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지내며 하나도 안 힘들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아직 없다. 앞으로도 없으리라 느낀다. 왜냐하면, 참말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마땅하지 않은가. 무엇이 힘든가. 다만, 두 아이와 지내다가 누군가 아이가 ‘몇 달’이라느니 ‘언제 태어났느냐’ 하고 물으면 으레 멈칫멈칫한다. 태어난 해가 언제인지 잊기도 하고, 좀처럼 못 떠올리기도 한다. 태어난 날을 잘못 알기도 하고, 달수를 잘못 세기도 한다.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탓일 수 있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안 보내는 탓일 수 있으며, 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는 탓일 수 있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느낄 적에 ‘나이’나 ‘달수’로 생각하지 않은 지 오래이다. 아이를 느낄 적에는 눈빛을 보고 낯빛을 본다. 손을 잡고 발가락을 만진다. 아이들 배를 살살 쓰다듬어 보고, 허리와 등을 비벼 본다. 머리카락을 빗어 주고 쓰다듬는다. 옷을 갈아입히고 씻으면서 배가 어느 만큼 들어갔는지 살핀다. 달리기를 얼마나 잘 하고, 넘어졌다 일어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키가 어느 만큼 자랐는가 헤아리고, 아이들 손을 잡고 걸을 적에 아이 손과 내 손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돌아본다.


  밥상맡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먹는지 헤아린다. 언제나 아이들 밥그릇에 조금 많이 밥을 퍼서 건네는데, 아이들은 배고프면 꽤 많이 담은 밥을 씩씩하게 다 먹는다. 덜 배고프면 먹다가 남긴다. 두 아이 똥받이를 손수 하니까, 아이들이 누는 똥을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으면서 아이들 몸이 어떠한가를 돌아보고, 밥을 제대로 씹어서 먹었는지 알아본다. 하루이틀 만진 아이들 똥오줌이 아니기도 하지만, 아이들 똥오줌이 ‘더럽다’고 느낀 적이 없다. 아이들이 먹은 그대로 똥이 되고, 이 똥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텐데, 왜 더러울까.


  아이가 하나라면 한결 수월하다든지, 더 멀리 자주 나들이를 다닌다든지, 이것저것 더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다고도 가끔 생각한다. 그러나, 둘이라서 덜 수월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둘이기에 두 아이는 서로 돕고 아끼면서 놀곤 한다. 내가 작은아이한테 이것저것 따로 품을 들이거나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아도, 큰아이가 동생을 보살피거나 이것저것 가르치거나 보여주곤 한다. 아이 하나일 때와 둘일 때 가운데 어느 쪽이 ‘일손이 적게 든다’고 가를 수 없다.


  언제나 아이들이 먼저 나한테 말을 건다. 아이들은 저희한테 어버이가 ‘무엇을 해 주어야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가’를 먼저 알려준다. 나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서 듣고, 잘 챙기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 아이들이 말하기 앞서 찬찬히 베풀면서 함께 누릴 이야기를 조곤조곤 지으면 된다.


  날마다 새로운 생각을 얻는다. 늘 새로운 마음이 된다. 할머니 두 분이 “혼자 애 돌보느라 얼마나 힘들겠어?” 하고 걱정해 주셔도, 여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는 터라, “아이들이 있어 날마다 새 글을 쓸 수 있고, 새 일이 찾아들면서, 새 삶을 누리는걸요.” 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빗대어 말할 만하다. 아름다운 영화를 두 시간 동안 꼼짝않고 보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사랑스러운 책을 몇 시간 가만히 서서 읽는 동안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푸른 숲길을 거닐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짙푸른 바다가 멀리까지 이어진 모래밭에 서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싱그러운 바람이 흐르는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아이들과 지내는 하루란, 이 모두가 한꺼번에 잇달아 찾아드는 삶이라고 느낀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마음속으로 드리우는 빛살이 참 반갑다.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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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4-01-21 09:57   좋아요 0 | URL
저도 님처럼 아이랑 있으면서 힘들다고 생각한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왜? 그 이쁜아이의 행동하나 하나가 너무 사랑스럽고 신비로웠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니라 어느 순간 학부모가 된 지금 힘들다라는 말을 입데 달고 삽니다, 그건 아마 엄마의욕심이 너무 과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어릴적 그저 웃어서 좋았고 밥먹는 모습도 이뻤고 오줌 똥 누는것도 이뻤습니다 아프면 아파서 가슴아팠고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엄마가 아니라 학부모가 되어가고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고치려고 노력을 하는데 잘 안되고 지금은 사춘기옆에 접어든 딸은 엄마말 한마디 한마디에 말대꾸를 하는데 저는 딸이랑 아주 친밀감이 좋다고 느꼈는데 아닌가봅니다 그동안 저만의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아이는 아닌가 봅니다 그래서 엄마인 저는 요즘 힘들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있는지 그래서 또 반성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파란놀 2014-01-21 10:29   좋아요 0 | URL
어머니나 아버지 아닌 '학부모'라는 이름이 될 적에는 그렇게 될 수 있겠네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서 무언가 배우도록 하더라도
늘 아이를 믿고
서로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고운 숨결이라는 마음을
찬찬히 보듬으시면
언제나처럼 예쁜 하루 되리라 믿어요.
아이도 어머니한테 말대꾸 아닌
사랑스러운 말을 나누면서
하루를 즐기고 싶으리라 생각해요.
올해 아름답게 누리시기를 빌어요.
 

산들보라 마당 마실

 


  누나는 혼자서 만화책을 본다며 안 놀아 준다. 누나는 바깥이 춥다며 안 나가겠다고 한다. 산들보라는 혼자 씩씩하게 고무신을 꿰고는 마당을 빙글빙글 돌면서 논다. 바람이 잔잔해 이불을 말리니, 이불 사이에 들어가서 혼자 놀다가는, 마당에 있는 이것저것 들추고 뒤집으면서 빙글빙글 웃는다. 네 살이 되니 가끔 혼자 마당을 마실하기도 하고, 키가 자라 대문도 혼자서 열어 보고, 세발자전거도 굴려 보다가는, 볼 것도 만질 것도 즐길 것도 자꾸자꾸 늘어나는구나.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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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15.
 : 추워도 재미난 자전거

 


- 새해에 일곱 살을 맞이한 큰아이는 곧 스스로 자전거를 몰아 면소재지까지 함께 다녀올 수 있을까. 큰아이는 면소재지까지 걸어서 다녀올 만큼 다리가 튼튼하기는 하지만, 자전거는 어떠할는지 아직 모른다. 새끼바퀴를 붙인 채 간다면 갈 수 있을는지 모르는데, 거의 걷는 빠르기와 같지 않나 싶기도 하다. 큰아이가 혼자 자전거를 타도록 하자면, 샛자전거는 떼고, 작은아이 태울 수레만 붙인 채 달려야지 싶다. 아무튼, 아버지가 이끄는 자전거에 붙이는 샛자전거에서 내려 혼자 자전거를 달리자면, 한겨울에도 즐겁게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 한다. 겨울에는 겨울바람 쐬는 재미를 누리고, 여름에는 여름바람 맞는 즐거움을 누릴 때에 비로소 자전거를 탄다. 덥다고 안 타거나 춥다고 안 타면 자전거를 못 탄다. 더울 적에는 더위를 잊는 자전거를 떠올리고, 추울 적에는 추위를 잊는 자전거를 헤아려야 비로소 자전거를 탄다.

 

- 작은아이는 서재도서관에 들를 때까지는 씩씩하게 놀더니, 마을을 벗어날 무렵부터 수레에서 잠든다. 우체국에 닿으니 새근새근 잘 잔다.

 

- 바람이 세다. 우체국에 닿을 무렵에 모자를 벗은 큰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추워서 고개를 폭 숙이고 말이 없다. 호덕마을 지나서 자전거를 세운다. “벼리야, 추우면 모자를 써.” “응, 그런데 안 써져.” “그러니? 그러면 내려서 이리 와 봐.” 장갑 낀 손으로는 모자를 쓰기 힘든 듯하다. 자전거에 앉은 채 큰아이 모자를 씌워 준다. 머리카락으로는 귀를 덮어서 귀가 덜 시리도록 한다.

 

- 우리 마을로 돌아올 무렵 작은아이가 깨어난다. 애써 잠이 들었으나, 꼭 집에 닿으면 깬다. 그런데 오늘은 안아서 잠자리에 누이고 이불을 덮어 주니, 한 시간 남짓 더 잔다. 졸립기는 졸렸네. 아침부터 개구지게 놀았으니. 큰아이는 마당에서 제 자전거를 타며 빙글빙글 돈다. 슬슬 샛자전거를 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를 꽤 잘 하고 키가 제법 자랐으니 5킬로미터쯤 신나게 달릴 만하지 않으랴 싶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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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Silver Spoon 8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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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06

 


누가 우리를 키우나
― 은수저 8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1.25.

 


  나무는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아름드리로 큰 나무는 기나긴 해 뿌리를 내린 숨결입니다. 오백 해, 천 해, 이천 해, 오천 해를 살아가는 나무는 차근차근 자라면서 줄기와 가지를 굵게 뻗습니다. 오늘날 도시는 툭하면 허물어서 다시 짓느라 바쁜데, 나무는 아무렇게나 베어 없앴다가 다시 심어서 키울 수 없어요. 모든 나무는 조그마한 씨앗 한 톨에서 비롯합니다. 천천히 자라고, 단단히 뿌리를 내립니다.


  가만히 살피면, 백 해쯤 이어가는 건물조차 드뭅니다. 이백 해나 오백 해를 잇는 집이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집을 짓는다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돈이 될 집을 지어서, 돈을 모으는 동안 머물다가, 돈이 안 될 듯싶으면 허물어요. 돈으로 다시 짓고, 돈으로 다시 허문 뒤, 또 돈으로 새로 짓습니다. 앞으로 쉰 해가 지난 뒤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과 아파트와 다리가 그대로 있을까요. 앞으로 백 해가 흐른 뒤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과 아파트와 다리가 그대로 있겠습니까.


  나무는 쉰 해나 백 해 뒤에도 그대로 있을 만합니다. 사람들이 재개발을 한다면서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으면, 나무는 백 해 뒤뿐 아니라 오백 해 뒤에도 그대로 있을 만합니다. 이런 집과 저런 건물로는 어떤 자취도 못 남기지만, 나무가 크는 모습은 오래도록 새로운 이야기가 될 만합니다.


- “아아, 치즈는 송아지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거구나. 죄 많은 식품이여.” “곰팡이로 추출하는 레닛도 있지만.” “요즘은 유전자조작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지요?” (15쪽)
- “우유 수매가는 가공용이 리터당 80엔 정도라며? 치즈는 엄청 남는 거네! 다들 치즈 만들면 되겠다!” “참고로, 앞으로 5회, 압력을 바꿔 가며 하나하나 뒤집어 다시 압착. 그 후 10℃ 이하의 찬물에 하룻밤 담가 놓고, 손으로 소금을 비벼, 1주일 간 건조. 표면의 균을 안정시키기 위해 숙성 초기에는 주 3회, 안정되기 시작하면 주 2회, 브러시로 닦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죠.” (21∼22쪽)


  종이가 되어야 하는 나무가 아닙니다. 옷장이나 책꽂이가 되어야 하는 나무가 아닙니다. 나무는 늘 그대로 나무입니다. 죽은 목숨이 아닌 산 목숨인 나무입니다. 재료나 자원이 아닌 고운 숨결 깃든 나무입니다.


  아파트나 건물이나 공장이 없어도 사람은 안 죽습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없으면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나무가 베푸는 푸른 숨결이 있기에 사람이 살아갑니다. 건물이나 공장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숨결을 베풀 수 없어요. 건물이나 공장으로는 사람이 살아갈 빛이나 밥을 내놓지 못해요.


  손전화기를 쥐지 말고 나뭇줄기를 쓰다듬어요. 셈틀을 끄고 숲으로 가거나 동네에 있는 나무한테 찾아가서 가만히 귀를 대요. 나뭇줄기를 흐르는 숨소리를 들어요. 나무가 읊는 노래를 들어요.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무가 짓는 웃음과 눈물을 찬찬히 살펴요. 겨울눈을 들여다보고,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만지며, 어떤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으면서 고치를 만드는가 헤아려요.


- “뭐, 간단히 말하면 ‘농학은 즐겁고 맛있다.’” “하긴 농사짓다 보면 굶어죽을 일은 없지.” “그야말로 ‘은수저’구나.” “은수저?” “서양에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평생 밥을 굶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 (30쪽)
- “그래도 모르겠어요. 친구를 위해 뭘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요. 그래도 알려 하는 노력은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113쪽)
- “고기가 될지도 모르는데 다들 순순히 차에 오르는구나.” “코마바 목장의 소들은 송아지 때부터 한 마리 한 마리를 아끼며 돌봐 와서 사람을 믿거든.” (119쪽)


  이 겨울에도 온갖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 잎사귀가 알게 모르게 사라집니다. 갑자기 왜 잎사귀가 사라지나 하고 들여다보니, 나비로 깨어나려고 애쓰는 애벌레가 갉아먹었습니다. 바지런히 잎을 갉아먹고는 용케 눈에 덜 띌 만한 자리에 고치를 틉니다. 우리 집 마당을 드나드는 멧새가 꽤 많은데 참말 이 애벌레는 안 잡아먹히고 나뭇잎을 제법 갉아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새들이 나비를 꽤 많이 잡아먹을 텐데, 나비는 새들이 잡아먹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새로 깨어납니다. 애벌레는 다시금 나뭇잎을 갉아먹으면서 새롭게 고치를 맺고 나비꿈을 꿉니다. 풀벌레와 새와 나비와 개구리 모두 저마다 먹이사슬 이루면서 풀밭과 숲에서 푸른 숨결을 주고받습니다. 작은 목숨들이 얼크러지면서 흙이 새롭게 살아납니다. 흙은 비료나 농약으로 살아나지 않습니다. 비료나 농약을 쓰는 흙은 나날이 허연 빛으로 바뀝니다. 도무지 아무것도 자랄 수 없을 만한 흙이 됩니다.


  흙이 싱그러이 숨쉬려면 지렁이가 있어야 한다 말하는데, 지렁이만으로는 흙이 싱그러이 숨쉬지 못합니다. 지렁이뿐 아니라 두더쥐가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들쥐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뱀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개구리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무당벌레도 살고 개미도 살아야 해요. 개미집이 없는 흙이라면 이런 흙에 무엇을 심어서 키울 수 있을까요. 메뚜기가 날지 않고 방아깨비가 춤추지 않는 흙이라면, 이런 흙에서 어떤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요.


  빗물이 드리우고 햇볕이 내리쬐며 바람이 살그마니 흐르는 흙이 천천히 살아납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우거지는 흙이 차근차근 기름집니다. 흙이 있어 문화가 태어나고, 흙이 있어 삶을 일굽니다. 흙이 있기에 마을이 생기며, 흙이 있기에 아이들이 자랍니다.


- “어떻게 말해? 코마바 목장이라는 한 회사의 도산인데. 정식 절차를 밟을 때까지는 함부로 입밖에 내선 안 된다고. 게다가, 말한들 네가 어쩔 건데? 빚을 갚아 줄 수 있어?” (37∼38쪽)
- “무슨 방법이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니?” “하치켄은 정말 마음도 좋아. 정말,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으니까. 하치켄까지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돼.” (41쪽)
- “동생들은 대학까지 보내 주고 싶으니까. 학교 그만두고 일할 거야.” “꿈은 어쩌고! 포기할 거야?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래. 야구도 가업도, 모두 없어졌어. 하는 수 없어.” (55∼56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 만화책 《은수저》(학산문화사,2013) 여덟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여덟째 권에서는 꿈을 내려놓아야 하는 아이와 꿈을 새롭게 품는 아이가 나옵니다. 어느 아이는 집안이 폭삭 주저앉아서 시골 농장을 남한테 넘기고는 품팔이 일을 나갑니다. 어느 아이는 아직 집안이 주저앉지는 않았으나, 시골일을 잇기보다는 대학교에 가서 더 공부하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한테는 무엇이 꿈이 될까요. 이 아이들은 어떻게 꿈을 꿀까요. 이 아이들은 어떤 마음밭 되어 어떤 생각을 곱게 품을까요.


- “사실은 억울하고 분해 미칠 것 같으면서!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란 말이야!” (59쪽)
- “하지만 대학에 가려면 돈도 들고, 안 그래도 돈 때문에 회의 중인데.” “돈 얘길 하는 게 아니야! 네 장래 이야기를 하는 거다.” (153쪽)
- “아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좋아하는 일에 대해 단단히 공부하거라. 말이 너를 길러 주지 않았니? 어설픈 마음 먹고 덤비면 말에게 도리가 아니지.” (154쪽)


  고등학교를 꼭 마쳐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꼭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꼭 다닐 일이란 없습니다.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지 않을 뿐더러, 지식을 여러모로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논밭을 일구려는 사람은 논밭을 일굴 노릇이지, 책으로 흙일을 배울 수 없습니다. 몸으로 흙을 만지고 몸으로 흙을 느낄 때에 흙을 돌봅니다. 짐승을 키울 적에도 짐승과 함께 살아가야 짐승을 키우지, 책으로는 배울 수 없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어요. 밥짓기를 책으로 못 배웁니다. 옷짓기와 집짓기도 책으로 못 배웁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느 누구도 밥과 옷과 집을 책으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어요. 살아가면서 온몸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익혔어요. 삶으로 온통 누리던 밥과 옷과 집입니다.


  꿈이란 무엇인가요. 대통령이 되거나 의사가 되는 길이 꿈인가요. 소설을 쓰거나 학자가 되는 길이 꿈인가요. 운동선수가 되거나 가수가 되는 길이라면 꿈인가요. 꿈이라기보다 직업이요, 꿈하고는 다른 일자리 아닐는지요. 꿈하고는 먼 돈벌이요, 꿈이라 하기 어려운 겉치레 아닐까 싶습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건 학비를 대주는 것뿐이야. 네 꿈이 진심이라면 해 봐라. 꿈을 이루든 못 이루든, 네 진심을 믿고 의지가 되어 준 친구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 (161쪽)


  누가 우리를 키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내 어버이가 나를 키웠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나 스스로 이렇게 자랐을까 하고 되뇌어 봅니다. 아무래도, 어버이가 낳아서 돌보았고, 학교나 동네나 이웃이 이모저모 가르쳐 주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밑힘이란, 무엇보다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과 나무와 풀입니다. 햇볕이 드리워 내 몸을 덥힙니다. 바람이 불어 내 숨결이 됩니다. 비가 내려 몸을 맑고 싱그럽게 채웁니다. 흙이 곱고 구수해 피와 살이 됩니다. 나무가 우거져 활짝 웃습니다. 풀빛이 환하면서 정갈하니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만화책 《은수저》는 여덟째 권에 이르러 책이름이 왜 ‘은수저’인가를 얼핏 보여줍니다. 흙을 일구고 살아가면 ‘굶어죽을’ 일이 없다는 얘기를 살짝 지나가듯이 들려주는데, 첫째 권부터 여덟째 권으로 오는 동안 내내 ‘먹는’ 이야기만 했어요. 무엇을 먹는지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다루어서 먹을거리로 삼는지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먹을 밥이란 무엇이요, 이 밥을 어떻게 얻고, 이 밥이 나오는 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합니다.


  흙은 누구한테나 밥을 베풉니다. 흙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한테 밥을 베풉니다. 흙은 내 어버이를 낳았고, 흙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해 줍니다.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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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판에서 날개 단 빅토르 안 (안현수)

 


  올해 2014년에 러시아에서 겨울올림픽을 연다고 한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며칠 앞서 독일에서 열렸다는 어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빅토르 안’이라는 선수가 금메달을 넷 한꺼번에 목에 걸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러시아 국가대표라고 하는 ‘빅토르 안’인데, 얼마나 솜씨가 좋은지 누구도 이 선수를 따라잡거나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빅토르 안’이라는 선수는 함께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 가운데 나이가 너무 많다고 하는데에도 아주 잘 한다고 한다.


  얼마나 멋진 삶일까. 얼마나 즐겁게 경기를 뛸까. 얼마나 온힘 다해서 날마다 새롭게 맞이할까. 이녁은 ‘빅토르 안’이기에 ‘안현수’라는 이름으로는 만날 수 없다. 그렇지만,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넋과 빛으로 살아가겠지. 이곳에 있어도 저곳에 있어도 이녁은 언제나 똑같은 숨결이다. 서른에도 서른을 넘긴 뒤에도 멋지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빈다. 얼음판에서 날개를 단 ‘빅토르 안’한테 아름다운 사랑과 이야기가 그득 넘칠 수 있기를. 4347.1.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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