티,2013)을 읽습니다. 아줌마 여섯 사람이 조잘조잘 주고받는 수다를 알뜰히 묶은 이야기책입니다. 아줌마 여섯 사람은 아마 서울에서 사는구나 싶고, 아파트 또는 아파트와 비슷한 집에서 살아가지 싶습니다.


  아줌마 여섯 사람은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낳고 살림을 꾸리지 싶습니다. 집에만 얽매이고 싶은 마음이 없고, 아이한테만 달라붙고 싶은 뜻이 없으리라 느껴요. 그렇다고 회사에 목을 매달고 싶지도 않으리라 느껴요.


  그러면, 이 아줌마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을까요. 이 아줌마들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을까요. 이 아줌마들은 꿈과 사랑을 어디에서 찾아 어떻게 누리고 어떻게 나누고 싶을까요.


.. 평일의 광화문행 버스에는 나를 포함해 여섯 명뿐이다. 한가하고 헐렁해서 좋다. 목동 사거리를 지나고부터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눈을 들어 보니 신촌을 지나고 있었다 … 큰딸과 함께 동네 뒷산에 올라가서 그늘진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쐰 날이었다 … 오늘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한 선택은 자가용 대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학교 가는 것이었다. 버스 타러 걸어가는 길 10분, 버스와 전철 타고 가는 시간 1시간 30분, 내린 뒤 걸어가는 데 10분이 걸렸다 ..  (175, 205, 217쪽)


  돈이 있대서 밥을 먹지 않습니다. 밥이 있어야 밥을 먹습니다. 밥은 돈으로 사고팔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가게와 밥집이 있지만, 가게나 밥집 또한 돈이 있대서 밥을 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흙을 일구어야 쌀을 얻고, 누군가 볍씨를 갈무리하면서 살뜰히 아껴야 밥이 태어날 수 있거든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이 봄 한철에 모내기를 안 하면 이 나라에 어떤 일이 생길까 궁금하곤 해요. 시골 흙지기가 꼭 한 해만 흙일을 안 하고 시골에서 조용히 오순도순 지내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곤 합니다.


  파업? 아닙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 모두 고단하니까 좀 쉬셔야지요. 해마다 죽어라 논밭 일구지 않아도 이제는 시골 할매와 할배 넉넉히 먹고살 만해요. 굳이 배추나 무를 안 심어도 유채와 갓은 씩씩하게 돋아요. 상추는 씨만 죽 뿌려도 저희끼리 알아서 엄청나게 자라지요. 상추씨를 안 뿌려도 들은 온통 풀밭이 되어 이 풀 먹고 저 풀 먹느라 바쁩니다. 그러니까, 시골사람은 꼭 한 해쯤 농사를 안 지어야 무언가 바뀔 수 있다고 느껴요. 시골사람이 농사를 안 지어 도시사람을 쫄쫄 굶겨야 모두들 머리를 번쩍 깰 수 있으리라 느껴요.


  오로지 돈만 바라보고 돈만 생각하는 도시사람한테, 발등에 떨어지는 불처럼, 한국 농사꾼 모두 한 해 동안 ‘안식년’을 누려야지요. 왜 도시사람만 안식년이니 휴가이니 육아휴직이니 누립니까. 시골 농사꾼도 안식년을 누릴 노릇입니다. 수천 수만 수십만 해를 이은 ‘일’을 쉬고, 시골 농사꾼이 권력자와 양반과 부자와 도시사람 먹여살리던 고리를 싹둑 자를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돈이면 다 되는 줄 여기는 도시사람한테, 돈이면 백화점에서 사다 먹으면 된다고 여기는 도시사람한테, 돈이면 가게와 밥집에 가서 사다가 냉장고에 쟁이면 된다고 여기는 도시사람한테, 시골 흙지기 할매와 할배가 본때를, 아니 삶을, 사랑을, 꿈을, 빛을 보여줄 노릇이라고 느껴요.


  우리 삶은 돈으로는 아무것도 안 되어요. 우리 삶은 오직 삶으로 이룹니다. 삶을 가꾸며 삶이 있어요. 사랑을 가꾸며 사랑이 자라요. 꿈을 가꾸며 꿈이 피어나요.


  우리는 누구나 늘 부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늘 사랑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늘 평화요 민주이며 통일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늘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 돈에 매달리지 않아도 돼요. 애써 무슨무슨 운동을 하지 않아도 돼요. 굳이 머리띠를 둘러야 하지 않아요. 밑바탕을 바꾸면 돼요. 삶을 고치면 돼요.


  생각해 보셔요. 한국땅 시골마을 모든 농사꾼이 ‘안식년’을 누리면, 농협을 비롯해 농림부와 대통령과 시장과 군수와 국회의원과 의사와 판사와 기자와 지식인과 소설가와 교사와 공장 노동자와 운전기사와 이런저런 사람들 모두 어떻게 될까요? 미국이나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쌀과 열매와 곡식 사다 먹으면 되나요?


  삶을 삶답게 사랑하면서, 사랑을 사랑답게 가꾸는 이웃이 차근차근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슬기롭게 깨달아 맑게 웃는 이웃이 하루 빨리 눈을 뜰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2.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부 검인정 역사 교과서 가운데 말도 탈도 많은 교과서가 있다고 한다. 왜 말도 탈도 많을까. 아주 마땅한데, 우리 사회는 아직 통일도 민주도 평화도 평등도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나 교사나 지식인이나 공무원이나 대통령이나 정치꾼이나 기자나 방송국 일꾼이나 …… 이들이 얼마나 통일과 민주와 평화와 평등하고 가깝거나, 이를 지키거나 돌보려고 애쓰는가를 헤아려 보라. 얼토당토않다 싶은 역사 교과서는 얼마든지 나올 법하다. 그런데, 외려 얼토당토않다 싶은 역사 교과서가 그리 큰힘을 내지 못한다.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교육도 민주보다는 ‘민주 아닌’ 흐름이 깊거나 짙은데에도, 뜻밖에도 적잖은 사람들 슬기와 사랑과 꿈과 기운이 모여 이럭저럭 아름다운 길로 걸어간다고 느낀다. 《이 여자, 이숙의》라는 책을 읽는 동안 역사뿐 아니라 삶과 꿈과 사랑을 곰곰이 돌아보았다. 참말, 역사란 무엇인가. 참말 통일이나 진보나 보수나 사상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다운가. 우리가 걸어갈 길과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우리는 서로 어떻게 마주하면서 어깨동무를 할 이웃인가. 4346.12.20.쇠.ㅎㄲㅅㄱ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이 여자, 이숙의- 빨치산 사령관의 아내, 무명옷 입은 선생님
이숙의 지음 / 삼인 / 2007년 8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13년 12월 21일에 저장
품절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빨래노래를 안 부르다

 


  작은아이가 밤오줌을 말끔히 뗀 뒤, 한동안 이불과 이부자리에 밤오줌을 질펀하게 누곤 했지만, 이제 이마저 없다. 큰아이를 돌보는 동안에도 느꼈는데, 아이들이 밤오줌을 말끔히 떼었다고 느낄 적에 얼마나 홀가분하면서 고맙고 눈물이 나는지 모른다. 다만, 이러다가도 너무 힘들게 논 날에는 아이 스스로 모르게 오줌을 지리곤 한다. 괜찮아. 누구나 그럴 수 있거든. 너희가 그럴 적에는 이불을 빨아야 할 때라고 알려주는 셈이니, 외려 반갑지.


  아이들이 밤오줌을 잘 가리니, 천기저귀를 댈 일도 빨래할 일도 없다. 빨래해서 말리느라 애먹을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오줌을 가릴 수 있고 똥도 잘 가리는 만큼, 오줌바지와 똥바지 빨래도 나오지 않는다. 아주 어린 아이들 돌보는 어버이라면 잘 알 텐데, 아이들이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를 내놓는다면, 으레 오줌바지와 똥바지를 나란히 내놓는다. 여기에 웃도리에까지 오줌으로 적시거나 똥을 묻혀서 함께 빨도록 덤을 얹기도 한다.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과 살자면, 날마다 빨래를 너덧 차례를 해도 모자라기 일쑤이다.


  어린 아이들과 지내며 늘 빨래를 하며 빨래순이처럼 하루를 보내며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구는 동안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생각에 젖기도 했다. 이제 빨래 일이 부쩍 줄어들다 보니, 빨래노래 부르는 일 또한 부쩍 준다. 한편, 아이들이 크다 보니, 한 번 입고 벗어던진 뒤 다시 안 입는 옷이 생긴다. 빨 까닭이 없지만, 여러 날 먼지를 먹고 뒹군 탓에 빨아야 하는 옷이 생긴다. 슬금슬금 이마에 골이 팬다. 이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오줌을 누어 빨래하는 옷이나, 아이들이 한 번 입고 아무 데나 던지는 바람에 먼지구덩이가 되어 빨래하는 옷이나, 서로 똑같은 옷이요 빨래 아닌가 하고 느낀다. 한손으로 이마를 살살 문질러 골을 지운다. 아이들이 나한테 예쁜 선물을 주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착하고 멋진 아이들아, 신나게 놀자. 아름답게 노래하자. 기쁘게 어깨동무하자. 너희가 바로 어버이를 어버이답게 가꾸어 주는구나. 4346.12.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백마을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