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1 - 보라 숨었지롱

 


  두 아이가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논다. 그러려니 하고 여기며 밥을 차리다가 두 아이 모습이 안 보이기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디에 숨었기에 안 보이나? 한참 쳐다보니, 두 아이가 서로 평상 밑으로 기어든다. 한 놈은 평상 밑으로, 한 놈은 마당에 해바라기를 시키는 이불 사이에 숨는다. 네 살 산들보라가 평상 밑으로 기어드는 모습이 참 똘똘하다. 네가 기어들기에 아주 알맞구나. 4347.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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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털 - 노순택 사진 에세이
노순택 글.사진 / 씨네21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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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59

 


사진가한테 머리띠를 주지 마셔요
― 사진의 털
 노순택 글·사진
 씨네21북스, 2013.5.14.

 


  잡지 〈씨네21〉에 주마다 싣는다는 사진이야기 가운데 여든 꼭지를 그러모아서 선보인 노순택 님 《사진의 털》(씨네21북스,2013)을 읽습니다. 어느 날 어느 시인과 어느 공장을 찾아갔더니 “전기가 끊긴 창문 없는 공장 안에서, 시인은 내게 사진을 찍으라고 명하였다(25쪽).”고 합니다. 그래서 노순택 님은 전기가 끊긴 깜깜한 공장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창문도 없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장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으라고 하잖아요. 시인이 사진을 찍으라고 하잖아요.


  시인은 나중에 시를 썼을까요. 썼을 수 있고 안 썼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쓸 생각일 수 있고, 어쩌면 안 쓸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가는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사진가는 언제나 바로 이곳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가는 다른 곳이나 다른 때라면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다시 꾸며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무대를 만들거나 모델을 세워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상황이든 무대이든 모델이든 늘 바로 이곳에 있을 때에 찍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 없으면 다시 꾸민 상황이나 무대를 찍지 못하고, 다시 꾸민 상황이나 무대가 있더라도 바로 이곳에 있어야 사진을 찍습니다.


  노순택 님은 어느 사진잔치 자리에서 겪은 일을 “형사님들은 이른바 ‘채증’을 위해 갤러리를 샅샅이 촬영했다. 그분들도 관람객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 누구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누가 우리 작품을 이렇게 세심한 각도로, 이렇게 정성을 담아 카메라에 담아 주었던가(37쪽).”와 같은 이야기로 들려줍니다. 전시관을 샅샅이 찍었다는 형사님이란 얼마나 놀라운 관람객일까 궁금합니다. 참말 어느 관람객도 이렇게 사진을 찍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요모조모 샅샅이 찍으며 ‘채증’을 하는 관람객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잔치 자리를 찾아가는 관람객은 이녁 사진기가 아닌 이녁 마음에 사진 작품을 담기 때문입니다. 이녁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우고 싶으니 사진잔치 자리에 가요. 이녁 마음을 새롭게 북돋우면서 가슴속에 고운 사랑을 심고 싶기에 사진잔치 자리에서 즐겁게 눈빛을 밝힙니다.


  사진을 읽거나 글을 읽거나 늘 똑같으리라 생각합니다. 겉글을 읽으면 속글을 알 수 없어요. 겉사진을 읽으면 속사진을 알 수 없습니다. ㅈㅈㄷ신문을 읽을 적이든 ㄱ이나 ㅎ신문을 읽을 적이든 똑같아요. ㅈㅈㄷ신문만 속살을 파헤치듯이 읽을 일이 아닙니다. ㄱ이나 ㅎ신문도 속살을 제대로 파헤치면서 읽을 노릇입니다. “찍혀 있는 사진을 읽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사진이 보여주는 걸 보되 그 사진이 감추고 있는 게 무엇인지 추리하는 것이다(64쪽).”와 같은 말이 아니더라도,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에 나오는 사진은 무엇인가를 감춥니다. 아니, 감춘다기보다 추리소설을 쓴다고 해야 할 테지요. 추리소설을 쓰는 글과 사진이 넘치니, 신문 독자나 잡지 독자로서는 스스로 탐정이나 형사가 되어 꿍꿍이를 찾아내야 합니다.


  아무래도 오늘 이 나라는 살기에 재미가 없기 때문에 추리소설 같은 글과 사진이 넘칠는지 모릅니다. 참을 참 그대로 이야기하면 밋밋하거나 따분하니, 한 꺼풀을 씌우거나 두 꺼풀을 입히려 하는지 모릅니다. 저마다 계급과 신분과 학력과 돈과 이름값 따위를 앞세워서 잇속과 기득권을 거머쥐려 하니, 추리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꿍꿍이를 감출 수 없는지 모릅니다. 어깨동무하려는 삶으로 나아가지 않고, 이웃을 밟고 올라서서 1등이 되려 하니, 기자도 작가도 추리소설 작가가 되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참말은 아주 쉽습니다. “전쟁은 산 것을 죽일 뿐, 그것이 누구의 삶인지, 어떠한 삶인지 가리지 않는다(147쪽).”와 같은 말처럼, 참말은 아주 쉽습니다. 전쟁은 산 것을 죽입니다. 게다가 전쟁은 죽은 것도 다시 죽입니다. 전쟁은 모두 다 죽입니다. 전쟁은 사람도 죽이고 풀과 나무도 죽입니다. 전쟁은 숲을 죽이고 지구별을 죽입니다. 전쟁은 사랑을 죽이고 꿈을 죽입니다.


  전쟁무기로는 평화를 찾지 못합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하려는 무기이지, 평화를 누리려는 빛이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이웃을 해코지하거나 괴롭히면서 밥그릇을 챙기려는 무기이지, 어깨동무하는 모둠살이로 나아가려는 웃음이 아닙니다. 이리하여, “‘안보의 이름으로 짓밟혀도 좋은 평화’란 성립 가능한 언어일까. 안보의 이름으로 찢겨도 좋은 ‘타인의 공동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194쪽).”와 같이 물을밖에 없습니다. 짓밟혀도 될 만한 평화란 없습니다. 밟혀도 되는 권리란 없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야 하니, 연습이나 훈련을 할 적에 두들겨패도 되지 않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오직 금메달을 따도록 엘리트 체육선수 몇 사람만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어 키워야 하지 않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 맛을 보고자, 앳된 운동선수한테 갖은 욕설을 일삼거나 얼차려를 주어도 되지 않습니다.


  사진가 노순택 님은 “뉴델리의 거리에서 요청됐던 사진가의 윤리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죽음과 그 이유를 증언해 달라는 잠펠 예시의 호소를 전파하는 것이었을까, 눈앞의 불을 끄는 것이었을까(241쪽).” 하고 묻습니다. 사진길 걷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이 물음을 받아 되묻고 싶습니다. 시골 흙일꾼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시골마을 논밭에 농약과 비료를 뿌려야 시골 흙일꾼이 될까요.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교과서에 적힌 대로 아이들을 대입시험지옥으로 내몰면 될까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때맞춰 예방주사를 놓고 때맞춰 유치원에 넣으며 때맞춰 영어를 가르치고 때맞춰 학원과 대학교에 집어넣도록 돈을 착착 벌면 될까요.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사진가는 머리띠를 두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가는 이쪽에 서지 않고 저쪽에 서지 않습니다. 사진가한테는 이쪽 저쪽이 없습니다. 사진가한테는 사진만 있습니다. 너무 마땅한 노릇입니다. 어버이한테는 무엇이 있을까요. 큰아이가 예쁠까요, 작은아이가 예쁠까요. 어버이는 두 아이를 놓고 누가 더 예쁘다 말할 수 있을까요? 아이는 두 어버이를 놓고 어머니가 좋은지 아버지가 좋은지 가를 수 있을까요? 어버이한테도 아이한테도 오직 한 가지만 있어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진가한테 사진만 있는 까닭도 하나입니다. 사진가한테 있는 사진이란, 삶을 담는 사진이고, 사랑을 찍는 사진이며, 빛을 나누는 사진입니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삶과 사랑과 빛을 꿈꿉니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삶과 사랑과 빛을 노래합니다. 시골 흙일꾼은 흙 한 줌으로 삶과 사랑과 빛을 노래합니다. 교사는 교과서 아닌 ‘참사람’다운 모습으로 이끄는 넋을 들려주면서 삶과 사랑과 빛을 이야기해요.


  그나저나, 노순택 님은 머리띠를 두른 사진가이거나 활동가일까요. 아직 머리띠를 안 두른 사진가이거나 활동가일까요. 앞으로 머리띠를 두르고야 말 사진가이거나 활동가일까요. 아직 어느 길머리에 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진가와 어버이와 참사람과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서, 여기에 ‘한국사람’과 ‘서울사람’이라는 자리에 서서 이 나라를 바라봅니다. 노순택 님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곰곰이 지켜봅니다. 4347.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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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2.21.
 : 바람맛이 다르다

 


- 하루 내내 일하느라 바쁘다 보니 아이들한테 밥을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한다. 아픈 곁님은 오늘 면소재지 밥집에 전화를 걸어 바깥밥을 시켜서 먹자 한다. 그런데 내 주머니에 돈이 없다. 서울마실을 하며 책값으로 돈을 퍽 쓰기도 했고, 찻삯과 여관삯으로 들기도 했기에, 딱 삼천 원이 있다. 맞돈이 없으니 무얼 할 수도 없기에, 일이 아직 밀리고 몸이 몹시 아프지만 자전거를 몰고 우체국을 다녀오기로 한다. 곁님한테는 내 몸이 아프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얘기를 해 본들 나를 보살펴 줄 만한 몸이 아니기도 하고, 얘기를 하면 우체국을 자전거 타고 다녀오지 말라 할 테니까.

 

- 몸이 아플 적에 자전거를 타면 여름에도 춥다. 봄을 코앞에 두며 퍽 포근한 날이지만, 몸 때문인지 매우 춥다. 장갑을 꼈어야 했다고 느낀다. 한참 달리며 뒤늦게 깨달았으니 돌아갈 수 없다. 영 도 아래로 떨어진 날씨가 아니나 참 힘들다. 그런데, 면소재지로 가는 길에 맞바람을 맞으면서 ‘바람이 바뀌었나?’ 하고 느낀다. 집에서 마당에 빨래를 널 적에도 바람이 바뀌는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다. 다른 고장은 어떠할는지 모르나, 고흥은 태평양 바다를 곧바로 끼는 남녘 뭍이기에, 철 따라 바람이 바로바로 달라진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 지나 겨울이 되면 높바람이 드세다.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접어들면 마파람으로 달라진다. 집에서 면소재지 가는 길은 ‘마’ 쪽으로 가는 길이니, 맞바람이 된다. 거꾸로, 면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높’ 쪽으로 가는 길이라, 등바람이 된다. 바람맛이 다르다. 아무리 아픈 몸이라 하지만, 달라진 바람맛을 느끼며 즐겁다. 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살짝 웃는다.

 

- 우체국에 들러 10만 원을 찾는다.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네모빵을 두 줄 장만한다. 살짝 빠듯한 이달 살림돈이지만, 새로운 책이 나오면서 널리 사랑받으면 더는 걱정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 집으로 등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린다. 몸이 힘드니 사진기는 집에 두고 나왔다. 새봄내음이 무르익는 들길을 달리지만, 들빛을 제대로 돌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눈에 힘을 주어 구름을 보고 하늘을 본다. 멧등성이를 바라보면서 푸릇푸릇한 기운을 느낀다. 겨울나기를 마친 풀이 새롭게 기운을 내듯이, 나도 아픈 몸을 추스르며 아이들과 다시금 알콩달콩 복닥이면서 놀자고 생각한다. 집에 닿아 땀으로 젖은 웃옷을 갈아입은 뒤 그대로 자리에 뻗는다. 세 식구는 아버지가 사온 네모빵을 먹으며 저녁끼니로 삼기를 바랄 뿐이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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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 왼쪽에 뜨는 '서재지기 사진'에

오랜만에 새 얼굴을 띄운다.

 

지난해에 새로 나온 책은

아무래도 새 얼굴로 띄우기에는

그리 밝거나 곱지 못하다고 여겨 -_-;;;

2011년에 내놓은 책으로 2014년 2월까지

얼굴을 삼았다 @.@

 

아이들 사진을 가끔 붙이기도 했지만,

아이들 사진은

내 글에서만 쓰기로 하고,

이러한 자리에는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철수와영희'라는 출판사에서,

이름부터 수수하고 투박하니 예쁜 출판사에서,

어느덧 세 권째 '우리 말 이야기'를 선보인다.

 

올해에 네 권째 우리 말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을까.

부지런히 글을 가다듬으면 할 수 있으리라.

 

올해에 '철수와영희' 네 권째 우리 말 이야기가 나오든 못 나오든,

올해부터는 <우리 말 살려쓰기> '전집'과 같은 책꾸러미를

차근차근 내놓을 생각이다.

 

두 가지 모두 잘 다스려서

이 나라 이웃들한테

말과 넋과 삶이

어떻게 하나로 이어지면서

아름다운 빛이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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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3-02 16:23   좋아요 0 | URL
새 얼굴이 참 잘 어울리세요. ^^ 더 밝아진 느낌이라 좋아요.
 

[함께 살아가는 말 196] 동백길

 


  2014년부터 온 나라에서 ‘새 주소’를 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시골집이 깃든 곳은 ‘도화면 신호리’를 썼지만, 이제부터 ‘도화면 객사거리길’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우리 마을이 왜 ‘객사거리길’이 되어야 하는가를 듣지 못합니다. 이런 이름은 누가 어떻게 붙였을까 궁금합니다. 시골마을은 무슨 ‘리’라고 하는 행정이름이 있기 앞서 마을마다 마을이름이 있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느 시골마을이든 마을이름이 있어요. 우리 마을은 ‘동백마을’입니다. 우리 마을과 이웃한 다른 마을로 ‘지정마을·신기마을·원산마을·호덕마을·봉서마을·봉동마을’ 들이 있어요. 그러면, 시골에서는 이와 같은 마을이름을 ‘새 주소’로 붙일 때에 알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정마을은 ‘지정마을길’이라 하면 되고, 신기마을은 ‘신기마을길’이라 하면 됩니다. 시골에서는 우체국이나 택배회사 일꾼 누구나 마을이름으로 찾아가요. 버스 일꾼도 택시 일꾼도 모두 마을이름으로 마을을 압니다. 재개발을 많이 해서 옛 모습 사라진 도시에서라면 ‘새 주소’로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붙일 만하지만, 오래된 시골마을에서는 오랫동안 쓴 마을이름을 ‘새 주소’로 삼을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우리 집이 깃든 이곳은 ‘동백길’이나 ‘동백마을길’이라는 이름이 가장 어울립니다. 동백마을이니까요. 4347.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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