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고 빨래하는 겨울

 


  겨울에는 아침에 밥을 할 적에 춥다. 겨울에는 저녁에 밥을 차릴 적에도 춥다. 가스불을 켜니 가스 냄새가 밖으로 나가도록 문을 열어 밥을 지으니 추울밖에 없다. 여름에는 늘 문을 활짝 열어 놓으니 밥을 차리면서 덥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여름에는 불가에서 일해야 하니, 밥을 차리면서 땀이 흐른다.


  겨울에 아침을 차리면, 다 차리기까지 춥지만, 따순 밥과 국을 밥상에 올리고 아이들을 부를 무렵 해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때라 차츰 포근한 기운 감돈다. 놀면서 먹는 아이들 입에 이것저것 떠먹여 주다가 바야흐로 다 먹였구나 싶으면 기지개를 켠다. 등허리를 편다. 오늘은 제법 썰렁한 날이기는 하지만 햇볕이 좋으니, 설거지를 마치고서 바로 빨래를 한다. 이불을 널어 볕바라기 시키려 했지만 바람이 제법 불어 이불을 널지는 않는다. 모레쯤이면 한결 따스할 테니 모레에 이불을 말리자고 생각한다.


  담가 놓은 빨랫감이 몹시 시리다. 따순 물을 튼다. 따순 물로 빨랫감과 손을 녹이면서 비누를 묻힌다. 비빔질을 할 적에도 손이 시려 따순 물로 손과 빨랫감에 조금씩 붓는다. 문득 며칠 앞서 혼자 본 영화 〈오싱〉이 떠오른다. 아이들하고 함께 볼 만한지 살피려고 먼저 혼자 보았는데, 영화에 나오는 어린 가시내는 ‘영화라고는 하지만’ 흰눈 수북하게 덮은 멧골짝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긷는다. 눈보라 몰아치는 숲속을 맨손과 홑옷차림으로 걷는다.


  얼마나 시릴까. 얼마나 추울까. 옛날 사람은 고무장갑 따위 없이 맨손으로 한겨울 기저귀 빨래를 해야 했으니, 손이 빨갛게 꽁꽁 얼다가 허옇게 되어도 꾹 참거나 견디었을까. 언손 녹일 겨를이 없이 불을 때고 절구질을 하여 겨를 벗기고는 쌀을 안쳐 밥을 지으면서, 또 반찬을 차리면서, 겨우내 어떤 모습으로 살림을 꾸렸을까.


  예전 사람들은 늦가을부터 새봄까지 한 벌 옷을 갈아입지 않고 씻지도 못했다고 하나, 아기한테까지 이렇게 지내지는 않았으리라 느낀다. 아기들 누는 똥기저귀와 오줌기저귀를 그대로 둘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아기가 이불에 쉬를 하거나 똥이라도 누었으면 이불도 빨아야 한다. 한겨울 눈밭에서도 기저귀 빨래뿐 아니라 이불 빨래까지 해야 한다. 양반집에서 일하는 머슴이라면 한겨울에도 양반네 옷가지를 빨아야 한다.


  이 나라에서 나오는 역사 영화나 역사 연속극에서는 ‘빨래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한겨울에 밥하거나 빨래하는 사람 모습은 이 나라 영화나 연속극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영화나 연속극에만 없을 뿐, 모두들 그렇게 겨우내 언손 비비고 녹이면서 햇살 한 조각 고마이 여기고, 새로 찾아올 봄을 애타게 기다렸겠지.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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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2014-01-13 13:44   좋아요 0 | URL
빨래 널고 걷는 것도 일이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할머니께서 '이 것(정도)도 안하냐'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세탁기가 다 빨아주는데 기껏 빨래줄에 널고 걷는 것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이셨죠.
냇가에서 얼음 깨서 언 손 불어가며 비누도 없이 빨래하던 것을 생각하면 손주며느리 배 부른 소리를 그냥 들어 넘기기 힘드셨을 거에요.
함께살기님 글을 읽으니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파란놀 2014-01-13 18:13   좋아요 0 | URL
아, 할머님이 들려준 말씀이 오래도록 가상 님 마음에 남았군요.
요새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할머님은
몇 분쯤 남았을까요.

길쌈도 절구질도 방아질도 베틀밟기도 안 하는 오늘날이니
'일'은 참 수월하다 할 만하지요. 하모 그렇지요.
 
소녀소년학급단 2
후지무라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04

 


하고 싶은 대로
― 소년소녀학급단 2
 후지무라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0.25.

 


  비파나무를 아는 이는 비파나무 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한겨울에도 푸른 잎 쪼글쪼글 매단 비파나무 옆을 지나가다고 우뚝 멈춥니다. 찬바람을 씩씩하게 맞이하는 비파잎을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비자나무를 아는 이는 비자나무 숲에서 기지개를 켭니다. 숲내음을 듬뿍 들이켜고, 푸른빛을 그득 마십니다. 아름드리나무를 가만히 껴안습니다. 열매가 툭툭 떨어져 천천히 뿌리를 내린 어린나무를 밟지 않으려고 발걸음 가볍습니다.


- 별 거 아닌 일도 금세 소문이 퍼지는 연애초보자 아이들. (11쪽)
- “난 중학교 졸업하면 일할 거거든. 우리 집은 형제가 많아서 그럴 여유가 없어.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동안 공부도, 야구도 열심히 하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 보려고.” (14쪽)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선보이는 나무는 겨울 추위가 제법 드센 날에는 잎사귀를 돌돌 맙니다. 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 천천히 동이 트면서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면, 돌돌 말던 잎을 살며시 풀어 햇볕을 즐겁게 먹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아침볕이 마루로 스미면 빙그레 웃으면서 깔깔 노래합니다.


  달빛이 환한 밤에 포근히 잠듭니다. 햇빛이 환한 낮에 콩콩 뛰면서 일하고 놉니다. 별빛이 드리운 밤에 조용조용 쉽니다. 하늘이 파랗고 멧새가 지저귀는 낮에 머리카락 휘날리면서 일하고 놉니다.


  어느 나무라도 좋으니, 나무 곁에 서서 겨울맞이를 해 보셔요.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군 벌거숭이이지 않습니다. 가지마다 새눈이 촘촘히 돋습니다. 나뭇가지를 잘 살피면, 나무와 함께 겨울을 나는 작은 벌레들 겨울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를 보면, 잎사귀 갉아먹힌 자국을 겨울에도 봅니다. 이 겨울에 어떤 녀석이 후박잎을 갉아먹나 하고 찬찬히 살피니, 범나비 애벌레가 실컷 잎을 갉아먹은 뒤 고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집 처마 밑 빈 제비집에 딱새 두 마리 깃들며 아침저녁으로 후박나무 가지에 앉아서 놀던데, 넌 용케 딱새한테 안 잡히고 살아남아 고치까지 틀었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자마자 날개를 펼치려고 이렇게 고치를 틀었니.

 


- “그건 말이지, 정말, 정말, 저엉말, 정말 정말 좋아하니까 하는 거야.” (24∼25쪽)
- ‘켄 오빠는 어떨까. 오빠한테는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29쪽)


  겨울 들판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과 함께 들길을 지나갑니다. 나락을 벤 빈 들판인 곳이 있습니다. 나락을 베고 나서 바로 마늘을 심은 곳이 있습니다. 나락을 벤 빈 들에 유채씨를 뿌린 곳이 있습니다.


  마늘싹은 십이월부터 나왔고, 마늘잎은 퍽 자랐습니다. 유채씨를 잘 뿌리고 골을 잘 낸 들에는 유채잎이 푸릇푸릇 잘 돋았습니다. 유채씨를 엉성하게 뿌리고 골을 제대로 안 낸 들은 찬바람 몰아칠 적마다 물이 얼어붙습니다. 씨앗도 몽땅 얼어죽게 생겼습니다. 우리 마을은 올해에도 ‘경관사업’을 한다는데, 이래서야 새봄에 노란물결 일렁이기는 힘들겠다 싶습니다.


  곧 봄이 오면, 유채꽃 노랗게 피는 논이 있을 테고, 유채꽃이 못 피는 논에서는 다른 풀꽃이 피겠지요. 유채씨가 이 겨울에 얼어죽는다 하더라도, 별꽃나물이나 냉이나 씀바귀나 고들빼기나 민들레나 질경이 씨앗은 얼어죽지 않아요. 갓씨도 모시씨도 얼어죽지 않습니다. 온갖 풀이 논마다 논둑마다 골고루 돋아요.

 


- “설마, 너, 일부러.” “하루카를 상처 입히는 녀석은 내가 가만 안 둬.” (119쪽)
- 너무 어려서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두 사람이었습니다. (139쪽)
- “오빠, 나 빨리 어른 될게.” “안 돼. 서두를 필요 없어.” (177쪽)


  관청에서는 오직 유채 한 가지만 놓고 경관사업을 합니다. 참 재미없습니다. 자운영으로도 경관사업을 하면 재미있을 텐데요. 현호색으로도 경관사업을 하면 멋있을 텐데요. 노랗고 빨갛고 파란 들을 선보일 수 있어요. 자주코딱지나물 씨앗을 뿌려 자주빛 흐드러지게 할 수 있어요. 돌나물 씨앗 깃들게 해서 돌나물꽃 새삼스레 노란물결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굳이 경관사업이라 하지 않아도, 빈들에서 자라는 온갖 들꽃이 아름답습니다. 경관사업을 따로 한다며 돈을 쓰는 까닭은, 들꽃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들꽃을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냉이꽃잔치 벌어지는 빈들도 예뻐요. 부들꽃이 피는 들이나 늪도 예뻐요. 억새밭은 얼마나 예쁜가요. 따로 씨앗을 돈을 들여 사들인 뒤 잔뜩 뿌려야 예쁘지 않습니다. 풀씨가 스스로 날리고 뿌리내리면서 이루는 들과 숲은 모두 예쁩니다. 햇볕과 빗물과 바람을 머금으며 자라는 모든 풀은 저마다 예뻐요.

 


- “홧김에 한 말이지. 와타루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 네가 있기 때문이잖아. 네가 나가면 무슨 의미야.” “넌 같은 팀 멤버한네서 나가란 말 들어 본 적 있어?” “없긴, 한데.” (147쪽)
- “하루카, 같이 리틀에서 야구하자!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로 가고! 그래서 같이 야구부 들어가서 코시엔에 가자! 여자는 안 된다는 말, 절대 안 나오게 할 거야.” (154쪽)


  후지무라 마리 님 만화책 《소년소녀학급단》(학산문화사,2010)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서로 다투고 아끼고 어울리고 복닥이는 삶을 보여주는 이 조그마한 만화책에 나오는 조그마한 아이들은 저마다 예쁩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들꽃처럼 푸르고 맑으며 사랑스럽습니다.


  들꽃은 스스로 피어나고 싶은 곳까지 씨앗을 날려 자랍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놀이와 일을 하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싶을 수 있고, 야구를 하고 싶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책을 읽고 싶을 수 있고, 마냥 뛰놀고 싶을 수 있어요.


  아이들한테 틀을 지우지 말아요. 아이들한테 껍데기를 씌우지 말아요. 아이들을 이리 내몰거나 저리 몰아세우지 말아요. 신나게 땀흘리고 뛰놀며 자라다가 스스로 삶빛을 깨우쳐 즐겁게 나아갈 길을 찾도록 도와요. 그러면 돼요. 꽃은 사람이 심어야 꽃이 되지 않습니다.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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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뜰에는 무엇이 살까? - 학교에 살고 있는 풀.꽃.나무 이야기 쪽빛문고 15
손옥희.최향숙.이숙연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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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7

 


학교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 우리 학교 뜰에는 무엇이 살까
 손옥희·최향숙 글
 이숙연 그림
 청어람미디어 펴냄, 2012.4.5.

 


  나무 한 그루 안 심은 학교가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학교에는 나무가 없습니다. 작은 방이나 건물만 빌려서 쓰는 야학도 나무를 심을 자리가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학교를 세운다 할 적에, 학교를 숲과 같이 되도록 가꾸는 곳이 아주 드뭅니다. 초등학교도 대학교도 똑같습니다. 새롭게 건물을 더 올리거나 높이려 할 뿐, 건물 둘레에 나무를 알뜰히 심어 가꾸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봄에는 노란 울타리였다가 차츰 초록 울타리였다가, 가을에 물들고 겨울에 잎을 떨어뜨리는 변화무쌍한 개나리 울타리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우리의 학교를 지켜 주는 고마운 지킴이란다 … 너희는 토끼풀 들판을 본 적이 있니? 토끼풀은 줄기가 땅을 기며 군데군데 뿌리를 내리면서 점점 퍼지며 자라는 식물이란다. 그렇게 퍼져 나간 토끼풀은 금방 들판을 뒤덮지. 잔디를 심고 잘 가꾸어 놓은 곳에도 토끼풀이 퍼져 나가 잔디를 키우는 사람들은 토끼풀을 싫어하기도 해 … 양버즘나무의 큰 이파리에 물이 고이면 새들은 이 나무 밑에 와서 물을 마신단다 ..  (13, 19, 33쪽)


  우리 집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습니다. 굳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낼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한국에도 ‘숲 유치원’이 생기기는 하지만, 시골에 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라 해서 숲이나 들이나 바다로 날마다 마실을 가지 않아요. 교실에서만 무언가 ‘교육을 시킵’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바람이 불건, 아이들은 바깥에서 뛰놀며 숨을 쉴 수 있어야 해요. 덥건 춥건, 아이들은 마당이나 운동장에서 뛰놀며 바람을 쐴 수 있어야 해요.


  비가 온대서 들일을 안 하지 않습니다. 덥거나 춥대서 바깥일을 안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건물 안쪽에서 비디오만 보거나 그림책만 읽거나 이런저런 체험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흙을 만지고 흙을 밟아야지요. 풀을 만지고 풀을 밟아야지요. 나무를 만지고 나무를 타야지요.


  아이들한테는 따로 이것저것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배울 때가 되면 다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저희가 먹고 입고 자고 누리는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하나하나 느끼고 보아야 합니다. 밥이 이루어지는 흐름을 알고, 옷과 집을 이루는 얼거리를 알아야지요.


  교육은 힘이라고 합니다만, 다른 문명사회 지식과 제도를 안대서 힘이 되지 않습니다. 문명사회 지식과 제도를 모르더라도, 스스로 삶을 짓고 일굴 수 있으면 힘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못 짓고 못 일굴 때에는 힘이 없습니다. 비싼 소작료를 물면서 허덕여야 하는 살림이라면 힘이 없어요. 조그마한 땅뙈기라도 손수 가꾸고 일구면서 보듬을 수 있을 때에 힘이 있어요.


  대학교까지 다녀서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야 마을과 사회와 나라를 잘 가꿀까요?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 정책을 잘 세워야 마을과 사회와 나라를 잘 가꿀까요? 공무원은 어떤 돈으로 정책을 세우나요? 회사원은 어떤 돈으로 회사를 꾸리나요? 예부터 중앙권력이 시골사람 품과 땀을 그러모아서 정책을 펼치고 행정을 했다지만, 여느 시골사람 살림살이가 넉넉하거나 푸진 적은 없었다고 느낍니다. 중앙권력은 예부터 당파싸움을 비롯해 전쟁놀이를 할 뿐이었어요. 교육을 받거나 정책을 펼친대서 이 나라와 사회와 마을이 아름답도록 이끌지 않았어요.

 


.. 잔디는 겨울에는 누렇게 색깔이 변해. 하지만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상태로 겨울을 보내는 것이란다. 겉모습은 누렇지만 그 뿌리는 땅속 깊이 내려 추운 겨울을 잘 버티지 … 은행나무에도 작고 예쁜 꽃이 핀단다. 은행나무 꽃을 찾아 잘 살펴보면, 나무마다 꽃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 ..  (24, 41쪽)


  학교 둘레에 나무를 심으면서, 나무를 나무 그대로 가꾸는 곳이 드뭅니다. 모두들 가지치기를 할 뿐 아니라 줄기를 뎅겅 자르기까지 합니다. 조경이니 정원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며 나무를 괴롭힙니다.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만 내걸 뿐, 막상 하는 일이라고는 입시지옥으로 아이들 내몰며 괴롭히는 짓이듯, 학교에서 나무를 보살피거나 돌보는 일이 없어요. 애써 나무를 잘 가꾼 사람이 있어도, 이이가 학교를 떠나면 나무는 다시 괴롭습니다. 교사와 학생 몇몇이 나무를 알뜰히 아껴도 교육정책과 교육제도는 교사와 학생을 모두 들볶습니다.


  학교 둘레에 살구나무나 복숭아나무 심는 일이 없어요. 학교 둘레에 포도나무나 능금나무가 자라지 않아요. 학교 둘레에 미루나무나 버드나무가 있을까요. 학교 둘레에 감나무나 잣나무나 물푸레나무가 있는가요.


  대나무가 자라는 학교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소나무를 심었어도 소나무 가지를 함부로 안 잘라 줄기가 곧게 오르도록 보살피는 학교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수수꽃다리 어여쁜 학교라든지, 탱자나무 울타리나 찔레나무 울타리가 곱게 어우러지는 학교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우리네 학교에서는 어떤 나무를 심어 어떤 나무내음을 맡으려 하나요. 우리네 학교에서 교사들은 어떤 나무를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어떤 숲노래 듣도록 이끄는가요.

 


.. 남방부전나비는 괭이밥에 알을 낳는데,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괭이밥의 이파리를 먹고 자라. 그런 다음 작은 돌 틈이나 낙엽 밑에 붙어 겨울잠을 자고 그 이듬해에 나비가 되어 날아간단다 … 우리가 키워서 먹는 식물의 경우 먹는 부분만 주로 보기 때문에 예쁜 꽃이 피는지 모를 때가 많아 ..  (133, 159쪽)


  손옥희·최향숙 님이 글을 쓰고 이숙연 님이 그림을 넣은 《우리 학교 뜰에는 무엇이 살까》(청어람미디어,201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학교 둘레에 있는 나무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이야기꽃 펼치는 책입니다. 예쁩니다. 이야기가 예쁘고, 나무를 바라보는 눈길이 예쁩니다. 나무를 아끼는 눈빛이 예쁘고, 나무를 사랑하려는 손길이 예쁩니다.


  웬만한 어느 학교를 보더라도 나무 몇 그루쯤 있지만, 교사도 학생도 나무이름 제대로 모릅니다. 나무이름도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나무 둘레에서 돋는 풀마다 어떤 이름인지 제대로 모릅니다. 운동장에 돋는 풀을 “잡초 뽑자!” 하고 말하며 아이들더러 뽑도록 시키기는 하지만, 운동장에 돋는 풀이 어떤 풀인지 제대로 살피거나 들여다보는 교사도 학생도 없습니다. 이제 흙운동장을 없애고 우레탄을 까는 학교까지 퍽 늘었어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부터 나무와 풀과 꽃을 모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 또한 나무와 풀과 꽃을 모릅니다. 교과서 지식은 머릿속에 잔뜩 넣겠지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을 만한 시험성적은 거두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바람을 마시도록 푸른 숨결 내뿜는 나무를 모른다면, 연필과 종이와 책이 되는 나무를 모른다면, 책걸상과 옷장과 책꽂이가 되는 나무를 모른다면, 기둥이 되고 땔감이 되는 나무를 모른다면, 교사와 학생은 무엇을 가르치거나 배운 셈일까요. 나무를 가까이하지 못한다면, 나무를 돌보지 못한다면, 나무와 어깨동무하지 못한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메마르거나 쓸쓸할까요.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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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따뜻한 기운이 몸으로 들어온다.

 

풀내음이
빗내음이
햇살내음이
골고루 섞이고 어우러진.

 

밥 한 그릇
밥상에 올린다.

 

곁님과 두 아이하고
수저를 든다.

 

겨울이 지나간다.

 


434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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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4.1.11. 큰아이―책에서 옮겨적기

 


  날마다 글을 조금씩 익히는 큰아이는 만화책을 펼치면서 이래저래 궁금한 말이 많다. 그림으로 얼핏 알기는 하겠으나 말로는 알 수 없어서 자꾸 묻는다. 묻고 물으며 다시 묻는 동안 아이는 저한테 익숙한 글을 머릿속으로 외운다. 퍽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알려주기를 하다가, 이제부터는 그만두자고 생각한다. “벼리야, 이제부터는 네가 궁금한 말은 공책에 옮겨적어. 그러고 읽어 달라 하면 그때에는 읽어 줄게.” 큰아이가 열 칸짜리 깍두기공책을 펼친다. 창호종이문으로 스며드는 빛살에 기대어 한 글자 두 글자 또박또박 옮겨적는다. 공책을 들고 온다. 한 줄씩 읽어 준다. 또 적고 또 온다. 또 읽어 준다. 벼리야, 네가 스스로 공책에 글을 적어 보고 읽어 달라 해야, 그런 뒤 너도 스스로 읽어야 비로소 글을 익힐 수 있단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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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4-01-18 09:16   좋아요 0 | URL
또박또박 예쁘게 쓰네요.
우리집 아이는 초등1학년인데요, 한참 글배우기를 할 때 공룡책만 들고 다녔답니다.
여자아이인데도 공룡을 좋아해서 공룡이름을 기억하려니 글을 읽어야했고, 그렇게 글을 읽으니 자기가 그린 공룡그림에 글자를 쓰더라구요.
글쓰기도 재미나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파란놀 2014-01-18 09:50   좋아요 0 | URL
여자와 남자라고 해서
딱히 무엇을 더 좋아해야 하거나 좋게 느끼는 틀은 없지 싶어요.
거의 다 부모가 아이한테 어떻게 다가서느냐에 따라 다르지 싶어요.
아이들한테는 선입관이나 편견이 없어서
무엇이든 다 좋아할 수 있는데,
둘레 어른들이 여자는 이것 남자는 요것
틀을 섣불리 나누거든요.

글을 배우는 길은 참 여러 가지로 많고,
그 길을 즐겁게 누리면 언제나 함께 웃을 수 있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