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꽃길 콩콩콩



  햇볕이 좋은 낮에 마실을 나온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면서 앞장서 걷는다. 집에서도 콩콩콩 달리면서 놀고, 들길에서도 콩콩콩 달리면서 노래한다. 유채꽃은 바람 따라 날리면서 꽃내음을 물큰물큰 베풀어 준다. 사름벼리도 산들보라도 꽃바람을 마시면서 함께 걷는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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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왜 바쁜지 몰랐다



  아침에 아이 둘을 씻기면서 밥물을 안친다. 두 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힌 뒤 국냄비에 불을 넣는다. 불은 작게 올리고 나서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한다. 빨래를 마치고 나서 찬거리를 마련한다. 뒤꼍을 돌며 풀을 뜯는다. 보글보글 끓는 밤냄비에 쑥을 썰어 넣는다. 풀을 헹구어 물기를 턴 다음 밥상에 올린다. 아이들을 불러 밥상맡에 앉힌다. 아이들더러 밥을 먼저 먹으라 이르고는 빨래를 들고 방으로 가서 옷걸이에 꿰어 넌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허리를 톡톡 두들긴 뒤 내 밥을 푸고 국을 뜬다. 아이들은 밥상맡에 아버지가 함께 앉기까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문득 내 어린 날을 떠올린다. 어머니가 집에서 함께 밥상맡에 앉는 일은 드물었다. 밥을 거의 다 먹을 즈음 비로소 앉으셨다. 이동안 부엌일을 하고 집안일을 매만진다. 웬만한 일거리는 심부름을 시키셔도 될 텐데 굳이 혼자 다 하셨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왜 그리도 바빠야 하는지 잘 몰랐다. 두 아이와 살며 나 스스로 어머니 몫을 맡다 보니, 시나브로 어릴 적 어머니 모습을 읽는다. 심부름을 시키거나 맡길 적에도 일이다. 그냥 혼자서 바지런히 하고 만다. 아이들은 즐겁게 밥을 먹으면서 새롭게 기운을 내어 씩씩하게 놀면 기쁘다.


  마음이란 그렇다. 마음은 마음으로 이어진다. 마음은 마음으로 읽는다. 차근차근 읽고, 오래오래 마주한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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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 셋길



  네 식구가 서울마실을 하며 전철을 탈 적입니다. 일곱 살 큰아이가 전철 길그림을 읽습니다. “저기는 노란 줄로 셋이라고 적혔네. 셋길이야, 셋길! 어, 저기는 다섯이라고 적혔네. 다섯길이야!” 나는 큰아이한테 ‘삼호선’이나 ‘오호선’이라는 말로 바로잡지 않습니다. 아이가 한 말 그대로 “그래, 셋길이네. 저기는 다섯길이네.” 하고 이야기합니다. 전철을 타고 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인천이든 큰도시에 놓은 전철이나 지하철에 모두 ‘일호선·이호선’처럼 이름을 붙입니다. 일곱 살 아이가 문득 떠오르는 대로 말하듯이 ‘한길·두길·셋길’처럼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조차 어른들은 못 했으리라 싶습니다. 이런 이름을 생각했다 하더라도 이런 이름을 즐겁게 널리 쓰자는 데까지 생각을 뻗지 못했으리라 싶습니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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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곡예사 분도그림우화 33
바바라 쿠니 / 분도출판사 / 1987년 4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7



누가 누구를 섬기는가

― 꼬마 곡예사

 바바라 쿠니 글·그림

 김구인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1987.4.1.



  우리 집 큰아이는 여섯 살까지 자전거수레에 앉았습니다. 요즈음은 샛자전거에 탑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올해에 네 살이니 앞으로 두 해 더 자전거수레에 앉으리라 생각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곧 네발자전거로 싱싱 달릴 수 있을 텐데, 여덟 살이 되고 아홉 살이 되면 두발자전거로 달리리라 생각합니다. 열 살이 되어서야 두발자전거를 달릴는지 모릅니다. 이때에는 샛자전거를 동생한테 물려주겠지요.


  아이는 아이 몸에 맞게 자전거를 탑니다. 어른은 어른 몸에 맞게 자전거를 탑니다. 아이더러 어른 자전거를 타라 할 수 없고, 어른한테 아이 자전거를 타라 할 수 없습니다. 아이 밥그릇에 어른이 먹는 부피로 밥을 떠 줄 수 없고, 어른 밥그릇에 아이가 먹는 부피로 밥을 떠 주면 배고프겠지요.



.. 바나비는 공 여러 개로 재주를 부리고, 공중제비를 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렇게 해서 먹고살았습니다. 높이 뛰어오르고, 공중에서 공놀이를 하고 물건으로 균형을 잡는 것, 이런 것들은 잘 알았지만 그밖의 것은 거의 몰랐습니다. 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것밖에는 몰랐습니다. 아버지도 곡예사이셨으니까요 ..  (8쪽)





  아이는 아이답게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는 어른스럽게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어른스러운 그림을 바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글을 씁니다. 아이는 어른스럽게 글을 또박또박 쓰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한테 어른스러운 글씨를 바랄 수 없습니다.


  어른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 ‘천재’일는지 모르지만, 이런 아이는 아이도 어른도 천재도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는 왜 어른스럽게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아이는 왜 천재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일곱 살 아이가 바둑 천재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여덟 살 아이가 골프 박사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열 살 아이가 피아노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만, 아이는 아이답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춤출 적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어른도 어떤 천재나 박사나 교수 같은 이름보다는 그저 어른으로서 삶을 즐기고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잔치를 나눌 적에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 몸이 꽁꽁 어는 듯한 어느 날, 의지할 곳 없는 바나비는 깔개 위에 서서 인사를 했습니다.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구경꾼이라고는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  (24쪽)



  사월에 사월꽃이 핍니다. 삼월에는 삼월꽃이 피었습니다. 오월에는 오월꽃이 핍니다. 꽃은 봄 가운데 한 달만 피지 않습니다. 꽃은 봄에만 피지 않습니다. 여름꽃과 가을꽃이 있고, 겨울꽃이 있습니다. 꽃은 철마다 다른 빛이며, 달마다 다른 내음입니다.


  마당에 서서 후박꽃을 바라봅니다. 평상에 올라서서 후박꽃하고 키높이에 섭니다. 코를 대고 얼굴을 대면서 후박내음을 듬뿍 들이켭니다. 자그마한 꽃망울마다 벌나비가 모여들 테고, 벌나비는 꽃가루받이를 거들 테지요. 꽃가루받이를 마친 꽃송이는 천천히 지면서 빨갛고 예쁜 열매를 맺겠지요.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 가지가 쏴아쏴아 소리를 내며 흔들립니다. 두 팔을 벌려 나무노래를 듣습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나뭇잎과 꽃잎이 함께 흔들립니다. 나뭇잎과 꽃잎이 흔들리면서 후박내음은 더 짙게 퍼지고, 겨우내 푸르게 매달렸던 잎은 노랗게 물든 채 톡톡 소리를 내며 마당으로 떨어집니다.





.. 어느 날 바나비는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거룩하신 마리아님, 제가 어떻게 마리아님을 섬길 수 있을까요?” 그러고는 절망하여 흐느꼈습니다. 바나비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었기를 바랐습니다.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을 때, 바나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깡총 뛰었습니다. “그걸 할까? 그래. 할 수 있어. 꼭 할 테야. 내가 배운 것을 할 테야. 그래서 내 나름으로 성모님의 작은 성당에서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섬길 테야. 다른 수사님들은 성가와 기도로 그분들을 공경하시겠지. 난 재주넘기로 그분들을 예배할 테야.” ..  (32쪽)



  봄에 노랗게 물든 채 떨어지는 후박잎을 줍습니다. 밥상에 올리고 아이들을 부릅니다. 말없이 크레파스와 종이를 꺼냅니다. 후박잎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립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종이를 달라 하면서 함께 후박잎을 그립니다.


  누가 그림을 그리라 시키지 않았습니다. 후박잎을 그리기에 어디 공모전에 내지 않습니다. 우리 집을 포근하게 감싸며 고운 냄새를 나누어 주는 후박나무를 떠올리며 보드라운 잎사귀를 쓰다듬으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책 《꼬마 곡예사》(분도출판사,1987)를 펼칩니다. 프랑스에서 먼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바라 쿠니 님이 손질해서 새로운 그림책으로 엮었습니다. 바바라 쿠니 님은 ‘꼬마 곡예사’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여겨 이녁 아이한테 ‘바나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그러니까, ‘꼬마 곡예사’는 바바라 쿠니 아들한테 새롭게 선물하는 책이요 이야기이며 그림이고 이름으로 거듭난 셈입니다.





.. 예수 아기님의 생일인 이날 밤에 바나비는 일찍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더 기술적으로 재주를 부렸습니다. 재주 부리기가 끝나자, 바나비는 너무나 지쳐서 그만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녹초가 된 채 누워 있었습니다. 아빠스님과 호기심 많은 수사님이 바나비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성상을 모신 벽감에서 한 부인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일찍이 어느 누가 본 부인보다 더 영광스런 모습에 보배스런 관을 쓴 아름다운 부인이었습니다 ..  (41∼42쪽)



  옛이야기 ‘꼬마 곡예사’에 나오는 아이 ‘바나비’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습니다. 아버지도 여의었어요. 어머니를 여읜 뒤 아버지와 곡예사 노릇을 하며 살았으나, 아버지마저 떠나면서 혼자 곡예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을까지는 이럭저럭 벌이가 되어 밥을 먹을 수 있었으나, 겨울이 찾아오니 곡예를 보려는 사람이 없어 굶고 추운 하루를 보내야 했다고 해요. 이런 바나비를 길에서 문득 마주친 성당 수사님이 바나비를 거두어 성당에서 지내도록 해 줍니다.


  바나비는 성당에서 배고픔과 추위를 잊은 채 지냅니다. 처음에는 고맙고 즐거웠으나 차츰 시무룩하고 슬픕니다. 왜냐하면, 성당에 있는 어른들은 예수님나신날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선물을 마련합니다. 어떤 어른은 멋진 글씨로 성경을 새로 옮기고, 어떤 어른은 멋진 그림을 그리며, 어떤 어른은 멋진 노래를 짓습니다. 어린 바나비는 어릴 적부터 배운 ‘재주’가 곡예 한 가지뿐입니다. 다들 무언가 멋진 선물을 바친다는 생각에 들뜨고 기쁘며 설레지만, 바나비 혼자 외롭고 서글프며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다 바나비는 다짐을 해요. 바나비 스스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을 걷자고 다짐합니다. 성모님한테 ‘바나비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곡예’를 바치자고 다짐해요.


  돈이 있는 어른이라면 돈을 바치겠지요. 글재주 있는 어른이라면 아름다운 글을 바치겠지요. 그러면, 돈이 없거나 글재주가 없는 어른은? 몸이 아파 몸져누운 채 살아온 어른은? 아이들은? 늙은 할매와 할배는? 온삶을 바쳐 흙을 일군 사람은? 건물 청소 일꾼은? 버스나 택시를 모는 일꾼은? 공장 일꾼은? 구멍가게 일꾼이나 대형할인마트 일꾼은? 입시지옥에 허덕이는 푸름이는?




.. 마리아님은 하얀 손수건을 꺼내어 당신의 곡예사 얼굴에 부채질을 해 주셨습니다 ..  (42쪽)



  성모 마리아님은 어떤 숨결일까요. 바나비라는 아이는 어떤 숨결일까요. 그림책 《꼬마 곡예사》를 빚은 바바라 쿠니 님은 어떤 숨결일까요. 이 그림책을 읽으며 눈물젖거나 웃음짓는 우리들은 어떤 숨결일까요. 젖을 먹는 아기와 개구지게 뛰노는 아이들은 어떤 숨결일까요.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는 어떤 숨결일까요. 개구리 한 마리와 제비 한 마리는 어떤 숨결일까요.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목숨은 저마다 어떤 숨결일까요.


  누가 누구를 섬기는지 헤아려 봅니다. 누구 누구한테서 섬김을 받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름다운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곱씹어 봅니다. 사랑스러운 하루는 누가 어떻게 가꾸는지 되새겨 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다 다르면서 다 같은 빛이 환하게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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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26] 사랑을 하는 어른



  아이도 사람 어른도 사람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언제나 아이로 산다.



  맑은 마음일 때에는 어른이 될 테고, 맑은 마음이 아닐 때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어른은 밥그릇 아닌 맑은 넋을 고이 건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얻는 이름이리라 느껴요. 맑은 넋을 고이 건사하지 못한 채 밥그릇을 챙기기만 한다면 어른이라는 이름을 못 얻으리라 느껴요. 나이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맑은 넋을 고이 건사하지 못하는 이를 두고 아무도 어른이라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 사랑은 어른만 할 수 있겠지요. 사랑은 아이다운 마음을 곱다라니 지키는 어른만 할 수 있겠지요.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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