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을 견디면서 일하기

 


  딱 하루만 인천에서 묵고는 이틀치기로 서울마실을 하니, 시외버스로 움직인 열 몇 시간 동안 시달린 속을 쉬어야 했는데, 서울시 공문서를 손질하는 일을 마무리지어야 했기에, 이틀을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리면서 보냈다. 몸이 아야아야 하면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모른다. 참말 아파서 죽음 문턱에 이른 사람들 삶이 어떠했을까 하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오랜 나날 아픈 몸으로 살아오며 빛을 밝힌 어르신들을 곰곰이 되새긴다. 아버지가 바깥일 때문에 시골집에서조차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책상맡에서 일손만 붙잡더라도 씩씩하게 놀며 기다려 준 아이들이 고맙다. 누구보다 아이들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 아이들이 있기에 더 기운을 내어 일할 수 있었다고 느낀다. 4347.2.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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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건너뛸 수 없는 기저귀 빨래

 


  아무리 바빠도 기저귀 빨래는 건너뛸 수 없다. 여느 빨래는 좀 건너뛴다 하더라도 기저귀 빨래만큼은 늘 꼬박꼬박 해야 한다. 두 아이 자라는 동안 두 아이 오줌기저귀와 똥기저귀는 날마다 수없이 빨래했고, 두 아이 젖물리기 끝나고 난 뒤에는 곁님 핏기저귀 빨래를 다달이 한다. 여러모로 일이 몹시 바빠 아이들한테 밥을 제대로 차려 주지 못한 나머지 라면이나 국수만 삶아서 주더라도, 기저귀 빨래는 건너뛰지 못한다. 엉덩이도 너무 아프고 빨래를 미룰 수도 없어, 씻는방에 쪼그려앉아 핏기저귀 아홉 장을 빨면서 며칠 미룬 빨래꾸러미를 복복 비빈다.


  쪼그려앉아 비빔질을 하는 데에도 엉덩이와 허벅지가 아프다. 그래도 어깨가 결리지 않으니 고맙다. 어깨가 결릴 적에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누울 수 없었다. 이제는 엉덩이가 아프니 이리 엎드리다가 저리 엎드리곤 하는데, 허벅지까지 쑤시니 엎드리더라도 힘들고, 모로 누워도 뻐근하다.


  잘 비비고 헹구어 물기를 짠 핏기저귀 아홉 장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햇볕이 포근하다. 곧 삼월이 다가온다고 느낄 만하다. 해가 퍽 높아 이제는 처마 안쪽으로 잘 깃들지 않는다. 겨울에는 해가 꽤 낮아 마루로 햇볕이 깊이 들어온 터라, 온도가 낮아도 집안이 퍽 따스했다면, 봄이 가까운 탓에 해가 높다 보니 한낮에는 마루로 아예 햇볕이 스미지 못한다. 삼월을 지나 사월쯤 되어야 비로소 집안에 따스한 기운이 퍼지겠구나 싶다.


  처마란 참 대단하구나. 철 따라 햇볕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구나. 여름에는 시원하도록 하고 겨울에는 포근하도록 하는 처마로구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처마를 맨 처음 누가 떠올렸을까.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뿐 아니라 핏기저귀도 햇볕에 말려야 잘 마른다. 햇살을 듬뿍 머금은 기저귀는 우리 몸에 따스하게 감긴다. 봄을 부르는 멧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빨래마다 스며든다. 푸릇푸릇 돋는 봄꽃이 앞다투어 빨래한테 푸른 숨결을 나누어 준다. 우리 집 동백꽃도 곧 꽃망울 터뜨리겠지. 4347.2.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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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를 이기는 글쓰기

 


  끝날 듯 끝날 듯하면서 끝나지 않는 일이 있다. 서울시 공문서를 손질해 주는 일을 한다. 내가 할 몫은 끝났으나, 새로운 몫이 자꾸 생긴다. 새로운 몫을 더 맡으며 일을 하다가 생각한다. 아직 새로운 몫이 있으면 내 일은 더 있는 셈이요, 더 배우고 살필 대목이 있다는 뜻이라고.


  서울마실을 하기 앞서까지 엉덩이가 아프도록 걸상에 앉았고, 서울마실을 마친 뒤로도 몸을 못 쉬고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걸상에 앉는다. 일을 쉬며 밤잠을 잘 적에는 엉덩이가 아파 모로 눕는다. 나중에는 허벅지까지 아프다.


  옛날 사람들이 책상맡에서 손으로 원고지에 글을 쓸 적에는 엉덩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하루 내내 책상맡에서 타자를 하거나 주판을 놓아야 하던 경리들은 엉덩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자리에 못 앉도록 일으켜세워 하루 내내 일을 시킬 적에도 몸이 고단할 테지만, 자리에 꼼짝없이 앉혀서 하루 내내 일어서지 못하도록 시킬 적에도 몸이 고달프리라 느낀다. 사람은 일어서기도 하고 앉기도 해야 한다. 눕기도 하고 걷기도 해야 한다. 조금만 더 하자는 마음으로 버틴다. 얼마쯤 버티면 이 일을 마칠 수 있을까. 엉덩이에 살점이 많은 우리 몸 얼거리를 새삼스레 돌아본다. 엉덩이에 살점이 많아야 더 오래 걸상에 앉을 만할까. 엉덩이에 살점이 없으면 누워서 쉬기도 어렵겠지. 4347.2.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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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은 여우 내 친구는 그림책
이사미 이쿠요 글.그림 / 한림출판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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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6

 


사람이 참새보다 낫지 않다
― 알을 품은 여우
 이사미 이쿠요 글·그림
 허앵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1994.5.1.

 


  가끔 도시로 일을 하러 다녀옵니다. 전남 고흥은 어느 도시하고도 참 먼 시골이기에, 어디로든 도시로 일을 하러 가자면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섭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적에는 언제나 저녁별이나 밤별을 등에 업습니다.


  엊그제 이틀치기로 서울과 인천을 다녀오면서 밤 열두 시 언저리에 고흥에 닿았습니다. 서울과 인천에서는 별을 보지 못했고 별을 볼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인천은 서울보다 건물이 낮지만, 시골처럼 한 층짜리 집이 죽 늘어서지는 않습니다. 골목동네에서도 곳곳에 빌라가 많으니 별바라기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하늘이 너무 좁아요. 서울에서는 밀려드는 자동차 물결 때문에 하늘 볼 틈이 없지요. 게다가 깊은 밤까지 불빛이 밝은 서울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별이건 달이건 떠올리지 않으리라 느껴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고흥읍에서 내려 택시를 불러 탑니다. 택시 창밖으로 별을 봅니다. 읍내를 벗어난 택시는 바다도 멧자락도 들도 하늘도 모두 깜깜한 길을 조용히 달립니다. 이곳에서는 택시나 버스를 타고 움직이면서 별바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택시를 내립니다. 천천히 걸어 집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모두 잠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낮 동안 마당에서 놀며 어지른 것을 치웁니다. 마루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루며 방이며 부엌이며 어지럽습니다. 몸이 고단하지만 이대로 두고 쓰러질 수는 없습니다. 한참 치우고 걸레질을 합니다. 한숨을 돌리려고 마당으로 다시 내려섭니다. 별바라기를 합니다. 이 좋은 별을 보며 살자고 시골로 왔지, 하고 헤아립니다. 이 좋은 별빛을 받는 시골에서 푸르게 자라는 풀과 꽃과 나무를 누리자고 조용조용 살아가지, 하고 돌아봅니다.

 


.. “아주 먹음직스러운 알이네. 한입에 삼켜버리자. 아니, 잠깐!” 여우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먹을 거라면 이 알을 따뜻하게 품어서, 태어난 아기 새를 꿀꺽하자.” ..  (2쪽)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을 한참 바라봅니다. 이불을 여미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습니다. 코를 부비고 다리를 주물러 봅니다. 어른인 나와 견주어 조그마한 발을 조물주물 주무릅니다. 이 작은 발로 오늘 하루 얼마나 신나게 뛰놀았니, 이 작은 발로 얼마나 개구지게 뛰고 날면서 하루가 신났니.


  아이들이 있기에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노래하기를 바라니까, 자동차 걱정을 하지 않는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온갖 놀이를 찾아내고 지으면서 자라기를 바라니, 어디에서 무엇을 만져도 근심할 일이 없는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구나 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아파트 아닌 다세대주택에서 살아도 아이들이 집안에서 뛰도록 두기 어렵습니다. 아파트숲 아닌 골목동네에서 살더라도 아이들은 자동차 걱정을 해야 합니다. 나라에서 어린이집 보육비를 대준다 하더라도 썩 반갑지 않습니다. 보육비를 대주는 일보다 어린이집이 어떤 노릇을 하는가를 살펴야지 싶어요. 아이를 낳아 보살피는 삶은 돈으로는 가꾸지 못해요. 아이는 언제나 사랑으로 낳고,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스럽게 놀고, 사랑스럽게 노래합니다.

 


.. 큰 소리에 여우가 눈을 떠 보니, 족제비가 알을 깨뜨리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크릉, 크릉! 무슨 짓이냐, 내 알이야!” 여우는 새처럼 입으로 쿡쿡 족제비를 찌르며, 털북숭이 꼬리로 힘껏 때렸습니다 ..  (15쪽)


  이사미 이쿠요 님 그림책 《알을 품은 여우》(한림출판사,1994)를 읽습니다.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는 “왜 여우가 알을 품어?” 하고 묻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닌 적 없고 다큐영화도 거의 본 일이 없는 일곱 살 큰아이는 여우가 새끼를 낳는지 알을 낳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요즈막에는 ‘새는 알을 낳는다’는 대목 하나는 조금 알아챘습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보다가 “족제비가 왜 알을 먹으려고 해?” “배고파서.” “족제비가 알을 먹으면 새가 태어나지 못하잖아.” “그러게. 새가 태어나지 못하지. 그런데 족제비는 배고프니까 알을 먹어야 해.”


  큰아이는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요. 아니,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를 어느덧 잊었을까요. 여우도 알을 먹을 생각이었어요. 여우도 알을 먹으려 합니다. 다만, 알에서 새끼 새가 깨어나면 더 맛나게 먹을 생각이에요.


.. 여우는 매일 매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알을 고이고이 품었습니다 ..  (26쪽)


  내가 낳은 목숨이든 남이 낳은 목숨이든 모두 같습니다. 내가 돌보는 목숨이든 남이 돌보는 목숨이든 모두 같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와 내가 씨앗을 심어 돌보는 밭이 서로 같습니다. 내가 쓴 글과 내가 장만한 책이 서로 같습니다.


  목숨은 어디에서나 같습니다. 같은 값이라서 같지 않습니다. 같은 사랑이라서 같습니다.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미국사람이 버마사람이나 라오스사람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어른이 아이보다 낫지 않으며, 아이가 어른보다 낫지 않습니다.


  사람이 참새보다 낫지 않습니다. 이와 똑같이, 참새가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낫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꽃이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모두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목숨이요 숨결이면서 이웃이자 동무입니다. 저마다 한식구를 이루어 저마다 예쁜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 난처해진 여우는 아기 새를 두고 숲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둥지 안에 두고 온 아기 새가 걱정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삐익삐익, 삐익삐익.” 불쌍한 아기 새의 울음소리가 숲 속까지 들려왔습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 ..  (37쪽)


  여우는 새끼 새를 잡아먹지 못합니다. 여우는 새끼 새를 잡아먹을 수 없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알을 고이고이 품”으며 지냈는데, 이 알에서 깨어난 여린 목숨을 어떻게 잡아먹을까요. 아마 여우는 앞으로 ‘풀 먹는 여우’로 달라질는지 몰라요. ‘풀 먹는 여우’로 살다가, 풀이 아파할까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면, 풀조차 안 먹고 ‘바람과 이슬을 먹는 여우’로 다시 태어날는지 몰라요. 하느님 눈물을 쏙 뺄 만큼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여우로 살아갈 테지요. 하느님 웃음을 빙그레 자아낼 만큼 멋지고 예쁘며 즐거운 여우로 살아가겠지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모두 한마음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은 모두 한넋입니다. 사랑이 가득 담긴 한마음이요, 꿈이 그득 실린 한넋입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요.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앉아 땅을 봐요. 가만히 서서 두리번두리번 이웃을 둘러봐요. 눈을 살며시 감고 마음속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느껴요. 우리는 서로서로 어떻게 살아갈 적에 환하게 빛나면서 맑게 노래할 수 있는 숨결일까 헤아려 봐요. 4347.2.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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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 + 1초

 


  2월 19일 수요일 낮에 서울 망원역에서 전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역으로 간다. 그리 멀지 않을 듯했는데 막상 전철로 달리고 보니 그리 가깝지는 않다. 18시 20분에 순천으로 떠나는 시외버스를 탈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 아슬아슬하다고 느낀다. 고흥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17시 30분이 막차. 이 버스를 놓쳤기에 순천으로라도 가야 하는데, 순천으로 가는 18시 20분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있어도 고흥으로 들어갈 버스가 없다.


  고속터미널역에서 전철이 선다. 서울마실을 하며 장만한 책으로 꽉 찬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두 손에도 책으로 꽉 찬 천가방을 둘 든 채 뒤뚱뒤뚱 달린다. 계단을 헉헉거리며 오르고, 자동계단에서는 살짝 숨을 돌린다. 표 끊는 곳까지 다시 달린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앞에서 표를 끊는 사람들이 아주 느긋하다. 줄을 설 적에는 모두 ‘앞사람이 언제 줄어드나’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제 차례가 되면 참 느긋하게 표를 끊기 일쑤이다. 시계를 보니 버스가 떠나기까지 3분 남는다. 천천히 표를 끊는 사람들이 모두 지나간 뒤 “예약한 표요.” 하면서 카드를 내민다. 바로 표를 끊어 준다. 표를 받아 입술로 문 다음 달린다. 순천으로 떠나는 시외버스가 막 문을 닫고 떠나려 했다. 등에 멘 가방은 짐칸에 얼른 넣는다. 천가방은 손에 들고 버스에 오른다. 내가 오르지마자 버스는 문을 닫고 부릉부릉 움직인다. 흔들흔들한 버스에서 맨 뒤에 있는 내 자리로 간다.


 18시 20분에 고속터미널역에서 빠져나오려는 시외버스는 좀처럼 못 움직인다. 서울에서는 퇴근 시간이다. 한참 걸려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이러다가 순천 버스역에 닿은 뒤 고흥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를 놓치려나? 순천에서 고흥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시외버스는 22시 13분이다.


  서울에서 순천까지 달리는 시외버스는 3시간 45분 걸린다고 하는데, 서울에서 벗어나는 데에 퍽 힘들었기 때문인지, 순천 버스역에 22시 12분에 닿는다. 나는 곧바로 22시 13분 버스를 타야 하지만, 순천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시외버스에서 내릴 적에도 참 한갓지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내린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내려 짐칸에서 가방을 내린 뒤 오른어깨에만 걸친 채, 천가방 둘을 왼팔뚝에 꿰고는 달린다. 고흥으로 들어갈 마지막 시외버스가 막 버스역을 벗어난다. 부리나케 달려 문을 콩콩 두들긴다. 버스가 멈추어 준다. 됐다, 멈추어 주기만 하면 태워 줄 테지. 그리고, 문을 열어 준다. “고흥 가지요? 표를 미처 못 끊었는데 고흥에 가서 끊어서 드려도 될까요?” “타소.”


  네 시간 가까이 달린 시외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한 시간을 달릴 시외버스를 타니 엉덩이가 아프다. 그렇지만 버스를 잡았다. 나한테는 막차인 버스를 두 차례 잇달아 잡았다. 10초와 1초가 더 들었으면 둘 다 놓쳤을 텐데, 10초와 1초 사이로 둘 다 잡았다. 23시 훨씬 넘어 고흥읍에 닿은 뒤에는 택시를 불러서 탄다. 온몸이 쑤시지만 마음은 시원하다. 시골바람을 쐬면서 엉덩이를 살살 쓰다듬는다. 4347.2.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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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4-02-20 19:23   좋아요 0 | URL
제가다 숨을 몰아쉬세 되네요 헉헉

파란놀 2014-02-20 21:13   좋아요 0 | URL
서울에 사는 분들은 17시 30분 '막차'를 느끼기 쉽지 않겠지만,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조차 16시 버스를 타더라도 읍내에 닿으면 모든 군내버스가 끊겨 어차피 이 버스를 타도 택시를 타야 한답니다 ^^;;;

아무튼, 참 먼길 달려서 돌아왔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