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54. 2014.2.3.

 


  봄풀을 뜯는다. 밥을 하고 국을 끓인 뒤, 신나게 봄풀을 뜯는다. 뜯으면서 아주 기뻐 사진기를 들이밀어 ‘이 고운 풀을 그냥 먹을 수 없지.’ 하고 생각한다. 즐겁게 뜯어 즐겁게 차리니, 밥상에 올린 반찬이 몇 가지 아니어도 괜스레 들뜬다. 밥상머리에서 아이들한테 말한다. “자, 이제 오늘부터 우리 집 풀을 먹을 수 있어. 우리를 튼튼하게 살리는 풀이야. 고맙고 즐겁게 먹자.” 풀내음 깃든 풀밥을 냠냠짭짭 맛나게 누리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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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어, 너 갈퀴덩굴

 


  봄을 부른다는 복수초가 피었다고도 한다. 우리 집은 아직 숲이 아닌 마을이 있기에 복수초를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복수초가 피기 앞서 우리 집에는 갈퀴덩굴이 올라왔다. 복수초에 앞서 냉이꽃이 피었고, 코딱지나물꽃이 피었으며, 보리뺑이꽃도 피었다. 무엇보다 올해에는 2월 3일부터 드디어 갈퀴덩굴을 뜯어서 먹는다.


  갈퀴덩굴이 뜯어서 먹을 만한 크기까지 돋도록 기다리고 기다렸다. 새해 들어 처음 뜯는 ‘집풀’ 맛이란 얼마나 싱그럽고 푸른지 모른다. 아삭아삭 소리 조그맣게 나는 갈퀴덩굴을 몸에 담으면서 포근한 기운과 고마운 기운을 받는다. 올해에도 우리 식구한테 푸른 숨결 나누어 주는 집풀이 듬뿍듬뿍 돋겠구나 생각한다.


  갈퀴덩굴에 앞서 갓풀이 먼저 고개를 내밀었는데, 갓풀은 아직 우리 식구한테 쓰다. 앞으로 몇 해 더 이 시골집에서 지내면 갓풀도 안 쓰게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갈퀴덩굴을 이레쯤 즐기다 보면 쑥도 뜯을 만큼 싱그러이 돋겠지. 오물조물 앙증맞게 고개를 내민 쑥풀을 쓰다듬고, 예쁘장하고 푸른 줄기 올린 갈퀴덩굴을 복복 뜯는다. 4347.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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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지막 교정을 봅니다.

이 일을 하는 동안에도 다른 일이 있고,

집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일합니다.

 

내일 새벽까지는 마지막 교정을 얼른 마치고

한글문화연대 일도 잘 마무리지어야지요.

이 일까지 해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올해에 해내려는 일을 제대로 건드릴 수 있겠지요.

 

마지막 교정을 보는 만큼

마지막 표지 시안도 나왔답니다~ ^^

아, 책이름 띄어쓰기가 잘못 나와서

한 번 더 봐야 하니 '마지막 표지 시안'은 아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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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04 10:11   좋아요 0 | URL
축하드립니다.. ~~^^

파란놀 2014-02-04 10:54   좋아요 0 | URL
아침에 마지막 교정을 넘겼을 뿐이에요.
마지막 손질을 한 번 더 거치면
이제 인쇄소에 들어가겠지요~

고맙습니다 ^^

oren 2014-02-04 13:28   좋아요 0 | URL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뜻깊은 일이니만큼 잘 마무리하셔서 좋은 결실 맺기를 바랄께요~

파란놀 2014-02-04 15:15   좋아요 0 | URL
네, 아주 멋진 책이 되어
우리 이웃들이
아름다운 빛과 넋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기를 빌어요.
고맙습니다~

분꽃 2014-03-11 17:53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지요?
오랜만에 들어와 봤네요.
스마트폰을 쓰고 난 뒤로는
컴퓨터를 켤 일이 별로 없어서요~

보내주신 책은 잘 받았답니다.
종규님, 은경님, 사름벼리, 산들보라 반갑네요!!
늘 건강하고 편안하고 기쁨 가득하기를요~~

파란놀 2014-03-11 19:43   좋아요 0 | URL
이제 춘천에도 밝은 봄이 찾아들어
아름다운 하루 누리시겠지요?

언제나 즐겁게 날마다 고운 노래 부르셔요~ ^^
춘천에도 머잖아 나들이를 가고 싶어요~
 

되읽고 다시 읽으며 또 읽는다

 


  지난해 한글날에 나왔어야 하는 책이 있다. 해를 넘겨 이월 끝무렵에 나오기로 하고는, 새삼스레 교정과 교열을 다시 본다. 지난해 한글날에 그대로 나와도 되었지만, 넉 달을 뒤로 미룬 바람에 새삼스레 손질할 대목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을 나 스스로 열 차례쯤 차근차근 되읽으면서, 또 이 글을 출판사 편집자가 나와 똑같이 열 차례쯤 차근차근 되읽어 주면서, 서로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동안 글을 한결 곱고 정갈하게 가다듬을 수 있다고 배운다.


  누가 쓰는 글이든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하룻밤 자고 나면서 새로 보고 들으며 배우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달에 새롭게 선보일 책에 넣는 글을 자꾸자꾸 되읽고 다시 읽으며 또 읽어 손질하고 가다듬으면서 문득 한 가지를 깨닫는다. 나로서는 딱히 생각한 대목이 아닌데, 내가 글을 쓰며 ‘토씨를 잘 안 넣는다’는 대목을 누군가 짚어 주었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다시 살피니, 참말 그렇다. 나는 글에 토씨를 굳이 안 붙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시골사람이 시골집에서 시골흙 살며시 만지며 시골노래 즐겁게 부릅니다”처럼 글을 쓴다. ‘시골흙을’이나 ‘시골노래를’처럼 잘 안 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글을 쓰는 줄 나 스스로도 몰랐다. 언제부터 이렇게 글을 썼을까?


  올해로 일곱 살과 네 살이 되는 두 아이하고 하루 스물네 시간을 늘 붙어 지내며 말을 듣고 들려주며 가르친다. 두 아이한테 어버이 말을 물려주면서 ‘지식이 되는 말’이 아니라, ‘넋이 깃든 시골사람들 사랑스러운 말씨’를 늘 듣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 오랫동안 어린이책을 읽고 아이들 말씨를 배웠다. 아이들이 쓴 글을 퍽 많이 읽었으며, 시골에서 시골사람 말을 늘 듣는다.


  가만히 돌아본다. 아이들 말씨를 살피면, 아이들은 토씨를 잘 안 붙인다. 아직 토씨를 마음대로 붙일 줄 모르기도 한다. 말이 좀 더딘 네 살 작은아이는 거의 모든 말에 토씨가 없다. 이름씨만 죽죽 늘어놓는다. 그러나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모두 알아챈다. 그렇다고 작은아이한테 토씨 없이 이름씨만 늘어뜨린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지만,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토씨 없이 말하곤 한다.


  꼭 시골사람만 이렇게 말하지 않지만, 여느 사람들은 으레 “밥 먹었소?” 하고 묻는다. “밥을 먹었소?” 하고는 잘 안 묻는다. “어디 가나?” 하고 묻지 “어디로 가나?”나 “어디를 가나?”처럼 잘 안 묻는다. “나, 읍내 가지.”라든지 “자전거 타고 저기 간다.”처럼 말한다. “읍내를 가지”라든지 “자전거를 타고”라든지 “저기로 간다”처럼 말하지 않아 버릇한다. “앞밭 김 매러 가자.”라든지 “버스 지나간다.”처럼 말한다. “앞밭에”라든지 “버스가”처럼 토씨를 붙이지 않는 마을 어르신들이다.


  어느새 아이들 말씨대로 글을 쓴다. 어느덧 마을 어르신 말투대로 글을 쓴다. 나는 글을 글로만 쓰지 않고, 언제나 입으로 말하면서 쓴다. 그러다 보니, 아이한테 말하는 대로, 또 아이들이 말하는 대로, 또 시골마을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나 또한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는 대로 글을 쓴다.


  책으로 나올 글에 토씨를 새롭게 하나하나 챙겨 붙이면서 생각한다. 굳이 이렇게 하나하나 토씨를 붙여야 할까? 토씨 안 붙이는 글이 익숙하지 않다는 사람이라면, 아마 아이들 말씨나 시골사람 말씨가 익숙하지 않으리라 느낀다. 아무래도, 책 좀 읽은 사람이나 이래저래 배운 사람은 교과서 같은 말씨나 신문이나 인문책에 나오는 말씨가 익숙하리라 본다. 나 같은 사람들이 쓰는 글투가 익숙하기는 어렵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면, 나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글은 혼자만 읽는 글이 아니라 여럿이 읽는 글이니, 다른 사람들이 익숙하다고 하는 틀대로 내 글을 고쳐야 할까. 글 읽는 사람이 ‘익숙한 글투’에만 젖어들지 않도록, 다시 말하자면 ‘제도권 글투’와 ‘교과서 글투’에만 빠져들지 않도록, 시골사람 말투와 아이들 말투로 씩씩하게 글을 써도 될까.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다시 헤아려 본다. 나는 앞으로도 나대로 글을 쓰리라. 그러니까, 새로 맞이할 아침에 아이들한테 “얘들아, 우리 밥 먹고 버스 타고 바다 보러 가자.” 하고 말하듯이 글을 쓰리라 생각한다. 4347.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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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24) -의 : 낱개의 꽃

 

개나리는 낱개의 꽃보다 무더기로 언덕이나 가로수에 피어 있는 모습을 주로 보았을 거야
《손옥희·최향숙-우리 학교 뜰에는 무엇이 살까》(청어람미디어,2012) 11쪽


 낱개의 꽃보다 무더기로 핀
→ 낱개로 핀 꽃보다 무더기로 핀
→ 낱개보다 무더기로 핀
 …


  무엇을 살 적에 낱개로 사기도 하고 무더기로 사기도 합니다. 호떡을 낱개로 사거나 무더기로 삽니다. “낱개의 호떡”이나 “무더기의 호떡”을 사지 않습니다.


  낱개로 피는 꽃이라면 ‘낱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더기로 피는 꽃이라면 ‘무더기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은 “개나리는 낱꽃보다 언덕이나 가로수로 핀 무더기꽃을 자주 보았을 테지.”처럼 고쳐쓸 수 있어요. 4347.2.3.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개나리는 낱개로 핀 꽃보다 무더기로 언덕이나 가로수에 핀 모습을 자주 보았을 테지


“피어 있는 모습”은 “핀 모습”으로 다듬고, ‘주(主)로’는 ‘자주’나 ‘흔히’로 다듬으며, “보았을 거야”는 “보았을 테지”나 “보았겠지”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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