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꽃



곁님도 나도 아이들도
씨앗 받아
뿌린 적 없으나
해마다
올망졸망 멋진 잎
넓적넓적 베풀며
길다랗게 꽃대 올리고는
노란 꽃잔치 베푸는
갓.


갓꽃은 얼마나 오래
이 땅 이 터에서
밥이 되고 노래가 되며
숨이 되고 사랑이 되었나.


벌나비 함께 춤춘다.



4347.4.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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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과 꽃마리꽃



  조그마한 꽃마리꽃을 바라본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꽃마리꽃을 바라보고, 우리 도서관에서 피어나는 꽃마리꽃을 바라본다. 길을 가다가도 꽃마리꽃이 피었는지 가만히 들여다본다. 걸음을 멈춘다. 조용히 쪼그려앉는다.


  꽃마리꽃인지 꽃다지꽃인지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걸어가다가도 알아볼 만하다. 걸어가면서 바라볼 적에는 네가 여기 피었구나 하고 알아본다.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앉으면 꽃마리꽃이 자라는 흙내음을 맡으면서, 아하 네가 이곳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꽃송이가 벌어진 꽃마리꽃 한 줄기를 꺾는다. 아이들 밥그릇에 얹는다. 꽃송이가 고운 꽃마리꽃 두 줄기를 꺾는다. 내 밥그릇에 얹고 곁님 밥그릇에 함께 놓는다. 다 같이 봄내음을 맡으면서 봄빛을 먹는다. 꽃마리꽃은 꽃내음으로 나한테 스며들고, 꽃마리꽃 한 줄기는 밥과 함께 몸으로 스며들어 푸른 기운으로 되살아난다. 4347.4.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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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32) 상질의 1 : 상질의 감자


그의 막내아들 잭이 최선을 다해 경작하고 있었지만 상질의 감자가 생산되는 곳은 한 평도 없었다
《조지프 코캐너/구자옥 옮김-잡초의 재발견》(우물이 있은 집,2013) 122쪽


 상질의 감자
→ 좋은 감자
→ 훌륭한 감자
 …


  한국말로 ‘좋다’와 ‘나쁘다’라 말합니다. 질이나 품질이 좋으면 ‘좋다’이고, 질이나 품질이 나쁘면 ‘나쁘다’입니다. 굳이 ‘상질’이나 ‘하질’ 같은 한자말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꾸밈없이 쓰면 넉넉한데, 한자를 빌어 ‘상질·하질’을 쓰니 토씨 ‘-의’를 붙이고 맙니다.


  좋은 감자, 더 좋은 감자, 덜 좋은 감자, 그럭저럭 좋은 감자, 꽤 좋은 감자, 안 좋은 감자, 먹을 만한 감자, 훌륭한 감자, 굵은 감자, 맛있는 감자와 같이 여러모로 쓸 수 있습니다. 4347.4.13.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막내아들 잭이 힘껏 땅을 일구었지만 좋은 감자가 나오는 곳은 한 평도 없었다


“그의 막내아들 잭”은 “그 사람 막내아들 잭”이나 “그이 막내아들 잭”으로 손볼 수 있으나, 이 자리에서는 “막내아들 잭”으로만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최선(最善)을 다해”는 “온힘을 다해”나 “힘껏”이나 “땀흘려”로 다듬고, “경작(耕作)하고 있었지만”은 “땅을 일구었지만”이나 “땅을 갈았지만”으로 다듬습니다. ‘생산(生産)되는’은 ‘나오는’으로 손질합니다.


‘상질(上質)’은 “품질이 썩 좋은 것”을 뜻합니다. “질 좋은”이나 “품질 좋은”으로 손질하면 되는데, 단출하게 “좋은”으로 쓰면 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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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에 글을 쓰기로 하다



  지난주에 〈전라도닷컴〉 황풍년 대표님 전화를 받는다. 지난달에 내놓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즐겁게 받으셨다고 말씀한다. 그 책을 읽으면서 다음달부터 〈전라도닷컴〉에 내 글을 함께 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씀한다. 고마운 말씀이라고 여겨 다음달 호부터 글을 쓰겠다고 얘기한다.


  전화를 마친 뒤 곰곰이 헤아린다. 나는 강준만 님이 꽤 예전에 쓴 글을 읽고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를 알았다. 이 잡지가 갓 나올 무렵이었다고 느낀다. 서울과 인천에서 살며 〈전라도닷컴〉을 보았을 적에 참 놀랍고 대단하며 재미있는데다가 아기자기하다고 느꼈다. 이런 잡지가 전라도뿐 아니라 경상도와 충청도와 경기도와 서울과 인천에서 저마다 다른 빛으로 나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했다. 이름나거나 잘난 사람들 이야기 아닌, 수수하며 투박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룰 줄 아는 예쁜 잡지가 이 나라 곳곳에서 나오면 더없이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전라도닷컴〉에서는 시골마을이 무대이고 시골사람이 주인공이다. 농협에서 펴내는 잡지조차 시골마을이나 시골사람을 한복판에 놓지 못한다. 생태와 환경을 다룬다는 단체나 기관에서 선보이는 잡지마저 시골마을이나 시골사람 눈높이에서 글과 사진과 이야기를 엮지 못한다. 한국에 꼭 하나 있는 시골빛 감도는 잡지는 〈전라도닷컴〉이다. 전라도라는 곳이 재미있고 대단하다고 새삼스레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다가 2011년 가을에 전라남도 고흥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보금자리를 전라도로 옮기면서 〈전라도닷컴〉을 정기구독 했다. 이달로 정기구독 기간이 끝나 정기구독을 이으려 생각하는데, 마침 ‘글 부탁’을 받는다.


  우리 식구는 주민등록이 전라도이다. 마땅한 노릇이지. 우리 식구는 전라도사람이다. 아무렴. 그런데 무언가 한 가지 아쉽다고 늘 느꼈다.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언제나 한 가지 있었다. 그 무엇이 무엇이었을까. 그 무엇을 푸는 실마리를 무엇이었을까.


  〈전라도닷컴〉에 글을 쓸 수 있는 이즈음에 ‘이제부터 참말 전라도사람이네’ 하고 느낀다. 오래오래 즐겁게 쓰자. 시골을 사랑하고 전라도를 아끼는 노래를 부르자. 한국을 어루만지고 지구별을 춤추는 이야기를 엮자. 4347.4.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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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40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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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51



시와 술집
― 즐거운 일기
 최승자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84.12.5.



  네 식구가 서울로 마실을 나옵니다. 람타학교 강의를 듣는 자리가 있기에 아침부터 부산하게 길을 나섭니다.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놓치고, 이웃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려고 들길을 걷습니다.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면 이십 분 남짓 걸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웃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려면 제법 걸어야 합니다.


  유채물결 일렁이는 들길을 걸으며 생각합니다. 마을 어귀에서 손쉽게 버스를 타도 즐겁지만, 이웃마을까지 아이들과 천천히 걸어가면서 들빛을 누려도 즐겁습니다. 아니, 어느 모로 보면, 서울 언저리에서 배기가스 그득한 바람을 여러 날 쐬어야 할 테니, 시골 들바람을 조금 더 마시면서 바깥마실을 하면 한결 나을 만합니다.


..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 열망과 허망을 버무려 / 나는 하루를 생산했고 / 일년을 생산했고 /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 벨이 울리고)


  서울은 낮에도 밤에도 자동차가 많습니다. 시골 읍내에서 자동차가 가장 붐비는 때에 오가는 자동차 숫자조차 서울에서 가장 한갓진 때에 오가는 자동차 숫자에 댈 수 없이 훨씬 적습니다. 하루를 묵고 이틀을 머무는 아이들 이모네 집에 있는 동안, 창밖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는 모두 자동차 오가는 소리입니다. 새벽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창밖에서는 자동차 소리만 흐릅니다.


  지은 지 제법 된 아파트 옆을 걸어가면, 심은 지 제법 된 나무가 꽤 있어, 이 나무에는 참새나 직박구리가 앉아서 노래합니다. 새잎 돋는 느티나무에 앉은 직박구리가 노래합니다. 꽃이 다 떨어진 벚나무 둘레에서 참새가 먹이를 찾습니다. 이제는 온통 아파트와 찻길과 건물만 있는 이 도시라 하지만, 쉰 해쯤 앞서를 떠올리거나 백 해쯤 앞서를 헤아린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무렵에는 들길이거나 숲길이지 않았을까요.


.. 꿈 대신에 우리는 확실한 손을 갖고 싶다. / 확실한, 물질적인 손. // 아랍의 정에는 칼! 아메리카의 정의에는 총! / 한국의 정의에는 술! 수울? ..  (꿈 대신에 우리는)


  아이들을 재우며 토닥토닥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 이모네 집 창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큰아이가 문득 “삐뽀차 소리다!” 하면서 창턱에 기댑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외친 소리를 따라 함께 창턱에 기댑니다. 아이들로서는 뭔가 재미난 구경거리입니다. 술집에서 술에 절다가 툭탁거리는 사람들이 경찰한테 붙들려 경찰차에 타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꽤 볼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찹니다. 한 시에 두 시에 세 시에 부시시 일어나서 이불깃을 여밉니다. 이불깃을 여미고 다시 자리에 눕는데, 창밖에서는 아직도 깔깔 호호 하하 소리가 울립니다. 오피스텔 건물 8층에 있는 이곳 둘레 다른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씻는 소리가 들리며 콩콩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깊은 밤이기에 이웃집 소리가 이렇게 또박또박 들리는군요. 어느 집에서는 아직도 텔레비전을 볼 테고 영화를 볼 테지요. 어느 집에서는 사랑을 속삭일 테고, 어느 집에서는 전화기를 붙들고 밤 깊은 줄 모르는 수다를 떨 테지요.


.. 봄에는  속이 환히 비치는 옷을 입고 / 일곱 송이의 꽃을 머리에 꽂고 / 마지막으로 신발을 벗어 버리고서, / 청파동에서 수유리까지 손가락질하며 / 희죽거리며 걸어가고 싶다 ..  (望祭)


  대한민국에는 술집이 아주 많습니다. 도시에도 시골에도 온통 술집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여관이 아주 많습니다. 도시에도 시골에도 온통 여관입니다. 초등학교 가까이에 술집과 여관이 많습니다. 중학교 둘레에 술집과 여관이 가득합니다. 고등학교 언저리에 술집과 여관이 줄을 섭니다.


  아이들한테 술을 가르치거나 먹이는 어른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벗어나기 무섭게 술에 절어 지냅니다. 적잖은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조용히 술을 마시곤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어른들은 놀 줄 몰라 술만 들이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놀이를 물려주지 않고 술집만 물려줍니다.


  학교 둘레에 쉼터가 없습니다. 학교 둘레에 숲이 없습니다. 학교 둘레에 냇물이 흐르지 않고, 학교 둘레에 들이 없습니다. 학교 둘레에 술집이 있고, 공장이 있으며, 널따란 찻길이 있습니다. 학교 둘레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가 있으며, 관광단지와 골프장이 있습니다. 학교 둘레에 아파트가 있고 병원이 있으며 백화점과 할인마트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바라볼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이들은 어떤 터전에 둘러싸이면서 자랄까요. 아이들은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 네가 나를 차 버렸으 때 / 너는 즐거웠었니, 내 사랑 내 아가야. / 어느 날 네가 병든 낙엽처럼 / 내 문간에 불려 떨어진다면 / 어느 날 네가 허깨비처럼 / 내 창가에 돌아와 선다면 ..  (너는 즐거웠었니)


  최승자 님 시집 《즐거운 일기》(문학과지성사,1984)를 읽습니다. 꿈을 가르치지 않고 술을 가르치는 이 나라 얼거리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최승자 님 시를 읽습니다. 꿈을 노래하지 않고 입시지옥을 노래하는 이 나라 틀거리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최승자 님 시를 읽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꿈을 배우지 못합니다. 시험문제만 배웁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열두 해에 걸쳐 사랑을 배우지 못합니다. 교과서와 학습지만 배웁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꿈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시험문제만 가르칩니다. 한국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들은 열두 해뿐 아니라 이녁이 정년퇴직을 하는 날까지 오직 교과서와 학습지에 얽매인 채 꿈과 동떨어진 지식조각을 머릿속에 담습니다.


.. 오늘 나는 기쁘다. 어머니는 건강하심이 증명되었고 밀린 번역료를 받았고 낮의 어느 모임에서 수수한 남자를 소개받았으므로 ..  (즐거운 일기)


  즐겁게 쓸 적에 비로소 글입니다. 즐겁게 쓰지 않으면 글이 아닙니다. 즐겁게 할 때에 공부입니다. 대학교에 가려고 하면 공부가 아닙니다. 즐겁게 가꿀 적에 삶입니다. 즐겁지 않으면 삶이 아니고 살림이 아니며 사랑이 아닙니다.


  검사를 받아야 하니까 쓰는 일기는 즐겁지 않습니다. 날마다 꼬박꼬박 쓰도록 하는 일기는 즐겁지 않습니다. 어른 아닌 교사가 검사하고, 어버이 아닌 학부모가 슬그머니 들여다보는 일기는 즐겁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노래하는 이야기를 쓸 때에 즐거운 일기입니다. 사랑 담아 꿈꾸는 이야기를 적을 때에 즐거운 일기입니다. 빙그레 웃고 깔깔깔 웃음꽃 터뜨리는 빛이 흐를 무렵에 비로소 즐거운 일기입니다.


.. 어이어이 거기 계신 이 누구신가, / 평생토록 내 문 밖에서 / 날 기다리시는 이 누구신가? // 이제 그대가 내 적이 아님을 알겠으니, / 언제든 그대 원할 때 들어오라 ..  (放)


  새벽 다섯 시쯤 되니 비로소 창밖에 조용합니다. 아직까지 불빛 밝은 술집이 있을 테고, 아직도 술에 전 어른들이 있을 테지만, 새벽 다섯 시를 지나 여섯 시가 다가오니 창밖이 조용합니다. 그러나, 새벽 여섯 시가 다가오니 버스와 자동차 소리가 새롭게 울립니다. 술에 전 어른들 술투정과 술싸움은 그치지만, 다른 투정과 싸움이 일어나는군요.


  술집이 가득한 곳을 오가면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잘 모르겠습니다. 술집이 가득한 곳에 보금자리를 얻어 살아가야 한다면 어른들은 무엇을 나눌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에 씨앗 한 톨 심어 가꿀 수 있는 이라면, 시골숲에서 노래하든 도시 한복판 복닥거리는 술집 사이 시끄러운 아파트 한켠에서 춤추든, 이야기 한 자락 거둘 수 있겠지요. 고즈넉하거나 한갓진 곳에서 숲바람을 마셔야 아름답다 싶은 시를 쓰지 않습니다. 어지럽고 어수선한 도시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기에 아름답다 싶은 시를 못 쓰지 않습니다. 마음밭에 사랑을 놓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즐겁게 웃으며 시를 씁니다. 4347.4.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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