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달팽이는 작은 당근 한 뿌리이면 넉넉하다. 조그마한 달팽이가 새끼를 낳아도 작은 당근 한 뿌리이면 모두 맛나게 먹는다. 그리고, 작은 달팽이와 당근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야기 하나를 지어 그림책으로 빚는다. 달팽이도 귀엽고 당근도 사랑스럽다. 달팽이가 당근을 먹으며 똥을 누는 한삶을 지켜보며 빙그레 웃는 오늘 하루도 즐겁다. 그러니, 날마다 ‘좋아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웃음씨앗을 흩뿌린다. 4347.1.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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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토 요코 지음, 변은숙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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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옥 님 만화책 (도서관일기 2014.1.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우리 도서관으로 마실을 오는 분들은 으레 ‘아직까지 간판조차 안 붙인 낡은 폐교 건물’에 먼저 놀라고, ‘폐교 건물을 그득 채운 책’에 다시 놀라며, ‘사진책도서관이라 하면서 만화책이 무척 많다’며 새삼스레 놀란다.


  그런데, 그림책이나 국어사전 또한 엄청나게 많은 모습에는 그리 안 놀란다. 수백 가지 국어사전을 갖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을 텐데, 이런 모습에는 왜 안 놀랄까. 아무래도 국어사전을 여느 때에 들여다볼 일이 없어, 저 책들이 국어사전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기 때문일까. 여느 때에 그림책을 ‘책으로 여긴’ 적이 없어,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이 퍽 많은 모습에도 그리 놀랄 일이 없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다.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들치고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 ‘두툼한 인문책 읽기’만 생각하지, ‘그림책 읽기’를 생각하지 않는다. ‘만화책 읽기’롤 ‘책읽기’로 여기는 평론가나 지식인이나 기자 같은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책을 읽는다’는 틀에 넣지 않으니, 그림책이나 만화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그림책 작가와 만화책 작가가 얼마나 땀을 쏟고 힘을 들이는지를 하나도 모른다. 그림책 작가가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려 어린이부터 할매 할배까지 두루 즐길 만한 책 하나 내놓기까지 흘리는 땀빛을 알아채는 어른이 꽤 적다. 만화책 작가가 조그마한 만화책 한 권에 그림으로 이야기를 알알이 엮으려고 얼마나 많은 책과 자료를 읽고 다리품을 팔며 손품을 들이는가를 알아보는 어른이 무척 적다.


  강경옥 님 만화책을 새삼스레 들여다본다. 요즈막에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를 표절하여 ‘재미난 소재’를 가로챈 연속극이 널리 눈길을 끈다. 그 연속극을 보는 이들은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를 읽지 않았으리라. 이 만화책이 1만 권 넘게 팔렸는지 알 길도 없지만(얼마 안 팔린 듯하다. 며칠 앞서 새책으로 다시 장만하고 보니 간기에 고작 2쇄라 찍힐 뿐이니), 표절 말썽이 불거진대서 만화책을 씩씩하게 사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나저나, ‘사진책도서관’에 왜 만화책이 있을까? 사진책도서관에 왜 만화책을 둘까? 아주 마땅한 소리이지만, 만화책이 있어야 하니까 있고, 만화책을 둘 만하니까 둔다. 만화책 한 권을 엮는 작가들은 사진책도 인문책도 어린이책도 국어사전도 곁에 두면서 ‘책을 무척 많이 읽’는다. 사진책을 한 권 제대로 내놓으려고 하는 작가라면, 사진책뿐 아니라 다른 그림책과 만화책과 인문책과 어린이책을 두루 알뜰히 읽으면서 우리 삶과 사회와 이웃을 제대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사진책 읽기’를 즐겁게 하자면 ‘그림책 읽기’를 즐겁게 할 줄 아는 눈매가 있어야 한다. ‘사진책 읽기’를 사랑스레 하자면 ‘만화책 읽기’를 사랑스레 할 줄 아는 눈빛이 있어야 한다. 사진책만 들여다본대서 사진책을 잘 읽지 못한다. 사진기만 잘 다룬대서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돈만 많대서 기부나 이웃돕기를 잘 하지 못한다. 글만 잘 쓴대서 신문글을 잘 쓰거나 우리 이웃 이야기를 널리 알리지는 못한다.


  마음이 있어야 사진을 찍고 사진책을 읽는다. 마음이 있어야 아름다운 빛을 글로 담고 이웃들이 쓴 글을 읽을 수 있다.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소식지인 〈삶말〉 11호를 내놓았다. 도서관에 갖다 놓는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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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무나 쓰는가

 


  책은 아무나 쓴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가슴속에서 샘솟는다면, 책은 어느 누구라도 쓴다. 책은 아무나 못 쓴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가슴속에서 샘솟지 않으면, 아무리 이름난 글쟁이라 할지라도 책은 함부로 못 쓴다.


  책은 아무나 쓴다. 재벌 우두머리도 쓰고, 대통령도 쓰며, 시장이나 군수나 의사나 변호사도 쓴다. 시골 할매도 쓰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도 쓰며, 유치원 교사도 쓴다. 초등학교 어린이도 쓰고, 청소 일꾼도 쓰며,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일꾼도 쓴다. 꼭 작가나 시인이나 소설가나 교수나 학자만 책을 쓰란 법이 없다.


  책은 아무나 못 쓴다. 시인이기에 시집을 내야 하지 않는다. 사진가라서 사진책을 내야 하지 않는다. 학자라서 논문책이나 학술책을 내야 하지 않는다. 하고픈 말이 없이 실적쌓기를 할 생각으로 내는 책은 책이라 할 수 없다. 나누고 싶은 빛이 없이 이름쌓기를 할 뜻으로 내는 책은 책이 되지 않는다. 지구별을 사랑하는 넋이 없이 돈쌓기를 할 마음으로 내는 책은 책꼴은 갖추되 책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다.


  책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삶이 있어야지. 책에 담을 이야기를 온몸으로 부대낀 삶이 있어야지.


  요즈음은 ‘책을 말하는 책’이 곧잘 나온다. 스스로 다리품을 팔지 않고도 ‘책 몇 권 뒤적이거나 읽은 다음’ 이럭저럭 자료와 정보를 추슬러서 내는 ‘책을 말하는 책’이 더러 나온다.


  책을 내겠다고 하는 사람을 말릴 수 없고, 말릴 까닭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하다. 죽어서 이 땅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쓴다면, 책이나 신문 같은 자료만 남았을 테니, 죽은 사람 이야기는 책을 뒤져서 쓸밖에 없다고 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안 죽고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 이야기를 쓸 때에는? 이때에도 책만 뒤져서 어느 한 사람 이야기를 쓸 만할까? 멀쩡히 살아서 날마다 새로운 빛을 일구는 사람 이야기를, 이녁을 안 만난 채 써도 될 만할까?


  쉽게 쓰는 책을 쉽게 읽으리라 본다. 쉽게 써서 쉽게 읽히는 책은 쉽게 잊히거나 사라지리라 본다. ‘알아듣기 쉽게 쓰는 글’과 ‘깊이 생각을 가다듬지 않은 채 쉽게 쓰는 글’은 사뭇 다르다. 죽어서 이 땅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쓰더라도, 죽은 그이가 살아서 움직이던 곳을 찾아가서 가만히 돌아보고 난 뒤에 쓰는 글이랑, 죽은 그이가 남긴 글조각만 붙잡으면서 쓰는 글은 매우 다르다. 오늘날은 인터넷 시대라 할 테니, 인터넷만 뒤져도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 그때그때 쓴 글’을 손쉽게 뒤져서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어쩌면 ‘굳이 안 만나고도 인터넷 살피기’만으로도 ‘마치 만난 듯이’ 글을 쓸 만하기도 하다.


  참말, 책을 아무나 쓰는 때가 되었구나 싶다. 책을 아무나 쓰면서 아무나 책을 읽는 때가 되었구나 싶다. 곰곰이 헤아려 본다. ‘아무나 책을 쓰는’ 우리 모습은 어쩐지 슬프거나 안쓰럽지 않은가? ‘아무나’나 아니라 ‘누구나’로 거듭나고, ‘누구나’에서 ‘모두’로 다시 태어날 적에 즐거우면서 아름답지 않을까? ‘누구나 책을 쓰’고 ‘누구나 책을 읽’으면서, ‘모두 책을 쓸 수 있’고 ‘모두 책을 즐길 수 있’는 삶을 맞이할 때에, 비로소 이 땅에 즐거운 웃음과 아름다운 사랑이 꽃피우지 않으려나?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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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11 12:41   좋아요 0 | URL
요즘은 정말 '책을 만드는 일'을 무슨 상품 만들 듯이 만들고 그것도 어떨 땐 불량품들 만들기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갈수록 진짜 작가도 드물어져 몽테뉴의 말대로 "우리는 사물을 해석하기보다도 해석을 해석하는 데 더 일이 많으며, 책을 놓고 쓴 책이 다른 제목을 두고 쓴 것보다 더 많다.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 주석하는 짓밖에는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너무 자주 갖게 됩니다. 이미 몽테뉴가 살던 때부터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널리 퍼져있었던 듯하니 세월을 탓할 수도 없겠다 싶기는 합니다.

* * *

책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연구의 노력을 아껴 두고 상투어로 잡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진부한 소재 외에는 소용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지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소크라테스가 아주 재미나게 에우티데모스를 질책하던 식으로, 학문의 우스운 성과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데 소용된다. 나는 작가가 여러 박학한 친구들에게 이것을 조사해 달라고 하고, 이 다른 재료로 저것을 꾸며 달라고 당부하며, 자기로서는 연구하지도 않고 들어 본 일도 없는 것을 가지고 일을 계획하고, 이 알지 못하는 재료의 묶음을 기교있게 엮어 놓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책을 꾸며 놓는 것을 보았다. 잉크와 종이만이 자기 것일 뿐이다. 그것은 솔직히 말한다면 어떤 책을 사거나 빌려 오는 일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책을 만들 줄 안다는 것을 알림이 아니고, 사람들이 의심할 수 있는 바, 그가 책을 만들 줄 모른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다.

나는 그 많은 빌려 온 것으로부터 어떤 것은 태평하게 표절하며, 그것을 가장하고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 새로운 용도에 사용한다. 그 글의 본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사람들이 말할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거기에 내 손으로 다른 특수한 의미를 주어 가며, 그것을 그만큼 아주 순수하게 남에게서 따온 것이 아니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도둑질한 것을 드러내 보이며 이야기한다. 그러니 그들은 법 앞에서는 나보다 신용이 있다. 우리 따위의 본성론자(本性論者)들은 인용하는 명예보다도 창작의 명예를 비교할 수 없이 더 크게 평가한다. (몽테뉴)

파란놀 2014-01-11 18:00   좋아요 0 | URL
몽테뉴 님이 밝힌 좋은 글월 잘 읽었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잉크와 종이'조차
그들 것이 아니라고 느껴요.
그들은 잉크와 종이조차
스스로 만들지 않으니까요......
 

산국 책읽기

 


  적잖은 지자체에서 가을이면 국화잔치를 연다. 시골사람더러 놀러오라는 꽃잔치는 아니고, 도시사람더러 찾아오라는 꽃잔치이다. 도시로 모두 떠나고 텅 비다시피 하는 시골에서 기차역 둘레를 온통 코스모스밭으로 꾸미기도 한다. 사람들이 다시 시골로 찾아오기를 바라며 벌이는 꽃놀이라 할 텐데, 놀러오는 사람은 부쩍 는다 하지만, 이런 시골로 돌아와서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도시로 나간 사람이 시골로 돌아온다고 할 적에,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굳이 시골로 가서 살겠다고 할 적에, 이런저런 꽃잔치나 꽃놀이가 있기에 가지는 않으리라 느낀다. 어쩌면, 꽃잔치나 꽃놀이 때문에 시골로 가서 살겠노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시골에서 살려는 사람은 흙을 아끼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살려는 사람은 흙을 만지고 싶기 때문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에 길든 흙이 아니라, 구수하고 포근한 흙을 보듬고 싶어 시골로 간다. 그러니, 도시사람이 시골에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지자체 행정이라면, 시골에서 살며 흙을 일구는 할매와 할배부터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이도록 이끌어야 올바르다. 아름다운 시골과 사랑스러운 숲이 되도록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시골 군청에서 따로 꽃잔치나 꽃놀이에 돈을 퍼붓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시골 들과 숲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또 겨울에는 겨울대로 온갖 들꽃이 곱게 피고 지기 때문이다. 들꽃을 들꽃대로 아끼고, 숲꽃을 숲꽃대로 바라볼 줄 안다면, 시골은 한 해 내내 들꽃잔치 벌어지는 줄 깨달으리라. 십일월로 접어들며 물결치는 논둑 산국잔치도 곱고, 산국잔치 곁에서 일렁이는 억새잔치도 참으로 곱다. 어느 누구도 심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돈을 들이지 않는다면, 들과 숲은 우리한테 어여쁜 빛을 나누어 준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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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오감도 -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바람에 실린 간이역 테마 여행
신명식 지음 / 이지북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55

 


이웃과 함께 즐기는 사진
― 간이역 오감도
 신명식 글·사진
 이지북 펴냄, 2010.4.8.

 


  모든 사진은 이웃과 함께 즐기고 싶어서 찍습니다. 혼자 찍어서 혼자 즐기는 사진도 틀림없이 있으나, 사진을 찍을 적에는 잘 찍었건 못 찍었건 이웃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납니다. 내가 누린 곳에서 담은 아름다운 빛을 이웃한테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철도와 철도역을 사진으로 담는 신명식 님이 빚은 사진책 《간이역 오감도》(이지북,2010)는 신명식 님이 그동안 찍은 사진 가운데 ‘간이역’ 한 가지만 보여줍니다. 철도를 즐기고, 철도역을 다니면서 늘 사진과 함께 지냈다고 해요. 철도를 타는 기쁨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철도역을 오가면서 누린 웃음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이러면서, 수많은 철도역 가운데 ‘간이역’을 도드라지게 헤아려 봅니다.


  “기차역에 내리는 것만으로 온전한 여행이 될 수는 없을까(17쪽)?” 하는 마음에서 조그마한 사진책 하나 태어납니다. 다만, 이 조그마한 사진책에서 이 나라 모든 간이역을 보여주지는 못해요. 이 작은 사진책을 바탕으로 앞으로 ‘모든 간이역 삶자락’을 담은 두툼하면서 알찬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겠지요.


  간이역으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기도 하지만,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 훨씬 더 많아, 버스나 자가용을 타야 비로소 찾아갈 수 있다고 해요. 신명식 님한테 말미와 기운이 더 있다면, 버스나 자가용 아닌 자전거를 타고 간이역을 다닐 수도 있어요. 천천히 걸어서 다닐 수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누비다 보면, 으레 기차역 옆을 지나가곤 해요. 따로 기차역을 생각하며 지나가지 않지만, 자전거는 고속도로나 고속화국도로 다니기 힘들어요. 자전거는 으레 지방국도로 달립니다. 두 다리로 걸을 적에도 지방국도를 걷기 마련이요, 지방국도조차 아닌 시골길을 걷기도 해요. 길이 없는 멧자락을 넘을 수 있습니다.

 

 

  이제 기차가 서지 않는다는 간이역을 보면, 하나같이 시골에 있습니다. 하나같이 시골에 있으면서, 조그마한 면소재지나 읍내 한켠에 있어요. 그러니 이런 간이역은 지방도로나 시골길하고 잘 어울려요. 천천히 다가서는 간이역이요, 천천히 머무는 간이역이며, 천천히 헤어지는 간이역입니다.


  “남해고속도로를 비롯해 2번 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었고, 대전-통영 고속도로까지 개통되어 사람들은 거의 철도를 찾지 않게 되었다. 그 때문에 경전선에는 옛 풍경을 간직한 시골 마을, 때 묻지 않은 자연 풍광을 간직한 간이역이 많이 남아 있다(35쪽).”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간이역을 찾아 자전거마실이나 걷기마실을 한다면, 간이역을 둘러싼 시골과 마을과 숲과 들과 멧골과 냇물을 모두 누릴 수 있어요. 간이역 하나 서기까지 이 둘레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삶을 일구면서 어떤 사랑을 꽃피웠는가 하는 대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무엇을 찍을까요? 멋진 모습을 찍는가요? 사진으로 찍어서 무엇을 하나요? 예술품이나 창작품이라고 내걸면서 비싸게 팔아야 하는가요?

 


  사진을 찍는 까닭은 내가 찍는 사진 하나에 내 삶과 이야기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주한 이웃들 삶과 이야기가 감돌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부터 철길과 함께해 온 간이역의 세월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오랫동안 마을과 자연과 기찻길이 함께 어우러져 숙성되었으니 어디 하나 소홀히 버릴 것이 없다(83쪽).” 하는 말처럼, 간이역을 ‘재개발 건축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낡은 건물을 하루아침에 허물고는 새 건물로 번듯하게 올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과 삶과 이야기가 없다면, 오래된 건물이건 새 건물이건 우리한테 아무 뜻이 없어요.


  그러니까, “평은역은 최후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다름아닌 4대강사업 때문이다. 바로 옆을 흐르는 내성천 하류 쪽에 영주댐이 생기면서 역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수몰될 예정이다(109쪽).”와 같은 말처럼, 중앙정부나 지역정부가 함부로 밀어붙이는 토목개발은 참다운 ‘개발’이 못 됩니다. 오직 돈을 앞세워 마을을 없애고 숲을 없애며 간이역을 없애는 일은 개발이 아니고, 문명이나 문화도 아니며, 경제나 발전도 아닙니다. 그저 막공사일 뿐입니다.


  이야기는 돈으로 사고팔지 못해요.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사랑한 삶은 돈으로 사고팔지 못해요. 서로 아끼고 어깨동무하면서 살아온 오랜 이야기 서린 마을살이는 돈으로 사고팔지 못해요.


  값나가는 사진장비를 써야 간이역을 잘 찍지 않습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1회용사진기를 쓰기에 간이역을 못 찍지 않습니다.

 

 

 


  간이역이 선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과 살아갈 사람들 눈빛과 마음빛과 삶빛과 사랑빛을 고루 헤아리면서 보듬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간이역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간이역이 서며 오늘까지 흘러온 발자국과 나날을 고이 돌아볼 수 있을 적에 바야흐로 간이역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현실주의자들의 말처럼 여유와 낭만이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경춘선이 여유와 낭만을 포기한다면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137쪽).” 하는 말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타는 기차가 아니라면, 기차란 무엇일까요. 그저 빨리만 달려야 하는 고속철도라면 고속철도란 무엇일까요. 그저 빨리만 달려야 하는 자가용이라면, 이런 자가용에 아이들을 태우고 어디를 돌아다닐 만한가요.


  아이들하고 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곁님이나 짝꿍하고 만나서 어디론가 나들이를 다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값진 밥을 차린 레스토랑에서 후다닥 배를 채우고는 비싼값을 치르는 호텔에서 후다닥 잠을 자야 만남이나 연애나 사랑이 될까요?


  몇몇 대학교 졸업장이 젊음을 말할 만할까요? 대입시험 점수가 푸른 나날을 말할 만할까요? 은행계좌가 온삶 바친 정년퇴직자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대학교는 왜 가야 하고, 회사는 왜 다녀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학교에 보내야 하고, 아이들한테 입시공부를 시키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여덟 살 아이는 여덟 살 나이를 어떻게 누릴 때에 즐거울까요. 열여덟 살 푸름이는 열여덟 살 나이에 무엇을 할 적에 아름다울까요. 서른여덟 살 아저씨나 아줌마는 이때에 무엇을 해야 사랑스러울까요.


  《간이역 오감도》 끝자락에 “오래된 역은 사람의 흔적을 담아내는데, 지나친 보수 작업으로 인해 세월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말쑥한 역사는 주위와 어울리지 못하지만, 주변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277쪽).”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라지고 만 간이역을 애틋하게 여깁니다. 옛 간이역 건물이 사라졌어도 간이역이 선 마을 둘레 모습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간이역이 사라졌어도 간이역이 선 마을에서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는 오늘도 아름답습니다. 할매와 할배가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시골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시골마을에 늙은 어르신 모두 흙으로 돌아가서 빈집만 휑뎅그렁하다 하더라도, 들과 숲은 아름답습니다. 꽃과 풀과 나무는 아름답습니다. 풀벌레와 멧새와 나비와 잠자리와 개구리는 모두 아름답습니다. 일구는 사람 없어 텅 빈 논밭이 되어도, 이 논밭에는 바람 따라 흩날리는 풀씨와 나무씨와 꽃씨가 내려앉아 새로운 숲으로 거듭납니다.


  오가는 사람이나 찾는 사람 없는 조용한 간이역이라 하지만, 풀씨가 산들산들 바람을 타고 내려앉습니다. 꽃씨도 하늘하늘 눈송이처럼 드리웁니다. 사람 발길은 없으나 푸른 꽃내음이 흐릅니다. 사람 소리는 없으나 멧새와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사진기를 쥔 누군가 간이역으로 찾아와 고즈넉한 빛을 담습니다. 사진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누군가 간이역을 흘낏 스치듯 지나갑니다. 누군가 간이역을 사진으로 찍어 주어, 이곳을 잊거나 잃은 사람들이 따순 마음 되어 웃습니다. 누군가 간이역을 사진으로 찍지 않더라도, 이곳을 오래오래 한결같이 가슴으로 품은 사람들이 고운 마음 되어 이야기씨앗 심습니다. 사진 하나는 어여쁜 이야기씨앗 되어 이 땅에 뿌리를 내립니다. 4347.1.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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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11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이역을 담은 사진과 글들을 보니 절로 따뜻한 가슴이 열리는 듯합니다.

중앙선 평은역은 제가 아주 어릴 때 처음으로 '안동역'까지 나와서 문수역 근처 마을에 사는 '작은 할배네 집'으로 놀러 갈 때 지나쳤던 역이에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하면서 '중앙선'을 자주 탔는데, 가끔씩 기차삯을 아끼느라 완행열차를 탈 때면 '평은역'에서도 기차가 섰다가 지나가곤 했었지요.

지금도 가끔씩 서울에서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봉화의 춘양역을 비롯해서 그 인근의 이름모를 간이역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지나치는데, 언젠가는 한번 카메라를 둘러메고 '기차와 도보로' 꼭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그때마다 새록새록 돋아난답니다.

파란놀 2014-01-11 02:24   좋아요 0 | URL
oren 님이 작은 역들을 찬찬히 거닐며 사진으로 담으면
아주 새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빛이
새록새록 스미겠어요.

철마다 다 다른 빛을 누리면서
즐겁게 마실하실 수 있기를 빌어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한 올 두 올
사진으로 곱게 풀어내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