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만화를 모은 《스즈에 미우치 단편》 세 권이지만, 두께도 부피도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퍽 두툼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이야기로 낱권책 한 권 부피를 그렸으니 ‘단편’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른다. 더욱이, 《유리가면》은 아직 연재가 안 끝난 만큼, 이녁한테는 이런 책 한두 권이야 ‘단편’이 되겠구나 싶다. 어쨌든 《스즈에 미우치 단편》 셋째 권인 “백합기사”를 읽으며 생각한다. 스즈에 미우치 님은 사람들이 흔히 아는 대로 “백합기사”를 그리지 않는다. 프랑스가 영국 식민지와 같은 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까지만 그리고, 그 뒤에 겪어야 한 슬픈 이야기는 그리지 않는다. 모든 이야기를 다 그려야 하지 않으리라. 모든 이야기를 애써 다 그려야 하지 않기도 하다. 어느 한 사람 이야기를 평전이나 전기로 쓴다고 할 적에, 이 한 사람이 살아온 모든 발자국을 책에 담지 못한다. 이렇게 하려면 수백 권에 이르는 책으로 갈무리해도 다 담지 못하기 마련이다. 추리고 솎고 갈무리하면서 새 이야기로 엮어야 한다. “백합기사”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만하겠지. 백합기사와 얽힌 온갖 이야기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마음으로 깊이 아로새기면서 함께 나눌 때에 아름답다고 여기는 고갱이를 골라서 가장 맑게 그렸다고 할 만하겠지. 4347.2.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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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에 미우치 단편 3- 백합기사, 단편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8월
4,800원 → 4,320원(10%할인) / 마일리지 240원(5% 적립)
2014년 02월 14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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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 밤밥, 새벽밥, 아침밥

 


  엊저녁에 아이들 저녁밥을 차려 줄 즈음 마당을 살피니, 떠돌이 개가 온데간데없다. 어디로 갔을까. 저녁을 좀 늦게 주는가 싶어 먹이를 찾으러 마실을 갔나. 여덟 시 사십 분 즈음에 아이들 재울 때까지 떠돌이 개는 안 보인다. 아이들 새근새근 재우고 나서 열 시 즈음 살며시 일어나 돌아볼 적에도 안 보인다. 그러다가 열두 시가 넘을 무렵 비로소 본다. 너 밥은 먹고 다니니? 틀림없이 굶었겠지? 밤 열두 시에 국을 뎁혀서 개밥을 차려 마당에 내려놓는다.


  새벽에 일어나 마당을 살피니 밥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배고팠구나. 그러게, 밥때에 맞춰 집에 있어야지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다가 밥을 다시 차리게 하니.


  새벽에 방에 불을 넣으면서 쌀을 헹군다. 엊저녁에 아이들 밥을 차려 주면서 비운 냄비에 누런쌀을 미리 불렸고, 아침에 물갈이를 한다. 두어 시간 흐르면 아이들은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날 테고, 새삼스레 아침밥 차리느라 부산을 떨어야 하리라. 어제 작은아이가 그림책에 나온 이쁘장하게 보이는 밥을 곁님한테 보여주면서 “이것 먹고 싶어.” 하고 말했다는데, 오늘 아침은 눈으로 보기에도 예쁜 반찬을 차려서 밥상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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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은 봄까지꽃과 함께

 


  우리 집 대문 앞 조그마한 터에 봄까지꽃이 꽃망울을 터뜨린 지 이레가 지났습니다. 이레 앞서 처음 꽃망울을 보면서 사진으로 찍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들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가는 길이라 그냥 지나쳤습니다. 다른 날에도 사진을 찍자 하고 생각하다가 또 지나쳤어요. 어제 낮에 비로소 사진 한 장 찍습니다.


  두 아이는 따순 볕을 누리면서 마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놉니다. 마을 빨래터에도 가고, 빈논에도 들어가 보고, 발 닿는 곳이라면 어디이든 다닙니다. 이러다가 우리 집 대문 앞으로 와서는 큰아이가 문득 노래를 부릅니다. 작은아이는 누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춤을 추다가 대문 앞 작은 꽃송이를 밟기에, “보라야, 여기 봐. 여기 아주 작은 꽃이 피었어. 그렇게 밟으면 얘가 아야 하니까 밟지는 말아라. 예쁘다 해 줘라.” 하고 말합니다. 네 살 어린이 새끼손톱보다 훨씬 작은 보라빛 꽃망울이 해사하게 웃습니다. 겨울이 지나간다고 밝히는 꽃, 겨울이 저물며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고 알리는 꽃, 겨울바람이 저물면서 봄바람으로 달라진다고 노래하는 꽃, 조그마한 봄까지꽃은 이제 논둑과 밭둑과 빈터를 촘촘히 덮겠지요.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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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말기 놀이 1 - 할머니가 건넨 달력을

 


  할머니가 산들보라한테 달력종이를 하나 건넨다. 누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라는 뜻으로 건네셨는데, 산들보라는 그림놀이보다는 다른 놀이가 훨씬 재미있다. 언젠가 누나가 하면서 놀던 종이말기를 떠올리면서, 씩씩하게 종이를 만다. 누나는 그림 못 그리게 왜 마느냐 하고 따진다. 할머니는 큼직한 달력종이를 두 장 더 주신다. 누나는 이제 군말 없이 그림놀이를 하고, 동생은 신나게 종이말기를 하면서 입을 대고 나팔을 분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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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4-02-14 12:46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종이 한 장만 던져 줘도 저렇게 행복한 것을요!!!

파란놀 2014-02-14 15:51   좋아요 0 | URL
종이 한 장,
작대기 하나,
돌 하나,
풀 한 줌,
물 한 방울로도
언제나 즐겁게 재미있게 놀아요.
 

사진과 함께 34. 발자국이 예쁘다

 


  눈이 오는 날에 발자국이 찍힙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일 적에 비로소 겨울 발자국놀이를 합니다. 눈밭을 지나간 작은 짐승도 발자국을 남기고, 먹이를 찾으며 마당에 사뿐사뿐 내려앉은 새들도 발자국을 남깁니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들고양이도 발자국을 남기며, 얼굴로 눈을 받아먹으며 노는 아이들도 발자국을 남깁니다.


  뽀독뽀독 소리를 듣습니다. 눈을 밟는 소리는 맑습니다. 바람이 살랑 불면서 눈발이 날리면 사락사락 눈이 천천히 쌓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잠들면서 눈송이가 굵어지면 스륵스륵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눈이 내리는 소리는 무척 낮습니다. 나즈막하면서 투박합니다. 먼 데서 별이 흐르는 소리와 같고, 봄꽃이 봉오리를 터뜨리는 소리와 같습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소리와 함께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가랑잎이 지는 소리를 가만히 그립니다. 감잎이 질 때와 후박잎이 질 때에는 소리가 다릅니다. 매화잎이 질 때와 모과잎이 질 때에도 소리가 다릅니다. 나뭇잎이 다른 만큼 잎이 떨어지면서 퍼지는 소리는 저마다 다릅니다.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다 다른 소리를 알아챕니다. 마음을 열 수 있으면 다 다른 소리를 포근히 껴안습니다.


  요즈막에는 도시 아이들이 자동차 소리를 다 가눈다고 해요. 회사마다 다른 자동차에 따라, 바퀴 구르는 소리가 다르다지요. 시골마을 우리 집 아이들도 군내버스 지나가는 소리와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와 짐차 지나가는 소리가 다 다른 줄 알아챕니다. 자동차마다 소리가 다르듯 가랑잎 지는 소리가 다르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부는 바람이 내는 소리가 다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내는 발걸음 소리가 달라요.


  발자국 모양과 크기가 다르니 발걸음 소리가 다르겠지요. 눈밭에 남기는 발자국을 들여다보면서 이 발자국을 남기는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일곱 살 아이 발자국은 일곱 살을 살아가는 아이다운 빛이 서려 예뻐요. 여덟 살이 되고 아홉 살이 되며 열 살이 되면, 그때에는 여덟 살과 아홉 살과 열 살이 되는 결에 따라 예쁜 빛이 서리겠지요.


  기계 단추를 누르는 일이 사진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저마다 꾸리는 삶을 읽을 줄 아는 눈길이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공책에 연필로 적는다고 모두 글이 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저마다 일구는 삶을 읽을 줄 아는 마음씨가 글이라고 느낍니다. 마음을 실어 이야기를 지으니, 사진이 되고 글이 됩니다.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며 웃는 삶일 때에, 사진이 태어나고 글이 태어납니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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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4 0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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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4 1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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