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 있는 컴퓨터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이 그득한 곳에 셈틀을 놓는다. 책방에서도 책이 가득 쌓인 한켠에 셈틀을 둔다. 책방에서 책은 받침대 구실을 한다. 우리 집에서도 모니터를 책을 두 권 놓아 받친다. 때때로 책은 다람쥐 받침판 노릇을 하고, 마실을 다닐 적에는 작은 노트북을 작은 책 두 권을 엇갈려서 받침대로 삼는다.


  인터넷은 얼마나 많은 지식이나 정보를 들려줄 수 있을까. 인터넷을 켜는 셈틀은 얼마나 너른 곳까지 골골샅샅 돌아다니도록 길을 열어 줄까. 책에는 어떤 지식이나 정보가 있을까. 책을 펼치는 사람은 책에서 어떤 길을 느끼거나 배우거나 깨달을까.


  셈틀을 켜는 만큼 책을 덜 읽거나 못 읽는다. 셈틀을 끄는 만큼 책을 더 읽거나 잘 읽는다. 책을 덮는 만큼 삶을 더 읽거나 잘 누린다. 책을 읽는 만큼 밭을 못 일구고 마실을 못 다닌다. 셈틀과 책과 삶은 서로 얼마나 이어졌을까. 셈틀과 책과 삶은 서로 어떻게 어깨동무를 할까.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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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종이로 싼 책



  예전에는 책을 곧잘 신문종이로 쌌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를 떠올리면 나도 동무도 으레 교과서를 신문종이로 쌌다. 뒤가 하얗게 깨끗한 달력을 얻으면 달력을 뜯을 적마다 안 버리가 잘 간수했다. 학기마다 새 교과서를 받으면 맨 먼저 깨끗한 달력종이로 교과서를 쌌고, 달력종이로 모자라면 신문종이를 썼다. 때로는 공책을 신문종이로 싸기도 했다.


  곰곰이 돌아보면, 어릴 적 푸줏간에서도 으레 신문종이였다. 물고기를 파는 이들도 신문종이를 썼다. 학교에서 폐품을 내라며 다달이 신문종이를 오 킬로그램씩 모아야 했지만, 신문종이는 어느 가게에서나 집에서나 아주 알뜰하게 썼다. 내가 신문배달을 할 적에는, 우리 신문사지국에 있던 도박에 빠진 형이 신문뭉치를 몰래 한두 덩이씩 고물상에 가져가서 오천 원에 팔고는 도박을 하기도 했고, 그 형은 신문뭉치를 팔아 술값에 보태기도 했다.


  헌책방에서는 오늘날에도 신문종이를 알뜰히 건사한다. 책손한테 택배로 책을 부칠 적에 빈틈을 신문종이로 채운다. 이제 웬만한 헌책방에서도 책손한테 비닐에 책을 담아 건네지만, 몇 군데 헌책방에서는 신문종이로 알뜰살뜰 여미어 책을 싸 준다.


  신문종이로 싼 책뭉치는 얼마나 멋스러운가. 종이로 빚은 책을 종이로 싼 꾸러미는 얼마나 예쁜가. 헌책방 일꾼이 빚은 사랑스러운 책꾸러미를 한참 바라보며 웃는다.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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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무엇일까. 삶은 그저 삶일 텐데, 삶은 어떤 나날일까. 마법은 무엇일까. 깜짝잔치와 같을 적에 마법일까. 이루어질 수 없다고 여기는 일이 이루어지면 마법일까. 그러면, 우리 삶은 어떠할까. 우리 삶은 이루어질 만한 일만 일어나고, 이루어지지 않을 법한 일은 안 일어나는가. 즐겁거나 멋지거나 놀랍거나 기쁜 일이 일어날 적에는 무엇이라 하면 좋을까. 이때에도 그냥저냥 다 일어날 법했으니 일어났다고 해야 할까. 마법이 일어났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 꿈과 사랑이 차근차근 이루어진다고 여겨야 할까. 만화책 《마법을 믿으십니까》를 읽는다. 갑작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일이 생기는 이야기를 읽는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어야 할까.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길은 하나이다. 무엇을 보든 나 스스로를 볼 노릇이고, 무엇을 사랑하든 나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함께 어깨동무를 할 노릇이다.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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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믿으십니까? 2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4월
3,000원 → 2,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원(5% 적립)
2014년 04월 2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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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주저'가 퍽 널리 쓰이면서
한국말은 여러모로 쓰임새를 잃곤 합니다.
한국말을 곰곰이 살피면서 하나둘 익히면
자리와 때에 맞추어 재미나면서 즐겁게
우리 뜻과 느낌을 한껏 살릴 수 있습니다.

..

망설이다·머뭇거리다·우물쭈물·엉거주춤
→ 시원스레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들인데, 느낌이 살짝 다릅니다. ‘망설이다’는 “생각만 이리저리 굴리”면서 못 움직이는 모습이고, ‘머무적거리다(머뭇거리다)’는 “자꾸 멈추는” 모습이요, ‘우물쭈물’은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모르는” 모습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모습이지만, 저마다 까닭이 다를 테지요. ‘엉거주춤’은 “이렇게 해야 할는지 저렇게 해야 할는지 모르는 채 몸을 구부정하게 있”는 모습입니다. ‘주춤거리다’도 “자꾸 멈추는” 모습으로는 ‘머무적거리다’와 비슷한데, ‘주춤거리다’는 다른 사람 눈치나 눈길을 살피는 느낌이 짙습니다. ‘갈팡질팡하다’는 “갈 곳을 몰라 헤매”면서 한 자리에 선 모습을 나타내요. ‘우물쭈물’은 큰말이고 ‘오물쪼물’은 여린말입니다. ‘엉거주춤’은 큰말이요 ‘앙가조촘’은 여린말입니다.

망설이다
: 뚜렷하거나 시원스레 움직이지 못하면서 생각만 이리저리 굴리다
 -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 몰라 망설인다
 - 망설이다가 해가 넘어가겠네
머뭇거리다
: ‘머무적거리다’를 줄인 낱말
 - 어서 들어오지 않고 왜 머뭇거리니
 - 할 말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시원스럽게 털어놓으렴
머무적거리다
: 뚜렷하거나 시원스레 움직이지 못하면서 자꾸 멈추다
 -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머무적거리만 한다
 - 쑥스러운 나머지 뒷통수를 긁적이며 머무적거린다
우물쭈물
: 뚜렷하게 하지 못하면서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
 -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우물쭈물 말을 못 한다
 - 바쁘고 어수선해서 우물쭈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엉거주춤
1. 앉지도 서지도 않고 몸을 반쯤 굽히는 모습
 - 거기 엉거주춤 서서 무얼 하니
 - 깜짝 놀라 엉거주춤 몸이 굳었다
2.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
 - 이쪽으로 갈지 저쪽으로 갈지 엉거주춤 길 한복판에 섰다
 - 우는 아기를 안을지 업을지 모르는 채 엉거주춤 있다
주춤거리다
: 뚜렷하게 움직이거나 걷지 못하면서 자꾸 멈추다
 - 네가 뻔히 쳐다보니까 주춤거리는 듯해
 -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주춤거리기만 한다
갈팡질팡하다
: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 이리저리 헤매다
 - 어디라도 좋으니 갈팡질팡하지 말고 길을 나서자
 - 여기도 아닌 듯하고 저기도 아닌 듯해서 갈팡질팡한다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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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76) 존재 176 : 기억만 존재할 뿐


돌이켜보면 기억만 존재할 뿐으로, 이러한 기억들을 보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여기서 멈추는 것이라는 인식이 뒤따른다

《제프 다이어/한유주 옮김-지속의 순간들》(사흘,2013) 135쪽


 기억만 존재할 뿐으로

→ 기억만 있을 뿐으로

→ 기억만 남을 뿐으로

 …



  사진을 찍지 않으면 기억만 남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지 않고 기억을 남기려면 모든 움직임이나 삶을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억을 ‘남기는’ 일을 이야기하는 보기글입니다. 보기글 앞뒤로 ‘남길’을 넣어도 되고, 앞쪽은 ‘있을’을 넣고 뒤쪽은 ‘남길’을 넣어도 됩니다. 4347.4.22.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돌이켜보면 기억만 남을 뿐으로, 이러한 기억들을 남길 수 있는 가장 나은 길은 여기서 멈추기라는 생각이 뒤따른다


‘보존(保存)할’은 ‘남길’로 손질하고, “최선(最善)의 방법(方法)”은 “가장 나은 방법”이나 “가장 나은 길”로 손질합니다. “여기서 멈추는 것이라는 인식(認識)”은 “여기서 멈추는 것이라는 생각”이나 “여기서 멈추기라는 생각”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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