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논밭을 지나면서

 


  순천을 떠난 시외버스는 정안 쉼터를 거쳐 안산 바깥으로 접어든다. 차츰 안산과 가까울수록 논밭 한복판에 우람한 송전탑이 우뚝우뚝 서고 공장과 공단이 늘어난다. 안산 시내를 지날 적에는 높다란 아파트가 고속도로에 그늘을 드리운다. 안산을 벗어난 뒤 인천까지 줄줄이 공장이고 아파트이다.


  나무를 생각하기 어렵고 들을 내다보기 힘들다. 숲을 찾을 수 없고 멧등성이는 없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볼까. 도시에서 지내면서 무엇을 마음속에 담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메마르고 추운 곳에서 날마다 쳇바퀴처럼 살고 일하며 버티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책을 손에 쥐기보다는 스마트폰을 손에 손에 들고 무언가 꾹꾹 누르면서 들여다볼밖에 없지 않느냐 싶다. 손에 흙을 묻히지 않으니 곁에 책이 있기 어렵다. 눈에 풀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둘레에 책이 숨쉬기 어렵다. 4347.3.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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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짐을 다 들쳐메고 

두 아이와 함께

인천 큰아버지 집으로 간다.

 

잘 가자.

몇 시간쯤 걸릴까?

고흥에서는 아침에 나서는 길이지만,

인천에는 저녁에 해 떨어질 무렵 닿겠지.

 

버스에서

아이들이 잘 가 주기를 바란다.

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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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15. 2014.3.3. 봉숭아물 손가락

 


  지난 설날에 음성 할머니가 큰아이 손가락에 물을 들인 봉숭아빛이 곱다. 아이 몸이 자라듯이 손가락도 자라면서 봉숭아물이 차츰 위로 올라간다. 손톱을 깎을 적마다 봉숭아빛이 물든 자리가 줄어든다. 큰아이는 손에 책을 쥐어 한 장 두 장 넘길 적마다 손톱물을 들여다보거나 느낄까.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거나 잡을 적마다 봉숭아빛으로 노래를 할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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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길을 떠나는 아침에

 


  3월 6일에 조촐하게 책잔치를 연다. 그 자리에 가려고 3월 5일 오늘 길을 먼저 나선다. 이튿날 아침에 길을 나서도 되는데, 아이들과 함께 큰아버지를 하루 먼저 만나서 놀도록 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모처럼 나서는 길이니 더 느긋하게 만나면 좋겠지.


  혼자서 짐을 꾸린다. 아이들이 어제 먹고 남긴 밥을 어찌할까 하다가 개밥이나 고양이밥이 되라면서 마당 한쪽 그릇에 붓는다. 아이들 옷가지와 내 옷가지를 꾸리고, 아이들 책과 내 책을 꾸린다. 짐을 다 챙겼나 싶어 집을 나서려는데 그만 한 가지를 빠뜨렸다. 마실길에 글을 쓰려면 편집기 풀그림이 있어야 하는데, 메모리카드에 그만 안 옮겼다. 시계를 본다. 안 된다. 아침 아홉 시 십오 분 버스로 읍내에 나갈 수 없다. 아침에 못 나가면 서울로 가는 열 시 반 시외버스를 탈 수 없다.


  양말을 신고 섬돌에 나란히 앉아 노는 두 아이를 부른다. “얘들아, 밥 먹고 가자.” 먹을 밥은 개밥 또는 고양이밥으로 내놓았으니 없지만, 국수를 삶기로 한다. 국수를 삶아 아이들한테 내준 다음, 순천 버스역 정보를 살핀다. 낮 두 시에 인천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돌아서 가는 길이지만, 이렇게 가야겠다. 순천 기차역까지는 너무 빠듯해서 타기 어렵다.


  오늘 새벽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났으면 걱정없이 길을 나섰을까. 어젯밤에 짐을 미리 꾸렸으면 되었을까. 그러나 엊저녁까지 오늘 길을 나설지 하루 더 자고 길을 나설지 망설였다. 아침에도 오늘 갈는지 하루 더 자고 갈는지 망설였다. 망설였으니 짐을 제대로 꾸리지 못했고, 아침 군내버스를 놓쳤다.


  잘 가야지. 열한 시 십오 분에 나가는 군내버스까지 한 시간 남는다. 설거지를 마무리짓고 문을 잘 닫은 뒤 나가자. 느긋하게 잘 가자. 4347.3.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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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편지 (조문환) 북성재 펴냄, 2012.11.15.

 


  하동 공무원 조문환 님이 내놓은 《하동 편지》는 하동을 사랑하는 넋을 곱게 담은 이야기꾸러미이다. 책상맡에서 서류만 만지작거리는 공무원이 아닌, 두 다리로 하동을 두루 누리면서 마주하는 예쁜 빛을 하동 이웃뿐 아니라 온 나라 이웃한테 보여주고 싶은 꿈을 담은 이야기밭이다. 참 수수하구나 싶으면서, 어느 모로 보면 살짝 아쉽기도 하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틈틈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담은 사진과 쓴 글을 엮은 책인데, 공무원 눈높이보다는 마을사람 눈높이가 되었다면 얼마나 더 예뻤을까. 하동을 이웃한테 더 드러내어 보여주기보다는 하동에서 살아가는 웃음과 즐거움과 시골내음을 살포시 헤아렸으면 얼마나 더 그윽했을까. 그래도 다른 시골 군청 공무원은 이만 한 책을 내놓지 못한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군 읍내나 면소재지 공무원도 민원인 없는 때에는 마냥 낮잠을 자거나 인터넷놀이에 빠질 뿐, 마을 순례에 나서지 않는다. 시골 읍내와 면소재지마다 조문환 님처럼 이녁 고향마을을 사랑하고 아끼는 일꾼이 한 사람씩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4347.3.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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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편지- 시골공무원 조문환의
조문환 글.사진 / 북성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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