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125. 2014.3.23.ㄴ 책에 빠지면

 


  어른들은 잘못 헤아리곤 하는데,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건 그림책을 보건 스스로 새로운 나라로 날아간다. 마음속으로 꿈을 그리면서 새 이야기를 차곡차곡 그린다. 글만 있는 인문책이나 소설책을 읽어야 ‘책읽기’이지 않다. 삶을 그리는 이야기를 읽을 적에 비로소 ‘책읽기’이다. 그래서 종이책 하나 들춘 적 없는 많은 사람들은 ‘삶을 읽는 책읽기’를 오래도록 이었다. 만화책을 펼치며 이야기에 사로잡힌 아이는 아뭇소리도 못 듣는다. 이제 집으로 가자고 부르지만 아이 귀에는 소리가 안 들린다. 깊이 사로잡혔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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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때

 


  책을 읽으면 손때가 탄다. 새책도 헌책도 모두 손때가 탄다. 손때가 타지 않도록 책을 읽으려면 장갑을 끼면 된다. 장갑을 끼고 책을 읽으면 손때가 타지 않는다. 다만, 장갑을 낀 채 책을 읽으면, 책장이 하나씩 넘어가면서 책이 살짝 부푼다. 아무도 넘기지 않은 책은 부풀지 않고 납작하다. 책을 읽는 사람은 갓 만든 책마다 가볍게 붙은 책장을 톡톡 떼는 셈이다.


  새책방에 놓인 새책도 사람들이 살짝살짝 들추거나 살피려고 건드리면 손때가 탄다. 스스로 장만할 생각이 아니라면 새책방에 놓인 새책을 섣불리 건드리지 말 노릇이다. 왜냐하면, 내가 건드려서 손때를 남긴 책을 다른 책손이 장만하고픈 마음이 안 들 수 있으니까.


  헌책방에는 손때가 탄 책이 들어온다. 손때가 들어온 책을 읽거나 살필 적에는 여러모로 홀가분하다. 새책방처럼 내 손때가 더 탈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외려 헌책방에서는 손때가 탄 책이 읽기에 좋다. 한 차례나 두 차례 손때가 탄 책은 종이가 잘 넘어간다. 손때가 탄 책은 손끝을 베지 않는다. 손때가 안 탄 책은 잘못 넘기다가 손끝이 베어 핏물이 책에 뚝뚝 떨어지기도 하지만, 손때가 잘 탄 책은 잘못 넘기더라도 바스락 소리가 날 뿐 손끝을 베지 않고 종이도 구겨지지 않는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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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서구메뚜기의 모험 어린이를 위한 사진 동화 시리즈
김병규 글, 황헌만 사진, 김승태 감수 / 소년한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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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6

 


메뚜기는 어디에 있나요
― 섬서구메뚜기의 모험
 황헌만 사진
 김병규 글
 소년한길 펴냄, 2009.6.15.

 


  빗소리를 듣습니다. 봄비가 촉촉히 내립니다. 여러 날 맑고 밝은 햇볕이 내리쬐더니 오늘은 낮부터 비가 줄줄 내립니다. 비가 듣기 앞서 우체국을 다녀옵니다. 웬만하면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우체국에 다녀오지만, 아직 아침을 먹이지 않았기에 아침밥상을 차리고 바로 자전거를 몰아 우체국으로 갑니다.


  우체국을 다녀오고 나서 씻습니다. 씻으면서 빨래를 합니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지만 빗줄기가 듣지 않으니 옷가지를 마당에 내놓습니다. 빗방울이 들을 무렵 걷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작아서 미처 듣지 못했어요. 마당에 내놓은 옷가지가 외려 더 젖은 뒤에 부랴부랴 빨래를 걷습니다.


  빗물에 새로 젖은 빨래는 다시 빨지 않습니다. 다른 고장이라면 모르겠으나,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 빗물은 깨끗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일본을 거쳐서 들어온 비구름이라면 몇 해 앞서 일본에서 터진 핵발전소 방사능이 묻은 빗물일 수 있겠지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 아이들은 바깥에 나가 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에는 우산을 받고 빗놀이를 즐기지만 오늘은 두 아이 모두 집에서만 뛰놉니다. 마루에서 방에서 쿵쿵쿵 콩콩콩 깔깔거리면서 놀아요. 작은아이 낮잠을 재우면서 빗소리를 느긋하게 들을까 생각했으나 작은아이는 한참 낮잠을 안 자겠다고 하면서 복닥이느라 빗소리를 듣기에도 수월하지 않습니다.


  황헌만 님 사진에 김병규 님이 글을 붙인 《섬서구메뚜기의 모험》(소년한길,2009)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이 사진책에 그리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메뚜기나 거미나 사마귀나 온갖 풀벌레를 집에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집 바깥, 그러니까 마당이나 들에서 만나는 풀벌레가 있고, 집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복닥이는 풀벌레가 있어요. 어버이인 내가 굳이 아이들더러 “얘들아, 이 녀석을 좀 보렴.” 하고 말을 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스스로 오래도록 온갖 풀벌레를 만나요. 여름이든 겨울이든 마당에서 흙놀이를 합니다. 한겨울에도 손과 발이 꽁꽁 얼면서도 꽃삽으로 흙을 파고 뒤집어쓰면서 놀아요.

 


  우리 집 처마 밑에 제비집이 석 채 있는데, 이 가운데 한 채에 제비 아닌 다른 새가 깃들곤 해요. 여름에는 제비가 살지만, 여름이 저물어 가을이 찾아오면 마을 텃새가 살그마니 깃들며 겨울나기를 하더라구요. 그러면 우리 집 아이들은 처마 밑 새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게다가, 마을 고양이라든지 떠돌이 개가 언저네 우리 집에 찾아와요. 고양이도 개도 우리 집에서 먹이를 얻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처마 밑에서 여러 마리가 궁둥이를 척 비비면서 우리 식구와 나란히 빗소리를 듣고 빗내음을 마십니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섬서구메뚜기의 모험》 같은 책은 부질없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앞서까지 웬만한 아이들은 다 메뚜기 한살이를 스스로 알았어요. 책이나 교과서가 없더라도 스스로 삶에서 메뚜기를 만나고 마주하며 바라보았어요. 학자들이 책이나 교과서에서 사마귀를 다루기에 사마귀를 알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삶에서 사마귀를 만나서 알아요. 거미도 개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도 꽃도 풀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아이들이 메뚜기를 만나지 못합니다. 제비를 만나는 시골아이도 드물어요. 이제 아이들은 책이나 교과서로 제비를 만날 뿐, 삶에서 제비를 만나지 못해요. 책이나 교과서 지식으로 제비를 생각할 뿐이에요. 사진책 《섬서구메뚜기의 모험》은 메뚜기 사진을 무척 잘 찍었는데, 지난날에는 누구나 흔히 보던 모습을 이제는 누구도 흔히 못 보는 모습이 되어 책으로 태어난다고 할 만해요. 지난날에는 책이 없어도 누구나 알던 이야기인데, 이제는 책으로 새롭게 들여다보아야 알 뿐 아니라, 책으로 들여다본다고 해서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봄에 할미꽃이 피어요. 봄에 개나리에 앞서 진달래가 피고, 진달래에 앞서 별꽃이나 냉이꽃이 피어요. 저잣거리에서 냉이를 사거나 쑥을 사서 어머니가 국을 끓여야 먹는 냉이나 쑥이 아닙니다. 봄에 맞이하는 냉이요 쑥이에요. 봄에 만나는 꽃다지이고 민들레입니다. 책으로 만날 이웃이나 동무가 아닌, 언제 어디에서나 살가이 마주하는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메뚜기가 이 땅에서 사라진다면 사람도 사라질밖에 없어요. 메뚜기가 이 땅에서 보금자리를 누리지 못하면 사람들도 살가이 살아가기 어려워요. 숲이란 숲이면서 푸른 쉼터요, 들이란 들이면서 푸른 삶자락이에요. 섬서구메뚜기만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도 모험을 합니다. 즐거운 모험일는지 입시지옥에서 살아남으려는 모험일는지 모르나, 모두 다 모험을 하면서 진땀을 흘립니다. 부디 이 아이도 저 아이도 맑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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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읽는 마음

 


  이 땅에 착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착한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거나 살리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언제나 착한 사람들과 만나거나 스친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부딪히는 안 착한 사람들을 볼 적마다 ‘저이는 왜 착한 마음을 저렇게 눌러서 괴롭힐까’ 하고 생각합니다.


  반가운 이가 보낸 편지를 받으면 두근두근 설렙니다. 이것저것 자잘한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 가장 느긋하며 아름다운 눈빛과 매무새로 편지를 엽니다. 반가운 이가 보낸 편지는 글 한 줄로 띄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애틋하기에 웃음과 눈물이 살짝 솟습니다.


  반갑지 않은 편지를 받을 적에는 두근두근 떨립니다. 반갑지 않은 편지란, 누군가 나한테 사과하는 편지입니다. 거꾸로, 내가 누군가한테 사과하는 편지를 띄운다면, 내 편지를 받을 누군가도 두근두근 떨릴 테지요. 히유 한숨을 쉬다가 사과편지를 저쪽으로 밀어놓고 한참 안 들여다볼 테지요.


  사과편지 한 통을 열이틀만에 엽니다. 열이틀만에 연 사과편지를 찬찬히 읽고는 답장을 띄웁니다. 열이틀만에 사과편지를 열었더니, 오늘 새로운 사과편지가 다른 사람한테서 옵니다. 하아, 하고 숨을 고릅니다. 마음이 쓰려 도무지 열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사과편지를 쓴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참말 사과하려는 마음일까요, 겉으로 말을 번지르르하게 꾸미려는 넋일까요.


  내 어버이는 어릴 적부터 으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누군가한테 잘못을 했으면 곧바로 찾아가서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하라고.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하되, 대문을 두들기지 말라고. 그 집에서 대문 앞으로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쪽에서 아는 척을 하며 사과를 받아 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누군가 나한테 잘못을 했을 적에 나한테 이렇게 하라고는 바라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웬만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사니까, 서울에서 전남 고흥까지 오자면 얼마나 멀까요. 아침저녁으로 서울과 고흥을 오갈 수도 없어요.


  그러면, 오늘날에는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는지요. 적어도 인터넷편지 아닌 종이편지를 띄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 하고 말하면, 전화를 받는 내 쪽도 거북합니다. 손전화 쪽글로 미안하다 말하면 대꾸하기에 더욱 거북합니다. 엎지른 물은 담을 수 없지만, 엎지른 물을 새로 채울 수 있습니다. 엎지른 물을 새로 채우려는 마음인지, 엎질렀으니 그냥 지나치려는 마음인지, 사과하려는 매무새를 보면 찬찬히 읽을 수 있습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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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전화 받기 힘들다

 


  사진책도서관 기사와 얽혀 잘못된 이야기를 쓴 매체에서 어제와 오늘 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 어제는 참 뜬금없는 말과 함께 사과글을 안 쓰겠다고 하더니, 오늘은 한발 물러나서 기사 쓴 분이 사과글을 개인편지로 보내고 ‘박스로 처리하는 정정보도’를 하겠다고 밝힌다. 사과를 받을 만하지 않은 일이라면 사과를 하라고 밝힐 까닭이 없을 뿐더러, 그 기사가 널리 퍼진 만큼, 나로서는 사과글이 아닌 명예훼손이라든지 피해배상까지 바라야 할 만하다. 그나저나, 어제와 오늘 두 차례 전화를 건 그 매체 편집기자는 총알같이 이녁 할 말을 들려준 뒤 먼저 전화를 툭 끊는다. 많이 바쁘신가 보다. 많이 바쁜 나머지 사과전화를 할 적조차 먼저 전화를 끊는가 보다. 나도 이런 전화는 받기 참 힘든데, 먼저 끊어 주어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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