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벼리 얼음과자를 쥐고

 


  긴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얼음과자를 먹고 싶단다. 서울은 날씨가 퍽 쌀쌀하지만, 고흥은 제법 포근하다. 여러 시간 시외버스에서 고단하기도 했을 테니 얼음과자 하나씩 물려도 되리라 느낀다. 따순 볕을 느끼며 두 손으로 얼음과자를 쥔다. 쪽쪽 빨아먹는 손을 본다. 눈썹이 꽤 자랐다고 느낀다. 몸도 키도 손도 날마다 무럭무럭 자란다고 느낀다. 튼튼한 몸에 씩씩한 마음이 되리라 생각한다. 4347.3.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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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가게에서 수레를 타고

 


  읍내 가게에는 물건을 담는 수레가 있다. 수레에는 작은 아이들이 발을 끼워 앉을 만한 자리가 있다. 산들보라는 지난해까지 이 자리에 곧잘 앉곤 했지만, 이제 몸이 많이 자랐다. 발을 끼우는 자리 말고 수레바닥에 앉고 싶단다. 그래서 수레바닥에 앉히고 물건을 차곡차곡 담는다. 큰아이가 소시지를 보고는 둘을 낼름 집어 동생 하나 주고 저 하나 쥔다. 그러고는 동생을 밀어 주겠단다. 일곱 살 아이는 동생이 탄 수레를 제법 잘 민다. 손아귀에 힘이 있고, 동생을 살뜰히 아낀다. 4347.3.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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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체르노빌 분유

 


  《10대와 통하는 탈핵 이야기》라는 책을 읽다가 어느 한 곳에서 오래도록 눈길이 멎는다. 1986년 소련(러시아)에서 터진 ‘체르노빌 핵발전소’ 때문에 동유럽과 서유럽 모두 방사능으로 끔찍하게 더러워졌다고 한다. 이때에 독일에서 한국으로 ‘체르노빌 방사능 분유’를 몽땅 팔았다고 한다. 1986년이면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인데, 그무렵에 이런 이야기를 학교에서 들려준 적은 없다고 느낀다. 1986년에도 가을운동회를 준비한다면서 삼월부터 가을까지 날마다 방과후에 두어 시간씩 운동장에 모여 집단체조를 해야 했다. 집단체조가 끝난 뒤 기운이 하나도 없으면서, 동무들과 운동장에서 공차기를 하든 콩주머니놀이를 하든 한참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해가 꼴딱 넘어갈 때까지 동네에서 흙투성이가 되도록 놀았다.


  국민학교 5학년인 나이였으니 어머니젖도 가루젖도 먹을 일이 없지만, 어머니는 곧잘 가루젖을 한 통씩 장만하셨다. 이즈음 가루젖은 값이 퍽 쌌다. 집집마다 가루젖을 들여서 ‘아기한테 먹일 일이 없’지만, 커피를 탈 적에 넣는다든지 핫케익이나 빵을 구울 적에 넣는다든지, 이모저모 많이 썼다. 몇 해 뒤 가루젖 값이 꽤 높아지면서 어머니는 가루젖을 더는 장만하지 않으셨다. 한때 유행처럼 떠돌았다고 할까. 아마 방송이나 여성잡지나 광고 같은 데에서 ‘분유로 맛내기’를 널리 알린 듯하다.


  1989년에 ㅎ신문에서 처음으로 ‘독일에서 한국으로 수출한’ 가루젖 이야기가 기사로 나온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진 뒤, 유럽에서는 우유를 모두 버려야 했고, 유제품도 모두 ‘밀봉해서 버려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우유도 유제품도 밀봉해서 버리자니 너무 많고 돈이 많이 들어 골머리를 앓았다는데, 이때 한국에 있는 유제품 회사들이 발벗고 나서서 ‘값싸게 방사능 분유’를 몽땅 사들였단다. 이 이야기가 여러 해 지나고서야 비로소 한국에 있는 ㅎ신문 한 군데에서만 기사로 다루었고, 몇 해 지나 ㄷ신문에서도 살짝 다루었다.


  어릴 적 일을 돌아본다. 갑자기 어느 때에 동무들이 피부병에 엄청나게 걸렸다. 피부과마다 피부병을 앓는 아이들로 득시글득시글했다. 핵발전소가 터졌으니 바깥에서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이 없었고, 핵발전소 방사능에 맞지 않도록 비오는 날은 집에만 있으라거나 언제나 입가리개를 쓰고 다니라는 말도 없었다. 비가 오더라도 운동회 연습은 똑같이 했고, 비오는 날에도 동무들과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신나게 놀았다.


  학교에서 값싸게 우유급식을 했다. 어느 가게에서나 우유가 넘쳤고, 신문과 방송과 여성잡지에서는 아이들한테 우유를 먹여야 키가 잘 큰다고 떠들었다. 아기한테는 어머니젖 아닌 가루젖을 먹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내 어릴 적에 어머니젖을 먹고 자라는 아이가 있다면 ‘미개인’이나 ‘원시인’ 소리를 들어야 했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 ‘체르노빌 방사능 분유’에다가 ‘체르노빌 방사능 유제품’과 ‘체르노빌 방사능 푸성귀’를 잔뜩 들였다. 한국은 수입 농산물에 방사능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유제품 회사뿐 아니라 농협에서도 유럽에서 값싼 ‘방사능 농산물’을 거리낌없이 사들였다. 가루젖뿐 아니라 케찹도 마요네즈도 빵도 라면도 국수도 과자도 모두 ‘방사능에 흠뻑 젖은 원료’로 만들어서 1980년대 끝무렵과 1990년대 첫무렵 아이들한테 먹인 한국 사회이다.


  1980∼90년대에 어린이나 푸름이 나날을 보낸 사람들, 이른바 1970∼8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오늘날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는다. 오늘날 한국땅 모든 아이가 아토피로 애먹는다. 다른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한국처럼 모든 아이가 아토피에 걸리지 않는다. 폴란드나 벨로루시나 우크라이나라면 모를까,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하고 무척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아이들이 아토피를 앓는다.


  1998년에 나온 《환경에 관한 오해와 거짓말》이라는 책에서 이 얘기를 다룬다. 이때까지 어느 과학자도 학자도 전문가도 정부 관계자도 ‘체르노빌 분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오늘에 이르러서도 쉬쉬할 뿐이다. 오늘날 30∼40대가 거친 나날이란 무엇이었을까. 2011년에 이웃 일본에서 터진 후쿠시마 핵발전소 이야기를 우리들은 얼마나 살갗으로 느낄까.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터진 뒤, 일본 갯벌에서 나는 갯것을 한국에서 사들여 ‘벌교꼬막’이라는 이름을 붙여 팔다가 걸리기도 한다는데,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보거나 생각할까.


  내 동무뿐 아니라 둘레에서 모든 어버이가 아이들 아토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우리 아이들도 갓난쟁이였을 적에 아토피로 몸살을 앓았다. 한국에서 아이들한테 맞히는 예방주사는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유럽에서도 안 쓰는 수은과 포르말린을 넣은 주사이지만, 보건소에서도 병원에서도 이 대목을 제대로 모르거나 숨기기만 한다. 그저 아이들이 주사바늘 무서워하지 않게끔 교육시키려고만 한다. 라면에 엠에스지 안 쓴다고 밝히면서도 예방주사 성분이 무엇인지 안 밝히고, 지난날 이 나라에 엄청나게 들어와 엄청나게 팔린 유제품과 과자와 면류에 깃든 방사능을 따지거나 밝히거나 뉘우치는 흐름도 없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 아이를 사랑스레 돌보려는 어버이로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 아이가 튼튼하게 자라서 아름답게 꿈꾸기를 바라는 어버이로서 무엇을 배워서 아이한테 가르쳐야 할까. 마당에서 멧새랑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4347.3.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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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45] 봄꽃마당
― 봄까지꽃, 봄내꽃, 봄파랑꽃, 봄꽃

 


  고장마다 말씨가 다릅니다. 고을마다 말투가 다릅니다. 어디에서나 똑같이 있는 물고기라 하더라도, 고장마다 이름을 달리 붙입니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보는 풀이라 하더라도, 고을마다 이름을 새롭게 붙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 먼먼 옛날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는 일이 없으니,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쓰는 말이 달라요. 먼먼 옛날 평안도와 경기도를 오가는 일이 드무니, 평안도와 경기도에서 쓰는 말이 달라요. 같은 충청도에서도 보은과 제천 사이를 오갈 일이 없습니다. 보은에서 났으면 보은에서 살고, 제천에서 났으면 제천에서 살아요. 제천에서 났어도 읍내가 있고 면소재지가 있어요. 이쪽 두멧마을이 있고 저쪽 두멧마을이 있습니다. 읍내와 면소재지마다 말투가 다를밖에 없는 한편,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이 다를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 고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고장에서 살아가는 대로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나눠요. 이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살아온 대로 이름을 달며 이야기를 주고받지요.


  오늘날은 서울부터 부산까지 두 시간이면 달린다 하고, 서울과 제주 사이를 한 시간만에 오간다 해요. 길이 아주 빠르게 열려요. 서로 멀디먼 고장이었을 적에는 저마다 쓰는 말이 사뭇 달랐어요. 서로 가까이 오갈 수 있은 뒤부터 차츰 비슷하게 말하면서 지내요. 어디에서든 똑같은 교과서를 쓰고, 똑같은 학교를 다니며, 똑같은 책을 보는 한편, 똑같은 방송을 봅니다. 사람들 말씨는 다 달랐으나 다 비슷하게 됩니다.


  봄꽃이 앙증맞게 피어나는 마당에 서며 바람노래를 듣습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봄볕을 누리면서 뛰놉니다. 시멘트로 덮인 마당 곳곳은 갈라져서 틈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틈마다 푸른 싹이 고개를 내밀더니, 어느새 파릇파릇 조그마한 꽃송이가 터집니다. 조그마한 꽃송이를 바라보려고 쪼그려앉습니다. 고개를 내밀어 들여다봅니다. 이 작은 꽃을 이 고장에서는 예부터 어떤 이름으로 가리켰을까 궁금합니다. 이 예쁜 봄꽃을 이 마을에서는 예부터 어떤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나물’이나 ‘봄나물’이나 ‘봄풀’이나 ‘봄꽃’이라고만 했을 수 있어요. 겨울이 저물 무렵 피어나 봄이 끝나면 저문다고 해서 ‘봄까지꽃’이나 ‘봄내꽃’이라 했을 수 있어요. 봄날 파랗게 물드는 빛깔이 곱구나 싶어 ‘봄파랑꽃’이라 했을 수 있어요.


  꼭 한 가지 이름만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느끼는 대로 가리키고, 떠오르는 대로 붙였으리라 느껴요. 이런 느낌과 생각도 고장마다 다르고 마을마다 달랐으리라 느껴요. 즐겁게 피어나는 사랑을 담아서 이름을 지었겠지요. 기쁘게 샘솟는 꿈을 실어서 이름을 주었겠지요. 삼월 십일을 지나면서 봄까지꽃, 또는 봄내꽃, 또는 봄파랑꽃은 활짝활짝 번집니다. 봄햇살이 기우는 흐름에 따라 마당에 조그마한 꽃그림자를 만듭니다. 한참 동안 봄꽃내음을 맡습니다. 4347.3.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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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날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는 볕살이 퍽 보드랍다. 겨울날 이무렵에 사진을 찍으면 누구나 ‘볕살이 이렇게 보드랍구나’ 하고 느낄 만하다. 다만, 동짓날 언저리에는 다섯 시만 되어도 해가 까무룩 떨어지니, 이때에는 어두컴컴한 빛이 사진에 스며든다. 봄가을에는 저녁 다섯 시 볕살이 참 보드랍다. 여름에는 저녁 여섯 시를 넘으면서 볕살이 몹시 보드랍다. 보드라운 볕살은 마음을 포근히 어루만진다.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무렵 드리우는 볕살은 우리들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와 같다. 도종환 님이 들려주는 세 시와 다섯 시 사이 이야기는 어떤 빛이 될 수 있을까. 4347.3.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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