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문득 서는 군내버스

 


  우리 마을 앞으로는 군내버스가 하루에 여덟 대 지나간다. 이보다 드물게 지나가는 마을이 많고, 이보다 자주 지나가는 마을도 많다.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꼴이다.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적에 버스때를 맞추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봉서마을에서 내려 십오 분쯤 걸어서 들어가곤 한다. 식구들과 함께 먹을 여러 가지를 큰 가방에 잔뜩 담고 천천히 걷는다.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느라 겨울에도 땀이 흐른다. 그런데 군내버스가 저기 가다가 문득 선다. 왜 설까. 십오 초쯤 있자니 할매 한 분 버스에서 내린다. 그러고는 군내버스는 다시 달린다. 아하, 할매 한 분이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그만 내릴 곳을 놓치셨구나. 군내버스 일꾼이 할매를 저쪽에서 내려 주었구나. 그래도 할매가 용케 잠에서 깨었으니 저쯤에서 내리실 수 있었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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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나물꽃 책읽기

 


  겨울바람 아직 수그러들지 않은 이월로 접어든 때부터 밭둑과 들판에 울긋불긋 피어나는 꽃이 있다. 이 꽃을 두고 우리 식물학자는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 ‘학명’이 없던 때, 일본 식물학자가 이름을 먼저 붙이기 앞서 한국 식물학자가 ‘광대 옷차림이 울긋불긋’하다고 떠올리면서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학자가 식물학에 따라 풀이름을 붙이기 앞서,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풀을 먹던 사람들은 풀마다 이름을 다 붙여 놓았다. 식물학자는 시골사람이 붙인 풀이름을 학명, 이른바 학술이름으로는 안 쓰기 일쑤인데, 시골사람은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이 이러거나 저러거나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한의사가 어려운 한문으로 이름을 붙이거나 말거나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풀은 풀이지 ‘草’도 ‘野草’도 ‘雜草’도 아니며, ‘植物’ 또한 아니다. 풀이 맺은 꽃은 풀꽃일 뿐 ‘野生花’일 수 없다.


  코딱지나물은 코딱지나물이다. 코딱지나물이 맺는 꽃은 코딱지나물꽃이다. 시골마을에 깃들어 시골사람들 시골말을 듣기 앞서까지, 나도 ‘광대나물’이라는 이름만 듣고 알았지만, 시골사람들 누구나 코딱지나물이라고 말하는데, 나도 시골에서 시골사람으로 살면서 광대나물이라는 학술이름을 쓸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찬바람 씽씽 부는 섣달 한복판에도 씩씩하게 잎사귀 내놓고 줄기 올리며 꽃을 피우는 이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들꽃은, 시골내음 그득한 이름으로 부르며 톡 따서 입에 넣어 야금야금 씹으면 봄내음 물씬 퍼진다. 손끝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생각을 기울인다. 다른 고장 다른 고을에서는 어떤 이름을 쓸까. 내가 이 풀과 풀꽃을 바라보며 새롭게 이름을 붙인다면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매서운 바람과 따순 볕 사이에서 흐드러지는 이 상냥한 들풀과 들꽃한테는 어떤 이름이 가장 곱게 어울릴까. 4346.12.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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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2 18:07   좋아요 0 | URL
정말 씩씩하고 예쁜 '코딱지나물꽃'이네요~
그런데 꽃송이가 푸른 이파리들(?) 속에서 되게 신기하게
피어 나는군요~

파란놀 2013-12-22 19:45   좋아요 0 | URL
네, 그런 모습이 꼭 코딱지 같다고 할까요 ^^;;;
저렇게 불쑥 튀어나와서 추욱 처지는 듯한 모습이니까요~
 

사진과 함께 22. 곁에서 맞이하는 빛

 


  아이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사진을 곧잘 찍는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마주하면서, 아니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리면서 으레 사진을 몇 장씩 찍는다. 아이들 먹이려고 차린 밥이 대견하기에 사진을 찍지는 않고,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차리는 밥상에 감도는 빛, 이를테면 밥빛이 날마다 새삼스레 재미있다고 느껴 사진을 찍는다.


  밥빛을 흑백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다. 아마, 흑백사진으로 찍는 밥빛은 무척 새로우리라 본다. 그런데, 밥차림을 흑백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옷차림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도 흑백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밥차림도, 또 집안 살림살이도 흑백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왜냐하면, 밥차림이나 옷차림이나 집살림 모두 온갖 빛깔이 곱게 어우러지면서 정갈하고 환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로 찾아가서 다큐사진을 찍는다든지, 어떤 이야기틀 하나를 세워 사진을 찍는다고 할 적에, 사람들은 으레 흑백사진을 더 좋아하거나 즐긴다. 무지개빛 사진으로 찍으면 어수선하다고들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맞는 말은 아니라고 느낀다. 왜 그런가 하면, 어수선한 느낌은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갈무리하거나 다스릴 노릇이다. 언뜻 보기에 어수선하구나 싶대서 흑백사진으로 찍으면 안 어수선하게 보일까? 여러모로 어수선하도록 흐트러진 빛깔 때문에 눈이 아프다면, 이 어수선하도록 흐트러진 빛깔을 다스려 아름다운 빛과 무늬로 보여주는 몫을 바로 사진가(또는 사진작가) 스스로 맡아야 하지 않을까?


  흑백사진에는 흑백사진 맛이 있다. 흑백사진다운 맛을 살리려고 흑백사진을 찍을 적에 비로소 맑게 빛난다. 검정과 하양이 얼크러진 고운 빛을 살리려는 흑백사진일 때에 바야흐로 아름다운 흑백사진이 태어난다.


  다시 말하자면, 무지개빛을 사진으로 담으려 할 적에도, 이 무지개빛을 곱게 살리면서 살가운 멋을 나누려는 넋이 있어야 한다. 이런 넋이 없이 이냥저냥 무지개빛 사진을 찍으면 너무 어수선하고 만다. 이런 넋이 없이 그냥저냥 흑백사진을 찍으면, 제빛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


  아이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가끔 흑백사진으로 찍어 보기는 했는데, 영 맛과 멋이 살지 않는다고 느꼈다. 퍽 재미있기는 하지만, 잡아야 할 빛을 흘려 버리는 셈이라고 느끼곤 했다. 무지개빛이 아이들 손과 몸에 고이 깃드는데, 이 빛을 섣불리 지우거나 감추는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다.


  아이들은 저희가 좋아하는 빛깔이 눈부시거나 환한 옷을 즐겨입는다. 아이들 밥그릇은 알록달록 곱다. 아이들이 눈으로도 즐겁게 밥을 먹기를 바라면서 밥과 나물도 보드랍게 빛나도록 요모조모 헤아려 그릇과 접시를 놓는다. 그러니, 아이들 밥차림은 처음부터 무지개빛 사진으로 찍도록 엮은 셈이다. 눈빛 하나 손길 하나 따사로운 햇볕이 깃들어 여러 빛깔 골고루 퍼지기를 바라면서 차린 밥상이기에, 이 밥상을 자연빛 그대로 찍는다. 4346.12.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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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밥상맡에서

 


  누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앉은 산들보라, 밥상맡에서 숟가락도 젓가락도 쥐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을 하나. 밥이랑 국이랑 반찬이랑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배고프지 않니? 그저 눈으로 쳐다보아도 배가 부르니? 누나 곁에 앉으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니? 국내음과 밥내음을 맡는 셈일까. 한참 물끄러미 산들보라를 바라보다가 숟가락에 밥을 퍼서 “자, 먹어야지.” 하니까 입을 쩍 벌린다. 옳거니, 먹여 달라는 뜻이로구나. 그런데 말야, 너 곧 네 살이 되잖니. 네 살이 되는 주제에 이렇게 떠멱이라고 해서야 쓰것느냐. 하기는, 네가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되면, 또 아홉 살이나 열 살이 되어서까지 먹여 달라 하지는 않을 테지. 귀여움 부리면서 먹여 달라고 하는 나이도 곧 지나가겠구나. 4346.12.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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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사람을 아끼고 (도서관일기 2013.1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장흥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장흥을 발판으로 사진을 찍고, 탐진강을 둘러싼 마음을 사진으로 담는 마동욱 님과 이녁 선배가 함께 찾아온다. 곰곰이 헤아리면, 장흥에는 마을빛 곱게 담으려고 힘쓰는 분들이 퍽 많다.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퍽 여러 분들이 힘을 쓴다. 고흥에도 고흥빛을 곱게 담으려고 힘쓰는 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고흥빛은 장흥빛처럼 넓어지거나 깊어진다는 느낌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고흥군청에서 돈을 들여 이것저것 짓거나 올리거나 만들거나 세우기는 하지만, 마을마다 살가이 뿌리내리는 흐름으로 가는지 아리송하기 일쑤이다. 토목건설은 토목이거나 건설이지, 문화가 아니다. 관광시설은 관광이거나 시설이지, 삶이 아니다. 친환경농업은 농약을 덜 쓴다거나 덜 나쁜 농약을 쓴다는 ‘농사 산업’이지, 흙을 살리거나 풀을 아끼는 흙짓기는 아니다.


  시골 아이를 도시로 보내는 ‘교육 사업’은 있어도, 시골 아이가 고흥이라는 시골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북돋우는 ‘배움넋’은 도무지 찾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시골 아닌 도시에서도 아이들한테 회사원이나 연예인이나 지식인이 되는 교육 사업만 있을 뿐, 아이마다 다 다른 삶빛을 찾도록 북돋우는 배움넋은 쉬 뿌리내리지 못한다. 어디에나 도시바라기와 대학바라기 입시교육만 있다.


  겨울로 접어들었으니 우리 서재도서관에서 책을 둘러보자면 손이 시릴 수 있다. 흔한 난로조차 하나 없으니, 추위를 잘 타는 분한테는 힘들리라 느낀다.


  나는 추운 곳에서건 더운 곳에서건, 읽을 책이 있으면 그냥 읽는다. 한참 춥더라도 마음을 녹이는 책이 있으면 손과 볼과 몸이 얼면서도 차근차근 읽는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으려다가 볼펜이 얼어서 안 나오면 연필을 쥔다. 연필은 아무리 추운 곳에서도 서걱서걱 쓸 수 있다. 다만, 내가 추운 곳에서도 스스럼없이 책을 읽는대서 다른 사람한테 추위를 견디며 책을 읽으라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고맙다.


  어느 책이든 읽으려는 사람이 스스로 읽는다. 더워서 안 읽는 사람은 추워서 안 읽는다. 바빠서 안 읽는 사람은 나중에 느긋하거나 한갓지더라도 안 읽는다. 힘들거나 고단해서 안 읽는 사람은 넉넉히 쉬거나 달콤히 낮잠을 자고 난 뒤에도 안 읽는다.


  책이 없기에 책을 안 읽지 않는다. 종이책으로도 책을 읽지만, 나무 한 그루로도 책을 읽는다. 소설책으로도 책을 읽으며, 씨앗 한 톨이 뿌리내려 자라는 모습으로도 책을 읽는다. 베스트셀러를 읽을 수도 있지만, 심지 않아도 스스로 무럭무럭 돋는 숱한 들풀을 읽을 수도 있다. 무엇을 읽든 스스로 읽는다. 언제 읽든 스스로 챙겨 읽는다. 어느 곳 어떤 날씨라 하더라도 늘 스스로 읽는다.


  삶을 아끼는 사람이 삶을 사랑한다고 본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아낀다고 본다. 이웃을 아끼는 사람이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본다.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이 책마다 다 다르게 서린 빛을 헤아린다고 본다. 책마다 다 다르게 서린 빛을 헤아리는 사람이 살림을 알뜰살뜰 가꾼다고 본다. 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는 사람이 ‘평등’이라는 이름을 모르더라도 즐겁게 아이들을 돌보고 살아간다고 본다. 아이들을 돌보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글을 정갈하게 쓸 테고, 글을 정갈하게 쓰면서 책 또한 반가이 마주할 수 있을 테지.


  아름다운 책 하나를 믿는다. 겉보기로 그럴싸하게 꾸며서 만들었기에 아름다운 책이 되지는 않는다. 사랑을 담고 꿈을 노래하는 책일 때에 아름답다. 아름다운 이웃들을 믿는다. 이름이 높거나 돈이 많거나 힘이 세다고 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사랑을 나누고 꿈을 이루는 길로 씩씩하게 걸어갈 적에 아름답다.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을 서재도서관에 갖춘다. 아름다운 책손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한결같이 빙그레 웃으면서 고흥 시골자락으로 선선히 찾아오리라 믿고 기다린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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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방 앞을 걷다>가 유독 더 예쁘고 좋아서
한꼭지씩 읽을 때마다, 애기 궁둥이같이 보드라운 책을
쓰다듬곤 합니다~ 늘 감사드려요~*^^*

파란놀 2013-12-24 19:55   좋아요 0 | URL
아아,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