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4.1.30. 큰아이―음성 할매 할배

 


  벼리야, 음성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그림으로 그려서 드리지 않을래? 응, 알았어. 사름벼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예쁜 빛깔 크레용을 써서 척척 그린다. 그러고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곱다시 ‘사랑’을 넣는다. 어쩜 이렇게 어여쁜 생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니. 네 마음속에 늘 사랑이 있기 때문일 테지. 네 마음속에 깃든 고운 빛을 언제나 그림으로 옮길 수 있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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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 음성마실 기뻐

 


  설날 앞두고 음성마실을 한다. 일산마실까지 하고 싶은데, 음성에서 서울 가는 기차표를 끊지 못했다. 어쨌든 시골집을 나선다. 시골집을 나서서 시골집으로 간다. 하얀토끼 붙은 빨간가방을 멘 사름벼리는 하늘을 날듯이 훨훨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샅길을 달린다. 기쁘지? 기나긴 길이지만, 아침 일찍 나서는 만큼 해 떨어지기 앞서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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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21 : 고진감래

 

여행은 사서 하는 고생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박 로드리고 세희-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라이팅하우스,2013) 127쪽

 


 고진감래(苦盡甘來)
→ 고생 끝에 즐거움
→ 고단한 길에 맛보는 즐거움
→ 쓴맛 뒤에 단맛

 


  고단하거나 괴로운 일을 굳이 사서 겪는다고 하는 ‘여행’입니다. 이와 달리 ‘나들이’나 ‘마실’이나 ‘들놀이’는 고단하거나 괴로운 일을 굳이 사서 겪으려 하지 않습니다. 즐거우려고 다니는 나들이요 마실이며 들놀이입니다. 기쁘게 웃으면서 함께 놀려고 하는 나들이요 마실이며 들놀이입니다.


  한자말 ‘여행’이 우리 삶자락으로 들어오기 앞서 누구나 ‘나들이·마실·들놀이’ 같은 낱말을 썼을 텐데, ‘일본여행’을 ‘일본나들이’나 ‘일본마실’처럼 고쳐서 쓸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낱말에는 일부러 고단하거나 괴로운 일을 겪기도 하면서 새로운 이웃을 만난다는 느낌을 담지 싶어요. 이리하여 이 보기글에서도 “여행은 사서 하는 고생이다” 하면서 ‘고진감래’라고 덧붙이리라 봅니다.


  그런데, ‘고진감래’라 적고, 한자로 ‘苦盡甘來’를 붙일 적에 뜻이나 느낌이 얼마나 잘 살아날까 아리송합니다. “사서 하는 고생이다”라 적었으니, 굳이 뒤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적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뜻과 느낌을 찬찬히 풀어 “고단한 길 끝에 달콤한 빛이 있다”라든지 “고단하게 걸은 뒤에 환하게 웃는다”라든지 “힘겨이 다니면서 새로운 사랑을 배운다”처럼, 스스로 여행길에서 누린 새삼스러운 빛과 꿈과 사랑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한결 나으리라 느껴요.


  다른 자리에서는 “쓴맛 뒤 단맛”이라든지 “괴로움 끝 기쁨”이라든지 “눈물 뒤 웃음”이라든지 “눈물 끝 기쁨”처럼 적어 볼 수 있습니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여행은 고단한 일을 사서 한다. 고단한 길 끝에 달콤한 빛이 있다

 

“괴롭고 수고로운 일을 겪음”을 뜻하는 한자말 ‘고생(苦生)’입니다. 곧, 한국말로 하자면 ‘괴로움’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옴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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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 검은옷

 


흰옷은 시골서도
때가 잘 타
하루 지나고 이틀 되면
깃과 소매가 까무스름.
사흘 입고 나흘째에는
복복 비벼 빨아
까만 땟물 빼고
햇볕에 말린다.

 

까만옷은 도시서도
때 탄 티를 잊어
하루나 이틀로는 모르고
사흘과 나흘로도 모르지만
퀴퀴한 냄새 피어나
비로소 북북 비비고 헹구어
해바라기 시킨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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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마음과 검은마음

 


  하얀마음에 티끌 하나 앉으면, 마치 티끌만 있다는 듯이 여길 만한데, 까만마음에 얼룩 크게 앉으면,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 까만마음에 드리운 얼룩에 곰팡이가 피어 큼큼한 냄새가 코를 찔러도 얼룩이 있는지 곰팡이가 있는지 못 알아채기까지 한다. 어디에서 냄새가 나는지 모를 뿐더러, 냄새가 나는지조차 모르기도 한다.


  하얀마음을 버리면 티끌이 묻어도 알아채기 어려우니까 좋을까. 까만마음이 되면 지저분한 얼룩이 덕지덕지 있어도 알아채는 사람이 드물기에 좋을까. 하얀마음인 사람한테 묻은 티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까만마음인 사람한테 드리운 얼룩과 곰팡이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하얀마음인 사람한테 티끌이 묻으면 다른 사람보다 이녁 스스로 곧바로 알아채어 복복 비벼 빨리라 생각한다. 까만마음인 사람한테 티끌이 묻으면 다른 사람도 이녁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채 묵은 때 되거나 구린 냄새로 바뀌도록 빨래할 마음조차 없으리라 느낀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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