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린네 11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21 

 


눈에 보이는 사랑과
― 경계의 린네 11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1.25.

 


  밤이 깊을수록 별빛이 밝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조용합니다. 밤이 깊을수록 느긋하게 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집 아닌 도시에서는 밤이 깊어도 별빛을 누리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깊은 밤에도 별빛을 그리지 않으며 달빛을 쬐지 않습니다. 아니, 도시라고 하는 곳에서는 달도 별도 해도 헤아리지 않는 얼거리이니, 모두들 쳇바퀴를 도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밤이 깊어도 시끄러운 곳에서는 별이 뜨지 않습니다. 밤이 깊어도 자동차가 끊이지 않는 데에서는 별빛이 드리우지 않습니다. 하늘이 뿌옇더라도 별은 늘 하늘에 있지만, 별바라기를 하지 않는 삶터는 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마음에 별이 없으니 하늘에도 별이 없습니다.


- “영이 보이지 않게 해 주는 사탕?” “줄게.” “저한테요?” “저승의 증정용 샘플인데 놀랍게도 공짜라는군.” (9쪽)
- “괜찮아, 마미야?” “응? 혹시, 뭔가 있었던 거야?” ‘평범하다는 건 정말 좋아!’ (29쪽)

 


  눈에 보이는 사랑이기에 사랑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기에 사랑입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랑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봄날 피어나는 조그마한 봄꽃은 사랑입니다. 봄날 피어나려고 겨우내 흙 품에 안겨 포근한 볕을 기다린 풀씨는 사랑입니다. 잎사귀를 갉아먹으며 고치를 짓고 마지막 잠을 자는 애벌레도 사랑입니다. 나비로 깨어나 훨훨 날갯짓하는 숨결도 사랑입니다.


  누군가는 애벌레와 고치와 나비를 모두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애벌레도 고치도 나비도 바라보지 못합니다. 시멘트와 쇠붙이로 높다라니 세운 층집에서 승강기로 오르내리고는 지하주차장에 세운 자가용을 끌고 또다른 높다란 층집 지하주차장에 자가용을 세운 다음 한낮에도 전깃불을 켜는 데에서 밤늦게까지 책상맡에 앉는다면, 애벌레도 고치도 나비도 볼 수 없어요. 지하상가가 일터라면, 공장이 일터라면, 회사가 일터라면, 어느 누구라도 애벌레와 고치와 나비를 볼 수 없습니다.


  들에서 일하고 들에서 살며 들에서 살림을 가꾸는 사람들이 애벌레와 고치와 나비를 봐요. 들바람을 마시고 들볕을 쬐며 들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애벌레와 고치와 나비를 봅니다.


- ‘어?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로쿠도가 안 보이네. 많이 바끈가.’ (황천의 하오리를 입고 영체화한 린네는 지금 사쿠라에게 보이지 않는다) ‘후. 안됐구나, 로쿠도. 몸이 부서져라 마미야를 악령으로부터 지켜 봤자, 마미야는 아무것도 모를 텐데. 그야말로 보답 없는 노력이군.’ (33∼34쪽)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것 같아.’ (40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3) 열한째 권을 읽습니다. 주인공 둘 가운데 하나인 ‘마미야 사쿠라’라는 아이한테 ‘저승나라에 있는 어느 할머니’가 사탕을 선물로 줍니다. 저승나라에서 저승사람과 저승으로 오는 넋을 다스리는 할머니가 이승에 있는 아이한테 준 사탕은 ‘죽은 넋’이 안 보이도록 하는 사탕입니다. 이승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어릴 적 어떤 일을 겪은 뒤부터 ‘죽은 넋’을 봐요.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늘 보아야 하니 고단하며 힘들었는데, 저승나라 할머니가 준 사탕을 먹고는 ‘죽은 넋’이 하나도 안 보이니 ‘수수한 동무와 이웃’처럼 까르르 웃고 노는 조용한 나날을 누립니다.


- “사쿠라 아씨를 악령으로부터 지키려고 이렇게 애썼는데.” “아, 그렇지. 사쿠라는 전혀 못 보는구나. 하긴 허무하겠다.” “그러게요.” “후. 나는 사신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뿐이야.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어.” (49∼50쪽)
- “아, 그렇지, 이거. 영이 안 보이게 해 주는 사탕. 타마코 씨가 많이 주셨는데, 돌려 드릴래? 필요없으니까.” (61쪽)


  만화책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는 ‘죽은 넋’을 보지 않을 수 있으면서 마음 한켠이 홀가분합니다. 그리고, 마음 한켠이 살짝 쓸쓸합니다. 늘 단짝 동무가 되는 아이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짝 동무가 되는 ‘린네’라고 하는 아이는 ‘죽은 뒤 저승으로 떠나지 않는 넋을 붙잡아 저승으로 보내는 일’을 해요. 그러니, 죽은 넋을 볼 수 없다면, 죽은 넋을 붙잡아 저승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 단짝 동무도 볼 수 없어요.


  한동안 조용하고 느긋하게 지내던 주인공 아이는 저승나라 할머니가 준 사탕꾸러미를 돌려주기로 합니다. 죽은 넋을 보아야 하는 삶은 여느 수수한 동무나 이웃하고는 멀어지는 나날이지만, 굳이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아이한테 어떤 삶이 즐겁고, 이 아이한테 어떤 삶이 사랑스러우며, 이 아이한테 어떤 삶이 보람이 있는가를 곱씹습니다.

 


- “한여름 내내 먹을 수박을 얻었어.” “사흘 안에 다 먹어치워야 할 텐데요. 우린 냉장고도 없으니.” (190쪽)


  깊은 밤에 별빛을 누립니다. 깊은 밤에 자꾸자꾸 잠에서 깨면서 두 아이 이불깃을 여미다가 아이들 밤오줌을 누이고 난 뒤 마당으로 내려와 밤별을 올려다봅니다. 아이들이 갓 잠든 저녁에도 별빛은 눈부시고, 아이들이 깊이 잠든 한밤에도 별빛은 초롱초롱합니다.


  이 많은 별을 함께 누리는 이웃이 있습니다. 이 많은 별이 있는 줄 모르는 이웃이 있습니다. 밤별을 알고 누려도 이웃이요, 밤별을 모르고 못 누려도 이웃입니다. 별은 눈으로도 보지만 마음으로도 봅니다. 사랑은 눈으로도 바라보며 느끼지만, 눈을 감고도 따사롭게 느낍니다. 봄으로 접어든 요즈막이지만 방바닥이 차갑다 싶어 불을 넣습니다. 새근새근 꿈나라 누비는 아이들 숨소리를 듣습니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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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16] 베풀다

 


  스스로 책을 읽는다
  스스로 밥을 짓는다
  스스로 노래를 부른다

 


  스스로 즐겁게 삶을 가꾸기에 웃습니다. 스스로 즐거운 마음 되기에 사랑이 싹틉니다. 집안일은 ‘누구한테 봉사하는’ 일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스스로 밥을 지을 뿐이면서, 스스로 즐겁게 밥을 짓습니다. 가시내가 도맡을 집일이 아니고, 사내가 도맡을 집일이 아닙니다. 서로 즐겁게 살림을 가꾸면서 나누는 삶입니다. 집일을 스스로 맡지 않거나 집일을 스스로 즐기지 못한다면, 삶을 즐기지 못할 뿐 아니라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넋이리라 느껴요. 남이 시키기에 읽는 책이 아니듯, 스스로 읽는 책이듯, 스스로 삶을 가꾸고,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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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조국의 별》 읽기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가 시집 《조국의 별》을 본다. 1984년에 나온 책이다. 어느새 서른 해를 묵은 책이 되었다. 고를까 말까 망설인다. 예전에 읽었으나 줄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줄거리가 떠오르지 않으면 예전에 읽었어도 안 읽은 책과 똑같으리라 느낀다. 새로 읽든지 모르는 척 지나가든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1984년에 첫판이 나온 시집 《조국의 별》은 아직 그대로 새책방 책꽂이에 있을까? 알 길이 없다. 책방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인터넷을 켜야 알 수 있다.


  헌책방에서 《조국의 별》 1984년 판을 3000원에 장만한다. 집으로 돌아가서 살펴본다. 1984년에 처음 나온 시집은 2014년 올해에도 새책으로 장만할 수 있다. 새책 값은 7000원이라 하니, 꽤 예전에 찍은 판이 그대로 있는 듯하다.


  아이들과 먹을 밥을 차리면서 틈틈이 읽는다. 밥냄비에 불을 넣고 국을 끓이는 사이에, 통통통 도마질을 하는 사이에, 아이들과 밥을 먹고 나서 살짝 숨을 돌릴 적에, 한 줄 두 줄 차근차근 읽는다.


  나온 지 몇 해 안 되는 시집들도 쉬 판이 끊어지고 사라진다. 열 해나 스무 해 넘게 판이 안 끊어지는 시집이 드물다. 고은 님 시집 가운데에도 어느새 자취를 찾아볼 길 없는 책이 꽤 된다. 그런데 시집 《조국의 별》은 서른 해라는 나날을 가늘고 길게 잇는다. 앞으로 열 해가 더 지나도 이 시집은 새책방 책꽂이와 헌책방 책꽂이에 함께 꽂힐까. 앞으로 스무 해가 더 지나도 이 시집은 새책방과 헌책방에서 함께 만날 수 있는 시집이 될까.


  새책방에서 자취를 감춘 《조국의 별》이었다면 헌책방에서 무척 비싼값에 팔리리라 생각한다. 아직 새책방에 있기에 시집 《조국의 별》은 헌책방에서나 새책방에서나 퍽 눅은 값으로 만날 수 있구나 싶다. 오래도록 찬찬히 사랑받는 책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 손길을 타면서 오래도록 마음자리를 따사롭게 북돋우는 힘이 되는구나. 서른 살 먹은 시집을 책상맡에 놓는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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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자와 마리 님이 그린 만화책을 읽으면 마음이 곱게 씻긴다. 그림 하나에 말마디 하나에 마음을 따사롭게 다스린다. 오자와 마리 님은 어떻게 하루를 가꿀까. 어떤 삶을 일구기에 이녁 만화를 읽는 사람한테 눈을 확 틔우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포근하구나 포근하구나 하고 되뇌면서 《은빛 숟가락》 다섯째 권을 읽는다. 더없이 착하고 예쁜 사람들이 나오는 만화책은 어느 모로 보면 ‘이 지구별에 없을 듯한 사람들 모습’이라 여길 수 있지만, 달리 보면 이 지구별에 있는 사람 모두 이렇게 착하고 예쁜 넋이 아니랴 싶기도 하다. 모두들 착하고 예쁜 지구별 사람들인데, 스스로 착함과 예쁨을 잊은 채 서로 악다구니가 되는 셈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어떤 숨결인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같은 생각을 새삼스레 한다. 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이나 즐거운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은빛 숟가락》을 찬찬히 읽어 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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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5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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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13. 2014.3.2. 만화책 앞에서

 


  우리 집 서재는 도서관이다.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들을 알뜰히 건사해서 갖추었으니 도서관이다. 일곱 살 사름벼리는 만화책을 읽는다. 아직 큰아이가 읽을 만한 책은 많지 않다. 앞으로는 아주 너른 책바다에서 헤엄을 치리라 생각한다. 어린 나날 큰아이한테는 궁금한 대목을 간질이면서 북돋우는 만화책 하나면 넉넉하다. 수많은 만화책 꽂힌 자리에서 오직 한 가지 책을 들여다보면서 생각날개를 팔랑팔랑 펼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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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3-03 20:45   좋아요 0 | URL
아휴~ 정말 벼리는, 아버지가 곱게 곱게 갖춘 도서관 책바다에서
즐거운 책읽기를 마음껏 누리네요~
벼리가 참 부럽습니다~*^^*

파란놀 2014-03-04 04:06   좋아요 0 | URL
이제 날씨가 더 풀리면
이곳에서 하루 내내 놀 수 있겠지요~~

후애(厚愛) 2014-03-03 22:44   좋아요 0 | URL
저도 벼리가 무척 부럽습니다.*^^*
벼리 옆에서 저도 책을 읽고 싶네요~ ㅎㅎ

파란놀 2014-03-04 04:06   좋아요 0 | URL
언제라도 나들이 오셔요 ^^
자리 많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