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23] 너와 나는



  풀벌레와 풀포기와
  너와 나는
  다 같이 지구별 이루는 숲.



  지구별에서 쓸모없는 목숨은 없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쓸모없는 이는 없습니다. 논밭에서 쓸모없는 풀은 없습니다. 숲에서 쓸모없는 나무는 없습니다. 스스로 태어나고 스스로 살아가는 숨결은 모두 지구별을 이루는 넋입니다. 그러면, 전쟁무기와 골프장은 얼마나 쓸모있을까요. 졸업장과 학교와 공공기관과 공장과 청와대와 법원은 얼마나 쓸모있을까요. 고속도로와 공항과 관광단지는 얼마나 쓸모있을까요. 지구별에는 어떤 이웃이 서로 어깨동무할 때에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서로 아끼는 길을 걸어갈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숲이 될 때에 사랑스러울까 궁금합니다. 4347.4.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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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아직 따뜻하다 창비시선 174
이상국 지음 / 창비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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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69



나무 곁에서 노래하는 시
― 집은 아직 따뜻하다
 이상국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8.5.15.



  시골집에서는 멧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하루 내내 듣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와 초피나무는 무럭무럭 자랍니다. 뒤꼍 모과나무도 씩씩하게 자랍니다. 지난해에 심은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도 조금씩 굵어지고 뿌리를 뻗겠지요. 매화나무에도 감나무에도 새들이 내려앉습니다. 초피나무 가느다란 가지에도 작은 새가 낭창낭창 내려앉아 노래합니다. 바야흐로 초피꽃이 피려는 사월이요, 후박꽃이 벌어지려 하는 봄빛이 무르익습니다.


  나무가 있으면 새가 함께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면 새가 둥지를 틀 수 있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 새노래가 흐릅니다. 나무가 푸른 숨결로 반짝이는 곳에 벌과 나비가 살그마니 찾아들어 날개를 쉽니다.


  나무로 짠 평상에 누워 나무그늘 밑에 누우면 나무내음이 솔솔 퍼집니다. 나무가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고, 나무가 살아갈 앞날을 그립니다.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지냈는지 되새기고, 나무 두 그루가 얼마나 한결같이 봄노래와 여름춤과 가을꿈과 겨울사랑을 베푸는지 헤아립니다.


.. 나무들은 이파리 속의 집으로 들어가고 / 큰 바위들도 팔베개를 하고 / 물소리 듣다 잠이 든다 ..  (산속에서의 하룻밤)


  나무는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있습니다.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는 지나치게 많은 자동차 때문에 끙끙 앓습니다. 도시에 있는 공무원은 나무를 나무결대로 아끼지 않아, 가지를 뭉텅뭉텅 자르기 일쑤입니다. 나무가 느긋하게 뿌리를 뻗을 만한 땅이 모자랍니다. 곳곳이 시멘트 바닥이요 아스팔트 찻길입니다. 그래도 나무는 씩씩하게 하늘바라기를 해요. 도시에서도 나무는 꽃을 말갛게 피우고 잎을 푸르게 내놓습니다.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도 나무는 푸릅니다. 바라보거나 아끼거나 보살피는 손길이 없어도 나무는 싱그럽습니다. 나무도 따사로운 눈길을 좋아하고, 살가운 손길을 반깁니다. 나무도 보드라운 눈빛을 즐기고, 사랑스러운 손빛을 받고 싶습니다.


.. 산수유 숨어 피는 / 돌부리 산길 ..  (내원암 가는 길)


  이상국 님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창작과비평사,1998)를 읽으며 나무를 마음속으로 그립니다. 이상국 님은 나무를 그리며 시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무를 노래하면서 시를 노래하고, 나무를 포근히 안으면서 싯말 한 자락을 포근히 붙안지 않았나 싶어요.


.. 어린 나는 솔밭에서 / 하늘과 꽃과 놀며 소를 먹이고 / 어머니는 밭고랑에서 내 모르는 소리를 저물도록 했지요 ..  (나의 노래)


  나무가 있기에 땔감을 얻습니다. 나무가 있으니 기둥을 세워 집을 짓습니다. 나무로 배를 무어 고기잡이를 합니다. 나무로 지게를 짜고, 나무로 젓가락과 숟가락을 만들고, 나무로 도마를 만듭니다.


  나무로 책걸상을 만들고 옷장을 짭니다. 나무로 연필 한 자루를 깎고, 나무로 종이를 빚어 책을 묶습니다. 나무에서 맺는 열매가 소담스럽기에 능금과 배와 감과 포도와 석류와 모과와 복숭아를 얻습니다.


  자동차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나무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파트가 없는 삶은 꿈꿀 수 있습니다만, 나무가 없는 삶은 꿈꿀 수 없습니다. 컴퓨터나 신문이나 국회의사당이 없는 삶은 누릴 수 있습니다만, 숲이 없는 삶은 누릴 수 없습니다. 고속도로와 발전소와 군대가 없대서 나라가 무너지지 않으나, 숲이 없으면 나라가 무너집니다.


.. 지난날 어머니와 내가 / 나란히 앉았던 아궁이 앞에 / 오늘은 아들과 함께 / 하염없이 불꽃을 바라본다 ..  (제삿날 저녁)


  초피나무 잎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초피잎을 갉아먹으며 범나비로 다시 태어납니다. 범나비 날갯짓을 보면서 노래가 술술 흘러나옵니다. 모시나비를 만나고 흰나비를 만나며 부전나비를 만납니다. 나비는 훨훨 날아 들빛을 밝히고, 나비 곁에서 풀을 뜯으며 봄빛 물씬 나는 밥 한 그릇을 즐깁니다.


  나무 곁에서 노래합니다. 나무를 노래하고 삶을 노래합니다. 나무에 깃든 나비를 노래하고, 나비를 콕 잡아서 먹는 제비를 노래합니다. 가랑잎을 노래하고 새잎을 노래합니다. 겨울눈을 노래하고 잎망울을 노래합니다.


.. 박정희 때 지은 슬레이트 지붕이 마분지처럼 낡아 바람에 미어질 것 같은데 삭아 테두리만 겨우 걸린 도라무깡 굴뚝 위에 새 한마리 앉아 집을 보고 있다 ..  (빈 집)


  나무로 지은 집은 오랜 나날 잇습니다. 들보가 무너지면 새 들보를 얹으면 되고, 기둥이 삭으면 새 나무를 베어 새롭게 집을 지으면 됩니다. 오랫동안 집을 버티던 나무는 땔감이 됩니다. 그동안 새로 자란 나무는 집이 됩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아파트는 새로운 집이 되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거름이 되지 못합니다. 아파트를 이루던 쇳덩이와 시멘트와 플라스틱과 유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궁금합니다. 이런 부스러기는 그예 쓰레기가 될 텐데, 앞으로 쓰레기가 될 집을 짓는 문명과 문화는 어디로 나아가려는 셈일까요. 시멘트집에서 살고 시멘트바닥을 밟으며 시멘트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꿈을 키우면서 어떤 사랑을 나눌는지요.


  나무는 해마다 씨앗을 내놓습니다. 새로운 씨앗은 큰나무 둘레에 툭툭 떨어져 이듬해에 싹이 틉니다. 큰나무 언저리에서 작은나무가 자라고, 작은나무는 머잖아 새로운 큰나무 되겠지요.


  사람은 어떤 씨앗을 내놓을까요. 사람은 어떤 삶을 가꿀까요. 사람이 내놓은 씨앗은 앞으로 어떤 꿈이나 사랑이 될까요. 사람들은 어떤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고,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웃음꽃을 피울까요. 4347.4.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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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는 벚나무를 심는다. 누가 심으라 하지 않으나 조용히 벚나무를 심는다. 할아버지가 심은 벚나무에 벚꽃이 피는 모습을 할아버지가 볼 수 있기도 하지만, 할아버지는 벚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는 모습까지 지켜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에 앞서 다른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는 어느새 우람하게 자랐으니, 먼먼 옛날부터 하나둘 심어서 돌보고 아낀 나무들로 숲을 이룬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꾸준히 벚나무를 심고 사랑하며 기쁘게 바라본다. 아이는 할아버지 곁에서 나무를 마주한다. 나무를 쓰다듬고 나무내음을 맡으며 나무꽃을 즐긴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아이는 눈물에 젖지만 벚나무로 이루어진 숲에서 새봄을 맞이하며 꽃잔치를 떠올린다. 그래, 꽃잔치이지. 할아버지가 물려준 고운 선물을 가슴에 담아야지. 숲을 지키고, 숲을 사랑하며, 숲을 노래해야지. 4347.4.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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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벚꽃 산
마쓰나리 마리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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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1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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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7] 물



  시외버스를 타고 멀리 마실을 갑니다. 시외버스는 두 시간 남짓 달리다가 쉼터에서 섭니다. 쉼터에서 아이들 쉬를 누입니다. 물병을 채우려고 쉼터에 있는 밥집으로 갑니다. 물이 있는 곳을 살핍니다. 저기에 있구나 하고 물을 받으려는데, 물을 받는 곳에 ‘음용수’라는 푯말이 붙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실물’도 ‘먹는물’도 아닌 ‘음용수’로군요. 이곳에서 물을 받아서 마시는 아이들은 저 글을 읽으려 하겠지요. ‘믈’을 마시려고 이곳에 와서 ‘믈’은 못 마시겠지요. 4347.4.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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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물결



가을걷이 마칠 무렵
군청에서 경관사업 벌이며
마을마다 논에 유채씨 뿌리라 시킨다.


이장님들은 새벽마다
빈논에 바지런히 땅 갈아 심으라
재촉하는 방송 하며 겨울을 보낸다.


새봄 찾아와 논에
노랗게 꽃물결 일렁인다.


유채씨 받으려는 흙지기 없이
죄 밟아 쓰러뜨리거나 꺾는다.


유채꽃은 한낱
도시사람 자가용마실 구경거리.



4347.4.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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