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민방위훈련

 


  지난주에 바깥마실을 다니느라 시골집을 내내 비웠더니, 이동안 날아온 민방위훈련 소집통지서를 이제서야 들여다본다. 도시에서라면 어디로 가라고 안내글이 있지만, 시골에서는 어디로 가라는 안내글이 없다. 우리 마을에 있는 회관에 가야 하는지, 이웃 다른 마을에 있는 회관에 가야 하는지 알쏭달쏭하다. 밤 열두 시 넘은 이때에 이장님한테 전화로 여쭐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지. 아침 일곱 시에 이장님한테 전화를 걸어야지.


  그나저나, 시골에는 민방위훈련을 받을 만한 젊은이가 없다. 우리 마을에는 꼭 두 사람 있는데, 그나마 올해에는 나 혼자뿐이지 싶다. 이듬해에는 아예 아무도 없을는지 모른다. 젊은이 없는 시골에서 민방위훈련 비상소집을 굳이 해야 할까. 젊은이 없는 시골에서 민방위훈련이나 예비군훈련이란 무엇일까. 4347.3.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매화나무 가지 끝에 직박구리

 


  아이들과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노는데, 직박구리가 우리 집 둘레를 어정거린다. 옆밭과 뒤꼍에서 먹이를 찾고, 짝을 지어서 노래하다가는, 매화나무 우듬지 가느다란 가지에 살포시 내려앉아 한참 쉰다. 옆에 있는 큰아이를 조용히 불러 저기 보라고 이른다. 큰아이는 “어디?” 하고 묻는다. “저기 봐, 매화나무 꼭대기에 직박구리가 앉았어.” “매화나무? 매화나무가 어디 있어?” “저쪽에 있어.” “저쪽에 고양이만 있는데?” 해마다 매화나무와 매화꽃과 매화열매를 보더라도 아직 매화나무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일곱 살 큰아이는 새를 한참 동안 못 알아본다. 그러다가 비로소 알아본다. “아, 저기 있구나. 참말 새가 앉았네.”


  겉으로 보기에 깃털로 몸을 부풀리기에 커 보일는지 모른다. 직박구리도 두 손으로 안아 보면 매우 작은 새일는지 모른다. 참새와 박새와 딱새도 막상 손으로 안으면 한 줌조차 안 될 만큼 대단히 작다. 그러니, 얼핏 보기로는 직박구리가 매화나무 가느다란 가지 끝에 앉으면 나뭇가지가 부러질까 싶지만, 직박구리는 제 무게가 얼마인 줄 알 테고, 어디에 앉아야 할는지 잘 알 테지. 4347.3.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매화 꽃망울은 터지려고 한다

 


  매화나무 꽃망울은 터지려고 합니다. 날마다 매화나무를 들여다보면서 즐겁습니다. 조금씩 꽃망울이 벌어지고, 살며시 꽃내음이 퍼지니, 매화나무 곁에 있어도 즐겁고, 마당에 있어도 즐거우며, 집안에 있어도 즐겁습니다.


  매화나무가 있기에 매화내음이 집안과 마을에 감돕니다. 감나무가 있으면 감내음이 집안과 마을에 감돌아요.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내음을 퍼뜨리고, 뽕나무는 뽕내음을 퍼뜨리며, 석류나무는 석류내음을 퍼뜨립니다. 집 둘레가 풀밭이면 풀내음이 퍼집니다. 집 둘레가 논이면 논내음이 퍼져요.


  삶자락마다 다 다른 내음이 감돕니다. 삶터마다 다 다른 빛이 서립니다. 삶을 밝히는 이야기가 꽃망울마다 그득 담겨 곧 꽃잔치 이루어집니다. 4347.3.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21) 파란의 1 : 파란의 조짐

 

파란의 조짐입니다
《후지무라 마리/정효진 옮김-소년소녀학급단 (2)》(학산문화사,2010) 97쪽

 

 파란의 조짐입니다
→ 물결이 칠 듯합니다
→ 물결이 칠 낌새입니다
→ 너울이 칠 듯합니다
→ 너울이 일 듯합니다
→ 크고작은 물결이 치려 합니다
 …

 


  일본책을 많이 번역해서 읽는 한국입니다. 일본책을 슬기롭게 번역하면서 한국말로 알맞게 적기도 하지만, 슬기롭지 못하게 번역한데다가 알맞지 못하게 적는 일이 흔하기에, 한국말은 한국말답지 못하고 번역투나 일본 말투로 어지럽기 일쑤입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 한국책을 많이 번역한다고 할 적에도 ‘한국 말투가 일본 말투로 스며들까’ 궁금해요. 한국책을 영어로 번역한다고 할 적에도 ‘한국 말투가 영어로 스며들는지’ 궁금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한국사람은 아직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거나 올바로 못 깨닫지 싶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채 영어나 일본말이나 여러 외국말을 배워서 번역하기에, 자꾸자꾸 한국말이 뒤틀리거나 비틀리지 싶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문법으로는 한국말을 제대로 배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책 몇 권 읽었기에 한국말을 슬기롭게 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의사소통이 되는 눈높이라서 한국말을 알맞게 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파란’이나 ‘조짐’이라는 낱말을 한국사람이 언제부터 썼을까 생각해 보셔요. 한글로 적을 때 ‘파란’은 파랑이라는 빛깔을 가리킬 때에 한국말입니다. 한글로 ‘조짐’이라 적으면, 이 글을 몇 사람이나 알아들을 만할까요. 처음부터 낱말을 슬기롭게 고르고, 말투를 알맞게 다스려야 비로소 한국말이 됩니다.


  무언가 일이 생길 듯하다는 느낌을 나타내려고 “크고작은 물결이 칠 듯합니다” 하고 말하는 보기글입니다. 그러니, “무언가 일이 생길 듯합니다”처럼 적을 수도 있어요. “곧 무슨 일이 터질 듯합니다”처럼 적어도 돼요. 4347.3.13.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크고작은 물결이 칠 듯합니다

‘조짐(兆朕)’은 ‘낌새’나 ‘느낌’으로 다듬습니다. ‘파란(波瀾)’은 “(1) = 파랑(波浪) (2) 순탄하지 아니하고 어수선하게 계속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시련”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파랑(波浪)’은 “잔물결과 큰 물결”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두 가지 물결을 아울러 가리켜야 하는 자리라면 ‘파랑’을 쓸 만한데, 꼭 두 가지 물결을 가리켜야 하지 않는다면 ‘물결’이라고만 쓰면 됩니다. 보기글에서는 ‘물결’로 쓰면 되고, ‘파란 (2)’처럼 어려움을 가리키려 한다면 “큰 물결”을 뜻하는 ‘너울’을 쓸 수 있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27) -의 비행 2 : 키키와 지지의 비행

 

키키와 지지의 비행은 일 년 전보다 훨씬 빨라졌습니다
《가도노 에이코/권남희 옮김-마녀 배달부 키키 (1)》(소년한길,2011) 226쪽

 

 키키와 지지의 비행은 일 년 전보다 훨씬 빨라졌습니다
→ 키키와 지지는 한 해 앞서보다 훨씬 빨리 날았습니다
→ 키키와 지지는 지난해보다 훨씬 빨리 날았습니다
 …

 


  영어나 일본말로 된 책을 섣불리 옮기면 이 보기글 같은 글투가 나타납니다. 한자말 ‘비행’을 썼기에 이 글투가 어떻게 엉성한가를 못 느낄 분이 제법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자말 아닌 한국말 ‘날다’를 이름씨 꼴로 바꾸어 “날기(날음)은 훨씬 빨라졌습니다”처럼 적어 보셔요. 말이 안 될 테지요. 문법으로는 이처럼 적을 수 있다고도 하지만, 문법은 말이 아닙니다. 말을 말답게 적을 때에 비로소 말이요 글입니다.


  이름씨 꼴이 굳은 ‘걸음’이라면 “걸음이 빨라지다”처럼 쓸 수 있을 텐데, ‘보다’를 “빨리 보았습니다”가 아닌 “봄이 빨라졌습니다”처럼 쓰면 영 어설퍼요.


  글투를 올바로 다스리면 이 보기글은 “지난해(한 해 앞서)보다 훨씬 빨리 날았습니다”처럼 적을 테고, 이렇게 적으면 토씨 ‘-의’를 붙일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글투가 뒤죽박죽이거나 엉망이기에 토씨 ‘-의’가 붙습니다. 글투를 바로잡거나 바로세우지 않으니, 토씨 ‘-의’를 억지로 붙여서 엉성한 글이 되고 맙니다. 4347.3.13.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키키와 지지는 지난해보다 훨씬 빨리 날았습니다

 

“비행(飛行)이 훨씬 빨라졌습니다”는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번역 말투요 일본 말투라 할 만합니다. 한자말 ‘비행’을 굳이 쓰려 한다면, “훨씬 빨리 비행했습니다”처럼 써야 할 텐데, 이렇게 써도 얄궂습니다. 왜냐하면, 새를 보고 ‘비행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행기를 보고도 ‘난다’나 ‘날아간다’고 할 뿐입니다. “일 년(一 年) 전(前)보다”는 “한 해 앞서보다”나 “지난해보다”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4-03-13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3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3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4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4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