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마실 책읽기

 


  내가 처음 외국땅을 밟은 해는 2001년이었지 싶다. 그무렵 일하던 출판사에서 자료모으기와 책나르기를 하려고 일본 도쿄 간다 헌책방거리를 다녀왔다. 그 뒤 다시 자료모으기와 책나르기를 하려고 중국 연길시를 다녀왔고, 북경도서전시회에 한 번 다녀온 뒤, 백두산과 중국 연길시를 다녀온 적 있다. 2005년을 마지막으로 더는 외국땅을 밟지는 않았는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살림집을 네 차례 옮기는 사이 여권을 어디에다 잃었다. 아마 우리 집 어느 짐더니나 책상자 사이에 숨었는지 모르리라.


  여권을 잃고서 찾아보지 않았다. 굳이 찾을 마음이 없었다. 외국에 나갈 일이 있겠느냐 생각했다. 아니, 미처 밟지 못한 한국땅이 넓으니 두 다리와 자전거로 골골샅샅 누비고 싶었다.


  가만히 보면, 내가 그동안 일본과 중국을 밟았을 적에 내 돈을 들인 적이 없다. 늘 다른 님들이 대주었다. 내가 일하던 출판사에서 비행기삯을 대주었고, 2005년에는 이오덕 선생님 아드님이 뱃삯을 대주었다.


  아이들 먹이려고 저녁밥을 한창 차리는데 전화 한 통 온다. 낯선 전화번호이다. 설마 광고전화는 아니겠지 하면서 받는다. ㄱ방송이라고 한다. 응? 지난주에 새로 낸 책이 벌써 언론사에 들어갔는가? 첫 인터뷰가 되는가? 이래저래 생각하며 인사를 하는데, 방송국에서 나한테 전화를 건 까닭은 지난주에 새로 낸 책 때문이 아니다. ㄱ방송에서 찍는 어느 다큐방송에 나오면 좋겠다고 말을 여쭌다.


  집안에 텔레비전을 두지 않으니 어떤 방송이 흐르는지 모르는 노릇인데, 나한테 나오면 좋겠다고 여쭈는 방송은 ‘7박8일 동안 외국을 여행하면서 두 사람이 속내를 털어놓으며 마음을 여는 이야기’를 찍는다고 한다.


  나한테는 여권이 없다고 말하는데, 여권이 없으면 새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긴급여권이라고도 있단다. 비행기삯과 숙박료는 방송국에서 댄다고 한다. 베낭과 옷도 어느 회사에서 150만 원어치를 대준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이 여행에 함께 갈 ‘다시 마음을 열며 만날 사람’을 찾기만 하면 되는 셈이다.


  나는 두 아이 아버지이지만 곁님이 아픈 사람이라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보살피는 몫을 혼자 다하기에 외국에서 여드레, 인천공항까지 오가느라 이틀, 이렇게 열흘씩 집을 비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방송을 찍는다면 언제쯤 날짜를 잡는지 묻고는 전화를 끊는다. 곁님더러 이 이야기를 하니, 열흘 집을 비운다고 걱정하지 말란다. 잘 다녀오라고 한다. 굶어죽지 않겠어? 아이들 옷 잘 갈아입히겠어? 아이들 잘 씻기겠어? 이래저래 묻는데, 다 잘 하겠지요, 하고 대꾸한다. 그래, 그날이 다가오면 그날대로 잘 하겠지.


  유투브에서 예전 방송을 찾아서 몇 가지 들여다본다. 모두들 세계 여러 나라 숲이나 멧자락을 오르내린다. 아하, 이러니까 베낭이나 신이나 옷을 어느 회사에서 대준다고 하는구나.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나라 시골을 가야 하겠네.


  이튿날 아침에 방송국에서 다시 전화한다고 했다. 나는 어느 나라로 갈까? 모르는 노릇인데,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가까운 나라로 가고 싶다. 왜냐하면, 먼 나라로 가면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기니까, 시골집으로 돌아가자면 더 오래 걸리지 않겠는가.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으로 가서, 2001년에 밟아 보고는 아직 더 밟지 못한 헌책방거리와 여러 헌책방을 두루 느끼고 싶다. 사진으로도 담고 이야기로도 엮고 싶다. 4347.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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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4.2.24. 큰아이―봄날 평상에서

 


  달력으로는 아직 봄이 아니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날씨는 봄이다. 볕이 좋고 바람이 달콤하다. 이런 날은 집안에 있을 수 없다. 할배도 아이도 모두 바깥에서 지낸다. 일흔 여든 늙은 분들은 흙을 만지면서 일하고, 일곱 살 어린이는 마당에서 한참 뛰놀다가 평상에 엎드려 글씨쓰기를 익힌다. 봄볕을 보고 봄바람을 들으면서 글씨 하나마다 이야기를 담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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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2.24. 큰아이―물감 그림 재미있네

 


  크레파스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던 아이가 문득 ‘물감놀이’를 알아본다. 이것저것 잔뜩 들쑤시면서 온 집안을 제 장난감으로 어지럽히다가 알아본 ‘물감놀이’를 들고는 어머니더러 병에 물을 담아 달라고 얘기한다. 곁님은 빈 잼병에 물을 따라 주고, 두 아이는 그림종이를 넓게 펼쳐서 붓을 놀린다.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며 논다. 일곱 살 큰아이는 일곱 살 들어 처음으로 물감그림을 그리는데, 석석 부드럽게 그린다. 크레파스나 크레용은 힘을 꼬옥 주고 수없이 비벼야 빛깔이 묻어나지만 물감은 보드랍게 스윽 지나가면 고운 빛이 흐른다. 무척 오랫동안 아주 천천히 알록달록 온갖 무늬와 이야기를 그림종이에 담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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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13] 겉모습

 


  꽃내음은 언제나 꽃내음
  씨앗은 어디서나 씨앗
  삶은 한결같이 삶.

 


  내가 누군가를 겉모습으로 바라보면서 따진다면, 누군가는 나를 겉모습으로 바라보면서 따집니다. 내가 누군가를 속마음을 따사롭게 읽으며 사랑하면, 누군가는 나를 속마음을 따사롭게 읽으며 사랑합니다. 콩을 심기에 콩이 나고, 팥을 심기에 팥이 납니다. 꽃내음을 맡고 싶은 사람은 꽃내음을 맡습니다. 씨앗을 심어 돌보고 싶은 사람은 어디서나 씨앗을 심으며 돌봐요. 내가 남한테 겉모습으로 보여지기를 바라기에, 나 스스로 남을 겉모습으로 바라봅니다. 내가 이웃하고 따순 사랑을 나누며 어깨동무를 하기에, 내 이웃들도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따순 사랑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4347.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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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을 선물하기

 


  책을 장만하는 까닭은 누구보다 나 스스로 읽고 싶기 때문이다. 곁님도 아이들도 없이 혼자 책빛을 누리던 지난날에도 ‘나 혼자만 읽을 책’보다는 ‘뒷사람한테 물려줄 책’을 생각했는데, 곁님과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오늘은 더더욱 또렷하게 ‘아이와 나중에 함께 읽을 책’을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아버지 책을 좋아할 수 있고 안 좋아할 수 있는데, 어느 쪽이든 아이들 몫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해 주건 안 좋아해 주건 ‘책이 있어야’ 좋아하거나 안 좋아할 수 있다. 오늘 널리 읽히는 책이라 하더라도 스무 해 뒤에는 사라진 책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나 스스로 즐겁게 읽는 책을 고이 건사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일을 생각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책짐이라 여긴다면 둘레에 나누어 줄 테고, 아이들이 나중에 책빛이라 여긴다면 기쁘게 읽어 주겠지.


  헌책방을 애써 찾아가서 책을 장만한다. 새로 나오는 책이 날마다 무척 많지만, 굳이 예전 책을 찾으러 헌책방마실을 한다. 판이 끊어졌을 뿐 아니라 까맣게 잊힌 책을 찾으러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간다. 천 사람도 아니고 백 사람도 아닌 열 사람조차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했을 책이라 하더라도 내가 사랑해 주면 즐거운 책이다. 만 사람이나 십만 사람이 사랑해 줄 때에 빛나는 책이 아니다. 내 책은 내가 사랑해 줄 때에 빛난다.


  오래오래 읽으면서 두고두고 물려줄 책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재미나고 예쁜 책들을 본다. 나는 예전에 읽은 책이지만, 오늘날 새책방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책이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지나치지 않기로 한다. 새롭게 장만한다. 다시 읽으려고 장만하기도 하지만, 고운 책이웃한테 선물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웃이 생일도 아니고 다른 어떤 기림날도 아니라 하지만, 엽서에 짤막하게 편지를 써서 슬그머니 책선물로 부치자고 생각한다.


  헌책방에서 장만하는 책을 선물하는 일은 돈으로는 못 한다. 돈값으로 치면 천 원이나 이천 원짜리 책일 수 있고, 돈값으로 치면 삼천 원이나 사천원 짜리 책일 수 있다. 새책방에서 만 원이나 이만 원짜리, 때로는 오만 원이나 십만 원짜리 책을 장만해서 선물할 수 있다. 책선물이라 한다면 책값은 대수롭지 않다. 아름답게 읽을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살필 노릇이다. 두고두고 간직하면서 아름다운 빛과 노래와 내음을 누릴 수 있을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들여다볼 노릇이다.


  선물할 만한 헌책 한 권을 만나 살살 쓰다듬는다. 서른 해 남짓 쌓인 책먼지를 손바닥으로 살살 닦아낸다. 오늘 읽기에 오늘 마음밥이 되는 책이다. 오늘 만나면서 오늘 사랑노래가 되는 책이다. 책이 있으니 책을 읽고, 책방이 있으니 선물할 책을 장만한다. 4347.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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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4-02-25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곳에는 헌책방이 없어서 더 정겹게 느껴지는 페이퍼입니다...
헌책 냄새도 그립구요 ㅎㅎ
학교 다닐때 쪼그려 앉아 읽었던 만화책도 그립구요 ^^ ㅎㅎ
책 사이로 보이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ㅎ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파란놀 2014-02-25 13:25   좋아요 0 | URL
고흥에도 헌책방은 없답니다.
읍내까지 나간 뒤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까지 가야 비로소 헌책방이 있어요.

고흥서 헌책방마실을 하자면, 세 시간에 걸쳐 오가야 하고
찻삯도 이만 원 즈음 들어요 ^^;

그래도, 이렇게 가끔 마실을 할 수 있으면
재미난 책들이 찾아들면서
예쁜 이야기가 샘솟더라구요 ^^

드림모노로그 2014-02-25 14:24   좋아요 0 | URL
아휴 장난이 아니네요
말그대로 헌책 찾아 삼만리길이네요...
함께 살기님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
다시 한번 존경을 ~!! 보냅니다 ㅎㅎ

파란놀 2014-02-25 20:35   좋아요 0 | URL
멀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책방이니
언제나 즐겁게 마실을 다녀요.
순천도 부산도 인천도 서울도~ ^^

대단하다기보다... 책내음이 저를 이끈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