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33] 꽃읽기
― 꽃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우리 시골마을까지 수도물을 놓는다면서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공사를 합니다. 공사를 하려면 한꺼번에 뚝딱 할 노릇이지, 지난해에 조금 지지난해에 다시 조금, 올해에 또 조금 합니다. 툭하면 ‘시멘트로 덮은 고샅길’을 파헤쳐서 무언가 묻는다고 시늉을 하더니, ‘파헤친 시멘트길을 다시 시멘트로 덮은 자리’를 또 파헤쳐서 뭔가를 묻는다 싶더니 이 자리를 다시금 파헤칩니다.


  군청에서 하는 공사인지 도청에서 하는 공사인지 중앙정부에서 하는 공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은 멧골서 흘러내려오는 멧골물을 마십니다. 멧골물을 마시거나 쓸 적에는 아무도 물값을 안 내지만, 수도물을 써야 한다면 모두 물값을 내야 합니다. 시멘트를 까부시고 다시 시멘트를 덮는 돈은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 세금에서 나옵니다.


  수도물 공사를 한다는 이들이 들이닥치면 조용하던 마을이 시끄럽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날 귀가 아픕니다. 게다가 고샅길을 모조리 파헤치니, 바깥으로 나다닐 수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공사를 한창 하거나 마칠 때까지 밭둑과 고샅 가장자리가 다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런 공사를 하면서 다시 시멘트로 땅을 덮을 적에 논도랑이나 밭둑을 몽땅 시멘트로 덮어 주니 아주 고마워 합니다. 풀을 베거나 태우거나 농약 칠 일이 줄어드니 고맙다고들 말합니다. 미나리꽝이 시멘트더미에 잠겨 사라지든, 흰민들레 피고 지는 풀밭이 묻혀 사라지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공사꾼은 일을 마치고 시멘트로 다시 덮으면서 ‘풀빛이 있는 자리’를 죄 시멘트로 발랐습니다. 우리 집 대문 앞 조그마한 풀밭까지 시멘트로 모조리 덮습니다. 한창 봄꽃이 피어나면서 예쁘던 대문 앞 풀밭이었으나 시멘트로 꽁꽁 덮입니다. 봄꽃과 봄풀은 모두 죽었을까요. 곧 피어날 흰민들레도 죄다 죽었을까요. 모시풀이 자라고 제비꽃이 피던 고샅길 가장자리도 시멘트로 덮여 사라집니다. 가끔 깨꽃이 피기도 하고 괴불주머니가 자라기도 하던 조그마한 틈까지 몽땅 시멘트한테 뒤덮입니다.


  시멘트를 들이붓는 공사꾼은 꽃을 보지 않습니다. 전투기를 타고 폭탄을 떨구는 군인도 꽃을 보지 않습니다. 군장을 짊어지고 총을 손에 쥔 군인도 행군을 하거나 훈련을 할 적에 꽃을 보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모는 수많은 어른도 길가나 들판에서 자라는 꽃을 보지 않습니다. 경제나 정치나 문화나 복지 같은 정책을 내놓는 어른도 시골마을 조그마한 꽃을 보지 않습니다. 시골학교 교사조차 꽃을 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마저 꽃을 보지 않습니다.


  시골꽃이 차츰 사라집니다. 시골내음이 차츰 없어집니다. 시골빛이 차츰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 집 어린 아이들은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시멘트로 덮은 논둑길’을 달릴 적에 “하얀 길로 간다!” 하고 노래합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예부터 ‘하얀 길’이 어떤 길을 가리키는지 알기는 하니? ‘하얀 길’이란 예부터 ‘화장터 가는 길’이었어, ‘죽음길’이 바로 하얀 길이란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니? 시골마을 고샅길을 시멘트로 뒤덮어 하얀 길로 만들었다면, 시골마을을 모조리 죽이려는 짓이 된다는 뜻이야.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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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4-03-0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사하는 사람이 시멘트 붓다가 꽃 보면 큰일 납니다.
전투기 조종사가 폭탄 떨어뜨리다가 꽃 보면 큰일 납니다.

공사하는 사람도 꽃을 봅니다.
전투기 조종사도 꽃을 봅니다.
선생님도 마을 이장님도 꽃을 봅니다.

함께살기님도 꽃을 봅니다.

저도 봅니다.

어이쿠.
늦었습니다.
약속 시간 다가옵니다.

파란놀 2014-03-01 11:31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다들 꽃을 보면
공사도 못 하고 전쟁도 못 하겠지요 @.@

봄에 갓 피어난 이 봄꽃이
활짝활짝 꽃잔치를 이루지 못한 채
모두 시멘트밭에 묻혔어요.
이궁.

오늘 하루 아름다운 꽃빛과 함께
꽃내음 물씬 들이켜시기를 빌어요.
 

[당신은 어른입니까 29] 빨래읽기
― 살림은 어떻게 가꾸는가

 


  회사라는 곳에 다니려는 어른들은 흔히 잊곤 합니다. 회사를 다녀야 이녁 ‘발자취(이력)’가 좋아지거나 나아지지 않습니다. 회사를 다녀야 이녁이 그동안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이룬 보람을 살리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다녔고 회사에서 제법 경력을 쌓은 사람이 아이를 낳아 돌봐야 한대서 ‘아까울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회사원이 되려고 대학교까지 다니지 않았어요. 우리 솜씨와 재주는 회사에서만 빛나지 않습니다. 빼어난 솜씨와 훌륭한 재주는 바로 ‘아이한테 물려주려’고 키웠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어머니 몸에서 열 달 동안 자라는 아기입니다. 아기가 어머니 몸에서 열 달 동안 자라면서 어머니가 누리는 기쁨과 사랑은 바로 이때에 한껏 누립니다. 아기를 낳고 난 뒤에는 몸에 품은 고운 씨앗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아기가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빛을 마주합니다. 아기가 스스로 뒤집고 서고 걸으며 달릴 수 있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보면서, 언제나 새로운 빛을 만납니다. 씩씩하게 달릴 줄 아는 어린이는 무럭무럭 큽니다. 하루하루 새삼스럽습니다. 모든 어버이는 모든 아이들 천천히 자라는 흐름을 지켜보면서 이녁 삶을 되돌아봅니다. 어린이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덥석 맡길 일이 아닙니다. 어린이가 크는 결과 무늬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스스로 삶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손빨래를 즐깁니다. 빨래기계 없이 스무 해를 살다가 몇 해 앞서 비로소 빨래기계를 들였습니다. 빨래기계를 집안에 들이기는 했으나 이 기계를 쓰는 일은 드뭅니다. 언제나 거의 모든 빨래는 두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구어서 합니다.


  내가 손빨래를 하는 까닭은 손빨래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늘 만지고 마시는 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조물조물 비비고 헹구면서 이 아이들이 자라는 결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이 작은 옷을 입고 저 작은 몸뚱이가 신나게 뛰놀았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어버이한테 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빛을 누리는 일이란, 회사를 다니며 경력을 쌓거나 돈을 벌어들이는 보람과는 사뭇 견줄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회사는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다시 다닐 수 있습니다. 장사는 언제라도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이 나이 이 모습은 바로 이때가 아니면 나중에는 느낄 수도 찾을 수도 없어요.


  아이들 한두 해 자라는 때는 곧 지나가요. 아이가 여섯 살일 적은 바로 오늘입니다. 아이가 여덟 살이고 열 살일 적은 바로 오늘입니다. 큰아이가 열두 살일 적은 꼭 한 해일 뿐이요, 작은아이가 다섯 살일 적도 언제나 한 해일 뿐입니다. 아이들 이 나이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여주는 싱그러운 빛을 얼마나 즐겁게 누리려는 삶인가를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빨래기계는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쓰면 됩니다. 자그마한 아이들 옷가지를 조물조물 주므르면서 비비고 헹굴 수 있는 즐거움은 바로 오늘 누릴 수 있습니다. 함께 뒹굴고 함께 노래합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나들이를 합니다. 아이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어 무언가 가르쳐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아이와 함께 집에서 지내면서 ‘유치원 교사’나 ‘어린이집 교사’가 가르칠 것을 ‘어버이가 스스로 아이한테 가르칠’ 적에 훨씬 즐거우며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배울 만한 것도 어버이가 스스로 아이한테 가르친다면 훨씬 빛나면서 사랑스러우리라 느낍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언제나 돈으로 사지 못합니다. 사랑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늘 사랑으로 나눕니다. 살림은 돈으로 가꾸지 않습니다. 돈이 넉넉하기에 살림을 잘 가꾸지 않습니다. 살림은 언제나 사랑으로 가꿉니다. 살림은 늘 꿈으로 가꿉니다.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사랑과 꿈이 있을 때에 날마다 새롭게 웃고 노래하는 삶이 됩니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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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37. 마당이 있는 집 2014.2.11.

 


  우리 집에는 마당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마당’이 있기를 꿈꾸었고, 도시에서 살 적에는 옥탑집에서 옥상마당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도시 한복판 옥탑집 옥상마당에서는 하늘만 바라볼 수 있었다. 하늘을 뺀 모든 곳은 시멘트로 올려세운 크고작은 집만 그득했다. 나무도 들도 숲도 없었다. 시골마을에 보금자리를 얻어 살아가는 요즈음은 언제나 마당뿐 아니라 나무와 들과 숲을 함께 누린다. 고개를 들어 내다보면 하늘과 맞닿는 멧자락이다. 마당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후박나무가 있고, 후박나무 그늘에 놓은 평상을 둘러싸고 아이들이 신나게 논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놀이도 즐길 수 있다. 예부터 어느 집에나 마당이 있었는데, 이제는 마당 있는 집이 매우 드물다. 마당 있는 집을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적다. 사람들은 마당을 잃거나 잊으면서 따순 마음씨를 함께 잃지 않나 싶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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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 개를 안고

 


  우리 집에 눌러앉는 개가 저녁에 잘 적에 조금이라도 따스하기를 바라며 안 입는 옷 두 벌을 종이상자에 깔았다. 큰아이가 헌 옷가지로 개를 폭 감싸더니 냉큼 안는다. 개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을 텐데 제법 씩씩하게 안고는 마당을 빙글빙글 돈다. 즐겁니? 즐거우면 네 즐거운 기운이 개한테도 찬찬히 스며들리라 생각해.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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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다 1 평화 발자국 4
허영철 원작, 박건웅 만화 / 보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8

 


‘주의자’란 ‘범죄자’일 뿐
― 나는 공산주의자다 1
 허영철 글
 박건웅 그림
 보리 펴냄, 2010.5.1.

 


  허영철 님이 이녁 삶을 찬찬히 갈무리한 산문책을 바탕으로 새롭게 그린 만화책 《나는 공산주의자다》(보리,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허영철이라고 하는 분은 ‘공산주의자’라 할 수 있을까요? 공산주의란 무엇일까요?


- “언제 무주에 왔습니까? 왜 경찰서에 신고를 안 했죠?” “왜 보고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곳에서는 잠깐 쉬었다가 다른 곳으로 갈 거예요.” “허영철 씨는 보안관찰법 대상자이므로 해당 경찰서에 신고해야 합니다.” “나는 그런 절차는 몰라요.” … “국가보안법 위반 및 간첩 미수로 무기징역을 받았지요? 남이 좋습니까, 북이 좋습니까?” (33∼34쪽)
- “남이 좋다고 하면 보안관찰법을 해제해 줄 것입니다.” “……. 나를 37년이나 징역살이를 시키고, 나와서도 15년이나 감시를 해대는데, 어떤 창자 빠진 놈이 여기를 살기 좋은 데라고 하겠느냐?” (44쪽)


  모든 ‘주의자’는 ‘범죄자’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민주주의자도 평화주의자도 모두 범죄자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를 바라거나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주의자가 되지 않습니다. 민주나 평화를 외친다 해서 주의자가 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은 흙일꾼이나 농사꾼일 뿐, 흙주의자나 농사주의자가 아닙니다.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은 어버이(어머니나 아버지)일 뿐, 아이주의자도 육아주의자도 아닙니다.


  허영철 같은 분이라면 수수한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함께 살아가는 마을살이를 헤아렸을 뿐, 무슨무슨 주의자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와 독재주의에 맞서려는 생각으로 싸운 삶이기에 공산주의가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스스로 주의자가 되는 이는 권력 끄트머리에 앉아서 이것을 지시하고 저것을 명령하는 사람들뿐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기울여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주의자가 되지 않습니다.


- “나는 아름다운 기억이 많아요. 제각 뒤쪽에 화단을 쌓던 일이 떠올라요. 화단에는 황매화, 백매화, 불두화, 연산홍, 자산홍, 모란, 작약, 난초 들이 있었어요. 사철 피는 백일홍이며, 탐스럽게 봉오리를 트는 목련이 있었고, 뜰 앞에는 키 큰 벽오동이 있었지요. 영산홍은 꽃이 질 때 아름답다는 말도 그때 알았고.” (76∼77쪽)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워 고문과 학살을 버젓이 저질렀습니다. 민주주의라면서 시골과 숲을 끔찍하게 망가뜨립니다. 민주주의라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칼을 손에 쥐고는 온 나라 냇물과 들과 숲과 멧골을 중장비로 깎아서 시멘트를 들이붓는 짓을 멈추지 않습니다. 4대강 언저리를 모두 시멘트로 덮어씌우는 짓을 거의 끝마친 이즈음에는, 작은 시골마을 냇물과 도랑물과 골짝물을 갈아엎어서 시멘트를 들이붓는 짓을 끝없이 저지릅니다. 이런 일을 민주주의 정부는 복지와 평화와 민생이라는 허울을 씌우면서 합니다.


  참말 주의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범죄자인 얼굴을 감추려고 스스로 주의자라는 옷을 껴입는 셈 아닐까 궁금합니다.


  허영철 님은 아름다운 이웃들을 떠올리고 그립니다. 허영철 님은 어릴 적부터 이녁 둘레에서 늘 만날 수 있던 꽃과 들과 숲을 떠올리고 그립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허영철 님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그저 ‘마을사람’이고 ‘시골사람’입니다. 작은 마을에서 작은 빛을 노래하는 작은 사람입니다. 작은 시골에서 작은 꽃을 사랑하는 작은 아이입니다.


- “봄부터 배 곯다가 색걸이 내서 먹고 새똥빠지게 일해서 수확하면 또 다 지주집에 갖다 바치고, 그러면서 평생을 허리 한 번 못 펴고 굽실굽실 하며 사는 거지요. 그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고향을 떠나 노동판에 왔는데도 같은 일이 여전히 일어나는 거예요. 내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은 온통 모순투성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다면 고쳐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92쪽)
- “계급 투쟁이라고 하면 무조건 계급이 다른 사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양심 있는 세력들이 모두 통합해 하나로 나가는 것이 궁극으로 해야 할 일이지요. 그래야 모든 인민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242쪽)


  만화책 《나는 공산주의자다》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만화책 《나는 공산주의자다》는 허영철 님 삶이나 넋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책이름부터 알맞지 않고, 허영철 님한테서 길어올리려는 이야기도 눈길을 잘못 맞추었구나 싶습니다. 이념이나 사상으로 허영철 님을 바라보는 국가보안법도 잘못이지만, 이념이나 사상이라는 틀을 넘어서지 않고 이야기를 받아적으려 하던 출판사 편집자도 잘못이로구나 싶습니다.


  허영철 님이 바란 삶은 ‘함께 즐겁게 일구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함께 사랑스레 노래하는 삶’을 바라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와 독재주의하고 싸우려 했으리라 느낍니다. 감옥에서 지내야 한 서른일곱 해는 ‘주의주장을 지키려는 길’이 아니라,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려는 길’이 왜 법에 어긋나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묻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박건웅 님이 그렸던 예전 작품 《꽃》을 떠올립니다. 박건웅 님은 지난날 《꽃》이라는 만화를 그렸지 ‘주의자’가 나오는 만화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날 박건웅 님이 그린 만화가 ‘꽃’이었으면, 이번에 그려야 했던 만화는 ‘주의자’가 아닌 ‘들’이나 ‘풀’이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눈길을 잘못 맞추었으니 이야기가 어긋나고 줄거리가 흐리멍덩합니다. 무엇보다 구태여 산문책을 만화책으로 다시 그리려는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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