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가리 씨앗 책읽기

 


  지난가을 박주가리 열매를 길에서 주웠다. 길가에 박주가리 열매가 잔뜩 맺힌 옆을 자전거로 지나가다가 몇 주워서 건사했다. 통통한 열매를 터뜨리면 하얀 물이 졸졸 흐르는데, 먹어도 되고 생채기에 발라도 된단다. 그대로 두면 스스로 말라 갈라지면서 속에서 씨앗이 터져나온단다. 부엌에 건사한 지 달포쯤 지나니 참말 하얀 솜털이 커다랗게 달린 작고 가벼운 씨앗이 드러난다. 우리 집 둘레에 박주가리씨 놓으면 어떨까 생각하며 큰아이와 함께 이곳저곳에 하나씩 내려놓는다. 민들레 솜털보다 훨씬 크고 보드라운 박주가리 솜털이란. 새해에 우리 집에서 박주가리꽃 볼 수 있을까. 박주가리풀에서 박주가리 열매가 맺히다가 살며시 터지면서 박주가리 씨앗 나풀나풀 온 마을에 두루 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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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세 번 읽는 책

 


  다카하시 루미코 님 단편만화책에 실린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만화영화가 있다. 뜻밖에 이 작품이 있었다고 알아챈 뒤 고맙게 얻었다. 이튿날 아이들한테 보여줄까 생각하면서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 작품은 아이들하고 그냥 보아도 되리라 생각하지만, 또 모르는 노릇이니까.


  생각해 보면, 어느 영화를 아이하고 함께 보더라도, 나나 곁님이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살핀다. 아이와 함께 볼 만하지 않은 대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잘 살펴야 한다. 제대로 안 살피거나 얼추 살피고 함께 보다가 뜨끔한 영화가 꽤 있다.


  아차, 뜨끔하구나, 하고 깨달으며 영화를 끄지만, 벌써 뜨끔한 대목은 흐른 뒤. 어른들은 영화를 만들며 굳이 이런 대목과 저런 모습을 넣어야 했을까.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는 모습을 반드시 넣어야 영화다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 따사롭게 흐르는 사랑을 보여주자면, 바보스럽거나 짓궂은 이야기를 꼭 끼워넣어야 할까.


  좋은 말만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어떤 풀도 겨울이 되면 시들어 죽는다. 시들어 죽어야 씨앗을 맺어 이듬해에 새롭게 자라날 어린 아이(풀)를 내놓는다. 그런데, 이런 풀살이와는 다르게, 사람들끼리 얕은 셈속으로 치고받는 이야기를 굳이 들출 까닭이 있을까. 들추더라도 그악스럽게 그려내야 할까.


  아이들과 영화를 보면서 어떤 영화라도 두세 번 먼저 보고 열 번 스무 번, 때로는 백 번이나 이백 번까지 다시 본다.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어떤 책이라도 두세 번 먼저 읽고 열 번 스무 번, 때로는 백 번이나 천 번까지 다시 읽는다. 어른들한테 읽히려는 인문책은 열 번이나 백 번까지 볼 책이 얼마 없으리라 느낀다. 아이들과 읽는 책은 적어도 백 번은 넘게 읽기 마련이다. 천 번이나 만 번까지다 되읽는 책이 있다. 이런 책이요 영화인 터라, 아이들과 누리는 이야기는 더 깊이 살피고 한결 넓게 돌아보기 마련이다. 아이들과 백 번쯤 읽을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니, 이런 책에 나오는 낱말과 말씨를 허투루 지나치지 못한다. 아이들과 천 번쯤 되읽을 책이라 한다면, 연필을 들고 책에 금을 죽죽 긋고 새 말을 집어넣을밖에 없다.


  작가도 편집자도 독자도, 책 하나를 얼마나 오래도록 수없이 되새기면서 마음을 살찌우는가 하는 대목을 살펴야지 싶다. 한 번 읽고 버리는 책은 없다. 한 번 읽고 버리더라도 가슴으로 맞아들이는 책이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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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 새로 쓸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지난해에 '그림책 원고가 될 어린이 시'를

석 점 썼다.

 

올해에도 '그림책 원고가 될 어린이 시'를

몇 점 쓸 생각이다.

원고지로 치면 쉰 장 남짓 될 만큼

제법 긴 시인데

새봄이 될 무렵 하나 태어나리라 느낀다.

 

새로운 올해에는

한 주에 한 꼭지씩

새로운 글을 쓸 생각이다.

 

지난 1994년부터 오늘까지

언제나 새삼스레 책이야기를 썼는데,

이제 2014년에 지난 스무 해 글쓰기를 되짚으면서

'청소년한테 들려줄 책이야기'를 쓰려 한다.

 

모두 쉰여섯 꼭지로 쓴다.

주마다 꼭 한 꼭지씩 써서

한 해가 마무리될 때에 글도 마무리지을 생각이다.

원고지 몇 장 길이로 쓸는지 아직 가늠해 보지는 않았다.

 

5월까지는 <새로 쓰는 우리말> 원고에 힘을 쏟고,

5월이 되기 앞서 4월부터는 이 원고를 마친 뒤 나아갈 원고를

찬찬히 헤아려 보아야지.

 

언제나 하나씩, 꾸준히, 새롭게

이야기를 잘 빚고 영글어 보자.

우리 집 숲을 가꿀 수 있는 빛을 일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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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4-01-01 06:34   좋아요 0 | URL
새해 계획을 세우셨군요.
함께살기님께서 보내주신 책을 받았습니다. 너무 많이 보내 주셔서 송구스럽고 감사합니다.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파란놀 2014-01-01 07:43   좋아요 0 | URL
그러나, 제가 쓴 책 가운데 얼마 안 되는 몇 가지뿐인걸요 ^^;;;

앞으로 글삯 신나게 벌어서
다른 책들도 함께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고,
미처 못 보낸 책은
학교도서관에 신청하셔서 즐기실 수 있기를 빌어요 ^^;;;
 

까마중 한 그릇 훑어 준 어린이

 


  두 아이가 까마중을 훑어 주어 아침밥 차리기가 한결 수월했다. 작은아이는 조금 훑다가 제 입에 집어넣기만 할 뿐이요, 이내 그만두고 다른 데 가서 논다. 큰아이는 혼자서 씩씩하게 그릇을 채운다. 큰아이는 까마중을 훑으며 입에 집어넣지 않는다. 곰곰이 돌아보면, 큰아이는 여섯 살로 접어들고부터 들딸기 먹을 적에 저 혼자 입에 넣지 않았다. 먼저 그릇에 소복소복 담고 나서 한 줌 그득 잡아서 먹었다. 이렇게 야무지고 멋진 아이가 우리하고 함께 살아가는구나 하고 날마다 새롭게 깨닫는다. “자, 밥 다 되었으니 들어와서 먹어라.”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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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1-02 00:54   좋아요 0 | URL
어릴적 과수원 근처에 저렇게 까만 열매를 따 먹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까마중 열매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먹어보면 그때 그맛이 생각날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파란놀 2014-01-02 01:30   좋아요 0 | URL
낯선 어른이나 아이는 처음 까마중 먹으면서 이맛살 찡그리더라구요 ^^;;
그래도 먹다 보면 달달하니 재미있고 맛있어요~
 

꽃아이 26. 2013.12.31.

 


  한 해가 저무는 12월 31일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까마중을 훑는다. 두고두고 먹으려는 마음으로 까맣게 익은 열매를 다 훑지 않고 찬찬히 먹었는데, 찬바람과 찬비와 찬눈을 맞은 까마중풀이 시들고부터 까마중알이 흐물흐물하다. 이제는 참말 마지막 까마중 되겠다고 느낀다. 아침밥상에 올리려고 까마중을 훑으니, 마당에서 놀던 두 아이가 달라붙으면서 저희도 함께 따겠다고 한다. 그래, 그러면 너희가 거들어 주렴. 아버지는 부엌으로 가서 밥이랑 국을 마저 살피고 밥상을 차릴게. 두 손에 까마중물 검붉게 들여 보아라.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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