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람은 복숭아를 무척 좋아한다. 복숭아를 뜻하는 이름 ‘모모’는 그야말로 아주 흔하다. 흔한 이름이지만 참 자주 쓰고, 언제나 애틋하게 아낀다. 모모라든지 모모코라든지 모모짱이라든지 모모코짱이라든지 모모네라든지, 복숭아를 가리키는 이름을 살가이 쓴다. 그러면, 한국사람은 무엇을 좋아할까. 어떤 이름을 곳곳에 예쁘게 붙이면서 즐겁게 부를까. 다섯 권만 번역된 ‘분홍꼬마 몽이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영차영차 몽이》를 큰아이가 덥석 집으며 읽는다. 일곱 살로 접어든 요즈음 한글을 제법 읽어낸다. 아직 다 읽지는 않지만, 따로 가르쳐 주지 않은 글까지 ‘아이한테 익숙한 글과 맞추어’서 생각해 낼 줄 안다. 조그맣고 예쁜 그림책에 흐르는 글을 그림결을 살피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글을 알아맞히기도 한다. 아이가 그림책을 즐기고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그림책은 어여쁜 그림이면 참 좋기도 하지만, 이야기와 줄거리 또한 아름다울 때에 참 좋다. 이야기와 줄거리가 아름답지 않으면 아이들이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림책 이야기와 줄거리가 사랑스러워야 한다. 서로를 아끼고 믿고 기대고 도우면서 빙그레 웃음짓는 사랑이 흘러야 한다. 이런 지식이나 저런 학습을 아이한테 심으려고 하는 그림책은 아이들이 그리 달가이 여기지 않는다. 곰곰이 돌아보면, 재미있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그림책이야말로 훌륭한 ‘학습 효과’가 있다. 바로, 사랑을 가르치고 꿈꾸도록 이끄는 배움빛이 있다. 4347.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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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차영차 몽이
토요타 카즈히코 지음, 하늘여우 옮김 / 넥서스주니어 / 2006년 3월
6,000원 → 5,4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원(5% 적립)
2014년 02월 0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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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995) 위의 4 : 무대 위의 상황

 

배우들은 대본대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고 무대 위의 상황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고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연기를 펼칩니다
《안치운-추송웅, 배우의 말과 몸짓》(나무숲,2004) 28쪽

 

 무대 위의 상황
→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
→ 무대에서 일어나는 상황
→ 무대에서 펼쳐지는 상황
→ 무대 상황
→ 무대 흐름
 …

 

  무대 위가 있고 무대 아래가 있습니다. 배우는 무대에 올라가서 연기를 선보일 테니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따라 연기를 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농사꾼이 “논 위에서 김을 맨다”고 하지 않습니다. “논에서 김을 맨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래꾼이 “공연장 위에서 노래를 한다”고 하지 않으며 “공연장에서 노래를 한다”고 합니다. 연극 배우도 “무대에서 연기를 한다”고 적을 때가 가장 알맞다고 느낍니다. 굳이 ‘위아래’를 갈라야 하지 않습니다. 관객을 부른다고 할 적에도 “무대로 나오셔요” 하고 말하면 됩니다. 배우가 무대 아래쪽으로 내려간다면, 이때에는 “무대 아래”가 될 테지만, 다시 무대로 돌아가면 “무대로 돌아오셔요” 하고 말해야겠지요. 조금 더 살피고 한 번 더 돌아보면서 글을 가다듬습니다. 4340.5.9.물/4342.6.6.흙/4347.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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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은 대본대로 움직하지 않고 무대 흐름에 맞추어 그때그때 말을 만들고 관객한테서 웃음을 끌어내는 연기를 펼칩니다

 

“연기(演技)하는 것이 아니고”는 “연기하지 않고”나 “움직이지 않고”로 다듬고, ‘상황(狀況)’은 ‘흐름’으로 다듬습니다. ‘즉흥적(卽興的)으로’는 덜어도 되고, ‘그때그때’나 ‘그 자리에서’로 손보아도 됩니다. “관객(觀客)의 웃음을 유발(誘發)하는 연기”는 “관객을 웃기는 연기”나 “사람들과 함께 웃는 연기”나 “사람들한테서 웃음을 끌어내는 몸짓”으로 손질해 줍니다. ‘대사(臺詞)’는 전문용어로 여길 수 있지만, ‘말’로 다듬을 만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33) 위의 5 : 네 살 위의 여학생

 

점자 동아리에서 만난 네 살 위의 여학생이었다
《고바야시 데루유키/여영학 옮김-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강,2008) 52쪽

 

 네 살 위의 여학생
→ 네 살 위 여학생
→ 네 살 위인 여학생
→ 네 살 많은 여학생
 …


  이 자리에서 한자말 ‘연상’을 넣었어도 “네 살 연상의 여학생”처럼 적었겠지 싶어요. 한자말을 안 쓰고 ‘위’를 적었어도 토씨 ‘-의’를 붙이니 아쉽고요.


  토씨 ‘-의’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면 ‘위’라는 낱말을 쓰지 말고 “네 살 많은 여학생”처럼 적으면 됩니다. 또는 ‘위’를 그대로 둔 채 말끝을 ‘-인’으로 붙입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누나는 몇 살 위인가요?”처럼 묻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몇 살 위이더라?”처럼 말합니다. 다른 자리에서는 토씨를 어떻게 붙이는가 곰곰이 돌아보면, 실마리를 잘 풀 수 있습니다. 4342.4.12.해/4347.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점자 동아리에서 만난 네 살 위인 여학생이었다

 

사람들은 으레 “연상(年上)의 여학생”이나 “연하(年下)의 여학생”처럼 쓰는데, 이 자리에서는 “네 살 위”라고 적어 줍니다. 토씨 ‘-의’를 붙인 대목은 아쉽지만, 이만큼 기울인 마음를 앞으로는 더 넓혀 주면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26) 위의 6 : 위의 책들

 

물론 위의 책들은 오늘날에는 걸작으로 꼽혀 적극적으로 권해지고 있다
《김미라-책 여행자》(호미,2013) 23쪽

 

 위의 책들은
→ 이 책들은
→ 이런 책들은
→ 이 같은 책들은
→ 이와 같은 책들은
 …


  이 글월에서 가리키는 책들은 어느 책방에서 위쪽에 있는 책이 아닙니다. 책을 이야기하는 글에서 밝히는 목록을 가리키는 대목입니다. 그러니, ‘위’를 넣어서 가리키면 틀립니다. 잘못 썼어요. “이 책들”이라고 적어야지요. 또는 “이런 책들”이나 “이 같은 책들”처럼 가리키면 됩니다. 4347.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책들은 오늘날에는 훌륭한 책으로 꼽혀 널리 사랑받는다 

 

‘물론(勿論)’은 ‘말할 것도 없이’로 손보고, ‘걸작(傑作)’은 ‘훌륭한 책’으로 손봅니다. “적극적(積極的)으로 권(勸)해지고 있다”는 “널리 추천받는다”라든지 “두루 사랑받는다”로 손질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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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2) 위의 1 : 위의 경우

 

위의 경우와 똑같은 사건이 다르게 평가되었다면 새로운 반응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H.웨이신저,N.롭센즈/임한성 옮김-불완전한 인간》(청하,1986) 20쪽

 

 위의 경우와 똑같은 사건
→ 이와 똑같은 일
→ 이때와 똑같은 일
→ 이 경우와 똑같은 사건
 …


  앞말을 받으면서 ‘위’라는 낱말을 쓰는 분이 퍽 있습니다. 이와 달리, 뒷말을 들려주기 앞서 ‘아래’라는 낱말을 쓰는 분이 꽤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올바르지 않습니다. 책을 쓸 적에, 다루려는 이야기가 종이 위쪽에 나올 수 있습니다만, 앞쪽에 다루려는 이야기가 나온 뒤 뒤쪽에 “위의 경우”처럼 이어진다면, 참 뜬금없는 소리가 돼요. “아래의 경우”처럼 쓸 적에도 똑같습니다. 책 맨 아래쪽에서 “아래의 경우”라 적고는 다음 쪽 맨 윗자리에 다음 이야기가 흐르면 어찌 될까요.


  그러니, 다루려는 이야기를 먼저 들려준 다음,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 하면, “위의 경우”가 아닌 “이 경우”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이 경우”는 살짝 손질해서 “이때”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이와 똑같은”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38.2.1.불/4347.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때와 똑같은 일이 다르게 받아들였다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다

 

‘경우(境遇)’은 앞말과 묶어 ‘이때’로 손봅니다. ‘사건(事件)’은 ‘일’로 다듬고, ‘평가(評價)되었다면’은 ‘받아들여졌다면’으로 다듬으며, “새로운 반응(反應)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다”로 다듬어 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04) 위의 2 : 위의 예에서도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규칙이라는 것이 일본과 같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나카네 지에/양현혜 옮김-일본 사회의 인간관계》(소화,1996) 31쪽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 보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처럼
→ 이와 같이
  …


  “위의 예”처럼 말할 수 없습니다. 잘못 쓰는 보기입니다. 이 글월은 “이 예에서도”로 적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예(例)’를 손질해 “이 보기에서도”처럼 적고, 단출하게 “이에서도”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더 단출하게 적어 보자면, “이처럼”이나 “이와 같이”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로 적어도 됩니다. 4339.5.20.흙/4347.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처럼 규칙이라는 것이 일본과 같이 따로 어느 하나이거나 또렷한 무엇이 아니라

 

‘예(例)’는 ‘보기’로 다듬습니다. “개별적(個別的)이고 구체적(具體的)인 것이 아니라”는 무엇을 말할까 알쏭달쏭한데, ‘개별적’은 “하나씩 따로 나뉘어 있는”을 뜻하고, ‘구체적’은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추고 있는”을 뜻합니다. 이러한 뜻을 헤아린다면, “따로 어느 하나이거나 또렷한 무엇이 아니라”로 손질하면 잘 어울리겠다고 느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729) 위의 3 : 소파 위의 뚱보 하인

 

기름때 흐르는 소파 위의 뚱보 하인처럼 / 물렁한 뇌수에서 몽상을 하는 / 당신네들 생각을 / 내 피투성이 심장에 대고 문질러 / 마음껏 조롱하리라, 뻔뻔하고 신랄한 나는
《마야꼬프스끼/석영중 옮김-광기의 에메랄드》(고려대학교 출판부,2003) 1쪽

 

 소파 위의 뚱보 하인처럼
→ 소파에 앉은 뚱보 하인처럼
 …


  외국사람이 쓴 시를 한국말로 옮긴다고 할 때에는 훨씬 더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시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애쓰고, 말맛과 이야기가 알뜰히 어우러지게끔 힘써야 합니다. 뜻을 옳게 살필 뿐 아니라, 한국말다운 글이 되도록 가다듬어야지 싶어요.


  그나저나, “소파 위의 뚱보 하인”은 무슨 소리일까요. 뚱보 하인이 “소파에 앉았다”는 소리일까요, 아니면 뚱보 하인이 “소파 위에 올라섰다”는 소리일까요. 이쪽인지 저쪽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소파에 앉았다”는 소리 아닐까 싶은데, 앉은 모습이 아니라면 “선 모습”이나 “누운 모습”이나 다른 어떤 모습인지 또렷하게 밝혀야 합니다.


  우리는 “걸상에 앉”습니다. “자리에 앉”습니다. “땅바닥에 앉”습니다. “걸상 위”도 “자리 위”도 “땅바닥 위”도 아닙니다. “저기 풀밭에 앉으렴” 하고 말하지 “저기 풀밭 위에 앉으렴” 하고 말하지 않아요. 풀밭 ‘위’라는 데는 없습니다. 풀밭 ‘위’라면 풀밭 위쪽으로 붕 떠서 ‘하늘에 있으라’는 소리가 됩니다. “소파 위”라는 말도 소파 위쪽 하늘에 있다는 소리가 돼요. 4339.9.8.쇠/4342.6.6.흙/4347.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기름때 흐르는 소파에 앉은 뚱보 하인처럼 / 물렁한 머리에서 바보꿈을 꾸는 / 너희들 생각을 / 내 피투성이 심장에 대로 문질러 / 마음껏 비웃으리라, 뻔뻔하고 날카로운 나는 

 

“물렁한 뇌수(腦髓)에서 몽상(夢想)을 하는”이라면 “물렁한 머리에서 바보꿈을 꾸는”이나 “물렁한 머리로 꿈속이나 헤매는”쯤으로 다듬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당신(當身)네들’은 ‘너희들’로 손보고, ‘조롱(嘲弄)하리라’는 ‘놀리리라’나 ‘비웃으리라’로 손보며, ‘신랄(辛辣)한’은 ‘날카로운’이나 ‘따가운’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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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기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읽도록 만드는 책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읽도록 만드는 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다. 또한, 어린이 눈높이로 생각하거나 바라보거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읽는다. 한편,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읽도록 만들지만, 어른이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 어린이책을 읽는 첫 독자는 늘 어른이다. 어린이는 어린이책이 새로 나오는 줄 알 길이 없다. 어른들이 맨 먼저 알고, 어른들이 어린이책을 장만한 뒤 어린이한테 건네기에 어린이가 어린이책을 읽을 수 있다. 어린이 한 사람이 어린이책을 읽도록 하려고 수많은 어른들이 어린이책을 읽는다.


  아이한테 읽히려고 어린이책을 장만하니, 아이로서는 어버이나 둘레 어른이 책을 선물해 줄 때에 고맙게 받아서 즐겁게 읽는다. 그런데, 아이일 적에 어린이책을 다 못 읽거나 미처 못 읽거나 그냥 안 읽기도 한다. 책보다는 놀이가 좋아, 놀이에 사로잡히는 나머지 책하고는 등지기도 한다.


  이렇게 어린 나날 어린이책을 안 읽고 살며 어른이 된 사람이 나중에 짝꿍을 만나 사랑하면서 아이를 낳으면, 새삼스레 어린이책을 읽는다. 이녁 아이한테 읽히려고 어린이책을 새롭게 장만한다. 이때에 ‘왜 어린이였을 적에 안 읽은 어린이책을 이제 와서 읽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어린이책을 왜 어린이였을 적에는 못 읽고 어른이 되어서야 읽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릴 적에 이 사랑스러운 어린이책을 읽었으면 내 마음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며, ‘이처럼 놀랍고 좋은 어린이책을 뒤늦게 깨닫고 읽으니 우리 아이를 한결 깊고 넓게 아끼고 사랑하는 빛을 얻는구나.’ 하고 깨닫기도 한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읽도록 만드는 책이다. 틀림없다. 그런데, 어린이책은 어린이보다 어른을 더 일깨우고 가르치면서 눈물과 웃음을 뽑아내지 싶다. 어쩌면, 어린이책이란, 어린이한테 읽히겠다는 뜻을 내걸지만 정작 어른들이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을 언제까지나 한결같이 지키거나 보살피고 싶은 꿈을 담아서 빚는 책이라고 할 만하지 싶다.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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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과 늑대 내 친구는 그림책
야마구치 도모코 지음, 조은란 옮김, 호리우치 세이이치 그림 / 한림출판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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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3

 


외딴 숲속에서 살아가려면
― 나무꾼과 늑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야마구치 도모코 글
 주은란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7.2.15.

 


  북녘은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남녘에서는 깊은 두멧자락에서 살아도 멧짐승이 덮칠까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이제 남녘에서는 사람을 다치게 할 만한 멧짐승이 없습니다. 범도 곰도 없으며, 늑대도 이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 헤아려 보면, 범이나 잡아먹을 짐승이 거의 없다 할 만하고, 늑대나 이리가 잡아먹을 짐승 또한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면, 먼먼 옛날 시골에서 살던 옛사람은 두멧자락 삶이 두려웠을까요? 깊은 두멧자락에 외따로 떨어져 살던 옛사람은 범이나 곰이나 늑대나 이리를 두렵게 여기면서 살았을까요?


.. 집 안은 온통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나무꾼은 서둘러 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그때, 늑대 한 마리가 찾아와 ..  (4쪽)

 


  옛사람이 살던 집은 오늘날처럼 샤시문이 없습니다. 옛사람이 살던 집은 오늘날처럼 벽돌담이나 쇠대문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돌로 쌓은 울이 있습니다. 기와집이면 모르되, 흙과 풀로 지은 집에는 따로 대문이 없습니다. 울바자라든지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을 뿐입니다. 탱자나무 울타리조차 없이 싸리울이 있기도 하고, 싸리울조차 없기도 합니다. 그러면, 방과 마루를 드나드는 문은? 창호종이 한 장 얇게 바른 문입니다. 문고리로 닫는다 하지만, 사람이나 큰 짐승이 쿵쿵 때리면 부서지는 나무문입니다. 게다가 벽이란 흙으로 바른 벽이니, 벽을 쿵쿵 쳐도 흙이 우수수 무너지겠지요.


  더 헤아려 보면, 여느 시골마을 옛사람 살던 흙집에는 구렁이가 함께 살아갑니다. 지붕을 짚으로 이으니, 서까래에 구렁이라든지 뱀이 살아갑니다. 서까래에서 살아가는 구렁이가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집을 덮친다는 이야기는 어느 마을에서나 흔해요.


  그러니까, 옛사람 시골집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쳐들어오려면 쉬 쳐들어오는 집이요, 부수려면 손쉽게 부술 만한 집입니다.


.. 갑자기 나무꾼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무꾼은 소리쳤습니다. “가트리느, 이 녀석에게 수프를 듬뿍 끼얹어요!” ..  (11쪽)

 


  요즈음 시골집도 뒷간은 으레 바깥에 있습니다. 집 안쪽에 뒷간이 있는 시골집은 없습니다. 서양집처럼 새로 짓거나 나중에 칸을 늘려 수세식 변기를 놓으면 집안에도 뒷간이 있는 셈이지만, 예나 이제나 시골집은 집 바깥에 뒷간이 있습니다. 게다가 집하고 제법 떨어진 자리에 뒷간을 둡니다.


  캄캄한 밤에 똥이 마려우면 집에서 나와 뒷간으로 가야겠지요. 울 하나 제대로 없는 집에서 등불 또한 하나 없는데 찾아가는 뒷간이란! 밤하늘 별이 와락 쏟아지는 밤마실 될 테지요. 다만, 아이들은 밤에 뒷간 가는 길이 무섭겠구나 싶어요. 뒷간이라 하더라도 거적을 덮었을 뿐이니, 밤에 뒷간에서 볼일을 보다가 범이나 늑대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하고 벌벌 떨 만해요.


  그래도 옛사람은 옛사람대로 호젓하고 깊은 두멧시골에서 잘 살았습니다. 종이 한 장으로 바른 문이니 겨울이면 방에서도 자리끼가 꽁꽁 얼었을 텐데, 겨울 추위를 그럭저럭 났어요. 겨울에도 기저귀를 빨고, 겨울에도 밥을 지으며, 겨울에도 아이들은 손과 코가 발개지도록 바깥에서 뛰놀며 자랐습니다.


  숲에 범이 있더라도 숲에서 놉니다. 늑대나 여우가 나타나더라도 거리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디를 가도 숲인데 숲에 범이나 늑대가 있대서 무섭게만 여기면, 살아갈 수 없어요. 논과 밭에서 어떻게 일하겠어요. 나무를 어떻게 하겠어요. 풀을 어떻게 뜯겠어요. 방아를 찧고 절구를 찧으며 멧돌을 돌려야 하는데, 바깥에서 하는 일이 무섭기만 하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큰 짐승한테 잡아먹히는 토끼도 숲에서 범과 늑대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노루도 사슴도 숲에서 범이랑 늑대랑 함께 살아가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커다란 짐승이 있다면 작은 짐승도 함께 살고, 사람을 잡아먹을 만한 짐승이 있어도 어른과 아이는 씩씩하게 숲살림을 꾸립니다.

 


.. 나뭇꾼이 숲 속에서 나무를 자르고 있는데, 화상을 입어 머리가 벗겨진 늑대가 15마리 정도나 되는 늑대 무리를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  (16쪽)


  야마구치 도모코 님 글하고 호리우치 세이치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나무꾼과 늑대》(한림출판사,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쓴 이야기를 읽으면, 예전에 프랑스 파리라는 곳에 늑대가 몹시 많았다고 합니다. 파리사람은 늑대가 무서워 도시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기도 한 적이 있다고 해요. 그러면, 프랑스에서 도시 아닌 시골에서 살던 사람은 집 바깥으로 나가기가 더욱 두려웠겠지요. 시골사람은 흙을 일구며 살아야 하니 들과 숲에서 일해야 하거든요. 그림책 《나무꾼과 늑대》를 읽는 내내 옛날 유럽사람 삶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사람들 삶을, 사랑하는 짝꿍과 단출하게 시골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삶을, 푸른 바람을 마시고 맑은 냇물을 먹으면서 살아가던 사람들 삶을 가만히 그립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그러니까 프랑스 옛이야기에 나오는 ‘숲속 나무꾼’과 ‘숲속 각시’는 늑대를 무서워 했을까요? 이네들 살던 숲에도 범이 있었을까요? 이네들은 왜 문을 벌컥 열어 놓고 밥(스프)을 끓였을까요?


  이야기를 곰곰이 살피면, 집안에 늑대가 들어왔어도 딱히 놀라지 않습니다. 덜덜 떨지 않습니다. 이 녀석을 어떻게 내쫓나 하고 차분하게 생각합니다. 나무꾼은 숲속에서 홀로 나무를 베다가 열다섯 마리나 되는 늑대떼를 만납니다. 이때에도 나무꾼은 덜덜 떨지 않습니다. 얼른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숨은 뒤 차분하게 생각합니다. 이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벗어날 길을 슬기롭게 찾습니다.


  늑대가 집 둘레에서 어정거린대서 바깥일을 안 하지 않습니다. 늑대가 있건 말건 봄에는 숲딸기를 따러 다니겠지요. 늑대가 보건 말건 냇물에서 빨래를 하겠지요. 늑대가 다니건 말건 버섯을 따고 나물을 뜯겠지요.


  외딴 숲속에서 살아가는 마음이란, 숲과 내가 하나라고 여기는 마음이리라 느낍니다. 외딴 숲속에서 살아가는 사랑이란, 숲과 나를 함께 아끼는 사랑이리라 느낍니다. 나무꾼과 각시는 늑대가 다시는 얼씬도 못하도록 혼찌검을 냅니다. 도란도란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오순도순 예쁘게 살아가요.


  먼먼 옛날부터 시골이 시골로 이어지던 삶이었을 테니, 프랑스에서는 “나무꾼과 늑대” 이야기를 빌어, 씩씩하고 즐겁게 꾸리는 살림살이를 넌지시 알려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숲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숲을 아끼고 사랑하라고, 숲과 내가 늘 한몸인 줄 느끼라고, 숲에서 만나는 모두를 이웃과 동무로 삼으라고, 늘 차분하면서 슬기롭게 살아가라고 하는 넋을 아기자기하게 엮어서 들려주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나저나, 이 그림책 번역 가운데 “나무를 자르고 있는데(16쪽)” 같은 말마디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무꾼은 나무를 도끼로 ‘벱’니다. 그림책에도 도끼가 나옵니다. 나무를 벤다고 해야지요. 장작을 팬다고 해야지요. 어떻게 나무를 ‘자를’ 수 있을까요. 늑대가 “화상을 입어 머리가 벗겨(16쪽)”졌다고도 나옵니다만, 아이들 그림책에 쓰는 말씨를 돌아본다면, “뜨거운 국에 데어 머리가 벗겨”졌다고 손질해야 올바르지 싶어요. 우리 말을 찬찬히 잘 살피면 훨씬 멋스러운 그림책입니다.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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